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어서들 튀어!
“이쪽으로 가까이 모여보세요. 이 공정은 도장 공장 첫 출발 지점이거든요. 페인트 작업을 하는 도장 공장은 사람에 비유하자면 얼굴 화장하는 곳이라 보면 돼요.
저기 여성 사원님, 화장하기 전 뭘 하시지요?”
모하비 팀 맨 앞에 선 서혜림이 얼떨결에 질문을 받자 당황한 표정이었다.
“아~ 글쎄. 먼저 얼굴을 씻어야 하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화장이 잘 받으려면 세안이 필수지요.”
도장공장 생산 담당 최인호 대리가 도장 공장 소개를 쉽게 이어갔다. 하얀 우주복 차림을 한 모습이 우선 깔끔해 보였다. 청결이 기본인 작업장이었다.
“도장 공장은 총 22공정으로 돼 있어요. 도장 공장 앞 공정이 차체 공장이거든요. 차체 공장에서 철판을 먼저 절단해요. 다음엔 자동차 바디 부품을 프레스로 찍어요.
여러 종류의 바디 부품을 용접해서 자동차 형태의 차체 구조물을 만듭니다. 그것을 컨베이어 라인에 태워 도장 공장으로 보내주지요.”
최인호 대리 말처럼 저쪽에서 차체 구조물이 컨베이어 라인을 타고 이쪽으로 넘어오는 게 보였다.
“차체 구조물은 기름기와 오물이 묻어 있거든요. 그래서 그걸 먼저 깨끗이 씻어내야 페인트가 제대로 먹거든요. 기름기와 오물이 낀 차체 구조물을 화학 약품 저수조에 담그지요.
디핑한다고 해요. 이 공정을 전처리 공정이라 불러요. 여기서 기름기와 오물을 깨끗하게 녹여내고 제거합니다. ”
전처리 공정에 이어 물로 세척하는 공정, 에어로 샤워하는 공정, 뜨거운 열로 말려주는 공정 들을 유심히 지켜보며 흐르는 콘베어 라인 따라 움직였다.
차체 구조물이 초벌 페인트 저수로 디핑을 하는 것도 신기했다.
“초벌 페인트를 칠한 뒤, 건조하고 다시 본 페인트를 칠하는 공정 등이 이렇게 계속 이어져요.”
“우와~ 때 빼고 광내는 공정이 22개나 된다니, 사람 화장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하네요.”
계속 호기심 어린 눈길로 지켜보며 움직이던 조성만이 탄성을 질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자동차 생산 라인 일부를 보면서도 이처럼 신기한데 전 공정을 볼 수 있는 이번 공장 견학은 무척 유익한 시간이었다.
신입사원들은 마술 쇼를 보는듯한 설렘을 노트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스케치와 설명을 빈 노트에 페인트칠하듯 빼곡하게 그려 넣었다.
“정신없이 공장견학에 빠져들다 보니 오전이 금세 지나갔네요. 공장에서 먹는 점심이 이렇게 맛있을 줄 몰랐어요”
서혜림은 입에 음식을 오물거리며 먹다가 맞은편에 앉은 강윤재에게 한마디 했다. 초등학교 수학 여행하며 신기한 볼 것에 눈이 팔린 소녀 같았다.
“밥값을 제대로 한 덕분에 그런 거지요. 견학 내내 뭘 그리 많이도 적고 그렸어요? 아주 모범생이던데요.”
“피~ 그런 말 하는 윤재 씨는 마음속으로 그려 넣던데요. 아마 결과물 아웃풋은 윤재 씨가 훨씬 풍성할걸요.“
‘어찌 알았지? 나에 대한 일거수일투족을 꿰고 계시는구먼. 내사 옛 추억에도 잠기느라 그랬던 건데. 그걸 말해줄 수는 없잖아.’
강윤재가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배가 부른지 얼굴에 여유가 피어났다. 하는 일에 몰두하고 집중하다 보면 시간은 금세 지나가고 배에서는 쪼르륵 소리가 나고, 때 되어 밥을 먹으면 꿀맛이고.
옆자리에서 식판을 딸각거리며 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는 공장 근무자들이 든든해 보였다. 지금 여기, 삶의 일터가 참 좋다.
오후 견학 공정은 주물 공장에서 시작되었다. 작업장 온도가 불가마처럼 열기가 후끈후끈했다. 주물 작업을 현장 근무자들의 이마에서 구슬땀이 뚝뚝 떨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해도 땀이 났다. 마스크 낀 신입사원들 얼굴이 홍시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곳 주물공장은 특수한 작업 공정입니다. 1,200도의 용광로라 작업장 전체가 무척 뜨겁지요. 간단히 설명해 드리고 빨리 이동할게요.
용광로에서 선철을 녹여 거푸집에다 쇳물을 부어서 굳히는 공정을 주조(鑄造)라 해요. 그 제품을 주물이라 하고요.”
이중진 작업반장의 공정 소개를 들으며 바삐 움직였다. 공장 밖으로 나오자 마스크를 벗고 이승태가 콜록콜록 기침했다.
공장 안에 날리는 주물사 먼지를 뱉어내는 것 같았다. 서혜림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다.
“작업 조건이 무척 열악하지요. 용광로 옆은 60도를 넘어요. 그야말로 살이 익을 정도로 뜨겁지요. 불행히도 안전사고가 가끔 나와요.
작업자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면 고맙고요. 다 우리 회사 가족이니까요.”
주물 공장 주요 공정을 보여주고 설명을 마친 이중진 작업반장의 말이 가슴에 내리꽂혔다. 이런 악조건에서 20년이나 근무해왔다는 작업반장, 집안에서는 든든한 가장이 존경스럽게 보였다. 윤재는 다시금 마음을 다졌다.
‘이런 회사를 언젠가 거저먹으려는 날강도 같은 경쟁사로부터 지켜내야 한다. 남이 잘되는 것, 지켜보며 침 흘리다 땀 흘리지 않고 강제로 넘어가게 할 수는 없다.’
“여기는 완성차 조립 공장입니다. 안내를 맡은 전 정광훈 기사입니다. 차체 공장에서 나온 바디 부품이 페인트 작업을 마치며 도장 공장을 거쳐 이곳 조립공장으로 컨베이어 라인을 타고 옵니다.”
흰색, 까만색, 회색, 은색 바디 구조물이 차례로 천장에서 라인을 타고 내려오며, 아래 라인에 흘러가는 엔진 트랜스미션 차축 구조물에 도킹했다.
바디 구조물과 차축 구조물이 하나로 결합하자 근무자들이 전동 건으로 볼트 너트를 조였다. 일사불란한 손놀림이 한 편의 매직 쇼를 보는 것 같았다.
견학하는 신입사원들의 입에서 탄성이 연발했다.
“우~와~. 어떻게 저렇게 순간순간 제때 구조물을 흘러가게 만들고 결합까지 하다니~. 그걸 튼튼하게 조이고 다른 부품들을 가져다 장착하고~”
“네. 고도의 생산 기술이 결합하는 완성차 공장은 예술품을 만들어내는 현장입니다. 지금은 승용차 생산 중인데요.
차량 사양이 다 달라요. 고급형, 표준형에다 차량 색깔도 다르지요. 그에 맞는 부품들을 골라 조립 장착해야 해요.”
조립 컨베이어 라인 바깥 양쪽에는 차량에 조립될 여러 부품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흘러가는 컨베이어 라인 속도에 맞춰 자기 작업 공정 내에서 숙련된 손놀림으로 부품들을 가져다 조립하는 근무자들이 경이롭게 보였다.
“우와~ 자동차 부품들 다 깔려있네요. 바닥 매트, 의자 시트, 운전대 결합체, 전선줄 다발, 천장에 붙일 내장재... .”
거구의 신입사원 송광섭이 왕방울만 한 큰 눈을 굴리며 감탄사를 외쳤다. 정광훈 기사가 웃으며 호기롭게 바라보는 송광섭에게 답했다.
“여기선 딴생각을 못 해요. 자칫하다간 다른 사양 부품을 조립하는 실수를 하거든요. 그러면 완성차 검사장에서 조립 불량으로 체크되고 수정 작업하려면 무척 힘들어요.
차량 사양 번호에 맞게 조합을 이뤄서 작업해야 해요. 확실한 숙지가 필요해요. 불량률 제로를 목표로 매진하고 있어요.”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볼 게 천지였다. 예정된 스케줄을 따라 다음 공정으로 이동해야 했다. 조립공장을 벗어날 때였다.
설비에 문제가 있는지 높은 사다리에 올라서서 보수작업을 하는 용접 작업자가 보였다. 용접 헬멧을 쓰고 용접봉을 구조물에 대고 불을 뿜어냈다.
견학하는 신입사원들이 곁을 지나가자 궁금했던가. 용접하는 손길이 잠시 주춤했다. 다시 이어지는 용접 작업이 한쪽으로 쏠리는지 계속 불꽃이 옆으로 튀었다.
용접 조각물이 아래 옆쪽으로 떨어졌다. 불똥이 떨어진 곳에 불이 확 붙었다. 인화성이 있었는가. 쌓아둔 자동차 내장품이 그대로 타올랐다.
순식간이었다. 비상상황이었다. 그것을 확인 못한 용접자는 용접 헬멧을 낀 채로 계속 용접 불꽃을 뿜어댔다.
“불이야! 비상! 빨리 도피해요. 밖으로 어서들 튀어! 소화기가 어딨지?”
강윤재의 단호한 외침에 모하비 견학 팀원들이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강윤재는 소화기를 찾으러 옆으로 달려갔다. 공장 구석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며 급하게 살폈다.
저만치 벽에 비치된 분말 소화기가 보였다. 잽싸게 뛰어갔다. 허겁지겁 소화기 고정 클립을 풀고 소화기를 확 빼냈다. 화재 진원지로 속사포처럼 뛰었다.
소방대원처럼 순발력 있게 소화기 안전핀을 제거 후 불길에 그대로 발사했다.
“치~이익! 칙칙!!”
회색 연막을 내뿜었다. 불이 타오르는 바닥 매트 제품에 정신없이 쏘아댔다. 소화기 분말이 거의 다 분사되었다.
마침 조성만이 가져다준 또 다른 소화기 안전핀을 빼서 또 쏘아댔다.
그때 웬 불덩어리가 위에서 툭 떨어졌다. 강윤재 등으로 불이 옮겨붙었다. 순식간이었다.
“안~돼!”
화재를 피하던 서혜림이 이 광경을 보다가 기절할 듯 고함을 질렀다.
강윤재가 소화기를 들고서 시멘트 바닥 쪽으로 뛰었다. 그대로 굴렀다.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철조망 낮은 포복 식으로 드러누워 박박 움직였다.
다시 일어나 화재진원지로 달려가 남은 소화기 분말을 남김없이 다 쏘아댔다.
다행히 다른 작업자들이 몰려와서 작은 불씨까지 완전히 소멸시켰다. 작업장에서 안전사고는 순식간이었다.
옷과 얼굴에 검은 밀가루를 뒤집어쓴 듯한 강윤재 옆으로 누군가 달려왔다. 어깨를 툭 두드리며 한마디 했다.
“수고했어요. 강윤재 사원. 위험 상황에서 보여준 대처능력!”
아침에 본 이재선 공장장님이었다. 마침 조립 라인 공정을 둘러보다 사고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뛰어온 거였다.
하루 자동차 공장 견학을 마쳤다. 용인 연수원으로 복귀하는 버스에서 강윤재의 마음이 착잡했다. 설비 보수 작업하던 용접공이 눈에 밟혔다. 어떤 불이익 조처가 내릴지 염려되었다.
‘지난 삶에서 젊음을 불살랐던 자동차 공장엔 예측 불가한 사고들이 똬리를 틀고 도사리고 있었지. 여러 귀한 생목숨들이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을 목도했으니까. 이번 생에는 그런 안타까운 산재도 피하고 막아야 한다.’
연수원에 복귀해 하루를 정리했다. 연수원장님이 직접 주도하는 마무리 시간을 가졌다.
자동차 공장 견학을 다녀온 소감을 돌아가며 한 마디씩 간단히 발표했다. 최해석, 김진석, 남인분, 조홍택, 서혜림, 송광섭... .
기계공업의 꽃, 방대한 규모, 2만여 부품의 조립체, 열악한 주물공장, 철저한 준비의 도장공장, 순식간의 사고. 현장 단어들이 컨베이어 라인처럼 움직였다.
신입사원들의 마음가짐이 현저하게 탄탄해진 느낌이었다.
강윤재가 잠깐 생각에 잠겨있을 때, 연수원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윤재 신입사원! 앞으로 나와 줄래요. 오늘 공장견학 중, 위험한 상황에서 행한 일과 그에 대한 느낌을 말해주세요.” *
4화 끝. (5,096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