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무슨 인연으로 이루어 졌을까?
지난주에 3박4일(25일~28일) 일정으로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법회에 참석하기위하여
일본 동경과 요코하마에 다녀왔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선물을 주겠다며 불교TV와 함께하는 성지순례
“달라이라마 요코하마 법회”를 보여주며신청 하였으니
한번 다녀오라고 하여 기쁘고 고마운 마음에
‘내가 무슨 인연으로 존자님을 친견할 수 있는 영광을 얻은 것일까’를
항시 마음속에 두고 출발일 아침 일찍 서둘러 인천공항으로 갔다.
인원이 500여명 이어서 서울출발 팀은 지도법사 성우 스님(불교TV회장)께서
인솔하여 1팀과 2팀으로 나뉘어 출발하였고,
부산 팀은 지도법사 정여 스님(범어사 주지)께서 인솔하여 출발 하였다.
수속 중에 아내에게 메시지가 와서 보니 불교TV에서 강연하시는
‘우승택 거사님께 연락하였으니 인사하고 함께 좋은 시간 보내길 바란다.’하여
탑승구에서 만나 인사 하였더니 보살님께서 ‘남편을 잘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하여서
예전에 두 번 본적이 있다 하였더니 그러하냐고 하며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아마도 처음 보는 여러 보살님 틈에서 멋쩍어 있을까 걱정하여 아내가 배려 한듯하다.
나는 2팀에 속하여 10시20분 출발하여 12시30분에 나리타공항에 도착하였다.
서울 팀은 버스가 8대 배차 되었고, 부산 팀은 5대가 배차되어 10~15분 간격으로
첫 번째 목적지인 동경 아사쿠사관음사(淺草寺)로 이동 하였다.
버스 8호차에 배정되어 법륜 스님(인천 송도 흥륜사 주지), 우 승택 거사님,
전국에서 오신 신도님 36명과 함께 일본에서의 3박4일 일정이 시작 되었다.
동경 시내로 이동 중 어느 음식점에 도착하여 일본 전통 음식(반찬은 개인 구절판)으로
점심 공양을 하고 동경에서 가장 오래된 아사쿠사관음사(淺草寺)를 방문 하였다.
아사쿠사관음사[淺草觀音寺]라고도 하며,
628년 어부 형제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물고기 대신 그물에 걸려 올라온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기 위해 건립하였다고 한다.
아사쿠사칸논지란 명칭도 관세음보살을 본존으로 모신 데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입구는 가미나리문[雷門]으로, 오른쪽에는 풍신(風神), 왼쪽에는 뇌신(雷神)을 모셨는데,
두 신 모두 풍년과 태평연월을 주관하는 신이다.
가미나리문을 지나면 돌로 된 길 양쪽에 민속품을 비롯해
각종 기념품을 파는 점포들이 늘어서 있어 사찰이라는 분위기가 어색하였다.
이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 산문(山門)에 해당하는 호조문[寶藏門]이 있다.
문을 지나 왼쪽의 5층탑을 거치면 드디어 대웅전인 본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본당은 가파른 지붕이 특히 아름다우며,
관음당 중앙의 본존이 안치된 궁전은 일본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공사 중이라 가림 막으로 가려있어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본존인 관세음보살은 33년에 한 번 있는 경축개장이나 기념행사가 있을 때만
임시로 개장할 뿐 일반인은 참배할 수 없다며,
가이드가 설명하길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 사찰에서는 불상을 볼 수 없다고 한다.
아쉬움을 달래고 다음 장소 황거(皇居)로 이동 하였다.
이름 그대로 천황이 머무는 곳인 황거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부터 지금까지 일본 정치의 중심지로 자리 매김한 곳이라 한다.
입구에는 넓은 잔디에 오래된 노송이 수 백수 심어져 있었다.
주차장이 있는 잔디에는 노숙자들이 자리 잡고 누워 있었다.
정부와 노숙자가 싸워 주차장과 황거 사이의 도로를 경계선으로 하여
주차장 잔디에만 노숙자들이 기거 한다고 한다.
한 쪽에는 명색만 있는 왕족이 다른 쪽에는 노숙자가……. 참 아이러니 하다.
숙소인 요코하마로 이동 중
오다이바(お台場)에 도착하여 저녁 공양을 하였다.
도쿄 만에 있는 대규모 인공섬 으로
1800년 에도시대에는 이곳에 포대를 설치하여 적군(미국)을 방어하기 위하여
조성되었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 중요한 상업·거주 및 레저의 복합지역으로 크게 발전하였고
1996년 “국제도시박람회‘를 준비해 인구 십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미래형 주상복합지역 “도쿄 텔레포트 타운 (Tokyo Teleport Town)”을
조성하기 위한 도시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한다.
주요 볼거리는 후지TV 스튜디오, 도쿄도심과 오다이바를 연결하는
레인보우브리지, 도쿄국제박람회센터 ‘도쿄 빅 사이트(Tokyo Big Sight)’,
아쿠아시티 쇼핑센터 등이 있다.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유명하다고 한다.
1시간 정도 이동하여
요코하마에 있는 호텔에서 2인1실로 방 배정을 받고 여장을 풀었다.
수원에서 오신 거사님과 함께 사용하게 되었다.
7호, 8호차에 계신 분들이 한 호텔에 머무르게 되었다.
8호차에 배정되었으나 지인이신 티베트에서 오셔서
여래사에 계신 승려분과 함께 이동하려고 7호차에 탑승하였다고 한다.
잠시 외출 하더니 곡차(캔 맥주)를 사가지고 와서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내일 달라이라마를 친견한다는 설레움에 느지막이 잠자리에 들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친견하러 법회에 가다.
6시 모닝콜 소리에 깨어 일어나니 수 거사(수원에서 오신 거사)는
벌써 일어나서 세면하고 새벽 기도를 하고 있었다.
멋쩍고 하여 로비로 향공양(담배)하러 내려왔다.
밖으로 나와 향공양을 하는데 인 보살(인천에서 오신 보살)께서 카메라를 보여주며
‘아들 것을 가져왔는데 사용방법을 모른다 하여’ 가르쳐 주는데
남편인 인 거사가 ‘호텔 바로 옆에 있는 하천에서 커다란 가오리를 보았다.’ 하여
‘무슨 개천에 가오리가 있냐.’고 하며 다리로 가 보았더니
콘크리트 벽면에 다닥다닥 붙은 홍합이 보고 바닷물이란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동경과 요코하마 곳곳에 수로처럼 보이는 하천이 바닷물 이라니....
6시30분부터 15분 간격으로 호텔식으로 아침 공향을 한 후
불교TV에서 마련한 자주색 바탕에 앞면에는 달라이라마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7시30분에 버스에 탑승하여 요코하마 전시장으로 달라이라마 친견 법회를 듣기 위해 이동하였다.
법륜 스님(흥륜사 주지)께서 이동 중에
이 버스에는 스님이 혼자라서 4일간 주지스님을 하게 되었다.’하고
웃으시며 승가 대 1학년 때 조계사에서 청담 스님께서
“달라이라마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며 생불이시니 꼭 한번은 친견하여라.”
라고 말씀 하였다고 하며
“그 뜻을 이루지 못해 있다가 올해 흥륜사 신도 28명과 함께 인도를 방문하여
달라이라마를 친견하려고 하였으나 미국에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러 가셔서 친견을 못하고
성지순례만 하고 오셨는데 무슨 인연인지 다시 친견하게 되어 정말 기쁘고 감사하다.’
라고 말씀하시고 모두 함께 반야심경을 독송하였다.
8시경에 요코하마 전시장에 도착하여 보안 검색을 받은 후에 입장하여 보니
축구장 규모만한 실내 전시장에 15,000여석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고
중앙 무대 좌측에 앞줄부터 한국 불자들의 자리가 배정 되었다.
1칸에(가로10*세로14=140좌석) 좌측 3번째부터 3칸을 배정 받은 것 같았다.
나머지는 그 뒤쪽에 배정 받아 앉았다.
주체 측에서 카메라와 핸드폰 반입을 금지 한다고 하여 차량에 두고
입장하였는데 나중에 보니 우리 한국 불자들만 반입이 금지되었음을 알고 분개하였고,
아침 일찍부터(8시) 한국 불자들만 제일 먼저 입장하여 자리 배정받은 것도
차후에 스크린에 비친 TV 중계를 보고 그 이유를 알았다.
사각지대에 배치하여 빨간 티셔츠를 입은 한국 불자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중국과 티베트의 정치적인 문제가 있다 하여도 한국도 아닌 일본에서 진행하는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법회에 까지 정부에서 개입한 듯하여 몹시 불쾌하였다.
한국에서 70여분의 스님들께서 오신 것을 한자리에 모이게 되어 비로소 알게 되었다.
드디어 10시에 법회가 시작 되었다.
중앙 단상에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모습이 보였다.
불교 TV에서 준비한 티셔츠를 진행자가 단하에서 전달하였고
존자님께서 꺼내어 당신 몸에 맞추어 보이시며 웃는 모습에 우렁찬 박수와
함성이 전시장을 가득 메었다.
단상에 모셔진 석가모니와 좌우보처인 문수, 보현보살님의 괘불에 예를 올린 후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법문이 시작 되었다.
“20세기의 과학 기술의 발전은,
우리들에게 물질의 한계와 사회적 고통이라는 큰 경험을 줬고,
특히 물질적 발전은, 도덕적 붕괴와 더불어 마음의 평화도 제공하지 못했다.
마음의 평화를 보지 못한다. 21세기에는 마음의 문제를 생각 하여야 한다.”고 강조 하였으며
이어 달라이라마 존자님은
“20세기의 이런 경험 때문에 21세기의 대중들은 평화와 자비를 추구하게 됐다.”며
“마음의 평화는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고, 행복의 원인을 찾을 때 가능하다.”고 말씀하시고
“평화와 자비를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길은 연기법을 정확하게 이해해
인연으로 생성되고 소멸되는 이치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종교에는 창조자를 인정하는 종교가 있는데
불교는 창조자도 자아도 인정하지 않는다. 실존적인 자아를 인정한다.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종교적 전통을 새롭게 인식하고 연기법을 정확하게 깨우쳐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불교적인 전통은
부처님의 법륜을 시작으로 팔리어 전통과 범어 전통으로 이어졌는데
팔리어전통은 1차(사제법륜) 대중에게 설한 법이고
범어전통은 3차제법륜 중 초전, 중전, 후전법륜 중에서
중전법륜부분 용수보살께서 반야경의 경전을 사성제 가운데 멸제에 대하여
대중에게 자세히 설한법이며 후전법륜은 여래장의 도제를 설한 법이다.
따라서 불교는 논리학으로 부처님 말씀도 따져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법문을 하신 후 통역사의 통역 시간에 스크린에 비추어진 존자님의 표정을 보면
어느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가 몸이 가려워 이곳저곳을 긁는 모습과
조명이 비추어 눈이 부신 듯 조그마한 걸망에서 선 캡을 꺼내시어 쓰시고
대중을 향하여 천진난만하고 환하게 웃음을 보이시는 모습을 보고
관세음보살님의 33가지의 화현한 모습 중 일부분을 보는 듯하였다.
이어서 쫑까바 존자께서 지으신 연기찬(緣起讚)에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쫑까바 존자님은 부처님의 경전을 보고 자량을 쌓고 장애를 극복하고
연기찬을 서술하였다고 말씀하시며
누른 황금색 보자기에서 경전을 한 장, 한 장씩 꺼내어 보시고 설명 한 후에
소중히 보관하시는 모습을 보고 다시 한 번 경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법회 시작 전에 옆 자리에 있는 우 승택 거사를 알아본 여러 신도들이
어느 신도가 보시한 조그마한 천수경, 금강경 법회 집을 가지고 와서 사인을 부탁하였는데
‘경전에다 어떻게 사인을 하느냐’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이
불연 듯 떠올라 피식 얼굴을 쳐다보고 미소를 지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께서 법회에서 말씀하신
쫑카바 존자님의 58게송의 연기찬(緣起讚)을 아무 설명이나 해석 없이 그대로 옮겨 적어본다.
연기찬(緣起讚)
쫑카바 지움, 땐진남카, 양승규 옮김
스승과 문수사리께 절합니다.
1.[연기(緣起)의 진리를] 보고 설하는 이가 위없는 지자(智者)와 도사(導師)
[이기 때문에] 연기하는 것을 보시고 설하시는 부처님께 절합니다.
2.세간에서 힘든 것 모두는 그 뿌리가 무명(無明)이고,
어떤 것을 봄으로써 무명을 없애는 연기를 설하셨습니다.
3.그때 지혜를 가진 이가 연기의 도를
당신께서 설하신 핵심으로 어떻게 이해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4.그렇다면 구호자 이신 당신을 찬탄하는 문으로 누군가가
연기를 말씀하신 것 외에 어떤 희유한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5.“어떤 연을 의존하는 것은 그 자성(自性)이 빈 것이다”고
말씀하시는 것 외에 훌륭한 말씀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6.어떤 것이 [자성으로 성립한다고] 고집함으로써 어리석은 이들이
극단을 고집하는 속박을 굳히는 것은
지자에게는 희론의 그물을 남김없이 끊는 문입니다.
7.이 가르침을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도사라고 하는 당신은[비할 데 없지만] 여우를 사자라고 [하는] 것처럼
외도들을[도사라고 하는 것은] 헛된 말입니다.
8.아, 세존이시여, 아, 구호주시여, 아, 최고의 설법자시여, 아, 보호자시여,
연기를 잘 설하신 그 부처님께 나는 절합니다.
9.[한결같이 타인을] 이롭게 하시는 당신께서 중생을 치료하기 위해 말씀하신
가르침의 핵심이 빈 것을 학정하는 이유인 비할 데 없는
10.연기의 이치가 모순되고,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는 이들이
어떻게 당신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11.당신께서 빈 것을 연기의 의미로 보시는 순간,
자성으로 빈 것과 작용[能所]이 타당하여 모순되지 않고,
12.이것과 반대로 볼 경우 빈 것에 작용이 불가능하고,
작용을 가진 것에 빈 것이 없기 때문에 무서운 절벽에 떨어진다고 합니다.
13.따라서 당신의 가르침에서 연기를 보는 것을 바르게 찬탄합니다.
그것도 아무것도 없는 것과 자성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14.근거하지 않는 것은 허공의 꽃과 같습니다.
따라서 근거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본성으로 성립한다면,
그것이 성립하는 것은 인(因)과 연(緣)을 근거로 하는 것과 모순됩니다.
15.따라서 연하여 발생하는 것 외에 어떤 법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성으로 빈 것 외에 어떤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6.자성을 없애지 못하기 때문에 제법의 자성이 존재한다면
열반도 불가능 하고, 모든 희론을 없애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7.따라서 “자성을 여의라”라고 사자후로 거듭해서
지자의 무리에게 바르게 말씀하신 이것을 누가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18.자성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과 이것을 토대로 이것이 생기는
모든 체계가 타당한 둘이 모순되지 않고 합쳐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19.연하여 발생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견해를 의존하지 않는다”고
바르게 말씀하신 이것이 구호주 당신께서 위없는 설법자가 되는 이유입니다.
20.이 모두는 본성이 빈 것과 같고, 이것에서 이 결과가 생기는
두 가지 결정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도움이 되는
21.이것보다 희유한 것과 이것보다 수승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방식으로 당신을 찬탄할 경우 찬탄하는 것이 되고, 다른 것으로는 아닙니다.
22.미혹함 때문에 노예가 되어 당신을 증오하는 이가
자성이 없다는 말을 견디지 못하는 것에 대해 놀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23.당신께서 말씀하신 소중한 곳간인 의존하여 생기는 것을 인정하고서
빈 것의 포효하는 소리를 참지 못하는 이것에 우리들은 놀랍니다.
24.무자성(無自性}으로 이끄는 위없는 문인
연기하는 것의이름으로 자성을 고집한다면, 지금부터 이 중생들을
25.훌륭한 승자들이 바르게 나아가는 비교할 수 없는 길인.
당신을 기쁘게 하는 훌륭한 도로 어떻게 이끌 수 있겠습니까?
26.조작(造作)하지 않고, 의존하지 않는 자성과 근거하고, 조작하는 연기
이 둘을 어떻게 하면 하나의 토대에 모순되지 않게 모을 수 있겠습니까?
27.따라서 의존하여 발생하는 것은 자성이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지만,
그것으로 현현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환술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8.당신께서 가르친 것에 대해 반박하더라도 타당한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신 것도 이것으로 바르게 압니다.
29.왜냐하면 이것을 설함으로써 보거나 보지 못하는 실사를
증익(增益)하고 손감(損減)하는 기회를 멀리하기 때문입니다.
30.당신께서 말씀하신 것이 비할 데 없음을 보는 이유인 연기의 도리
이것 때문에 다른 가르침도 바른 인식이 된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31.여실하게 보시고 바르게 말씀하신 당신을 따라 배우면서
모든 힘든 것을 멀리하는 것이 모든 과실의 뿌리를 없애기 때문입니다.
32.당신의 가르침에 등을 돌린 이가 오랫동안 고행을 닦더라도
다시 허물을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은 아집이 견고하기 때문입니다.
33.아, 지혜로운 이가 이 둘의 차이를 이해할 때
어떻게 진심으로 당신을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34.당신의 많은 가르침은 말할 필요도 없고 한 부분의 의미 정도라도
대략적으로 확정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기쁨을 얻습니다.
35.오, 내 마음은 몽매함으로 부서져 이와 같은 공덕의 온(蘊)에
오랫동안 귀의하더라도 조금도 공덕을 얻지 못합니다.
36.하지만 염라대왕의 입으로 향해있는 목숨의 흐름이 끊어질 때까지
당신을 조금이라도 믿는 이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37.설법 중에서 연기를 설하는 것과 지혜 중에 연기를 인식하는 것 둘은
세간에 있는 최고의 왕처럼 매우 훌륭하신 당신만 아실뿐 다른 이는 알지 못합니다.
38.당신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은 연기에서 시작하고,
그것도 열반을 위한 것이고, 적정이 되지 않는 행은 당신에게는 없습니다.
39.오, 당신의 가르침을 누군가가 귀로 듣는다면 그 모든 이들이 적정하게 되기 때문에
당신의 가르침을 수지하는 이에게 누가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40.모든 힐난을 논파하고, 위아래 모순되는 것이 없고,
중생에게 두 가지 이익을 주는 이 가르침에 저의 환희심이 커집니다.
41.이것을 위해 당신께서는 때론 몸을, 때론 목숨을
사랑하는 가족과 재물들을 셀 수 없는 겁 동안 거듭 거듭 베풀었습니다.
42.어떤 공덕을 보는 것으로 낚시 바늘로 물고기를 [낚는 것]처럼,
나의 마음을 끄는 이 법을 당신으로부터 듣지 못하는 것은 복이 없는 것입니다.
43.그것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어머니의 마음이
따라가는 것처럼 내 마음을 버리지 못합니다.
44.[괴로운] 이 경우에도 당신의 가르침을 생각할 경우
위대한 상호와 종호로 빛나는 빛의 그물에 둘러싸여 세존의 범음(梵音)으로
45.이 [의미를]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생각하여 마음속에 세존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뜨거워 고통스러워하는 것에 달빛처럼 약이 됩니다.
46.그와 같이 수승하고 훌륭한 가르침을 알지 못하는
중생들은 마란 초(馬蘭草)처럼 항상 혼란에 빠집니다.
47.이와 같은 이치를 보고 나는 열심히 노력하여 지혜로운 분을 따르며,
당신의 의도를 거듭해서 추구합니다.
48.그때 자타(自他) 종파들의 많은 논전(論戰)을 배울 때
다시 의심하는 그물 때문에 내 마음은 항상 고통스럽습니다.
49.당신의 위없는 탈 것[乘]의 이치인 있음과 없음의 극단에서 벗어난[중도를]
그대로 주석한다고 예언된 용수보살의 가르침은 야하화(夜荷花)의 숲입니다.
50.때 없는 지혜의 윤곽이 원만해지고, 가르침은 허공에 막힘없이 나아가고,
극단을 고집하는 마음의 어둠을 없애고, 잘못 말하는 행성(行星)을 압도합니다.
51.덕 높으신 월칭(月稱)보살의 선설(善說)의 흰빛 화환이 밝히는 것[처럼],
스승의 은혜로 볼 때 내 마음은 휴식을 얻습니다.
52.모든 행중에서 말씀의 행이 최고이고, 그 또한 [연기의 도를 말씀하시는 것]
이것이기 때문에 지자는 이것을 통해 부처님을 떠올려야 합니다.
53.부처님을 따라 출가자가 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 뒤떨어지지
않고,
유가행(瑜伽行)에 정진하는 비구가 위대한 선인을 이와 같이 공경합니다.
54.위없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렇게 만나는 것은 스승의 은혜이기 때문에
이 공덕도 위대한 선지식이 일체중생을 섭수하는 원인이 되도록 회향합니다.
55.[타자를] 이롭게 하는 분의 가르침도 세상의 마지막에 나쁜 분별의 바람으로 흔들리지 않고,
가르침의 본성을 알고서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얻어 항상 가득하게 하소서.
56.의존하여 발생하는 것을 밝히신 부처님의 훌륭한 가르침을 세세생생
몸과 목숨을 바쳐 수지하는 것에 한 찰나도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57.이끌어 주는 것이 뛰어난 분께서 헤아릴 수 없는 고행으로 정진을 핵심으로 하여
성취한 이것을 어떤 방법으로 키울 것인가 하고 밤낮으로 심사숙고하게 하소서.
58.청정한 증상심(增上心)으로 이 가르침에 정진할 경우 브라만과 인드라,
사천왕과 흑선천(黑善天) 등 수호신들도 어김없이 항상 지켜주소서.
오전 법회가 끝나고 주체 측에서 마련한 도시락으로 점심 공양을 하였다.
일본 방청객들도 각자의 도시락을 준비하여 조용히 식사를 하였다.
2부 순서는 미니 행사로 시작되었다.
각국의 스님들께서 반야심경을 독송하였다.
첫 번째는 인도 스님들께서 독송 하였는데 중간 중간에 비슷한 발음 때문인지
전혀 생소하게 들리지 않았다.
두 번째는 대만 스님들의 순서로 진행 되었다.
중간에 달라이라마 존자께서 단상에 오르셔서 좌정하시었다.
독송이 끝나고 퇴장하시는 대만 스님들께 환하게 미소 지으며 답례를 하시던 중
한 분의 스님께서 엎드려 절하고 빨간 봉투를 공양하시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나왔다.
세 번째로 대한민국 스님들께서 20여분 단상에 올라 가셨다.
우렁찬 박수와 함께 모두 일어나 목탁 집전에 맞추어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모두 함께 독송하였다.
나는 눈물이 멈추어 지지 않아 끝까지 독송하지 못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스님들도 여러분이 눈물을 흘리셨고,
신도님들 또한 많은 분들이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이어서 몽골, 티베트, 일본 스님들의 독송이 있었다.
특히 일본 스님들의 독송은 우리와 운율과 음정이 비슷하였다.
아마 백제로부터 불교가 전파되어 그러한 듯하다.
반야심경 독송이 끝나고 오전 법회에서 설하신 연기찬에 대하여
경전을 한 장 한 장 보시며 법문하신 후 방청객의 질문이 이뤄졌다.
한사람, 한사람의 질문에 흔쾌히 대답하여 주셨고,
진행요원의 시간이 경과하였음을 통보한 후에도 한 20분을 연장하여
질문에 답하시고 오늘의 법회가 끝났다.
내일 다시 친견할 것을 기약하며
숙소로 이동 중 요코하마에 있는 차이나타운을 방문하였다.
일본에는 3군데 차이나타운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인천에 있는 차이나타운도 이곳을 모방 하였다고 한다.
집결장소와 시간을 듣고 40여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거리를 배회하는데 룸메이트인 수 거사와 아침에 호텔 로비에서 마주친 인 거사를 만나
가까운 음식점으로 들어가 곡차(샤께)를 가볍게 한잔하였다.
오늘 수 거사와 인 거사가 우연히 옆에 앉아 법회를 경청하였다고 한다.
무슨 인연인지 세 사람이 자리를 함께 한 것이다.
저녁 공양은 차이나타운에서 중식으로 하였다.
오늘 밤에 있을 축구 경기를 대비하여 남은 음식 몇 가지를 포장한 후 숙소로 돌아왔다.
붉은 악마의 티셔츠는 없지만 자주색 달라이라마 티셔츠를 입고,
서울에서 준비한 곡차(참이슬)와 포장한 음식으로 9시부터 우리의 응원전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가이드에게 함께 T.V를 시청할 수 있도록 요청하였는데
일본에는 음식점이나 술집에 T.V를 설치하지 않는다 하여
아쉽지만 조그만 호텔방에서 4사람이 모여 열심히 대한민국을 응원 하였다.
아쉽게 패배 하였지만 경기는 우리 선수들이 우세하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일 예정된 “한국 단독 달라이라마 친견 법회”를 위하여 일본에서의 이틀째 밤을 보냈다.
한국 단독 달라이라마 친견 법회에 가다.
다음날 아침 공양을 마친 후 짐을 챙겨 버스에 올랐다.
로비에서 우 거사를 만났는데 볼일이 있어 직접 친견 법회장소로 온다고 하여
우거사를 제외한 전원이 버스에 탑승한 후 목적지인 동경도청 전망대로 향했다.
동경 도청은 최고의 건축물이자 명실상부한 신주쿠의 상징이라 한다.
지상으로부터 202 미터 높이에 있는 전망대에 가면 동경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도청이라 간단한 보안 검색 후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탔다.
소음과 진동 없이 조용히 50여초 만에 45층에 도착했다.
전망대에서 동경 시내와 외곽 도시를 조망 후 점심 공양을 위해 신주쿠로 갔다.
단독 친견 법회 시간을 맞추기 위해 신주쿠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이른 시간(11시)에 김치찌개로 점심 공양을 한 후 요코하마 전시장으로 이동했다.
오늘은 요코하마 전시장의 소극장에서 한국 단독 친견 법회를 하였다.
보안 검색 후 입장하였다. 오늘은 핸드폰 및 카메라도 허용 되었다.
드디어 일본법회에 동참한 한국 불교TV 성지순례단
5백여 명과 1시간(13:30~14:30)동안 특별대담을 가졌다.
불교TV 성지순례단 지도법사인 범어사 주지 정여 스님과
‘깨달음과 수행’을 주제로 대담을 하였다.
달라이라마 존자님은
“한국에 가본 적이 없지만, 한국불자들과 ‘도반’으로 만나고 싶었다.”며
“21세기를 사는 한국불자들은 불교 뿐 아니라 현대 과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 하시고,
“우리들은 불교 경전공부를 열심히 하고, 매일 수행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정여 스님께서 몇 가지 질문을 간추려서 물으셨다.
달라이라마 존자님은 질문에 성심껏 답하셨다.
어제 법회 때 법문보다 오늘은 어렵게 비유하여 말씀하셨다.
통역사인 양 교수께서 선불교를 접하지 않은 듯 다소 불교 용어에 서툴러
동승한 티베트 스님께서 보충 설명을 하시었다.
진행요원이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리자
조금 더 말씀 하신다고 하여 20~30분 연장하여 질문에 대답하여 주셨다.
이어 달라이라마 존자님은
정여 스님에게 티베트 불상과 탕카를 기증했고,
참석한 대중들에게는 부처님의 가피가 담긴 빨간 실을 전달했다.
이에 정여 스님은 “청정무애”란 글씨가 담긴 족자를
달라이라마 존자님께 선물 하였다.
특히 이날 달라이라마 존자님은 한국불자들을 위해
단상에서 내려 오셔서 대중들과 함께 사진촬영을 한 후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퇴장 행렬에는 손이라도 한번 잡아 보고자 하는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잠시 길을 멈추기도 하였다.
이것으로써 달라이라마 존자님과의 만남은 끝났다.
관세음보살님의 화신을 직접 뵙게 되어 큰 영광이라 여겨졌다.
내생에 언제 또 다시 뵐 수 있을지.....
이후 예정된
하코네에 있는 아시호수 유람선 승선은 시간이 경과하여 취소되었다.
질문시간 초과와 예정에 없던 사진 촬영 때문이었다.
소식을 접한 신도들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달라이라마 존자께서 대중들에게 선물한 빨간 실 전달 과정에서 사건이 터졌다.
앞좌석에서 받은 신도들이 여러 개씩 가져 불상사가 생긴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하나를 선물 받아 지갑에 넣고 행사장을 나왔다.
룸메이트인 수 거사가 급히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여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고 아쉬운 작별을 한 후 대기 중인 버스로 향했다.
버스로 가던 중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모시고 온 청년이
“아저씨는 실 받았어요.”하고 묻기에 “응 하나 받았어” 하였더니
외할머니께서 “우리는 3명이 왔는데 아무도 못 받았다”고 무척 서운해 하시기에
아내에게 주려고 고이 모셔둔 빨간 실을 지갑에서 꺼내어
약간의 갈등은 있었지만 할머님께 드렸다.
고마움에 어찌 할 바를 몰라 하셨다.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버스에 탑승하여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이사와 온천으로 이동하였다.
이동 중 버스에서 우 거사가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어제와 오늘 법회 내용을 간추려 강연하였다.
오전에 2,000배를 드리고 법문을 정리한 후 강연을 한다고 서두에 말하였다.
아! 아침에 볼일이 있다고 한 것이 이것 때문이구나. 참 대단한 불심이구나!!!
불교TV 에서도 강연 의뢰를 받으면 백일동안 기도드리고 강의를 하신다고 하는데
금강경의 구절 중에서 위타인설(爲他人說)
육바라밀 행 중에서 보시바라밀(법 보시)을 행하기 위하여 몸으로 직접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재가불자들의 목마름을 적셔주는 선구자라 생각했다.
긴장이 풀렸는지 비몽사몽 강연을 들은 것 같아 괜히 미안했다.
6시경에 온천에 도착하여 4인1실로 방 배정을 받았다.
수 거사가 없는 관계로 3인이 사용 하게 되었다.
내가 제일 막내가 되었다. 경기도 광주에서 오신 83세 노 거사.
채식만 하신다는 짧은 하얀 백발머리에 부인과 부인 친구와 함께 오신 한 거사.
로비에서 부터 막내의 할 일이 시작 되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짐을 우선 옮겨 드려야 했다.
방은 일본 전통 다다미 방 이었다.벌써 이불과 요를 깔끔하게 깔아 놓았다.
베란다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니 우리나라의 관광지와 비교하여
너무 조용하고 깨끗하여 이 모습을 한국에 옮겨 놓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본 전통 옷 유카타 옷을 입고 노 거사를 모시고
저녁 공양 장소인 연회장으로 갔다.
6호, 7호, 8호차 신도님 모두 함께 모여 즐겁게 일본 전통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온천에 갔다.
시설은 옛날 70년대 수준, 간단히 씻고 로비 소파에 몸을 묻었다.
인연으로 만난 도반들과 함께
먼저 자리한 도반에게 인사하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
북경에서 따님과 오신 보살님은 5년째 거주 하시는데,
남편은 리비아 공사현장에 계시고 따님은 북경대 의대 7학년 재학 중이라며,
혼자서 열심히 불교 경전공부도 하시고, 기도하며, 수행생활을 하시는데
이번에는 아빠와 남편을 만나러 간다 하고 법회에 참석 하였다고 한다.
북경에서는 아직도 전화도청이 심하다고 한다.
불광사에 다니시는 연세가 76세이신 노 보살,
34세 때 남편을 여의고(10년 사셨다고 함) 홀로 3남매를 키우셨단다.
불심으로 40여년을 금강경 사경을 하시고,
서예도 하여 8폭짜리 금강경을 쓰시어 선물 하신다니
천수경, 금강경을 독송한다고 우쭐대었던 내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인 거사가 와서 곡차 남은 것을
처리하여야 한다고 재촉하여 아쉽지만 여운을 남기고 방으로 따라갔다.
방에는(인 거사 부부만 사용) 7호차에 계신 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 거사(전주에서 오신 거사)는 대학원에서 웃음 치료사 공부하다 만난
동기생과 함께 법회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기생인 화 보살(화성에서 오신 보살)은 천주교 신자라 소개 하였다.
벌써 7호차 도반님들과 많이 친숙한 듯 보였다.
몇 잔의 곡차가 오가고 우 거사의 열렬한 팬 이라는 전 거사가
우 거사와 만남을 원하기에 잠자리에 들은 우 거사를 억지로 깨워 참석시켰다.
한참 재미있는 이야기가 진행 중에 온천욕을 마친 인 보살이 오셨다.
혹시나 하였다며 반갑다고 우 거사에게 인사하고, 당신의 넋두리를 시작했다.
20대 후반부터 25년간 귀신에 홀려 고생한 보따리를 풀었다.
어느 날부터 백발의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잠을 못 자게 하였단다.
무속인을 밥 먹듯이 찾아가고 굿도 수없이 하고 돈도 많이 가져다 바쳤다고 하면서
어느 날 꿈속에서 신당에 있는데 할아버지가 나타나
“나는 어디에 있을까”하기에“이쪽 옆에 앉으세요”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는데
이번에는 금색의 부처님께서 나타나시어 “나는 어디에 앉을까‘하시기에
벌떡 일어나 ‘이쪽에 앉으십시오“ 하고 자리를 권한 후 잠에서 깨어났단다.
간밤의 꿈이 아주 이상하여 항상 다니는 신당에 갔는데
신통한 대답도 못 듣고 집으로 돌아와 한동안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아
그 후로 수십 군데의 무속인을 찾아 다녔다고 한다.
언젠가 한 무속인이 “절에서 오라는데”하며 인천 근교의 사찰 명을 부르는데
강화 보문사를 호명하는 순간 갑자기 풍경 소리가 들려 그만 됐다고 하고
복채를 집어 던지듯 주고 집으로 와서 남편에게 지난 이야기를 하였단다.
다음날 남편과 보문사를 찾아 사찰을 돌아보고 기도한 후
남편이 눈썹바위는 힘들어 안 올라간다 하여 참배를 못하고 돌아왔는데
너무나 찝찝하여 다음날 친구 2명과 함께 다시 보문사를 찾아가
사찰을 전부 다 둘러보고 나오는데 어디선가 “기도 동참 하세요”하는 소리에
초보 불자라 아무것도 몰라 지갑에 있는 돈 만큼
기도비로 동참하고 집에 돌아와 잠을 잤는데 희한하게 밤새 아무런
악몽 없이 수십 년 동안 못잔 잠을 한 번에 다 잤다고 하였다.
그 후 매일 가다시피 보문사에 다니며 불교에 귀의 하였고,
현재는 봉사 활동을 위해 1주일에 2~3회 다닌다고 하신다.
법회에서 부처님의 연기설에 대하여 법문을 들었지만
인 보살은 “무슨 인연으로 부처님 법을 배우나”하며
금강경 중에서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 難遭遇)” 구절이 생각났다.
이런저런 담소가 오고 갈 때 방문을 열어 놓았더니
우연히 지나가던 상계동에서 오신 부부가 합석하게 되었다.
상 보살은 오래전부터 불교에 귀의하여 열심히 기도한다고 하였고,
남편인 상 거사는 그냥 아내를 따라 절에 다녔다고 한다.
아내가 기도할 때 밖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전각의 단청에 매료되어 발심하여 요즈음 매일 열심히 108배를 드린다고 한다.
몸집이 커다란 상 거사는 도선사에 다니는데 갈 때마다
쌀 20kg을 어깨에 짊어지고 가서 공양을 올린다며
봉사하시는 보살들이 알아보고 반겨주어 보람을 느낀단다.
작금의 종단과 봉은사 문제가 화제가 되어 열변을 토했더니
우 거사가 “재가불자가 많이 부자가 되면 됩니다.
부자가 되어 스님들을 외국에 공부하러 보내 드리고,
노후 생활도 보장하면, 자연히 한국불교가 발전하지 않겠냐.” 며
항상 이런 서원을 세우고 기도 하자는 말에 한국불교의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아 기뻤다.
우 거사에게 계속 보살들의 질문이 이어져서
자려는 사람을 깨워 모임에 참석토록 한 것이 너무 미안하여
“이제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그만 끝내자”하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여러 도반님들을 만나보니 기도와 수행생활을 정말 열심히 하였다.
불교에 귀의한지 3년째, 알음알이 지식만 쌓아온 내가 한심스러웠다.
나도 이제는 존자님의 말씀처럼
불교 경전공부도 열심히 하고, 수행도 매일 하리라 다짐해 본다.
오늘은 좋은 인연들을 만나 일본에서의 아름다운 마지막 밤이 되었다.
3박4일 동안의 만남을 회향하며
아침 공양을 일본 전통 음식으로 하고 오전 8시에 버스에 탑승하여
목적지인 나리타공항으로 출발하였다.
법륜 스님(흥륜사 주지)께서 여행기간 동안 아무런 불상사 없이
무사히 귀향하게 되어 고맙다는 인사말과 인연에 대한 법문을 하셨다.
천안에 있는 정토마을(호스피스 요양원)에서 오신 능행 비구니 스님께서
우리 8호차에 탑승하여 호스피스 병원을 세우려고 땅 매입하게 된 경위와
건물을 건축하려는데 불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도움을 요청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여러 신도님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말씀하였다.
경산에서 오신 보살님은 이야기를 듣고 연신 눈시울을 적시었다.
5월경에 미국에서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법회에 참석하였는데
절에서 만나 자매처럼 지내는 보살이 “같이 다녀오자” 하여 경제적인 사정도 고려하였지만
“무슨 인연인지 한 달 만에 무작정 다시 참석하게 되었다”며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사진 촬영하느라 바빴다.
창밖으로 후지 산의 풍경이 펼쳐졌다.
날씨가 화창하여 손으로 만져 볼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침 햇살에 비친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남은 시간은 가이드가 일본 역사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오다 노부 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대학 시절에 “대망”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어느덧 나리타공항에 도착 하였다.
모두다 끝으로 사홍서원을 하고 일본에서의 성지순례를 회향하였다.
생각지도 않은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친견하여 법회도 듣고,
여러 좋은 인연들을 만나 친구도 사귀었고, 지식과 경험도 얻었으며,
내생에 잊지 못할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끝으로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친견 법회를 위하여
힘쓰신 불교TV 관계자 여러분과
서울과 일본에서 애쓰신 성국장님께 지면으로 나마 고맙다고 인사드린다.
첫댓글 좋은 인연의 공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