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히말라야 대탐사 XI발토로 빙하·K2 베이스캠프·가셔브룸 연봉·곤도고로 고개 답사
히말라야의 하얀 산을 등반하고자 하는 산악인이나 오지를 찾아다니는 트레커라면 한 번쯤은 가고 싶은 곳이 바로 카라코룸의 발토로 빙하일 것이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거봉인 K2(8,611m)를 포함해 8,000m급 거봉 4개가 어깨를 견주며 솟아 있다. 얼음이 깎아 만든 수많은 암봉들이 양쪽으로 병풍을 이룬 빙하 위를 걷고 있노라면 더 이상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신들의 궁전과 같은 느낌이 든다. 눈과 얼음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찌 된 일인지 사막을 거쳐 가야 한다. 태양과 가까워져 햇빛이 작열하고 황갈색의 모래와 잡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너울거리는 아지랑이 사이로 푸르름이 보인다. 신기루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며 다시 한 번 쳐다본다. 그곳이 그 날 쉬어 갈 오아시스다. 하지만 어둠이 내리기 무섭게 기온은 곤두박질치고, 몸은 침낭 속을 찾는다. 다음날 아침에 퉁퉁 부은 얼굴과 갈라진 입술에 먹는 둥 마는 둥 끼니를 때우고 힘차게 발을 내딛지만 두어 시간도 못 가서 자연의 위대한 풍광보다는 포터의 발뒤꿈치나 땅바닥을 보고 걷게 된다. 이것이 발토로를 처음 방문하는 대부분의 여행자의 모습이다. 궁전으로 들어서는 길목은 고통과 인내를 요구한다. 도보 캐러밴 앞서 지프 캐러밴 모험 1993년 6월29일, 히말라야 등반을 꿈꾸던 초보자가 카라코룸으로 첫 입산하는 날이다. 스카르두에서 두 대의 지프에 짐을 나누어 들어간다. 사륜구동의 지프는 핸들, 브레이크, 바퀴 등 차가 움직이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만 달려 있다. 겨우 한 대가 지날 정도로 절벽 사면에 축대를 쌓아 만든 위험천만의 길인데도 콧수염을 기른 운전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걱정하지 말라는 웃음을 짓는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는 곳에서는 길은 S자도 아닌 갈짓자 모양을 한다. 한 번에 회전이 되지 않아 후진과 전진을 반복할 때도 있다. 1996년 방문 때였다. 같은 장소에서 운전사는 회전을 위해 핸들을 최대한 돌려 서행하여 다시 후진하려고 멈췄다. 좌측 조수석은 이미 벼랑 끝에 매달린 듯 길바닥은 보이지 않고, 1,000m 아래 계곡에는 강물이 빠르게 흐르고 있다. 정말 내려서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할 수 없이 손잡이를 꽉 잡았다. 낡아빠진 플라스틱 슬리퍼를 신은 그의 발이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같이 밟고 엔진에 큰 소리가 나는 순간, 차가 뒤로 가지 않고 앞의 계곡쪽으로 내려간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등반은커녕 가는 길에 물귀신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뿐이다. 다행히 급브페이크로 차의 앞바퀴가 턱을 넘지 않았는지 멈췄다. 운전사는 브레이크를 두 발로 밟고 핸들만 꽉 잡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다. 때가 꼬질꼬질한 그 발에 당장 입맞춤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차량 고장이 아니라 후진기어로 변속하지 않은 조작 실수를 안 순간 바로 그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그리고 꽉 껴안았다. 그는 “인샬라(알라신의 뜻으로)”만을 읊조린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는 이런 일들은 카라코룸과 힌두쿠시를 장기간 여행하는 자에게 여러 번 찾아온다. 횟수를 거듭하면 적응이 되려나 하지만 무서움은 그 횟수만큼 증가한다. 8시간을 달려 아스콜리(Askole·3,048m) 마을의 캠프장에 도착했다. 그래도 지금은 인도-파키스탄 간의 캐시미르 분쟁으로 군사용 도로가 개발되어 쉽게 가는 편이다. 탐험기 때에는 스코로 고개(Skoro La·5,073m)를 넘어야 했고, 50~60년대에는 스카르두에서 6~7일을 걸어 왔다. 시간이 짧아진 편리함은 하루에 고도 600m를 높인 어지러움이 대가를 치르게 한다. 다음 날, 포터 행렬을 따라 돌담과 버드나무 사이로 난 길을 걷는다. 이 마을의 유래를 하지 마디(Haji Mahdi) 촌장은 ‘나가르’라고 한다. 300여 년 전, 나가르(Nagar·2002년 2월호 기사 참고) 왕국에서 왕위 계승 쟁탈전이 벌어졌다. 형이 동생을 죽이고 또 아버지를 죽였다. 이를 피해 120km의 히스파르 빙하~히스파르 고개(5,151m)~비아포 빙하로 이어지는 눈과 얼음의 지옥을 건너 새로운 땅을 찾아온 왕자의 후예가 바로 자기네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믿기 어렵겠지만 나가르 왕국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을 아스콜리에서 왔다는 전설도 가지고 있다. 모두 구전으로 전할 뿐 기록으로 남은 것은 없으니 어느 쪽이 옳은지는 모를 일이다. 바위 절벽으로 난 길을 오르고 다시 내려간다. 히스파르 빙하 말단에서 나온 강과 발토로 빙하에서 흘러나온 비아호 강이 만나는 곳의 바로 위쪽에 설치된 와이어 다리를 건넌다. 봄, 여름에는 양들의 먹이로, 겨울에는 현지인들의 땔감으로 이용되는 거친 풀이 듬성듬성 자라는 평원을 따라 걷는다. 불라(Bullah·6,294m)와 바코르다스(Bakhor Das·5,809m)가 수문장처럼 계곡을 지키고 서 있다. 아침 일찍 출발하면 비아포 빙하 말단에 위치한 고로폰(Gorophon·3,109m)에 오전 중 도착한다. 맑은 물과 야생장미, 버드나무의 숲이 있다. 비아포 빙하 원두로 우준브락(Uzun Brakk·6,422m)이 낮게 깔린 닭벼슬처럼 구름 위로 보인다. 비아포의 이름은 이러한 모습에서 지어졌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캠프지 뒤쪽에 작은 정원이 가꾸어진 군 막사가 있다. 막사 안에 들어서자 제대한 지 한 해를 갓 넘긴 나에게 익숙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수영복을 입은 늘씬한 미인들 사진이 벽에 붙어 있다. 전통 복장인 샬와르 카미즈를 입은 군인이 여러 권 더 보여주며 내가 가지고 온 것과 바꾸어 보잔다. 군인의 관심거리는 우리네와 다를 바 없는 모양이다. 여유로운 트레킹팀은 여기서 첫날을 보낸다. 그러나 일정이 바쁜 등반대는 여기서 점심을 먹고 출발해 판마 빙하(Panmah Gl.)에서 내려오는 두모르도(Dumordo) 강을 건넜다. 지금은 와어어로프에 판자를 깔아놓은 다리를 건너지만, 당시에는 와이어로프에 매달린 두레박에 사람 한 명과 짐을 싣고 양쪽으로 연결된 줄로 당겨 건넜다. 8월 증수기 때 이용되는 와이어 브리지는 조금 더 높은 곳에 설치되어 있다. 초행자에게 첫날은 재미난 놀이 공원에 온 기분이다. 파유 지나 포터 놓치면 빙하에서 실종 졸라 브리지에서 파유(Payu·3,785m)까지는 완전한 불모지다. 차라리 맑은 날보다 비가 내리는 것이 좋다. 배낭 옆에 낀 스틱을 기둥 삼아 우산을 테이프로 감아 펼쳐도 덥기는 마찬가지다. 졸라에서 3시간 걸어 암갈색 큰 바위의 잡석지대가 펼쳐지는 곳에서 북쪽의 파유 빙하에서 녹은 흙탕물의 개울을 건넌다. 처음으로 그레이트 트랑고타워(6,286m) 남서면이 나타났다. 사진이 아닌 실물을 처음 바라보는 흥분에 무전기로 뒤에 오는 동료들에게 알리자 그들도 곧장 달려왔다. 발토로 빙하로 들어가기 전에 있는 마지막 숲 지대인 파유는 하루 쉬어 가는 캠프지다. 아쉽게도 주위에는 쓰레기가 넘쳐나고 원정대와 트레커들로 북적거려 천막 자리가 모자랄 지경이다. 빙하 상류로 가는 팀은 하루를 머물며 고소순응과 재정비를 하고, 포터들은 빙하 위에서 먹을 빵을 굽는다. 조만간 얼마 남지 않은 나무들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외국의 지원금으로 관리자가 상주하며 수목의 훼손을 감시하고, 버드나무를 조림도 하고 있지만, 효과가 크지 않은 것 같다. 또한 200m 뒤쪽에 시멘트로 화장실을 새로 지었으나 엄청난 냄새와 오물로 사용되지 않아 오히려 흉물로 남았다. 한 해에 파키스탄으로 오는 원정대의 절반인 30~40팀의 300명, 40개 트레킹팀이 발토로 빙하로 들어가기 위해 이 곳을 지난다. 팀에 고용되는 현지인과 포터 수는 그 10배가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숲을 지킨다는 것은 마지막 몸부림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1996년에는 환경등반의 활동으로 청소도 하고, 포터들에게 취사구와 연료를 모두 지급했지만 그들은 저녁의 보온용으로 쓸 뿐, 조리는 여전히 나무를 잘라서 했다. 빵을 굽는 데 냄새 나는 석유버너가 그들에게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파유를 출발하면 발토로 빙하로 접어든다. 이곳부터는 포터들과 보조를 맞추면서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길을 한 번 잘못 들면 엄청나게 고생하거나 혼자서 외롭게 빙하 위에서 하룻밤 자야하는 일도 생긴다. 모레인 언덕 사이로 길은 빠져나가고 빙하 중간쯤에서 트랑고타워 가는 루트는 울리비아호 빙하의 동쪽 가장자리를 표시로 삼고 가로지른다. 그 쪽으로 가는 길은 알아서 찾아가야 한다. 파유피크(6,610m) 남벽이 얼음과 눈을 이고 뾰족한 암봉으로 다가선다. 2~3시간 걸어 빙하 남쪽 언덕을 빠져 나오면 릴리고(Liligo·3,951m)다. 풀 사면과 맑은 물, 돌을 쌓아 만든 캠프지가 있다. 최근에는 낙석 위험으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두 개의 빙하가 만나는 곳은 언제나 지형이 복잡하고 험난하다. 릴리고 빙하가 남쪽에서 밀치고 나온 곳을 피하기 위해 길은 빙하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가장자리로 벗어난다. 1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큰 바위를 벽과 지붕 삼아 돌담이 쳐진 호부체(Khobutse)에 도착한다. 옆쪽의 릴리고 빙하 말단의 움푹 들어간 곳에 흙탕물 호수가 보인다. 트레킹 팀은 여기서 하루를 머문다. 카라코룸 트레킹은 햇빛과 더위가 덜한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출발해 오전에 운행을 마무리하고 오후에는 여유 있게 쉬는 것이 현명하다. 호부체서부터는 빙하 표면으로부터 2,000m를 솟아오른 파유피크, 울리비아호타워(Uli Biaho Tower·6,109m), 트랑고 그룹, 캐시드럴(Chathdral·5,828m), 롭상스파이어(Lobsang Spire·5,707m)의 바위벽을 마주보며 걷는다. 발 아래로는 발토로 빙하가 펼쳐진다. 우르두카스 연봉에서 흘러내린 작은 두 개의 지류 빙하를 횡단한다. 지쳐서 주저앉고 싶을 때쯤 언덕 풀사면에 우르두카스(Urdukas·4,240m)가 나타난다. 콩코르디아(Concordia·4,650m), 가셔브룸Ⅰ, Ⅱ봉 베이스캠프와 더불어 발토로 빙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을 가진 곳이다. 파유에서 하루 일정의 이 구간은 가장 힘든 하루다. 1861년 우르두카스에서 K2 위치 확인 우르두카스에 처음으로 들어온 외부인은 1861년 고드윈 오스틴(H. H Godwin Austen·1834-1924)이다. 1856년 스리나가르의 하라무크 정상의 측량점에서 카라코룸의 많은 봉우리들이 발견됐다. 봉우리마다 카라코룸의 이니셜을 따서 K1, K2, K3…로 이름이 붙여졌다. 2년 후 현지의 산명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K2가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고드윈 오스틴이 확인하기 전까지는 남아시아로 흐르는 인더스강과 중앙아시아로 들어가는 야르칸드강의 수계(水系)선 상의 북측에 존재하는 줄 알았다. 오스틴은 우르두카스의 뒤쪽 사면을 오른 곳에서 K2의 정확한 위치가 그 수계선 상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곳까지 지도를 그리고 탐사를 마무리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발토로 무즈타그(Baltoro Muztagh)라는 산명과 빙하 이름들은 대부분 1892년의 마틴 콘웨이(W. Martin Conway·1856-1937) 탐험대가 붙인 것이다. 그 예로 무즈타그타워(Muztagh Tower·7,284m), 브로드피크(Broad Peak·8,047m), 히든피크(Hidden Peak·8,068m, 현 가셔브룸Ⅰ봉), 골든스론(Golden Throne·7,300m·현 발토로캉리), 브라이드피크(Bride Peak·7,668m, 현 초골리사) 등이 있고, 그리고 현재 Ⅰ~Ⅵ봉까지의 연봉에 붙여진 ‘빛나는 벽(Shining Wall)’이라는 뜻의 ‘가셔브룸(Gasherbrum)’은 원래 가셔브룸 Ⅳ봉(7,925m)에만 붙여진 이름이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산명은 현지말인 발티(Balti)어로 개명되어 불리고 있다. 탐험시대 초창기의 목적은 지리학적인 면이 크지만, 그에 못지않은 목적이 또 하나 있었다. 신비의 베일에 쌓인 무즈타그 고개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이 고개는 당시 브리티시 인디아와 타클라마칸 남로의 실크로드 상에 있는 야르칸드, 그리고 북로와 남로가 만나는 카시가르로 연결되는 길로, 대히말라야와 카라코룸 산맥의 대장벽을 넘는 중요한 대상로였다. 무즈타그 고개는 트랑고타워 동쪽의 무즈타그 빙하 원두와 서쪽의 판마, 치링 빙하 원두에서 사르포락고(Sarpo Laggo) 빙하를 연결하는 고개들이다. 그들이 방문할 당시에는 5,370m, 5,500m 두 고개 모두 빙하의 크레바스가 발달되어 아스콜리 사람들을 비롯하여 발티스탄인들에게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은 K2가 대히말라야에 있는 8,000m급 봉들과 달리 원주민이 사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무즈타그 고개를 넘나들었던 현지인은 알고 있었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파유 캠프지에서도 K2가 보인다. 마틴 콘웨이는 후에 발간된 그의 원정기에 그러한 현지정보를 누락했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되새겨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르두카스의 아침은 아름답다. 태양이 떠올라 그레이트 트랑고타워를 물들인다. 평평한 암반 위에 앉아 북동벽을 응시한다. 요세미티와 코뮤니즘(7,495m)을 다녀왔다고는 하지만, 93년 등반대원 4명은 히말라야 등반에는 왕초보였다. 기다리지 못하는 성급함과 실수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끝도 없는 벽에 매달려 죽기 살기로 올라갔었다. 당시에는 가장 아름다운 산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생각했고, 그 모습만 바라보아도 이유 없이 눈물이 솟아나곤 했다. 그 때에도 이곳 우르두카스에 왔다. 그리고 빛나는 가셔브룸Ⅳ봉 서벽을 보았다. 1996년 그 봉을 오르려고 다시 찾아왔다. 후배들은 몇 년에 걸쳐 경험하게 될 양보다 많은 가슴 저린 한 달간의 등반이 기다리고 있다. 트랑고는 단지 사진촬영의 대상일 뿐, 그들에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산악인이라면 열병 앓을 수밖에 포터들은 배정 받은 각자의 짐을 지게에 메고 지팡이를 짚고 출발한다. 빙하로 내려서기 직전에 포터 공동묘지가 있다. 포터들은 짐을 내리고 무덤 앞에서 슬픈 노래를 부른다. 무사히 집으로 되돌아가기를 기원하면서…. 우르두카스는 푸르름의 생명이 있는 마지막 대지다. 하얀 눈의 세계에 오래 있다보면 그 색깔이 얼마나 편안함과 풍요로움을 주는지는 다시 그곳에 되돌아와서야만 알 수 있다. 빙하를 북측으로 횡단하듯 건너고 가장 안정된 지점에서 동쪽으로 나아간다. 가끔 돌탑과 군 캠프지를 연결하는 통신선이 보인다. 그리고 군용 헬기 한 대가 머리 위를 날아 콩코르디아로 사라진다. 만두 빙하 원류에 아직 한 번도 등반 시도가 없었던 마셔브룸(7,821m) 동벽이 바닥에서 정상까지 3,500m 높이로 칼로 자른 듯 서 있다. 다가설수록 점점 산은 더 커지고 그 속에 묻혀 버린 사람은 너무나 작아 보인다. 30m 빙탑을 지나 얼음 위에 잡석이 얇게 깔린 고로Ⅱ(Goro Ⅱ·4,380m)에 도착했다. 수송담당인 후배 한 녀석이 우르두카스에서 마지막으로 출발했는데, 1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마중을 나가고 다시 1시간이 흐른 후에 도착했다. 혼자 걷다가 도중에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곳으로 간 모양이다. 아무리 빨리 걸어도 포터 행렬의 후미를 따라잡지 못하자 상황을 파악하고 다시 우르두카스로 되돌아가서 흔적을 쫓아왔단다. 빙하를 처음 걷는 그에게는 아찔한 순간이었으나 웃으며 찾아온 것이 대견스럽다.
고로Ⅱ에서 콩코르디아까지는 5~6시간 걷는다. 군 캠프지 뒤쪽에 돌담으로 쳐진 여러 곳의 야영지가 있다. 잔설이 남아 있어 발목까지 빠지고 구름이 낮게 드리웠다. 5개의 빙하가 만나는 콩코르디아는 K2, 브로드피크, 가셔브럼Ⅳ봉 서벽, 발토로캉리, 미터피크(Mitre·6,025m) 봉우리들 한가운데 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이곳에서 여행을 끝내는 트레커들은 2~3일을 머무르고 하산한다. 가셔브룸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은 남동쪽 빙하로 뻗어 있다. 기온은 영하로 내려가고 무릎까지 차는 눈을 헤치고 지나간 포터의 뒤를 따라 걷는다. 앞서가는 행렬이 구름과 안개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결국 눈이 내리고 그 날의 목적지인 독삼(Doksam)까지 가지 못하고 천막을 쳤다. 목이 긴 등산화에 양말까지 신은 발도 시리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하루 내 눈밭을 걸어온 포터들이 측은하기 그지없다. 그들에게 등반용 텐트를 모두 내주어도 70명이 다 들어갈 수 없다. 결국 절반 가량은 대충 돌담을 쌓고 천막 한 장을 뒤덮고 몇 명씩 모여서 자야했다. 임금을 주고 고용했지만 히말라야 등반에 있어 절반의 공은 이들에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베이스캠프(4,950m)에 들어가는 날은 맑게 개었고, 아브루치(Abruzzi Gl.) 빙하에서 되돌아본 무즈타그타워는 자연이 만들어낸 완벽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등반가는 그러한 모습에 열병을 앓고야마는 필연으로 느낀다. 먼저 들어온 몇몇 팀들이 머물고 있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이후 해발 7,450m까지 새로운 길을 찾아 오르는 사이 예정된 한 달간의 등반기간은 끝났다. 같은 시기에 원정 온 브로드피크팀에서 동료들이 정상에서 내려오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너무나 잘 아는 산선배와 후배들이었다. 출국 전에도 함께 모여 술을 마신 기억이 난다. 우리는 왜 그토록 오르려 하는가! 이젠 눈물도 매말라 버렸다. 하행 캐러밴 포터들이 도착하지 않아 2명만 남고 나머지 대원들은 곤도고로 고개(Gondogoro La·5,940m)를 넘어 후세로 내려갔다.<계속> ▣ 트레킹 가이드 발토로 빙하~곤도고로 고개~후세고개 K2 베이스캠프 & 가셔브룸 베이스캠프 답사 □ 트레킹 허가 발토로 빙하를 경유하는 트레킹 코스는 카라코룸을 대표한다. 이 코스는 규제지역으로 분류되어 파키스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한다. 허가서는 공인된 대행사를 통해 신청하면 하루 후에 받을 수 있다. 트레킹 입산료는 50달러였으나 2002년에는 세계 산의 해를 맞이하여 할인돼 40달러였다(대행사를 거쳐야 하기에 실제로는 100달러 안팎의 대행료가 추가됨). 가이드는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 대행사가 모든 서비스를 처리할 경우 이슬라마바드 도착부터 출국할 때까지 한 명당 1,300~1,500달러의 대행료를 받는다. □ 포터의 고용·보험·임금·식량·장비 포터는 아스콜리에서 고용하지만, 이슬라마바드에서 상·하행에 동행하게 될 포터의 총 인원수를 산정해 100,000루피(1루피≒20원)의 보험금에 상당하는 상해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포터의 임금은 운행 일수와 상관없이 한 스테이지(stage) 당 200루피다. 따라서 아스콜리에서 콩코르디아까지 9일치, 왕복 18일치의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콩코르디아에서 K2 베이스캠프까지는 왕복 4일치, 가셔브룸 베이스캠프도 동일하며, 곤도고로 고개를 넘어 후세까지는 9일치를 기준으로 한다. 식량은 파유까지는 통상 현금(4스테이지 800루피)으로 지불하고, 발토로 빙하 위에서는 식량으로 지급한다. 고기는 아스콜리에서 염소나 양, 소를 사서 파유에서 쉬는 날 지급한다. 장비는 아스콜리에서 출발할 때 지급하거나 현금(250루피)으로 지불한다. 식량, 장비의 품목과 수량은 트레킹 규정집에 명시되어 있다. 팀의 모든 식량은 스카르두에서 구입한다. □트레킹시즌 아스콜리에서 출발해 되돌아오는 왕복코스는 6월 초부터 9월 초까지 가능하다. 곤도고로 고개를 넘어 후세로 내려가는 코스는 7월 말에서 8월 초순이 가장 좋다. 고개 북쪽 사면에 눈이 녹아야 눈사태 위험이 줄어들고 운행도 쉽다. 8월 중순부터는 다시 눈이 내려 쌓인다. □ 아스콜리-콩코르디아 트레킹 제1일 통골(또는 아스콜리)~고로폰. 4~5시간 소요. 대규모 원정대가 아닌 트레킹팀인 경우에는 먼지 나는 아스콜리 캠프장보다는 통골의 캠프장이 쾌적하다. 아스콜리까지 1/2일치 포터 임금을 추가로 지불한다. 아스콜리 마을을 지난 곳의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수에 도착할 때까지 마지막 식수다. 한 구간을 제외하고는 길은 대체로 평탄하다. 고로폰 캠프장은 졸라에 비해 좋다. 제2일 고로폰-졸라브리지-바르두말-스캄촉(Skam Chok). 4시간30분~5시간30분 소요. 햇빛을 피하기 위해 우산을 준비하고 이른 아침에 출발한다. 시즌 초에는 두모르도 강을 거슬러 졸라브리지까지 오르지 않고 계곡 입구에서 도강하면 1시간 이상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이럴 경유 포터들이 잡고 건널 고정로프를 설치해 주는 것이 좋다. 졸라브리지 이용료는 1인당 15루피. 식수는 강가 언덕 밑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가끔 있다. 스캄촉은 관목들이 자라고 있으나 캠프장으로서는 좋은 편이 아니다. 제3~4일 스캄촉~파유. 3~4시간 소요. 잡석지대와 작은 개울을 건너 강바닥으로 내려간다. 강물의 수위에 따라 몇 개의 길이 있다. 강 옆을 따르는 길이 가장 쉽고 가깝다. 운행 도중에 식수 구하기가 어렵다. 파유에서 이곳까지 이틀 일정으로 운행할 수 있다. 제5일 파유~호부체(또는 릴리고). 4~5시간 소요. 발토로 빙하 말단 북측에서 진입해 남쪽으로 가로지른다. 빙하 위로 들어서면 일행과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 호부체 캠프지는 사면에서 낙석 위험이 있다. 제6일 호부체~우르두카스. 2~3시간 소요. 작은 빙하 두 곳을 횡단한다. 캠프지에서 남쪽으로 바라보아 우측과 좌측 두 곳에 식수가 있다. 좌측의 식수가 깨끗하다. 파유에서 이곳까지 하루 일정으로 도착할 수 있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하루 더 머무른다. 제7일 우르두카스~고로Ⅱ. 6~7시간 소요. 빙하로 내려서서 진입하는 곳이 험하다. 빙하 중앙으로 들면 길은 완만하게 연결된다. 트레킹 도중 처음으로 얼음 빙하 위에서 야영하게 된다. 제8일 고로Ⅱ~콩코르디아. 5~6시간 소요. 전날 눈이 내리거나 이른 시즌에는 눈이 있다. □가셔브룸 베이스캠프 콩코르디아에서 올라갈 때 이틀, 내려올 때 하루 소요된다. 베이스캠프에서 30여 분 더 올라가면 남가셔브룸 빙하 내원의 가셔브룸 연봉들을 바라볼 수 있다. □곤도고로 고개~후세 1986년에 처음 루트가 개척되어 발토로 빙하 상류에서 등반을 마친 원정대의 하행 캐러밴 루트로, 그리고 올라온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 트레킹 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5,940m의 고개를 넘는다는 것은 약간의 전문적인 등반기술이 필요하다. 원정대는 고개 넘는 날은 이중화를 신는 편이 좋고, 트레커는 목이 긴 방수신발에 스패츠가 필요하다. 후세까지 4일 소요된다. 이틀째인 알리 캠프에서는 새벽에 출발한다. 많은 크레바스와 50도 경사의 북쪽 설사면은 위험하다. 포터들을 위해 100~150m의 고정줄를 설치해 준다. 고갯마루 위는 발토로 빙하와 후세 계곡의 산들을 360도 바라보는 최상의 전망대다. 남쪽 면은 낙석 위험이 많고 고정로프가 필요하다. 2000년부터 후세 주민들이 시즌마다 고정줄을 설치해 놓고 사용료를 받고 있다. ▶2003년 파키스탄 입산 정보 파티스탄 정부는 2002년 ‘세계 산의 해’를 맞이해 원정대 입산료를 50% 할인해 주었다. 인도와의 정세 불안으로 올해 39개팀이 신청서를 제출했고, 29개팀이 방문해 전년도에 비해 35%로 줄어들었고 트레킹도 24개팀이 허가를 받아 같은 수준으로 줄었다. 입산료 총수입이 10분의 1밖에 되지 못했다. 정부는 2003, 2004년까지 낭가파르밧, K2 등정 50주년을 기념하여 50% 입산료 할인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한 팀당 7명 기준이고 1인당 추가금은 예전과 같다. 2003년 입산 신청 마감을 12월31일까지지만 2003년 3월1일까지 연장했다. 청소비는 200달러, 환경보호예치금은 1,000달러, 헬기구조 예치금은 6,000달러다. 이것은 2,000년 변경 후와 같다. 그 외에 자국으로 입국하는 원정대, 트레커,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입산신청 절차의 간소화, 비자 등에 관한 내용을 관련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발표했다. (김창호 서울시립대OB·쎄로또레 등산아카데미 사무국장) 월간 산 2003.01. 399호 http://san.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