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분 |
지역 |
지휘관 |
관할구역 |
5관 (육지행정구역) |
순천도호부 |
부사(종3품) |
여수시, 순천시 일원 |
광양현 |
현감(종6품) |
광양시 일원 | |
낙안군 |
군수(종4품) |
보성군 벌교읍, 순천시 낙안면 | |
보성군 |
군수(종4품) |
보성군 일원 | |
흥양현 |
현감(종6품) |
고흥군 일원, 여수시 삼산면 | |
5포 (수군행정구역) |
방답진 |
첨사(종3품) |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
사도진 |
첨사(종3품) |
고흥군 영남면 금사리 | |
여도진 |
만호(종4품) |
고흥군 점암면 여호리 | |
녹도진 |
만호(종4품) |
고흥군 도양읍 봉암리 | |
발포진 |
만호(종4품) |
고흥군 도화면 발포리 |
잘 아시다시피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낙안군수는 신호(申浩, 1539∼1597)장군으로, 옥포, 사천, 한산도, 안골포, 부산포 해전 등에 출전하여 많은 공을 세웠으며, 1594년 2월 해임된 후 이순신 휘하에서 조방장으로 근무하기도 하였으나, 1597년 정유재란 때 남원성전투에서 순절하였습니다. 신호가 군수직에서 해임된 후 영남우수사의 군관이었던 김준계(金俊繼)가 직을 이었으며, 1596년에 선의문(宣義問, 선의경)이 잠시 맡았다가 임계형(林季亨)으로 이어졌습니다. 정유재란 때 임계형은 군관으로 이순신을 도왔습니다. 이순신과 함께한 마지막 낙안군수는 방덕룡(方德龍, 1561∼1598)이며 노량해전에서 장군과 함께 전사하였습니다.
신호 장군에 대해서는 닉네임 “신호”님께서 자세히 소개한 바 있어 생략하고, 닉네임 목록에 나오지 않은 방덕룡 장군의 약전(略傳)을 소개합니다.
방덕룡(方德龍, 1561(명종 16)∼1598(선조 31))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낙천(樂天). 할아버지는 병마절도사 호의(好義)이고, 아버지는 원복(元福)이며, 어머니는 안악이씨(安岳李氏)이다. 1588년(선조 21)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그가 굳이 무장이 되고자 하였음은 그의 증조부인 윤(輪)이 동북면 병마절도사로 있으면서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가 순직할 때 창(槍)을 내려주면서 앞으로 국난이 있을 때 나라를 지키라는 유언에 따른 것이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100여명의 의병을 모아 원균(元均)의 휘하에 들어가서 크게 활약하였다.
1597년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낙안군수(樂安郡守)였던 그는 부사(府使) 이영남(李英男), 만호(萬戶) 송여종(宋汝悰)과 함께 절이도(折爾島)에서 복병(伏兵)을 하였다가 적을 협공하여 크게 이겼다. 이듬해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의 선봉이 되어 노량해전(露梁海戰)에서 분전하다가 전사하였다. 형조참의에 추증되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방진님 덧글:가덕진성과 천성진성을 축성하신 방호의(方好義, 무과 급제)의 친손자가 바로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신 낙안군수 방덕룡(方德龍,무과급제)입니다. 방덕룡의 할아버지인 방호의(方好義)의 아버지 방륜(方輪. 무과급제) 역시 4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시고 병조판서에 증직되셨습니다. 또 방호의(方好義) 막내동생 방호지(方好智, 무과급제) 역시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시고 병조판서에 증직되셨습니다. 방륜(方輪)의 네아들 중 두 아들이 무과에 급제하여 병마절도사를 지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方德龍(간의공파)은 이순신의 장인인 方震(판서공파)과는 온양방씨 22세손으로 문중의 같은 항렬이지만 아주 가까운 인척은 아니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