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오셨다면 이제 한자의 기본 개념은 어느 정도 잡혀있으신 것이므로,
이번엔 한자가 만들어지는 원리와 관련된 개념들을 다루어볼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대부분 한자 학습서에서도 다루고 있는 육서(六書) 개념부터 보겠습니다.
육서(六書)란, 한자가 형성된 원리를 중국 후한(後漢)의 허신(許愼)이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의 여섯 방법으로 분류한 것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147414C5673F4DD1F)
그림에 쓰여 있듯이, 이 중 네 가지는 한자를 새로 만드는 제자의 원리이고, 나머지 두 가지는 이미 만들어진 한자를 확장하는 운용의 원리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육서 이론은 갑골문의 존재를 몰랐던 시대에 만들어진 이론이어서 실제 조자(造字) 원리를 다 설명해 주진 못하는 2% 부족한 이론입니다.
그래서 기존 육서 이론 대신, 제가 직접 육서 이론에 기초해 실제 조자 원리를 반영해 확장시킨 조자 원리 이론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물론 이 이론은 기존 육서 이론의 확장이므로 육서 이론의 모든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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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가 형성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됩니다.
1.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것.
2. 기존의 글자를 확장시키는 것.
3. 한자어의 약어로 글자를 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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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제자 원리에 해당하는 1을 살펴보면, 여기에는 세 가지 원리가 존재합니다.
1-A. 상형(象形 / 본뜰 상, 모양 형): 사물의 모양을 본떠 글자를 만드는 방법.
이 원리의 예로는, 나무의 가지와 기둥, 뿌리를 본떠서 만든 木(나무 목, 갑골문
), 각각 소와 말을 본떠서 만든 牛(소 우, 갑골문
), 馬(말 마, 갑골문
), 사람의 가슴 부분과 배 부위를 본떠서 만든 心(마음 심, 금문
) 자를 들 수 있습니다.
1-B. 지사(指事 / 가리킬 지, 일 사): 추상적인 개념을 나타내기 위해, 기존 글자에 점획(點劃)을 추가하거나, 글자를 변형하여(뒤집음, 회전, 생략) 글자를 만드는 방법.
나무의 특정 부위를 가리키기 위해 木(나무 목)의 뿌리 부분에 가로 획을 더한 本(뿌리 본)과, 가지 끝에 가로 획을 더한 末(끝 말) 자가 전자의 대표적인 예이고,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음을 표현하기 위해 曰(말할 왈, 갑골문
)을 뒤집어 반대 개념을 표현한 今(이제 금, 갑골문
) 자는 후자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1-C. 병합(倂合 / 아우를 병, 합할 합): 글자와 글자를 모아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방법.
* 발음 부호의 유무(有無)에 따른 분류 (기존 육서 이론에서의 분류)
- 회의(會意 / 모일 회, 뜻 의): 글자와 글자를 모아 만드는 방법. 이 중엔 발음의 어원이 되는 글자가 없다.
예) 光(빛 광) == 火(불 화) + 人(사람 인), 尖(뾰족할 첨) == 小(작을 소) + 大(큰 대)
- 형성(形聲 / 모양 형, 소리 성): 글자와 글자를 모아 만드는 방법. 구성자 중 하나에서 발음을 취하여 정한다.
예) 情(뜻 정←靑) == 心(마음 심) + 靑(푸를 청), 海(바다 해←每) == 水(물 수 → 氵) + 每(매양 매)
* 병합자(倂合字)의 조자(造字) 원리
- 단순 병합: 단순히 글자와 글자를 합하여 만드는 방법.
- 중첩 병합: 같은 글자만을 두 번 이상 반복하여 만드는 방법.
예) 林(수풀 림) == 木(나무 목) * 2, 森(나무 빽빽할 삼) == 木(나무 목) * 3, 姦(간음할 간) == 女(계집 녀) * 3, ...
- 분화(分化 / 나눌 분, 될 화): 어떤 글자의 특정 의미만을 강조해 분화하는 방법.
예) 支(가지/가를 지) + 木(나무 목 => 강조) → 枝(가지 지), 要(허리/중요할 요) + 肉(고기 육 → 月 => 강조) → 腰(허리 요), 文(무늬/글월 문) + 糸(실 멱 => 강조) → 紋(무늬 문), ...
이 때, 원래 글자를 원자(原字), 분화되어 나온 글자를 분화자(分化字)라고 부릅니다. 즉, 文과 紋의 관계에서 文은 원자(原字), 紋은 분화자(分化字)인 것이죠.
저 예들만 본다면 분화는 원자(原字)에서 의미 강조를 위한 글자를 덧붙이는 식으로만 될 거 같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일부 글자들은 아예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분화하기도 합니다. 櫼(쐐기 첨)에서 분화된 尖(뾰족할 첨), 媺(착하고 아름다울 미)에서 분화된 美(아름다울 미)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는 글자의 모양이 너무 복잡해서 간단한 모양으로 쓰고자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 글자를 덧붙이는 식으로 분화됩니다.
- 음역(音譯 / 소리 음, 번역할 역): 의성어, 방언이나 외국어를 한자로 받아적기 위해 글자를 만드는 경우.
예) 僧(중 승, 산스크리트어(僧伽藍摩)의 음역자), 咖(커피 가, coffee(咖啡)의 음역자), 啤(맥주 비, beer(啤酒)의 음역자)
- 연면사에서 갈라져 나온 경우
연면사(聯綿詞 / 이을 련, 솜 면, 말씀 사)란 한자어 중 구성 글자들을 따로 떼어낼 경우에 원래 말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단어를 말합니다. 한자어는 대부분 한자가 먼저 만들어지고, 그 한자들을 모아 한자어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연면사만은 아닙니다. 연면사는 글자보다 말(단어)이 먼저 있었고, 이걸 나중에 글자로 옮겨 적은 것이기 때문에 그 어원 역시 한자들의 결합이 아닌, 다른 한자어나 의성어 따위의 말에서 온 것입니다.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연면사의 예로 葡萄(포도 / 포도 포, 포도 도)가 있습니다. 포도의 어원은 포도주를 뜻하는 박트리아어 *bādāwa를 옛 중국에서 蒲陶(포도 / 부들 포, 질그릇 도)로 음역했고 이 말은 蒲(부들)이나 陶(질그릇)과는 관계가 없는 말이었기 때문에 蒲는 陶를 고려해 葡로 변형해 구분하고 陶는 葡를 고려해 萄로 변형해 葡萄라고 적으면서 나온 말입니다. 葡와 萄 자는 사전에 각각 '포도 포', '포도 도'로 나오긴 하지만 떨어뜨려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연면사에서 글자가 갈라져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한자어의 일부 글자를 마치 한자어의 약어인 것처럼 쓰기도 하는 관습 - 배움(學 / 배울 학)의 울타리(校 / 울타리 교)라는 뜻의 學校(학교)를 校(학교 교)로 줄여서 쓰는 식 - 에서 비롯된 것으로, 호랑이 울음소리를 음역한 연면사 咆哮(포효)에서 갈라져 나와 咆(성낼 포)와 哮(울부짖을 효)를 독립적으로 쓰기도 한다는 것이 그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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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운용 원리에 해당하는 2와 3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2. 기존의 글자를 확장시키는 것. 방식은, 이미 존재하는 글자의 의미를 확장해 나가는 원리로써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2-A. 전주(轉注 / 구를 전, 물댈 주)
전주라는 이름의 한자 뜻을 살펴보면, '굴려서[轉] 닿는다[注]'는 의미입니다. 기존 한자의 뜻을 굴리고 굴려서 다른 뜻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말하는데,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예) 工(만들 공/장인 공): 곱자를 본뜬 글자 → 도구, 연장(예: 工具; 공구) → 만들다(예: 工事; 공사) → 장인(예: 木工; 목공)
日(해 일/날 일): 해 → (해가 뜨고 지는 것을 하루라고 한 데서) 날, 하루
자전에서 한자를 찾아보면 대부분 뜻이 하나만 있지 않고 여러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한자 한 글자에 뜻이 다양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전주(轉注)의 원리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 원리가 없었다면 수많은 개념마다 한자를 한 글자씩 만들어야 했을테니 비효율적이었겠죠.
2-B. 가차(假借 / 거짓/빌릴 가, 빌릴 차 => 빌림)
가차(假借)는 기존 한자의 발음이나 모양만 빌려다가 다른 개념을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언뜻 보기에 위 1-C. 병합 에서 다룬 음역(音譯)과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1-C에서 다루었던 음역은 음역을 위해 글자를 새로 만드는 경우에 한한 것입니다.
예) 弗(아닐 불): 모양만 빌려 미국의 화폐 달러화($)의 의미로도 쓰인다. (예: 백만 불(弗))
可口可樂(가구가락, 중국음 [커 코우 컬러]): 중국에서 코카콜라(Coca-Cola)를 나타내기 위해 한자의 음만 빌려서 만든 말.
마지막으로 3. 한자어의 약어로 글자를 쓰는 것. 을 봅시다.
3. 한자어의 약어로 글자를 쓰는 것
이 원리는 위에서 이미 간략하게 언급한 원리지만,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앞에선 연면사의 약어로 구성자 낱자를 쓰게 되면서 단일 글자가 분화되어 늘어나는 경우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배움[學]의 울타리[校]'라는 뜻의 학교(學校)를 줄여 校로도 쓰게 되면서 校에 '학교'라는 뜻이 생겨났듯이, 기존에 있던 글자의 뜻이 확장되는 원리이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뜻이 확장된 글자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원래 나무 위에서 밑을 살펴본다는 뜻인 相(서로 상) 자는 재상(宰相: 최고 행정관)의 약어로도 쓰이면서 '재상'이라는 뜻도 나왔습니다. 주로 한문에서 쓰지만요.
戀(그리워할 련) 자는 원래 '그리워하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다'라는 뜻은 없었어요. 이후 연애(戀愛: 그리워하고 아낌)라는 말이 나오고 이 말이 주로 이성 간의 사랑을 뜻하게 되면서 戀과 愛로 연애(戀愛)를 줄여쓰다 보니 戀과 愛에 '(이성을) 사랑하다'는 뜻이 생긴 것입니다. (예: 연인 戀人)
그 밖에도 많지만, 대표적인 두 가지만 다루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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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한자가 만들어지는 원리는 모두 다뤄 보았습니다.
그럼 이제 바로 한자를 공부하면 되지 않느냐 - 라고 생각하실 분도 계실 것 같은데,
아직 한자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한자 서체의 변천사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그럼 다음 글에서 보아요~~~!!
첫댓글 음~ 서브클래싱보단 네임스페이스가 적절하겠군유~
굿 허니잼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