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의 최남단을 걷는 여정 남파랑길(#67~66)
2022년 1월 2일 (일) 날씨 : 맑음 기온 : 섭씨1~9도
거리 : 18km 5시간 동행 : 금강산악회 30명
해창만 오토 캠핑장-배수1갑문-금사 보건진료소-양화마을-남열해돋이해변
<약속(Promise)>
기억하라, 한 해의 이맘때
미래는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백지(白紙)처럼 보이고
깨끗한 달력, 새로운 기회,
두텁게 쌓인 하얀 눈 위에
너는 새로운 발자국을 맹세한다.
그리고 세찬 바람이 불어
그것들이 사라지는 걸 지켜보지.
너의 잔을 채우고 한잔 마셔라.
약속들은
부서지고, 지켜지라고 만들어졌지.
-재키 케이(1961~)
팔영산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고흥을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위험 부담을 안고 일행들을 만나지만 늘 조심스럽다. 평상으로 돌아가기가 이렇게 어려우리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어언 2년이라는 세월을 코로나와 싸우고 있다.
해창만 오토 캠핑장에 도착한 후 바로 방조제 제방에 올라 남파랑길을 걷는다. 세 번째 발걸음이지만 해파랑길 때와는 느끼는 감흥이 약간 다르다. 동해는 파도가 치고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데 이곳 남해는 섬들이 많아 바닥 호수처럼 느껴진다.
고흥 10경 가운데 으뜸인 팔영산(八影山, 608m)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봉우리가 병풍처럼 이어지며 다도해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산이다. 1998년 7월 30일 전라남도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2011년 팔영산 도립공원이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편입되었다. 팔영산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산지가 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된 사례이다. 지정 면적은 17.91㎢이다.
팔영산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금닭이 울고 날이 밝아 햇빛이 바다 위로 떠 오르면 이 산의 봉우리가 마치 푸른 물결에 떨어진 인쇄판 같은 모습을 보여 ‘영(影)’ 자가 붙었다는 설, 또는 세숫대야에 비친 여덟 봉우리의 그림자를 보고 감탄한 중국의 위왕이 이 산을 찾으라고 명하였는데, 신하들이 고흥에서 이 산을 발견한 것에서 유래하였다는 설 등이다. 팔영산은 본래 팔전산(八顚山, 八田山)으로 불리었다.
해창만 방조제
사도진 마을
거친 바다를 연상했던 걷기는 조용하고 아늑한 어촌을 지나는 정경이 대부분이다. 금사 보건소가 있는 사도진을 지날 때 각종 수산물 저장 공간들이 보인다.
조용했던 어촌이 잡는 것보다 기르고 양식하는 방법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도진(蛇渡鎭)은 15세기에 설치된 수군진인데 전라좌수영이 담당하는 수군첨절제사진이었다. 첨사로 종3품인 수군점절제사는 수군 절제사를 보좌하고 만호를 지휘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좌수영 소속 첨사진에는 방답진과 사도진이 있었지만, 사도진에 고흥(흥양)의 여도진, 발포진, 녹도진 등 좌수영의 만호진이 모두 편입되어 있었다. 사도진은 좌수영 다음으로 중요한 군사 요충지였다.
사도진성은 성종 22년(1491)에 둘레 1440척, 높이 15척 규모로 축조되었으나 현재 일부 잔존 석렬만 남아 있다.
사도진과 관련된 인물로 사도첨사 김완과 황세득이 있는데 이들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김완은 이순신의 막하로 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원균과 함께 칠천량 해전에 참여하였다.
이 전투에서 김완은 포로로 잡혔으나 탈출에 성공하여 임진왜란 이후에도 무관으로 활동하였다.
김완의 후임인 사도첨사 황세득도 이순신 휘하에서는 큰 전공을 세웠으나 순천 예교(曳橋)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고흥군 관광지를 소개하는 안내판을 지나면 호젓한 산 중턱 해안 길이 반긴다.
펜션 안내판이 보이는데 사도진 마을의 경치가 환상적이다. 길가의 유자나무에는 노란 열매가 주렁주렁 소담스럽게 매달려 나그네를 반긴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에는 와도, 소첨도, 첨도, 비사도, 대옥태도, 소옥태도 등이 둥둥 떠 있는데 파도도 없고 햇살이 비쳐 평안한 느낌이 든다.
노란 안내판에는 남파랑길 67코스 2, 시점 10.8km, 종점 5.6km라는 표시가 선명하다.
파란 하늘에는 구름이 아름답고 섬과 산들이 어울려 평화로운 사도진을 보여준다. 임진왜란 때 요충지였던 사도진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해안 길에서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유추하기는 쉽지 않다.
사도진 마을 풍경
영남 만리성으로 보이는 돌 더미를 확인하고 안내판을 읽어 본다.
「여자만에서 갈라져 들어오는 해창만의 입구 북쪽 해안에 있는 성은 북쪽에 사도 봉수가 있고, 동쪽에 우미산 봉수, 서쪽으로 사도진, 남쪽으로 첨도가 위치한다.
성은 전체가 연결되어 있지 않고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며, 이 세 곳은 거의 일직선상에 위치하여 육지에서 바다로 돌출되어있는 반도 부분을 막고 있다. 길이는 1,431m이고, 너비는 2~3m 정도이다.
내외협축으로 축성된 장성이며, 축성 재료로 보아 석축성이라고 볼 수 있다. 축조방법은 성돌의 비교적 바른 면을 바깥으로 하여 막쌓기를 하였다.
성돌은 하층에 70~100cm 정도 크기의 대형 깬 돌을 사용하였으며, 위로 올라갈수록 성돌의 크기는 작아진다. 성 벽면의 기울기는 85°로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남파랑길 표지를 따라 양사삼거리로 향하는데 육지로 푹 들어온 만의 형태가 인상적이다.
갈대밭과 갯벌이 보이고 영남면이 형성된 제방이 나타난다. 제방을 따라 좌회전하여 영남면 근처에서 다시 바닷가로 다시 나와 양화(楊花)마을로 길이 이어진다.
영남면 방향으로 팔영산의 우람한 모습이 보이는데 점암면에서 보였던 8개의 봉우리로 대표되던 형태와는 아주 다르다.
양사삼거리에서 통일발원지공원(전망대)까지 구간으로 고흥 10경 중 하나인 남열 해돋이 해수욕장은 환상적인 해돋이가 연출되는 곳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해안 경관은 세계 최고의 비경으로 꼽힌다.
‘지붕 없는 미술관’ 조망터에서 보이는 고흥의 섬들이 섬섬옥수 다도해의 비경을 보여주어 가슴이 시원하다. 약간 뿌연 하늘이 사진 촬영을 방해하지만, 태양이 비추는 다도해의 모습은 환상적이다.
전망대 저 멀리 우주센터를 품은 나로도가 있고, 가까이로는 태양의 섬 대옥태도, 까막섬 오도, 원시의 섬 시호도, 토끼섬 토도, 비사도, 첨도, 취도 등 수많은 섬이 한 폭의 수려한 산수화를 그려내 지붕 없는 미술관을 연상하게 한다고 한다.
태양의 섬 펜션을 지나면 남열리인데 모래사장 해변이 눈에 확 들어온다. 바닷가 마을이 보이고 나로우주센터 전망대가 우뚝하다. 해변을 걸으며 무언가를 채취하는 할머니를 따라가며 사진을 찍어본다.
언제나 먹을거리를 제공해 주는 바다를 벗 삼아 세월을 보냈음이 가득한 모습이다.
모래 속에 묻혀 있다 모습을 보이는 바위 주변에 기막힌 무늬가 생겼다. 파도가 만든 희한한 모양인데 예술적 감성이 없어도 자연의 오묘한 맛을 한눈에 보게 된다.
남열 해돋이 해수욕장이 시야에 확 들어오고 우주센터 전망대가 절벽에 우뚝하다. 멀리 적금도, 낭도, 둔병도, 조발도(고흥과 화양면을 잇는 연륙교 팔영대교), 장사도, 추도, 하계도, 상화도, 장구도, 하화도, 백야도, 제도, 개도, 금오도, 연도가 연달아 수평선에 나타나 가슴이 뻥 뚫린다.
남열 해동이 해수욕장
우주센터 전망대
고흥의 여덟 가지 특산품이 있는데 1품 유자, 2품 석류, 3품 해미 수미, 4품 마늘, 5품 참다래, 6품 꼬막, 7품 미역, 8품 고흥 한우라고 한다.
전망대가 있는 절벽은 우미산으로 이어지는데 팔영산과 함께 고흥을 대표한다.
우미산(牛尾山 447.6m)은 괴석이 병풍을 둘렀다는 팔영산(608m)과 마주한 산이다.
그러나 두 산의 산세는 완전 딴판이다. 팔영산은 바윗길이라면 우미산은 소 등을 타는 듯 능선이 유순하다.
그 때문인지 소와 관련된 지명이 주위에 참 많다.
소머리를 뜻하는 우두리, 소뿔인 우각산(344m), 소꼬리를 뜻하는 우미산 등이다. 또한, 우미산 해안인 미르마루 길에는 용바위, 용두암, 용굴, 몽돌 해변 등 용과 관련된 지명과 사자바위가 있다.
우미산
<2분 차이>
음악 유통 회사 ‘시디 베이비(CD Baby)를 설립한 데릭 시버스의 이야기다.
한때 데릭은 자전거에 푹 빠졌다. 샌타모니카 해변 자전거 도로에 접어들면 그는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페달을 힘차게 밟곤 했다. 그렇게 도로 끝까지 전속력으로 달렸다가 돌아오는 일은 데릭의 운동 습관 중 하나였다. 타이머로 시간을 재면 늘 43분이 걸렸다.
어느 날, 데릭은 느긋하게 자전거를 타 보기로 했다. 평소처럼 온 힘을 다해 자전거를 탈 생각을 하니 고통스러운 느낌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전거 도로를 가로지르는 동안 몸을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다에선 돌고래들이 뛰어올랐고, 반환점 부근에서는 펠리컨이 머리 위를 날아다녔다.
도로 끝에 다다른 데릭은 자전거를 멈추고 타이머를 확인했다. 막 45분이 지나 있었다. 열심히 달린 날에 비해 고작 2분 더 걸린 것이다. 그는 그제야 분초를 다투며 치열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그는 말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시간을 빈틈없이 쓰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멈추는 일입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라고 틈틈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2분 정도 기다릴 줄 아는 것,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자세입니다.”
-좋은 생각 2021년 12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