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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장 바울의 변론으로 인한 공회의 분열과 바울 살해 음모 및 바울의 가이사랴 호송
구속사적 개관
본장은 넓게는 21:17-28:31에 이르는 일련기사 곧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당시 제국의 수도 로마(Rome)에 이르게 되는 소위 바울의 로마 여행 과정을 기록한 일련기사의 연속 부분이다.
또한 좁게는 바울이 소위 유대교(Judaism)의 오류에 빠진 광신적 유대인들과의 갈등으로 무고히 체포된 때부터 마침내 가이사(Caesar)에게 직접 판결받기 위하여 미결수(未決囚)의 신분으로 로마여행을 시작하기 직전까지의 B.C. 58-60년까지의 대략 2년간의 과정을 기록한 21:17-26:32의 일련 기사의 연속 부분이다. 즉 본의 아니게 예루살렘에서 유대주의자들과 충돌하여 소요를 일으켜서 유대 율법 모독 및 사회 소요죄로 기소된 바울이 체포 직후부터 유대 군중 전체와 유대 공회 및 당시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던 유대 땅을 대리 통치하던 헤롯 가문의 분봉왕(分封王)과 로마 총독들 앞에서 수차 예수의 복음과 이를 전하는 자신의 사역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변론하다가 마침내 자신이 가진 로마 시민권(Roman Citizenship)의 특권의 하나인 가이사 곧 로마 황제에게 직소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한 결과 미결수의 신분으로 로마 여행을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일련 기사의 연속 부분이다.
이 21:17-26:32까지의 일련 기사는 사소한 세부 내용의 차이는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유대교의 오류에 빠져 주의 복음과 이를 전하는 초대 교회를 곡해한 유대주의자들로부터 율법모독자 및 로마 식민 사회의 파괴자로 무고히 기소당한 바울이 수차에 걸쳐 주의 복음과 자신의 사역을 변론하다가 마침내 가이사에게 상소한 결과 로마로 이송되게 되는 과정을 묘사했다는 점에서는 그 전체적 맥을 같이한다. 이에 본고(本稿)에서는 먼저 이 일련기사의 전반적 내용 전개를 요약하고 그 전체적 배경과 전반적인 구속사적 의의만 요약하기로 한다. 따라서 본장 자체의 내용과 그 세부적 의의에 대해서는 본장의 해당 강해주석을 보라.
이제 21:17-26:32까지의 내용 전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21:17-40은 이제 마지막 선교 여행이었던 제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귀환한 바울이 본의 아니게 소동에 휘말렸던 사실을 보도한다. 즉 바울은 우리 주 예수 안에서 구속사의 시대가 구약 시대에서 신약 시대로 바뀐 상황에서 구약을 성취 확장한 신약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자신의 사역을 구약의 일부 내용에 인본주의적 전승(tradition)까지 가미하여 유대인들만의 지상구원을 주장했던 유대교의 오류에 빠져 곡해한 나머지 하나님과 구약 율법을 모독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핍박하고자 하는 일부 광신적 유대인들의 오해를 구약 율법에 규정된 결례(潔禮)를 행함으로 무마하려고 하였다. 본문은 바로 그런 결례의 과정 중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바울이 이방인을 성전 경내로 끌어들여 성전을 모독한 것으로 속단한 유대 군중들에 의하여 큰 소요(騷擾)에 휩싸임으로해서 본의 아니게 소요의 주역으로 로마 천부장에 의하여 체포된 과정을 보여 준다. 그리고 22:1-21은 바울이 체포직후 유대 군중들 앞에서 행한 변론을 보도한다. 다음 22:22-23:11까지는 군중들이 계속 소요하자 바울의 문제를 유대 민족 내의 종교 문제로 파악한 천부장이 유대 공회(Sanhedrin)의 소집을 요청하여 일단 바울을 유대 공회 앞에 세우자 이에 바울이 다시 한번 공회 앞에서 변론하는 중에 특히 당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교리적 견해 차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신앙 곧 복음의 도를 교묘히 변론하고 나아가 유대주의자들의 견해 차이를 더욱 노출시킨 사실이 보도된다. 다음 23:12-35은 일부 광신적 유대인이 바울 살해를 결심하자 로마 천부장이 일단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바울을 당시 관할 총독이 거주하던 가이사랴(Caesarea)로 이송한 과정을 보도한다. 그리고 24:1-21은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던 당시 유대 총독 벨릭스 앞에서 벌어진 변사(辯士) 더둘로의 바울 고소와 이에 대한 바울의 변론을 소개한다. 다음 24:22-27은 일단 바울에 대한 선고가 유예되고 마침 이때에 벨릭스 총독과 베스도 총독이 교체되었음을 보도한다. 다음 25:1-12은 바울이 재차 신임 총독 베스도 앞에서 자신을 거듭 고소하는 유대인들에 대항하여 변론을 행하였음을 보도한다. 25:13-26:29까지는 신임 총독 베스도가 헤롯 가문의 잔존 분봉왕으로 당시 갈릴리 북부 지방을 다스리던 헤롯 아그립바 2세(Herod Agriha Ⅱ. A.D. 48-70)에게 바울 사건에 대한 조언을 부탁한 결과 다시 바울이 아그립바 앞에서 길게 예수의 도(道)와 자신의 사역이 종교적으로도 순수하며 더욱이 정치적으로도 로마 식민 정부에 대항하려는 것이 아님을 변론하였던 사실을 보도한다. 끝으로 26:30-32은 베스도 총독과 헤롯 아그립바가 바울의 무죄를 판정하였으나 바울이 기왕에 자신의 로마 시민권상의 특권을 이용하여 가이사에게 직접 상소(上訴)하였고 또한 바울을 석방하는 것보다는 로마로 이송하는 것이 당시 바울을 강력히 고소하는 유대주의자들과의 충돌을 피하는 길도 될 수 있을 것이어서 바울의 로마 이송을 최종 결정하였음을 보도한다.
이상의 문맥으로 전개되는 이 21:17-26:32까지의 일련 기사의 배경 또는 그 의의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제 막 구속사(救贖史)의 시대가 구약에서 신약으로 전환된 과도기적 상황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 · 구약을 온전히 계승한 초대 교회 기독교와 당시 선민(選民) 유대인의 종교였으면서도 구약의 일부 내용에 인본주의적 요소까지 가미하여 정통 구약 신앙을 변질시킨 유대교(Judaism)와의 갈등을 이해하여야 한다. 물론 본문을 보면 바울을 직접 체포한 것은 로마군이었으나 이는 그 당시 유대가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바울을 유대 율법의 모독자로 규정함으로써 유대 땅을 소란케 한 바울은 로마 정부의 적이기도 하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사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또한 정황상으로도 이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지만 바울은 분명히 정치범으로 보다는 종교범으로 기소(起訴)되었었다. 사실 바울의 경우는 오히려 종교범인 동시에 정치범으로 처형된 예수의 경우보다 더 종교범의 비중이 강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사도행전 전체의 과정에서 볼 때에 다른 사도들보다도 더욱 이방선교에 힘썼던 바울(롬 11:13; 갈 2:8; 딤전 2:7)의 체포는 초대 교회와 유대교간의 갈등의 일환이요 그 결정적 사건으로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바울의 체포 사건 전 · 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히 초대 교회 기독교와 유대교의 갈등을 이해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제 21장 구속사적 개관에 약술(略述)하였는바 이를 꼭 참조하라.
한편 우리는 이상의 바울의 체포 이후 로마 이송까지의 기사를 전반적으로 고찰할 때 다음 두 가지의 구속사적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예수의 복음(福音)과 이방 선교 사역으로 인하여 대략 2년여에 걸친 투옥생활중에 수차의 심문을 당하였지만 바울은 내내 추호의 흔들림없는 확신을 피력하며 오히려 그런 기회를 복음 증거의 기회로 삼았던 것을 발견하게 된다(행 16:25-34; 26:27-29; 28:23-31). 이 짧지 않은 기간 중에 바울은 수차 생명의 위협을 당해야만 하였었다. 더욱이 그 자신이 유대인이기도 하였던 바울은 선민의 후손인 유대인으로서 유대인 사회로부터 축출되는 것이 곧 최고의 영원한 저주라고 생각되었던 그 시기에 전유대인들로부터 격렬한 규탄을 당해야만 하였었다. 그러나 바울은 나사렛 예수와의 만남 이후 성령의 인도로 태초부터 종말까지 이어지는 구속사의 섭리를 응축(凝縮)한 복음의 절대성과 진정성을 확신하였는바 인간이 가하는 그 어떠한 육체적 사회적 핍박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천국 구원이라는 절대 영원의 진리와 은혜를 확신한 자는 잠시 동안 사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동요됨 없이 천국(天國)을 향하여 매진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롬 8:31-39).
둘째, 사도 바울이 이처럼 복음을 곡해 내지 핍박하는 유대주의자들에 의하여 무고히 갇혀 고통받은 것은 이 당시 만으로는 다만 패배와 굴욕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행전 전체와 나아가 초대 교회 역사 전체와 비교해 볼 때 이러한 바울의 고난은 먼저는 초대 교회 복음의 정당성을 전교회를 대표하여 변증하는 기회가 되었다. 나아가 바울이 미결수 신분으로 나마 당시제국의 수도였던 로마에 이르게 된 것은 궁극적으로 로마 교회(Church of Rome)의 기틀이 공고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우리에게 위기를 통하여 오히려 구속사를 더욱 확장케 하는 하나님의 섭리의 오묘함을 깨닫게 해 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의 복음과 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구속사는 세상의 핍박을 능히 이기고 극복할 힘이 있다는 구속사의 생명력을 실증해준다. 실로 바울 사건 이후에도 더욱 격화되어 갔던 전로마 제국의 엄청난 박해에도 불구하고 세속적 관점에서는 비천하고 유약한 무리에 불과하였던 자들이 나사렛 예수를 믿었던 신앙 곧 기독교(Christianity)는 단순히 살아남은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로마 제국 전체를 복음화 시킴으로써 결국 박해를 이겨내었었다. 이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은 그저 단순한 신앙의 힘이니 기적이니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만다. 그러나 바로 그처럼 엄청난 핍박을 이겨낸 믿음의 선진들이 전해준 복음을 듣고 성도가 된 우리에게 이는 그 이면(裏面)에 살아 숨쉬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 곧 구속사의 실체를 확립시켜 주는 산 증거인 것이다.
외울 말씀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 23:11)
바울의 공회 앞에서의 변론
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2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3 바울이 가로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4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5 바울이 가로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6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
7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이니
8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9 크게 훤화가 일어날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뇨 하여
10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 하니라
11 ○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유대인들의 바울 살해 음모 발각
12 ○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13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14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15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알아볼 양으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16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문에 들어가 바울에게 고한지라
17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가로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18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가로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19 천부장이 그 손을 잡고 물러가서 종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20 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저희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21 당신은 저희 청함을 좇지 마옵소서 저희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매
22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고하였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벨릭스 총독에게 이송된 바울
23 ○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마병 칠십 명과 창군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24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25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26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에게 문안하노이다
27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28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송사하는지 알고자 하여 저희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29 송사하는 것이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건이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30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게 하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송사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를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31 ○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32 이튿날 마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문으로 돌아가니라
33 저희가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34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35 가로되 너를 송사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본문 & 자료노트
도표-23:1-11 신약에 나타난 산헤드린 공회의 5번의 재판
피고: 소집 이유, (결과)
1. 예수: 예수 자신이 성자 하나님임을 밝혀 유대교를 소란케 함(눅 22:66-71), (예수에 대해 신성 모독죄 판결)
2. 베드로, 요한: 예수의 부활 전파로 백성을 소요케 함(행 4:1-22), (백성의 동요가 두려워 석방시킴)
3. 사도들: 예수의 십자가 대속 희생과 부활 전파, 소요케 함(행 5:17-41),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함을 금하는 조건으로 석방시킴)
4. 스데반: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함(행 6:7-7:60), (거짓증인을 새워 고소하고 돌로 쳐 죽임)
5. 바울: 유대인 소요와 성전 결례 위반(행 22:30-23:11), (공회원 간에 부활 논쟁이 일어나 재판이 중단됨)
역사배경-23:6-9 유대교 분파
본서 14권 신약 총론 '신약 시대의 사회 ․ 문화적 배경' 참조
보감-23:12-15 모함자들의 10대 특성
1. 아주 간사함(창 27:7-23)
2. 시기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음(창 37:8-11)
3. 그럴듯한 궤변을 잘 늘어놓음(삿 9: 1-6)
4. 음흉한 책략을 잘 꾸밈(삼하 15 : 1-12)
5. 정치적 힘을 동원하기도 함(에 3: 5-10)
6. 상대의 약점을 잘 이용함(단 6:3,4)
7. 선동의 방법을 많이 사용함(행 6: 9-12)
8. 헛되고 과장된 맹세를 잘함(행 23: 12-14)
9. 어리석은 혈기를 앞세움(행 23: 12-14)
10.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해함(행 23:15)
역사배경-23:12-35 로마의 군대 조직
유대인의 바울 살해 음모와 천부장 루시아의 바울의 안전 호송에 대한 극비의 계획 등 매우 긴장감 있게 진행되는 본문의 기사에서 우리는 로마의 군대 조직과 관련된 용어를 몇 개 접하게 된다. 곧 천부장, 백부장, 보병, 마병 등의 용어가 그것인데. 이에 간략히나마 로마 군대의 조직과 편성, 배치 등을 살펴 본문의 배경을 이해코자 한다.
1. 상비군의 기원
원래 로마에는 상비군(常備軍)이 없었고, 행정장관이 필요시에 병사들을 소집할 결 우에만 다른 부역과 마찬가지로 병역을 수행하도록 하는 민병군(民兵軍)만이 있었다.
그러다가 B.C.107년경 로마 장군 마리우스(Gaius Marius, B.C. 157-86)가 극빈 계충을 직업 군인으로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이때부터 서서히 상비군 제도가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로마 군대는 기본적으로 직업 군인들인 용병(情兵)에 의해 구성되었으며, 부대에 따라 근무기간이 16-26년까지 각각 달랐다.
2. 조직
① 황제 근위대와 로마시 주둔군: 황제 근위대는 황제외 경호를 위해 9개의 치안관 보병대로 구성되었으며 3개의 도시 보병대와 7개 보병대인 야경대와 함께 수도 로마시의 수비를 맡았다. 1개 보병대의 인원은 약 1,000명이었으며, 이들은 기사(騎士) 계급의 호민관이 지휘했다. 또한 이들 로마 수비대의 총사령관으로 2명의 치안장관이 있었다.
② 군단(軍團): 군단은 총독 산하에 각 속주(屬州)에 배치되었다. 일반적으로 1개 군단은 10개의 보병대로, 각 보병대는 다시 3개의 보병중대로, 각 보병중대는 2개의 백인대(百人隊, centuries)로 편성되었고, 대략 6.000명이 1개 군단을 이뤘다. 각 군단에는 천부장(干夫長)격인 호민관이 6명 있었는 데, 이들은 기사급 장교였으며, 최고 사령관은 총독이었다. 그리고 대략 100명으로 구성된 백인대(centuries)는 평민 계급에 속했던 백부장(百夫長)이 그 부대를 지휘하였다. 백부장들은 말단 군병에서부터 승진했기 때문에 군대 안에서 가장 경험을 많이 쌓은 자들에 속했다. 또한 일반 군병과 백부장 사이에는 오늘날 하사관의 부관들이 상당수 있었다. 한편 군대의 병사들은 입대와 함께 로마 군대의 1개 군단 조직을 도표화해 보면 아래와 같다.
군단(6000인)
보병대(600인)
보병 중대(200인)
백인대(100인)
③ 보조대(補助徵): 각 군단에 소속된 보조대는 여러 지방에서 모병된 군인들로 구성되었는데, 보병과 기병, 그리고 보․기병 혼성 병력으로 편성된 보병대, 기병편대, 보기병대(步騎兵隊)가 있었다. 이들 부대는 500-1,000명으로 구성되었고. 기사급의 사령관(Praetorian)과 장관(Equestrian)이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보조대의 병사들은 제대시에 로마 시민권을 얻었다.
④ 민병대(民兵隊): 민병대는 로마 제국 내의 각 속주(屬州) 출신으로 구성되었고. 90~300명의 보병 및 기병부대로 편성되었다. 이는 기사급인 호민관이 지휘하였다.
⑤ 함대(鑑隊): 지휘권은 기사 계급 중 최고의 지위에 속하는 집정관에게 있었으며, 미제눔(Misenum)과 라벤나(Ravenna)에 로마의 주요 해군 기지가 있었다.
3. 배치
로마의 군대 배치는 대규모의 침략전쟁을 위한 것이 아닌 일차적으로 각 속주를 방어한다는 관점에서 구상되었다. 그래서 황제 근위대와 로마시 주둔군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부대가 국경지대에 있는 각 속주에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넓은 지역에 산개(散開)해 배치되었다. 먼저 국경지대의 직접 방어는 보조대가 맡았으며, 국경지대에서 얼마 간 떨어진 후방에는 주력 부대인 군단이 배치되었다.
4. 성경에 나타난 로마의 군대 조직
① 아구사도 대(Augustan 隊): 바울과 몇 명의 죄수를 로마로 호송할 임무를 띤 백부장 율리오가 소속된 보병대로서(행 27:1), 가이사랴 및 그 부근에 주둔하던 5개 보병대 중의 하나였다.
② 이달리아 대 (Italian 隊): 가이사랴
에 주둔한 또 다른 보병대로서 로마 시민으로만 구성된 특징을 갖는다. 백부장 고넬료가 이 부대에 소속되었다(행 10:1).
③ 치안대(治安隊): 5개 보병대 가운데 하나가 예루살렘에 배치되었는데, 이의 부대장이 본문에 나타난 바 극비에 바울을 가이사랴로 호송시킨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였다.
지도-23:23-25 바울의 가이사랴 호송 경로
원어연구-23:11, 담대하라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다르세오'( )이다. 이는 '담대함', '용기'라는 뜻의 명사 '다르소스'( )에서 유래한 동사이다. 그래서 그 기본적인 뜻은 '좋은 용기를 가지다', '내적인 확신 가운데 있다'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후에 변형되어 '다래오'( )가 되었으며, 그 의미도 보다 확장되어 '감히 ․․․․ 하다', '신뢰하다', '의지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이로 볼 때 '다르세오'는 스스로 마음을 단단히 먹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어떤 사실에 대한 확신 때문에, 혹은 무엇인가 자신을 뒷받침해 주고 있기 때문에 갖는 용기, 담대함을 가리킨다.
헬라 철학자 플라톤(Haton)은 사람이 용기를 가지게 되는 그 근거는 영혼불멸에 대한 믿음이라고 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담대함의 근거는 하나님이 곁에 계셔 항상 도우시는 것(학 2:5; 슥 8:13).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복음(고후 5:6,8; 히 13:6)이 그 근거가 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순히 겁내지 말고 용기를 가지라는 정도의 말이 아니라, '확실한 믿음을 갖고 안심하라'라는 신앙적인 권면인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우리는 항상 평안하게 그리고 담대하게 고난을 헤쳐나가자.
23: 1-11 산헤드린에서의 바울의 변론
전장 마지막 단락에서 우리는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이용하여 고난의 위기를 모면하고 산헤드린 공회에서 정식으로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제공받았음을 보았거니와(행 22:22-30) 본문에서는 산헤드린에서 변론하는 바울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바울과 대저사장 아나니아의 대조적인 모습이다(1-5절). 바울은 변론의 기회가 주어지자 그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음을 자신있게 선언함으로써 변론을 시작하고자 혔다. 그러나 바울의 변론은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반발에 부딛혀 변론 초두부터 감정적인 대립 양상을 띠게 되었다. 특히 바울은 아나니아가 대제사장인줄 모르고 비난했다가 공회원들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이에 바울은 자신의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출 22:28의 말씀을 인용하여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러한 대인 관계애서도 보여 주듯이 실로 바울은 자기의 고백대로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긴 사역자였다(빌 3:6-9; 딤후 4:7). 그러나 사실 아나니아는 잔인함과 탐욕을 갖춘 인물로 바울의 비난대로 '회칠한 담'이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한 자었다. 결국 아나니아는 바울의 여언대로 A.D. 66년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3절 주석 참조). 하여튼 대조되는 바울과 아나니아의 모습은 종교적 지위가 올바른 삶을 살도록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실한 신앙을 가진 자만이 온전히 헌신된 삶을 살 수 있음을 교훈혀 준다.
둘째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부활 논쟁이다(6-10절). 바울은 비록 공회 앞에 대계사장을 비난한 데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하긴 했지만 여전히 공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그리서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공회원들 간의 신학적 대립을 이용한다. 즉 공회가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로 구성되었음을 알고 있던 바울은 자신이 바리새인임을 밝히고 자신은 부활을 전한 까닭에 심문을 받는다고 주장함으로써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과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들 간에 신학적 논정을 유발시켜 공회를 산회시키게 한 것이다. 그런데 바울의 이러한 행동은 상대방의 반목과 질시를 유발시켰다는 점에서 비윤리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바울의 이러한 행위에는 단순히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즉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이 '부활'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바울은 어떠한 상황 속애서도 복음을 전하려 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여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를 죽이는 데나 예수 믿는 자를 박해하는 데는 일치된 면을 보였지만 자신들의 이해 관계에서는 철저하게 대립적인 면을 보였다.
이는 사악한 자들 중에는 참다운 일치나 사랑 등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셋째는 주님의 위로이다(11절). 유대인들의 박해를 받아 안토니아 성의 감옥에 감금되어 있는 바울에게 주님은 환상으로 나타나셔서 그의 고난을 위로하시고 로마 전도의 비젼(Vision)을 약속하신다. 사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고난과 어려움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헹 20:23; 21:10-13) 그 정도가 너무 심하자 긴장하고 당혹한 상태에 있었을 것이다. 이때에 주님은 적절하게 바울을 위로하시며 로마 전도에 대한 확신을 주신 것이다. 이는 바울이 이후에 로마에 당도하기까지 긴 옥중 생활로 인해 시간적으로 지체된 가운데서도 로마 전도에 대한 비젼을 버리지 않고 인내하며 때를 기다리게 하는데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고난과 어려움 속에 있는 성도를 언제나 기억하시고 위로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않는 담대한 신앙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왕하 6:16; 사 41: 10; 마 17:30,31; 요 16:7).
23:1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 여기서 '공회'는 로마 재국의 통치하에서 상당한 자치권을 인정받은 유대의 최고 의결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를 가리킨다. 행 22:30 주석 참조. 이 공회는 의장인 대재사장을 제외하고 70명의 공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의 책임은 주로 구약의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遺傳)을 해석하고, 그것을 국사에 적용하며, 율법을 위반한 사람들을 재판하는 것이었다. 로마인들은 경우에 따라서 범법자를 극형에 처할 수 있는 권한까지 이들에게 재가(裁可)해 주었다. 14권 신약 총론, 신약 시대의 사회 · 문화적 배경 '산헤드린 공회' 참조. 바울은 이런 공회에서 같은 유대인 동족으로 심리(審理)를 당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태도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당당했다. 즉 비록 재판의 과정은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지 않으나 먼저 바울에 대한 공회원들의 고소가 있었을 것이다. 이에 이제 바울은 저들을 향해 분명하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하여'(아테니사스)라는 말은 '노려보며'라는 의미로 바울의 담대하고도 양심에 거리낌없는 모습을 잘 나타내 준다. 바울의 이러한 태도는 성령 충만하여 순교당하기까지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한 스데반의 모습과 유사하다(행 7장).
여러분 형제들아. - 이와 같은 표현은 유대인 회중들 사이에 사용되었던 통상적인호칭으로(행 1:16; 2:37; 6:3) 이러한 공석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사실 공의회와 같은 공식 회의에서는 존칭을 써서 존중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다(행 4:8;7:2).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이러한 호칭으로서 저들과 동등한 입장됨을 표명한 것은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이 유대인으로서 변론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하겠다.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 바울은 자신을 변론함에 있어고 소자들의 이성이나 선심에 호소하지 않고 다만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범사에 양심을 따라 살았다고 증언한다. '양심'(쉬네이데세이)이란 바울이 즐겨쓰던 말로(본서에서 2회- 본절; 행 24:16, 서신서에서 21회) 직역하면 '함께 안다'라는 뜻인데, 도덕률의 보편성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즉 양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옳은 것을 할 때는 찬성하고, 그릇된 것을 행할 때는 반대하는 마음 속의 '재판관' 또는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롬 2:5).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래 우리 인간의 양심은 '화인 맞은 양심'(딤전 4:2), '악한 양심'(히 10:22), '더러운 양심'(고전 8:7) 이기 때문에 율법의 기준에서 볼 때 의(義)를 충족시킬 수 없다(롬 3:9-20). 그러므로 여기서 바울이 '양심을 따라' 살았다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을 받은 이래(롬 3:21-24),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온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빌 3:6-9; 딤후 4:7).
하나님을 섬겼노라. - 본문의 '섬겼노라'(페폴리튜마이)는 말은 본래 '시민으로 살았다'라는 의미이다(Robertson). 따라서 본 구절의 문자적 의미는 '하나님 앞에서 혹은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왔노라'라는 뜻이다. 결국 이 말은 바울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랑하는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하나님을 섬기는 가운데 살아왔음을 단언하고 있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바울은 벨릭스 앞에서 증언할 때에도 이러한 사실을 양심이 증거한다는 말로써 담대히 주장하였다(행 24:16).
23:2 대제사장 아나니아. - 아나니아(Ananias) 네베데우스(Nebedeus)의 아들로서 헤롯 아그립바 2세(A.D. 48-70)에 의해 A.D. 48년에 대제사장이 되어 58년까지 직임에 있었던 사이다. 그는 난폭하고 기만하며 야탈적인 성향의 사람이었다(Josephus). 그는 또한 친로마정책을 폈는데 이로 인해 유대인 국수주의자들로부터 배척을 받았고, 그 결과 유대 전쟁(A.D. 66-70년) 초기인 A.D. 66년에 유대 군중들에게 붙잡혀 비참하게 살해당했다.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 바울의 담대한 변론에 대해 포악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분노하여 바울의 입을 치라고 명령했다. 뺨이나 입술 등은 사람의 인격을 대변하는 것으로 사리를 따지지도 않고 이를 치라 한 아나니아의 행위는 불법적인 것은 물론이요 비인도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로마의 천부장(10절; 행 22:30)은 즉각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즉 그는 시종 일관 불의한 행동을 단속하는 데 있어서 신속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한편 여기서 '곁에 섰는 사람들'은 눅 19:24과 요 18:22을 볼 때 산헤드린에서 일하고 있던 시종(侍從)들이라고 생각된다(Haenchen). 그러나 이들을 산헤드린 공회원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Lenski).
23:3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 바울은 불법적으로 자신을 치라고 명령한 대제사장(2절)을 향해 매우 격렬한 어조로 반박하고 있다. '회칠한 담이여'라는 말은 예수께서 이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위선을 책망하실 때 사용하신 일종의 질책이다(마 23:27). 즉 바울의 이 말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회칠한 무덤'이란 말과 유사하다. 여기서 '회칠한 담'이란 그다지 튼튼하지 못한 기초 위에 세운 흙벽돌 담을 단지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겉에 회를 바른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런 회칠한 담은 보기에는 아름다우나 결국은 오래 가지 않아 무너지고 만다. 그와 같이 바울은 아나니아의 표리부동(表裏不同)한 면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직접 그를 징치하실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바울의 경고는 훗날 실제로 이루어졌다. 즉 A.D. 66년에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 아나니아는 로마를 비호하는 정책 때문에 유대인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율법대로 판단한다고…율법을 어기고. - 바울은 아나니아의 불법적 행동을 더욱더 비꼬아 극하게 표현하고 있다. 즉 최소한 대제사장이라면 정직하며 공평하게 판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레 19:15; 히 5:2) 아직 바울의 죄가 드러나지 않았는 데도 단지 극한 감정에 못이겨 비인도적인 행위를 한 그 자체가 율법에 어긋나는 불법적인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로 보건대 아나니아에 대한 바울의 질책은 정당한 것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불의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이요 공격이었던 것이다. 실로 바울의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 부, 학식, 명예 등 세상적인 권위를 앞세워 교회의 순결성을 짓밟으려는 자들에게 크나큰 경고가 아닐 수 없다.
23:4 곁에 선 사람들이…대제사장을…욕하느냐. - 바울이 대제사장을 향해 꾸짖는 내용이야 어떠하든지 간에 상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제들의 수장(首長)인 대제사장에게 맞는 바울의 태도를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즉 바울의 태도는 유대인 사회에서 존경과 권위를 한 몸에 지니고 있던 대제사장에게 맞선 행위로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불손한 행위였던 것이다. 과거에 예수님께서도 대제사장에게 불손하게 행동하셨다고 하여 매맞은 경우가 있었다(요 18:22). 실로 이는 외식에 사로잡혀 중심을 보지 못하는 자들의 어리석은 처사이다.
23:5 형제들아 ... 알지 못하였노라. - 본절에 나타난 바울의 대답은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다. 어떤 이들은 바울이 진짜 대제사장이 누구였는지 몰랐다고 해석한다. 반면에 또 다른 이들은 비꼬아서 '그런 사람이 대제사장일 수 있단 말인가?'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Zahn, Meyer, Calvin). 이 중 전자의 견해가 비교적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왜냐하면 바울의 인격으로 미루어 그가 그러한 거짓말을 할리 없으며, 출 22:28을 인용하면서까지 위정자에 대한 백성의 도리를 강조한 것은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바울이 대제사장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제시되고 있다.
첫째, 바울이 예루살렘에 머문 기간이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Chrysostom).
둘째, 아나니아가 중간에 로마로 송환되어 대제사장의 직무를 중단한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Lightfoot, Eichhorn).
셋째, 안질 때문에 잘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Plumptre).
넷째, 변론에 열중한 까닭에 그가 대제사장인 것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Bengel, Olshausen).
다섯째, 아나니아가 긴급 소집된 공회에 대제사장의 신분을 알리는 대제사장의 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Bruce). 이상의 견해들 가운데 대체로 첫째와 마지막 견해가 타당성 있게 받아들여진다. 하여튼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 앞에서 자신이 늘 겸손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주의하고 있으며 또한 전심을 다해 율법의 근본 정신을 지키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제사장이 율법을 범한 사실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서 우리도 불의하고 패역한 지도자들에 대해서 의분을 품는 것은 마땅하지만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을 비방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옳지 못함을 배우게 된다.
23:6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 인줄 알고. - 유대교의 여러 분파 가운데 사두개파(Sadducees)와 바리새파(Pharisees)에 대하여서는 본서 14권 신약 총론, 신약 시대의 사회 · 문화적 배경 중 '유대교 분파들'을 참조하라. 한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그들의 신앙 교리, 특별히 '부활' 교리에 있어 심각한 대립을 나타내고 있었다(8절). 바울은 이런 점을 포착하여 대체적으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산헤드린을 향하여 자신이 바리새인인 점과 부활의 교리를 증거하면 공회원들 간에 논쟁이 일어나게 되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는라'고 외쳤다. 결국 바울의 예상은 적중되어 공회원들 간에는 심각한 대립 양상을 보임으로써(9절) 바울을 정죄하려는 산헤드린의 음모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바울이 '왜 이러한 접근법을 사용했는가'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바울의 행동에 대하여 혹자는 상대방의 분열, 반목 질시를 조장한 비윤리적 행위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Farrar). 그러나 이러한 바울의 행위를 무조건 비난하며 단순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정략으로만 평가해서는 안된다. 아마도 바울은 대제사장과 충돌을 빚은 후 산헤드린 앞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러한 타개책을 강구한 것 같다. 또한 바울이 부활을 언급한 것은 본서에 나오는 증거의 핵심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행 1:22; 2:32; 3:15),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 증거하고자 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있다.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 - 문자적으로는 '소망과 죽은 자의 부활'(엘피도스 카이 아나스타세오스 네크론)이다. 그러나 이것은 중언법(重言法, hendiadys)으로 '죽은 자의 부활의 소망'이란 의미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소망이란 바로 부활을 가리키기 때문이다(Hendriksen). 어쨌든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바울을 기소한 이유는 '모세를 배반하고 할례와 규모를 금지한 것'(행 21:21) 때문이었으나, 바울 자신은 죽은 자의 부활을 전파했기 때문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바울에게 있어서 부활은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생사를 걸어놓고 전파할 복음의 진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바리새인들이 내세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죽은 자의 부활 사상과 바울이 증거하고 있는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부활 및 성도들의 부활과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이런 점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부활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요 소망일 수밖에 없다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전파하였던 것이다(고전 15:12-33).
23:7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 본문의 '다툼'(스타시스)이란 말은 문자적으로는 '세우다' 혹은 '두다'란 뜻으로 서로의 입장이 옳다고 주장하며 대립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를 대적함에 있어 공동 노선을 취하였듯이(마 22:23-46) 기독교를 배척하고 탄압하는 데에도 같은 입장을 취하였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신봉하는 교리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항상 갈등과 대립의 자세를 견지해 왔었다. 이러한 근본 원인은 바리새인들과 달리 사두개인들이 사실상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인생의 영원성 등을 무시하고 현실 생활만을 인생의 전부로 보았기 때문이다(8절).
23:8 부활도…천사도…영도 없다. -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울이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는 내세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일반적으로 부활을 믿고 있던 바리새인들의 경향과 일치하는 듯이 보였으니 이로 인해 바울은 어느 정도 이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9절).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근본적으로 영혼 불멸 사상을 부정했기 때문에(Josephus) 육체의 부활 교리를 부인했고, 천사나 악령들의 영적 세계도 믿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대신 자신의 삶을 자신의 생각대로 영위할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이해득실에 따라 현상 유지에만 급급함으로써 바리새인들과는 완전히 대립된 성향을 보였다. 따라서 이 두 집단은 이런 교리적인 차이 뿐만 아니라 상반된 생활 자세 등에 의해 종종 첨예한 대립을 보였다. 이러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상반된 신학 사상과 성향에 관해서는 본서 14권 신약 총론, 신약 시대의 사회 · 문화적 배경, '유대교 분파들'을 보다 참조하라.
23:9 크게 훤화가 일어날새. - 여기서 '훤화'(크라우게)라는 말은 본래 '원통해 하며 크게 소리내어 운다'(크라조)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기서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 사이에서 일어난 격렬한 다툼을 의미한다.
서기관. - 율법사 또는 교법사로도 불리는 자들로 대부분 바리새파에서 배출된 까닭에 율법을 해석함에 있어 바리새인들의 해석을 지지하였다. 마 2:4 주석 참조.
혹 영이나…말하였으면 어찌하겠느뇨. - 공동번역은 본절을 '만일 영적 존재나 천사가 그에게 말해 주었다면 어떻게 할 셈입니까?'로 번역하고 있다. 즉 서기관들은 혹시라도 바울이 지금까지 말한 바가 성령에 감동되었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사자(使者)인 천사의 계시를 받아 말한 것이면 아무도 그 신적 권위를 부정할 수 없다고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조가 아예 영적 존재를 부인하는 사두개인들에게 먹혀들리 만무하였다. 그리하여 양자들 간의 대립은 더욱 격렬해졌다(10절).
23:10 큰 분쟁이 생기니 빼앗아 가지고. - 바울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산헤드린 공회의 소집을 청원한 천부장(행 22:30)은 도리어 바울로 인해 공회원들 간에 분쟁이 생기자 더욱 당혹해 하였다. 여기서 '큰 분쟁'과 '찢겨질까'란 말로 보아 당시의 대립 양상이 얼마나 격렬했으며 또한 그 와중에서 바울의 신변이 극도로 위태로왔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천부장은 바울의 신변 안전을 염려하여 바울을 붙잡고 있는 공회원들로부터 바울을 떼내어 다시금 안토니아 요새 안으로 데리고 갈 것을 병사들에게 지시한 것이다. 안토니아 요새에 대해서는 행 21:31,32 주석 참조하라.
23:1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 굶주린 이리 떼처럼 바울을 삼키려 드는 무리들 중에서 벗어난 바울은 다시금 안토니아 요새에 감금되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으니 고린도에서처럼(행 18:9,10) 주께서 다시 나타나서 바울을 격려해 주셨다. 이와 같이 주께서는 바울의 전도 사역 중 중대한 순간마다 나타나셔서 환상 가운데서 인도하시고 격려하셨다(행 9:4; 16:9; 18:9; 22:17; 27:21). 이것은 곧 '봅시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하신 약속의 말씀에 대한 위대한 보증이 아닐 수 없다.
담대하라...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 주님은 육체적, 환경적, 정신적 위기에 처한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담대하라'(달세이)고 격려하셨다. 이것은 '용기를 내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지상 사역을 하시는 동안 종종 사람들에게 이러한 격려의 말씀을 하셨다. 즉 중풍병자(마 9:2)와 혈루증 앓던 여인에게(마 9:22). 또한 폭풍우 속에서 제자들에게(마 14:27), 그리고 다락방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이처럼 말씀하셨다(요 16:33). 그런데 이러한 격려와 함께 이번에는 바울에게 로마 전도에 대한 새로운 비젼(vision)도 제시해 주셨다. 사실 로마 전도 여행은 바울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소원이었지만(행 19:21; 롬 15:22-29),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때 주님이 나타나셔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증거하였듯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한다는 확신을 주신 것이다. 이러한 확신은 바울이 이후 로마에 당도하기까지 겪었던 시간의 지체와 염려들을 극복하는 데 큰힘이 되었고 어려운 순간들을 만날 때마다 침착하고 고귀한 인내심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Bruce). 뿐만 아니라 일전에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행 22:21) 하신 말씀에는 로마로 선교 사역하러 가는 것도 포함되어 있음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복음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서 매순간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믿고 바라는 사역자들이 되어야할 것이다.
23:12-22 유대인들의 바울 살해 음모와 발각
바울을 합법적으로 죽이려던 유대인의 음모는 번번이 무산되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이제 바울을 암살하려는 계획마저 세우게 된다. 본문에는 바로 그러한 유대인들이 바울을 살해하려는 흉계를 꾸미다가 발각되어 실패하는 모습이 소개된다.
이러한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유대인들의 살해 음모이다(12-15절). 유대인들은 산헤드린 공회에서 바울을 합법적으로 처벌하려던 계획이 실패하고 또한 천부장의 태도로 보아 바울에게 죄인의 누명을 씌울 수 없음도 깨달았다. 상황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40여명의 유대인들은 암살단을 조직하여 바울을 살해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게 된다. 즉 그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결탁하여 바울을 다시 산헤드린 공회로 소환시킨다는 명목 아래 로마의 요새에서 나오게 한 다음 길에 매복해 있다가 암살한다는 불법적이고 간악한 음모를 꾸민 것이다.
다음으로 음모의 발각과 바울의 보호이다(16-22절). 즉 바울을 살해하려는 유대인들의 음모는 바울의 생질(甥姪)에 의해 발각되었고 바울의 생질은 그것을 바울과 천부장에게 알려주게 된다. 결국 천부장은 바울을 보호하기 위하여 가이사랴 총독부로 옮기려는 호송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것은 약속대로(11절) 로마에 가기까지 바울을 보호하시려는 성령의 역사요 심리로,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계기를 통해서도 바울이 로마에 갈 수 있도록 모든 계획을 진행하시고 섭리하심을 알 수 있다.
한편 이상의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유대인과 천부장의 대조적인 모습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위한다는 종교적 열심의 명목하에 복음을 배척하고 불법적으로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까지 꾸미는 완악하고 잔혹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천부장은 이방인임에도 바울에게 호의를 베풀고 공정한 자세로써 바울을 대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유대인의 완악함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옮기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은연 중에 보여 주는 것이다(눅 11:43-52; 행 28:25-28).
결국 본문을 통해 우리는 사악한 유대인들의 음모가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일을 다 아시고 바울을 구원하실 방도를 마련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들 또한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에서 살 때에 아무 것도 염려치 말고 담대하게 살아감은 물론 더욱 충성되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해야 한다(사 25:4; 빌 4:7; 살후3:3).
23:12 당을 지어 맹세하되…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 본문의 '당을 지어'(포이에산테스 쉬스트로펜)라는 말은 '공모하다' 또는 '작당하다'라는 뜻이다(삼하 15:31; 왕하 10:9; 15:10). 그리고 '맹세하되'(아네데마티산 헤아우투스)란 말은 '자신들을 저주 아래에 두다'라는 뜻이다(Robertson). 이처럼 공회가 교리적 논쟁으로 인해 분열되고(7-10절) 그로 말미암아 합법적인 재판을 통해서는 바울을 헤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일단의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기 위한 암살단을 구성하고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를 하였다.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에 의하면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음모를 꾸며 사람을 암살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고 하니 이번 일을 사주(使嗾)한 자 역시 아나니아였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단식 서약을 하는 것은 유대인 사회에서 일찍부터 있었다(삼상 14:24). 어쨌든 저들의 이러한 각오는 어떻게 하든지 바울을 죽이겠다는 비장한 태도를 잘 나타내 준다. 주님께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바울을 로마에까지 보내시겠다고 하셨는데(11절), 유대인들은 주님과 싸우듯이 바울을 죽이려고 동맹하였다. 사실 바울의 생명은 그가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시작한 사역의 벽두부터 위험에 처해 왔었다(9:22-25,29; 13:50,51; 14:5,19-20; 18:12-17; 20:19).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그의 사역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임을 보여 주었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것이란 사실을 명백히 증거해 주었다. 이런 의미에서 유대인들의 이번 공모와 작당 역시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으로 결코 바울의 앞길을 막는 장애가 될 수 없는 것이다.
23:13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음모는 이처럼 바울에 대해 극도의 증오심을 품고 있던 일단의 유대인들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무리 10여명이 넘었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바울을 죽이기로 동맹하였다. 여기서 '동맹'(쉬노모시아)이란 말은 '맹세로 굳게 결합하는 것'을 뜻한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이곳에만 언급되며 바울을 죽이려는 자들의 강한 의지를 나타내준다.
23:14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 40여명에 달하는 이 유대인 무리들은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자신들의 음모를 알렸다. 이렇게 함으로 공회는 음모의 사령부가 되고, 40여명은 실제적인 행동 대원이 되었다. 한편 부활 논쟁으로 인해 사두개인들과 달리 바울을 동조했던 바리새인(9절)이 이 음모에 가담했는지 안했는지는 본절에 분명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평소 기독교인들에 대하여 극도의 반감을 갖고 있던 저들의 성향으로 보아 가담했을 가능성이 크다. 저들의 바울에 대한 동조는 일시적이었을 뿐이며 기독교를 분쇄하고자 다시 사두개인들과 합세하여 바울을 제거하려 했을 것이다.
23:15 이제 너희는... 더 자세히 알아볼 양으로…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 바울을 죽이기 위한 치밀한 계획이다. 즉 일단의 유대인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찾아가 바울에 대해 더 알아볼 것이 있다는 구실로 바울을 산헤드린 공회에 다시 데려오도록 요청하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대제사장이 바울과 천부장을 거짓말로 속여 바울이 헤롯 성전의 북쪽에 있는 안토니아 요새(행 21:35 주석 참조)에서 성전의 남쪽에 있는 산헤드린 공회로 갈 동안 그 중간의 좁은 길거리에 잠복해 있다가 바울을 죽여 없애기로 계획한 것이다(Longeneker). 사실 천부장은 산헤드린 공회에서 바울의 죄상을 알아보려 한 1차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행 22:30) 대제사장으로부터 재심 요청이 있을 경우 기꺼이 응할 것이었다. 따라서 이를 이용해 바울을 살해하기로 한 유대인들의 음모는 상당한 실현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더욱이 이러한 암살 계획은 산헤드린 공회 자체와는 전혀 무관한 몇몇 극렬 분자에 의해저 질러졌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산헤드린 공회에 대한 로마 당국의 문책이나 제재도 피할 수 있는 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23:16 바울의 생질이…고한지라. - 유대인들과 유대 지도자들의 치밀한 암살 음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이미 바울을 위해서 역사하고 계셨다. 즉 바울의 생질을 통해서 바울에게 유대인들의 음모 사실을 전해준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 언급을 생략하고 있기 때문에 바울의 생질에 관한 신상이나 이 생질이 어떻게 유대인들의 음모 사실을 알아내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몇 가지 추측컨대 그가 일단의 유대인과 대제사장 그리고 장로들 사이에서 논의된 비밀을 탐지한 것으로 보아 산헤드린 공회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을 맺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바울의 아버지가 바리새인이었으므로(6절) 바울의 누이도 바리새인에게 출가했을 것으로 보아 당연히 생질도 바리새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와 관련하여 혹자는 바울의 생질이 예루살렘의 랍비 밑에서 공부하기 위하여 다소에서 예루살렘에 유학와 있었거나(Bruce) 아니면 바울의 누이가 출가해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Lenski).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 생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섭리하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이방의 사도로 선택한 바울을 하나님께서 적대자들에게 비참하게 죽도록 내어버리지 않으신 사실은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실패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심을 보여 준다. 그런즉 그러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여전히 택한 백성들을 미처 인간들이 알 수 없는 지혜와 방법들을 통해 인도하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행 16:25,26).
23:17 한 백부장을 청하여 가로되 이 청년을…인도하라. - 사태의 움직임을 전해들은 바울은 조카를 천부장에게 보내 유대인의 음모를 알리도록 하였다. 즉 바울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서 백부장에게 말하는 대신 그에게 부탁하여 최고 책임자인 천부장에게 생질을 보내 유대인들의 음모를 알리도록 조처한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백부장을 자유롭게 접견할 수 있었던 것은 로마의 시민권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Lumby). 한편 여기서 바울은 자신의 생질을 '청년'(네아니아스)이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 말은 대개 20대 혹은 30대 남자를 가리키던 단어이다(Toussaint).
23:18 죄수 바울이…청하더이다 하매. - 백부장은 바울의 요구에 따라 바울의 생질을 천부장에게 데려다 주었다. 그런데 백부장은 아직 유죄 판결도 받지 않은 바울을 '죄수'(호 데스미오스)라고 호칭하였다. 이는 당시 '죄수'라는 말이 유죄 판결을 받은 자뿐만 아니라 '감금되어 있는 자들'을 나타내기도 한 단어였기 때문이다(Lenski).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바울이 자신을 온전히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란 의미로 자신을 가리켜 '갇힌 자'로 지칭하기도 하였음을 상기할수 있다(엡 3:1; 4:1; 딤후 1:8; 몬 1:9). 한편 당시 로마 통치 하에서는 3종류의 감옥이 있었다. 먼저 일반 죄수들을 가두는 최악의 시설로서 공중 감옥(custodia publica)이 있었는데 이는 주로 캄캄한 지하실에 있었다. 아마도 바울이 빌립보에서 이런 곳에 투옥된 듯하다(행 16:23). 다음으로 주로 상류층 신분의 죄수들을 감금하는 자유 감옥(custodia libera)이 있었는데 공중 감옥에 비해 훨씬 자유로이 지낼 수 있는 감옥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군영 감옥 혹은 영창(custodia militaris)이 있었다. 이는 한 사람의 군사에게 책임지워 군사의 왼손을 죄수의 오른손과 같이 결박하여 감시하게 하는 곳으로 주로 군영이나 개인의 집이 이런 감옥으로 이용되었다. 지금 바울이 안토니아 요새에서 감금되어 있는 곳이 이 군영 감옥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3:19 천부장이…할 말이 무엇이냐. - 천부장은 백부장의 보고를 받고서는(18절) 젊은이를 통해 무엇인가 바울에 관계된 중대한 사실을 듣게 되리라고 직감하였다. 그래서 청년의 손을 잡고 조용한 곳으로 갔다. 여기서 천부장이 '그 손을 잡고' 가는 것은 청년에게 안도감을 주어 비밀을 완전하게 알려 줄 수 있게끔 하려는 태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천부장이 바울에 대해서 친절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행 24:23; 27:3).
23:20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저희들이…청하자. - 바울의 생질은 15절의 내용, 즉 40여 명의 유대인들(13절)이 바울을 죽이기 위해 꾸민 음모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저희들이'란 대제사장과 장로들(14절), 즉 산헤드린 공회원들을 가리킨다. 이렇게 바울의 생질은 유대인들이 산헤드린 공회원들과 공모하여 바울을 죽이려 한 사실을 천부장에게 알리고 있다.
23:21 저희 청함을 좇지 마옵소서. - 바울의 생질은 유대인들의 음모를 밝힐 뿐만 아니라 그들의 계략에 넘어가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여기서 '좋다'(페이스데스)는 말은 '꾀어 속이다' 혹은 '찬성하다'는 의미를 가진 헬라어 '페이도'( )의 단순 과거 수동태이다(Robertson). 따라서 본절의 '좇지 마옵소서'라는 말은 '설복되지 마옵소서' 혹은 '찬성하지 마옵소서'라는 의미를 가진다(눅 16:6; 행 5:40; 17:4). 즉 이는 유대인들이 어떤 이유를 들어 바울을 다시금 산헤드린 앞에 세우려고 요청할지라도 천부장은 그에 응하지 말 것을 강력히 부탁하고 있는 말이다.
숨어서…허락만 기다리나이다. - 본문의 '숨어서'(에네드류우신)라는 말은 16절의 '매복'과 같은 의미로 복병하고 있음을 말한다. 바울의 생질은 이처럼 음모자들이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를 마친 가운데 이제 천부장의 허락만을 기다리고 있음을 강조하여 사태의 긴박성을 알려 주고 있다. 그리고 만일 바울의 신변에 무슨 일이 있을 경우 사전에 대처하지 못한 천부장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돌아갈 것임을 넌지시 시사하고 있다.
23:22 경계하되 이르지 말라. - 천부장은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잔인한 성격과(2절) 전날의 유대인들의 소동을 미루어(9,10절) 바울의 생질의 말을 사실 그대로 굳게 신임한 듯하다. 그래서 천부장은 그가 자신에게 고한 사실에 대해 비밀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즉 천부장이 유대인들의 계략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누설될 경우 저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또 다른 계략을 세울 것이었다. 이에 천부장은 저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바울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려 한 것이다(23-32절).
23:23-35 가이사랴로 호송되는 바울
본문은 유대인들의 바울 살해 음모(12-22절)를 알게 된 천부장이 바울을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부로 호송하는 모습이다. 즉 천부장은 유대인들의 바울 살해 음모가 드러나자 로마 시민권을 가진 바울에게 무슨 해라도 미치면 그 책임을 면치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부리나케 야음을 이용하여 바울을 로마 시민에 대한 정식 재판권이 있는 로마 총독에게로 이송한 것이다. 이로써 바울은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을 마치고 로마를 향한 선교의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데, 이것은 로마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성령의 역사요, 섭리라 할 수 있다.
한편 천부장은 바울을 호송하는데 470여 명의 군사를 동원하였다(23,24절). 당시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병력이 약 600여 명이었음을 감안하면 이러한 병력의 동원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것은 천부장이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을 채찍질하려 했던 불법을 보상하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행 22:29) 또한 유대인들의 바울 살해 음모가 너무 거세었으므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호 역시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바울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주목할 사실은 천부장이 총독 벨릭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으로, 천부장은 바울의 무죄함을 선언하고 있다. 즉 같은 동족인 유대인은 바울을 죽이려한 반면, 이방인 천부장은 비교적 공정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방 선교의 당위성과 필연성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어쨌든 바울은 가이사랴로 이송되어 벨릭스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당시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의 통치권을 갖고 있던 벨릭스는 재판의 형식에 따라 바울의 출신지를 묻고 그가 길리기아 출신임을 말하자 정식으로 재판할 것을 명하였다. 이것은 죄인이 그의 출신 지역에 가서 재판을 받아야하는 로마의 재판 규례 때문이다. 여기서 총독 앞에 선 바울의 모습은 마치 빌라도 총독 앞에서 심문받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연상시키는데, 이것은 주님의 제자된 자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실례라 아니할 수 없다(눅 23:18-25절 참조). 그러나 이제 바울은 더 많은 이방인들 앞에서 재판의 변론을 통하여 주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렇게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떠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으며 주의 사역을 해 나가야한다는 교훈을 얻게된다(고후 12:9; 히 6:10).
23:23 백부장 둘을 불러…준비하라 하고. - 천부장은 유대인 음모자들이 눈치를 채지 못하게 유대식 시간으로 '밤 제 삼시', 즉 오늘날의 시간으로 밤 9시(본서 1권, 성경 총론, '성경 도량형 환산표' 참조)에 은밀히 바울을 가이사랴의 로마 총독(행 10:1 주석 참조)에게로 보낼 준비를 완전히 갖추도록 백부장에게 명령했다. 그런데 여기서 동원하도록 지시한 470명의 병사들은 그의 지휘 아래 있는 안토니아 요새 수비대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이처럼 바울의 안전을 위해 취한 천부장의 최대한의 조치는 이제 모든 문제가 그의 관할에서 상부 기관의 로마 총독에게로 넘어가야 할 사안(事案)임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사실 천부장은 만일 그의 관할지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그것을 수습하지 못하면 상부로부터 문책을 당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천부장은 사태가 자신이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비약되고 있음을 깨닫자 바울을 아예 가이사랴의 로마 총독에게로 이송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로 인해 바울은 예루살렘을 벗어날 수 있었는데 이것이 역시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다. 즉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로마로 보내시고자 계획을 하나하나 진행시키기 시작하신 것이다(11절).
창군. - 군대의 이동이나 전투시 대오(隊伍)의 측면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일종의 척후병들을 가리킨다. 이들이 주로 사용하던 무기는 짧은 투창과 긴 창이었다(Hervey).
23:24 총독 벨릭스에게로. - 천부장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바울을 유대인들의 손에 살해당하게끔 내버려 둘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시 유대 지방을 다스리던 로마 총독이었던 벨릭스(Felix)에게로 넘기기 위해 조치를 취했다. 여기에 나오는 벨릭스는 성경 밖의 문헌에서도 매우 잘 알려져 있는 인물로서 유대 지방을 다스리던 제 11대 로마 총독으로 A.D. 52-60년 사이를 통치한 인물이다. 그는 노예 출신으로 글라우디오(Claudius) 황제의 모친 안토니아(Antonia)에 의해 자유인이 되었기 때문에 일명 안토니우스 벨릭스(Antonius Felix)라고도 불리웠다. 그런데 그는 바울을 만나기 오래 전부터 이미 부패한 정치가로 나쁜 평판을 듣고 있었고 유대인과도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생활도 깨끗하지 못했다. 본서에 그의 아내로 소개된 드루실라(행 24:24)는 그와 결혼하기 위해 전남편과 이혼을 한 여인이다. 그래서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는 그를 '포악하고 음흉하며 노예 같은 성격을 가지고 국왕의 권한을 행사한 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짐승을 준비하라. - 본문의 '짐승'(크테네)은 '탈 수 있는 짐승'과 '짐을 나르는 짐승'을 동시에 의미한다. 따라서 바울을 태우기 위한 짐승 뿐만 아니라 그의 짐을 싣거나 날라야 할 또 다른 짐승도 준비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Longeneker). 실제로 바울이 기거하던 예루살렘에서 로마 총독이 있는 가이사랴까지는 약 90km정도 되는 거리였기 때문에 신속한 이동을 위하여서는 이러한 수송 수단이 필요했다(32절).
23:25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 천부장은 로마의 하급 관리자가 상급자에게 어떤 사건을 보고할 때에는 서면(書面)으로 기록된 진술서를 보내도록 규정하고 있는 로마법을 따라 서신도 함께 보내었다(Toussaint). 한편 '이 아래와 같이'(에쿠산 톤 튀폰 투톤)란 말은 '이것들을 포함하여'란 의미이다. 이는 곧 이하의 서신의 내용이 대강 요약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즉 이것은 천부장의 편지의 내용을 누가가 요약하여 본장에서 소개하고 있음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 보인다(Bruce).
23:26 글라우디오 루시아. - 바울과 유대인들을 관할하던 천부장의 이름이다. 그런데 '글라우디오'(Claudius)는 로마식 이름이며, '루시아'(Lysias)는 헬라식 이름인 것으로 보아 그가 헬라인으로서 로마 시민권을 획득한 자임을 알 수 있다. 행 22:28 주석 참조.
총독. - 로마 황제(Emperor)는 로마 제국의 최고 통수권자였다. 그러나 황제 혼자서 넓은 제국 전체를 다 통치할 수는 없었다. 이에 황제는 황제 관할 지역과 그 밑의 원로원 관할 지역을 구분하여 다스렸다. A.D. 1세기경 황제 관할 지역으로서 대표적인 속주는 애굽, 수리아, 갈라디아, 유대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원로원 관할 지역으로는 아가야, 아시아, 비두니아, 그레데, 구브로, 마게도냐 등을 들 수 있다. 본서 14권 신약 총론, 신약시대의 사회 · 문화적 배경, '로마 제국의 정치 구조' 참조. 본절에서 '총독'에 해당하는 '헤게몬'( )은 황제 관할 지역을 다스리던 총독을 가리킨다. 이에 반해 '안뒤파토스'( )는 원로원 관할 지역을 다스리던 총독을 가리킨다. 즉 본서에 언급된 '서기오 바울'(행 13:7,8)과 '갈리오'(행 18:12)는 '안뒤파토스'였으나 '본디오 빌라도'(마 27:2)와 본절의 '벨릭스'는 '헤게몬'이었다. 이 '헤게몬'은 로마 황제에 의해서 직접 임명되고 또한 종종 황제의 권한과 기능을 완전히 행사했다. 따라서 이들의 더 정확한 직분 명칭은 '행정 장관' 혹은 '재무관'(에피트로포스)이었다(Hervey).
각하. - 이 '각하'(크라티스토, most excellent)라는 칭호는 로마 사회에서 주로 유대와 같은 속국의 통치자들에게 붙혀졌다. 뿐만 아니라 원로원 의원(senator) 다음 계급인 '기사'(equites) 계급들에게도 붙혀졌는데 후에는 로마 정부의 고위층 관리를 부르는 존칭이 되었고(행 24:3; 26:25), 상대방에 대한 정중한 인사의 말로도 사용되었다(행 1:1).
문안하노이다. - '문안하다'(카이레인)는 말은 '기뻐하다'는 뜻이다. 이는 가장 단순한 헬라식 문안 인사로서 히브리인들의 일상 인사말인 '평안할지어다'에 해당한다. 한편 글라우디오 루시아의 이와 같은 서신에서 우리는 그가 당시의 전형적인 서간 형식을 취하여 벨릭스 총독에게 진술서를 보내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발신인과 수신자의 이름을 먼저 밝히고 그리고 문안 인사를 드리고 있다. 이러한 서신의 형식은 히브리서와 요한 1서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약 서신서에서도 볼 수 있는 형식이다(Longeneker).
23:27 로마 사람인줄 들어…구원하여다가. - 사실과는 약간 다른 보고이다. 왜냐하면 루시아가 바울을 보호한 것은 사실이지만, 바울이 유대인들로부터 곤욕당하고 있을 때(행 21:27-32) 로마인이라는 것을 알아 구출했다는 것은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즉 실제로 루시아가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임을 안 것은 이미 바울이 로마 병사들에 의해 체포되고 그가 채찍질을 명했을 때였다(행 22:24-29). 따라서 루시아는 바울을 채찍질하라고 명했던 자신의 잘못된 조치를 교묘히 은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천부장 루시아는 자신의 상관인 벨릭스로부터 문책당할 것을 염려하여 진상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의 사실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루시아가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존중해 주었다는 사실이다(Haenchen).
23:28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 루시아는 무죄한 바울을 결박하고 채찍질하려 한 사실은 숨겨둔 채 오히려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송사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밝힘으로 총독에게 바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 호의적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루시아가 이러한 노력을 한 것만큼은 사실이다(행 22:30).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알고난 뒤 자신에게 미칠 화를 두려워한 사후 조처였으니 루시아의 보고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23:29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 본절은 바울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루시아의 견해가 분명히 나타나 있기 때문에 그의 서신 중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다시 말해 이는 본서 저자인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로마 관리들의 '공식적인 발언'의 하나로서, 그리스도인들이 범법자들로 간주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것은 곧 유대인들과 바울이 관련된 다툼의 문제는 로마의 법에 관련된 것이 아니고, 유대인들의 경전인 율법과 그 해석에 관한 문제(6절)이므로 형사 처벌의 대상이 아님을 밝힘으로 사실상 바울에 대해 무죄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판단은 이미 갈리오 총독이 내린 것이기도 하다. 행 18:15 주석 참조.
23:30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하였더라. - 마지막으로 루시아는 벨릭스에게 보내는 진술서에서 12-15절에서 나타난 유대인들의 음모를 밝히고 있다. 그래서 바울을 총독에게로 보내니 그곳 법정에서 이 사건을 다루어 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이처럼 사람들의 계획과 목적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께서는 로마의 행정권을 사용하여 바울을 그의 대적들로부터 보호해 주셨다. 참으로 '과거는 하나님의 긍휼에, 현재는 그분의 사랑에, 미래는 그분의 섭리에 맡기라'고 한 성 어거스틴(Augustinus)의 말이 신뢰할 만한 것임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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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1 보병이…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 '안디바드리'(Antipatris)는 예루살렘과 가이사랴 중간에 있는 도시로서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약 50km, 가이사랴까지는 약 40km가량 못미친 지점이다. 이곳은 본래 '카팔사바'(Kaphar-Saha)라 불리던 곳으로 B.C. 9년경 헤롯 대왕이 이곳을 건설한 후 그의 아버지 '안디파터'(Anti-pater)의 이름을 명예롭게 하기 위해서 그의 이름을 따서 불렀다(Alford). 이곳의 현재 위치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는데 몇몇 학자들은 예루살렘 북서쪽 약 56km에 있는 지금의 '쿠랏 라스 엘 아인'(Kulat Ras el Ain) 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어쨌든 바울 일행이 밤 9시에 예루살렘을 출발하여(23절) 약 50여km 떨어진 이곳 안디바드리에 아침까지 도착하자면 많이 서둘렀을 것으로 보인다.
23:32 이튿날 마병으로…돌아가니라. - 본문의 '이튿날'은 바울과 그 호위대가 안디마드리에 도착한 다음날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출발한 다음날을 뜻한다(Hervey). 이처럼 바울을 호송했던 병사들 중 보병과 창군 4백명(23절)은 안디바드리에서 다시 예루살렘의 안토니아 요새로 돌아가고, 마병 70명(23절)으로만 가이사랴까지 바울을 호송토록 했다. 이렇게 군사들의 대오를 나눈 것은 안디바드리에서 가이사랴까지는 약 40km 거리로서 더 이상 유대인들에 의한 추격의 위험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23:33 가이사랴에 들어가서...그 앞에 세우니. - 기병대에 의해 호송되어 가이사랴에 도착한 바울은 벨릭스 총독에게 재판을 받게 되었다. 여기서 '세우니'(파레스테산)라는 말은 누군가를 재판관 앞에 출두시킬 때 특별히 사용된 말이다(롬 14:10). 이처럼 천부장 루시아의 서신이 벨릭스에게 전달된 가운데 바울은 이방인 총독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즉 상황은 비교적 바울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어 바울은 로마 총독이 주재하는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할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뜻깊은 일은 이를 계기로 바울이 이방인 고관을 상대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행 24:24). 이것 역시 바울에게 닥친 위기의 때를 도리어 복음 확장의 기회로 전환시켜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라 하겠다.
23:34 어느 영지 사람이냐. - 벨릭스 총독은 천부장의 편지를 읽고 난 후 바울에게 '어느 영지 사람'(에크 포이아스 에파르케이아스)이냐고 물었다. 이 질문은 바울이 어디 출신이냐, 즉 바울이 황제 관할 지역의 출신인지 원로원 관할 지역의 출신인지를 알려한 것이다. 26절 주석 참조. 이와 같은 질문은 죄인이 소속 영지에 따라 그 관할 지역으로 이송되어 재판을 받기 때문에 죄인들을 심문하는 재판관의 일종의 예비 심문이었다. 이같은 사실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할 때 예수께서 헤롯의 관할지인 갈릴리 사람인 것을 알고 헤롯에게로 이송한 사건에서도 잘 나타난다(눅 23:6,7). 그런데 바울은 길리기아 지방의 다소 출신이었는 바(행 21:39) 그곳은 황제 수리아 령(領)에 속하였다. 26절 주석 참조. 따라서 벨릭스 총독은 자기의 재판 소관임을 알고 그 사건을 처리하기로 한 것이다.
23:35 너를 송사하는 사람들…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 벨릭스 총독은 자신이 유대 총독이면서 또한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의 대리 대사를 겸임하고 있었기 때문에(Toussaint) 자신이 바울의 재판건을 담당하기로 결정하고 바울을 송사하는 자들이 올 때까지 일시 헤롯 궁에 그를 감금하였다. 헤롯 궁은 헤롯 대왕(B.C. 37-4년)이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해 가이사랴에 세웠던 궁전이다. 그러나 후에 로마 총독이 이곳을 총독의 관저및 본영으로 사용하였는데 이러한 총독의 관저를 가리켜 일명 '브라이도리온'(막 15:16)이라고 부른 것같다(Robertson). 한편 고대의 궁전은 일반적으로 요새도 되며 재판정도 되었으며, 지하에는 영창(營倉)이 있었다(18절 주석 참조). 그런데 벨릭스가 바울을 정식으로 재판하기 위해서는 바울을 송사한 사람들의 진술을 듣는 것이 필요했다. 따라서 그들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바울을 심리(審理)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일시 헤롯 궁에서 보호되었는데 바울이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보호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하 영창보다는 헤롯궁에 있는 수많은 방들 중의 하나가 아니면 궁에 딸린 전용 감방에서 일시 구금(拘禁)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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