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Htb0HXqXky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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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가 그치면
가을은
더 농염한 모습으로 제 속살을 드러내겠지.
종일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모든 일을 제쳐두고 마음에 남아있던 이야기를 풀어 보려했는데.....
몇 번을 썼다가 지워버리고
이 글마저 나를 속이고 있다면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노라는 마음의 배수진을 치고 가장 솔직한 자세로 나를 벗기는 작업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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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 호흡곤란으로 중환자실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깜깜한 어둠 속 , 시공을 잃어버린 며칠의 시간이었다.
깨어나니 밝은 조명이 조용한 병실에서 누워있었다
기억 나는 건 쓰러지던 순간의 막막함 뿐 ,
"아 ! 살았다" 하는 감격보다 그저 살아있구나 하는 담담함 뿐이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어떻게 넘나들었는지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의사는 아이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 했단다.
요단강가에서 뱃사공을 부르다 깼다느니 하는 영적이거나, 돌아가신 부모님이 손짓을 한다든지 하는 종교적인 따위의 사설도 없다.
그저 삶의 끄트머리에서 잠시 산책하고 돌아왔다는게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 .
그후, 생활은 짙은 허무감으로 가득 찬 공간 속에 떠있는 것 같았다.
희망도 없고 그렇다고 절망도 없었다
삶은 무의미하고 , 내가 기댈 곳이라 믿었던 종교 마저도 어떤 가치를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먹고 살아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가장 낮은 삶의 형태를 유지하려는 본능뿐이었다
아파트 높은 층에서 멍하니 바라보는 일상.
하는 일이라곤 점심과 저녁의 식탁을 차리는 일. 사고 후유증이 남은 아이들을 수발하고
밤이 되면 맑은 술 병의 모가지를 비트는 일 뿐이었다 .
또 한번의 죽을 고비가 왔다
이번엔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 급성 폐렴이었다 .
손 한번 못 쓰고 급작스레 죽을 수 있는 병이었다
그날이 하필이면 몇 해의 백수생활을 마감하고 첫출근 하는 날이었다
억지를 써서라도 병원을 탈출하고 싶었으나 죽고 싶으면 나가라는 젊은 여의사의 독한 일갈에 그만 멈추어섰다.
육체적 고통 . 폐부를 날카로운 대창으로 깊이 찌르고 후벼파는 아픔은 한낱 진통제 따위로는 막아낼 수 없는 고통이었다
세 걸음을 움직이면 새까만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고통. 지난 코로나로 아픔을 겪고 죽어간 이들의 고통을 조금은 알 것같다
젊은 날 길에서 패거리들에게 얻어 맞거나, 군대에서의 심심풀이 삼아 저지르는 폭력 따위는 귀여운 수준이었다.
꼬박 한 달을 채우고 퇴원을 하였다.
두 번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다보니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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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니 철학이니 하는 개똥같은 소리는 집어 치우겠다
남은 날들이 내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
죽었다 깨어난 후의 삶은 그저 여분이었다.
그렇다 . 경험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 순간이 주는 가르침이라할까 ?
만일 , 그 때 그 순간 그대로 삶을 마감했다면
내 주위의 사람들과 멀어진 사람들에게 사랑과 화해의 시간조차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욕심과 잘못에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여분 같은 시간은 진정 뜻깊은 삶을 이어가는 시간이며, 나로 인하여 상처받은 이들에게 겸손의 자세로 화해를 청하는 허락된 기회로 받아드렸다 .
설령, 이르게 그날이 온다해도 마지막 오분전까지 수도자의 길을 따라 가고팠던 , 완성으로 향하는 길을 흐트리지 말아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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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아버지보다 딱 10 년만 더 , 억지를 부려서라도 10 년만은 더 살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아비없는 그 고통을 넘겨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날개 꺽인 새들의 초라한 삶을 다시 겪게 하고싶지 않았다
이제, 그 때의 희망보다 한참이나 더 살았다.
그것은 삶에 대한 미련이나 집착처럼 의미없는 고집은 없다는 뜻이다.
나의 존재가 누구에게인가 한 그릇 밥이되고,
차가운 겨울 들판의 나그네에게 기꺼이 동행의 어깨가 되어주고 ,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맥박아 뛰는 체온을 나누고 싶었다.
몇 해전 내가 사는 동네의 주민센터에 몇 가지 문의를 했다
평소 생각했던 것들을 실천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 내가 생각하는 것은 거리가 있었다.
주변의 홀로 생활하는 노인의 소개를 부탁했다.
나 역시 넉넉치 못한 생활이라 먹을 음식이나
옷가지 등을 나누며, 시간을 내어 대화와 소통 , 그리고 안위를 묻고 관심을 주고 싶었다.
돌아오는 답변은 어렵다는 것이다.
나의 의향은 이해할 수 있고 좋은 생각이나,
그것을 빙자하여 그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그러한 일이 다반사였다는 것이다.
사기 . 절도로 이어지는 일이 종종 있고 , 먹는 음식에 대한 의심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면서 허가받은 봉사단체나 종교단체에 기부를 하는 쪽을 권유하였다.
개인과 개인도 사랑을 가장하여 상처를 준다는 것까지 생각치 못한 내가 어리석었다.
세상 일이 내가 마음 먹은대로 되는 것은 아니나 또 다른 길이 있거니했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몇 푼의 금전을 정기적으로 기부하거나, 일시적인 행사에 모르게 지폐 몇 장을 놓고 오는 일이었다.
그렇게 처음 나의 생각과는 괴리가 있었다.
옛날 몸 담았던 교회의 형제들이 한 달에 한번씩 식사와 빨래 봉사를 한다.
몸을 전혀 가누지 못해서 밥까지 먹여줘야 하는 이에게 전하는 육체적 사랑의 실천이었다.
그마저도, 근무 시간과 겹치는 날이 많아 뜸벙뜸벙 참석하자니 눈치가 보였다.
결국은 손을 놓고 말았다.
세속의 단맛 보다는 게으른 머슴의 변명이 되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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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곳 ( 아름다운 5060 ) 에 오기까지 이상한 인연을 끈을 이어주고 간 친구가 있다
사실 내 취향의 녀석은 아니었다 .
무관심으로 일관했으나 그 친구는 나를 좋아하는 눈치였다 .
몇 번의 조우가 있었으나 그 장소까지 기억하는 그와 손을 잡아주지 못했던 무심했던 나 .
갑자기 비보를 듣게 되었다 .
내 주변에 온기를 나누어야 할 벗을 직무유기 한듯한 착찹한 기분이 들었다 .
먼저 살던 집 .아랫층의 독거노인이 세상을 뜰 때도 무관심 했었는데 .....
나의 사랑은 내 안에서만 머무는 허울좋은 사랑이었다.
행동이 따르지 못했던 허울만 좋은 사랑이었다.
바리새이처럼 위선으로 포장된 거짓과 나태로 똘똘 뭉쳐진 , 세 치 혓바닥으로 앵무새처럼 사랑을 외쳐대었다
가증스러웠다.
날마다 반성한다고, 기도한다고 했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
어느 하늘 아래 머리를 들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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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해 " " 미안합니다 "
요즘 내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이다.
미안할 짓꺼리 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니겠나 ?
그렇다.
그런 말을 자주 한다는 것은 나의 과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mea culpa, mea culpa, mea maxima culpa .
나의 탓이요. 나의 탓이요 . 나의 큰 탓이로소이다 .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
지난 삶에서 내가 무시하고, 상처주고, 손해를 끼치고 , 어둠을 끼쳤던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진심으로 화해를 청하는 자세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존심과는 상관이 없다
나는 무릎을 꿇을 것이다
"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
참 짧고도 아름다운 말이다.
나를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은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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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런 말을 썼다
" 여기까지 올줄 몰랐다 " 고
매일이 나의 마지막날인 것처럼
준비하는 자세로 살아가려 한다
사랑하고 용서하고
사랑받고 용서받고
따스한 영혼의 체온을 전하는 길
사랑하며 살아가는 길이 완성으로 가는 길이니, 주어진 부록같은 시간을 꽃길보다
자갈길을 걷고 싶다.
내가 죽음으로 누군가 살아난다면 .....
가을이 깊어간다.
몇 번의 가을이 내게 허락되어 있을지 모르나
그길은 평화로운 길이기를 소망한다
푸른 하늘에 한 점 구름처럼 그렇게 .....
☕
巳足.
설익은 과일이 계절을 아쉬워 합니다.
초겨울 서리내린 나뭇가지에 달린
과일 한 알 맛보는 기분으로 .....
2023 늦가을 / 제주에서 녹동으로 오는 뱃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