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는 군포 산본신도시 옆에 자리 잡고 있는 대야미 마을은 군포시에 남아 있는 유일한 자연 농경마을이다. 대야미 마을은 전체 면적의 98%가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도심 속 농촌 같다. 너른 들판과 호수가 어우러진 그림 같은 마을. 이 때문에 대야미 마을에는 최근 들어 문화예술인들의 작업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마을에는 조선 중기의 문신 정광보가 지은 동래 정씨 동래부원군 종가가 보존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작은 사랑채 등 4개 건물이 보존되어 있으며 사랑채는 조선 후기 실림집의 구조를 잘 보여준다. 조선 후기 사대부가의 묘역 중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정난종 선생의 묘와 신도비(경기도 기념물 115호)를 살펴보는 기회도 놓치지 말자. 이곳에는 조선 세조 때의 명신인 정난종선생을 비롯하여 그의 장자 광보, 차자 광필 그리고 광필의 넷째 아들 복겸과 6세손 주손, 진원의 묘 등이 산등성이의 중턱에서 아래로 차례로 열을 지어 조성되어 있다. 묘역에는 각각의 묘에 대한 신도비와 혼유석, 석등, 동자석 등이 함께 규례대로 갖추어져 있어 조선 전기의 분묘사 내지 석비, 금석문 등 고고미술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대야미역·김만기묘역
대야미 전철역 출구에서 오른쪽으로 나가 월광사(月光寺) 쪽으로 가다보면 멀리 김만기 선생 모역의 재실과 묘역 일부가 보인다. 입구의 문화유적안내판을 따라 우측길로 접어들면 재실이 나오고 재실 뒤편 언덕으로 올라가면 광신김씨 묘역이 나타난다. 묘역에는 김만기 선생의 묘와 함께 김만기의 아들 김진구와 김진부, 손자 김복택의 묘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김만기 선생의 묘소는 이 묘역의 가장 윗부분에 자리하고 있는데, 서원부부인 한씨(西原府夫人 韓氏)와의 합장분을 중심으로 어필비, 묘표, 문인석, 망주석, 상석, 향로석 등의 옛 석물이 설치되어 있다. 신도비는 묘역 맨 아래 산언저리에 서 있다. 김만기(金萬基1633~1687)는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조선시대 예학의 거두인 김장생의 증손이며 병자호란 때 강화에서 김상용을 따라 남문에 올라가 분신자결한 광원부원군 김익겸의 아들로, 문경왕후(숙종의비)의 아버지이고, <구운몽>을 지은 서포 김만중의 형이다.
누리천문대
인근에 위치한 대야문화센터에 가면 누리천문대에서 색다른 체험도 가능하다. 대야동 주민자치센터 내 대야도서관 4층, 5층에 자리 잡은 누리천문대(031-501-7100)는 다양한 체험코스로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대형굴절망원경으로 태양과 달, 행성 등 다양한 천체를 직접 관측할 수 있는 관측소와 실내의 천장 스크린에 밤하늘의 별자리를 가상재현해놓은 플라네타리움, 3D 입체PC와 달 위상변화 체험기 등을 갖춘 천문우주체험관 그리고 각종 과학영화를 삼차원 입체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는 4D 입체상영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어 어린이와 가족 단위의 체험학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둔대농악
둔대초등학교 옆에 위치한 둔대농악보존회는 군포 유일의 전래농악인 둔대농악의 맥을 이어가는 곳. 길군악, 더드래기, 도드래가락, 자진가락 등 경기 웃다리 농악의 기본 형태를 갖춘 신명나는 장단을 운이 좋으면 만날 수 있다.
덕고개 당숲
마을을 지키는 신령한 숲, 덕고개 당숲 마을길을 나와 10분 남짓 숲길을 따라 이동하면 덕고개 당숲에 다다른다. 50여 미터 짧은 숲길 안쪽에는 300년이 넘게 제사를 지내온 당집이 자리 잡고 있다. 50여 그루의 나무는 덕고개마을과 군포시의 안녕을 기원하며 당당히 세월을 지켜냈다. 17세기말 효종 넷째 공주인 숙정공주와 동평위 정재륜의 쌍묘가 이곳에 만들어지면서 숲이 조성됐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는 당숲을 제외한 주변산이 일본인에게 매각됐다. 주변산은 베어지고 낙엽송, 잣나무의 인공조림지가 됐지만 당숲은 수령 300년 정도의 나무 50여 그루가 당당히 세월을 지켜냈다. 회색줄기가 근육처럼 울퉁불퉁 나와 있는 서어나무 다섯 그루는 당집을 중심으로 듬직하게 숲을 받치고 있다. 덕고개마을 당숲은 규모는 작지만 역사적, 민속적 의미 때문에 군포8경 중 하나로 꼽힌다. 군포문화원에 따르면 군웅제라 불리는 제사가 당숲에서 약 300년간 이어져 왔다고 전해진다. 마을 주민이 줄어들면서 군웅제는 한때 마을의 고사로 축소되기도 했었다. 2004년 군포문화원은 군웅제의 역사적, 민속학적 의미를 보존하기 위해 시에서 보조금을 받아 당숲제를 치르고 있다. 수리산 일대를 도립공원으로 지정해 당숲 인근도 테마공원이 된다. 주민은 단풍이 드는 가을이면 당숲이 아름답게 빛난다고 자랑한다. 전통의식을 몇 백 년 간 이어온 숲은 작지만 위대한 힘으로 마을을 지키고 있다.
수리사
고즈넉한 천년고찰, 수리사 갈치호수-당숲을 지나 납다골에서 안내판의 화살표 방향에 따라 산길을 오르면 수리사(修理寺)가 나타난다. 사찰은 수리산 정상인 태을봉에서 이어지는 계곡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사찰을 감싸고 있는 능선 일대가 옛 수리사 터이다. 현재도 사찰이 번성하여 많은 신도들과 등산객들이 찾는다. 신라 진흥왕(539~575년) 때 창건된 수리사는 신심을 닦는 성지라 하여 수리사라 했고, 그 후 산 이름을 수리산으로 했다는 설이 있다.
조선 때 왕손이 수도를 하던 중 부처님을 친견했다 하여 산 이름을 수리산 또는 견불산으로 부르기로 했다는 설도 전해진다. 수리사는 한때 대웅전 외 36동의 건물과 산내에 12개의 암자가 있는 대찰이었다. 임진왜란 때 거의 파괴되었으나 수리사 일대에서 수습된 많은 기와류와 토기류 등은 수리사가 번성했을 당시의 상황을 말해준다. 6.25 전쟁 때 다시 본전을 비롯한 모든 건물들이 소실되었고 이후 꾸준히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8년 10월 25일 전토사찰 제86호로 지정되었다.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정기법회가 있다.
방짜유기
무형문화재 김문익 선생의 방짜 유기장 역시 군포 문화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방짜는 징, 꽹과리 같은 타악기를 비롯, 무독성이기 때문에 식기류로도 널리 애용되었다. 전통 방짜기법으로 질 좋고 우수한 유기제품을 만들고 있는 방짜유기장 김문익 선생은 두들겨 모양내는 일에 여전히 수작업 공정을 고집하고 있다. 88서울올림픽 개막식에 사용된 바라와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악기를 직접 제작, 그 우수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김문익 선생의 공방인 ‘국일공예사’는 작업장과 전시관이 구분되어 있어 유기에 관련된 체험과 정보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장소다. 전문 장인들의 작업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방짜로 만들어진 식기류, 제기류, 악기류 그리고 불교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기제품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