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은 작은 순교의 길
김종국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 토아올람 전담사제, 토마스의 집 원장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5)”
‘주님 저희 선조들을 복음의 빛 안으로 불러 주시어 그들의 피로 숭고한 믿음을 자라게 하셨으며 혹독한 형벌 속에서도 죽기까지 신앙을 지켜 믿음의 승리를 함께 누리게 하셨으니 오늘의 저희도 올바른 믿음의 길을 가게 하소서’라고 먼저 기도하고 싶습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자기 자신과 믿음의 작은 싸움이었기에 당연히 우리들도 성인 성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진정한 성인 성녀는 하루의 삶속에서 주어지는 작은 기회로 만들어진 순교의 삶으로 완성됩니다.
9월은 순교자들의 비움과 무소유의 믿음을 본받는 순교 정신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루의 삶에서 하기 싫은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실천하고, 인내롭게 참고 견디며, 자주 일어나는 분노를 주님의 이름으로 참는 것이 바로 순교의 삶입니다.
내가 참고 견디면 병이 되지만 주님의 마음으로 참으면 공로가 되는 기도가 되어 더욱더 힘이 생깁니다. 아침저녁으로 주님께 인사드리는 기도와 읽기 싫은 성경 한 구절을 읽는 것도 작은 순교라 볼 수 있습니다. 내 성질을 죽이는 것도 순교이기에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순교의 삶은 결심이고 사랑의 실천이며, 십자가 없는 믿음도 없고 순교 없는 신앙도 없습니다. 순교의 사랑은 내 것을 다 나누어 주고도 혹시 못 준 것이 없는지 살펴보는 넓은 마음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콜로 3,14)이고, 모든 덕의 바탕이며, 덕을 연결하고 질서를 지어 줍니다. 사랑의 실천은 그리스도인들이 닦아야 할 덕의 근원이며 귀결입니다. 순교자의 사랑의 실천은 이웃이 보였고, 예수님의 사랑에 깊이 빠지다 보면 순교자처럼 우리들도 하느님의 자녀가 누리는 영적 자유를 얻으며, 인간적 사랑의 능력을 확고하게 하고 하느님 사랑의 초자연적 완전함으로 들어 올려줍니다.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분”(1요한 4,19)의 사랑에 응답하는 자녀로 살아가게 합니다. 사랑은 자비와 선의로 채워지지만, 그렇다고 악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불의와 거짓 앞에서 사랑은 침묵하고 인내하기에 앞서 올바른 관계를 세우기 위한 정의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웃과의 사랑을 관계의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가르치십니다. 죄는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관계의 단절을 가져오기에 그를 꾸짖는 행위도 사랑에 속합니다. 혹시라도 개인적인 감정으로 상대의 진의를 왜곡할 수 있기에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은 다른 두세 사람의 증인 앞에서 진실을 고백하도록 가르치십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자기기만과 편견에 빠진 사람까지 끌어안으라고 예수님께서는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행위가 자칫 불의를 용인하고, 거짓을 인내하는 위선적인 사랑으로 변질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시편 저자는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고 강조합니다. 무뎌진 마음으로는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용기를 가질 수 없습니다. 악에 맞서 선의 승리를 선포하고, 거짓과 위선에 맞서 진실과 정의를 외치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사회적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비록 세상에 악의 연대가 강해 보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신앙 공동체의 영의 연대가 더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우리의 예언자 직무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과 ‘소유’의 구분을 생각해 봅시다. 물건은 소유하는 것이고 사람은 사랑해야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람을 물건처럼 소유하려고 한다면 결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 우리가 사랑한다면 오히려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는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가장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성전에 봉헌하셨습니다. 또 성모님께서는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면 안 된다고 떼를 쓰지 않으시고 침묵의 기도 속에서 지켜보시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미 하느님께 봉헌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표현 방법 중 하나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믿고 봉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주님의 제자가 될 자격을 잃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가 14,33)고 하십니다. 더 큰 사랑을 위해서는 사랑하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려면 다른 모든 것을 내어놓고 미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아드님까지 내어놓으신 것처럼 말입니다. 믿음의 첫 자리에 주님을 모실 때 행복하고 신명나는 믿음의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 “평신도들은 그리스도께 봉헌되고 성령으로 도유된 사람들로서 놀랍게도 언제나 그들 안에서 더욱 풍부한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부름을 받고 또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들의 모든 일, 기도, 사도직 활동, 부부생활, 가정생활, 일상 노동, 심신의 휴식은 성령 안에서 행하며 더구나 생활의 어려움을 인내로이 참아 받는다면, 그 모든 일을 하고 더욱이 삶의 괴로움을 꿋꿋이 견뎌 낸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영적인 제물이 되고(1베드 2,5 참조), 성찬례 거행 때에 주님의 몸과 함께 정성되이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됩니다. 또한 이와 같이 평신도들은 어디에서나 거룩하게 살아가는 경배자로서 바로 이 세상을 하느님께 봉헌합니다.”(교회헌장34항.10항 참조)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니십시오. 그러면 내가 헛되이 달음질하거나 헛되이 애쓴 것이 되지 않아,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필리 2,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