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주위에서 천도교에 대해서 말이 많다.
천도교가
지나치게 정치 노선으로 질주하고 있다는 비판적 시각과
누가 뭐라고 해도 민족의 활로는
민족사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옹호론적 시각이 그것이다.
자칫하면 이 문제는
천도교가
종교냐 아니면 이념, 혹은 사상 단체냐 하는
본질적 회의를 불러올 수 있는 예민한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날 일부 지도자들은
천도교의 과거 민족 수난기의 저항성만을 크게 부각시켜
그 역동성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러한 저항성이
천도교의 본질적 정신은 아니다.
천도교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영성적 깨달음과 순수 신앙 행위를 통한 이상사회의 건설인데,
이것을 망각하고
정치 사상과 이념의 길로 빠져들고 있다면
심히 우려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 사상과 이념은
정치 체제나 국가 통치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종교적 이상 실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다분히 통치의 필요에서 유입되었기에
필연적으로 부패와 무능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시대 유학과
이에 저항해서 일어난 동학,
그리고 시대는 다르지만
위·진(魏晋)시대 죽림칠현(竹林七賢)의 도가사상의 대비는
‘왜 천도교인가?’라는 의문에 해답을 제시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완적(阮籍), 혜강(乂康), 산도(山濤), 향수(向秀), 유령(劉伶),
완함(阮咸), 왕융(王戎)을 지칭하는 죽림칠현이 살았던 시대는
3세기 중반이었다.
이 때는
위(魏)나라가 후한(後漢)의 왕실을 찬탈하고
다시 위의 권신인 사마씨(司馬氏)가 위조를 빼앗으려는
혹독한 정치적 전환기였다.
죽림칠현은
노장의 사상을 애호하여
그것을 실제 삶 속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철학적 도가들로서
탈속의 자연 속에서 시(詩), 주(酒), 거문고, 담론을 즐기면서
일체의 외부적 구속을 배제한 채
순수한 본성 그대로의 충동에 스스로를 내맡기고자 했던
죽림의 구도자요,
자유인이자
청담가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은둔과 은일의 길을 택한 것은
단지 그들이 애호했던 도가사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들은
새로이 등장한 사마씨 정권의 반대파를 색출하는 데 혈안이 된
사마씨의 첩보망을 피하기 위해
노장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에 기반한
독특한 생활 방식을 택했다고 할 수 있다.
혜강(223∼262)은
완적과 함께 죽림칠현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혜강은
위·진 교체기라는 가혹한 정치적 시련기에
자기를 외부적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당대의 타락한 예교의 규범과 가치에 단호히 맞서 나간다.
혜강의
도가적 세계관은
당대의 시대적 과제였던 경학적 세계관을 극복하는 방향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경학적 사유의 특징은
개인의 삶을
기존의 규범적 질서 속으로 철저히 용해시켜서 바라보는데,
혜강은
이 경학적 세계관을 극복하고
개인을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새로운 질서의 원리를 모색하고자 하였다.
혜강의 ‘성무애락론(聲無哀樂論)’은
당대의 그와 같은 철학적 요청에 응답하고자 했던
실존적 고뇌가 담긴 음악론이자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성무애락론을 통해
혜강이 일차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은
유학의 도구적 음악관이다.
유학의 시각에서 볼 때
음악은 예와 함께 예교적 규범질서를 만들고 유지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이른바 ‘교화’의 수단이다.
그러므로 혜강은 성무애락론을 통해
이 세계의 본성자체가
예와 악으로 표상되는 규범적 질서로 구축되어 있다는
유학의 도구적 음악관을 부정하고자 하였다.
이는 곧
‘자연에는 어떠한 의미도 내재해 있지 않다’고 하는
탈인간중심주의적 선언이며,
같은 맥락에서
명교로 표현되는 허무한 유학적 규범질서에 대한 폭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제한적이지만
이러한 명교적 세계관에 저항했던 죽림칠현의 도가사상과
조선시대 유학적 세계관에 저항했던 동학사상은 어떻게 다른가?
호국불교의 시기였던 고려조를 뒤엎고
역성혁명을 통해서 등장한 조선은
그 건국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유교를 강력한 정치적 수단으로 내세운다.
유교적 질서의 특징은
개인의 삶을 국가 사회의 규범적 질서 속으로
철저히 용해시켜서 바라보는 데 있다.
그러므로 결코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개국한
나라의 임금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막고
온 백성으로 하여금 임금에게 충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백성을 일방적 방향으로 바라보게 하는 수단적 이념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조선조의 유학이었다.
충·효·예 등의 유학적 세계관 속에서는
개인의식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직
국가와 그 국가를 상징하는
임금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러므로 백성의 삶은 오직
임금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그 결과로 백성의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서
임금을 원망하고 나라를 원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백성이 튼튼하지 않으면 나라가 부강해질 수 없기 때문에
도탄에 빠져 허우적대는 조선조 백성의 삶은
나라의 종말을 예감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또 허약한 나라는 외세가 개입되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나라의 주권이 위태로워지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나라와 백성이 악순환적으로 황폐해져도
조정에서는 오히려 예와 유교적 도덕만을 강조하고
실질적인 방책을 수립하지 않았다.
이러한 시기에 실학자들이 성리학에 반기를 들고 나타나고,
그 뒤를 이어서 동학이 민중의 염원에 힘입어 등장하게 된다.
도가사상을 바탕으로
위·진 시대에 등장한 죽림칠현의 세계관이나,
사람 섬기기를 한울같이 하라는 동학의 세계관은
다같이 유교적 세계관에 반기를 들고 나타났다는 점에서는
공통성을 지닌다.
그러나 도가사상과 동학사상은
여러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제일 큰 차이점이라고 하면
자연에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관점에서 찾을 수 있다.
도가에서는
성무애락론(聲無哀樂論)에서 이미 알 수 있었듯이
자연에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동학적 사유에서는
인간뿐 아니라 자연 대상에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즉 사람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삼라만상은
모두 이치와 기운에 의해서 존재한다고 믿는다.
사람이 나고 자라고 죽는 것이나,
해가 뜨고 달이 기울고 풀이 싹트고 벌레가 움직이는 것은
모두 이치와 기운의 조화로 본다.
도가의 성무애락론이
정치적 현실도피와 현실부정의 태도에서 탄생했다면
동학의 존재론적 이상은
생명에 대한 무한한 외경심과 종교적 믿음에서 탄생한 것이다.
도가의 무위자연(無爲自然)과
동학의 무위이화(無爲而化)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무위자연은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를 의미하지만,
무위이화는
이 세상에서 함이 없이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다.
모두가 한울님 이치 기운의 조화로 나타난 자취로 보기 때문이다.
이 이치와 기운을
천도교에서는 한울님이라고 부른다.
동학의 시천주 사상은
유교적 규범 질서에 의한
어떤 특정한 개인이나 권력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물을 마치 한울님 섬기듯이 섬긴다는 뜻이다.
즉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의 정신을 실천함으로서
인격과 생명의 가치를 최고도로 고양시킴을 의미한다.
동학의 시천주 사상은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숭고한 종교적 가르침이며 깨달음이다.
이것이 곧 유학 혹은 도교가 아닌
천도교가 지닌 당위성이다.
오늘날 세계는
다양한 민족과 국가, 종교와 사상이 혼재하면서
갈등과 대립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치관의 혼란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방황하거나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 수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우리 나라는 지난 2002년 현재
경찰 추산 1만3천5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시간당 1.5명이 자살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때,
사회 안정과 인간 구원의 차원에서도
새로운 종교적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19세기 말에 등장한 동학은
근대의 인간중심주의적 패러다임에서
상생과 조화를 위한 자연중심적이고
생태중심적인 새로운 종교적 패러다임이다.
천도교는
자연과 환경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람과 자연이 상생하는 조화의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한다.
천도교에 대한 올바른 인식 자체가
바로 상생과 조화의 삶으로 들어가는 첫걸음이다.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상생하지 않는 곳을 누가 천국이라 부르겠는가!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상생함으로서
현대사회가 직면한 갈등과 대립의 문제들이 풀리고
보다 살기 좋은 지상낙원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천도교는
현실도피처로써 도교적 무릉도원을 이상으로 삼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현실 부정적이거나 현실 참여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도 아니다.
또 유학처럼
종교를 통치의 방법으로 이용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집단적 힘의 원리로 삼으려 하는
일부 종교의 이기적 태도에 대해서도 부정한다.
이 시대 천도교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천도교의 본래적 의미를 망각하고
비순수한 목적성에 사로잡혀
이념화되고 속화되어가는 태도이다.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타락이다.
한시 바삐 천도교 본연의 신앙태도로 돌아가서
오로지 포덕 사업에 성심을 다해야 미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