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31.월.새벽2:11.-6.6.주일. 脊椎(척추)암으로 투병 중이신 정윤희 목사님과 이형기 목사님의 아내 김은순 사모님께 투병에 승리할 ‘중보 신유기도’ 와 ‘헌금’ 을 보내 주십시오.(제 7일, 5차 편지, 23P)
배종부 농협 3560393-047263
아름다우신 ‘섬김과 나눔’ 의 마음으로,
목숨을 걸고 처절하게 항암 투병하는
우리의 사랑하는 동역자 정윤희 목사님과
이형기 목사님의 아내 김은순 사모님의
척추암 투병에 승리할
‘중보 신유기도’ 와
‘병원비’ 를 사랑과 정성을 다 한 헌금으로 모아,
보내 주십시오.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수는 강물에 새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가장 소중한 사랑하는 동역자 정윤희 목사님과
이형기 목사님은 평생을 동역하며 함께 갈 주의 종 목사님 들이십니다.
이 소중한 분들에게 사랑과 은혜와 정성을 베푸는 일은 가장 큰 영적 투자입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일들은 세월 속에 다 잊혀져 가도,
정윤희 목사님, 이형기 목사님의 가슴 속에는 영원히 살아 있으며,
이것이 우리가 주님 앞에 내놓을 가장 소중한 상급이 될 것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어느 누구시든지
성령의 감동을 따라 함께 투병에 승리할
‘중보 신유기도’와 ‘정성의 헌금’ 을 보내 주십시오.
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일을 주도하는 저 배종부 목사가 할 일은
숨은 하나님의 사람의 중보 神癒(신유)기도와
어딘가에 숨은 하나님의 獻金(헌금)을 찾아 내는
청지기의 사명입니다.
나머지 일을 성령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저는 단지 그 길을 여는 것 뿐입니다.
병원비 헌금을 보내 주신 분들:
1>.반0 진 10만
2>.사랑제일교회 김0 경 목사 10만
3>.이0 미 집사 10만
4>.한0 일 목사 30만
5>.새맘교회 안0 옥 목사 77,616
6>.기0 서 목사 20만
7>.김0 길 목사 10만 97만
8>.고0 희 사모 20만(1차)
9>.주신교회 한0 인 목사 100만
10>.박0 목사 15만
11>.양0 아 집사 10만
12>.오0 정 목사 10만
13>.권0 천 목사 20만
14>.이0 희 집사 5만
15>.하0 운 전도사 5만
16>.김0 환 선교사 10만 195만
17>.장0 희 30만
18>.백0 규 목사 10만
19>.전0 재 멕시코 선교사 50만
20>.위0 임 집사 20만
21>.고0 희 사모 10만(2차)
22>.장0 현 10만
23>.배0 부 목사 100만 230만
4일 간 병원비 헌금 소계 5,227,616 원
♥ 제70차 기념 성령 컨퍼런스(conference) 안내 ♥
2021.6.7.월.오후2시-9.수.오후1시(2박 3일)
참가 문의:새성교회 (02) 3391-1716,
강한나 부목사 010-2443-1272
장소:01705, 서울특별시 노원구 노원로 26가길(상계동) 25
코롱A 상가 3층, 새성교회당
*네비: ‘새성교회’
참가비:5만원
(성령의군대 배종부 농협 3560393-047263)
강사:배종부 지도목사
♥ ‘殉命의사람’, ‘성령님의侍從’ 배종부 목사 ♥
“悔心의 말씀과 성령 역사의 현장!”
010-2940-1717
*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서울 새성교회 담임목사
*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M.Div)
* 미국 Trinity Theological College and Seminary 선교학박사 과정 수료
* <성령의군대> 지도목사
* <성령사관학교> 교장
*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부흥단 부단장, 서울부흥단 단장
* 전국 초교파 부흥성회 강사
* 년 12회 2박 3일 <성령컨퍼런스> 인도
* 매주 월, 화, 수 오후 2시, 저녁 7시 총 6회 새성교회 <기적 기도대성회> 인도
* 매주 목-금, 1박 2일 1,000m 고지 이상 산상기도
* 매주 금 <성령의군대> 전국 지부 순회 <일일 성령컨퍼런스> 인도
* 매주 토 오전 10시 <성령사관학교> 인도
* 년 40여회 <100배 축복 세미나> 및 단회 설교 인도
* 년 40여회 초교파 한국교회 (성령)부흥성회 인도
카페 http://cafe.daum.net/HolySpiritArmy(성령의군대)에
‘殉命의 사람’, ‘성령님의 侍從’ 배종부 목사의 글들이 있습니다.
e-mail:saesung7@hanmail.net으로 목회자료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saesung7/221717849335 네이버 블로그
‘성령의군대’에서 배종부 목사의 각종 자료 들을 검색할 수 있습니다.
*이 3일 간의 성령 대성회는 너무나 좋은 것인데,
사람들이 알지 못하여 오지 못합니다.
오시는 분들은 성령이 깊은 만지심으로 인하여,
그 신앙과 삶이 획기적으로 변합니다.
육적, 육신적인 신자가 아니라,
성령에 기초한 진정한 영적 신앙인으로 거듭 납니다.
성령과 은사에 정통하고, 靈界(영계)를 열 수 있습니다.
성령의 삶과 은사의 맥을 관통해 줍니다.
특히 목사님들과
부흥강사의 길을 걷는 분은 필수 코스로 훈련 받을 기회입니다.
사전 등록자(통보자) 만 참석할 수 있습니다.
<성령 컨퍼런스>에 3일 간 전심으로 성령 훈련을 받을 사람만 들어 올 수 있습니다.
2박 3일 간의 계속되는 일정 도중에, 그만 둘 수 없습니다.
아래는 성령 컨퍼런스(conference)의 기본 성령 주제 강의와 워크숍 목차입니다.
강의안은 성령에 대한 깊고 주옥 같은 말씀들로, 일체 외부로 유출하지 않습니다.
제1일:
1강.월 오후 2:00- 4:00 배종부 목사-성령 서론(聖靈 序論):
2강.월 오후 4:00- 6:00 배종부 목사-신유(神癒):
3강.월 저녁 7:00- 8:00 특강 김인수 목사
4강.월 저녁 8:00-10:00 배종부 목사-예언(豫言):
제2일:
5강.화 오전 9:00-11:00 배종부 목사-영분별(靈分別):
6강.화 오전 11:00-13:00 배종부 목사-축사(逐邪):
7강.화 오후 2:00- 4:00 배종부 목사-영안(靈眼):
8강.화 오후 4:00- 6:00 배종부 목사-방언과 방언 통역(方言 通譯):
9강.화 저녁 7:00- 8:00 특강 방성용 지도목사
10강.화 저녁 8:00-10:00 배종부 목사-성령의 기름 부음:
제3일:
11강.수 오전 9:00-10:00 특강 배종부 목사
12강.수 오전 10:00-12:00 배종부 목사-생수(生水)의 강(江):
13강.수 오후 12:00-13:00 배종부 목사-100배 축복(祝福)의 원리:
시작하는 날 월 오후 1시 30분 - 2시까지,
서울 지하철 4호선 노원역 1번 출구에서,
3447 흰색 승용 차량으로 픽업합니다.
2시 이후에는 택시를 이용하여 코롱A로 오시거나,
1132번, 1154번 버스를 타시고,
두 정거장 지나 ‘상계중학교’ 에서 내리셔서 길을 건너 오시면,
코롱A 상가 3층에 새성교회가 보입니다.
차량 담당자 이사라 권사에게
필히 전화하세요.
010-4209-5869
차량을 갖고 오시는 분은 반드시 코롱A 지하 2층에 주차하시고,
'새성교회' 라고 메모하셔서, 차 안에 보이게 두셔야 합니다.
다른 장소는 스티커를 부착합니다.
宿食(숙식)은 ‘건영 스파벨리’ 사우나 티켓을 매일 개인당 드리며,
화, 수 아침은 禁食(금식)입니다.
새성교회당에서 여자 분들은 숙박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방역 문제로, 이번에 한하여 새성교회당(여)과 호텔(남, 5-7만, 개인 부담, 노원 ‘딘’ 호텔, ‘창동 프라자’ 호텔 추천)에 각각 주무셔야 합니다.
뜨거운 찬양,
불 붙는 기도,
명쾌하고 폭발적인 성령과 悔心(회심)의 말씀 강의,
3일 간의 지속적인 성령에의 젖음,
은사와 능력의 폭발,
눈물의 통회,
생수의 강,
영적 새출발의 결단이 일어납니다.
성령 받고,
은혜 받은 종들 개개인에게,
각자 영권, 인권, 물권의 100배 축복이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 제70차 <성령 컨퍼런스> 개회에 즈음하여... ♥
여기 <성령의군대>가 ‘제70차 성령 컨퍼런스’ 로 대행진합니다.
성령을 받으십시다.
은사를 훈련하십시다.
능력을 받으십시다.
성령으로 떨치고 일어 서서 새출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 하십시다.
3일 간의 성령의 대축제가 여러분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이 힘든 위기의 시간들을 승리로 장식케 해 드릴 것입니다.
뜨거운 痛悔(통회)의 눈물이 살아 나고, 강력한 祈禱(기도)가 회복되고, 恩賜(은사)가 터지고, 성령의 能力(능력)을 받게 될 것입니다.
놀라운 성령의 영권, 인권, 물권이 회복되어, 이 고통의 시간들을 승리로 장식케 될 것입니다. 능히 성령의 비전으로, 앞으로 달려 갈 영적 底力(저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다 같이 오셔서 함께 성령 받고, 은사 받고, 능력 받아, 능히 떨치고 이기고 승리하십시다.
환영합 니다. 어서 오십시오.
<성령의군대> 지도목사
서울 새성교회 담임목사
배종부 드림
♥ <성령 컨퍼런스>의 10가지 이상의 선물 ♥
<성령 컨퍼런스>에 오시면, 아래 10가지 이상의 선물이 주어집니다.
1.靈界(영계)를 돌파하는 성령 신앙의 마지막 봉우리가 점령됩니다.
2.성령 신앙과 은사와 능력의 세계 전반이 체계적으로 정리됩니다.
3.강한 영권이 주어져, 말씀과 기도의 권능이 강력해집니다.
4.幻想(환상)과 靈眼(영안), 각종 恩賜(은사)가 열립니다.
5.삶과 재정의 ‘100배 축복권’ 이 주어집니다.
6.성령 동행의 삶으로, 죄가 끊어지고, 인격이 변화됩니다.
7.영 혼 육이 그야말로 충만하게 행복해집니다.
8.말로만 듣던 ‘기적’ 과 ‘능력’ 이 실제로 기도 응답으로 주어집니다.
9.그냥 성령의 임재가 느껴지고, 내 몸으로 성령의 기름 부음을 체험합니다.
10.심령의 뿌리까지 깨어지는 폭발적인 ‘悔心(회심)의말씀’ 과 강의를 통해, 자기를 부인하게 되고, 진정한 성령의 사람이 됩니다.
♥ 2021년 <성령의군대> 정기집회 안내 ♥
담임 배종부 목 사 010-2940-1717
안내 강한나 부목사 010-2443-1272
사무 이사라 권 사 010-4209-5869
1.매주 월, 화, 수 오후 2시, 저녁 7시 <연합 기적 기도대성회> 6회
*연중 중단 없이 언제나 상시적으로 개회
주소:서울 노원구 노원로 26가길 25, 코롱A 상가, 새성교회
매주 고정강사 새성교회 배종부 목사 3회 설교
매주 3명의 장로교 통합 <총회부흥단>, <서울부흥단>, <성령의군대> 지부장 중심 부흥강사 교대 집회 인도
2.매월 첫 주 월, 화, 수 <성령 컨퍼런스>
새성교회당,
2박 3일 숙식하며 연속 진행,
월 오후 2시 개회, 수 오후 1시 폐회
3.목요 산상기도교회
매주 배종부 지도목사 개인 전국 1,000m 고지 이상 순회 <산상기도교회> 운영
월 1회, 제 3주 목 오전 10시 <연합산상기도교회> 운영
4.토요 <성령사관학교>
새성교회당
매주 토 오전 10:00-오후 4:00
상시 입학 가능
♥ ‘殉命의사람’ 배종부 목사 13대 특별기도 ♥
사전 예약하는 분에 한하여,
1>.축복기도, 2>.신유(神癒)기도, 3>.예언기도, 4>.영분별기도, 5>.축사(逐邪)기도, 6>.방언통역기도, 7>.영적무장기도, 8>.십자가확인기도, 9>.문제해결기도, 10>.은사전이(轉移)기도, 11>.사명기도. 12>.사랑하는 사람의 중보기도 13).내적치유 기도 등등...
모든 삶의 전반적인 문제를 두고, 충분히 개인기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 ‘殉命의 사람’, ‘성령님의 侍從’ , ‘하늘 國務總理’, ‘골방의 先知者’ 배종부 목사 2021년 부흥성회, 성령사역 일정 ♥
1.2,9,16,23,30.토 성령의군대 제3기 ‘성령사관학교’ 성령의군대 4일
1.1.-17.코로나 감염 폐쇄 지부 3교회 선교 모금, 총 47명 총액 567만, 189만씩 3교회
1.3.주일 오전 11시 2021 신년성찬예배
1.4.월-6.수 <성령의군대> 제 65차 ‘성령 컨퍼런스’ 2박 3일
1.7,14,21,28.목. 산상기도 4일
1.11.월-13.수 제8차 연합 기적 기도대성회 강사 6분 6회
1.18.월-20.수 제9차 연합 기적 기도대성회 강사 6분 6회
1.25.월-27.수 제10차 연합 기적 기도대성회 강사 6분 6회
1.24.주일-28.목(5일 간) 이평강 대학 입학금 모금 총 34분 총계 6,079,500원
2.1.월-3.수 <성령의군대> 제 66차 <성령 컨퍼런스> 2박 3일
2.3.수.박00 목사 녀 박성은, 박0 목사 자 박승민 장학선교비 총액 2,366,000 모금
2.4,11,18,25.목. 산상기도 4일
2.6,20,27.토 <성령의군대> 제3기 <성령사관학교> 3일
2.15.10시 특별예배 <성령의군대> 장군 20명 모임
2.15.월-17.수 제11차 연합 <기적 기도대성회> 강사 6분 6회
2.21.주일-24.수 충남 홍성 내포영락교회 최재용 목사 부흥성회 7회
3.1.월-3.수 <성령의군대> 제 67차 <성령 컨퍼런스> 2박 3일
3.6,13,20,27.토 <성령의군대> 제3기 <성령사관학교> 4일
3.4,11,18,25.목 산상기도 4일
3.8.월 아침 7시 총회서울부흥전도단 운영위원회 새성교회 모임
3.8.월-10.수 제12차 연합 <기적 기도대성회> 강사 6분 6회
3.14.주일 전북 완주 서두교회 문영복 목사 일일 성령부흥성회 2회
3.15.월-17.수 제13차 연합 <기적 기도대성회> 강사 6분 6회
3.22.월 아침 7시 총회서울부흥전도단 실행위원회 하남 덕풍성광교회 설교 1회
3.22.월-23.수 제14차 연합 <기적 기도대성회> 강사 6분 6회
3.28.주일-31.수 전북 부안흰돌교회 부흥성회 강한나 목사 10회
3.29.월-31.수 제15차 연합 <기적 기도대성회> 강사 6분 6회
3.30.화 서울 강서 치유하는교회 김의식 목사 부흥성회 1회
4.5.월-7.수 <성령의군대> 제 68차 <성령 컨퍼런스> 2박 3일
4.3,10,17,24.토 <성령의군대> 제3기 <성령사관학교> 4일
4.1,8,15,25,29.목. 산상기도 5일
4/12(월) 아침 7:30 제33회기 정기총회 설교 신임단장 배종부 목사 50만 20만, 식사
4.12.월-14.수 제16차 연합 <기적 기도대성회> 강사 6분 6회
배종부 목사 3회, 김인수 목사, 하미영 사모, 박도식 목사
4/19(월) 부흥강사 아카데미 1회 설교 우제돈 목사, 특강 명경근 목사 40만, 식사
4.19.월-21.수 제17차 연합 <기적 기도대성회> 강사 6분 6회
배종부 목사 2회, 박민 목사, 백문숙 사모, 안정옥 목사
4/26(월) 부흥강사 아카데미 2회 설교 정봉기 목사, 특강 박도식 목사 40만, 식사
4.26.월-28.수 제18차 연합 <기적 기도대성회> 강사 6분 6회
배종부 목사 2회, 하재운 전도사, 권재천 목사, 김승규 목사
4/30(금) 상원교회 우제돈 목사님 방문 말씀 받음, 점심 대접, 금일봉 전달 40만, 식사
5.1,8,15,22,29.토 <성령의군대> 제3기 <성령사관학교> 4일
5.3.월-5.수 <성령의군대> 제 69차 <성령 컨퍼런스> 2박 3일
5/3(월)-5(수) <총회서울부흥전도단> 제1회 부흥성회 서울 새성교회 배종부 목사 5회, 강사 5명 100만, 식사 4회
박민 목사, 심재선 목사, 정도출 목사, 이상각 목사, 김성기 목사
5.6.목. 주님의교회 일일부흥성회 김인환 목사
5.6,13,20,27.목. 산상기도 4일
5/10(월).오후2시 2021-1.실행위원회 서울 새성교회 배종부 목사, 설교:전용만 목사, 특강:이형기 목사, 50만, 40만, 식사 새성교회 접대
5.10.월-12.수 제19차 연합 <기적 기도대성회> 강사 6분 6회
5/17(월) 부흥강사 아카데미 제3회 설교 김수읍 목사, 특강 방성용 목사 40만, 식사
장소:용인시 처인구 중부대로 1398, 13-17, ‘풍성한교회’ - 상임총무 백중규 목사 시무
5.17.월-19.수 제20차 연합 <기적 기도대성회> 강사 6분 6회
5/24(월) 부흥강사 아카데미 제4회 설교 문원순 목사, 특강 고형석 목사 40만, 식사
장소:수원시 권선구 세권로 1 상가 2층, ‘하늘소망교회’ (구 주소:세류동 1280)
5.24.월-26.수 제21차 연합 <기적 기도대성회> 강사 6분 6회
5/28(금) 용인 하늘빛교회 김수읍 목사님 방문 말씀 받음, 점심 대접, 금일봉 전달 20만, 식사
5.30.주일 하남 성광교회 기공서 목사 일일부흥성회
6.5,12,19,26.토 <성령의군대> 제3기 <성령사관학교> 4일
6.7.월-9.수 <성령의군대> 제 70차 <성령 컨퍼런스> 2박 3일
6.3,10,17,24.목. 산상기도 4일
6/14(월).오후2시 2021-2.실행위원회 강서 치유하는교회 김의식 목사, 설교:유무한 목사, 특강:백중규 목사, 50만, 40만, 식사
6.14.월-16.수 제22차 연합 <기적 기도대성회> 강사 6분 6회
6.20.주일 오전. 양주 신상장로교회 전위학 목사 제직 세미나
6/21(월)-25(금) 제2회 부흥성회 인천 기쁨의교회 이종선 목사 15회, 강사 15명
백중규, 오세정, 방성용, 박민, 명경근, 이형기, 박도식, 심재선, 전용만, 강승춘, 배동호, 이경희, 한상윤, 임준식, 배종부 목사
*자비량 온라인영상예배임으로, 강사님들에게 강사비를 드리지 않습니다.
6/21(월) 부흥강사 아카데미 5회 설교 장향희 목사, 특강 한상윤 목사, 40만, 식사
6.21.월-23.수 제23차 연합 <기적 기도대성회> 강사 6분 6회
6/25(금) 용인 새은교회 정봉기 목사님 방문 말씀 받음, 점심 대접, 금일봉 전달 20만, 식사
6.27.주일 오후 3시 풍성한교회 백중규 목사 임직식
6/28(월) 부흥강사 아카데미 6회 설교 백일복 목사, 특강 최윤석 목사, 40만, 식사
6.28.월-30.수 제24차 연합 <기적 기도대성회> 강사 6분 6회
7.3,10,17,24,31.토 <성령의군대> 제3기 <성령사관학교> 5일
7.5.월-7.수 <성령의군대> 제 71차 <성령 컨퍼런스> 2박 3일
7.1,8,15,25,29.목. 산상기도 5일
7/12(월).오후2시 2021-3.실행위원회 용인 풍성한교회 백중규 목사, 설교:조남수 목사, 특강:이종선 목사, 50만, 40만, 식사
7/12(월)-14(수) 제3회 부흥성회 용인 풍성한교회 백중규 목사 5회, 강사 5명 100만, 식사 4회
안주훈 목사, 배동호 목사, 강창식 목사, 박순희 목사, 전일록 목사
7.12.월-14.수 제25차 연합 <기적 기도대성회> 강사 6분 6회
7/19(월) 부흥강사 아카데미 7회 설교 양성태 목사, 특강 안영표 목사 40만, 식사
7.19.월-21.수 제26차 연합 <기적 기도대성회> 강사 6분 6회
7/26(월) 부흥강사 아카데미 8회 설교 임준식 목사, 특강 유판규 목사 40만, 식사
7.26.월-28.수 제27차 연합 <기적 기도대성회> 강사 6분 6회
7/30(금) 서울 조은교회 정도출 목사님 방문 말씀 받음, 점심 대접, 금일봉 전달 20만, 식사
오직 聖靈(성령)으로 풀어 가는 신 구약 성경 通讀(통독) 강해
13.에베소서 4: 1- 4절, 성도의 交際(교제)
1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엡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1.성도의 교제 원칙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함이다.
3가지 인간 관계
근세 유명한 철학자인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라는 책에서 현대인의 인간관계를 세 가지로 진단했습니다.
하나는 '그것과 그것의 관계'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마치 물건처럼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고, 차 버립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점차 생명이 없는 무인격의 관계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이 위대한 유대인 철학자 부버는 또 하나의 관계로 '나와 그것의 관계'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물건처럼 이용해도, 나는 상대방을 끝까지 인격으로 대할 때, 그 때 '나와 그것의 관계'가 성립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관계는 '나와 너의 관계'로 발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너를 인격으로, 그리고 당신도 나를 인격으로 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끝나면 부버는 그렇게 위대하지 않습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당신을 인격으로 믿어 주고, 당신이 나를 인격으로 믿어 주어도, 우리들 사이에는 언제나 그 인격적인 관계가 깨질 수 있는 긴장이 있다. 이것이 인간성의 연약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너 사이에는 언제나 이 인간 관계를 중매하는 하나의 촉매자가 필요하다."
부버는 그 촉매자를 '영원자 너'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영원한 너'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인간과 인간으로 부딪칠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서 얼마나 많은 단점을 발견합니까?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바라 본 내 아내, 또 그리스도를 통해서 바라 본 내 남편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함께 만날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무릎을 꿇을 때에, 비로소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놀라운 관계가 가능할 수 있습니다.
신자의 본분 의식과 사명 의식이 투철해야 가능
1>.신자 답게 행함:성도 답게, 구별 되게, 자격, 신분, 위치에 맞게 일하라.
2>.사명을 띈 자 답게 행함:소명 의식을 갖고,
3>.일꾼 답게 행함:믿음과 순종으로, 헌신과 충성으로...
(엡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천천히 굴러 가라.
한쪽 이가 빠져, 불만인 동그라미가 있었다.
그래서 빠진 부분에 맞는 조각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완벽한 모양을 갖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동그라미는 불완전한 모양이었기 때문에, 천천히 굴러 가야 했다.
굴러 가다가 길가에 핀 꽃을 구경하고, 나비와도 얘기를 나누며, 햇살도 즐겼다.
동그라미는 길에서 많은 조각을 만났지만, 딱 맞는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굴러 가다가 마침내 빠진 곳을 완벽하게 메꿔 줄 만한 조각을 찾아 냈다.
동그라미는 너무 너무 기뻤다. 그러나 완벽한 동그라미가 되고 보니, 너무 빨리 굴러 가서 꽃을 볼 수 없었고, 나비와 얘기할 수도 없었다. 당연히 햇살도 즐길 수가 없게 되었다. 인생은 정말 빨리 빨리 사는 것이 아니다. 음미하며, 즐기며, 의미를 찾으며, 하루 하루 살아 가야 한다.
동그라미는 멈춰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는 새로 끼워 넣은 조각을 다시 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굴러 가면서 행복을 즐겼다.
이것이 삶의 교제이다.
서로 버팀목이 되어 주자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 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 볼 뿐 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 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 2:2~4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빌 1:9,11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 하였도다. 빌 4:13-14
미국 캘리포니아 산(産) 삼나무는,
130m까지도 자랄 수 있을 만큼 튼튼한 데 비해, 의외로 얕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는 이유는 삼나무들의 뿌리가 서로 얽혀 강력한 그물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삼나무가 주는 교훈을 가정과 직장과 교회 생활 등에 적용시켜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고민거리로 괴로워 하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사람들은 너나 없이 크고 작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짐이 너무 무거워,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당신이 그 사람의 버팀목이 되어 준다면 얼마나 보람된 일일까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버팀목이 되어 주면서 함께 성장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지체(肢體)들입니다.
"주님! 저희가 주님 안에서 서로 버팀목이 되어 주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주변 사람들의 진실한 친구가 되실 수 있기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된 그리스도인들의 뿌리는 절대로 뽑히지 않습니다.
2.성도의 교제 원칙은 범사에, 누구에게든지, 언제나, 잘 될 때, 높아질 때, 형통할 때, 인정 받을 때, 사랑 받을 때, 진실한 믿음으로 낮아짐의 생활 실천함... 이다.
3.성도의 교제 원칙은 부드러움, 웃음, 外柔內剛(외유내강), 의분, 말씀 덧입음, 기도 훈련 됨, 성품 절제 됨, 지혜 겸비함, 인격의 온화함... 이다.
4.성도의 교제 원칙은 고통 버팀, 시간 인내 요구, 혈기, 스트레스, 분노를 잘 통제, 기도로 풀어 가는 능력, 불행 견딤, 근신함, 절제함, 소망함, 복종의 삶... 이다.
5.성도의 교제 원칙은 이해, 용서, 화해, 관용, 포용, 인내, 수용, 오래 참음, 약점 보완, 사랑을 굳게 함, 친절한 삶... 이다.
조련사를 믿는 동물들의 믿음
텔레비젼을 통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커스를 보면, 그 중에서 한두 번쯤은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장면이 있다.
바로 동물들이 불이 붙어 있는 둥근 고리 속을 뛰어 넘는 모습이다. 대개의 동물은 원래 불을 싫어한다. 털이 긴 동물일수록 거의 본능적으로 불을 두려워 하고 꺼려 한다. 그렇다면 이 서커스의 동물들이 그 본능을 거슬러 가면서, 불이 붙은 고리 속으로 뛰어 들게 하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그 힘은 뛰어 든 후에 이루어지는 보상이나, 혹은 뛰어 들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가혹한 훈련이 아니다.
바로 동물과 조련사 사이에 있는 믿음이라고 한다.
여태껏 조련사가 훈련시키는 대로 해서 목숨이 위험했거나 손해를 당한 적이 없었다는 믿음, 나에게 위험한 일은 시키지 않는다는 그 믿음이 있기 때문에, 동물들은 본능을 거슬러 가면서까지 불 속으로 뛰어 들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엡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6.성도의 교제 원칙은 “하나됨”을 힘써 유지함이다. 평안을 실천하는 자의 자세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어느 심장병 환자의 고백
수술 받기 전 날, 간호사가 나를 찾아 왔다. 간호사는 상냥하게 나의 손을 잡고서 나에게 자기 손을 꽉 잡아 보라고 시켰다. 그리고 말했다.
“내일 수술을 받으시는 동안, 당신의 몸에서 심장이 분리되고, 오직 기계의 도움에 의하여 생명이 유지될 것입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심장은 새롭게 연결되어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합니다.
그 다음 당신은 회복실로 옮겨질 것이고, 그 곳에서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면 의식은 깨어 납니다. 의식이 깨어난 후에도 여섯 시간 동안은 전혀 움직일 수 없습니다.
볼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으며, 심지어는 손 끝 하나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 그때 나는 당신 곁에서 지금과 같이 손을 잡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닥칠지 모르는 모든 위험을 일일히 점검하고 기록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완벽하게 해 줄 것입니다. 그 때 당신은 내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다음 날 내 운명이 결정되는 수술이 진행되었고, 이어서 담당 간호사가 말한 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었다.
그 때 나는 내 손을 붙들고, 나와 함께 하고 있는 간호사의 손길을 확인하면서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안도감과 위로를 얻었고, 아울러 삶에 대한 확신을 지닐 수 있었다.
내 생애에서 가장 어렵고 중요한 순간에, 그녀가 내 손을 붙들고 내 모든 문제 하나 하나 처치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와 함께 하는 그 순간이 내게 얼마나 가치 있고 포근한 것이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아마 상상도 못할 것이다.
성공적인 수술 이후, 나는 그녀에게 청혼했다.
그리고 그녀는 평생의 나의 아내요, 연인이요, 보호자가 되었다.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실 때 우리에게 약속하신 바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성령님은 원문에 의하면 [파라클레토스]라고 하는데, 그 뜻은 [우리 옆에 와 계시는 분]이라고 한다.
아울러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약속하시기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은 나와 떨어져 있는 분이 아니고, 바로 내 곁에 오셔서, 내 손을 꼬옥 붙잡고, 나와 항상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다윗은 그와 같은 믿음이 있었기에, 남 다른 삶을 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어렵고 힘든 역경 중에서도 놀라운 하나님의 위로와 삶의 용기를 받았던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시편 23편)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내 영혼을 소생 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살 때에, 우리는 절망하고 불안해 하며 사는 것이다.
우리는 나의 구주 예수님과 함께, 진정한 교제 가운데 살아 가야 한다.
1>.화평, 화목, 평화를 창조함으로 하나 됨
2>.자기 부인, 남을 생각할 때 하나 됨
3>.노력하며, 성령님께 복종, 순종, 인도 받을 때 하나 됨
목표 하나, 믿음 하나, 가는 길 하나, 마음 하나, 감정 교류 하나, 충성 하나, 일 하나, 기도하나...
4>.공동체에서 마귀 짓 하지 말라.(훼방, 대적, 시기, 질투, 당 짓는 일...)
5>.惡役(악역)을 감당하지 말라.(가룟 유다 - 본인은 불가항력적)
6>.주도권을 잡으려 하지 말라.
언제나 돕는 자, 순종하는 자, 조력자 자처 – 리더자, 지도자, 명령자의 자세 포기
7>.힘들고, 궂은 일은 스스로 하라.
8>.감정이나 혈기를 부리지 말고, 온유하게 인내하고 관용하라.
(엡4:4)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7.성도의 교제 원칙은 소명의 길에 부름 받음의 삶이다.
狀況倫理(상황윤리)
볼그 마이어라는 독일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전쟁 중 러시아 군에게 포로가 되어, 우크라이나의 포로 수용소에 수용되었습니다. 그녀의 남편 또한 연합군의 포로가 되어 웨일즈 수용소에 갇혀 있었는데, 그는 특사를 받아 베를린의 자기 고향으로 돌아 갔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흩어진 가족을 모으기 위해 사방으로 연락을 취하여, 간신히 세 자녀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남편과 세 자녀는 가정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러시아의 포로 수용소에 갇혀 있던 마이어 여사는 남편과 세 아기가 베를린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도 이 포로 수용소에서 어떻게 해서든 나가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포로 수용소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임신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임신한 여자는 석방한다'는 규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이어 역사는 고민하다가 자기에게 늘 친절히 대해 주던 간수에게 자신이 임신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임신하게 된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녀의 온 가족들이 함께 모여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그녀는 아이를 낳았습니다. 온 가족들이 이 아이를 사랑하였습니다. 그 아이로 인해 가족이 모두 다시 모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 여인의 태도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것이 바로 상환윤리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가르침은 상황윤리를 반대합니다. 이러한 상황윤리 이론에는 네 가지의 맹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상황윤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상황윤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혼동합니다.
세째로 상황윤리는 상황 만을 중시할 뿐,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간과합니다.
네째로, 상황윤리는 절대적인 도덕 기준을 폐기합니다. 상황윤리의 반대가 규범윤리입니다. 성경의 진리는 규범윤리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만일 마이어 여사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면, 어떻게 행동하겠습니까?
상황윤리의 현실 앞에서 당신의 행동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交際(교제,32P)
개와 천국
어떤 청년이 천국을 향해 올라 가고 있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며, 먼 길을 걸어 가고 있는데, 개 한 마리가 그를 따라 왔다. 그들은 험한 길에 좋은 길동무가 되었고, 수 많은 고비를 넘기며 마침내 천국의 문 앞에 도착했다.
천국의 문지기가 말했다.
"자네만 들어 오게. 천국에 개가 들어 올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러자 젊은이는 격분하여 말했다.
"안됩니다. 이 개는 험한 나그네 길에 충직한 나의 길동무였습니다. 만일 이 개를 못 들어 가게 한다면, 비록 천국이라 할지라도 난 들어 가지 않으렵니다."
바로 그 순간, 천국의 문과 문지기는 사라지고, 그는 개와 함께 천국 안에 들어 와 있었다. 그 개는 젊은이 앞으로 오더니, 진리의 천사로 변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리사 베크만 박사 팀은 7천명을 대상으로 9년 간 조사한 끝에 비사교적인 사람이 사교적인 사람의 사망률 보다 5배나 높다는 것을 알아 냈다.
시라큐스 대학에서도 성인 400명을 대상으로 건강 상태와 사교성의 관계를 연구했다. 그 결과 사교적인 사람이 비사교적인 사람 보다 훨씬 건강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강 감리교 대학의 클라크 박사는 “의기 소침해 질 때 어떻게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가?”라는 설문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응답자의 82%가 사교적인 일을 함으로써, 원기를 회복한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임을 주장했고, 키케로는 한 걸음 더 나아 가 “인간은 사교적 동물”이라고 강조했다.
공존의 의미 – 호랑이 보다 무서운 것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주에서 과테말라와 유카탄 반도 전역, 온두라스 일대에 퍼진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고대에 형성시켰던 찬란한 문명을 우리는 마야 문명이라고 한다.
현대인들의 안목을 가지고 보아도 경탄할 수 밖에 없는 이 고대의 문명은 A.D 850-950년 경에 별다른 이유 없이 갑자기 소멸해 버리고 말았다. 따라서 후세 사가들은 마야 문명을 대하면서 신비스러운 의혹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
외적인 침입을 받은 흔적도 없고, 자기들끼리 싸운 흔적도 없이 일시에 사람들이 증발해 버림으로 끝나 버린 마야 문명의 신비는 도대체 무엇일까?
역사학자들 중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고대 마야 문명의 소멸 원인을 규명하고자 연구하는 사람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빙성이 있는 연구로 이런 것이 있다.
마야 문명은 지도 계층의 각종 수탈에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그 도시로부터 하나 둘씩, 또는 집단으로 도망을 하므로써, 소멸했다는 학설이다.
즉, 무거운 세금, 각양각색의 추징금, 그리고 군인과 마야 신의 횡포, 이런 것들에 피를 빨린 어진 백성들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자기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무조건 달아 나 버렸다는 것이다.
즉 마야 문명의 멸망의 원인은 그들을 이끈 폭정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호랑이가 무서워, 자기의 삶의 터전을 버리지는 않는다.
관계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는 수 없는 인간관계, 사업관계 등 바쁜 일생을 보내면서도, 주님과의 관계가 없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람은 성경에 나타난 부자처럼 세상 관계가 끝날 때,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나사로는 세상에서 아무런 인간 관계가 없었고, 개들이 친구였으나, 그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
주님과 관계가 없는 인생은 일생을 속으면서 사는 것이다.
솔로몬은 많은 친구와 1000명의 여인들과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인생을 다 살고 난 후에 그가 남긴 한 마디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삶의 성패가 좌우되니,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강도도, 세리 삭개오도, 일곱 귀신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도 결국 주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졌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존경을 받았으나, 주님과의 관계에서 그들은 바른 관계를 갖지 못했다.
결국 주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한 인생들은 세상이 다 알아 준다 하여도 주님이 모른다 할 인생이므로, 가장 불쌍한 사람 들이다.
성령을 받으면 삶이 변해진다. 평화의 사람으로 변하고 점점 순결해진다. 삶의 변화가 없는 성도는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는 성도이다. 주님의 백성이 된 자의 특성은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주님의 이름으로 세상에서 영광을 받는 것이 자녀의 특권인 줄 알지만, 속지 말아야 한다. 주님의 자녀의 특권은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을 때, 기뻐하라고 하셨다.
성도는 사치와 안일을 사랑하면, 주님을 알 수 없다. 주님은 이 땅에서 고난의 삶을 사셨기 때문에, 안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사명을 버리고 살아 온 사람이다. 가난한 사람이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불쌍한 사람이다. 자신을 위해 안일의 성을 쌓아 놓고 사는 인생은 아무리 배워도 주님을 바로 알 수 없다.
주님이 우리에게 종이 되라, 발을 씻어 주라, 섬기라, 고난을 받으라... 하신 것은 바로 그러한 자리에서 주님은 인생을 만나시겠다는 만남의 자리를 보여 주시는 것이다.
성경에 주님이 칭찬한 자리는 섬김의 자리요, 주님의 영광을 약속한 자리도 고난의 자리였다. 주님의 칭찬을 받기를 원하거든, 섬김을 귀히 여기라. 성경에는 단 한 번도 안일과 사치를 주님의 영광과 연관시킨 적이 없다.
뉴욕의 성 바돌로매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허름한 노인이 주일 예배 시간에 나왔는데, 모자를 쓴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여자는 모자를 써도 좋으나, 남자는 성전에서 모자를 벗는 것이 이 교회의 전통이었다. 안내위원이 조용히 곁에 가서 모자를 벗도록 귀띔하였다. 그러나 노인은 거절했다. 마침 남선교회 회장이 이 광경을 보고 노인에게 충고하였다. 그래도 노인은 모자 벗기를 거부하였다. 이미 예배가 시작되어 싸울 수도 없었다. 나중에 보니 노인은 스스로 모자를 벗고 있었다. 예배가 끝나자 안내위원이 물었다.
“아까는 왜 모자를 안벗겠다고 고집을 부리셨습니까?”
노인이 말했다.
“이 교회는 크고 조직도 잘 갖춘 것 같소이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관심이 적어요. 특히 나같은 평범한 노인에겐 접근도 하지 않는단 말이요. 내가 이 교회에 나와서 예배 드리는 것이 반년이나 되었는데, 나에게 개인적으로 말을 걸어 온 것은 오늘이 처음이라오. 이 교회를 찾는 사람은 우선 모자를 쓰고 앉아 있는 것이 비결인 것 같소.”
프랑스의 여류화가 마리 로랑생이 쓴 ‘여자의 마음’이라는 시다.
지루한 여자 보다 가련한 것은 슬픈 여자다.
슬픈 여자보다 가련한 것은 불행한 여자다.
불행한 여자보다 가련한 것은 버림 받은 여자다.
버림 받은 여자보다 가련한 것은 쫓겨 난 여자다.
쫓겨 난 여자보다 가련한 것은 죽은 여자다.
죽은 여자보다 가련한 것은 잊혀진 여자다.”
나의 표정이나 행동이 아무에게도 관심을 끌지 못할 정도의 것이라면, 그리고 다시 상기될 수 없을 정도의 것이면, 결국 ‘죽은 사람보다 가련한 존재’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 만큼 사람에게는 타인의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다.
광천狂泉 이야기
옛날 샘(泉)이 하나 밖에 없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 사람들은 광천(狂泉)이라 불리는 그 샘물을 마시고 미치지 않은 자가 없었다. 부자유친(父子有親)이며 장유유서며 남녀유별 따위는 없어지고, 탐나면 빼앗고, 기가 동하면 능욕하고, 화나면 불 지르고, 멋대로 안 되면 살상을 자행하였다.
오로지 임금 만이 샘을 파 마셨기로 혼자 만이 미치지 않고 무사할 수 있었다. 나라 안 모두가 날뛰고 있기에 오히려 미치지 않은 임금을 미친 사람으로 보고 임금님을 잡아 그 미친 병을 고친다 하여 뜸질 찜질을 하고, 귀신 쫓는다 하여 거꾸로 매달아 패고 살점을 저미었다. 임금은 고통을 참지 못해 광천물을 먹고 미쳐 버린다.
송나라 학자 원찬(袁粲)의 <묘덕 선생전(妙德先生傳>에 나오는 이야기로, 최소한도의 도덕적 거리를 유지시키는 고리 빠진 난세를 빗대고 있다.
<자살론>으로 유명한 뒤르켕은 욕망 투성이의 인간 행위를 규제하고 억제시키는 공통의 가치 및 도덕 기준을 상실한 혼란 상태를 '아노미 현상'이라 했다. 광천 현상은 바로 아노미 현상인 것이다.
소녀를 납치해다 매음을 시키고, 소년을 납치해다 병신을 만들어 구걸 시켜 잇속을 챙기는 것은 약과인지 모른다.
너덧 살 먹은 것을 곡예를 시키고자 가두어 사육하고, 고아 소녀를 양녀로 집에 살게 하고는 수욕(獸慾)을 충족시키기도 한다.
광천 물을 먹지 않고는 그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허술한 농촌 일꾼이라 하여 소외 당한 데 대한 역심리(逆心理)는 이해가 가지만, 살다 보면 허다한 그 만한 소외감을 삭이지 못하고 카바레에 화염병을 던져 불특정 대량 살인으로 보복한 것이며, 아무 것도 갖지 않고 혼자 태어나 아무 것도 갖지 않고 혼자 죽는 것이 인생인데, 혼자 죽는 것이 뭣이 그렇게 억울한지 눈 감고 1 백20 킬로미터 속도로 아이들 놀고 있는 광장을 달려 불특정 대량 살인으로 앙갚음을 했을까?
뒤르켕은 아노미 사회 현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상부 상조하고 기쁨과 근심을 서로 나누는 지역 공동 사회의 해체, 자신의 행동이 연대 연계되는 대가족 제도의 해체, 고독하거나 소외되었을 때 의지하게 마련인 종교적 기둥의 상실, 그리고 도시화, 기계화, 핵 가족화 등 근대화 과정이 빚어낸 자기 중심적인 자아(自我)의 비대를 든다. 자기 중심적인 욕망으로 머리통만 크고 이 욕망을 자제하는 도덕적 가슴은 새 가슴 만큼 작은데, 본능 추구와 생식기만 크게 달려있는 기형의 인간들이 광천 물 먹고 난무하는 요즈음은 말세다 말세...
교회의 지체들
내가 집에 갔을 때, 아내가 "여보, 당신 오른쪽 다리를 어디에 두고 오셨어요?" 라고 물으면, "아, 그것 잃어 버렸어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의 지체들을 얼마나 자주 잃어 버리는지요?
어느 날 아내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예배 시간 마다 항상 저쪽 벽에 앉아 있던 자매님을 기억하세요? 한쪽 눈이 잘 안보이는 자매님 말이에요."
"아, 기억나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보이지 않던데, 우리는 그녀를 잃어 버리고 말았군요."
우리는 교회 지체들을 얼마나 쉽게 잃어 버리는지요?
우리는 받아 들이기도 많이 하지만, 내쫓는 일도 쉽게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지체를 잃어 버렸는지 심각하게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마디와 힘줄에 의해 한 지체는 다른 지체를 지탱해 줍니다. 이처럼 모든 마디가 서로 잘 연결될 때 몸은 지탱될 수 있습니다. 힘의 근원은 마디에 있습니다. 마디는 지체와 지체 사이의 관계를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관계의 수준을 높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진실한 관계를 맺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구원의 인물(구제)
1971년 파리에서 설립된 MSF는 정치, 종교, 국적을 초월한 일곱 명의 의사나 간호원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80% 이상이 여성들인 이들은 사상 최악의 기근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에서 의술을 베풀고 있다. 전쟁과 재난에 시달려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마다 구원의 인술을 베푸는 것이다.
그 중 한 프랑스인 여의사는 "우리들에겐 국경이 없고,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곳만 골라서 간다" 라고 했다. 그리고 영국인 간호원은 "배 고픔 때문에 혼수 상태가 된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온다. 그들에게 포도당을 주면 조금씩 깨어 난다. 마치 시든 꽃이 피어 나는 것 같다."고 말한다.
救濟(구제)
1. 히브리어
나탄 - 배당하다, 부여하다, 맡기다.
베라카 - 축복, (함축적으로) 번성, 축복, 관대한, 연못, 선물.
2. 헬라어
디도미 - 주다, 모험하다, 발생하다, 위탁하다, 제공하다.
1. 구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신15:10 - 아끼는 마음이 없어야 함
잠3:27 - 아끼지 아니하고,
마6:1-4 - 은밀히 하고, 외식으로 하지 말아야 함
마25:40 - 예수님께 한다는 정신으로
행4:32-35 - 공정하게 해야 함
롬12:8 - 성실함으로
몬1:14 - 자의로 하는 것
2. 구제해야 할 이유
(1) 성경은 구제를 명령하기 때문에
신15:7-8 - 가난한 형제가 거하거든, 네 마음을 강팍케 말며,
눅3:11 -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 있는 자도 그리하라.
눅11:41 - 오직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엡4:28 -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딤전6:18 - 선한 일을 행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고,
히13:16 -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2) 구제하지 않으면 형통치 못하기 때문
신15:9 – 아무 것도 주지 아니하면... 네가 죄를 얻을 것이라.
잠21:13 - 가난한 자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 들을 자 없다.
잠28:27 - 가난한 자를 못 본 체 하면 저주가 많다.
마25:42-46, 겔18:12-17
(3) 구제하는 자의 결과
잠11:24 - 구제하는 자가 부해짐
잠22:9 - 범사에 복을 받음
단4:27 – 평안해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
거듭난 그리스도인 들까지도 가끔 영적인 문제에 관해서 강력한 견해의 차이를 표명할 때가 있다. 그러나 주 예수 안에서 신자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놀라운 통일성 때문에 그들의 견해 차이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 되어 버린다. 벅스톤은 이 복된 진리를 예증해 주는 이야기 하나를 들고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미국 남북 전쟁 당시 두 적군이 퍼터맥 강을 사이에 두고 양쪽 강기슭에 진을 치고 있었다고 한다.
북부 군악대가 민요를 연주할 때마다 남부 음악가들도 남부인들의 마음에 드는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한 번은 한쪽 군악대가 "즐거운 나의 집"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즉시 경쟁은 그치고 양군 음악가들이 하나가 되었다. 곧 양쪽 강기슭에서,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라" 하고 울려 퍼지는 양군의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벅스톤은 이런 말로 그 이야기를 끝맺었다.
"이처럼 우리 순례자의 무리는 하나의 강한 고리에 서로 묶여, 우리의 고향을 향해 가고 있다."
그렇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은 꼭 같은 "집"을 가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한 가족의 구성원 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한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될 것이다.
나는 신중하고 근면한 성경공부의 중요성과 건전한 교리를 강조할 필요성을 경시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제시하는 진리를 알아야 하고, 또 그 입장에 서야 한다. 그러나 신자들 간에 가끔 논쟁으로 야기되는 증오심은, 우리가 "즐거운 나의 집"과 천국의 고귀한 가족으로 함께 나눌 교제를 명상한다면, 사랑으로 바뀌어지게 될 것이다.
이 매는 줄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태풍이 영국 전역을 강타했을 때의 일이다.
런던 근교의 한 숲에서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몇 몇의 나무가 아니라 숲에 있는 모든 나무가 뿌리채 뽑혀 땅바닥에 넘어졌기 때문이다. 이를 조사한 과학자들은 놀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태풍이 불면 숲에 피해가 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이 같은 일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조사팀을 구성하여 그 원인을 규명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얼마 후 조사팀은 그 나무들을 심을 때 누군가가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나무를 심을 때 간격을 너무 띄워 나무들끼리 뿌리가 서로 얽힐 수 없게 만들어 나무들이 각각 따로 따로 서 있었다. 그래서 강풍이 불자, 모두 넘어졌던 것이다.
☞ 그리스도 안의 형제 자매들과의 긴밀한 교제 가운데 있지 않고, 홀로 있으려 하는 사람은 언젠가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관심과 보살핌이 없이 혼자 살아 가도록 계획하신 적이 없다. 실제로 성경은 우리를 한 몸으로 비유하고 있다.
기러기의 生態(생태)
기러기 생태를 읽고는 깊은 감명과 인간으로서의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기러기가 떼를 지어 날아 가는데, 그러면 혼자 날 때보다 70%나 더 오래 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 기러기가 V 형을 만들어 나는가?
그렇게 하면 공기대( Swath of air)가 형성 되어 뒤에 있는 기러기들이 날기 쉽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을 나는 기러기가 더 빨리 피곤해 집니다. 그래서 기러기 들은 가끔 자리를 바꾸어 날아 감으로써, 서로 피로를 덜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러기 들은 여행을 하면서 왜 울까요?
우리가 부르는 노래처럼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9만리..."가 아니라 동료들에게 자기 위치를 알려 안심시키며, 함께 여행하는 동료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정말 훌륭한 것은 병이나 부상으로 낙오자가 생길 때, 두 세 마리가 함께 머물러 다친 기러기가 다시 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준다는 것입니다.
기러기는 함께 날 줄 안다는 것입니다.
나누는 자가 되라
인도의 유명한 신비주의적인 기독교 성자 가운데 선다 씽이란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의 기독교 신앙의 교리 가운데는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삶과 인격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그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네팔 전도에 나섰을 때, 자기 친구 한 사람과 같이 그 산을 넘어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서 길가에 추위에 떨고 있는 행인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혹독한 추위라 자기들도 생명의 위기를 느낌으로 지나 가는 행인을 거들떠 볼 만한 정신적인 여유가 도무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길을 가던 친구는 그냥 가자고 고집을 합니다.
그러나 선다 씽은 이대로 그 사람을 두고 갈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친구와 한참 다투다가 그를 먼저 가게 하고, 자기는 추위에 떨면서 길 옆에 쓰려져 있던 행인을 들쳐 업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산길을 갑니다. 가다 보니 먼저 길을 떠났던 그 친구가 너무 혹독한 추위로 쓰러져 죽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들처 업은 사람 때문에 땀을 흘리고 두 사람의 체온이 얼어 붙은 추위를 녹일 수 있었기 때문에, 산을 넘어 갔다는 감동적인 전도 여행의 행적이 남아 있습니다.
함께 길을 걸어 가면서 서로 격려할 수 있다는 것, 같이 눈물을 나누고, 아픔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성도 교제의 최대의 축복입니다.
단합의 상징-데모와 머리 띠
노동 분쟁의 현장 마다 공통된 것으로 연좌하거나 데모하는 근로자들이 하얀 머리 띠를 두르고 있는데, 예외가 없다. 더러는 요구조건이나 구호가 적혀 있기도 하는 이 머리띠를 두르는 심층심리는 어떤 것일까?
첫째, 긴장의 표시로 머리 띠를 두른다.
머리를 결박하면 뇌신경을 자극하여 주의력이 집중된다고 한다. 시험 공부하는 학생이나 수도하는 처사들이 곧잘 머리를 동여 매는 것도 주의력이 산만해지거나 해이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둘째, 결의나 의지의 표시로 머리 띠를 두른다.
옛날 어지러운 벼슬 밭을 떠나 사는 덕망 있는 선비가 있으면 조정에서는 사신을 보내어 회유를 하게 마련이다. 이런 때 머리 띠를 두르고 나아 가 맞음으로써 뜻의 불변을 과시하기도 했다.
세째, 서로 뜻을 같이하여 생사를 같이 한다는 동심(同心), 결심(決心)의 표시로 머리 띠를 두르기도 했다.
의적(義賊)이건 화적(火賊)이건 생사를 같이하는 일당이 흑두건(黑頭巾), 백두건(白頭巾)으로 머리 띠를 통일한 것도 그 때문이다.
동학혁명 때 동학군도 같은 매듭의 고깔형 머릿수건을 두름으로써 합심을 다지고 있다.
네째, 사귀(邪鬼)를 막는 예방 수단으로 머리 띠를 두르기도 했다.
신성한 제사 음식을 만들 때 부인들은 머리에 왼 매듭(左結)의 띠를 두르고 일을 했다. 일본의 생선회 집에 가보면 숙수가 외로 꼰 머리띠를 두르고 작업하는데, 이 역시 병마(病魔)가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제마(除魔)의 주술인 것이다.
이 머리 띠의 심리학으로 미루어 노동쟁의나 정치, 데모 등에 십상이며, 이 머리띠를 쟁의나 데모에 도입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뿐이라 한다.
'후한서(後漢書)'에 보면 진(秦)나라의 무신(武臣)들이 머리 띠를 두른 것이 그 시초라 했다. 후에 와서 문신(文臣)도 둘렀는데, 띠를 길게 늘어 뜨리거나 짧게 늘어 뜨림으로써 문무를 구별했다 한다.
통구(通溝)나 용강(龍岡) 등지에서 발굴된 고구려 벽화나 고대 중국의 고구려에 관계된 기록을 보면 남자들은 머리 띠를 두르고 새의 깃털(鳥羽毛) 두 개를 꽂고 다녔으며, 부인 역시 머릿수건을 고깔형으로 두르고 다녔음을 알 수가 있다.
일본의 병서(兵書)인 '고충군진개서(高忠軍陳開書)'에 보면 일본 무사(武士:사무라이)들의 머리 띠에 대하여 상세한 기록이 나오는데, 그 백(白), 흑(黑), 청(靑), 홍(紅)의 빛깔, 띠의 길이와 폭, 매듭, 또 앞뒤 좌우 어느 쪽으로 맺는가에 따라 1백여 가지 방법이 있으며, 그로써 신분의 상하, 계급, 귀천, 출신 지방, 병과(兵科)까지도 구분했다 하니 대단한 머리 띠 문화다.
다만 한국의 머리 띠는 폭이 넓고 일본의 그것은 폭이 좁다는 차이가 있는데, 현재 데모 때 쓰는 머리 띠는 경제적 효용 때문인지 일본식 머리 띠가 대부분이다.
머리 띠를 두를 일이 없는 세상을 바라기 어렵다면, 탈왜색(脫倭色) 광폭(廣幅)의 고깔형 머리띠로 주체화 했으면 싶다.
따스한 손
우리는 저마다 이 세상에 보내진 존재이다. 불안한 시대에, 가난한 나라에, 뛰어 나지 않는 가정에, 훌륭한 재주도, 비상한 힘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인생으로 이 땅에 보내진 것이다.
이것은 내 뜻이 아니다. 내 선택과는 아무 관계 없이 우리는 현재의 내 모습을 가지고 이 땅에 온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하고, 철학에서는 운명이라고 한다. 희랍어에 운명이라는 말은 몫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말이다.
즉 우리가 타고 나는 모든 환경과 자질은 결국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몫이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후한 몫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박한 몫을 주신다. 내 몫이 남의 몫 보다 적다고, 혹은 나쁘다고 불평할 수 없다.
오히려 자기의 것을 고맙게 받아야 한다. 니체 같은 이는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몫을 사랑하지 않고는 결코 인생이 행복해질 수 없다고 했다.
사도 바울은 풍부나 궁핍이나 범사에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했다. 여기에서 자족이란 말은 바로 자기에게 주어진 생을 깊이 사랑하고, 자신의 생이 비록 평범할찌라도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자세이다. 두 번 있을 수 없는 생이요, 남이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삶이요, 내 책임과 내 판단에 의해서 내가 살아야 할 삶인 것이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도 인생 삶을 건축자로 비유했다. 무슨 무슨 재료로 집을 짓든지 그것은 각자의 자유이지마는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역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인생이 비슷 비슷한 모습과 평범한 환경을 가지고 살찌라도 어떤 사람은 자기 인생을 뛰어난 설계와 성실한 삶으로 훌륭한 인생 건축을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설계없이 집을 짓는 사람처럼 좋은 재료 들을 다 토막 내어 버리고 형편 없는 집을 짓는 사람도 없지 않다.
즉 어떤 사람은 적은 재료들도 다 유용하게 사용하는데 비해서, 어떤 사람은 훌륭한 재료까지 엉뚱한 데 사용하는 예가 허다한 것이다. 우리의 삶의 재료들이 비록 보잘 것 없을지라도 우리가 가진 것 만으로도 자신의 인생을 바르게만 설계해서 살아 간다면, 훌륭한 건축자가 될 수 있다. 믿음과 사랑은 인생의 적은 재료까지도 다 유용하게 사용하는 능력이다.
예수님은 믿음과 사랑으로써 가장 평범한 인생들을 가장 위대한 인생 건축자가 되게 했다. 우리가 바르게만 사용한다면, 우리가 가진 환경도 결코 나쁘거나 부족한 것은 아닐 것이다.
목사가 되어 많은 사람과 악수를 나누어 보았지만, 어느 추운 날, 한 노인이 잡아 준 그 따스한 손을 잊을 수 없다. 이미 늙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손이지만, 그 손길 속의 사랑은 아직도 내 마음의 추위를 몰아 내 주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사랑을 가지고 산다면 가장 힘없는 손으로도 가장 소중한 일을 할 수 있다. 목사로써 많은 사람의 손을 잡을 때마다 따스함을 전할 수 있다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 본다.
멍에를 같이 한 자
일찍이 우리 나라나 이스라엘에서는 밭을 갈 때, 황소와 암소 두 마리가 같은 멍에를 끌고 갑니다. 따라서 두 마리는 보조가 맞아야 합니다. 한 마리가 다른 소 보다 빨리 가거나 늦게 간다면 빙 돌아 버립니다. 저도 어렸을 때에 여러 번 보습 쟁기를 잡아 보았습니다.
소 걸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더딥니까?
그런 걸음으로 천천히 나아 가는 데도 보습을 땅에 대고 보니까, 막 달아 나는 것처럼 빨라 보입니다. 양쪽 소를 번갈아 가면서 이쪽으로 몰기도 하고, 저쪽으로 몰기도 하는데, 그 모는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른쪽 소의 고삐를 탁 채서 빨리 가게 하면, 보습은 왼쪽으로 돌아 갑니다. 마찬가지로 왼쪽 소를 빨리 몰면, 이 쟁기는 오른쪽으로 돌아 갑니다. 두 마리 소를 같은 보조로 몰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어느 한쪽이 앞서거나 뒤져도 안되고, 가다가 한 마리가 숨을 돌리고 쉬어도 안됩니다. 두 마리가 똑 같이 발을 맞추어서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멍에를 같이 했다는 말의 뜻입니다. 그래서 멍에를 같이 했다 는 말은 본디 부부 간을 이야기할 때에 쓰는 말입니다. 동업자간에도 이 말을 씁니다. 동반자요 가까운 협력자라는 뜻입니다. 적당히 협력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똑 같이 균형을 잡은 동반자이며. 책임도 똑 같이 지는 것입니다. 이쪽이 무너지면 저쪽도 무너집니다. 이쪽이 갈 때에는 저쪽도 가야 합니다.
이것이 동반자의 걸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4:3에서 표현한 '참으로 나와 함께 멍에를 같이한 자'란 이토록 절실한 관계입니다. 이것은 유기적이요 균형 잡힌 공존적 관계인 것입니다. 같이 살고 같이 죽는 것입니다. 함께 멍에를 메었고, 복음 전파에 한마음으로 힘썼다는 각성과 인식을 가질 때에 자연히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성자
기독교 역사에 의하면, 초기의 수도승 가운데 “기둥 위의 성자”라고 불린 시므온(Saint Simeon Stylites390-459)이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서기 423년부터 안디옥 동쪽 160리 지점 광야에 높이 1.8미터의 기둥을 세워 놓고 그 위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앉거나 서는 것 밖에 허용될 수 없는 한정된 기둥 위에서 살아 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그러나 그는 기둥의 높이를 점점 더 높여, 430년에는 20미터 높이의 기둥을 세워 놓고 그 위에서 무려 30여 년을 생활하면서 뭇사람들의 존경과 칭송의 대상이 되어 살다가, 성자라는 호칭을 지닌 채 죽었다.
그는 과연 성자일까?
바람직한 크리스천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성경 말씀을 그 심령 속에 내면화 하고 사람과 사람끼리 진리 안에서 건전한 인격적인 교제를 함으로써, 온전한 사회생활을 해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복된 걸음
성경은 가장 나쁜 환경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사건이 꽃피우게 되는 감동을 자주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 가장 나쁜 환경이란 인생이 당면한 현실이요, 가장 아름다운 사건은 바로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나는 것이다.
유대인의 명절 중에서 가장 분주한 절기에 많은 사람이 전국 방방 곳곳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여 들었다. 상점에는 물건이 쌓여 있고, 성전은 청소되고, 사람들은 인산 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과 전혀 상관없이 고통을 당하며 살아 가는 병자들이 또한 예루살렘 베데스다에는 가득 있었다. 아무도 그들을 찾는 사람이 없었다. 좋은 일이란 언제나 모든 사람의 몫은 아니다. 기쁨을 함께 누리지 못하는 사람도 항상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기쁠 때에 내가 보아 왔던 사람들 중에 가장 외로와 보였던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그는 주님의 발걸음을 따라서 걷는 사람이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기쁨 만을 생각하고, 아픔을 당한 자를 생각지 못했던 잘못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지고 오는 가를 보여 주고 있다.
주님은 주님이 필요로 하는 곳에는 어디든지 누구든지 언제든지 가셨다. 자신이 필요한 곳에 항상 갈 수 있는 자는 복이 있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필요해서 누구를 찾아 가기 보다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 가는 인생은 복된 인생이다. 나의 필요를 채워 줄 사람을 찾기는 어렵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인생은 세상에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상에는 더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이 소외되는 세상이요, 별로 위로를 받지 않아도 될 사람은 많은 위로를 받으며 산다. 정작 물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없고 별로 필요 없는 사람에게는 많다. 환경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그 환경이 없고 별로 필요 없는 사람들이 그 환경을 선점해 버리고 만다.
삶은 결코 경쟁이 되면 안된다. 삶을 남과 비교하지 말라. 삶을 하나님과 나의 문제로 승화시킬 때, 비로소 삶의 노예가 아니고 삶의 주인으로써 사는 것이다. 성도에게는 어떤 문제이든지 하나님과 나의 문제이다. 사람은 어지간히 살아도 신앙으로 살지 아니하면 남을 돕는 일이 어렵고, 자신 보다 부족한 사람을 이해하며 살기가 어렵다. 대개는 내 문제에 급급하며 살아 갈 뿐이다.
현대를 풍요 속에 빈곤의 시대라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그 말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가는 곳 다 사람들이여서 가히 인구 폭발을 느낄 만큼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진정한 이웃이 없다. 우정을 나눌 친구가 없다. 사람은 분명히 많은데,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전화번호부에는 수도 셀 수 없는 수 많은 사람들의 이름들이 있으나, 내 마음을 털어 놓을 마음의 이웃이 없다.
사랑의 공동체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신뢰를 곳곳에 심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자면 크리스천이 진실해야 하며, 의로워야 합니다. 이 혼란한 사회에서 크리스천은 이 일에 전력투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희망과 꿈을 심어야 합니다. 신앙인들은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 갈 꿈을 가지고 있으며, 이 땅에서도 합력하여 선하게 될 결과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꿈의 移植(이식)이 전 국민에게 확산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사랑을 심어야 합니다. 폭력은 폭력을 부르고, 미움은 미움을 부릅니다. 그러나 사랑은 화해와 행복을 부릅니다. 우리가 앞장 서서 사랑을 심을 때 이 사회는 사랑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심어야 합니다. 현재 이 사회에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죄인이 의인이 되고, 하나님과 원수된 자가 성령을 통해 하나님과 교통하며, 눌린 자가 자유케 되고, 영벌을 받을 자가 영생하는 이 기쁜 소식이 사회에 심어질 때 사회에는 기쁨과 평화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며 사는 생활
사랑하는 가슴처럼 넓은 가슴이 없다. 사랑하는 가슴은 열려진 마음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적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은 미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기뻐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사람의 삶에서 사랑하는 모습보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모습은 달리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주님도 사랑의 주님이시다. 복음은 바로 사랑의 이야기이다. 사랑하지 않는 잘못 만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없으며, 성도는 사랑의 역사를 남길 사명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다.
사랑은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무거운 댓가를 내가 지불해야 한다.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셨고,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은 자신을 주셨다.
우리가 참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은 희생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이야기는 바로 희생의 이야기이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그 속에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자기 희생의 가장 귀한 댓가를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다. 말세는 사랑이 없는 시대라고 했다. 말세는 자기를 사랑하는 시대라고 했다. 자기 사랑은 참 사랑의 가장 무서운 적이다. 즉 희생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며, 자기 희생을 바탕하지 않는 사랑은 남의 희생을 강요하는 자기 사랑의 길로만 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두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라는 사명을 감당하라는 사랑의 의무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사랑에 빚진 자이다. 성도는 사랑이 식어져 가는 이 시대에서 사랑하기 위해 몸부림 치는 흔적을 가져야 한다. 사랑하기 위해서 우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요 사랑하는 마음이 넓어서 원수까지 사랑한다면 복되고도 복된 사람이다.
이제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사랑하기 위해서 성장해야 한다. 사랑하기 위해서 먹고 사랑하기 위해서 배워야 한다. 사랑하기 위해서 말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만나야 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살고, 사랑하기 위해서 죽어야 한다. 우리는 죽도록 사랑만 하다가 사랑의 주님 앞에 서야 한다. 그리고 세상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았다는 사랑의 이력서를 주님 앞에 내어 놓을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의 일생을 이력서로 만든다면 바로 사랑의 이력서이다. 주님의 짧은 생애가 그토록 감동을 주는 것은 주님은 사랑 바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紳士道(신사도)가 사라지다
역사가 생긴 이래 명멸했던 문명국들은 나름대로 신사도(紳士道)를 지니고 있었다. 이를 테면 고대 아테네 사람들에겐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통속적인 다섯 가지 덕(德)이 있었다.
1) 체격이 건장하고 미남자이어야 하며
2) 남에게 베풀 만한 재산을 가져야 하고
3) 장사나 수공업에 깊이 관여하지 않으며
4) 돈 씀새에 인색하지 않고
5) 자신이 즐기고 자랑할 만한 재간 하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마의 신사도는 `그래버타스'라 하여, 의지나 행동을 무겁게 하는 데 치중되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자제심을 잃지 않고, 어떤 고통 속에서도 의지를 관철하며, 남을 돕지만 동정심을 보이지 말며,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거나 화난다고 고함을 지른다는 것은 로마신사도에 어긋나는 일이다.
중세 유럽의 기사도(騎士道)엔 이 로마의 그래버타스에 페어플레이 정신과 승부에 승복하는 것, 여성을 우대하는 것 등 몇 가지 조건이 더 붙는다.
이 그래버타스-기사도의 전통을 가장 충실하게 계승한 것이 영국의 신사도다.
대충 그 신사도를 추려 보면 이렇다.
1)엄한 규칙 아래,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최선을 다한다.
2)남의 주장을 끝까지 들으며, 다수의 주장에 대항하여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3)현실사회에서 이상을 추구한다.
4)자제심, 곧 겸허하면서 풍부한 유머 감각이 있어야 한다.
5)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제너럴리스트로서의 교양이 있어야 한다.
6)변화를 과격한 혁명이 아닌, 점진적 진화로 이루려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7)공공(公共)의 배려 속에 자기 희생의 감수가 있어야 한다.
8)자기 집 나름의 개성 있는 생활방식-이를 테면 의례나 요리 솜씨를 지녀야 한다.
9)아이들 응석을 받아 주지 않고, 남의 아이도 내 집 아이처럼 꾸짖을 수 있어야 한다.
10)유행이나 선전이나 바람에 둔감해야 한다는 것 등등이다.
근착 뉴스 위크지(誌)에 보니, 이 로마 시대 이래 이어 내린 영국의 신사도가 밑부터 흔들리고 있어, 紳士道(신사도) 부흥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한다.
런던 시내는 급정거하는 브레이크 파열음, 창문을 내리고 퍼부어 대는 운전사들의 욕설, 뛰어 와 주먹 다짐을 하는 타격음으로 소음공해가 날로 가중되고 있으며, 페어플레이의 나라에서 크리켓이나 축구 경기장에서 편 싸움이 벌어지기 일쑤고, 그것이 국회의사당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했다. 대처 수상이 연초에 영국의 전통 신사도의 사양을 개탄하고, 그 부활을 호소한 것은 궁여지호소(窮餘之呼訴)라는 것이다.
`로마제국멸망사'를 쓴 E.기번이 로마가 망한 것은 로마를 지탱해 온 로마정신(그래버타스)의 해이에서 비롯됐다고 결론지었듯이, 신사도의 해이는 멸망의 징후인 것이다.
우리 나라 신사도인 선비 정신이 증발하여, 가치관의 혼미 속에서 못 헤어나고 있는 우리에게 타산지석(他山之石)이 아닐 수 없다.
三災 든 데 께꾸치기
성종(成宗) 때 정성근(鄭誠謹)이라고 하는, 이름 만큼 성실하고 근엄한 선비가 있었다.
성종이 돌아 가시자 장성근은 직소를 올리고 고향에 돌아 가 3년 상을 치렀다. 바른 말을 간(諫)하는 선비들이 미워 죽겠던 연산군은 이 정성근을 잡아 들여, `우리 아버지(成宗)가 돌아가셨는데, 네가 뭐라고 삼년상을 치르느냐?'고 어린애 같은 탓을 붙여 죽이고 만다.
전통 사회에서는 비단 정성근 같은 선비가 아니더라도, 임금이나 스승이나 친지의 부모가 돌아 가시면 심상(心喪)이라 하여 탈상할 때까지 상주(喪主)의 행동 거지에 준하는 근검한 절제 생활을 하는 것이 도리였다.
같은 스승 아래 공부를 한 동문(同門)이나 같은 해, 같은 과거에 급제한 동방(同榜) 그리고 보부상(褓負商) 같은 결속력이 강한 동업자끼리도 동료의 부모가 죽으면 탈상 때까지 비단 옷이나 무색 옷을 입지 않고 주육(酒肉)을 삼갔으며, 아내와 방을 같이 쓰지 않는 등의 심상을 치렀던 것이다.
남의 불행에 공감(共感)하여 그 불행을 나누어 갖고자 절제하는 미풍은 초상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불이 나거나 홍수가 들어 집을 잃으면 마을 사람들은 가구당 통나무 한 그루와 지붕 이는 이엉 한 단과 기름횃불 하나씩 들고 가서 하루 품을 제공하게끔 향약(鄕約)에 약정이 돼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재앙을 입은 집의 이웃에 사는 사람은 굴뚝에 연기를 내고, 밥 냄새를 풍겨서는 안 되었기에, 일가 친척집에 분산, 이웃이 겪고 있는 불행에 동고(同苦)를 했던 것이다.
한강에 홍수가 나 이재민이 생기면 남은 고생하는데, 나 만이 돈벌이할 수 없다 하여 나루터 마다 상행위(商行爲)가 시한부로 중단되고, 상행위가 중단되기에 나루터의 기생이나 색주가(色酒家)들은 개문 폐업을 해야 했다.
그래서 이런 민요까지 탄생하고 있다.
`한강 샛강에 큰물이 지면/
송파(松坡)기생들 발 뻗고 울고/
삼개(麻浦) 색주가 머리 잘라 판다.'
한 고을에 재민(災民)이 생기면 원님이, 한 나라에 재민이 생기면 임금님이, 그 재민과 고통을 같이 한다는 뜻에서 밥 먹을 때 반찬을 두 가지로 줄이는 감선(減膳)을 했으니, 고통 공감의 미풍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보편화 돼 있었던 것이다.
일산, 원당 주민이 큰 재난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데, 재난 현장에 이웃한 경기도 소재 골프장에 6천여 명이, 전국적으로는 1만여 명의 골퍼들이 지난 주말을 그린에서 즐겼다 한다.
고약한 놀부심사에 `삼재(三災)든 데 께꾸치기'란 대목이 있다. 께꾸란 격구(擊毬) - 곧 작대기로 공을 치는 놀이이니, 1만 명의 놀부가 삼재 든 데 께꾸를 친 것이 된다.
놀부 심사에 그치지 않고, 고통 공감의 아름다운 유전질에 난도질 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떨떠름한 여운이 남는다.
오직 聖靈(성령)으로 풀어 가는 신 구약 성경 通讀(통독) 강해
14.에베소서 4:5-12절, 교회 직분과 직분자
5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7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 가실 때에 사로 잡혔던 자들을 사로 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올라 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1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4:5)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각자이다. 남들이다. 진정한 성령 안에서의 하나 됨이 그래서 필요하다.
(엡4: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1.세상 만물의 아버지,
모든 것의 아버지
친 아버지ㅡ우리는 자녀
2.초월하신 하나님
3.공유하시는 하나님
4.내재하시는 하나님-언제나 동행, 주시, 훈계, 인도...
(엡4: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믿음의 분량
큰 은혜를 받으라:받은 은혜가 커야, 큰 일 감당
(엡4: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 가실 때에 사로 잡힌 자를 사로 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구원, 형통, 요삼 2절의 ‘3박자 축복’ - 영혼 잘 됨, 범사 잘 됨, 강건함
(엡4:9) 올라 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성육신:
1.인간과 하나님의 화목을 위해
2.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해
3.저주에서 벗어 나게 하시려고
4.풍족한 생명을 주시려고
5.의를 이루시기 위해
(엡4: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부활, 승천, 승귀
은혜, 사랑, 믿음 충만케...
(엡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오중 사역:엡4:11절
1>.사도 - 예수님의 직계 12 제자
2>.선지자 - 말씀을 계시로 받은 자
3>.복음 전하는 자 - 전도인
4>.목사 - 목회하는 자
5>.교사 - 가르치는 자
* 교회 직분과 직분자는 모두 목사의 ‘목회’ 동역으로 통일되어야 한다.
성도는 반드시 목사와 동역하여, 목회를 받든다.
위계 질서를 지켜, 동역한다.(순종, 협력...)
성령의 인도하심 대로, 동역한다.
달란트 대로, 동역한다.
(엡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영육의 삶 온전, 축복 온전, 하나님 앞에 온전
2.교회의 일을 섬김, 어려운 사람을 도움, 목회를 도움
3.교회를 든든히, 복음 전파, 세상을 향한 복음 전파 사명 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