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6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우리는 집을 짓는 사람들이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나무가 필요하고 나무를 하기 위해서는 도끼가 필요하다.
집을 지을려고 하는 사람이 도끼가 없어 빌어와야 한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내 도끼가 아니니 손에 맞지를 않았고 손에 맞지 않는 도끼로 나무를 하려니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다.
빌려온 도낀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때 엘리사가 나무가지 하나를 물에 띄웠고 도끼가 물위로 떠올랐다.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할려고 하는 일들이 마치 자루 빠진 도끼같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해서 주신 일이다.
자루빠진 도끼....
도끼가 자루가 없으면 쓸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성령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을수가 없다.
성령은 없이 내 생각과 내 힘으로 하나님의 집을 지을려고 하는 것이 마치 자루 빠진 도끼와 같다는 말씀이다.
그것이 물에 빠진 도끼같이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다.
아람왕 벤하닷 2세가 이스라엘을 침공하기 위해서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아람이 어디 어디로 침공할지 그 계획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 의해서 미리 다 드러났고 이스라엘이 사전에 철저히 대비하는 바람에 아람의 공격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엘리사부터 처치해야겠다 싶어 아람은 엘리사가 있는 도단으로 쳐들어가 포위하였다.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그도 그럴수밖에 수도없이 많은 적군들이 성을 2중 3중으로 에워싸서 독안의 든 쥐 신세가 되었으니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그러나 엘리사는 태연했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을까?
두려워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적군보다 훨씬 많고 훨씬 강하다. (16절)
어디? 어디?
아무리 돌아보아도 없다.
왜일까?
실제(?) 땅의 군대가 아니라 하늘의 군대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군대??
환상을 말하는게 아닌가?
그래 맞다.
실제로 눈으로 볼수 있는 그런 군대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어느 누구에게는 없는 존재로 여겨지겠지만 그러나 눈으로 볼수 없다고 해서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영적 실체...
최근에 많이 나누는 내용이다.
영적~ 이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은 없는 것~으로 이해되어진다.
영적이지만~ 눈으로 볼수 없고 손으로 만질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그것을 영적 실체(spiricual reality) 라고 한다.
이런 영적인 것을 없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 않다.
영적인 실체를 이해하지 않으면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 설명할수 없는 미스테리한 일들이 너무나 많다.
영적인 실체를 이해해야지만 그 모든 것을 완전하게 설명할수 있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만 인정하는 것이 '합리'라고 여겨지는 것이 세상이다.
그래서 내 힘과 내 능력을 의지하여 내 생각과 내 판단을 따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하나님은 자루빠진 도끼~라고 하신다.
내 힘과 내 능력으로 감당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힘입지 않고서는 우리가 생존의 문제를 넘어서 하나님의 집을 짓는 일들을 할수 없기 때문이다.
아람군대가 도단에 들어가자 하나님은 아람군대의 눈에 혼동을 일으켜 도단이 아니라 사마리아에 이르게 하셨고 다시 그들의 눈을 열어 불말과 불병거를 탄 하늘 군대를 보고 퇴각하게 하셨다.
이후에 아람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사마리아성으로 쳐들어 봉쇄작전을 펼쳤다.
물과 식량이 스스로 항복하고 나오게 하는 작전이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예배하고 찬양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점점 먹을 물과 식량이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사람이 먹을 것도 없으니 짐승들이 먼저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고기를 먹다가 그것도 바닥이 나자 평소에는 먹지도 않을 썩은 당나귀 머리가 비싼 값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콩처럼 생기나 비둘기똥이 식량으로 둔갑하여 팔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하나님의 구원은 임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굶주림에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어른들이야 나무 껍질이나 거친 풀이라도 삶아먹고 연명했지만 어린아이들은 먹일 젖이 없어 죽어가기 시작했다.
너무나 가슴아프고 참혹한 일이었다.
자식을 장사해서 땅에 묻을려고 하는데 동네 사람들이 몰려왔다.
어린아이의 시신을 삶아서 먹자는 것이다.
그리고 내일은 자기 자식이 죽으면 그걸 나눠먹잔다....
누가 이런 참혹한 상황을 견딜수 있으랴....
내 힘과 내 의지로 감당할수 있는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아합의 합리주의에서 부터 시작되었슴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를 따르기를 좋아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바알과 다른 나라의 신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교류하며 화친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평화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병이 나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바알세붑에게 비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썩은 나귀의 머리를 삶아먹을 때까지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다.
콩대신에 비둘기 똥을 주워먹도록 하나님이 오시지 않은 것이 아니다.
죽은 자식을 삶아 먹을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집어넣으신 것이 아니다.
썩은 나귀의 머리를 먹으면서도.... 비둘기의 똥을 주워먹으면서도....
급기야 죽은 자식의 시체를 삶아먹으면서 까지도 눈에 보이는 것만 의지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미 불말과 불병거의 하늘군대를 보내 우리를 호위하고 계셨다.
그럼 죽은 나귀의 머리를 삶아먹기전에.... 냄새나는 비둘기의 똥을 주워먹기 전에.... 애지중지하는 어린자식이 죽어나가기전에.....
하늘군대를 등에 업고 아람군대와 맞서 싸우러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보내신 하늘 군대를 보지 못하고 내 힘과 내 능력이 부족하다 하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하나님이 구원하러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믿지 않는 자에게 영적 실체란 그저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눈을 열어 우리를 도우러 보내신 하나님의 군대가 이미 우리뒤에 진을 치고 있는 것을 볼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