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의 숲 인류의 미래를 꿈꾸다
우 승 순
숲에는 분명 좋은 에너지가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소위 ‘애막골 산’이라 불리는 야트막한 산자락과 연결되어 있다. 능선으로 난 오솔길은 오르내림으로 구불구불 이어져있고 소나무와 참나무가 울창하며 그 사이로 관목이 우거져있다. 숲속에 들어가면 언제나 몸에 활력이 솟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싱싱한 녹색은 눈의 피로를 풀어주고, 심리적 안정감을 주며, 솔바람과 새소리는 청각을 자극하여 유쾌함을 더해준다. 특히 나무가 내뿜는 산소와 피톤치드는 호흡을 통해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 면역력을 증진시킨다. 철따라 피는 야생화와 가을 단풍 그리고 텃새들과 풀벌레 이야기를 들으며 숲길을 산책한지도 어언 30년이 넘었다. 그 길을 걷고 또 걸으며 미움과 오해가 사랑과 이해로 바뀔 때도 있었고, 상처받은 마음에 치유를 얻기도 했다. 문득 글감이 떠오를 때도 있었고, 분노를 가라앉히고 욕심을 내려놓기도 했다. 이렇듯 숲속을 산책하면서 면역력을 높이고 정신건강에 도움을 받는 것을 산림욕이라 한다. 요즘은 건강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증가하면서 단순히 숲속에 머무는 산림욕이나 산림휴양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산림치유로 발전하고 있다. 치유의 숲 개발에 많은 노력과 예산이 투자되면서 숲이 새로운 경제 가치로 부각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은 산림국가다. 산림기본통계자료에 의하면 2020년을 기준으로 전 국토의 약 63%가 산림이다. 이는 38개 OECD 회원국 중 핀란드, 스웨덴, 일본 다음으로 많은 4위에 해당된다. 정부에서는 산림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2005년 「산림휴양법」을 제정하여 자연휴양림, 삼림욕장, 치유의 숲 그리고 숲길 등으로 분류하여 체계화하였고, 산림치유지도사, 산림레포츠지도사 등 인적자원도 관리하고 있다. 특히 등산 중심의 수직적 산행문화와 더불어 수평적 걷기운동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숲길이 각광을 받고 있다. 「산림휴양법」 제22조에서는 숲길의 종류를 등산로, 트레킹길(둘레길, 트레일), 산림레포츠길, 탐방로, 휴양 및 치유의 숲길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한 체험, 레포츠, 사회 환원 등으로 활용되는 ‘국민의 숲’이 운영되고 있으며 산림문화자산, 숲속야영장, 산림레포츠시설 등도 있다. 지구온난화에 대비한 산림생태계의 보전연구 및 자연학습교육장으로 이용되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도 있다. 이외에도 숲속문화공연, 백두대간사진전시회, 녹색문학상 등 다양한 산림문화정책이 실시되고 있다. 숲이 환경성질환과 생활습관성질환을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음이 임상연구를 통해 밝혀지면서 치유의 숲 조성을 위한 개발이 지자체별로 급증하고 있다. 다만, 비슷한 용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범람하면서 대단히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산림휴양의 용어나 시설의 명칭 등에 대한 통일된 개념과 정리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강원도는 산림문화와 산림휴양의 최적지다. 우선 산림율이 81.2%로 압도적으로 높고 임목축적량도 전국을 100으로 봤을 때 강원도가 22%로 1위다. 전국의 산림 중에 66%가 사유림이고 국유림이 26%인데 반해 강원도는 국유림이 약 58%로 가장 많고 사유림이 35%다. 이러한 조건은 공공의 목적으로 개발하기에도 유리하다.
강원도의 산림휴양시설 현황을 보면 자연휴양림 30개소, 삼림욕장 36개소, 치유의 숲 6개소 그리고 수많은 숲길이 있다. 국립자연휴양림으로는 정선 가리왕산, 평창 두타산, 춘천 용화산 등 12개소가 있는데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많다. 삼림욕장은 경기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으며 국립 치유의 숲도 횡성의 청태산과 평창의 대관령 치유의 숲이 있다. 전국의 산림생태탐방 4개소 중 2개가 강원도에 있는데 인제 점봉산 곰배령과 자작나무 숲이다.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숲체원은 전국에서 강원도 횡성이 유일한데 도시의 청소년들이 숲과 나무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각종 회의나 세미나, 전시회 등 시민참여 및 산림홍보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국립수목원으로는 평창군 대관령면의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이 있고, 공립수목원은 강원도립화목원을 비롯해 6개가 운영 중이다. 이외에도 춘천의 실레이야길을 비롯해 강원도 18개 시군에서는 ‘명품산소길 18선’을 운영하는 등 산림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발 중이다.
올해는 강원도 고성에서 “세계, 인류의 미래, 산림에서 찾는다”는 슬로건과 함께 ‘강원세계산림엑스포’가 개최된다. 9월 22일부터 10월 22일까지 한 달간 각종 전시회, 체험행사, 음악회, 학술대회 등이 열리는데, 개인적으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국제PEN한국본부에서 진행하는 ‘기후위기 시대의 문학의 역할’이란 주제의 학술행사다.
강원도 산림의 부가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설악산, 오대산, 치악산, 태백산 등 고장마다 특색 있는 산과 사찰이 있고 곳곳에 유명한 약수터도 많다. 강이나 호수 그리고 바다와 어우러진 숲길도 있고 산나물이나 레포츠와 연결된 산림도 있다. 특히 생태계의 보고인 DMZ 일대의 접경지역에서 추진되는 평화 관광 사업도 기대된다. 18개 시군의 산림특성을 의료, 요양, 휴양, 레포츠, 체험, 교육 등 다양한 분야와 접목하여 중복되지 않게 특화할 수 있다. 또한 숲 유치원, 산림레포츠, 휴양과 치유 등 요람에서 무덤까지 생애주기별 산림복지프로그램의 개발도 중요하다.
숲의 다양한 기능을 상품화해야 한다. 예를 들면, 매연이 많고 복잡한 도심지와 조용하고 쾌적한 숲속 공간을 비교할 수 있는 기온, 습도, 소음 등의 기본적인 자료부터 잣향기, 솔향기로 맡을 수 있는 피톤치드 농도 그리고 계곡물소리, 솔바람소리, 새소리 등도 심리적 안정에 도움을 주는 숲의 기능에 해당되므로 이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통해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해야 한다. 독일의 자연요법인 ‘크나이프요법’이 사회건강보험을 적용 받듯 우리나라도 숲 치유에 대한 건강보험과 각종 테라피 센터에 대한 인증제도 등도 구체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가능하려면 산불예방과 피해지역의 산림복원을 위한 과학적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숲은 인류의 미래 가치다. 산림청에서 발표한 ‘산림 비전 100년’은 “숲으로 잘 사는 대한민국, 글로벌 산림 강국”이다. 녹색성장으로 산림강국을 실현하고, 생물다양성과 탄소중립을 달성하며, 산림치유와 생애주기별 산림복지서비스 등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국제기구인 유엔의 생물다양성협약(CBD)에서도 2050년의 비전으로 “자연과 조화로운 삶(Living in harmony nature)”을 표방하는 등 지구촌 곳곳에서 인류의 미래 가치인 숲에 대해 다양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산림율이 높은 강원도는 산소를 내뿜는 한국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으며 탄소중립에 대한 기여도도 으뜸이다. 21세기는 숲에 대한 새로운 디자인이 요구되는 시대다. 강원도가 그 중심에 우뚝 서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