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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4(1900)년 1월 17일 칙령제6호로 "국내우체규칙"이 改正되었다. 제3장[우체료]제6조 4항에 의하면 [국문 또는 한문으로 발간한 신문은 매장 요금 2리 *註2리=구화폐1푼]로 개정되었다. 이전 우체규칙에서는 신문발송 요금이 5푼이므로 1/5로 저감된 것이다. 이를 -신문발송요금특감제-라고 칭하고 있다. 이 개정에 따라 필요했던 우표가 1푼(2리) 우표 이다. 그러나 이 액면의 우표가 체송업무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은 아니고, 용도상 명목상의 우표에 불과하다. 이미 과거부터 신문이나 관보는 요금약수제도로 운영되고 있어, 실제 우표를 붙여 신문이 발송되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였다. 여기서 꼭 짚어야 할것은 모든 신문 발송요금이 2리가 아니다. 요금 2리는 신문사가 出付(독자에게 발송의뢰)하는 경우이며, 정부의 인가를 받은 신문사에 한한다. 동조6항에는 [신문사외에 출부하는 신문은 중량 1냥4전쭝까지 매장 요금1전]으로 되어 있어 신문사외에 신문발송요금은 5배에 해당한다. 따라서 정부는 용도목적의 우표를 제조하기 위해 전국우체사에 산재해 있던 5푼우표 재고품을 회수(*광무4년도 우체수입금 통계표 기록을 근거로 함)하여 수날방식으로 "1,일,壹 " 字 들을 첨쇄하여 액면을 1/5로 절하한 1푼우표가 발행된 것이다. 이 우표의 발행관련 고시가 없어 정확한 발행일자를 알 수는 없으나, "우체수입금통계표"에 따르면 광무4년 2월 집계에서 1푼우표 판매량이 166매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판매량 정도를 가늠해 보면 1900년2월 하순쯤에 발행 되었음을 인지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이 1푼우표가 대한가쇄 우표와 함께 위변조의 대표품으로 수난과 곤욕을 당하며 수집가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만 심어지고 있다. 왜 일까? 나는 근본적인 원인과 책임을 외국인 수집가들과 우표취급 상인들에게 있다고 본다. 구한국 작품으로 세계최고 대상을 수상한 日本의 곤도 氏의 작품이 해체되어 1994년 취리히에서 국제 경매가 이뤄졌는데, 입찰자는 거의가 한국인들 이다. 보물들은 이미 처분되었거나 제외시킨듯 이 경매에서는 많이 빠져 있었다. 여기서 2종 자료만 예시하였지만 그외품도 문제점이 많다. 이 자료들을 보면 심한 국민감정이 유발되는데, 氏의 작품 수준이나 자료수집 능력으로 볼 때 이 자료들은 진정품이 아님을 氏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여겨 진다. 1푼우표 시행이 광무4년 1월 17일 이후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저렇게 명확하고 선명한 광무2년 4월 소인을 판독하지 못해 작품에 제시하고 또 판매의뢰 까지 했따? 이건 분명 고의적 이다. 구매자들의 잘못도 있다. 그러나 그건 이후의 문제이고 이미 이전의 고의성 기획에 분노하는 것이다. 이 자료는 더 어이가 없다. 일자가 안맞는 3개 형식의 일부인은 기념성 메이드라 치고 등기는 무엇을 말함인가. 이건 위조품에 해당한다. 말소 날인은 허용되었다 하더라도 한성사 창구에 외체인,내체인, 몇년전에 폐기된 이중원형인 등이 모두 구비되어 있을리 만무하고, 등기번호까지. 이 자료의 주범은 트레물러 이다. 이 또한 곤도 氏가 자료의 실상을 모를리 만무하고....이런걸 펴놓고 한국 수집가를 스위스 까지 유인한 도덕성에 훌륭한 수집가 칭호보다는 차라리 뛰어난 상술가로 칭찬하고 싶다. 한국에서 전을 안벌리고 국제 옥션사에 위탁한 치밀한 기획에 감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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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렇게 좋은 자료를 공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후세에서는 더욱더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