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4년 도와 상주의 변천에 따른 문경 경역
경상도(慶尙道)는
삼한(三韓) 때에는 진한(辰韓)이었으며,
삼국(三國) 때에는 신라(新羅)이었다.
고려 태조(太祖)가 신라와 후백제[百濟]를 병합하자, 동남도도부서사(東南道都部署使)를 두고 경주(慶州)에 관사(官司)를 설치하였다.
995년 (성종(成宗) 14년)에 전국을 10도(道)로 만들었는데, 상주(尙州)가 관할하던 영남도(嶺南道), 경주와 금주(金州)가 관할하던 영동도(嶺東道), 진주(晉州)가 관할하던 산남도(山南道)를 두었다
1106년(예종(睿宗) 원년)에 경상진주도(慶尙晉州道)라고 불렀다.
1171년(명종(明宗) 원년)에 경상주도(慶尙州道)와 진합주도(晉陜州道)의 두 도(道)로 나누었다,
1186년(명종 16)에 경상주도가 되었다.
1204년(신종(神宗) 7)에 상진안동도(尙晉安東道)가 되었다가, 그 후에 다시 경상진안도(慶尙晉安道)로 고쳤다. 1259년(고종(高宗) 46)에 화주(和州;함남 박평군)·등주(登州;함남 안변)·정주(定州;안정군)·장주(長州 ; 함남 정평)의 네 주가 몽골에 함락되자, 경상도의 평해(平海)·덕원(德原;영덕)·영덕(盈德)·송생(松生;청송)을 명주도(溟州道;강릉)에 소속시켰다. 1290년(고려 충렬왕(忠烈王) 16)에 덕원·영덕·송생을 동계(東界)로 옮겨 소속시켰다.
1314년(고려 충숙왕(忠肅王) 원년)에 경상도(慶尙道)라 정하고 관할하는 경[領京]이 1개(동경;경주), 목(牧)이 2개(진주 상주), 부(府)가 3개(경산 안동 ), 군(郡)이 30개, 현(縣)이 92개이다.
상주목(尙州牧)은 본래 사벌국(沙伐國)으로, 신라(新羅) 첨해왕(沾解王) 때 차지하여 주(州)로 삼았다.
법흥왕(法興王)이 상주(上州)로 고치고, 군주(軍主)를 두었다.
진흥왕(眞興王) 때 주(州)를 폐지하고 상락군(上洛郡)이 되었다.
신문왕(神文王) 때 다시 주를 두었다.
경덕왕(景德王) 때 상주(尙州)로 고쳤다가,
혜공왕(惠恭王) 때 다시 사벌주(沙伐州)가 되었다. ]
태조(太祖) 23년(940)에 다시 상주(尙州)로 고쳤으며,
그 후 다시 안동도독부(安東都督府)로 고쳤다.
983년(고려 성종(成宗) 2)에 처음으로 12목(牧)을 설치했는데, 상주도 그 중 하나였다.
995년(성종14)에 12주 절도사(節度使)를 설치하면서 귀덕군(歸德軍)이라 부르고, 영남도(嶺南道)에 소속하였다.
1012년(현종(顯宗) 30)에 절도사를 폐지하고, 다시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가 되었다.
1014년(현종 5)에 상주안무사(尙州安撫使)로 고쳤다.
1018년(현종 9)에 8목의 하나로 정하였다. 별호(別號)는 상락(上洛)【성종[成廟] 때 정하였다.】이고, 또 상산(商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민간에 전하기를, 고을의 북면(北面) 임하촌(林下村) 사람으로 성(姓)이 태(太)라는 이가 적(賊)을 사로잡는 공을 세웠으므로, 촌(村)을 영순현(永順縣)으로 승격시켰다고 한다.】
낙동강(洛東江)이 있고 1195년(명종(明宗) 25)에 사록(司錄) 최정분(崔正份)이 옛 터에 공검지(恭儉池)를 쌓았다.
속군(屬郡)이 7개, 속현(屬縣)이 17개이고, 관할하는 지사부[領知事府]가 2개이다.
상주목 7개 속군(屬郡) ; 문경군聞慶郡, 용궁군龍宮郡, 개령군I開寧郡, 보령군報令郡, 함창군咸昌郡, 영동군永同郡, 해평군海平郡,
17 속현(屬縣) ; 청산현青山縣, 산양현山陽縣, 화령군化寧郡, 공성현攻城縣, 단밀현單密縣, 비옥현比屋縣, 안정현安定縣, 중모현中牟縣, 호계현虎溪縣, 어모현禦侮縣, 다인현多仁縣, 청리현青里縣, 가은현加思縣, 일선현 一善縣, 군위현軍威縣, 효령현孝靈縣, 부계현缶溪縣,
관할 2개 지사부[領知事府]
경산부京山府; 고령군高靈郡, 인동현仁同縣, 지례현知禮縣, 가리현加利縣, 팔거현八莒縣, 김산현金山縣, 황간현黃澗縣, 관성현管城縣, 안읍현安邑縣, 양산현陽山縣, 이산현利山縣, 대구현大丘縣, 화원현花園縣, 하빈현河濱縣,
안동부安東府; 예안군禮安郡, 의홍군義興郡, 임하현臨河縣, 일직현 一直縣, 은풍현殷豊縣, 감천현甘泉縣, 봉화현奉化縣, 안덕현安德縣, 풍산현豐山縣, 기주현基州縣, 흥주興州, 순안현順安縣, 의성현義城縣, 기양현基陽縣.
현제의 문경시 경역은 당시 직할 현인 영순현과 속군이 문경군 속현인 산양 호계 가은현과 속군인 용궁군 함창군의 일부 관할 지사부인 안동부 기양현 일부로 이루어 졌다
문경군
문경군(聞慶郡)은 본래 신라(新羅)의 관문현(冠文縣)【관현(冠縣), 고사갈이성(高思曷伊城)】으로,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관산(冠山)으로 고치고, 고령군(古寧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高麗) 초에 문희군(聞喜郡)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顯宗) 9년)에 〈상주목에〉 내속(來屬)하였다. 뒤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1390년(공양왕(恭讓王) 2)에 감무(監務)를 두고 가은현(加恩縣)을 소속시켰다【현(縣)의 북쪽에 주흘산(主屹山)이 있다.】. 험한 곳[險阻處]이 세 곳인데, 초점(草岾)【고을의 서쪽에 있다.】, 이화현(伊火峴)【고을의 서쪽에 있다.】, 곶갑천(串岬遷)【고을의 남쪽에 있다.】이 그것이다.
용궁군
용궁군(龍宮郡)은 본래 신라(新羅)의 축산(竺山)【원산(園山)이라고도 한다.】으로, 995년(성종(成宗) 14)에 승격시켜 용주자사(龍州刺史)가 되었다. 1005년(목종(穆宗) 8)에 〈자사를〉 없앴다. 1012년(현종(顯宗) 3)에 지금 이름으로 고치고, 〈상주목에〉 내속(來屬)하였다. 1172년(명종(明宗) 2)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하풍진(河風津)이 있다.
함창군
함창군(咸昌郡)은 본래 고령가야국(古寧伽倻國)으로, 신라(新羅)가 차지하여 고동람군(古冬攬郡)【고릉군(古陵郡)이라고도 한다.】이 되었다. 경덕왕(景德王) 때 고령군(古寧郡)으로 고쳤다. 964년(광종(光宗) 15)에 함녕군(咸寧郡)이 되었다. 1018년(현종(顯宗) 9)에 〈상주목에〉 내속(來屬)하였다가, 뒤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1172년(명종(明宗) 2)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산양현
산양현(山陽縣)은 본래 신라(新羅)의 근품현(近品縣)【품(品)은 암(巖)으로도 적는다.】으로,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가유(嘉猷)로 고치고, 예천군(醴泉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高麗)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1018년(현종(顯宗) 9)에 〈상주목에〉 내속(來屬)하였다.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1181년(명종(明宗) 11)에 〈감무를〉 없앴다.
호계현
호계현(虎溪縣)은 본래 신라(新羅)의 호측현(虎側縣)【배산성(拜山城) 이라고도 한다.】으로, 경덕왕(景德王) 때 지금 이름으로 고치고, 고령군(古寧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1018년(현종(顯宗) 9)에 〈상주목에〉 내속(來屬)하였다.
가은현
가은현(加恩縣)은 본래 신라(新羅)의 가해현(加害縣)으로,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가선(嘉善)으로 고치고, 고령군(古寧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高麗)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현종(顯宗) 9년(1018)에 〈상주목에〉 내속(來屬)하였다. 1390년(공양왕(恭讓王) 2)에 문경(聞慶)으로 옮겨 소속되었다.
안동부
기양현
기양현(基陽縣)은 본래 신라(新羅)의 수주현(水酒縣)으로, 경덕왕(景德王) 때 예천군(醴泉郡)으로 고쳤다. 고려(高麗) 초에 이름을 보주(甫州)로 바꾸었다. 1018년(현종(顯宗) 9)에 〈안동부에〉 내속(來屬)하였다. 1172년(명종(明宗) 2)에 태자의 태(胎)를 묻어 지금 이름으로 고치고, 승격시켜 현령관(縣令官)이 되었다. 1204년(신종(神宗) 7)에 남도초토병마사(南道招討兵馬使) 최광의(崔匡義)가 동경(東京)의 반적(叛賊)과 이 고을 땅에서 싸워 크게 이겼으므로, 지보주사(知甫州事)로 승격시켰다. 별호(別號)는 청하(淸河)·양양(襄陽)【성종[成廟] 때 정하였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