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사상
제2장 존재론(存在論) (Ontology)
일반 철학에서 말하는 존재론(存在論)의 희랍어의 원어(原語)는 ontologia로서 onta(존재하는 것)와 logos(論理)의 합성어이며 존재(存在)에 관한 근본문제를 연구하는 철학의 한 부문을 말한다.
그러나 통일존재론(統一存在論)은 통일원리를 기본으로 하여 모든 존재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創造)된 피조물(被造物)이라고 보는 입장에서, 피조물의 속성(屬性)(共通의 屬性)은 무엇이며, 피조물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또 그것은 어떻게 운동하고 있는가를 다루는 부문(部門)이다.
본(本) 존재론(存在論)은 모든 피조물을 그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인간도 피조물이므로 본(本) 존재론(存在論)의 대상(對象)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인간은 만물의 주관주(主管主)여서 만물과 그 격위(格位)가 다르므로 인간에 관해서는 별도로 본성론에서 더욱 상세히 논(論)하고자 한다. 따라서 본(本) 존재론(存在論)은 주로 만물에 관한 이론이라고 할 수가 있다.
원상론은 하나님에 관한 이론이며, 존재론(存在論)은 만물에 관한 설명을 통하여 원상론을 뒷받침하는 이론이다. 즉 원상론은 통일원리에 근거한 연역적(演繹的)인 이론이기 때문에 원상론에서 설명된 하나님의 속성이 실제로 어떻게 만물속에 나타나 있는가, 또 나타나 있다면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가를 명백히 하는 것이 본(本) 존재론(存在論)이다.
그리하여 만물속에 그와 같은 하나님의 속성(屬性)이 보편적(普遍的)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원상론의 참(眞)이성은 한층 더 보장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만물의 속성을 취급하는 존재론(存在論)은 보이지 않는 무형(無形)의 하나님의 속성을 가시적(可視的)으로 확인(確認)하는 이론이라고 할 수가 있다.
오늘날 자연과학(自然科學))은 급속한 발전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과학자들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다만 객관적(客觀的)으로 자연계(自然界)를 관찰(觀察)했을 뿐이다.
그러나 닮기의 법칙에 의해서 만물이 창조되었기 때문에, 자연을 관찰한 과학적 사실이 하나님의 속성과 대응된다는 것이 밝혀지면, 자연과학은 도리어 원상론을 뒷받침한다는 논리가 성립되게 된다.
실제로 오늘날까지의 자연과학의 성과가 하나님에 관한 이론을 뒷받침한다는 사실이 본 존재론에서 증명(證明)될 것이다. 통일원리(統一原理)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을 닮도록 창조되었고(창 1:27) 만물은 인간을 닮도록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우주(宇宙)를 창조(創造)함에 앞서, 마음속에 먼저 하나님을 닮은 인간의 상(像)(모습)을 그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인간의 상(像)을 근본으로 하여 그것을 닮도록, 만물을 하나하나 창조하신 것이다. 이것을 닮기의 창조(創造) 또는 상사(相似, 서로 닮음)의 창조라고 하며, 이러한 창조의 법칙(法則)을 닮기의 법칙(法則) 또는 상사(相似, 서로 닮음)의 법칙(法則)이라고 한다.
그런데 만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지만, 인간은 타락(墮落)으로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도 본래의 모습을 잃고 비정상적(非正常的)인 상태에 놓여지게 되었다.
따라서 현실의 인간과 사회를 그대로 두고서는 존재(存在)의 문제(問題)와 관계(關係)의 문제(問題)의 해결의 길은 찾아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성인(聖人)이나 철인(哲人)들은 하늘의 별들의 운행이나 자연만물의 소장(消長)과 변화(變化)와 四時의 변천속에서 깨달은 철리(哲理)로써 자신(自身)들의 가르침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왜 인간과 사회를 구제하는 진리가 자연계를 통하여 얻어지는가를 알지 못했으며, 단지 직감적(直感的)으로 그러한 진리를 깨달았을 뿐이었다.
통일원리(統一原理)에 의하면, 만물은 본연의 인간의 모습을 표본으로 하여 만들어졌으므로 자연계를 통하여 본래의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원상론에서 하나님의 속성(屬性)을 올바르게 이해(理解)하는 것이 인간이나 사회의 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창조(創造)가 닮기의 창조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屬性) 뿐 아니라 만물의 속성도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이것 또한 현실문제 해결의 열쇠(基準)가 될 것임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존재론도 현실문제(現實問題)를 해결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되는 사상부문(思想部門)인 것이다.
본 존재론에서는 만물 하나 하나의 개체를 존재자(存在者; existing being)라고 한다. 따라서 존재론(存在論)은 존재자(存在者)에 관한 설명(說明) 즉 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존재자(存在者)에 관한 설명은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와 연체(聯體)라는 두 항목(項目)으로 區分하여 개체를 다룬다. 여기서 개성진리체란 하나님의 속성(屬性), 즉 원상(原相)의 내용을 그대로 닮은 개체(個體)를 말하는 것으로서, 하나의 개체에 대하여 다른 개체와의 관계를 생각지 않고, 독립적으로 다룰 때의 피조물(被造物)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개체(존재자)는 상호간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존재한다. 그리하여 한 개체를 다른 개체와의 관계에서 볼 때, 그러한 하나하나의 피조물(被造物)을 연체라고 한다. 따라서 연체(聯體)는 상호관련성을 지닌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를 말한다.
피조물(被造物)(존재자)은 하나님을 닮아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의 모습은 신상을 닮고 있다. 그런데 신상에는 보편상과 개별상이 있기 때문에 모든 개체는 원상을 닮아서 보편상(普遍相)과 개별상(個別相)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보편상이란 성상(性相)과 형상(形狀) 및 양성(陽性)과 음성(陰性)을 말하며, 개별상은 개체마다 갖고 있는 특성을 말한다. 먼저 개성진리체의 보편상, 즉 성상과 형상, 양성과 음성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一.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
1. 성상(性相)과 형상(形狀)
모든 피조물은 우선 원상(原相)을 닮은 속성, 즉 성상과 형상의 두 측면을 지니고 있다. 성상은 기능이나 성질 등 보이지 않는 무형적인 측면이요, 형상은 질료(質料)와 구조, 형태 등 유형적인 측면이다.
먼저 광물(鑛物)에 있어서의 성상은 물리화학적 작용성이며, 형상은 원자나 분자에 의해 구성된 물질의 구조, 형태 등이다. 식물(植物)에는 식물 특유(特有)의 성상과 형상이 있다. 식물의 성상은 생명(生命)이며, 형상은 세포와 세포에 의해 구성된 조직, 구조 즉 식물의 형체이다.
생명은 형체속에 잠재하고 있는 의식(意識)으로서, 목적성과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생명의 기능은 식물의 형체를 통제하면서 성장시켜 가는 능력 즉 자율성(自律性)인 것이다.
식물은 이와 같은 식물 특유의 성상과 형상을 지니면서 동시에 광물 차원의 성상적 요소와 형상적 요소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식물은 광물질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動物)에는 식물의 차원보다 더 높은 동물 특유의 성상과 형상이 있다. 동물의 성상이란 본능을 말한다. 그리고 동물의 형상은 감각기관이나 신경을 포함한 구조와 형태 등이다.
동물도 역시 광물질을 갖고 있어서 광물 차원의 성상과 형상을 내포하고 있고 또 식물 차원의 성상과 형상도 내포하고 있다. 동물의 세포나 조직은 모두 이러한 식물차원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영인체(靈人體)와 육신(肉身)으로 구성된 이중적 존재(二重的 存在)이다. 따라서 인간은 동물의 차원보다 더 높은 특유의 성상과 형상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특유한 성상이란 영인체의 마음인 생심(生心)이며, 특유한 형상이란 영인체의 몸(體)인 영체(靈體)이다. 그리고 인간의 육신에 있어서 성상은 육심(肉心)이고 형상은 육체(肉體)이다.
그런데 인간의 육체(肉體) 속에도 광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은 광물차원의 성상과 형상을 지니고 있다. 또 인간은 세포나 조직으로 되어 있어서 식물차원의 성상과 형상도 지니고 있다.
또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감각기관과 신경을 포함한 구조와 형태를 지니고 있어서 동물의 성상과 형상을 또한 함께 갖고 있다. 인간(人間)속에 있는 동물차원의 성상 즉, 본능의 마음을 육심(肉心)이라 하고 영인체의 마음을 생심(生心)이라고 한다.
이리하여 인간의 마음은 본능(本能)으로서의 육심과 영인체의 마음인 생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육심의 기능은 의-식-주-성(衣·食·住·性)의 생활을 추구하며, 생심(生心)의 기능은 진-선-미-애(眞·善·美·愛)의 가치를 추구한다. 이 육심과 생심이 합성일체화한 것이 바로 인간의 본연(本然)의 마음(本心)이다.
여기서 인간의 영인체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육신은 만물과 동일(同一)한 요소로 되어 있어서 일정한 기간동안에만 생존(生存)한다. 한편 영인체는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영적 요소로 되어 있어서 영원히 생존(生存)하며, 그 모습은 육신과 다를 바 없다.
육신이 죽게 되면 마치 낡은 의복을 벗어 버리듯이 영인체는 육신을 벗어 버리고 영계에 들어가 그곳에서 영원히 산다. 한편 영인체도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二性性相)으로 되어 있는 바, 영인체의 성상(마음)은 생심이며 형상(몸)은 영체(靈體)이다.
영인체의 감성(感性)은 육신 생활중 육신과의 상대적 관계에서 발달한다. 즉 영인체의 감성은 육신을 터로 하고 성장(成長)한다. 따라서 인간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다가 타계(他界)하면, 영인체는 영계의 충만한 사랑속에서 영원히 기쁨의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지상에서 악(惡)한 생활을 하면 사후(死後)에는 악한 영계에 머물게 되어서 고통의 생활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이 인간은 광물, 식물, 동물의 성상과 형상을 모두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터 위에 더욱 차원 높은 성상과 형상, 즉 영인체의 성상과 형상까지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만물의 요소를 모두 총합적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간을 만물의 총합실체상(總合實體相) 또는 소우주(小宇宙)라고 부른다.
이상의 설명에서 광물, 식물, 동물, 인간으로 존재자의 격위가 높아감에 따라서 성상과 형상의 내용이 계층적으로 증대(增大)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존재자에 있어서의 성상과 형상의 계층적 구조(階層的 構造)'라고 한다.
도표로 표시하면 그림 2-1과 같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함에 있어서 광물, 식물, 동물, 인간의 순서로 창조할 때, 새 차원의 특유한 성상과 형상을 다음 단계의 피조물에 더해 가면서 창조를 계속하다가 마지막으로 최고 차원의 인간의 성상, 형상을 만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창조를 함에 있어서 마음속에 먼저 성상과 형상의 통일체인 인간을 구상하셨다. 그 인간의 성상과 형상에서 차례차례로 일정한 요소를 사상(捨象(省略))하여 차원을 낮추면서 동물, 식물, 광물을 구상하신 것이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내에 있어서의 실제의 창조는 그 반대 방향으로 광물에서 시작하여 식물, 동물, 인간의 순서로 행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인간의 성상과 형상은 광물, 식물, 동물의 각각 특유한 성상과 형상이 쌓여서 된 것처럼 보여진다.
인간의 성상과 형상이 계층적(階層的)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그림 2-1)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첫째로, 인간의 성상은 계층성(階層性)을 지니면서 동시에 연속성(連續性)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한다. 즉 인간의 마음은 생심과 육심으로 되어 있으며, 생심과 육심은 서로 연속되어 있다.
그래서 생심으로써 육심(本能)을 조절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 인간의 마음은 생명(자율성)과도 연결(연속)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마음이 자율신경(自律神經)을 조절할 수는 없으나, 훈련에 의해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예컨대 ‘요가’의 수행자(修行者)는 명상에 의해 심장의 고동을 자유로이 증감시킬 수 있으며, 때로는 멈추게 할 수도 있다.
또 마음은 체내의 광물질의 성상과도 통해 있다. 즉 인간의 마음은 대내적(對內的)으로 뿐 아니라 대외적(對外的), 체외적(體外的)으로 다른 광물이나 식물의 성상과도 통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염력(念力) 에 의해서 물리적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동물이나 식물은 물론 물질(광물)에까지 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도 밝혀져 있다. 한편 동물, 식물, 광물이 인간의 마음에 반응한다는 사실도 알려지고 있다.
예컨대 식물의 경우, 미국의 거짓말탐지기 검사관(檢査官)인 크리브 백스터가 실험을 해서 얻은 ‘백스터 效果’가 그 하나의 예이다. 그리고 광물이나 소립자도 자체내에 예지(叡智)나 사고력(思考力)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행해지고 있다.
둘째는, 인간의 성상·형상의 계층적구조는 생명의 문제에 대하여 중요한 사실을 시사(示唆)해 주고 있다. 오늘날까지 무신론자와 유신론자는 하나님의 실존의 유무에 관해서 끊임없이 논쟁해 왔다.
그때마다 유신론자들은 ‘神이 없이는 생명이 만들어질 수 없다. 즉 신(神)만이 생명을 창조한다’는 논거를 가지고 무신론을 제압해 왔던 것이다. 아무리 자연과학이 발달하더라도 생명의 기원에 관한한 자연과학은 합리적인 논증을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생명의 기원의 문제(생명의 창조설)는 유신론이 성립할 수 있는 유일한 거점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 그 유일한 거점이 무신론에 의해 무너지려 하고 있다. 과학자가 생명을 만들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과연 과학자가 생명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현대 생물학에 의하면 세포의 염색체에 포함되어 있는 DNA(디옥시리보핵산)는 아데닌, 구아닌, 티민, 사이토신이라는 4종류의 염기(鹽基)를 포함하고 있다. 이 4종류의 염기의 배열이 바로 생물의 설계도라 할 수 있는 유전정보(遺傳情報)이다.
이 유전정보에 의해서 생물의 구조나 기능이 결정된다. 결국 DNA에 의해서 생명체가 만들어 진다는 결론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과학자가 DNA를 합성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유물론자들은 생명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신(神)의 존재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즉 신(神)은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자가 DNA를 합성한다는 것은, 과연 생명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통일사상에서 보면 과학자가 아무리 DNA를 합성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생명체의 형상면(形狀面)을 만든 것에 불과하다. 생명의 보다 근본된 요소는 생명체의 성상(性相)이다.
따라서 과학자가 만들 수 있는 것은 생명 그 자체가 아니고 생명을 지니는 담하체(擔荷體)에 불과한 것이다. 마치 인간에 있어서 형상인 육신은 성상인 영인체를 지니고 다니는 터전인 것과 같다.
육신은 부모(父母)에서 유래하지만 영인체는 하나님에게서 유래(由來)한다. 마찬가지로 DNA가 과학자로부터 유래할 수 있다 하더라도(즉 과학자가 DNA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생명(生命) 그 자체는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다.
비유컨대 라디오는 전파를 음파로 바꾸는 장치로서, 이것은 방송국에서 오는 전파를 포착하여 음파로 변환시키는 기구에 불과하다. 아무리 과학자가 라디오를 만들었다고 해도 음성까지 만든 것은 아니다. 음성은 방송국에서 전자파를 타고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과학자가 비록 DNA를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은 생명을 유숙(留宿)시키는 장치를 만든 데 불과하므로 생명 그 자체를 만들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우주는 생명이 충만해 있는 생명의 장(場)으로서, 이것은 신(神)의 성상에서 유래한다. 그리하여 생명이 깃들 장치만 있으면 생명은 거기에 나타나게 된다. 그 장치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DNA라는 특수한 분자이다. 이와 같은 결론이 ‘성상과 형상의 계층적 구조’에서 도출되는 것이다.
2. 양성(陽性)과 음성(陰性)
(1) 양성(陽性)과 음성(陰性)도 이성성상(二性性相)이다.
다음은 개성진리체의 양성과 음성에 대해서 살펴보자. 원상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양성과 음성도 하나님의 이성성상이다. 그리고 동시에 성상과 형상의 속성이다. 즉 성상에도 양성과 음성이 있고, 형상에도 양성과 음성이 있다.
먼저, 인간의 성상과 형상에 있어서 그 속성으로서의 양성 음성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인간의 성상은 마음인데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마음에는 지정의(知·情·意)의 세 기능이 있다.
이 지정의(知·情·意)의 각각의 기능에는 양적(陽的)인 측면과 음적(陰的)인 측면이 있다. 이것은 성상(마음)에 양성과 음성이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지(知)의 양적인 측면은 명석, 기억, 상기력, 판명, 재치 등이다. 이에 대하여 지(知)의 음적인 측면은 모호, 망각, 기명력, 혼동, 고지식 등이다.
정(情)의 양적인 측면은 명랑, 시끄러움, 기쁨, 흥분 등이고 정(情)의 음적인 측면은 불쾌, 정숙, 슬픔, 침착 등이다.
의(意)에 있어서는 적극적, 공격적, 창조적, 경솔성 등이 양적인 측면이고 소극적, 포용적, 보수적, 신중성 등은 음적인 측면이다.
형상 즉 몸(신체)에 있어서는 융기된 부분, 돌출(突出)된 부분, 철(凸部), 표면(表面) 등이 양적인 면이며, 함몰(陷沒)된 부분, 공혈부(孔穴部), 요부(凹部), 이면(裏面, 속) 등이 음적인 면이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그림 2-2와 같다.
동물·식물·광물에 있어서도 각각 성상에 양성과 음성이 있고, 형상에 양성과 음성이 있다. 동물에는 활발히 행동할 때(양)와 그렇지 않을 때(음)가 있다.
식물에는 성장할 때(양)와 시들 때(음)가 있다. 즉 꽃은 필 때(양)와 질 때(음)가 있으며 줄기는 위로 향하고(양), 뿌리는 땅속을 향한다(음).
그리고 광물에 있어서는 물리화학적 작용성이 활발하게 진행할 때(양)와, 그렇지 않을 때(음)가 있다. 이것이 각각 성상면에 있어서의 양성과 음성이다.
형상면에도 양성과 음성의 현상이 나타난다. 형상의 돌출부와 공혈부, 높음과 낮음, 표(表)와 리(裏; 속), 그리고 명(明)과 암(暗), 강(剛)과 유(柔), 동(動)과 정(靜), 청(淸)과 탁(濁), 열(熱)과 냉(冷), 낮과 밤, 여름과 겨울, 하늘과 땅, 산과 골짜기 등이 각각 양과 음의 예이다.
이것을 도표로 표시하면 그림 2-2 와 같다.
이상으로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의 성상과 형상에서의 양성 및 음성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런데 각 개성진리체는 성상과 형상이 이와 같이 양성과 음성을 속성으로 지니고 있으면서도, 어떤 개체는 양성을 보다 더 많이 나타내고, 어떤 개체는 음성을 보다 더 많이 나타낸다. 전자(前者)를 양성실체(陽性實體)라 하고, 후자(後者)를 음성실체(陰性實體)라고 한다.
인간에서의 남자와 여자, 동물에서의 수컷과 암컷, 식물에서의 수술과 암술, 분자에서의 양이온과 음이온, 원자에서의 양자와 전자 등이 그 예들인 것이다. 단세포(單細胞)인 박테리아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다고 한다.
(2) 인간(人間)의 경우의 양성실체(陽性實體)와 음성실체(陰性實體)
양성실체(陽性實體), 음성실체(陰性實體)는 특히 인간의 경우, 각각 남자와 여자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자주 쓰인다. 그러면 인간의 경우, 양성실체와 음성실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形狀(신체)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의 양음의 차이는 명백하다. 그것은 양적차이(量的差異)이기 때문이다.
즉 남자의 신체는 여자의 신체보다 양적(陽的)인 요소가 더 많고, 여자의 신체는 남자의 신체보다 음적(陰的)인 요소가 더 많다. 이와 같이 남과 여의 형상에 있어서의 차이는 양(陽)과 음(陰)의 양적(量的)인 차이이다. 이에 반하여 성상(지·정·의)에 있어서 남녀 간의 차이는 질적(質的)인 차이이다.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남녀 다같이 지(知)에도 양·음이 있고, 정(情)에도 양·음이 있으며 의(意)에도 양·음이 있다. 그런데 성상의 양성·음성에는 남녀간에 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예컨대 양적(陽的)인 지(知)의 명석(明晳)인 경우, 男女가 다함께 명석함을 갖고 있으나, 명석의 질이 다르다. 남자의 명석은 포괄적(包括的)인 경우가 많고, 여자의 그것은 분석적(分析的), 또는 축소지향적인 경우가 많다.
또 음적(陰的)인 정(情)인 슬픔의 경우 남자의 슬픔은 悲痛(비통, 억센 슬픔)의 경향이 있고, 여자의 슬픔은 悲哀(비애, 가냘픈 슬픔)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양적인 의(意) 가운데 적극성(積極性)의 경우, 남자의 적극성은 딱딱한 感觸(감촉, 硬性感觸)을 주며, 여자의 적극성은 연한 感觸(軟性感觸)을 준다. 성상에 있어서의 이러한 남녀 간의 차이가 질적 차이(質的差異)이다.
또 다른 예를 든다면, 성악(聲樂)에 있어서 남자의 테너와 여자의 소프라노는 모두 (高音, 陽)이나, 이들은 서로 질이 다름을 볼 수 있다. 또 남자의 베이스와 여자의 알토는 모두 (低音, 陰)이지만 이들도 역시 서로 질이 다르다.
남자와 여자에 있어서 성상의 속성인 양성·음성의 차이도 이와 비슷한 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 때문에 남자에게는 남자다움이 나타나고 여자에게는 여자다움이 나타나는 것이다.
다음은 우주의 창조 과정에 있어서 양·음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하나님의 창조는 양·음의 조화를 활용한 일종의 웅장한 예술 작품에 비유할 수 있다. 조화라는 면에서 볼 때, 하나님은 천지 창조라는 하나의 장대한 교향곡을 연주해 왔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대폭발(Big bang theory...... 아직은 가정(假定)의 단계)로부터 시작하여 은하계를 만들고 태양계를 만들고, 지구를 창조하였다. 그리고 지구에 있어서 식물, 동물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들었다.
교향곡의 연주에 있어서 음의 고저(高低), 강약(强弱), 장단(長短), 양적(陽的)인 악기와 음적(陰的)인 악기의 연주 등, 여러가지 양·음이 조화롭게 작용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 창조의 과정에 있어서도 무수한 종류의 양·음의 조화가 상호작용을 해 왔다고 본다.
은하계(銀河系)에는 약 2천억 개의 항성(恒星)이 있으며 그것들은 소용돌이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다. 별의 조밀한 곳이 양이고, 성긴 곳이 음이다. 지구에는 육지와 바다가 있는 바, 육지가 양이고 바다가 음이다.
산과 골짜기, 낮과 밤, 아침과 저녁, 여름과 겨울 등도 양·음의 조화이다. 이와 같이 수많은 양음의 조화가 얽히고 설키면서 우주가 형성되었고 지구가 형성되었으며, 생물이 발생하고 인간이 출현한 것이다.
인간의 활동도 양·음의 작용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부부(夫婦)의 조화(調和)에 의하여 가정(家庭)이 유지된다거나 미술창작에 있어서 선(線)의 굴곡(屈曲)·색의 명암(明暗)·농담(濃淡)·양감(量感)의 大小 등과 같이 양·음의 조화가 필요하다.
이처럼 우주의 창조에 있어서나 인간 사회의 활동에 있어서도 양성과 음성의 조화가 성상·형상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양·음의 조화적인 작용은 변화나 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미(美)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양성과 음성을 성상·형상의 속성으로 두신 것은 양성·음성(陽性·陰性)을 통하여 조화(調和)와 美를 나타내기 위함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3. 개성진리체의 개별상 (個性眞理體의 個別相)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는 개체마다 普遍相(보편상; 성상·형상, 양성·음성)외에 독특한 속성(屬性)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개성진리체의 개별상(個別相)으로서 원상(原相)의 개별상(原個別相)에서 유래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1) 보편상(普遍相)의 개별화(個別化)
개별상(個別相)은 보편상(普遍相)과 별개의 속성이 아니며, 보편상 그 자체가 특수화(特殊化) 또는 개별화(個別化)된 것이다. 즉 보편상은 성상·형상과 양성·음성이므로 이들 속성이 개체마다 다르게 나타난 것이 개별상(個別相)이다.
人間의 경우 개인마다 性格(성격, 性相)이 다르고 체격이나 容貌(용모, 形狀)가 다르다. 또 성상의 양·음과 형상의 양·음도 개인마다 다르다. 예컨대 같은 기쁨(情의 陽)이라도 그 표현방법이 각각 다르며, 슬픔(情의 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코는 몸의 양적(陽的)인 부분으로서 코의 높이와 모양은 사람마다 각각 다르다. 몸의 음적인 부분인 귓구멍을 보아도 그 크기나 모양은 역시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이와 같이 개별상은 보편상 그 자체가 개별화된 것이다.
(2) 종차(種差)와 개별상(個別相)
일정한 사물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특성을 보통 徵表(징표; Merkmal)라고 하며, 동일한 유개념(類槪念)에 속하는 종개념(種槪念) 중에서 일정한 종개념에 나타나는 특유한 징표(徵表)를 種差(종차; specific difference)라고 한다.
예컨대 '사람'은 '개'나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동물'이라는 유개념에 속하는 종개념이지만, '사람'이라는 종개념에 공통되는 성질의 징표로서 '理性的'이라는 말이 그 예이다(統一思想으로 볼 때 여기의 징표나 종차도 모두 보편상의 특수화임은 물론이다). 따라서 어떤 생물의 징표는 여러 가지 단계의 종차가 합쳐져 있는 것이다.
예컨대, 하나의 인간을 생각해 보자. 인간은 생물이면서 식물이 아닌 동물의 징표(徵表) 즉 종차(種差)를 가지고 있다. 또 인간은 동물이면서 무척추동물(無脊椎動物)이 아니고 척추동물(脊椎動物)의 종차(특성)를 가지고 있다. 또 척추동물이면서 어류나 파충류가 아닌 포유류의 종차(특성)를 가지고 있다.
또 포유류이면서 食肉類(식육류, 齧齒類)가 아닌 영장류(靈長類)의 종차(특성)를 가지고 있다. 또 영장류(靈長類)이면서 손이 긴 원숭이가 아닌 사람科(Homonidae)의 종차를 지니고 있다.
또 사람과(科)로서 소위 원인(猿人)이 아닌 사람屬(속, Homo)으로서의 종차를 가지고 있다. 또 사람屬으로서 소위 원(原人)이 아닌 호모 사피엔스의 종차(種差) 즉 특성(이 특성이 바로 `理性的'인 것이다)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의 미표(微表)에는 대체로 界(kingdom), 門(phylum), 綱(class), 目(order), 科(family), 屬(genius), 種(species)의 7단계(段階)의 종차(특성)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7단계 종차의 기반위에 개인의 특성(特性), 즉 개별상(個別相)이 세워지게 된다. 다시 말하면 7단계의 종차를 터로 하는 개인의 특성이 바로 인간의 개별상(個別相)이다.
그런데 인간에 있어서 7단계의 종차는 생물학자(生物學者)들이 편의상(便宜上) 그렇게 구분한 것뿐이며, 하나님은 그와 같이 여러 종차를 거듭하면서 인간을 만드신 것은 아니다.
‘原理講論’에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기 전에 미래에 창조(創造)될 인간의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을 형상적(形象的)으로 전개하여 만물세계를 창조하셨다")고 되어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천주(天宙)의 창조에 있어서 제일 마지막으로 만들어야 할 인간을, 마음속에서는 제일 먼저 구상(構想)하신 것이다.
즉 제일 먼저 구상(構想)한 인간을 표준으로 하여 동물, 식물, 광물을 차례로 생각하신 것이다. 즉 구상(構想)된 인간을 표본으로 하여 동물을 생각하고 다음에 식물을, 그리고 나중에 광물을 생각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구상에 있어서는 인간, 동물, 식물, 광물의 순서와 같이 하향식(下向式)으로 생각하였으나 실제로 피조세계를 만든 순서는 그 반대였다. 즉 광물(天體), 식물, 동물, 인간의 순서와 같이 상향식(上向式)으로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구상에 있어서 몇 개의 종차(種差)를 합쳐 가면서 인간을 구상한 것이 아니며, 한꺼번에 모든 屬性(성상과 형상, 양성과 음성)을 구비한 인간을 구상한 것이다.
더욱이 추상적(抽象的)인 인간이 아니고 구체적(具體的)인 개별상(個別相)을 가진 인간 아담과 해와를 마음에 그렸던 것이다. 그 다음은 인간에게서 일정한 성질과 요소를 생략하고 변형(變形)시키면서 여러 가지 동물을 구상하였다.
다음에는 동물의 일정한 성질과 요소를 생략하고 변형시키면서 여러 가지 식물을 구상하였다. 또 식물의 일정한 성질과 요소를 생략하고 변형시키면서 여러 가지 천체(天體)와 광물(鑛物)을 구상한 것이다.
이러한 하향식(下向式) 구상에 있어서의 한 단계의 구상, 예컨대 동물 단계의 구상에 있어서도 고급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거기에서 일정한 성질과 요소를 생략 또는 변형시킴으로써 점차로 저급한 동물을 구상해 나갔다고 본다(식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실제의 만물창조의 결과만을 보면 인간은 여러 단계의 동물의 종차가 겹쳐있는 것 같이 보여진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분자, 원자, 소립자 등 미시세계(微視世界)에 있어서, 개체의 개별상은 그 개체들이 속한 종류의 종차(특성)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물의 분자는 어떤 분자든지 같은 형태와 화학적(化學的) 성질을 가지고 있다. 원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며, 소립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미시세계(微視世界)에서는 종차와 개별상이 일치한다고 본다. 원자나 소립자는 더 높은 차원의 개체의 구성요소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광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광물로 되어 있는 산하(山河), 하늘의 천체(天體)들은 각각 개별상을 갖고 있으나 구성 요소로서의 광물 그 자체는 역시 종차가 그대로 개별상이 되고 있다. 이것은 식물이나 동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종류의 특성 그대로가 개별상(個別相)이 된다. 예컨대 무궁화나무의 특성은 그대로가 모든 무궁화나무의 개별상이 되며, 일정(一定)한 종류의 닭의 특성은 그대로가 동종(同種)의 모든 닭의 개별상이 된다. 이리하여 인간에 있어서는 개인마다 개별상이 다르지만 인간 이외(人間 以外)의 만물들은 종류에 따라서 개별상이 다르게 된다.
(3) 개별상(個別相)과 환경(環境)
인간(人間)에 있어서 개별상이란 개체가 태어나면서 가진 특성이지만, 그 개별상에는 환경에 따라 변하는 측면(側面)이 있다. 그것은 원상(原相)이 그러했듯이 모든 개체는 존재 또는 운동함에 있어서 자기동일성(自己同一性)과 發展性(발전성, 變化性)의 양면을 동시에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인간은 不變性(불변성, 自己同一性)과 可變性(가변성, 發展性)의 통일적 존재로서 존재하며 성장한다. 그런데 이중에서 불변성(不變的)인 측면이 본질적인 것이고 변화하는 측면은 2차적인 것이다.
개별상을 유전학적(遺傳學的)으로 보면 유전형질(遺傳形質)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개별상이 개체의 성장과정에 있어서 환경과의 부단한 수수작용을 통하여 부분적으로 변화해 간다. 개별상중(個別相中)에서 이와 같이 변화하는 부분(部分) 또는 변화한 부분을 개별변상(個別變相)이라고 한다.
이러한 개별상의 가변적(可變的)인 부분은 유전학상의 획득형질(獲得形質)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소련의 리셍코(T. D. Lysenko, 1898∼1976)는 春化處理(춘화처리, 低溫處理)에 의해서 가을보리(秋播小麥)를 봄보리(春播小麥)로 변화시키는 실험을 통해서, 환경에 의해 생물의 특성(特性)이 변화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불변의 형질이 유전자에 의해 자손(子孫)에게 전해진다고 하는 멘델·모르간의 유전자설(遺傳子說)은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고 하여 부정(否定)하였다. 생물의 본래적인 불변성을 부정하고 환경에 의해서 변화하는 면만을 강조한 것이다.
이 리셍코의 설(說)은 스탈린(J. V. Stalin, 1879∼1953)에게 인정받은 후 높이 평가되자 그때까지의 멘델·모르간파(派) 학자들은 반동으로 몰리어 추방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얼마 후에 리셍코학설(學說)의 오류(誤謬)가 외국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서 확인되고 멘델·모르간학설의 정당성이 재차 인정되었다. 결국 리셍코의 학설(學說)은 유물변증법(唯物辨證法)을 합리화하기 위한 어용학설(御用學說)이라는 것이 폭로되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로서도 만물은 불변성과 가변성의 통일적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개별상에 관련하여 `環境(환경)이 인간을 규정(規定)하는가'라는 문제가 있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성격은 환경에 의해서 규정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레닌(V. I. Lenin, 1870∼1924)의 혁명가적 인물로서의 지도 능력은 당시 러시아의 상황(狀況)에 의한 산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통일사상에서 볼 때, 인간은 어디까지나 환경에 대해서 주체(主體)이고 주관주(主管主)이다. 즉 태어나면서부터 특출한 개성(個性)과 능력(能力)을 가진 인간이 일정한 환경조건이 성숙(成熟)되었을 때, 그 환경을 수습(收拾)하기 위하여 지도자(主體)로서 출현한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혁명의 경우 레닌은 본래 특출한 능력의 소유자로서 출생했다가, 국내외(國內外)의 여건이 성숙되었을 때 타고난 능력을 발휘하여, 그 때의 환경을 수습하면서 러시아를 공산주의혁명(共産主義革命)으로 이끌어 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을 개별상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한다면, 환경은 인간의 개별상에 있어서 가변적(可變的)인 부분에만 영향을 줄 뿐, 개별상 전체가 환경에 의해서 규정(規定)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