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록 上
3. 뜰 앞의 잣나무
스님께서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무도 분명하여 격을 벗어난 장부라도 여기를 벗어날 수는 없다.
노승이 위산(潙山)에 갔을 때 한 스님이 위산스님에게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고 묻자
위산스님은
‘나에게 의자를 가져다 주게’ 하였다.
종사라면 모름지기 본분의 일로 납자를 지도해야 한다.”
그때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
“스님께서는 경계를 가지고 학인을 가르치지 마십시오.”
“나는 경계를 가지고 학인을 가르치지 않는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
그리고는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노승이 90년 전 마조(馬祖)대사 문하에서 80여 선지식을 친견하였는데, 모두가 솜씨좋은 선지식들로서 가지와 넝쿨 위에 또 가지와 넝쿨을 만드는 지금 사람들과는 달랐다. 성인 가신 지가 오래되어 한 대(代) 한 대가 틀리게 나날이 다르다.
남전스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시기를
‘이류(異類) 가운데서 행(行)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대들은 이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요즈음은 주둥이가 노란 어린 것들이 네거리에서 이러쿵저러쿵 법을 설하여 널리 밥을 얻어먹고 절을 받으려 하며, 3백명이고 5백명이고 대중을 모아놓고는
‘나는 선지식이고 너희는 학인이다’라고 하는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청정한 가람입니까?”
“두 갈래로 머리 땋아올린 소녀다.”
“누가 그 가람에 사는 사람입니까?”
“두 갈래로 머리 땋아올린 소녀가 아이를 뱄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남전스님을 친견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렇습니까?”
“진주(鎭州)에는 큰 무가 난다.”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디서 태어나셨습니까?”
스님께서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서쪽하고도 저 서쪽이지.”
한 스님이 물었다.
“법에는 별다른 법이 없다는데, 그 법이란 무엇입니까?”
“바깥도 비고 안도 비고, 안팎이 다 비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부처님의 참 법신은 무엇입니까?”
“다시 무엇을 의심하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마음자리[心地] 법문입니까?”
“고금의 표준이지.”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객 가운데 주인[賓中主]입니까?”
“산승은 색씨에게 묻지 않는다.”
“무엇이 주인 가운데 객[主中賓]입니까?”
“노승에게는 장인어른이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일체 법이 항상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노승은 조상의 휘호(諱號)를 부르지 않는다.”
그 스님이 또 물으려 하자, 스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오늘은 그만 대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