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수칼럼 - 51
《미국 화폐 인물로 본 미국역사 1》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에서 자본을 상징하는 것은
돈이다. 돈에 어떤 도안을 넣을지 국가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은 그 나라 역사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나 인기있는 인물을 넣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대통령제 국가시스템을 창안한 국가답게 미국
역사에서 중심은 대통령이다. 따라서 화폐 도안에 들어
가는 인물 또한 대통령이 중심을 이룬다.
지난해 4월 20일 미국 재무부는 3종의 새 화폐 도안을
발표하였다.
주 내용은 20달러 앞면 인물로 현 앤드루 잭슨 대통령
을 빼고 미국 흑인 여성 인권 운동가인 해리엇 터브먼
을 선정하고, 잭슨을 뒷면으로 옮겨 배치한다는 것과
5달러 지폐 뒷면에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과 엘리
노어 루즈벨트 여사를 새로 넣고 10달러는 알렉산더
헤밀턴을 그대로 유지하되 뒷면에 여성 참정권 운동가
의 모습을 추가하여 이를 여성참정권 인정 100주년이
되는 해인 2020년부터 시행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20달러 앞면에 들어갈 인물로 선정된 해리엇
터브먼은 노예 출신으로 농장에서 탈출한 뒤 남부의
다른 노예들을 북부로 탈출시키는 일을 하다가 남북
전쟁에도 참전했고 전쟁 후에는 여성과 흑인 인권운
동을 벌였던 인물이라고 한다.
미국의 전미 역사학회에서는 역대 대통령의 업적을
평가하여 서열을 매기는 작업을 하는데 매번 1~2위의
수위를 차지하는 인물이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대학 사학과 초년 시절 미국사 강의를 들을 때마다
나는 왜 링컨이 케네디나 루즈벨트 보다,
또 건국의 아버지 워싱턴 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지
의아했었다. 그리고 잭슨과 해밀턴이 미국 화폐에 들어
간 이유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럼 화폐의 인물들에 대하여 한번 알아보자.
♧ 1달러의 조지 워싱턴 ♧
미국 독립전쟁 총사령관이자 초대 대통령으로 건국의
아버지이다. 수많은 인물 중 그가 초대 대통령으로 선
출된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는 공명정대했고 책임감이 강해 전쟁 시에도 존경을
받았다. 그의 리더십에 의해 오합지졸이었던 식민지군
은 승기를 잡을 수 있었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국가
들은 미국의 독립을 지원하게 되었다.
그는 종전 후 고향인 마운트 버넌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다시 정계에 복귀해 헌법제정위원장을
맡았고 미국연방 통합의 공으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대통령 삼선 연임을 사양하여 민주 주의의 기틀을 닦은 인물로 평가된다.
♧ 2달러의 토마스 제퍼슨 ♧
미국 독립선언서 기초자이며 3대 대통령이다.
다재다능한 재능을 보유한 르네상스적 인간이다.
제퍼슨은 미국의 대의민주주의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평가된다. 우리가 제퍼슨을 거론할 때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 그의 고향 버지니아이다.
그는 독립전쟁 때 버지니아 주지사였고 법률가였으며
라틴어, 그리스어는 물론 고대 영어에도 능통했던 언어
천재였고 자연과학, 수학, 민족학, 역사에도 조예가 깊
었던 팔방미인이었다.
185센티의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의 친근한 인상에
교양과 박식함을 겸비했으니 요즘말로 상남자였다.
미국역사에 제퍼스니즘이란 뚜렷한 족적을 남긴 그는
미국의 정부방향에 관한 재무장관 헤밀턴과의 논쟁은
유명하다.
13개주로 독립한 미국은 국가의 운영방향을 둘러싸고
당시 국무장관인 제퍼슨과 재무장관 헤밀턴은 열띤
논쟁을 벌였다.
제퍼슨은 민주공화파로 개인의 생명, 안전, 자유를 존중
했고 헤밀턴은 정부의 권위와 통합을 중요시했다.
건국 초기라 국가의 운영방향을 잡는 것은 매우 중요
했는데 헤밀턴은 재무장관으로 국가의 채무를 변상하고
신생 독립국가의 통합과 국가의 권위를 확립하기 위해
서는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연방제가 필요하다고 역설
했다. 반면 제퍼슨은 그 자신 버지니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주의 자치에 바탕을
둔 연방제와 개인의 인권을 강조했다.
제퍼슨의 이러한 사상은 그가 주프랑스 공사를 역임하
면서 프랑스 혁명 지도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우리는 그의 종교와 언론의 자유를 강조한 유명한 말을 기억한다. 그는 버지니아를 모델로 미국 연방을 구상
했다. 버지니아에서 쌓은 정치적 경험을 연방에 적용
하려 한 것이다. 그는 대통령 삼선 연임을 사양하고 고향
버지니아로 돌아가 버지니아대학을 설립하고 만년을
보냈다. 그의 저택이었던 몬티첼로와 버지니아대학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된 독특한 곳이다.
버지니아대학 본관 앞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의 묘비명에는
"미국 독립선언문과 종교의 자유를 확립한 버지니아
헌법의 기초자이며 버지니아대학교의 아버지인 토마
스 제퍼슨, 이곳에 잠들다"고 되어 있다.
제퍼슨이 미국 대통령으로서 이룩한 가시적인 가장
큰 업적은 프랑스 나폴레옹으로부터 루이지애나 땅을
1500만 달러에 매입한 일이다. 이로써 13개주로 출발
한 미국연방이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연방국가로 가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영토확장 보다
미국의 정신적 가치를 확립한 사람으로 후세에 기억되길 바랬다.
오늘날 제퍼슨은 미국 민주주의의 이념을 구현한
인물로, 관용과 인내 그리고 미래 진보에 대한 신뢰를
가졌던 지도자로 평가되고 있다.
♧ 5달러의 에이브러햄 링컨 ♧
한국사람들에겐 매우 익숙한 인물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통나무 집 가난한 아이로 전기가
실려있기 때문이다.
링컨하면 남북전쟁을 연상할 정도로 남북전쟁은 미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며 이를 완결한 링컨 대통
령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남북전쟁은 영어로 civil war 라 부른다. 외적과의 전쟁
이 아닌 같은 국민들간의 전쟁이란 뜻이다.
남북전쟁은 미국역사에서 두 가지의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두 개의 미국이 될뻔한 것을 하나의 미국으로
재통합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미국 자본주의를 견인
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건국후에도 북부와 남부는 사회경제적 조건의
차이로 끊임없이 대립하였다. 북부는 공업지대로 산업
혁명기로 접어들고 있었지만 남부는 면화 플랜테이션
에 기반을 둔 농업지대로 대규모 농장과 노예의 노동력
을 필요로 하는 환경이었다. 남북전쟁 이전부터 두개의
미국이란 의식이 이미 파다하게 퍼지고 있었다.
1861년~1865년의 남북전쟁은 국토를 유린했지만
두개의 미국을 하나의 미국으로 재통합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전쟁의 여파로 동서 횡단철도가 부설되는
전기를 만들었다. 이른바 정치와 경제, 사회의 아메리
칸 시스템이 구축된 것이다.
링컨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 두개의 위대
한 구상에 링컨의 탁월한 리더십이 있었다.
♧ 10달러의 알렉산더 헤밀턴 ♧
미국은 건국 초기 독립전쟁으로 많은 빚을 졌다.
2000만 달러에 달하는 국가채무를 변상할 막중한
책임이 젊은 재무장관 헤밀턴에게 맡겨졌다.
헤밀턴은 각 주의 채무를 연방정부가 인수하여 변제
하여야 하는데 이를 각 주에 균등하게 배분시켜 처리
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토마스 제퍼슨은 각 주가 진 부채는 각 주별로
각자 변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립전쟁 때 각 주들이 팔았던 채권은 주로 농민들이
샀으나 나중에 부유층들이 채권을 헐값에 매입하였기
때문에 만약 연방정부가 이를 액면 그대로 상환한다면
금융가 등 유산자들에게 유리할 것이기 때문에 농민들은 반대했다.
뉴욕 출신의 헤밀턴은 미국의 장래는 상공업 육성에 달
려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연방정부가 강력한 권위에 의
해 통일된 경제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 필요
하다고 여겼다. 그는 신생 연방정부가 유지되려면 영향
력이 큰 금융가 등 유산자 계급의 지지를 받는 것이 필
요하고 그들의 이익이 곧 국가 전체의 이익이 된다고
생각했다.
헤밀턴은 강력한 정부를 주장했고 제퍼슨은 주의 자율
성과 중앙정부의 최소한의 간여를 주장했다.
두 사람은 성격이나 출신 배경부터 구분되는 캐릭터
였다. 헤밀턴은 낭만주의자, 제퍼슨은 이상주의자 라고
자신들은 생각했으나 실은 헤밀턴은 이론가였고
제퍼슨은 현실주의적 정치가였다고 할 수 있다.
금융가 등 유산자보다는 농민들이 더 많았던 시절이었
으니까.
헤밀턴은 당시 에런 버를 몹씨 싫어하여 그가 대통령이
되려는 것을 막기위해 반대파인 제퍼슨을 지지했다.
버는 같은 연방파인 헤밀턴의 제퍼슨 지지로 부통령이
되었고 둘의 사이는 극도로 악화되었다. 결국 감정대립
은 버가 헤밀턴에게 결투를 신청하여 둘은 1804년 7월
11일 뉴저지 허드슨 강변에서 역사적인 결투를 하게
되었고 버의 총탄이 헤밀턴의 우측 골반을 뚫고 척추에
박히는 바람에 헤밀턴은 다음날 사망했다.
연방주의자 풍운아 헤밀턴의 죽음을 허무하다고 할지
낭만적이라고 해야 할지.
20달러~100달러 지폐 인물에 대해서는 2부에서 계속
됩니다.
*출처 : 중앙대학교 총동문회 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