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五 章 흑백보검(黑白寶劍)
왕만인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때 우리들은 한 객점에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으며 사면이 벽돌로 쌓아 올린 벽이었지요. 그런데 그 음성이 벽을 뚫고 들려오는데 말소리는 또박또박 매우 또렷했습니다. 마치 마주앉아 이야기 하는 것과 같았지요.』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우리 아홉 명은 큰소리로 떠들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그가 들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순간 석청과 민유는 흠칫했다.
옆방에서 남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고 하겠으나 옆방에서 하는 말이 상대방 사람에게 또렷하게 들릴 수 있게 한다는 것은 내공이 깊은 고인이 아니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가만균은 왕만인의 뒤를 이어 그 다음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 아홉 명은 그와 같은 소리를 듣자 일시 어리둥절해졌지요. 그러나 곧이어 왕만인이 호통쳐 물었습니다.
‘웬 놈이냐? 더 살기 싫어졌나 보구나. 감히 우리 말을 엿듣다니!'
호통소리에 그들은 인기척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늙은이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지요.
‘당(當)아야, 이 사람들은 설산파의 사람들이로구나. 그들의 사부는 백 늙은이라고 하는데 이 할아버지가 가장 미워하는 늙은이지. 그런데 그 꼬마애가 설산파의 늙은이를 울화통이 치밀게 만들고 그 집안을 쑥밭으로 만들었다니 재미있지 않느냐? 헤헤헤…… 정말 묘하다 묘해.'
이와 같은 말을 듣게 되자 설산파의 제자들은 대노하여 금방 그 쪽으로 달려가려고 했지요. 그러나 경 사형이 재빨리 손을 흔들어 여러 사람에게 잠자코 있으라는 시늉을 해 보였지요.
그 늙은이의 말이 끝나자 곧이어 젊은 아가씨의 음성이 들려왔지요.
‘재미있네요. 아주 재미있어요. 그 늙은 것이 울화통이 터져 죽었으면 더욱 재미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게 애석하네요.'
이어서 그녀는 또 몇 마디 설산파의 제자들로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욕지거리를 해댔지요.
그 늙은이가 기침을 몇 번 하더니 다시 말했지요.
‘그 늙은이가 울화통이 터져 죽게 된다면 그야말로 재미있는 일이지.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이 할아버지가 너를 대설산의 능소성으로 데리고 가 구경을 시켜주마. 그리고 그 늙은이가 울화통이 터져 죽는 꼴을 보여주지. 친히 보아야 더욱 재미있을 것 아니냐?'
이렇게 되자 설산파의 제자들인 이상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생각했지요. 따라서 우리들이 막 방에서 뛰쳐나오려고 할 때 드르륵 문 여는 소리가 나면서 객실에서 사람이 문을 열고 나오는 기척이 들렸고 이어서 두 사람이 마당으로 내려서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지요. 우리들은 모두 검을 뽑아들고 마당으로 달려 나가려고 했지요. 그런데 경 사형이 다시 손을 내흔들며 서두르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한데 이때 또 늙은이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당아, 오늘 우리들은 몇 사람을 죽였지?'
그러자 젊은 여자가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한 사람 밖에 죽이지 못했어요.'
그러자 그 늙은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그럼 아직 두 사람은 더 죽일 수가 있겠구나.'
여기까지 듣던 석청이 흠칫하며 말했다.
『그 늙은이는 바로 일일불과삼(一日不過三)이다!』
경만종은 줄곧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때 급히 물었다.
『석 장주, 그 늙은이를 아십니까?』
석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모르지만 선친에게 들은 바는 있소. 무림에는 그와 같은 인물이 있는데 일일불과삼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다고 했소. 그 사람은 하루에 세 사람만 죽인 후 마음이 약해져서 세 사람 이상은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오.』
왕만인은 욕을 퍼부었다.
『제기랄! 하루에 세 사람을 죽이고도 모자라? 그와 같이 사악하고 악랄한 늙은 도적이 지금까지 살도록 내버려두다니!』
석청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 정(丁)씨라는 선배는 정사지간에 놓인 사람이고 또 잔인하여 사람을 죽이기 좋아하나 크게 나쁜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들었다. 그리고 죽이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이 말을 설산파 제자들 앞에서 할 수 없었다.
경만종은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 늙은 도적의 이름은 무엇이며 어느 문파의 사람입니까?』
석청은 담담히 말했다.
『그 사람의 성은 정씨이며 진짜 이름은 모르나 별호는 일일불과삼이라고 해서 윗대의 어른들은 그를 정불삼(丁不三)이라 불렀다고 하더군요.』
가만균은 분연히 말했다.
『그 늙은 도적은 정말 엉터리없는 수작을 부리는 늙은이였습니다.』
석청은 계속 말했다.
『소문에 의하면 그 사람에게는 세 사람의 형제가 있었다는구려. 형은 정불이(丁不二)라 하고는 아우는 정불사(丁不四)라고 한다고 합디다.』
왕만인은 다시 욕을 퍼부었다.
『제기랄, 불이, 불삼, 불사라니. 꼭 개방귀 같은 이름만 붙여놓았군.』
이에 경만종은 황급히 타일렀다.
『왕 사제, 석 아주머니 앞에서 그런 고약한 말을 쓰면 되겠는가?』
왕만인은 급히 사과하였다.
『죄송합니다.』
민유는 말했다.
『아마도 그 사람의 이름은 별명일 거예요. 그와 같이 괴상한 이름은 지을 수 없을 테니까요.』
석청은 말했다.
『본래 정씨 삼형제는 무림에서 상당한 명성을 떨치고 있었소. 아마도 백 나으리는 그들과 어떤 충돌이 있어서 그들의 이름을 들먹이기를 싫어했기 때문에 뭇 사형들은 모르는 것 같구려.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소?』
왕만인은 변명하듯 설명을 했다.
『그 늙은 도적은 곧이어, ‘손만년(孫萬年)과 저만춘(楮萬春)이라는 놈들이 있으면 빨리 기어 나와라.' 하고 외쳤소이다. 우리 설산파 제자들은 그와 같은 호통소리를 듣자 더 참을 수 없어 아홉 명이 우르르 몰려 나가게 되었지요. 그런데 정말 이상한 노릇이었습니다. 우리가 마당에 나갔을 때는 아무도 없었어요. 아무리 사방으로 찾아보았으나 사람의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었지요. 심지어 지붕 위를 살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사제는 반쯤 닫혀진 그 객실까지도 살폈으나 탁자 위에 촛불만 켜져 있을 뿐 사람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지요. 정히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우리가 있던 방에서 그 누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지요. 바로 그 늙은이의 음성이었습니다. 그 늙은이는 우리보고 들으라는 듯이 호통을 쳤습니다.
‘손만년! 그리고 저만춘, 너희들 두 놈은 양주에서 왜 나의 손녀딸을 희롱했지? 나의 이 손녀딸로 말하면 나이가 어리나 매우 아름답다. 네 두 놈의 짐승 같은 녀석이 어떤 더러운 생각을 했을 것인지 짐작할 만하다. 너희 두 놈은 어서 기어 나와라.'
이와 같은 호통소리에 손만년 사형과 저만춘 사형은 더욱 울화통이 터져 그만 검을 들고 그 방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그 때 경사형이 소리쳤지요. ‘조심해! 모두 함께 들어가자!'
그 순간, 그 방의 등불이 꺼졌고 아무런 기척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큰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손 사형! 저 사형!'
그러나 두 사람의 대답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방안에서는 무기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불안하여 재빨리 화섭자를 꺼내 불을 켰습니다. 그리고 방안으로 달려 들어가 보니 손만년 사형과 저만춘 사형이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이미 몸이 뻣뻣해진 상태였습니다. 장검은 그들의 곁에 놓여 있었지요. 경 사형과 저는 두 사형의 곁으로 다가가 그들을 잡아 당겼습니다. 그런데 손만년 사형과 저만춘 사형은 힘없이 그대로 옆으로 쓰러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숨을 거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전신에 상처 하나 나 있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늙은이가 어떤 수법으로 그들을 해쳤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설산파의 제자들은 창피막심한 일이었지만 그 늙은 도적과 처녀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그런 사건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가만균은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 덧붙였다.
『양주에서 우리들은 그런 늙은이와 처녀애를 눈여겨 본 적이 없었습니다. 손 사형과 저 사제가 아마 그 손녀딸을 몇 본 쳐다본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게 뭐 대단한 일인가요?』
석청과 민유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석청은 넌지시 입을 열었다.
『경 형, 나의 불측한 자식 놈이 능소성에서 큰 죄를 짓게 된 날이 언제였소?』
경만종은 기억을 더듬더니 말했다.
『십이월 초열흘날이었지요.』
석청을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이 삼월 열이틀이니 백사형은 능소성에서 떠난 지 이미 삼개월이 되었구려. 그렇다면 지금쯤 현소장은 잿더미가 되었겠소.』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경 형, 그리고 왕 형, 여러 형들에게 내가 약속을 하겠소. 우리 부부는 그 녀석의 행방을 반드시 알아보겠으며 사로잡은 후에 능소성으로 데리고 가 백 나으리와 봉 사형, 그리고 백사형에게 사죄를 하겠소. 그리고 일일불과삼 정불삼의 행방도 알아내어 그때 백 나으리에게 알려 드리리다. 그렇게 된다면 백 나으리가 친히 나서서 일을 처리하면 될 것이외다. 그럼 이만 실례할까하오.』
그는 포권을 했다. 가만균은 급히 말했다.
『아니! 당신은…… 겨우 그 몇 마디 말을 하고 떠나려는 것입니까?』
석청은 아연해서 말했다.
『가 사형, 또 무슨 할 말이 있으시오?』
가만균은 냉랭히 말했다.
『우리들은 당신의 아들을 찾지 못했소이다. 그러니 당신네 부부가 능소성으로 가서 우리 사부님을 만나 주어야 우리들의 체면이 설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말에 석청은 난감한 듯 말했다.
『능소성으로 물론 가야지요. 그러나 모든 일에 어느 정도 단서가 잡혀야 하지 않겠소?』
가만균은 경만종을 바라보았다가 왕만인을 바라보곤 했다.
그러다가 그는 성이 난 얼굴로 분연히 말했다.
『석 장주 부부를 우리들이 만나보고도 능소성으로 모셔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사부님께서 아시게 된다면 우리들은 그야말로……』
석청은 그의 뜻을 알고도 남았다.
그들이 많은 사람의수로 자기네들을 억지로 대설산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니까 아들을 잡지 못하면 그의 애비라도 잡아가서 목숨으로 보상을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석청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백 나으리는 덕망이 높으신 분이지요. 불초는 항상 그 분을 존경하며 윗어른으로 모셔왔소이다. 만약에 백사형이 이곳에 계시어 백 나으리께서 명을 내려 불초에게 능소성으로 가자고 한다면 불초는 반드시 명을 받들어야 하겠지만 지금 이 상태로는…… 이렇게 하기로 합시다.』
그는 자기의 허리에서 검은 검집의 장검을 풀며 민유에게 다시 말했다.
『사매, 그대의 검도 푸시오.』
민유는 검을 풀어 석청에게 건네주었다. 석청은 두 손으로 쌍검을 받쳐 들고 경만종에게 내밀었다.
그들 부부가 생명처럼 아끼는 흑백쌍검을 맡긴다는 것은 그야말로 설산파의 체면을 크게 세워주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이들 두 부부가 이 보검을 찾기 위해서도 능소성으로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경만종은 몇 마디 사과의 말을 하고 흑백쌍검을 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가만균은 달랐다.
가만균은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 사질녀의 한 목숨과 봉 사형의 한쪽 팔, 사모님이 산에서 내려가시고, 백사형의 형수님께서 실성을 하시고, 손사형과 저 사형이 비명횡사한 것을 어찌 당신네의 두 자루 무쇠로 만든 칼과 맞바꿀 수 있다는 거요? 경사형이야 당신과 교분이 있어서 당신의 체면을 봐주겠지만 이 가 아무개는 당신을 모르오. 당신은 오늘 능소성으로 가야 하오. 가기 싫어도 가야하오.』
석청은 미소 지었다.
『내 아들놈이 귀파에 큰 죄를 지었으니 불초는 사죄를 하는 것 외에 더 무슨 할 말이 있겠소? 가형이 설산파의 고수로서 무공이 고강하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소. 비록 만나 보지는 못 했지만 평소 앙모해 왔소.』
그는 두 손바닥 위에 장검을 받쳐 들고 경만종이 그 두 자루의 검을 받아가기를 기다렸다.
가만균은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들이 이 두 사람을 데리고 대설산으로 가려면 한바탕의 큰 싸움이 벌어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가 스스로 무기를 바치려고 하니 오히려 잘 되었다. 무기를 빼앗은 후에 처치하면 될 것이다. 「실례를 범하지 않으면 내가 살지 못 한다.」 는 속담도 있지 않느냐?'
그는 석청이 검을 거둬들일까 봐 신속히 앞으로 나오며 두 손을 일제히 뻗쳐내어 설산파의 금나수법으로 석청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는 두 자루의 장검을 힘주어 움켜쥐고 말했다.
『그럼 먼저 당신의 무기를 바치시오.』
팔을 와락 잡아당겨 장검을 빼앗으려고 하는데 두 자루의 장검은 석청의 손바닥에서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가만균은 깜짝 놀라 두 팔에 힘을 불끈 주고 일갈했다.
『떨어져랏!』
힘껏 잡아당겼다. 그 순간 두 자루의 장검에서 세찬 힘이 쏟아져 나와 그의 두 손목으로 밀려들었다. 뚝, 하는 소리가 나며 대뜸 그는 손목관절이 탈골되고 말았다.
『아이쿠!』
그는 신음을 내뱉으며 검을 놓고 물러섰다. 두 자루의 검은 여전히 석청의 손바닥 위에 얌전히 놓여져 있었다.
옆에서 구경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석청이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은 것을 똑똑히 보았으므로 그 누구도 석청에게 따질 명분이 서지 않았다.
가만균은 고통과 울화를 참을 수 없어 오른 다리를 들어서 맹렬하게 석청의 아랫배를 걷어찼다.
경만종은 급히 외쳤다.
『무례를 범하지 말게!』
즉시 손을 뻗쳐서 가만균의 뒷덜미를 잡고 뒤로 끌어당겼다. 가만균의 발길질은 허공을 걷어차고 말았다.
경만종은 석청의 내력이 무서운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가만균의 발길질이 석청의 몸에 격중 되었다면 가만균의 다리뼈가 부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경만종은 무공이나 견식이 가만균을 훨씬 능가했다. 그는 열 손가락에 힘을 주입하고 조심스레 손을 뻗쳐서 석청의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는 장검을 움켜쥐려고 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막 검집에 닿는 순간 그는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손을 움찔 떨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뜨거운 기운이 가슴 속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석청의 내공이 장검을 통해서 자기에게 전해진 것이 틀림없었다.
경만종은 내심 부르짖었다.
『야단났구나!』
그는 석청이 이와 같은 함정을 파 놓고 자기를 끌어들여 자기와 내공을 겨루려는 속셈을 지녔음을 직감하였다. 사실 내공을 겨루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으며 강한 자는 살아남지만 약한 자는 패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의 내공이 별 차이가 없으면 죽을 때까지 겨뤄야 비로소 승부를 가릴 수 있는 것이며 나중에는 손을 멈추고 양보하고 싶어도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바로 내공의 겨룸인 것이다.
경만종은 부득이 석청과 겨루지 않을 수 없어 내심 절망감을 맛보았다.
그가 어떻게 석청과 겨룰 수 있겠는가?
그러나 뜻밖에도 석청은 두 칼을 경만종의 손아귀에 쥐어주며 웃었다.
『우리들은 형제와 다름없는 사이이오. 어찌 우애를 손상할 수 있겠소? 그럼 이만 작별합시다.』
경만종은 조금 전에 석청이 조금만 힘을 주었다면 자기는 이미 피를 토하고 즉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멍하니 쌍검을 받아들고 서서 온 얼굴 가득 부끄러움을 담고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고 있었다.
석청은 민유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매, 우리는 변량성으로 갑시다.』
민유는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사형, 그 애가……』
석청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 말을 가로챘다.
『차라리 견이처럼 한 칼에 살해당했으면 좋았을 것을!』
민유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사형, 어떻게 그런 말을……』
석청은 그녀의 손을 잡고백마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 그녀를 부축하여 말에 태웠다.
설사파의 제자들은 그녀의 가련한 모습을 보고 저 여자가 과연 강호를 떨어 울리는 빙설신검인지 의문스러울 지경이었다.
설산파의 여검객 화만자는 현소쌍검(玄素雙劍) 석청 부부가 말을 몰아 떠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측은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때 왕만인이 가만균의 탈골된 손목뼈를 맞춰주고 있었다.
가만균은 연신 빌어먹을이니 제미랄이니 욕을 해대고 있었다.
화만자는 그 광경을 보자 눈살을 찌푸리며 경만종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경 사형, 이번에 모든 일이 꼬이기만 하는군요.』
경만종은 말했다.
『꼬이는 게 당연하다. 상대방의 무공이 얼마나 고강한지 너도 보았지? 우리 일곱 명이 힘을 합쳐도 그들을 당해낼 수 없으니 할 수 없다. 그들의 무기를 압류했으니 능소성으로 돌아가도 할 말은 있는 셈이다.』
말을 하면서 그는 흑백쌍검을 검집에서 뽑아보았다. 백검은 얼음과 같이 싸늘한 한기를 뿜어냈고 흑검은 먹처럼 새까만 빛을 뿜어냈다.
그 싸늘한 광채가 발산되자 살을 에이는 듯한 통증이 뼛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정말 보기 드문 희세의 보검이었다.
경만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진짜로구나!』
화만자는 그와같은 보검을 감탄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검은 물론 진짜예요. 우리들이 사람을 잡아두지 못했는데 이 두 자루의 보검을 능소성까지 무사히 가져갈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되겠죠.』
경만종은 흠칫해서 물었다.
『화 사매, 어째서 그와 같은 말을 하지?』
화만자는 말했다.
『작년 어느 날 소매가 백사형 부부와 잡담을 나누며 천하의 보검과 보도를 논한 적이 있어요. 마침 옆에 있던 석중옥이란 개잡종이 끼어들어 말하기를 자기 부모의 흑백쌍검이 천하에서 으뜸이라고 했어요. 석중옥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 부부는 흑백쌍검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그들은 아들인 자기를 대설산으로 보내 무공을 배우게 하느라고 몇 년씩 떼어놓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지만 한시도 흑백쌍검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석장주가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보검을 우리에게 맡기긴 했지만 만약 어떤 수작을 부려 보검을 훔쳐간 후 훗날 능소성으로 찾아와 우리들에게 보검을 내달라고 한다면 일이 매우 난처하게 되지 않겠어요?』
가만균이 그 말을 받았다.
『우리 일곱 사람이 철통같은 수비로 보검을 지키고 있을 텐데 그들이 무슨 재주로 보검을 훔쳐간단 말이오?』
경만종은 잠시 생각해보고 말했다.
『화 사매의 말이 옳네. 결코 쓸데없는 일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는군. 석청이라는 사람은 만만한 인물이 아닐세. 그러니 우리들이 신중히 경계를 해야 할 것이네.』
왕만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매사를 조심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좋은 일이오. 오늘부터 우리 여섯 사람의 남자들이 매일 밤 차례로 보검을 지키기로 합시다.』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물었다.
『경 사형. 그 석가가 변량으로 간다고 했는데 우리들은 그자의 뒤를 쫓아서 가는 것이 좋겠소? 아니면 다른 길로 앞질러 가는 것이 좋겠소?』
경만종은 변량으로 가지 않는다면 자기들이 상대방에게 겁을 집어먹은 행위라고 생각되었다. 더군다나 변량은 이름난 큰 성인데 이곳까지 왔다가 그 성안으로 들어가 구경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 소심한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보검을 가지고 변량으로 가는 것은 역시 위험을 자처하는 일인지라 일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였다.
별안간 호통소리가 들려오며 저쪽에서 한 떼의 관졸이 나타났다.
네 명의 가마꾼이 파란색 가마를 메고 달려오고 있었다. 아마도 관가에서 사람이 나온 모양이었다. 후감집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으니 조사를 하러 나온 모양이었다.
경만종은 살인 사건이 발생한 이때 자기들이 무기를 들고 이곳에 모여 있는 것은 의심을 받기 쉬우며 관가와 충돌을 하게 된다면 귀찮은 일이라 생각했다.
그는 급히 말했다.
『자 빨리 가자!』
일곱 명의 설산파 제자들이 재빨리 그곳에서 떠나려할 때 한 명의 관졸이 갑자기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살인강도를 놓치지 마라! 살인강도들이 도망을 치려고 한다!』
경만종은 관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휘둘러 여러 사람에게 빨리 가자고 재촉을 했다.
그때 관졸의 날카로운 외침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살인자의 이름은 백자재(白自在)이며 설산파의 늙어도 죽지 않는 장문인(掌問人)이라고 했다. 무위무덕(無爲無德)한 백자재야! 이 못된 놈들아! 떼를 지어 다니며 남의 재물을 빼앗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니, 정말 흉악하구나! 저놈들을 잡아라!』
설산파의 제자들은 그와 같은 말을 듣고 놀람과 분노로 인해 온몸의 솜털이 빳빳이 곤두섰다.
그들의 사부 백자재는 별호가 위덕선생(爲德先生)이었다.
관졸이 그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만 해도 불경스러운 데 감히 무위무덕이라고 비꼬지 않는가?
왕만인이 휙, 하니 장검을 뽑아들고 부르짖었다.
『이 개같은 벼슬아치들이 너무 무례하구나. 너의 혓바닥을 잘라 놓고 말겠다.』
경만종은 황급히 말했다.
『왕 사제. 잠깐! 관가의 사람이 어떻게 사부의 별호와 함자를 알고 있지? 이는 어떤 자의 교사를 받았을 것이네.』
그는 몸을 날려 앞으로 나아가 포권을 취하고 허리를 굽히며 물었다.
『어느 나으리께서 이곳까지 왕림하셨소?』
이때였다. 별안간 칙, 하는 소리가 나면서 가마 안에서 한 알의 암기가 날아 나왔다.
그 암기는 바로 그의 허벅지 옆에 있는 복토혈(伏兎穴)을 적중시켰다. 이 암기는 무척 가늘고 작은 것이었으나 위력은 굉장했다.
경만종은 그만 다리에 맥이 빠지는 것을 느끼고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은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장검을 사력을 다해 가마 안으로 번개같이 던졌다.
그가 쓰러지긴 했어도 그가 펼쳐낸 학비구천(鶴飛九泉)의 위력은 역시 정확하고 매서웠다.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장검은 가마의 휘장을 뚫고 안으로 날아들었다. 틀림없이 가마 안에서 암기를 날린 사람을 정통으로 찌른 것 같았다.
그는 속으로 매우 기뻐했다.
그러나 네 명의 가마꾼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여전히 가마를 떠메고 나는 듯이 달려왔다.
다음 순간이었다.
갑자기 한가닥 채찍이 가마 안에서 뻗쳐 나와 왕만인의 왼쪽 다리를 휘감는 것이 아닌가!
곧이어 그 채찍이 당겨졌다가 떨쳐지자 왕만인의 몸이 허공에 붕 떠오르게 되었다.
그 순간 채찍은 날쌔게 그가 들고 있던 묵검(墨劍)을 휘감아 가마 안으로 끌어들이고 마는 것이 아닌가!
화만자는 그 광경을 보고 큰소리로 외쳤다.
『석 장주이십니까?』
이렇게 외치면서 그녀는 백검을 검집에서 뽑아내어 말채찍을 자르려고 했다.
찍, 하는 가벼운 음향과 함께 더불어 가마 안에서 다시 한 개의 암기가 날아 나와 그녀의 손목에 적중되었다.
그녀는 손목에 격렬한 고통을 느끼고 그만 백검을 놓치고 말았다.
옆에 있던 동문 사형이 재빨리 팔을 뻗어 백검을 꽉 잡았다.
그러나 가마 안에서 다시 한 줄기 물체가 유성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 나와 그의 머리를 휘감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갑작스런 기습에 눈앞이 캄캄해진 그는 깜짝 놀란 나머지 급히 뒤로 몸을 날렸다.
그런 연후에 머리에 씌워진 것을 벗기고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알고 보니 그것은 관원이 쓰던 모자였다.
그 순간 가마 안에서 뻗쳐 나온 채찍은 다시 백검을 휘감아서 가마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닌가?
가만균 등은 큰소리로 부르짖으며 가마의 뒤를 쫓았다.
그러자 가마 안에서 예리한 파공을 대동한 암기가 끊임없이 격사되어 나왔다.
어떤 것은 그들의 얼굴을 향해 격사되어 왔고 어떤 것은 그들의 허리께를 향해 쏘아졌다. 너무나 갑작스런 일이라 암기를 피할 수가 없었다.
그 암기들은 요혈을 적중시키지는 못했으나 몸에 맞자 여간 아픈 것이 아니었다.
여러 사람들이 암기를 자세히 살펴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알고 보니 가마 안에서 격사되어 나온 암기는 구리단추가 아닌가?
옷자락에서 금방 떼어낸 것이 분명했다.
설산파의 제자들은 가마 안의 그 사람이 반드시 석청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석청 부부가 다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그들이 힘을 합쳐 협공을 가한다고 해도 역시 석청 부부에게 패한다는 것은 기정사실 아닌가?
가만균은 노하를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흥! 이제 보니 석가 집은 모두 형편없는 놈들만 사는군! 아들 녀석은 천하에 둘도 없는 색마이고 그 애비는 수치라고는 전혀 모르는 몰염치한 인간이군!』
그는 빨갛게 상기된 채 씩씩거리며 말을 이었다.
『마치 커다란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흑백쌍검을 맡겨 두겠다고 얘기한 지 채 한 시각도 못 되는데 암기를 사용하여 보검을 도로 탈취해 가는 몰염치하고 비열한 작자군.』
왕만인은 유유히 사라져가는 가마를 향해 고래고래 악을 썼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발을 동동 구르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천하에 둘도 없는 날강도 놈아!』
이때 경만종이 침중한 음성으로 그의 말을 가로챘다.
『이 일은 더 이상 떠들어보았자 우리 설산파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것 밖에 안 되네. 그러니 더 이상 여기서 왈가왈부하지 말고 본파로 돌아가서 자세한 것은 사부님께 말씀드리고 적절한 방법을 강구하도록 하세.』
일이 이 지경이 되자 설산파 제자들은 심한 좌절감에 빠졌다.
능소성 일대에서 크게 위맹을 떨쳐온 그들인지라 창피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설산파의 무공을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이번 일로 인해 크게 망신을 당하고 만 셈이었다. 그들은 각기 길게 한숨만 토할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第 六 章 천진한 꼬마거지
가마는 수마 장을 전진해 가더니 작은 길로 접어들었다. 가마를 메고 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소리가 조금씩 낮추어졌다.
이때였다.
가마 안에서 말채찍이 쭉 뻗쳐 나오더니 휙휙, 휘둘러졌다. 그런가 하면 곧이어 그 채찍은 앞의 가마꾼의 등을 세차게 후려쳤다. 그러자 앞의 가마꾼이 걸음을 빨리 하니 뒤에 따라가던 가마꾼도 걸음을 빨리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명의 관졸들은 뒤에서 따랐다.
가마는 어느새 네 마장을 전진했다.
이때서야 가마 안의 사람이 입을 열었다.
『됐다. 멈추어라.』
네 명의 가마꾼은 마치 대사면을 받은 사람처럼 숨을 헐떡이며 가마를 내려놓았다.
가마의 휘장이 들춰지고 한 사람의 늙은이가 걸어 나왔다. 늙은이는 바로 현철령의 주인 사연객이었으며 그의 손에 붙잡혀 있는 사람은 바로 그 나이 어린 거지였다.
그는 몇 명의 관졸에게 호통을 쳤다.
『돌아가서 너희들 관장(官長)에게 오늘의 일을 퍼뜨리지 말라고 전해라. 어떠한 소문이라도 듣게 된다면 너희들의 머리통을 모조리 베어버리고 관인(官印)을 황하(黃河)에 던져버리고 말 것이다.』
관졸들은 그 말을 듣자 겁에 질린 표정을 허리를 굽신거렸다.
『알겠습니다. 절대로 입을 열지 않겠으니 나으리께서는 아무 염려마시고 천천히 떠나도록 하십시오.』
사연객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나더러 천천히 떠나라고? 흥! 네놈들은 동료들을 불러서 나를 사로잡겠다는 것이냐?』
그러자 한 명의 관졸이 재빨리 말했다.
『아, 아닙니다. 저희들이 어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연객은 두 눈에 흉광을 번뜩이며 말했다.
『너희 관장에게 전하라고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겠지?』
그러자 관졸은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기억하고 말굽쇼. 후감집에서 호떡 장사를 하는 늙은이와 잡화가게의 사환을 죽인 백자재라는 늙은이는 설산파의 장문인이며 별호는 위덕선생이라고 하나 실제에 있어서는 아무런 위엄도 덕망도 없는 사람이며 무기는 한 자루의 칼인데 칼에는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하고 보고하는 것입죠. 그렇게 된다면 인증물증(人證物證)이 모두 있으니 그 늙은이도 억지를 쓰지는 못할 것입니다.』
관졸은 먼저 사연객에게 얻어맞아 두렵기 때문에 인증물증을 들먹인 것이며 칼로 증거를 삼는 것은 그들의 상투수단이었다.
사연객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백 늙은이는 검을 사용하지 칼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러자 그 관졸은 재빨리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 백가 범인은 청강검(靑鋼劍)을 들고 있었으며 호떡 파는 늙은이의 몸을 찔렀습니다. 후감집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보았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되겠지요?』
사연객은 속으로 웃었다.
‘위덕선생 백자재가 정말 오도통을 죽이려고 했다면 무기를 사용할 필요도 없지.'
그러나 그는 그와 같은 관졸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왼손으로 어린 거지의 손을 잡고 오른손에는 석청부부의 흑백쌍검을 들고 그곳을 떠나갔다.
그는 매우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
원래 그는 어린 거지를 데리고 간 후 석청 부부와 설산파 제자가 자기에게 어떤 불리한 일을 할까 봐 수 마장을 달려 나간 후 어린 거지의 혈도를 짚어 풀밭에 던져버리고 살그머니 돌아와 그들이 주고받은 말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무공이 석청보다 훨씬 뛰어났기 때문에 나무 뒤에서 숨어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으나 석청과 민유등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사연객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모든 것이 자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석청이 쌍검을 경만종에게 주는 것을 목격하고는 쌍검을 빼앗아와야겠다고 작정을 했다. 그리하여 풀밭으로 되돌아가 어린 거지를 잡아 일으켜서 그의 혈도를 풀었다.
마침 이때 저쪽 길에서 후감집으로 사건을 조사하려 하는 지현(知縣)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즉시 지현을 가마 안에서 끌어내고 관졸들과 가마꾼들을 위협했다.
그리하여 관졸들과 가마꾼들이 그와 어린 거지를 태워서는 쌍검을 빼앗는데 한몫을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경만종은 가마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지 못했는지라 필시 석청 부부의 수작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연객은 어린 거지를 붙잡고 황량한 곳으로만 걸어갔다.
어느덧 조그만 시냇가에 이르게 되었다.
사방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그는 어린거지의 손을 놓고 민유의 백검을 뽑아 어린 거지의 목에 갖다 대고 날카롭게 외쳐 물었다.
『도대체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 말해라. 만약 한마디라도 거짓말을 했다간 네 놈을 즉시 죽이고 말겠다!』
그는 백검을 휘둘렀다. 싹! 하는 가벼운 음향과 함께 옆의 조그마한 나무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반 토막의 나무는 가지 및 잎과 더불어 냇물에 떨어져 물길을 따라 흘러갔다.
어린 거지는 그것을 보자 겁먹은 음성으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나는……누구의……지시도……받지 않았어요.』
사연객은 현철령을 꺼내 들고 호통쳐 물었다.
『이것은 누가 준 것이지?』
어린 거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호떡을 깨물었더니…… 그 속에 있었어요.』
사연객은 대노했다. 왼손을 번쩍 들어 그의 얼굴을 후려치려는 순간이었다.
그는 현철령을 자기에게 건네준 사람에게 손찌검을 해서는 안 된다는 과거의 맹세를 상기하고 재빨리 손을 거둬들이고는 호통을 내질렀다.
『터무니없는 소리! 무슨 호떡이란 말이냐? 내가 지금 묻고 있는 것은 누가 이 물건을 너에게 주었느냐 하는 것이다.』
어린 거지는 그의 호통소리에 사색이 되어 말을 이었다.
『저는 땅바닥의 호떡을 주워 먹었어요. 그런데 한번 깨물자마자 하마터면…… 이빨이 부러져 나갈 뻔 했지 뭐예요……』
사연객은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 오도통 녀석이 이 쇳조각을 호떡 속에 숨긴 것이 아닐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것은 너무 어처구니없는 행동 같았다.
‘천하에 그와 같이 우연한 일이 있을 리가 없다. 그 녀석이 이 현철령을 손에 넣었다면 자기 목숨보다 더욱 아꼈을 것인데 어찌 호떡 속에 넣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금도채의 인마가 갑자기 나타나 후감집의 사면을 에워싸자 오도통은 달리 그 현철령을 숨길만한 장소를 찾을 여가가 없었다. 그리하여 어찌할 수 없어 현철령을 호떡 속에 넣어서는 금도채의 소두령에게 내밀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사람은 크게 노해서 호떡을 집어 드는 즉시 내어 던지게 된 것이고, 곧이어 금도채의 졸개들이 호떡가게를 모조리 뒤엎어 버릴 듯 찾았으나 땅바닥에 떨어진 호떡 속에 현철령이 들어 있으리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연객은 한참 동안 어린 거지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너의 이름이 뭐지?』
어린 거지는 머뭇거리더니 이내 대답했다.
『저는……개잡종이라고 해요.』
사연은 크게 의아하여 물었다.
『뭐야? 개잡종이라구?』
어린 거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요. 저의 어머니는 저를 개잡종이라고 불러요.』
성격이 괴팍한 사연객은 일년 열두 달 동안 별로 웃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린 거지의 그와 같은 말을 듣게 되자 그만 배꼽을 움켜잡고 웃는 것이었다.
그는 웃으면서 생각했다.
‘세상에 자기 아이에게 천한 이름을 지어주는 부모들은 흔히 있다. 무럭무럭 자라나 귀신의 질투를 받지 않도록 하려는 뜻에서 개똥이니 돼지니 하는 이름을 붙이지만 자기의 애를 개잡종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그의 어머니가 그렇게 불렀다니, 아이고! 정말 우습다.'
어린 거지는 그가 웃자 이유도 모르고 따라서 헤헤 웃었다.
사연객은 갑자기 웃음을 그치고 물었다.
『너의 아버지 이름은 뭐지?』
어린 거지는 고개를 흔들었다.
『저의 아버님요? 저는 아버님이 없는 걸요.』
사연객은 계속 물었다.
『그럼 집에 또 어떤 사람이 있지?』
어린 거지는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저와 어머니, 그리고 아황입니다.』
사연객이 물었다.
『아황이 누구냐?』
어린거지는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황은 한 마리의 누런 개입니다. 어머님이 보이지 않게 되자 어머님을 찾으러 나서게 되었는데 아황도 저의 뒤를 따라왔지요. 그런데 배가 고프게 되자 음식을 먹으러 저의 곁을 떠난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사연객은 속으로 생각했다.
‘알고 보니 좀 바보 같은 아이로군. 아무래도 이 현철령을 얻게 된 것은 우연인 것 같다. 나에게 어떤 부탁을 한 가지 하도록 하여 옛날의 맹세를 저버리지 않고 일을 끝내야겠군.'
이리하여 그는 물었다.
『너는 노부에게 무슨 부탁할……』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이 녀석이 만약 나에게 그의 어머니를 찾아내라든가 그 개새끼를 찾아 달라고 하면 어디 가서 찾지? 그의 어머니는 반드시 다른 사내를 따라 도망을 쳤을 것이고 아황은 벌써 보신탕이 되고 말았을 터인데 그와 같은 부탁을 하게 된다면 정말 큰일이지. 일곱 명이나 여덟 명의 무림고수를 죽이는 것보다도 더욱 힘드는 일이 아니냐 말이다.'
이와 같은 생각이 들어 잠시 망설이다가 생각나는 것이 있어 다시 말을 이었다.
『좋아! 나는 너에게 말하겠는데 누가 너보고 나한테 무슨 말을 하라고 했을 때 너는 그 말을 들어선 안 돼! 그렇지 않으면 나는 즉시 너의 머리를 뎅강 잘라버리고 말겠다. 알겠느냐?』
어린 거지가 현철령을 자기의 손에 넘겨준 일은 얼마 후 무림에 퍼지게 될 것이다.
그 때 어떤 사람이 이 어린 거지를 꼬여서 자기에게 어떤 부탁을 하도록 한다면 과거의 맹세 때문에 거절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어린 거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사연객은 안심을 하고 다시 물었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어린 거지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나에게 그 누가 나보고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라고 시킨다면 입을 열지 말 것이며, 내가 말을 하면 나의 목을 뎅강 자르겠다고 했잖아요?』
사연객은 말했다.
『그렇다. 이제 보니 네 녀석은 아주 바보는 아니구나. 기억력이 꽤 괜찮은데 그래. 만약에 네가 백치라면 정말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을 게야.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그는 황량한 곳에 큰길로 나섰다. 그들은 길옆의 어느 조그만 국수집으로 들어갔다.
사연객은 두개의 만두를 시켜서 먹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린 거지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천천히 만두를 씹으면서 감탄을 연발했다.
『맛있군. 맛이 매우 좋군!』
그는 왼손으로 다른 만두를 쳐들고 어린 거지의 앞에서 들어 보였다.
‘이 아이는 남에게 빌어먹는 것이 습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만두를 먹게 된다면 그만 먹고 싶어서 나에게 하나 달라고 하겠지. 내가 만두를 그에게 주게 된다면 현철령으로 인한 나의 약속은 지켜지는 셈이니 나는 자연히 자유자재로 이 세상을 다닐 수 있게 될 것이고 다시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현철령에 얽힌 커다란 일을 하나의 만두로 해결한다는 방법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어린 거지를 상대할 때는 문제가 달랐다.
거지를 상대로 했을 때 한 개의 호떡이나 만두로써 끝낼 수도 있는 것이다.
한데 나이 어린거지는 만두를 쳐다보며 끊임없이 침을 삼키면서도 좀처럼 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사연객은 그의 입에서 만두를 달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나의 만두를 다 먹고 두 번째 만두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다시 그는 찜통 속으로부터 하나의 만두를 더 집어 들려고 했다.
그때 나이 어린 거지가 갑자기 가게 주인에게 말했다.
『나도 두 개의 만두를 먹겠어요.』
그는 찜통 안으로 손을 넣었다.
가게 주인은 사연객을 보았다. 혹시 사연객이 주지 말라면 어쩌나 싶어 그의 대답을 들으려는 것이었다. 사연객은 속으로 무척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가게 주인이 너에게 돈을 달라고 하게 된다면 네가 나에게 부탁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지.'
그런데 어린 거지는 하나를 먹고 다시 하나를 더 먹었다. 한꺼번에 네 개의 만두를 먹고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이젠 배가 불러요. 이제 그만 먹겠어요.』
사연객은 두 개를 먹고 더 먹지 않았다.
그는 주인에게 물었다.
『얼마요?』
주인은 계산을 하고 대답했다.
『하나에 이푼이니 여섯 개니까 십이 푼입니다.』
사연객은 말했다.
『아니오. 각자가 먹은 것을 치르는 것이외다. 내가 두개를 먹었으니 네 푼만 주면 되는 것이오.』
그는 품속에서 동전을 꺼내려고 했다.
헌데 주머니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낮에 변량성 밖에서 술을 먹느라고 은자와 동전을 모조리 써버린 것이다.
몸에는 적지 않은 금조각이 있었으나 변량성에서 은으로 바꾸는 것을 깜빡 잊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길옆의 조그만 가게에서 금을 꺼내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어 그만 난처해지고 말았다.
그런데 갑자기 어린 거지가 품속에서 한 덩이의 은을 꺼내 주인에게 내밀었다.
『모두 십이 푼이라고 했죠? 내가 모두 드리겠어요.』
사연객은 어리둥절했다.
『뭐라구? 네가 한턱을 내겠다는 거냐?』
어린 거지는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돈이 없고 나는 돈이 있으니 당신한테 한턱낸들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그 가게 주인도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주인은 놀라 거스름돈을 계산하여 은자와 동전을 어린 거지에게 내주었다.
어린 거지는 그것을 품속에 집어넣고 사연객을 쳐다보며 그의 분부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사연객은 그만 어이가 없었다.
‘나 사연객은 남에게 쌀 한 톨의 은혜도 입지 않았는데 뜻밖에도 오늘 이 어린 거지에게 만두를 얻어먹게 되었구나.'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물었다.
『너는 내가 돈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어린 거지는 웃으면서 말했다.
『며칠 전 시장에서 주머니의 돈을 꺼낸답시고 손을 집어넣은 사람이 반나절 동안 그 손을 뽑아내지 못하는 것을 보았는데 얼굴표정이 매우 야릇했어요. 그것은 바로 돈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모양을 본 반점의 주인은 남의 음식을 공짜로 먹는 사람은 모두 그런 수작을 부린다고 하더군요.』
사연객은 다시 한번 쓴웃음을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녀석이 나를 공짜로 얻어먹는 사람으로 아는가 보구나.'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물었다.
『너는 그 은자를 어디서 훔쳤느냐?』
어린 거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했다.
『훔치다뇨? 조금 전 백의를 입은 어진 아주머니가 나에게 준 거예요.』
사연객은 말했다.
『백의를 입은 아주머니라구?』
그는 곧 민유를 떠올렸다.
‘그 여인이 내 일을 망친 셈이군.'
두 사람은 가게에서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수십 마장을 걸어가자 사연객은 민유의 그 백검을 쳐들고 말했다.
『이 검은 매우 예리하다. 조금 전 가볍게 휘둘렀는데 나무가 잘라졌다. 너는 이 검이 마음에 안 드느냐? 네가 달라면 내가 너에게 주지.』
그는 실로 더럽기 짝이 없는 이 어린 거지와 더 오래 있고 싶지가 않았다.
그는 빨리 어떤 부탁을 들어주고 홀가분해지고 싶었다.
그 어린 거지는 뜻밖에도 고개를 흔들었다.
『싫어요! 그 검은 그 착하신 아주머니 것이에요. 그 분은 좋은 사람이니 그녀의 물건을 달라고 할 수 없어요.』
사연객은 다시 흑검을 뽑았다.
그는 뽑는 즉시 옆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두 동강이 나게 베어 넘기고 말했다.
『이 검의 위력이 어떠냐? 이 흑검을 너에게 주겠다.』
어린 거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흑의를 입은 분의 것이 아니에요? 흑의인과 착하신 아주머니는 일행이었어요. 나는 그의 물건을 달라고 할 수가 없어요.』
사연객은 퉤, 하고 침을 뱉었다.
『개잡종! 너는 퍽 의리를 좋아하는 녀석이구나.』
어린 거지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는지 반문했다.
『의리가 뭐에요?』
사연객은 코웃음치고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것도 모르는 너를 상대해 보았자 헛것이지.'
거지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알고 보니 당신은 의리를 싫어하는가 보군요?』
사연객은 어린 거지의 당돌한 질문에 화가 났다. 푸른 기운이 그의 얼굴에 번쩍하며 떠올랐다.
그는 대뜸 손을 들어서 어린 거지의 정수리를 내려치려고 했다.
그러다가 그의 천진난만한 얼굴표정을 보자 그만 자기도 모르게 손을 거둬들이고 말았다.
‘내가 어찌 너에게 손을 쓰겠느냐? 너는 의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니 일부러 나를 비웃으려고 하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그는 의리를 싫어한다는 말을 의리를 지키기 싫어한다. 즉 의리가 없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강호에서 의리가 없다는 것은 정사 양파에서도 가장 신랄한 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연객은 화가 났던 것이다.
사연객은 천천히 말했다.
『내가 왜 의리를 싫어한단 말이냐? 나는 의리를 좋아하고 또 지키기도 한다.』
어린 거지는 두 눈을 껌뻑이며 물었다.
『의리를 지키는 것은 좋은 일인가요?』
사연객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물론 좋은 일이지!』
어린 거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잖아요? 어르신은 좋은 일을 했으니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말이 다른 사람의 입에서 흘러 나왔더라면 사연객은 반드시 비웃음으로 받아들였을 것이고, 생각해 보지도 않고 단 일 장에 그를 쳐 죽였을 것이다.
그는 한평생 남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우연히 몇 가지 좋은 일을 했으나 그것은 그의 기분에 의한 것이었고 어쩌다가 해 본 짓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자기가 한평생 저지른 나쁜 짓을 생각해 볼 때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린 거지가 매우 진지한 어조로 그와 같은 말을 하게 되니 그만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은 정말 말하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구나. 나를 의리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가 또 좋은 사람이라고 하니, 만약 나의 적들이 옆에서 이 말을 들었다면 무림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겠는가? 이 사연객이 얼굴을 어떻게 내놓을 수 있겠는가?
일찌감치 이 일을 끝내고 꼬마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하자.'
사연객은 어린 거지가 흑백쌍검을 마다하자 파란 보자기를 꺼내 쌍검을 싸서 어깨에 짊어지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 저 녀석이 나에게 부탁을 하도록 만들까?'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길 옆 세 그루의 대추나무에 대추들이 잔뜩 영글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연객은 대추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대추가 매우 먹음직스럽구나.』
그 세 그루의 대추나무는 매우 거대했다.
어린 거지가 자기에게 대추를 따달라고 한다면 그의 부탁을 들어준 것으로 간주하고 일을 끝내려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린 거지가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대호인(大好人), 대추를 먹고 싶은가요?』
사연객은 의아해 하여 물었다.
『대호인? 그게 무슨 뜻이냐?』
어린 거지는 대답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나는 당신을 대호인이라고 부른 거예요.』
사연객은 무서운 안색으로 물었다.
『누가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냐?』
어린 거지는 말했다.
『좋은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요? 그럼 나쁜 사람이겠군요. 좋아요. 저는 당신을 대악인(大惡人)이라고 부르겠어요.』
사연객은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나는 대악인도 아니다.』
꼬마 거지는 물었다.
『그것 참 이상하군요.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니라니, 이런 사람도 아니고 저런 사람도 아니니 그럼 뭐지? 아, 알았어요. 당신은 사람이 아니군요.』
사연객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
『너는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어린 거지는 말했다.
『당신의 재간이 신기하니까 사람이 아니고 신선일거에요.』
사연객은 말했다.
『그것도 틀리다.』
그의 표정은 조금 부드러워졌다. 곧이어 그는 타이르듯 말했다.
『제발 터무니없는 소리 좀 그만 해라.』
어린 거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중얼거렸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니 뭐가 되는지 알 수가 없군.』
갑자기 그는 쪼르르 달려가더니 그 대추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다.
두어 번 발을 차는 듯 하더니 나무 위로 올라갔는데 그 동작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사연객은 그가 무공을 모르긴 하나 나무를 기어오르는 솜씨는 제법 민활하다고 여겼다.
이때 어린 거지는 가장 큰 대추들을 골라서 따더니 연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삽시간에 그의 주머니가 불룩해졌다.
그제 서야 어린 거지는 나무 위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두 손으로 대추를 한 움큼 받쳐 들고 사연객에게 내밀었다.
『이 대추를 잡숴 보세요.』
사연객은 말없이 대추를 받아서 먹어 보았다.
달콤한 것이 맛이 괜찮았다.
‘그가 나에게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그에게 부탁하는 꼴이 되었군.'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넌지시 말했다.
『너는 내가 누군지 알고 싶지 않느냐? 나에게 당신이 누구냐고 물어보아라. 그러면 내가 나의 신분을 알려 주겠다.』
그러나 어린 거지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나는 남에게 부탁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사연객은 속으로 흠칫해져서는 물었다.
『어째서 남에게 부탁을 하지 않느냐?』
어린 거지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의 어머님은 말했어요. 남에게 어떤 부탁을 하면 그 사람이 들어주고 싶어도 들어주지 않는다고요. 그러나 부탁을 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들어 준다는 거예요. 상대방에서 원하지 않을 때는 아무리 부탁하고 애걸복걸해도 소용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에게 혐오감을 산다고 했어요.』
그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사연객을 한번 힐끔 쳐다보며 다시 말했다.
『저의 어머니는 때로 맛있는 음식을 저에게 주면서도 제가 달라고 하면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무섭게 매를 때렸어요. 그리고 ‘개잡종 새끼, 나에게 무슨 부탁을 하는 것이냐? 왜 그 예쁜 계집년에게 가서 부탁하지 않고' 하면서 마구 때리기 때문에 저는 결코 남에게 부탁을 하지 않아요.』
사연객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예쁜 계집년이란 누구냐?』
어린 거지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나도 몰라요.』
사연객은 다시 한번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적지 않게 실망을 했다.
‘이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된 녀석이길래 부탁도 하지 않는 것일까? 부탁을 하지 않는다면 내가 맹세한 것을 지킬 수 없게 되는데 야단났군. 더군다나 그의 어미는 아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하는데도 때리고 욕을 한다니 아마도 남편이 소실을 얻어 그녀를 버렸기 때문에 아들한테 화풀이를 하는 모양이다. 시골의 우둔한 여인네들은 본래 그렇지.'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너는 거지 행세를 하고 있는데 남에게 밥을 빌어먹거나 돈을 동냥하지 않았느냐?』
어린 거지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한 번도 빌어먹어 본 적이 없어요. 남이 나에게 준다면 갖고 남이 주지 않을 때는 그가 주의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정신을 팔게 되었을 때 갖고서 뺑소니를 쳐요.』
사연객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그럼 거지가 아니라 도둑놈이구나.』
어린 거지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도둑놈이 뭐예요?』
사연객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정말 모르는 것이냐? 아니면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는 것이냐?』
어린 거지는 더욱 궁금하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모르니까 묻는 것이지요. 그리고 시치미라는 게 뭐예요?』
사연객은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봤다. 비록 때가 묻어 더러운 얼굴이지만 눈빛은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것이 전혀 우둔한 점이 엿보이지 않았다.
『너는 세살 먹은 어린애도 아닌데 어째서 그 나이가 되도록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느냐?』
어린 거지는 침울한 음성으로 말했다.
『저의 어머니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기 싫어했어요. 나를 보기만 하면 역겨워했거든요. 그리고 열흘이고 보름이고 나를 아랑곳하지 않아요.』
그는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나는 부득이 아황에게 말을 걸죠. 그러나 아황은 말을 들을 수만 있었지 하지는 못해요. 그러니 그가 어떻게 도적이 뭐고 시치미를 뗀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줄 수 있겠느냔 말이에요.』
사연객은 그의 눈동자에 조금도 교활한 빛이 없는 것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녀석은 정말 슬쩍 말을 돌려서 나를 욕하는 것이 아닌 것 같구나.'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물었다.
『그럼 이웃과 이야기를 하면 되지 않느냐?』
어린 거지는 눈망울을 굴리며 반문했다.
『이웃이 뭐예요?』
사연객은 그만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 말했다.
『너의 집 부근에 살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웃이다.』
어린 거지는 실망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저의 집 부근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구요? 저의 집 부근에 살고 있는 것이라면 열한그루의 소나무와 소나무 위에서 살고 있는 다람쥐들, 그리고 꿩들이나 토끼들이 있는데 그들이 이웃이란 말이에요? 그들은 짹짹 소리만 지를 뿐 말은 못하던데요?』
사연객은 그만 어이가 없었다.
『너는 이 나이가 되도록 어머니 외에 남과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느냐?』
그는 암담히 말했다.
『나는 줄곧 산중에서 살았으며 산에서 내려오지 못했어요. 어머님 외에 남과 이야기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며칠 전 어머니가 보이지 않아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가 산 위에서 떨어지고 말았어요. 그리고 아황을 잃어버렸어요.』
그는 고개를 쳐들고 사연객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남에게 우리 어머니가 어디 갔냐고 물어보았고 아황이 어디 갔냐고 물어보았지만 다른 사람은 한결 같이 모른다고 하데요. 이것도 이야기 한 것이라고 하나요?』
사연객은 속으로 생각했다.
‘알고 보니 이 아이는 황량한 산 속에서 살고 있었구나. 거기다가 어미가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니 이것저것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는 이렇게 생각을 굴리고 대답했다.
『그것도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렇다면 말이다, 너는 어떻게 은자로 만두를 사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
어린 거지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남들이 사먹는 것을 보았거든요.』
그는 다시 사연객을 쳐다보며 말했다.
『은자가 없다면 나에게 있으니 필요하다면 드릴게요.』
그는 품속에서 은조각을 꺼내서 내밀었다.
사연객은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필요 없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녀석은 멍청한 데가 있기는 하지만 치사한 녀석은 아니로구나.'
이와 같은 대화를 나누자 그는 점차 마음이 놓였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이 나이 어린 거지를 이용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第 六 章 천진한 꼬마거지
가마는 수마 장을 전진해 가더니 작은 길로 접어들었다. 가마를 메고 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소리가 조금씩 낮추어졌다.
이때였다.
가마 안에서 말채찍이 쭉 뻗쳐 나오더니 휙휙, 휘둘러졌다. 그런가 하면 곧이어 그 채찍은 앞의 가마꾼의 등을 세차게 후려쳤다. 그러자 앞의 가마꾼이 걸음을 빨리 하니 뒤에 따라가던 가마꾼도 걸음을 빨리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명의 관졸들은 뒤에서 따랐다.
가마는 어느새 네 마장을 전진했다.
이때서야 가마 안의 사람이 입을 열었다.
『됐다. 멈추어라.』
네 명의 가마꾼은 마치 대사면을 받은 사람처럼 숨을 헐떡이며 가마를 내려놓았다.
가마의 휘장이 들춰지고 한 사람의 늙은이가 걸어 나왔다. 늙은이는 바로 현철령의 주인 사연객이었으며 그의 손에 붙잡혀 있는 사람은 바로 그 나이 어린 거지였다.
그는 몇 명의 관졸에게 호통을 쳤다.
『돌아가서 너희들 관장(官長)에게 오늘의 일을 퍼뜨리지 말라고 전해라. 어떠한 소문이라도 듣게 된다면 너희들의 머리통을 모조리 베어버리고 관인(官印)을 황하(黃河)에 던져버리고 말 것이다.』
관졸들은 그 말을 듣자 겁에 질린 표정을 허리를 굽신거렸다.
『알겠습니다. 절대로 입을 열지 않겠으니 나으리께서는 아무 염려마시고 천천히 떠나도록 하십시오.』
사연객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나더러 천천히 떠나라고? 흥! 네놈들은 동료들을 불러서 나를 사로잡겠다는 것이냐?』
그러자 한 명의 관졸이 재빨리 말했다.
『아, 아닙니다. 저희들이 어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연객은 두 눈에 흉광을 번뜩이며 말했다.
『너희 관장에게 전하라고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겠지?』
그러자 관졸은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기억하고 말굽쇼. 후감집에서 호떡 장사를 하는 늙은이와 잡화가게의 사환을 죽인 백자재라는 늙은이는 설산파의 장문인이며 별호는 위덕선생이라고 하나 실제에 있어서는 아무런 위엄도 덕망도 없는 사람이며 무기는 한 자루의 칼인데 칼에는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하고 보고하는 것입죠. 그렇게 된다면 인증물증(人證物證)이 모두 있으니 그 늙은이도 억지를 쓰지는 못할 것입니다.』
관졸은 먼저 사연객에게 얻어맞아 두렵기 때문에 인증물증을 들먹인 것이며 칼로 증거를 삼는 것은 그들의 상투수단이었다.
사연객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백 늙은이는 검을 사용하지 칼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러자 그 관졸은 재빨리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 백가 범인은 청강검(靑鋼劍)을 들고 있었으며 호떡 파는 늙은이의 몸을 찔렀습니다. 후감집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보았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되겠지요?』
사연객은 속으로 웃었다.
‘위덕선생 백자재가 정말 오도통을 죽이려고 했다면 무기를 사용할 필요도 없지.'
그러나 그는 그와 같은 관졸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왼손으로 어린 거지의 손을 잡고 오른손에는 석청부부의 흑백쌍검을 들고 그곳을 떠나갔다.
그는 매우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
원래 그는 어린 거지를 데리고 간 후 석청 부부와 설산파 제자가 자기에게 어떤 불리한 일을 할까 봐 수 마장을 달려 나간 후 어린 거지의 혈도를 짚어 풀밭에 던져버리고 살그머니 돌아와 그들이 주고받은 말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무공이 석청보다 훨씬 뛰어났기 때문에 나무 뒤에서 숨어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으나 석청과 민유등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사연객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모든 것이 자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석청이 쌍검을 경만종에게 주는 것을 목격하고는 쌍검을 빼앗아와야겠다고 작정을 했다. 그리하여 풀밭으로 되돌아가 어린 거지를 잡아 일으켜서 그의 혈도를 풀었다.
마침 이때 저쪽 길에서 후감집으로 사건을 조사하려 하는 지현(知縣)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즉시 지현을 가마 안에서 끌어내고 관졸들과 가마꾼들을 위협했다.
그리하여 관졸들과 가마꾼들이 그와 어린 거지를 태워서는 쌍검을 빼앗는데 한몫을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경만종은 가마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지 못했는지라 필시 석청 부부의 수작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연객은 어린 거지를 붙잡고 황량한 곳으로만 걸어갔다.
어느덧 조그만 시냇가에 이르게 되었다.
사방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그는 어린거지의 손을 놓고 민유의 백검을 뽑아 어린 거지의 목에 갖다 대고 날카롭게 외쳐 물었다.
『도대체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 말해라. 만약 한마디라도 거짓말을 했다간 네 놈을 즉시 죽이고 말겠다!』
그는 백검을 휘둘렀다. 싹! 하는 가벼운 음향과 함께 옆의 조그마한 나무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반 토막의 나무는 가지 및 잎과 더불어 냇물에 떨어져 물길을 따라 흘러갔다.
어린 거지는 그것을 보자 겁먹은 음성으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나는……누구의……지시도……받지 않았어요.』
사연객은 현철령을 꺼내 들고 호통쳐 물었다.
『이것은 누가 준 것이지?』
어린 거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호떡을 깨물었더니…… 그 속에 있었어요.』
사연객은 대노했다. 왼손을 번쩍 들어 그의 얼굴을 후려치려는 순간이었다.
그는 현철령을 자기에게 건네준 사람에게 손찌검을 해서는 안 된다는 과거의 맹세를 상기하고 재빨리 손을 거둬들이고는 호통을 내질렀다.
『터무니없는 소리! 무슨 호떡이란 말이냐? 내가 지금 묻고 있는 것은 누가 이 물건을 너에게 주었느냐 하는 것이다.』
어린 거지는 그의 호통소리에 사색이 되어 말을 이었다.
『저는 땅바닥의 호떡을 주워 먹었어요. 그런데 한번 깨물자마자 하마터면…… 이빨이 부러져 나갈 뻔 했지 뭐예요……』
사연객은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 오도통 녀석이 이 쇳조각을 호떡 속에 숨긴 것이 아닐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것은 너무 어처구니없는 행동 같았다.
‘천하에 그와 같이 우연한 일이 있을 리가 없다. 그 녀석이 이 현철령을 손에 넣었다면 자기 목숨보다 더욱 아꼈을 것인데 어찌 호떡 속에 넣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금도채의 인마가 갑자기 나타나 후감집의 사면을 에워싸자 오도통은 달리 그 현철령을 숨길만한 장소를 찾을 여가가 없었다. 그리하여 어찌할 수 없어 현철령을 호떡 속에 넣어서는 금도채의 소두령에게 내밀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사람은 크게 노해서 호떡을 집어 드는 즉시 내어 던지게 된 것이고, 곧이어 금도채의 졸개들이 호떡가게를 모조리 뒤엎어 버릴 듯 찾았으나 땅바닥에 떨어진 호떡 속에 현철령이 들어 있으리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연객은 한참 동안 어린 거지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너의 이름이 뭐지?』
어린 거지는 머뭇거리더니 이내 대답했다.
『저는……개잡종이라고 해요.』
사연은 크게 의아하여 물었다.
『뭐야? 개잡종이라구?』
어린 거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요. 저의 어머니는 저를 개잡종이라고 불러요.』
성격이 괴팍한 사연객은 일년 열두 달 동안 별로 웃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린 거지의 그와 같은 말을 듣게 되자 그만 배꼽을 움켜잡고 웃는 것이었다.
그는 웃으면서 생각했다.
‘세상에 자기 아이에게 천한 이름을 지어주는 부모들은 흔히 있다. 무럭무럭 자라나 귀신의 질투를 받지 않도록 하려는 뜻에서 개똥이니 돼지니 하는 이름을 붙이지만 자기의 애를 개잡종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그의 어머니가 그렇게 불렀다니, 아이고! 정말 우습다.'
어린 거지는 그가 웃자 이유도 모르고 따라서 헤헤 웃었다.
사연객은 갑자기 웃음을 그치고 물었다.
『너의 아버지 이름은 뭐지?』
어린 거지는 고개를 흔들었다.
『저의 아버님요? 저는 아버님이 없는 걸요.』
사연객은 계속 물었다.
『그럼 집에 또 어떤 사람이 있지?』
어린 거지는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저와 어머니, 그리고 아황입니다.』
사연객이 물었다.
『아황이 누구냐?』
어린거지는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황은 한 마리의 누런 개입니다. 어머님이 보이지 않게 되자 어머님을 찾으러 나서게 되었는데 아황도 저의 뒤를 따라왔지요. 그런데 배가 고프게 되자 음식을 먹으러 저의 곁을 떠난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사연객은 속으로 생각했다.
‘알고 보니 좀 바보 같은 아이로군. 아무래도 이 현철령을 얻게 된 것은 우연인 것 같다. 나에게 어떤 부탁을 한 가지 하도록 하여 옛날의 맹세를 저버리지 않고 일을 끝내야겠군.'
이리하여 그는 물었다.
『너는 노부에게 무슨 부탁할……』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이 녀석이 만약 나에게 그의 어머니를 찾아내라든가 그 개새끼를 찾아 달라고 하면 어디 가서 찾지? 그의 어머니는 반드시 다른 사내를 따라 도망을 쳤을 것이고 아황은 벌써 보신탕이 되고 말았을 터인데 그와 같은 부탁을 하게 된다면 정말 큰일이지. 일곱 명이나 여덟 명의 무림고수를 죽이는 것보다도 더욱 힘드는 일이 아니냐 말이다.'
이와 같은 생각이 들어 잠시 망설이다가 생각나는 것이 있어 다시 말을 이었다.
『좋아! 나는 너에게 말하겠는데 누가 너보고 나한테 무슨 말을 하라고 했을 때 너는 그 말을 들어선 안 돼! 그렇지 않으면 나는 즉시 너의 머리를 뎅강 잘라버리고 말겠다. 알겠느냐?』
어린 거지가 현철령을 자기의 손에 넘겨준 일은 얼마 후 무림에 퍼지게 될 것이다.
그 때 어떤 사람이 이 어린 거지를 꼬여서 자기에게 어떤 부탁을 하도록 한다면 과거의 맹세 때문에 거절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어린 거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사연객은 안심을 하고 다시 물었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어린 거지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나에게 그 누가 나보고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라고 시킨다면 입을 열지 말 것이며, 내가 말을 하면 나의 목을 뎅강 자르겠다고 했잖아요?』
사연객은 말했다.
『그렇다. 이제 보니 네 녀석은 아주 바보는 아니구나. 기억력이 꽤 괜찮은데 그래. 만약에 네가 백치라면 정말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을 게야.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그는 황량한 곳에 큰길로 나섰다. 그들은 길옆의 어느 조그만 국수집으로 들어갔다.
사연객은 두개의 만두를 시켜서 먹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린 거지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천천히 만두를 씹으면서 감탄을 연발했다.
『맛있군. 맛이 매우 좋군!』
그는 왼손으로 다른 만두를 쳐들고 어린 거지의 앞에서 들어 보였다.
‘이 아이는 남에게 빌어먹는 것이 습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만두를 먹게 된다면 그만 먹고 싶어서 나에게 하나 달라고 하겠지. 내가 만두를 그에게 주게 된다면 현철령으로 인한 나의 약속은 지켜지는 셈이니 나는 자연히 자유자재로 이 세상을 다닐 수 있게 될 것이고 다시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현철령에 얽힌 커다란 일을 하나의 만두로 해결한다는 방법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어린 거지를 상대할 때는 문제가 달랐다.
거지를 상대로 했을 때 한 개의 호떡이나 만두로써 끝낼 수도 있는 것이다.
한데 나이 어린거지는 만두를 쳐다보며 끊임없이 침을 삼키면서도 좀처럼 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사연객은 그의 입에서 만두를 달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나의 만두를 다 먹고 두 번째 만두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다시 그는 찜통 속으로부터 하나의 만두를 더 집어 들려고 했다.
그때 나이 어린 거지가 갑자기 가게 주인에게 말했다.
『나도 두 개의 만두를 먹겠어요.』
그는 찜통 안으로 손을 넣었다.
가게 주인은 사연객을 보았다. 혹시 사연객이 주지 말라면 어쩌나 싶어 그의 대답을 들으려는 것이었다. 사연객은 속으로 무척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가게 주인이 너에게 돈을 달라고 하게 된다면 네가 나에게 부탁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지.'
그런데 어린 거지는 하나를 먹고 다시 하나를 더 먹었다. 한꺼번에 네 개의 만두를 먹고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이젠 배가 불러요. 이제 그만 먹겠어요.』
사연객은 두 개를 먹고 더 먹지 않았다.
그는 주인에게 물었다.
『얼마요?』
주인은 계산을 하고 대답했다.
『하나에 이푼이니 여섯 개니까 십이 푼입니다.』
사연객은 말했다.
『아니오. 각자가 먹은 것을 치르는 것이외다. 내가 두개를 먹었으니 네 푼만 주면 되는 것이오.』
그는 품속에서 동전을 꺼내려고 했다.
헌데 주머니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낮에 변량성 밖에서 술을 먹느라고 은자와 동전을 모조리 써버린 것이다.
몸에는 적지 않은 금조각이 있었으나 변량성에서 은으로 바꾸는 것을 깜빡 잊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길옆의 조그만 가게에서 금을 꺼내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어 그만 난처해지고 말았다.
그런데 갑자기 어린 거지가 품속에서 한 덩이의 은을 꺼내 주인에게 내밀었다.
『모두 십이 푼이라고 했죠? 내가 모두 드리겠어요.』
사연객은 어리둥절했다.
『뭐라구? 네가 한턱을 내겠다는 거냐?』
어린 거지는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돈이 없고 나는 돈이 있으니 당신한테 한턱낸들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그 가게 주인도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주인은 놀라 거스름돈을 계산하여 은자와 동전을 어린 거지에게 내주었다.
어린 거지는 그것을 품속에 집어넣고 사연객을 쳐다보며 그의 분부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사연객은 그만 어이가 없었다.
‘나 사연객은 남에게 쌀 한 톨의 은혜도 입지 않았는데 뜻밖에도 오늘 이 어린 거지에게 만두를 얻어먹게 되었구나.'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물었다.
『너는 내가 돈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어린 거지는 웃으면서 말했다.
『며칠 전 시장에서 주머니의 돈을 꺼낸답시고 손을 집어넣은 사람이 반나절 동안 그 손을 뽑아내지 못하는 것을 보았는데 얼굴표정이 매우 야릇했어요. 그것은 바로 돈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모양을 본 반점의 주인은 남의 음식을 공짜로 먹는 사람은 모두 그런 수작을 부린다고 하더군요.』
사연객은 다시 한번 쓴웃음을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녀석이 나를 공짜로 얻어먹는 사람으로 아는가 보구나.'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물었다.
『너는 그 은자를 어디서 훔쳤느냐?』
어린 거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했다.
『훔치다뇨? 조금 전 백의를 입은 어진 아주머니가 나에게 준 거예요.』
사연객은 말했다.
『백의를 입은 아주머니라구?』
그는 곧 민유를 떠올렸다.
‘그 여인이 내 일을 망친 셈이군.'
두 사람은 가게에서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수십 마장을 걸어가자 사연객은 민유의 그 백검을 쳐들고 말했다.
『이 검은 매우 예리하다. 조금 전 가볍게 휘둘렀는데 나무가 잘라졌다. 너는 이 검이 마음에 안 드느냐? 네가 달라면 내가 너에게 주지.』
그는 실로 더럽기 짝이 없는 이 어린 거지와 더 오래 있고 싶지가 않았다.
그는 빨리 어떤 부탁을 들어주고 홀가분해지고 싶었다.
그 어린 거지는 뜻밖에도 고개를 흔들었다.
『싫어요! 그 검은 그 착하신 아주머니 것이에요. 그 분은 좋은 사람이니 그녀의 물건을 달라고 할 수 없어요.』
사연객은 다시 흑검을 뽑았다.
그는 뽑는 즉시 옆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두 동강이 나게 베어 넘기고 말했다.
『이 검의 위력이 어떠냐? 이 흑검을 너에게 주겠다.』
어린 거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흑의를 입은 분의 것이 아니에요? 흑의인과 착하신 아주머니는 일행이었어요. 나는 그의 물건을 달라고 할 수가 없어요.』
사연객은 퉤, 하고 침을 뱉었다.
『개잡종! 너는 퍽 의리를 좋아하는 녀석이구나.』
어린 거지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는지 반문했다.
『의리가 뭐에요?』
사연객은 코웃음치고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것도 모르는 너를 상대해 보았자 헛것이지.'
거지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알고 보니 당신은 의리를 싫어하는가 보군요?』
사연객은 어린 거지의 당돌한 질문에 화가 났다. 푸른 기운이 그의 얼굴에 번쩍하며 떠올랐다.
그는 대뜸 손을 들어서 어린 거지의 정수리를 내려치려고 했다.
그러다가 그의 천진난만한 얼굴표정을 보자 그만 자기도 모르게 손을 거둬들이고 말았다.
‘내가 어찌 너에게 손을 쓰겠느냐? 너는 의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니 일부러 나를 비웃으려고 하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그는 의리를 싫어한다는 말을 의리를 지키기 싫어한다. 즉 의리가 없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강호에서 의리가 없다는 것은 정사 양파에서도 가장 신랄한 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연객은 화가 났던 것이다.
사연객은 천천히 말했다.
『내가 왜 의리를 싫어한단 말이냐? 나는 의리를 좋아하고 또 지키기도 한다.』
어린 거지는 두 눈을 껌뻑이며 물었다.
『의리를 지키는 것은 좋은 일인가요?』
사연객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물론 좋은 일이지!』
어린 거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잖아요? 어르신은 좋은 일을 했으니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말이 다른 사람의 입에서 흘러 나왔더라면 사연객은 반드시 비웃음으로 받아들였을 것이고, 생각해 보지도 않고 단 일 장에 그를 쳐 죽였을 것이다.
그는 한평생 남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우연히 몇 가지 좋은 일을 했으나 그것은 그의 기분에 의한 것이었고 어쩌다가 해 본 짓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자기가 한평생 저지른 나쁜 짓을 생각해 볼 때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린 거지가 매우 진지한 어조로 그와 같은 말을 하게 되니 그만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은 정말 말하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구나. 나를 의리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가 또 좋은 사람이라고 하니, 만약 나의 적들이 옆에서 이 말을 들었다면 무림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겠는가? 이 사연객이 얼굴을 어떻게 내놓을 수 있겠는가?
일찌감치 이 일을 끝내고 꼬마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하자.'
사연객은 어린 거지가 흑백쌍검을 마다하자 파란 보자기를 꺼내 쌍검을 싸서 어깨에 짊어지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 저 녀석이 나에게 부탁을 하도록 만들까?'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길 옆 세 그루의 대추나무에 대추들이 잔뜩 영글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연객은 대추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대추가 매우 먹음직스럽구나.』
그 세 그루의 대추나무는 매우 거대했다.
어린 거지가 자기에게 대추를 따달라고 한다면 그의 부탁을 들어준 것으로 간주하고 일을 끝내려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린 거지가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대호인(大好人), 대추를 먹고 싶은가요?』
사연객은 의아해 하여 물었다.
『대호인? 그게 무슨 뜻이냐?』
어린 거지는 대답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나는 당신을 대호인이라고 부른 거예요.』
사연객은 무서운 안색으로 물었다.
『누가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냐?』
어린 거지는 말했다.
『좋은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요? 그럼 나쁜 사람이겠군요. 좋아요. 저는 당신을 대악인(大惡人)이라고 부르겠어요.』
사연객은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나는 대악인도 아니다.』
꼬마 거지는 물었다.
『그것 참 이상하군요.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니라니, 이런 사람도 아니고 저런 사람도 아니니 그럼 뭐지? 아, 알았어요. 당신은 사람이 아니군요.』
사연객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
『너는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어린 거지는 말했다.
『당신의 재간이 신기하니까 사람이 아니고 신선일거에요.』
사연객은 말했다.
『그것도 틀리다.』
그의 표정은 조금 부드러워졌다. 곧이어 그는 타이르듯 말했다.
『제발 터무니없는 소리 좀 그만 해라.』
어린 거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중얼거렸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니 뭐가 되는지 알 수가 없군.』
갑자기 그는 쪼르르 달려가더니 그 대추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다.
두어 번 발을 차는 듯 하더니 나무 위로 올라갔는데 그 동작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사연객은 그가 무공을 모르긴 하나 나무를 기어오르는 솜씨는 제법 민활하다고 여겼다.
이때 어린 거지는 가장 큰 대추들을 골라서 따더니 연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삽시간에 그의 주머니가 불룩해졌다.
그제 서야 어린 거지는 나무 위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두 손으로 대추를 한 움큼 받쳐 들고 사연객에게 내밀었다.
『이 대추를 잡숴 보세요.』
사연객은 말없이 대추를 받아서 먹어 보았다.
달콤한 것이 맛이 괜찮았다.
‘그가 나에게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그에게 부탁하는 꼴이 되었군.'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넌지시 말했다.
『너는 내가 누군지 알고 싶지 않느냐? 나에게 당신이 누구냐고 물어보아라. 그러면 내가 나의 신분을 알려 주겠다.』
그러나 어린 거지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나는 남에게 부탁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사연객은 속으로 흠칫해져서는 물었다.
『어째서 남에게 부탁을 하지 않느냐?』
어린 거지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의 어머님은 말했어요. 남에게 어떤 부탁을 하면 그 사람이 들어주고 싶어도 들어주지 않는다고요. 그러나 부탁을 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들어 준다는 거예요. 상대방에서 원하지 않을 때는 아무리 부탁하고 애걸복걸해도 소용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에게 혐오감을 산다고 했어요.』
그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사연객을 한번 힐끔 쳐다보며 다시 말했다.
『저의 어머니는 때로 맛있는 음식을 저에게 주면서도 제가 달라고 하면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무섭게 매를 때렸어요. 그리고 ‘개잡종 새끼, 나에게 무슨 부탁을 하는 것이냐? 왜 그 예쁜 계집년에게 가서 부탁하지 않고' 하면서 마구 때리기 때문에 저는 결코 남에게 부탁을 하지 않아요.』
사연객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예쁜 계집년이란 누구냐?』
어린 거지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나도 몰라요.』
사연객은 다시 한번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적지 않게 실망을 했다.
‘이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된 녀석이길래 부탁도 하지 않는 것일까? 부탁을 하지 않는다면 내가 맹세한 것을 지킬 수 없게 되는데 야단났군. 더군다나 그의 어미는 아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하는데도 때리고 욕을 한다니 아마도 남편이 소실을 얻어 그녀를 버렸기 때문에 아들한테 화풀이를 하는 모양이다. 시골의 우둔한 여인네들은 본래 그렇지.'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너는 거지 행세를 하고 있는데 남에게 밥을 빌어먹거나 돈을 동냥하지 않았느냐?』
어린 거지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한 번도 빌어먹어 본 적이 없어요. 남이 나에게 준다면 갖고 남이 주지 않을 때는 그가 주의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정신을 팔게 되었을 때 갖고서 뺑소니를 쳐요.』
사연객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그럼 거지가 아니라 도둑놈이구나.』
어린 거지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도둑놈이 뭐예요?』
사연객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정말 모르는 것이냐? 아니면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는 것이냐?』
어린 거지는 더욱 궁금하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모르니까 묻는 것이지요. 그리고 시치미라는 게 뭐예요?』
사연객은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봤다. 비록 때가 묻어 더러운 얼굴이지만 눈빛은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것이 전혀 우둔한 점이 엿보이지 않았다.
『너는 세살 먹은 어린애도 아닌데 어째서 그 나이가 되도록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느냐?』
어린 거지는 침울한 음성으로 말했다.
『저의 어머니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기 싫어했어요. 나를 보기만 하면 역겨워했거든요. 그리고 열흘이고 보름이고 나를 아랑곳하지 않아요.』
그는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나는 부득이 아황에게 말을 걸죠. 그러나 아황은 말을 들을 수만 있었지 하지는 못해요. 그러니 그가 어떻게 도적이 뭐고 시치미를 뗀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줄 수 있겠느냔 말이에요.』
사연객은 그의 눈동자에 조금도 교활한 빛이 없는 것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녀석은 정말 슬쩍 말을 돌려서 나를 욕하는 것이 아닌 것 같구나.'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물었다.
『그럼 이웃과 이야기를 하면 되지 않느냐?』
어린 거지는 눈망울을 굴리며 반문했다.
『이웃이 뭐예요?』
사연객은 그만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 말했다.
『너의 집 부근에 살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웃이다.』
어린 거지는 실망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저의 집 부근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구요? 저의 집 부근에 살고 있는 것이라면 열한그루의 소나무와 소나무 위에서 살고 있는 다람쥐들, 그리고 꿩들이나 토끼들이 있는데 그들이 이웃이란 말이에요? 그들은 짹짹 소리만 지를 뿐 말은 못하던데요?』
사연객은 그만 어이가 없었다.
『너는 이 나이가 되도록 어머니 외에 남과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느냐?』
그는 암담히 말했다.
『나는 줄곧 산중에서 살았으며 산에서 내려오지 못했어요. 어머님 외에 남과 이야기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며칠 전 어머니가 보이지 않아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가 산 위에서 떨어지고 말았어요. 그리고 아황을 잃어버렸어요.』
그는 고개를 쳐들고 사연객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남에게 우리 어머니가 어디 갔냐고 물어보았고 아황이 어디 갔냐고 물어보았지만 다른 사람은 한결 같이 모른다고 하데요. 이것도 이야기 한 것이라고 하나요?』
사연객은 속으로 생각했다.
‘알고 보니 이 아이는 황량한 산 속에서 살고 있었구나. 거기다가 어미가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니 이것저것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는 이렇게 생각을 굴리고 대답했다.
『그것도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렇다면 말이다, 너는 어떻게 은자로 만두를 사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
어린 거지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남들이 사먹는 것을 보았거든요.』
그는 다시 사연객을 쳐다보며 말했다.
『은자가 없다면 나에게 있으니 필요하다면 드릴게요.』
그는 품속에서 은조각을 꺼내서 내밀었다.
사연객은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필요 없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녀석은 멍청한 데가 있기는 하지만 치사한 녀석은 아니로구나.'
이와 같은 대화를 나누자 그는 점차 마음이 놓였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이 나이 어린 거지를 이용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