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학부모님과 통화를 했다.
중학교 2학년인 둘째 아드님이 친구 관계 때문에 한바탕 일이 일어났단다.
들어보니 광풍이 불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번 자성불 수행 등록하길 참 잘했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계속하신다.
그 누구에게도 권유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겠다던 나의 방침이 있었기에 많이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었더니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당연히 공부해야지요. 얼마나 좋은 기회인데.”
이 대목에서 발견되는 나의 마음은 당당하겠다던 선언 뒤에 숨어 있는 “눈치 보는 것은 아닌가?”였다.
거절당했을 때의 민망함을 경험하지 않기 위한 가림막은 아닌가? 그것이 자성불 수행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내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닌가?
큰 사건 속에서도 당당하고 흔들림 없이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자신이 너무 기특하고 신기하다는 것이다. 다 마음공부 덕분이란다. 그 집안의 억울한 업장이 풀려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카페에 올라온 글을 보면서 우리가 같은 에너지로 움직이고 있음을 더욱 실감한다.
자성불 첫 강의 이후 바쁜 일이 많아 정리할 시간이 부족했지만, 밤마다 스님 솔루션 녹음본를 틀어놓고 계속했다. 물론 시작하자마자 피곤해서 곯아떨어지기 일쑤지만 그래도 자다가 깨면 망설임 없이 솔루션을 시작한다. 솔루션이 나에게는 수면제와 같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꿈속에서 무의식 속에서도 하리라.
꼭 낚시하는 것 같다. 언제 올지 모르는 물고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계속 시도하고 바라본다. 어젯밤,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는 틈을 타서 드디어 고기가 낚싯바늘을 물었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자신감이 생겼다.
처음 쓴 나의 관심사는 ①자성불 수행 ②집값 ③원성취 ④자존심 ⑤남편이었다.
내가 발견한 공통점은
실력이 부족해서 마음대로 안 됨. 능력의 한계가 있음.
나는 어중간함, 나는 결정을 잘 못함. 우유부단함.
나는 보통을 좋아함. 나는 평균치 정도를 원함.
잘되면 부담스럽고 감당을 못함,
잘못되면 실망하고 좌절하고 실패감에 괴로워하고 자존심 상함,
나의 깨달음은
자존심은 완전히 버리자니 힘들고 또 안 버리니 괴로워서 적당히 버린다.
스스로 능력에 한계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안주하려는 마음.
안주하는 것이 곧 안락(安樂)이라고 착각하고 살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마음속에 눈치보는 마음.
집값이 오르고 내림에 대처하는 마음이 유연함 같지만,
결국 상황에 따라 눈치보며 뜻을 언제라도 꺾을 수 있다는 말도 된다.
합리화 하기위한 방편일 수도 있다. 억지로 만족하려는 마음일 수도 있다.
이래도 만족 못 하고 저래도 만족 못 하는 부정적인 마음이 숨어 있었다.
그런데 스님께서 다른 깨달음을 주셨다.
이중 마음, 두 마음이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어떤 일을 해도 마음이 늘 콩밭에 가 있던 습관이 떠올랐다.
또 과거 집이 없었을 때 집값이 상승할 때의 불안한 마음이 아직 남아 있다는 말씀이 족집게 과외였다.
전혀 숨어 있는 줄 몰랐던 마음이다.
결국 원 성취를 지체시키는 요인을 좀 더 실감 나게 체험한 것이다.
과거 기억을 방하착하고 두 마음을 한마음으로 일치시키고 조율하기 위해 솔루션을 지금도 계속한다.
어떤 일이든 상상하는 대로 이룰 수 있고 그것을 담을 수 있는 실력과 그릇을 준비하면 된다.
엄마를 비롯해서 수많은 우리 할머니들의 주눅 들고 눈치 보시던 그 마음의 뿌리를 쑥 뽑아버리겠다고 결정하니 이미 다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도 이런 기적의 자성불 수행 강의를 하시는 스님께 무한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감사합니다._()()()_
첫댓글 보살님의 지혜, 능력ᆢ
부럽습니다.♡♡♡
자성불 수행 꾸준히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후배들의 귀감이 됩니다.
항상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