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등학교 동창이며 현재 지방에서 성형외과 원장을 하고 있다. 그는 지방대 의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연세대 병원 성형외과 레지던트를 했다(지방대 출신이 거기 성형외과 가기 매우 어렵다. 본교 출신도 어렵다). 그 친구가 거기 들어가보니 고관대작 자손들이 매우 많았다고 한다. 어느 누구 할아버지는 전 국무총리고...하는 식이다. (그 친구 부친은 평범한 공무원이다. 그래도 충주에서는 공무원은 중상류에 속하며, 그 부친은 정보력과 판단력, 추진력으로 공부잘하는 큰아들은 치과의사를 만들었고, 둘째아들은 성형외과에 가게 했다. 그 친구의 성형외과 개원 비용 3억을 모두 형이 대주었고 그는 개원 2년만에 다 갚는다. 똑똑한 아버지에 똑똑한 형에 똑똑한 동생이다.) 아마 그 친구가 레지던트 하면서 지방대 출신이라 상대적 자괴감을 많이 느끼지 않았을까. 그때 교수님이 그런 말을 했단다. "자신감을 가져라. 너는 지방에서도 잘해서 여기 오지 않았느냐. 여기 애들도 여기 오기 힘들어 다른 데로 대부분 나간다. 넌 충분히 여기 있을 자격이 있고, 뛰어나다."고.
어쨓든 그 친구 개원하고 몇년후 그 친구가 내게 말한다. "규호야, 나는, 내 세대에는 내가 상류층이 될 수 없다고 봐. 내 자식 대에는 상류층이 될 수 있겠지'라고. 그 친구는 아마 한달에 수천만원 혹은 그 이상(1억이 넘을 수도 있다) 이익을 내고 있었고 눈틔임 수술과 관련하여 성형외과계나 지역사회에서 유명한, 저명한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의 판단에 따르면 자신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자신은 우리나라 상류층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상류층은 한 세대에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다.
우선 상류층이란 말부터 바로잡자. 우리나라 언론은 돈이 많으면 상류층이라 표현한다. 그런데 이는 틀린 표현이고, 그렇게 써서는 안 된다. 돈 많은 사람은 부유층이지 상류층이 아니다. 돈 없으면 빈곤층이지 하류층이 아니다. 물론 상류층 중에 부유층이 많지만 그 두 단어는 같은 의미가 아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일반 언론이 흔히 말하는 '상류층'이 아니라 '돈만 많은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도 있고, 권력과 명예, 명성도 있는 계급'의 의미로 '상류층'이라는 의미를 사용하겠다.
이 시대에 상류층이라고 한다면, 자신과 자식세대, 자손세대까지 편안하게 공부하고 생활하고 최소한 자식들이 결혼할 때 강남에 집 한 채 정도는 사줄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있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에 종사하거나 종사하였고, 또한 자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자식이나 손자를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빽으로 취직시킬 정도의 힘이 있어야 하고, 사회 저명인사들, 고위층과 인맥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고위 검사 출신이고, 그 아버지는 고위 공무원 출신이고, 서울 근교의 상당한 재력가의 자손이며, 그 처가 역시 상당한 지방 재력가이다. 그 분은 자신 딸이 명문여대를 졸업할 때 여러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취직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유명 공기업, 선망의 대상인 유명 로펌, 세계적으로 유명한 컨설팅회사, 재벌 대기업 등에는 힘있는 사람들의 자녀들이 그 부모의 빽 또는 후광으로 많이 들어가고, 그 회사들은 그 부모의 후광을 기대하며 그 자녀를 받아들인다. 그자녀의 취업은 그 회사로서는 그 아버지에 대한 뇌물의 성격도 된다. 예를 들어 국세청의 고위관료 자녀가 내가 있는 회사에 지원하였다면 얼씨구나 하고 받아들이겠다. 그러면 그 관료가 우리회사를 도와주면 도와주었지 해꼬지하지는 않을테니까. 또한 내가 그 아들에 주는 월급은 어떻게 보면 그 아버지에게 주는 뇌물이 된다. 우리 법인에서 고용변호사를 뽑을때 어떤 사람은 지금은 대법관이지만 당시는 서울법대 교수인 저명한 교수의 추천서를 갖고 응시했다. 그는 추천서 복사본(원본이 아닌)을 갖고 왔고, 우리 법인이 채용을 하려 했으나 다른 곳으로 갔다. 위 채용과 관련하여 그 교수로부터 전화가 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로펌 채용시 추천서를 제출하는 경우는 난 처음 들었다. 그것도 복사본을 낸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또다른 어떤 분 역시 서울 법대 출신의 고위 검사 출신이고, 그분 역시 지방의 전통적인 대지주 양반가의 자손이며, 그 형제들 모두 대학교수나 의사 등을 하고 있다. 그분 자녀나 며느리 역시 모두 전문직이며 유학파이다. 그 분은 평소 대학 선후배인 전직 법무부장관이나 전직 검찰총장 등과 두루 친하게 자주 어울린다. 아마 사회에서 그분은 어떤 기관에라도 마음만 먹으면 힘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주위 인맥을 동원하여.
또 다른 어떤 분은 서울 법대 출신의 고위 법관 출신인데, 아버지는 일제시대 고위 공무원을, 장인도 고위 공무원을 했고, 그분 자녀들 역시 전문직에 유학파이며, 그분 현재 재산은 내가 자세히 모르나(일제시대 고위공무원을 부친과 장인이 했으므로 상당히 부유했을 것으로 보고, 그 분도 고위법관 출신으로 이미 변호사를 30여년째 해오고 계시니 마음만 먹었으면 엄청난 부를 축적했을 수 있다) 매년 한번씩 1억원 정도를 들여 자식들, 손자들 20여명을 모두 데리고 유럽이나 미주 등 해외여행을 다녀오신다. 모든 비용은 그 분이 대시며, 그 가족들로만 하나의 패키지를 계약하여 현지에서 버스를 전세내 다닌다고 한다. 여행사도 그분이 고문계약해서 자문해주는 여행사이므로 그분 가족은 여러 할인과 특별서비스를 받는다.
위에서 말한 세 분은 졸부도 아니고, 재산이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갑부는 아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충분한 경제적 여유가 있고, 그러면서도 매우 지성이 있고, 박식하며(엘리트란 뜻이다) 사회적 위치도 높고, 고위층이나 인텔리와 교분이 깊은 특징이 있고 대체로 매우 지혜로우시다.
나는 시골 출신이지만 서울대에 들어갔더니 서초구, 강남구의 부잣집 자녀들이 수두룩했다. 그들은 중구난방이고 괴짜가 많은 지방이나 서울 변두리 출신들에 비해 조용하고 얌전하게 학교를 다녔지만, 결국 나중에 좋은 자리에 있는 것은 그들인 경우가 많았다. 클래식기타 동아리에서 알게된 어떤 부유한 집 여학생은 심리학과를 나와 유학을 다녀오고 현재 수도권 소재 대학의 저명 교수가 되어있고 방송에도 자주 나온다. 나는 그 때 그 친구가 교수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학 교수는 되기가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되더라. 그것도 여학생이.
사실 나 역시도 부모님의 힘으로 지금 이 위치에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졸업하시고 사립중학교 서무과장(시골에서는 상당한 화이트칼라다) 하시면서 월급 모아 땅을 사들이셨으나 1950년대에 면 단위 마을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아버지의 동네 친구분들은 초등학교도 가지 못하셨다. 아버지를 고등학교까지 보내신 것은 할아버지의 힘이고, 할아버지는 강인한 체력과 근성, 지혜로 일을 하셔서 땅을 모으고 아버지를 가르치신 것이다. 아버지 대에 이르러 우리 집의 땅(돈 5천평에 임야, 밭 2천평 정도)은 우리 마을에서 가장 많았다. 시골에서 화이트칼라로 사신 아버지의 덕이다. 아버지는 재정적인 면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매우 존경받는 위치에 계셨다. 당시 서무과장은 서무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셔서 졸업생들은 모두 아버지를 선생님이라 불렀고, 인격적으로도 존경을 받으셨다. 과거 국회의원 선거가 있으면 후보자가 면에서 가장 명망있는 사람으로 아버지로 골라 아버지에게 면의 선거위원장을 맡기기도 했다. 어머니 집안은 노은면에서 사람들로부터 높게 인정받는 집안이었다. 할아버지의 재력과 아버지의 학력으로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하였고, 어머니의 지혜로움, 강인함은 우리 6남매를 모두 전교 1, 2등으로 자라게 했다. 나는 시골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하다는 자부심이 있었으나 그 외에도 아버지의 평판, 명성을 항상 의식하고 이에 걸맞도록 열심히 노력한 측면이 있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주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항상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단지 아버지가 부자라고 하여 자식이 공부잘하는 것이 아니다. 졸부 자식들, 공부 그렇게 잘 못한다. 아무리 비싼 과외 시켜도 효과 낮다.
말이 자꾸 길어지는데, 어쨓든 내가 서울대 학부를 졸업하면서 석사와 박사를 가게된 것도 아버지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만약 집이 어려웠다면 나는 바로 취직을 하든가 결혼을 하든가 해야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집안의 부양을 신경쓸 필요 없이 내가 하고싶은 대로 인생계획을 짤 수 있었고, 거기에 어느 정도는 아버지가 지원을 해주실 수 있었다. 그리고 30살에 고시공부를 시작할 때에도 아버지는 정정하셨고,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셨다. 해외 유학을 보내주실 정도는 아니지만 고시공부 2-3년 정도는 뒷바라지 해주실 형편은 되셨다(이것은 학부, 석사, 박사 10년 동안 단 1원 하나 내가 아버지로부터 돈을 받지 않고 내가 알바를 해서 충당했기 때문에 고시 비용을 부모님께 달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역시 아버지가 몸이 편찮으시거나 내가 당장 돈을 드려야 하는 입장이었다면 나는 고시공부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장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결국 나는 2-3년의 내 시간을 투자했고, 아버지는 수천만원의 돈을 투자했으며, 그것이 성공하여 현재 내가 이 자리에 있다(물론 내가 성공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때 그 '투자'는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생은 투자다. 큰 투자를 해야 큰 성공이 뒤따른다. 그런데 투자를 하려면 투자금이 있어야 한다. 당장 식구를 부양해야하는 젊은이라면 투자할 투자금이 없다. 투자할 시간도 없다. 그래서 마음대로 투자를 하지 못하고, 쪼금 투자해서 쪼금 이루어 살아가게 된다. 삼성전자가 지금 반도체와 휴대폰, 디스플레이에서 세계 선두인데, 이는 투자를 할만한 엄청난 자금이 있기 때문이다. 그 자금으로 뛰어난 수천의 인력을 스카웃하고 막대한 연구비를 들여 결국 전세계 1등의 위치에 올라 그 투자비의 수십배의 이익을 내는 것이다. 이에 반해 다른 기업들은 돈이 부족해 인력을 과감히 못뽑고 투자도 제한적이다.그래서는 삼성전자와 같은 결과를 낼 수 없다. 사람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고시, 시험, 유학, 석박사 모두 투자다. 돈과 시간이 필요하며,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대체로, 부모가 이것을 해줄 수 있다. 그래서 대체로, 우리나라에서 자식의 성공은 부모의 영향이 크다.
안철수를 보자. 그의 아버지는 의사다. 부산에서 1960년대부터 의원을 개설하여 현재까지도 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1960년대에는 의사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귀했다(물론 지금도 귀하지만 비교불가다). 심지어는 서울에서 개원하면 하루 버는 돈이 서울 집 한채 값이었다는 말도 있다. 의료보험도 없었고, 진료비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그리고 환자도 많았고 의사는 적었다. 당연히 돈을 자루로 쓸어담았다. 안철수 역시 서울대 의대에 간다. 안철수는 사실 의대에 안가도, 전혀 공부를 하지 않고 놀아도 아버지가 번 돈으로 평생 잘 살수 있고, 자기 자식대에까지도 편안하게 영화를 누릴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안철수마저 의대에 간다. 안철수가 컴퓨터에 흥미를 느끼고, 의사의 일을 미루고 컴퓨터 바이러스에 빠질 수 있었던 것도 '의사일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생활이 가능하며, 설사 컴퓨터 사업이 망한다해도 걱정할 것이 없다'라는 조건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만약 안철수 아버지가 의사가 아니라 일반 농부나 셀러리맨이라고 하자. 그럼 안철수의 생계, 생활은 오로지 안철수가 책임져야 한다. 그렇다면 사업을 함에 있어 훨씬 더 신중해진다. 그 성패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휘청대게 되니까. 안정적인 의사 진로를 버리고 컴퓨터 업무로 갈아타기가 쉽지 않다. 어렵다. 안철수는 자신의 아버지가 부자여서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가 컴퓨터에 일찍 관심을 가진 것도 일찍 컴퓨터를 접해서인데 그 역시 아버지가 부자니까 가능했던 것이다.
미국의 빌게이츠, 페이스북의 창시자 주커버그 모두 엄청난 부잣집(재벌 수준)의 자제들이다. 그들이 하버드 학부를 들어간 것은 그만한 재력이 있기 때문이며, 하버드를 중퇴하고 컴퓨터 관련 사업을 시작한 것도 '이것 까짓것 실패해도 큰 상관 없어. 어차피 아버지 재산이 있잖아!'라는 믿음이 있으니 가능했던 것이다. 일반 중산층의 자식이라면 하버드 절대 그만두지 못하고, 자신의 전공과 무관한 사업을 시작하기 어렵고, 통상적으로는 전문직의 길을 간다.
여러분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식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맞다. 부모가 잘나고 부유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하여 훨씬 유리한 위치에서 출발한다. 그런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1) 아주 똑똑하고 열심히 살아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지혜와 노력과 정성과 경제적 지원을 다 모아 키우고 가르친 자녀와 (2) 성실하지 않고, 충동적이며 자기 관리 하지 못하고 화목한 집안 분위기도 만들지 못하는, 좀 무책임한 부모 밑에서 제대로 사랑도, 지원도 받지 못하고 큰 자녀, (3) 특별히 문제는 없지만 평범한 부모 밑에서 평범한 가르침과 지원을 받고 자란 자녀가 있을 때 누가 성공에 이를 확률이 클까. 성공에는 경제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부모나 친인척, 주위사람들이 주는 가르침, 교훈, 권유, 지도, 관심, 상담, 성공사례 제공 등도 매우 중요한데, (1) 출신의 자녀들은 그것마저도 되기 때문에 성공할, 그것도 크게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내가 요즘 감탄하고 있는 김어준 총수도 그 어머니나 아버지는 매우 지혜롭고 사랑이 넘치는 분들로 보인다. 그런 부모 밑에서 김어준은 성장한 것이다.
자, 이제 이 글의 주제를 말하자면, 자신의 여건이 위 (1)과 같지 않다면, 자신의 여건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여건 부족을 보충하기 위하여 (1) 출신 사람들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되도록 주위의 현자들을 찾아 관계를 맺고 그들의 금싸라기 같은 조언이나 고급정보를 받아들이고, 또한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항상 잊지않고 부단하게 노력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당신은 크게 성공할 수 있고, 당신이 무엇을 원하든 그 자리에 오를 수 있고, 당신 자신이 상류층이 될 수 있다. 물론 그 확률이 (1) 출신보다는 낮겠지만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다만 불리한 만큼 더 보충이 필요하고 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노무현은 매우 극단적인 예이지만 아무것도 없는 집에서 결국 상고를 나와 유일한 고졸출신 법조인이 되었고, 변호사가 되어 많은 돈도 벌었고, 인권변호사로 명성도 날렸고, 정치에 뛰어들어 현재 가장 사랑받는(젊은이들로부터) 대통령이 되었다. 강용석 의원도 자신이 고시공부할 때 아버지는 사기범으로 교도소에 수감중이었고, 그래서 좋은 사법연수원 성적에도 불구하고 판사임관이 불가능했고, 그 이후 변호사이자 유수한 집안의 사위가 되었고, 현재 여당 국회의원이 되지 않았는가.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다만 강용석이 안철수만큼 큰 투자를 할 수는 없었고, 안철수 만큼 큰 성공을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안철수의 지금 행동은 전형적인 노블리스 오블리쥬이다. 그는 자신의 노력 이외에 아버지의 재력 및 지원으로 현재 이 자리에 있고, 그 아버지의 재력 및 지원이라는 것도 사실은 당시 의사가 부족한 우리나라 현실의 결과일 뿐이다. 결국 안철수는 자신의 지금 위치와 관련하여 어느 정도는 사회로부터의 빚(?)이 있는 것이고, 그는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하여 현재 매우 바람직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생각의 폭이 확연히 넓어짐을 느낍니다. 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참 많은 것을 되돌아보고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저도 변호사님을 알게 되고, 또 이런 글을 이런 나이에라도 깨우치고 읽고 있다는 것이 참 정도 이상의 인생 길잡이의 덕과 상담과 교훈과 지혜를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1)이라는 케이스가 변호사님 덕분에 덜 부러워 지내요... ^^ 감사합니다.
변호사님의 글을 읽으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상당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적어주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논리가 인생에 대해서 적용하기도 힘든것 같습니다. 알다가도 모를수 있는 오묘한 진리를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좀더 정진해야 겠습니다.
오늘 부모원망 좀 해야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사회에 대해 더 현실적이고 객관적 시각을 갖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굉장히 좋은 글입니다
마져요~ 공감합니다.
변호사님...노블리스 오블리쥬(X) → 노블리스 오블리주(O) 입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집어주셔서 다른각도로 생각하게 해주시네요. 아직까지 안교수가 존경스러운건 그런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알고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보통 성공한 사람들 마인드가 자기가 잘나서 내지는 자기노력만으로 이뤘다고 생각들 하는데 안교수는 조금 다르다는 것, 그래서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가 되네요.
어쨓든 -> 어쨌든.../// 이런 이야기들이 (1)의 케이스와는 좀 거리가 있는 사람으로서 폐부를 찌르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제가 행동을 더 절제하게 되고 지혜롭게 사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변호사님의 존재만으로 감사를 느낄 뿐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변호사님 말씀에 지대한 영향을 받아 남은 인생을 살아갈 것 같네요.
감ㅁ사합니다 ~~ ^^
정말 생각의 외연이 넓어짐을 느낍니다.
좋은글 고맙습니다.
좋은글 고맙습니다.
역시 감탄했습니다.
조금 부정적인 면(인맥, 학맥,등)도 강조되지만, 이것은 미국에서 엄청난 연구비가 투자된 Colman Report의 결론과 비슷한 느낌이네요.
변호사님이 글을 잘쓰시는분인걸 알았지만, 전달하기 약간 불편한 내용을 이만큼 공감을 이끄신 것을 보니 더욱더 놀랍습니다.
모두들 정진하시고. 건강하십시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생각만이라도 반성하게 됩니다...
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해야 겠죠.. 다음 생애엔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게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