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죽음과 삶
지금은 단기4356년 음력 6월하고도 그믐날이 시작되는 새벽 0시 01분이다. 우리나라의 소위 전통 종교인들이라고 하는 무속인들이 믿는 올 전반기 하늘이 열리는 마지막 날이다.
하늘이 열린다는 것은 우주 즉 삼라만상이 정체성을 확인하는 날이기도 하며 지구를 비롯한 모든 천체와 천체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전 생명체가 이 삼라만상의 질서 속에서 새로운 각각의 개체로서 자기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재정비하는 날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오색기를 흔들고 방울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커다란 징을 쳐서 이 땅의 잘못과 고통을 하늘에 계시다는 모든 분을 비롯한 천지신명에게 일러 받치고, 빌어 대면서 있는 복, 없는 모든 복을 어느 한 사람이나 단체에 다 내어 주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을 이해 하지도 이해 할 수도 없는 사람임을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그러나 넓게는 이 우주 천체에서 발생된다는 우주의 자기장이나 지구의 자기장, 나아가서는 산이나 커다란 바위가 쏟아내는 어떤 기의 현상은 엄연히 존재하고 그러한 기를 통한 깨달음이나 신체의 치유 내지는 몸의 변화 등은 실제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런 기를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고 생각된다.
불교의 참선이나 명상, 천주교에서 피정을 통한 마음의 수련, 일부 전통 무술이나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기수련법 등은 실질적으로 사람의 병을 치유하는데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는 거의 해마다 마치 무속인들이 말하는 무병의 열병앓기 처럼 하늘 문이 열리는 날은 명산대처를 찾아 우주장, 하늘 기를 받아야만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것같은 수기(修己)앓이를 한다.
오늘도 여지없이 그 하늘 기의 부름에 빠져들었는지 마치 몽유병 환자가 꿈속에서 잠재된 욕망을 풀어가듯 기를 받을 곳을 찾아 나선다.
이러한 기를 몸이 이토록 간절히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당장의 건강도 건강이지만 머잖아 일어날 대변혁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하늘의 소리, 우주의 경고음일지도 모르겠다.
몇 년전에 가보긴 했지만 그리도 목말라 하던 태백산을 향하여 길을 나선다. 휴가 철이긴 하지만 한 밤중의 고속도로는 한가하다.
2시간 쯤 달리니 처음 출발 때의 갈증은 사라지고 피곤함과 잠이 온 몸에 달라 붙는다. 이대로 계속 운전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확인해 보니 다행히 인근에 쉴 곳이 있다. 차를 주차하고 잠시 잠을 청한다. 그러나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몸은 휴식을 원하지만 정신은 이미 깨어나 세상과 소통하기를 원함은 물론 오히려 점점 명징(明澄)해지기 까지 한다.
왜 태백산일까. 어쩌면 확인되지도 않았고 의미도 모호한 천부경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단군교를 믿든 안 믿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으로 바라는, 나라나 민족의 미래는 천부경(天符經) 81자와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뜬금없이 천부경 까지 들먹이며 태백산행을 얘기하는 것이 너무 거창한 것 같은 생각에 조금 우습기는 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사람에게 좋은 기를 주고 건강을 되살려 주는 아름답고 고요한 산을 찾는 일은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 건강을 바라는 사람의 너무도 자연적 기본 욕구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이왕지사 천부경 이야기가 나왔으니 천부경 얘기를 조금만 더 해보자.
우리나라의 자연 발생 국산 종교인 대종교의 경전 중 하나인 천부경은, 1975년 대종교 교무회의에서 채택한 것이다.
현재는 환인(桓因)이 환웅(桓雄)에게 전하여 지금까지 내려온 것으로 얘기하고 있으나, 1917년경 최초의 등장 시에는 단군교의 경전이었다.
실제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17년으로 단군교(檀君敎)에서 처음으로 언급, 유포하기 시작하여 1920년경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 1921년 단군교의 기관지 [단탁]에 의해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대종교에서는 한참 후인 1975년이 되어서야 기본 경전으로 정식 채택하였다. 대종교에서는 단군 시기의 가르침이 담긴 경전이라 주장하고 있으나 한국사학계에서는 위작이라 보고 있다.
천부경은 전문 81자로 되어져 있으며, 난해한 숫자와 교리를 담고 있어, 해석하기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해석이 나온다.
천부경은 대종교를 최초로 만든 1909년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1917년 계연수라는 이가 단군교에 천부경을 발견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면서부터이다.
편지에 따르면 계연수는 1916년 9월 9일 묘향산에서 수도하던 도중 석벽에서 천부경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계연수의 편지에 따르면
“동방의 현인 선진(仙眞) 최치원이 말하기를 단군(檀君)의 천부경 팔십일 자는 신지(神志)의 전문(篆文)인데 옛 비석에서 발견되었다. 그 글자를 해석해 보고 지금의 묘향산으로 추정되는 백산(白山)에 각을 해두었다라고 최치원은 말하였다. 나는 살펴보건대 최치원이 당나라에 가서 진사(進士)가 되었다가 신라에 돌아와서 신선이 되고 난 후 이 경문(經文)을 비각해 둔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아무도 이를 모르고 있다가 작년 정사년(丁巳年; 1917년)에 와서 처음으로 평안북도 영변(寧邊) 백산에서 출현한 것이다.”
이 천부경은 약초를 캐는 도인 계연수라는 분이 백산의 약초를 캐기 위해 깊은 골짜기까지 들어갔는데 석벽에서 이 글자를 발견하고 조사(照寫)했다는 것이다.
1917년 단군교에서 공개한 이후 김용기, 강우 등의 일부 대종교 인사들이 관심을 표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만주의 대종교 총본사는 천부경을 경전으로 수용하지 않았다.
해방 이후 윤세복이 귀국하여 대종교를 재건하였을 때에도 역시 천부경은 대종교의 경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윤세복의 사후 단군교 신자들이 대거 종단에 참여하게 되면서 단군교 계열의 경전들도 다시 주목받기 시작 하였다.
1975년에 이르러서야 대종교는 천부경을 정식 경전으로 받아들였다. 천부경을 너무 장황하게 설명하였으나 그냥 재미 삼아 언급하였으니 우리들의 로망인 도인들의 삶을 알아보는 차원에서 이해했으면 한다. 참고로 주해에 원문과 독음을 옮겨다 두었다.
잠시 천부경 생각에 젖었다가 다시 차의 시동을 걸었다. 새벽 공기는 아직 습하고 밖은 여전히 어둡다.
그럭저럭 강원도로 들어섰는지 바깥 온도는 22도를 가리키고 있다. 어두침침한 눈을 비비며 강원도 특유의 구비구비 산길 같은 도로를 따라 고독한 새벽 운전을 계속한다.
태백산은 멀리 있는 산이다. 경인지역에서 정말 접근이 어려운 산이다. 그래도 고속도로들이 많이 생겨 그나마 조금 쉬워졌다.
차 앞유리에는 가끔씩 지나가는 비가 뿌려진다. 벌써 몇 시간째 운전을 하고 있는지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
휴가철인데도 도로에 지나가는 차량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허기사 강원도 산골길이 아니라도 여명도 비치기 전 어둠길에 어떤 정신빠진 인사가 이런 돌아돌아 구비진 시골길을 갈까.
어둡다. 유리창엔 또 빗방울이 맺힌다. 쉴 사이 없이 몸은 좌우로 흔들리고 손은 바쁘다. 강원도 산골 길이다.
첫댓글 좋은 글과 사진 잘 감상했습니다.
몰랐던 내용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