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의 춤
박 명 호
휴일 경주 가는 길은 몹시도 붐볐다. 버스는 가다서다를 반복했지만 창 밖으로는 가을이 한창이었다. 하늘이 너무 맑아서일까 나는 창 쪽에 거의 시선을 고정시킨 채 무념 무상의 상태로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선잠까지 들었던 모양인데 아랫도리가 묵직하게 차 올라서 단잠은 오래 가지 못했다. 빈뇨(頻尿)증세가 심한 나는 언제나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분명 버스를 타기 전 화장실을 다녀왔다는 생각에 원망스러이 아랫도리를 내려다봤다. 그러나 소변이 마려운 것은 아니었다. 잠결에서 본 처용무가 너무 관능적이었던 것 같았다. 커다란 코와 눈 그리고 입과 느릿느릿한 춤이 내 성감각을 자극했던 것이었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나는 처용무를 생각하다가 느닷없이 건져 올린 그 생소한 언어에 대해 잠시 혼란에 빠졌다. 어쩌면 그 혼란은 연이 남편이라는 사람의 편지를 받은 뒤부터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 편지를 받은 것은 열흘 앞서서였다. 짧은 편지에는 그녀가 나를 꼭 만나고 싶어한다며 ‘처용 기행’에 함께 갔으면 했다. 물론 편지에는 연이의 근황이 짧게 소개되어 있었지만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것은 그녀가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보다는 그 소식이 그녀 남편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왔다는 것이었고, 더욱이 그들 부부와 동행하는 만남이었기 때문이었다.
처용기행에 대해서는 동봉한 행사 팜플렛으로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지만 십여 년 전에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미국 유학을 떠난 연이가 귀국한 지 일 년이 넘도록 소식이 없다가 뒤늦게 만나자고 하는 것도 그렇고, 본인이 아닌 남편이라는 사람이 소식을 전하는 이유를 아무래도 알 수가 없었다. 연이의 남편은 미국에서 원시무용을 전공했고, 귀국해서는 처용무에 빠져 몇 편의 논문까지 쓴 처용 전문가였다. 마침 울산에서 열리는 처용제에 강사로 초빙되어 가는 길에 같은 연구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처용 기행 행사를 마련한 것 같았지만 나로서는 영 마뜩치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아침까지도 갈까말까 망설이다가 뒤늦게 출발했었다.
비록 십여 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녀는 여전히 내 마음 속에 그 어떤 그리움으로 남아 있었고, 그녀 또한 나를 꼭 만나고 싶다니 일단은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녀와 마지막 밤을 보낼 때, 우리는 경주 부근에 있는 어느 조그마한 암자에 있었다. 달빛이 유난히 밝았던 그 날 밤 우리는 서로가 별 말이 없었다. 그저 벽에 등을 기댄 채 달빛이 쏟아지는 절집 문창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끝내 스승과 제자라는 관습의 벽을 넘어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했었다. 나는 세상에 모든 쓸쓸함과 공허함만이 가득했던 그 날 밤을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유학을 떠났고, 결혼을 했다. 우리의 사랑이란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기에 그렇게 아쉬워할 것이 못되었다. 그렇기에 십 년이란 세월은 우리의 애틋한 사랑마저도 추억의 저편으로 밀어내기에 충분했는지도 모른다.
경주 톨게이트를 빠져나온 버스는 여전히 거북이 걸음이었다. 버스 앞에 걸린 시계는 벌써 약속 시간인 열 시를 삼십 분이나 넘어서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별로 급하지 않았다. 휴일의 도로 사정을 감안해서 서둘러야 했었지만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이라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
결국 나는 한 시간이나 늦게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에 내려서도 나는 할 일 없는 사람처럼 자판기에 커피까지 뽑아 마시면서 담배를 물고 어슬렁 어슬렁 약속 장소인 주차장 앞 벚나무 아래로 갔다. 예상처럼 연이도 그의 남편도 보이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가는 기행인데 한 시간이나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 주기를 기대한 것은 무리였다. 차라리 잘 되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되돌아가려니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그 벚나무에 기대어 담배를 다시 피워 물며 무심히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산 위로 펼쳐진 늦가을의 경주 하늘은 참으로 맑았다. 그 맑은 하늘이 오늘따라 십 년 전의 그 날 밤처럼 너무 씁쓸하게 다가왔다.
기왕 오려면 일찍 나서든지 아니면 오지 말든지... 나는 매사에 우유부단한 성격을 탓하며 때늦은 후회를 했다.
"박 선생님이시죠?"
그때 연이 대신에 이목구비가 크고 뚜렷한 사내가 다가왔다. 사내는 연이의 남편이었다. 그의 환한 미소 탓이었을까. 초면의 어색함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안 오실 줄 알고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연이 남편이라는 사실에 나는 자꾸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이렇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었는데..."
"길이 엄청 막히죠?"
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연이에 대해 묻고 싶었으나 왠지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마 내가 너무 늦어서 연이는 일행들과 일정을 따라가고 그는 나 때문에 남아서 기다렸는 것 같았다.
"가시죠."
그는 자신의 차로 안내했다. 꽤 고급 차였다.
시동이 아주 부드럽게 걸렸다. 그는 차를 천천히 몰았고 꽤 여유가 있어 보였다.
"선생님과 함께 기행을 하고자했지만 불편하실 것 같아서 제가 따로 모시기로 했습니다."
"괜히 나 때문에 폐를 끼치는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연이씨가 선생님을 뵙고 싶어하는 것 이상으로 저도 선생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 사람을..."
“아실런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요즈음 설화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설화를 바탕으로 한 선생님의 소설을 너무 좋아합니다.”
“부끄럽습니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물론 나는 그가 읽었다는 작품에 대해 인사치레로 한 말이었지만 그것보다는 어린 제자와의 사랑이라는 것이 막상 그 이해당사자인 그를 대하는 순간 부끄러움으로 치밀어 올라왔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선생님, 처용에 대해서도 소설을 한번 써 보시지요?”
“박사님이 전문가인데 감히 필을 함부로 돌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처음으로 같이 웃었다. 농담과 웃음 탓인지 애초에 그에게 가졌던 질투나 열등감 같은 경계심이 훨씬 누그러들었다. 그러나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진전되지는 못했다.
도대체 어디서 그를 보았을까...
나는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어 보이는 그의 인상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보았으나 도무지 그와 내가 만났을 경우가 없었다.
“안강에 있는 흥덕왕릉으로 갑니다. 아마 그쪽이 맘에 드실 겁니다.”
“흥덕왕릉이라... 이름은 들어봤지만...”
“왕이 수절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부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죽어서도 부인과 함께 묻힌 능이지요.”
나는 그 왕릉이 처용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처용 기행에 대한 관심보다는 연이의 일이 궁금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흥덕왕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만 풀어놓았다.
“거기에 더욱 재미있는 설화가 있습니다. 흥덕왕이 즉위한 지 얼마 안되어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사람이 앵무새 한 쌍을 가져왔답니다. 오래지 않아 암놈은 죽고 수놈이 슬피 우는지라, 왕이 거울을 앞에 걸어두게 했는데, 수놈이 거울 속의 제 모습을 짝으로 여기고 거울을 쫐다가, 짝이 아님을 알고 슬피 울다가 죽었답니다. 이에 왕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는데 불행히도 노래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어색한 분위기를 그런대로 잘 풀어가고 있었다.
“흥덕왕과 부인의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이다 말이죠.”
별로 할 말이 없는 나는 예의상 댓구는 했지만 왜 거기로 가는지 궁금해서 그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께서 관심을 가지실 줄 알았습니다. 흥덕왕이 즉위한 해에 부인이 죽었는데 군신들이 재혼을 청해도 ‘척조(隻鳥)가 짝을 잃어도 슬퍼하거늘 어찌 사람이 짝을 잃었다고 다시 아내를 맞겠는가’라면서 시중드는 여자도 가까이 하지 않았답니다.”
“처용 이야기와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성이 자유로웠던 당시 입장에서 보면 분명 흥덕왕이 정상에서 벗어나 있지요. 그래서 더욱 귀한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어떻게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했다는 것과 성적 자유는 다른 문젭이다. ”
어째 이야기가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서 나는 바깥의 화창한 가을 날씨로 화제를 바꾸었다. 엄연히 그의 아내인 연이를 만나려는 상황에서 그와 같은 이야기는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한 삼십 분 뒤에 왕릉에 도착했다. 왕릉의 입구는 왕릉이라 하기에 너무 초라했다. 무덤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들도 여느 신라왕릉의 장대한 소나무와는 다르게 나즈막하고 구부러지고 뒤트러지고 볼품이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모두가 틀어져 꼬여 있는 것이 마치 전생에서 못다한 사랑을 나누는 것처럼 서로를 부둥켜안고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 나무도 서로를 지극히 그리워하면 저렇듯 몸을 맞대어 살아나가나 보죠. 앵무새 설화를 생각하면 자연법칙이라는 느낌이 듭니다만...”
그는 ‘자연법칙’이라는 마지막 말에 약간의 엑센트를 넣었다. 나는 그 말에 힘을 얻어 연이를 만나는 것에 조금은 떳떳해지고 싶었다.
숲을 들어서면서 느꼈던 이상한 분위기란 것은 어쩌면 천 년을 간직한 그 그리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선지 숲 속으로 들어갈수록 꿈을 꾸는 것 같아 그가 들려주는 말소리조차도 소나무에서 들려온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제 아무리 경주에는 옛 비밀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지만 이렇듯 숨겨진 사실들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숲길을 빠져 나와 커다란 봉분을 한 바퀴 돌 때까지 그는 매우 느리게 걷고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나는 그것이 내가 늦게 온 탓이리라 생각하니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 그의 허리춤에서 핸드폰의 벨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내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뒤돌아 서서 핸드폰을 받았다. 그리곤 알았다며 곧 전화를 끊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만 잠깐 다녀와야겠습니다. 그쪽에 약간의 문제가 발생한 모양입니다. 왕릉을 돌아보시고 혹시, 지겨우시면 저기 입구 가게에서 소주나 한 잔 하고 계십시오. 곧 오겠습니다. 아참,”
그리고 그는 황급하게 돌아서려다 말고 안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내밀고는 곧바로 숲길로 되돌아갔다.
그가 사라진 숲길은 그 소나무 둥치들이 수없이 얽히고 얽혀 마치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 같았다. 꿈이 아닐까. 간혹 너무 생생한 꿈을 꿨을 때 장자의 ‘나비 꿈’처럼 꿈과 생시를 구분하기 어렵듯 혼란스러웠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저 멍하니 뭔가에 홀린 듯 그가 사라진 숲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숲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뛰쳐나와 무덤 쪽 잔디밭을 뒹굴었다.
필시 연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왠지 연이의 편지를 바로 뜯어 볼 수가 없어 기행 자료집을 더듬었다. 자료집에는 이미 왕릉을 다녀 간 몇몇 시인들의 시도 실려 있었으나 문장 따라 눈길만 흘러갈 뿐 연이에 대한 걱정을 밀어내지는 못했다. 문득 조금 전 그가 읊었음직한 싯구에 눈길이 멎었다. ‘숭시버러라, 그리운 여자들...’ 그가 굳이 자료와 편지를 함께 전해 주는 까닭이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정말 ‘숭’스러운 마음으로 연이의 편지봉투를 뜯었다.
- 중국의 어느 부족에선 아직도 결혼하기 전 신께 몸을 받치는 의식이 있답니다. 신이 없고 그래서 신화가 없는 이 시대에 결혼과 상관없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받친다는 것은 고귀한 일이 아닐까요. 세상에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선생님과 결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저는 제 처녀를 선생님께 받치고 결혼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선생님과의 사랑을 마감하는 일이었기에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결혼을 한다 해도 그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일은 결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제 스스로가 관습이라는 벽을 넘을 만큼의 용기가 없어서였습니다. 몇 번이고 당신께 편지를 섰다가 찢어 버렸습니다. 지난 시절 당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저는 제 뜻을 바로 전달할 수 없었습니다. 만의 하나 당신의 그 호의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염려해서입니다. 그러다 결국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결혼을 한 뒤에도 여전했습니다. 그것은 아마 죽을 때까지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렀습니다. 여고 시절처럼 당신의 사랑은 하나의 관념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관념은 때때로 나의 크나큰 괴로움이었습니다. 당연히 남편과의 사랑은 온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 쪽에서 먼저 물어왔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그것은 남편의 사랑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이 일을 남편이 순순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제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문제는 지금의 제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듯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는 편지를 접고서 무덤 옆에 누웠다. 가슴이 심하게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편지를 읽고 있을 동안 저 만큼서 놀고 있던 아이들의 소리가 또렷이 다가왔다.
-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도다, 왔도다
무슨 꽃을 찾겠니, 찾겠니...
어린 시절에 계집아이들과 손을 잡고 놀면서 부르던 노래였다. 아직도 저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있었구나 하는 반가움에 아이들을 살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른 놀이를 하고 있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일까. 그런데 내 아랫도리는 아까 버스에서처럼 빳빳하게 솟아 있었다. 난 다시 아이들 놀이 속에 있는 처용무를 본 것이었다. 일어나 앉았다. 파란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다.
딱 한 번 본 처용무의 공연이었는데 그렇듯 생생하게 재생될 수는 없었다. 액을 몰아낸다는 처용춤인데 내게는 어째서 아랫도리를 자극하는지 알 수 없었다. 고대 신라의 춤이 천 년이라는 세월에도 사라지지 않고 내 선잠에까지 재생되는 그 생명력의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다시 누웠다. 경주의 가을 하늘은 정말 맑았다. 그때 앗차,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렇고보니 그 처용무의 처용탈이 연이 남편의 인상과 많이 닮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를 만나는 순간부터 가졌던 그 낯익음이 바로 처용이었던 것이었다. 어쩌면 그와 나는 지금 꽃 찾기 놀이를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연이의 편지는 그것을 증명했다. 그렇담 그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연이 꽃을 찾으러 왔다고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그녀의 편지를 읽을 때부터 뛰기 시작하던 가슴이 아직도 뛰고 있었다. 아, 연이... 나는 연이의 사랑 속에서 내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마음 속에서 그녀의 사랑을 확인한 것은 그녀가 여고에 갓 입학한 오월 어느 화창한 날이었다. 산중턱에 자리잡은 비탈진 학교길을 오르면서 왠지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졌다. 그것은 아마도 에스자형으로 굽이진 길옆으로 길게 늘어선 철그물 담장에 갓 피어난 줄장미들과 그 꽃들이 이고 있는 눈부시도록 푸르른 하늘 때문이었을 것이다. 늘 출근하는 길이었지만 그날만큼 아름답게 느낀 적은 없었다. 그때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고 잊고 있었던 간밤에 꾼 그녀에 대한 꿈이 이어서 떠올랐다.
간밤에 그녀의 꿈을 꾼 것은 그녀의 특별한 편지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로부터 그 전에도 여러 번 편지를 받았지만 그 날의 편지는 조금 뜻밖이었다. 공책 열 장 분량의 길이도 길이였지만 종이에 쓰여진 모든 글자가 나를 향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열정은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선을 넘은 사랑의 표출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날 밤 나는 그녀에 대한 꿈을 꿨다. 무슨 꿈을 꿨는지는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꿈을 꿨다는 것은 그때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그 꿈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등교하는 여학생들의 해맑은 웃음에 까닭없이 마음이 설레고 있었다. 그때의 내 감정을 뭐라 할까. 가슴 한 쪽 저 깊은 곳에 아직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 그 깊은 곳에서 지릿하게 아려오는 아련한 그리움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나는 그것이 사랑인 줄은 알지 못했다. 설사 그것이 사랑이라 한대도 그녀로 인한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아무리 많은 여학생 제자들이 편지를 보내고 선물을 들고 찾아왔지만 꿈을 꾸거나 출근길에 아무 이유 없이 얼굴이 떠올라 꿈을 되새기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그 날 그 장미꽃과 함께 문득 떠올랐던 그녀의 얼굴은 이 세상에서 내가 보아온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그녀의 편지는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때로는 몇날며칠 밤을 꼬박 밝히면서 나를 위해 제작한 테이프를 보내오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나도 그녀에게 꼬박 답장을 썼고, 편지 속에는 내 사랑의 감정이 은근히 스며 있었다.
그 무렵 친구 여럿과 남해 금산을 갔다가 나는 그것을 확인했다.
안개 자욱한 보리암 근처를 서성이다가 문득 그녀의 예쁜 얼굴이 떠올랐다. 다소 뜻밖이라 생각했다. 산을 내려오는 중에도 그녀의 생각은 떠나지 않았다. 이상했다. 아내나 한참 재롱을 피우는 딸애 대신에 그녀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다는 것은 정말 이상했다. 나는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란 것을 깨달았지만 스승이 감히 어린 제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에 그런 나를 나무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를 위안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꿈이었다. 그래, 사람은 누구나 꿈꿀 수 있는 자유가 있지 않는가. 산을 내려와 물푸레나무 근처에서 쉬고 있을 때도 그녀 생각이 났다. 아니, 그녀 생각은 남해 여행 내내 따라 다녔다. 돌아오는 뱃전에서도 그녀 생각은 배멀미보다 심하게 요동쳤다. 견딜 수 없었다.
어쩌면 그녀 또한 나에 대해 그렇게 안타까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우리의 안타까운 사랑은 그녀가 대학생이 된 뒤에도 계속됐다. 때때로 우리는 한적한 암자를 찾아 그 허전함을 달래곤 했다. 우리는 단 한 번 입맞춤을 했다. 그것은 순전히 밝은 보름달 때문이었다. 암자에서 내려오는 길이었는데 소나무 사이로 둥근 보름달이 보였다. 그 때 우리는 거의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그녀는 나를 봤고, 나는 그녀를 봤다. 달 아래 그녀의 얼굴은 눈부셨다. 아니 그녀의 눈에서 달보다 더 맑은 눈물이 또르르 굴러 내렸다. 그녀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고, 나는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받쳐 입을 맞추었다. 황홀한 그 순간에도 그녀의 눈에서는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가 저만큼 소나무 숲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저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다. 걸어오는 그의 어깨가 왠지 힘이 없어 보였다. 연이를 뒤에 감춘 채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하며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그냥 그렇게 앉아 있었다.
“아이고, 여태 여기 계셨습니까. 꿈이라도 꾸신 것 같습니다.”
그는 멍한 내 표정에 미안한 듯 옆에 앉았다.
“연이는 어떻게 됐습니까?”
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그 말에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다. 나의 대답은 곧 ‘연이 꽃을 찾겠다’는 분명한 의사표시였다
“일행들은 시간이 늦어 바로 처용암으로 갔습니다. 연이씨도 준비할 것이 좀 있어서...”
우리는 정말 꽃찾기 놀이를 하는 것일까. 그도 당연한 듯이 말했다. 그러나 우리의 그러한 대화는 아직도 전혀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다시금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보니 내 행동만 주삣거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행동도 뭔가 자연스럽지 못했다. 어쩌면 나나 그나 여유를 부리는 것이 위장의 제스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마침 그도 놀고 있는 아이들 쪽을 보고 있었다.
“꽃 찾기 놀이를 하더군요. 우리 어릴 땐 여자애들하고 많이도 했었는데, 요즈음도 그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군요.”
“원시 모계 사회부터 내려오는 짝짖기 놀이의 잔형이지요. 지금의 사회가 신명을 잃어버린 것은 저런 놀이가 계승 발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원시의 춤은 결코 사료집에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피 속에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연이씨는 정말 아름다운 꽃이죠?”
뜻밖에 그는 내 질문의 의도를 바로 간파하고 있었다. 그렇담 애초 처용 기행은 나와 연이를 위한 예정된 각본일지도 몰랐다.
“그렇지요, 보기 드문...”
나는 당돌하게 되돌아온 질문에도 제법 뻔뻔해져 있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내가 뻔뻔해졌다고는 하나 그에게 아내를 내놓으라는 놀이는 껄끄럽지 않을 수 없었다.
“좋은 것일수록 나눠 갖는 것이 미풍양속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아름다운 꽃이라면 자연 상태에서 감상해야지, 꺾어서 자신만이 소유한다면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것이지요.”
그가 말하는 꽃은 두말 할 것 없이 연이를 의미했지만, 나는 그 꽃을 찾겠노라고 감히 말할 수 없었다. 자연의 법칙... 그래, 자연스럽게 연이를 만나 그녀의 아름다움에 젖어 지난 날의 회포를 풀 수 있다면 내가 굳이 회피할 이유가 없었다. 최소한 꽃 찾기 놀이에서 그는 나보다 훨씬 적극적인 것만은 분명했다. 물론 그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자신의 아내를 사랑했던 사람과 만나게 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 연이의 뜻이 그렇고, 자신도 그 점에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차라리 모르는 체 눈감고 있는 편이 훨씬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행동이 점차 노골화 될수록 나는 그 어떤 의도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처용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지금껏 그가 내게 말한 내용과 내가 알고 있는 처용에 관한 지식을 모두 동원해봤지만 그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아니면 그들 부부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것 역시 아직 연이를 만나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아무튼 연이도 그녀의 남편도 석연치 않는 구석이 너무 많았고, 나는 그저 포로병처럼 그가 하자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갑갑하고 어색한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경주로 다시 와서 간단한 점심을 들고 울산으로 향했다. 그는 여전히 차를 천천히 몰았고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분명 그 어떤 결정적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고, 나 역시 그 갑갑한 시간을 이겨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차가 토함산 고갯길을 벗어나자 그 어색한 분위기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아까 흥덕왕의 수절과 처용 이야기의 성적 자유는 다른 문제라고 했는데...난 아무래도 두 설화의 연관성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사랑이죠. 순도 백 퍼센트의 사랑 말입니다. ”
“순도 백 퍼센트?”
“수절이니, 불륜이니 하는 수식을 빼버리면 그냥 사랑입니다. 우리 인간의 역사에 사랑만큼 관념의 장식을 많이 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관념의 장식들이 사랑을 왜곡하고 오염시켜왔습니다. 사랑이란 관념 이전의 느낌이 아닙니까. 아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꽃 찾기 놀이’처럼 말입니다. 저는 그런 장식이 없는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하기사 감정을 말한다면 시인이나 소설가만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까. 하지만 그의 말대로라면 나는 분명 감정보다 관념의 찌꺼기로 오염된 사람이었다. 어쩌면 연이의 편지나 그의 말은 그러한 나의 판단을 재촉하는 것인지 몰랐다.
“그렇고 보니 처용이란 인물이 꽤 매력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나는 그의 말에 고무되어 처용과 닮은 그의 인상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만 너무 속내를 보이는 것 같아서 말길을 우회했다.
“ 처용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한 외간 사내를 동해의 용왕이니, 역신(疫神)이니 하면서 실재 인물이 아닌 허구적 인물로만 파악하려는 시각은 문제가 있습니다.”
“처용이 아내의 불륜을 보고 한가하게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사실로 인정하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나의 뻔한 질문은 그의 견해에 반발이 아니라 오히려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에스키모 사람들은 귀한 손님이 오면 자신의 아내와 잠자리를 권합니다. 처용 시대는 모계 사회의 도덕관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모계사회란 성의 완전한 자유를 의미하지 않습니까. 물론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그러한 풍경에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겠지요. 그래서 처용은 합리적 방법으로 그 남자와 아내를 설득하게 됩니다. 그것이 처용가입니다. 처용가가 당시 세인들에게 유행이 된 것은 바로, 빼앗긴 사랑을 멋있게 되찾는 그 재치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었다고 할까요. 사랑의 쟁탈전은 모계 사회라 해서 예외는 아니었으니까요. 하다 못해 동물의 세계에서도 수컷들이 하는 일이라곤 암컷에게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바로 살아 숨쉬는 모든 생물체의 본능에 해당하는 것이고 관념 이전의 순수의 사랑이죠. 어떻게 보면 가장 고등동물인 인간에게 있어서 성 부분만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고상한 말로 치장을 했을 뿐이지 법과 관습으로 그 성적 자유를 구속해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움에 반하는 것입니다. 먹는 것을 한두 가지로 국한시킨다면 인간의 삶은 얼마나 왜소해지겠습니까. 성욕 역시 한 남자와 한 여자만으로 제한하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는 마치 준비된 원고를 읽어가 듯이 술술 풀어냈다. 이제 그의 의도는 분명해졌다. 처용 기행에 나를 초대한 것도, 시간을 보내기 위해 굳이 그 많은 신라의 왕릉 가운데 하필 흥덕왕릉을 간 것도, 그 소나무들처럼 나와 연이의 관계를 맺게 하려는 치밀한 장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그 상황을 노래와 춤으로 이겨내려는 것이리라...
기분이 묘했다. 정말 살아 있는 처용과 같은 차를 타고 그의 아내와 사랑을 나누러 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 같았다. 그 착각은 참으로 황홀했다. 아니 부끄러웠다. 어쩌면 그 부끄러움 때문에 더욱 황홀했는지 모른다. 가슴이 마냥 뛰고 있었다. 나는 버얼겋게 달아오르는 내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사이 차는 감은사지를 지나 동해가 보이는 대왕암 앞바다까지 다다랐다. 동해를 끼고 한 오 분 달렸을까. 그는 바닷가 한 까페 앞에 차를 멈췄다.
“우리 조금 쉬었다 가지요.”
이것이 만약 그가 꾸민 각본이라면 그는 정말 훌륭한 연출자였다. 설사 그것이 그들의 의식이라고 해도 나로서는 이미 헤어날 수 없었다.
“선생님을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한 것 같습니다.”
드디어 그가 내 빈틈을 확인한 것 같았다. 나는 아무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알아서 하시오’였다. 그 결정적 시간에 다다른 이상 더 이상의 위장은 무의미했다.
“저, 청량암이라고 아시죠?”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모든 것은 분명해졌다. 그들은 처용의 의식을 베풀고 있는 것이었다.
“ 연이씨는 지금 거기서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제는 놀랄 일도 부끄러워할 일도 없었다. 다만 그것이 의식이라면 그 절묘에 장치에 기가 막힐 뿐이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내가 뱉을 수 있는 언어는 없었다.
“사실 오늘까지도 저는 많이 고민을 했습니다. 제 아무리 처용에 남다른 이해가 있다고 하나 막상 그 일을 목전에 두고선 여간 망설여지지 않았습니다. 처음 늦게 오시는 선생님을 기다릴 때도 그랬고, 아까 전화 받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역시 잘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희들은 사랑을 확인하고 결혼을 했지만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에 선생님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을 원망할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저는 다만 선생님께서 저나 연이씨의 뜻을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늘의 일은 그러한 저의 충정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저 밑바닥에서부터 끌어 오르는 진한 감동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완전한 처용의 모습이었다. 아니 처용무의 실체를 보고 있었다.
“울산 처용암에서 제 맡은 프로그램도 있고 하니 저는 여기서 일어서겠습니다. ”
그는 정중하게 인사까지 하고는 나갔지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춤의 감동으로 정말 뒤통수를 한 데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가 떠난 뒤에도 그의 감동적인 말은 여전히 내 귓전을 울리고 있었다.
-사랑은 나눈다고 해서 결코 소비되고 마모되는 것이 아니라 나눌수록 커지고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연이씨는 분명 아름다운 꽃이고, 그러기에 선생님의 꽃일 수도, 저의 꽃일 수도 있는 자연의 꽃입니다. 처용의 춤은 바로 그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지요. -
나는 청량암으로 바로 갈 수 없었다. 어두워질 때까지 대왕암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여전히 그 감동 속에 있었다. 처용의 고향인 바다는 사랑이라는 낱말 하나로만 출렁이고 있었다. 그때 보름달이 떠올랐다. 연이의 얼굴이었다.
연이는, 내 귀여운 연이는 서리처럼 푸르른 달빛이 쏴아하니 부는 솔바람과 같이 문창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그 청량암에서, 멀리서 달빛을 밟으며 다가오는 내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달빛과도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을까.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일어나 택시를 잡아타고 청량암으로 달려갔다.
달빛이 너무 좋았다. 청량암 오릿길은 달빛이 아니래도 좋았다. 달빛보다 더 청결한 그녀가 오로지 나를 위해 기다리고 있을 길을 간다는 그 길의 감동을 가능한 연장하고 싶었다. 물론 그것은 내가 감히 꿈꿀 수 없는 그녀와의 사랑 장면이었고, 그것이 현실화되었다는 것이 한동안 믿을 수가 없었다. 사실 감동은 연이 남편이 보여 준 그 너그러움과 친절을 넘어선, 아니 그의 말대로라면 일체의 관념의 찌꺼기가 스며들지 않은 순도 백 퍼센트의 사랑에 대한 경이로움이었다.
그녀와의 마지막 밤, 그때도 지금처럼 낙엽이 떨어져 쌓이는 늦은 가을이었다. 그저 공허만이 가득했던 마지막 밤을 보내고 내려오던 길, 그녀는 끝내 그 공복을 견디지 못했는지 업어 달라고 했다. 그녀는 내 등에서 어린아이처럼 노래를 불렀다. 그게 처용의 노래였을까.
저만큼 청량암의 불빛이 다가왔다. 바람이 등뒤에서 나를 스쳐 앞으로 갔다. 정말 어디선가 춤과 함께 어우러진 처용의 노래 가락이 들리는 것 같다. 그것은 처용의 너그러움과 슬기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찬양의 노래였다. 비록 가락은 소멸되었지만 정신은 춤으로 산화되어 천 년이 넘은 세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아, 아비의 모습이여, 처용아비의 모습이여
머리에 가득 꽂은 꽃이 무거워 기울어진 머리
아, 수명이 장수할 넓으신 이마
산모양 비슷한 긴 눈썹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듯한 너그러운 눈
바람 잔뜩 불어 우글어진 귀
복사꽃같이 붉은 얼굴
...
동경 밝은 달 아래 밤새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내 자리 보니 가랑이가 넷이로구나
아, 둘은 내 것이데 둘은 뉘 것이뇨
이럴 적에 처용아비만 본다면
열병신(大神)이야 횟감이로다
천금을 주랴 처용아비야
칠보를 주랴 처용아비야 (완).
2003년 한국소설
첫댓글 도처에 그린 얼굴 역신을 지켜
귀타귀 어이 해
힘센 귀신에 화해를 청함은 어쩔 수 없이... .
정호완 두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