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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기도 4일 - 위대한 접촉 & 구름에 닿는 계단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 4:9-10)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정신 나간 짓이었다. 이제 더 이상 방법이 없다. 냉엄한 현실을 직면하라. 그동안 싸운 삶의 터전들을 이제 더 이상 의지할 수 없게 되었다.
확장된 사역을 용감하게 구했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변화를 일으키는 시점에서 이렇게 주저앉아 버린다. 그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복을 받았다. 그들은 영향을 미치고 지혜를 잡을 수 있도록 그들의 지경을 넓혀주시는 하나님을 보았다.
그러나 갑자기 날개가 접히고 무기력하게 추락해 버리고 만다. 이런 상황이 익숙하게 들리는가? 어쩌면 새로 시작한 사업이 당신이 가진 경험과 자원의 한계를 넘어서면서 위협을 느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집에서 모이기 시작했던 청소년들이 갑자기 당신으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받기보다는 당신의 가족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 기도하고 시작한 새로운 사역이 당신보다 훨씬 더 많은 능력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두 팔 가득 안고 새로운 지경으로 나아갔다가 새로운 환경에 압도되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기대치 않았던 곤경에 빠지게 되면 두려움을 느낀다. 속았다고 느낀다. 버림받은 것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약간 화도 난다.
‘추락으로 얻게 되는 능력’
추락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추락하면서 우리는 지도자라면 보통 느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통제력의 상실과 연약함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한동안 눈에 보이는 것은 사정없이 몰려오는 단단한 지표면뿐이다. 내가 그 추락을 경험한 것은 모험적인 사역을 시작한 초기였는데 Walk True the Bible 사역에 신나는 새로운 가능성들이 활짝 열린 바로 직후였다. 그때 나는 그런 일들을 하기에는 내가 적당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나는 신뢰할 만한 어른을 찾아 조언을 들어보기로 했다. 존 미첼은 그때 80대의 노인이었고, 요크셔 출신으로 성경을 가르치며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영적인 아버지 역할을 해왔다. 나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한 다음. 나의 문제를 이야기했다. 내가 당한 위기를 한참 설명하고 있을 때 그가 나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는 친근감이 느껴지는 사투리로 “여보게, 자네의 그런 느낌을 의뢰라고 부르는 걸세. 무슨 말이냐 하면 자네가 주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뜻이지”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그의 말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잠시 기다린 후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자네가 의뢰하지 않아도 된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 바로 자네가 믿음으로 사는 삶을 정말로 져버리는 순간이 되는 거라네.”
내게는 그의 말이 별로 달갑질 않았다. 그래서 “미첼 박사님 제가 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란 말씀이신가요”라고 물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그렇지. 왜 마음에 안 드나? 자네는 아무 이상 없네”라고 말했다.
그것은 겁나는 그리고 무지하게 신나는 사실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선택하고 복주신 아들로서 그리고 딸로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간섭하지 않으시면 실패가 보장된 그런 큰 일들을 시도하도록 되어 있다. 잠시 동안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음의 내용들이 당신이 인간적으로 결정하는 모든 일들과 얼마나 상반되는지를 잘 생각해보라.
*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다.
* 이전에 경험들과 상반된다.
* 당신의 느낌과 훈련과 안전에 대한 필요를 고려하지 않는 듯하다.
* 당신을 바보처럼 혹은 실패자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히 여기시는 종들을 위한 그분의 계획이다. 화려한 은막의 영웅들은 너무나 잘나서 누군가를 신뢰할 이유를 못 느끼는 것 같다. 그러나 당신과 나는 무언가를 신뢰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야베스와 당신과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영웅으로 만든다. 어떻게? 우리는 야베스가 했던 세 번째의 간절한 기도를 부르짖어야 한다.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라고 그의 기도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서 그분의 능력을 사용하실 수 있게 한다.
야베스가 주님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시기를 간구하는 기도를 먼저 하지 않았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라. 처음에 그는 그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래도 일들은 감당할 만했다. 일을 다루는 위험과 두려움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지경이 넓어지고 하나님의 일정에 따른 왕국 수준의 과업이 주어지자 야베스는 주님의 손이 함께 하셔야 한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다. 그는 포기하고 돌아서거나 아니면 자신의 힘으로 하려고 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대신 기도했다.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것이 우리가 드리는 최고의 예배라면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더 많은 것을 구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의 야망이라면 하나님의 손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구하는 것은 우리 속에서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위대한 일들이 유지되고 계속되도록 하기 위한 우리의 전략적인 선택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손을 ‘위대한 접촉’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위대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한 손을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던 일들이 하나님의 무한한 기회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위대해지신다.
구름에 닿는 계단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 달린과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남부 캘리포니아의 한 도시에 있는 카드랑 공원에 갔었다. 그 공원은 어른들에게 다시 아이가 되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하는 그런 곳이었다. 거기에는 철골 놀이기구, 시소 등이 있었고 무엇보다 타보고 싶은 미끄럼틀도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작은 것, 중간 크기 그리고 아주 큰 것, 이렇게 세 개나 있었다. 그 당시 다섯 살인 어린 데이빗은 작은 미끄럼틀이 있는 곳으로 총알처럼 달려나갔다.
“같이 타보지 그래요” 달린이 제안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달랐다. 그래서 “좀 기다리면서 봅시다”라고 말하고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아 미끄럼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데이빗은 가장 작은 미끄럼틀 위로 신나게 기어 올라갔다. 우리 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미끄럼틀을 탔다.
그리고는 곧장 중간 크기 미끄럼틀로 옮겨갔다. 그리고 계단을 반쯤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데이빗은 잠시 자신의 결정을 생각해 보더니 조심스럽게 한 계단씩을 내려왔다.
아내는 “여보, 당신이 가서 좀 도와주어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나는 눈을 반짝이며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아내에게 알려주는 뜻에서 다시금 “아니, 아직 좀 더 두고 봅시다”라고 말했다.
데이빗은 중간 크기의 미끄럼틀 아래에서 서서 잠시 동안 다른 아이들이 미끄럼 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시도해보려고 미끄럼틀 주위를 뛰어다녔다. 결국 그의 작은 마음은 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는 기어 올라가 미끄러져 내려왔다.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세 번을 그렇게 탔다.
잠시 후 그 아이를 바라보고 있던 우리의 눈길은 가장 큰 미끄럼틀 쪽으로 옮겨갔다. 달린은 이제 좀 걱정이 되는 듯 “여보, 혼자 하도록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아요. 안 그래요?”라고 말했다.
나는 가능한 한 조용히 “응, 그치만 혼자 하려고 할 거 같은데 좀 더 두고 봅시다”라고 대답했다. 그 커다란 미끄럼틀 아래에 도착한 데이빗은 돌아서서 큰 소리로 “아빠!”하고 불렀다. 나는 못 들은 척하며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계단을 유심히 올려다보았다. 그 어린 마음에 그 계단은 분명히 구름에 닿아 있는 것 같았을 것이다. 그는 신나게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10대 소년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모든 역경을 딛고 시도해 보기로 결정하고는 계단을 약 삼분의 일정도 오르다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뒤를 따라 오르던 아이는 계속 올라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데이빗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는 올라가지도 못하고 내려가지도 못하는 특별한 실패의 순간을 겪고 있었다.
나는 달려가서 미끄럼틀 밑에서 “괜찮니?”라고 물었다. 그는 나를 내려다보며 떨고 있었지만 동시에 강철 같은 결심을 하고서 계단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그가 이미 나에게 같이 타자고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빠, 저랑 같이 미끄럼 타실 거예요?”라고 물었다. 뒤에서 소리 지르는 아이는 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성화를 했지만 나는 그 순간을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왜?”라고 물으며 데이빗의 작은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혼자서는 못하겠어요. 아빠, 저한테는 이 미끄럼틀이 너무 높아요”라고 떨면서 말했다. 나는 펄쩍 뛰어 올라가 데이빗을 팔로 안았다. 그리고 우리는 구름에 닿는 그 긴 계단을 같이 올라갔다. 꼭대기에서 나는 두 다리 사이에 아들을 앉히고 두 팔로 감싼 다음 함께 미끄럼틀을 탔다. 미끄러지는 내내 우리는 신나게 웃었다.
‘그분의 손, 그분의 영’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손이 바로 그렇다. 우리는 “아버지 같이 해주세요” “혼자서는 할 수가 없어요” “제가 하기에는 너무 커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분의 손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을 시도하기 위해 믿음을 가지고 발걸음을 떼어놓는다. 그런 다음 우리는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서 하셨다. 그 누구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셨고 내게 할 말을 주셨으며 능력을 주셨다. 모든 것이 정말 멋지다!”라고 외치게 된다.
이런 초자연적인 삶을 더 이상 어떻게 추천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를 떠받치면서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신뢰를 결코 잊을 수 없는 완벽한 경험으로 바꾸어준다. 바울은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나간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에 일꾼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고후 3:5-6)라고 썼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마저도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지도 않고 구하지도 않는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 비극적인 일이다.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것조차도 거의 모르고 있다.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도와 선지자들만을 위해 따로 보관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실패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면 그들은 “내가 너무 지나쳤어. 결국 잘못 되고 만거야. 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자원은 이미 가지고 있으니까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빠져나가야겠어”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린다.
그들과는 달리 야베스는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복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임을 확신했기 때문에 그것이 빠진 영광스러운 삶을 생각조차도 할 수 없었다. 그가 한 기도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묘사하는 성격의 표현이다(수 4:24, 사59:1).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 교회의 놀랄 만한 성공은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며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행11:21)라는 말로 요약되어 있다. 신약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묘사는 성령의 충만이다. 교회의 성장은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는 데 필요할 뿐 아니라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하나님의 손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된다.
야베스의 기도가 더 많은 복으로부터 시작해서 더 넓은 지경 그리고 초자연적인 능력의 필요로 자연스럽게 발전해 나가고 있음을 염두에 두라.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 19-20). 지상 대명령을 위임하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엄청난 복과 불가능한 과업을 주신 것이었다. 온 세상으로 가서 설교를 하라. 분명히 실패하고 말 것이 틀림없다. 모닥불 곁에 서 있던 보잘것없는 한 여자아이 앞에서조차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믿을 수 없는 겁쟁이로 드러난 베드로와 같은 사람에게 그 일을 맡기시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러나 성령님을 보내셨을 때(행 1:8)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믿는 평범한 사람들을 그분의 기적적인 능력으로 채워주시고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사람들이 되도록 어루만지셨다. 실제로 누가가 기록한 사건들 속에서 “성령의 충만한”이라는 구절이 종종 “담대히 말하다”(행 4:13, 5:29, 9:27)라는 구절과 함께 나온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을 통해 일하셨던 하나님만이 기적과 그에 따른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을 설명해줄 수 있다
야베스와 초대교회 성도들이 했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전능하신 임재를 구한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엄청난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으로 채워지기를 구했다는 사실이 내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모여 몇 시간 혹은 며칠 하나님을 기다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한 공동체로 알려져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손’, 즉 절박한 실패를 기적으로 바꿔주고 엄청난 과업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워진 신선한 영적 충만함을 간절히 사모했다.
바울은 에베소서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채워지는 것’(엡3:19)을 가장 우선시하라고 했다. 동시에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복 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주시기를 기도했다.
당신의 교회가 가장 최근에 한자리에 모여 성령으로 충만해 주시길 간구한 때는 언제인가? 정기적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하나님, 주님의 손을 제게 얹어 주시고 주님의 성령으로 채워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한 때는 언제였는가? 다른 방법으로는 로마 세계에 복음이 그렇게 급속도로 전해지는 일이 일어날 수 없었다.
‘십대 아이 열두 명과 사라진 달걀’
오래전 내가 뉴저지에 있는 한 교회에서 청년 사역을 하고 있을 때, 열두 명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하나님의 손은 그것을 구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뉴욕주에 있는 롱아일랜드의 외곽 지대에서 여름 사역을 갖기로 계획을 세웠다. 우리의 목표는 6주 동안 그 지역의 젊은이들에게 전도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세 가지 전략을 세웠다. 먼저 야외에서 성경 공부를 시작하고 오후에는 해변으로 나가 전도를 한 다음 저녁에는 그 지역 교회와 함께 전도 집회를 갖기로 했다. 간단하게 들리겠지만 청년회를 맡고 있는 목사를 포함해 아이들이 그 사역의 방대함에 압도되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롱아일랜드에서 어린이 사역을 하는 전문가를 초빙해 훈련을 받았다. 그는 우리 선교팀에게 13-14명의 아이들을 모을 수만 있어도 대성공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가 떠난 후 우리는 조용히 “만일 이번 주말까지 우리가 100명의 아이들을 모을 수 없으면 우리는 실패한 거라고 봐야 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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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우리는 모두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생겼다. “주님, 우리에게 복을 주십시오. 주님, 제 능력 밖의 일이라는 걸 알지만 100명의 아이들을 주세요. 주님, 당신의 영광을 위해 당신의 영으로 놀라운 일을 끌어내주시기 원합니다”라고 하던 그 젊고 솔직한 기도들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부모들은 계속해서 우리가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이 옳다는 걸 나도 알았다. 그러나 그 불가능한 일은 일어나기 시작했다. 여섯 개의 팀 중 4개 팀에는 첫 주에 이미 100명 이상 되는 아이들이 몰려들어 자리를 메웠다. 어떤 팀들은 아이들이 전부 들어갈 수 있는 넓은 땅이 있는 곳을 찾아 자리를 옮겨야 했다. 주말까지 우리는 500여 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그들 대부분은 교회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 기적으로 충분하지 않았는지 롱아일랜드 해변가에서의 전도는 작은 마술의 도움을 입어 더 많은 기적을 이루어냈다. 나는 진기한 물건들을 모아 팔고 있는 가게에 가서 초보자용 마술 도구를 샀다. 그런 다음 친구들을 감동시키고 놀라게 해주기 위해 새벽 3시까지 꼬박 밤을 새우며 어떻게 달걀이 사라지게 할 수 있는지를 배웠다. 다음날 오후 우리는 하나님의 손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면서 모래 위에서 공짜 마술쇼를 펼쳤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첫날 프로그램이 마칠 때까지 30명의 사람들이 구원의 결단을 내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꼼지락거리는 한 줄 정도의 아이들로 시작된 우리의 관객은 150명이 넘는 수영복 차림의 손님들로 늘어났다. 우리는 마술쇼와 복음을 제시하는 이야기를 번갈아 하면서 프로그램을 진행시켰다. 부모들이 점점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떼를 지어 몰려온 10대 아이들로 우리의 관객은 더욱 불어났다. 그날 오후 우리는 약 250명에 달하는 관객을 모을 수 있었다. 마지막 초청 메시지가 있은 후에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바로 그곳 해변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기 원했다.
해변가에서의 전도 활동을 마무리한 우리는 그곳 교회에서 청년들을 위한 저녁 전도 집회를 가졌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노력에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복을 주셨다. 그러나 그 복은 우리가 드린 바로 야베스 기도 범위 안에서 이루어졌다. 6주간의 공략을 마친 후 우리는 롱아일랜드에서 1,200명의 새신자를 얻게 되었고 그들 모두는 필요한 도움을 받았으며 그 이후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양육 자료도 갖게 되었다.
그 열두 명의 고등학생들은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도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확신을 한 안락한 중산층이 모여 사는 대도시 근교의 그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가장 먼저 변화가 일어난 곳은 그들의 교회였다. 그들이 성령님께서 교회 안에서 움직여 주시고 부흥을 가져다주시기를 기도했기 때문이었다.
불가능한 일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열두 아이들과 그들의 젊은 후견인은 하나님의 손이 교회를 통해 일하시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선교팀원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하나님께 더 많은 것을 구할 것을 도전했고 전에는 누구도 알지 못했던 그런 부흥이 교회를 휩쓸었다.
이 모든 일은 열두 명의 학생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복을 구하며, 그들의 지경을 넓혀주실 것과 그분의 능력의 손이 함께 해달라고 기도했을 때 일어났다.
‘아버지의 손길’
놀이터에서 아이를 지켜보고 있는 사랑하는 아버지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바라보시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우리가 구하기를 기다리신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배푸시나니”(대하 16:9) 하나님께서 영적인 거인이나 신학교 학생들을 찾기 위해 두루 감찰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심으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를 열심히 찾으신다. 하나님의 확장 계획 가운데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지 않는 부분은 바로 당신의 충성스러운 마음 그것 한 가지뿐이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적으로 가능한 일들을 저지하는 유일한 변명거리는 항상 당신과 나, 바로 우리들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하는 초자연적인 열정과 담대함과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매일 아버지의 손길을 간구하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신뢰는 능력을 의미하는 다른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 위 내용을 빠르게 읽으면서 감동되는 기도제목을 붙잡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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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