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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인사말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한 찬양 및 성도를 위한 바울의 중보기도
구속사적 개관:
전 21권의 신약 서신서는 신 ․ 구약 성경 66권 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성도의 구속(救贖) 구원의 원리와 이의 성도의 실제 생활에서의 실천적 원리 및 적용에 대하여 계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본 에베소서는 세상 끝 날까지 전 신약 시대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는 교회(敎會)를 설립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성도들의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본질에 관한 신학적 원리, 그리고 교회 성도들 간의 온전한 일치(一致)와 연합(聯合) 및 성도 개개인의 신앙생활과 관련된 실천적 교훈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본서가 기록될 당시는 A.D. 30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이후 오순절 성령 강림과 함께 초대 교회가 태동되기 시작한지 불과 30여년 정도 지난 때로써 아직까지 교회 조직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성도들은 교회관(敎會觀) 조차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한 때였다. 특히 이때까지만 해도 기독교와 유대교의 본질적 차이가 세인(世人)들에게 분명하게 인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대인 성도들과 이방인 성도들이 함께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인해 초대 교회는 많은 갈등을 겪고 있었다. 이에 바울은 에베소 교회뿐만 아니라 소아시아 여러 지역의 교회들에게 올바른 교회관을 심어주고 교회 안에서 유대인 성도와 이방인 성도가 일치하여 함께 화목하는 가운데 신앙 생활하도록 하기 위해 교회의 본질에 관한 신학적 원리와 그에 입각한 교회 생활에 관한 제반 실천 사항들을 본서를 통하여 교훈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본서를 시작하는 첫 장인 본장은 한 장 전체가 다 본서의 도입부에 해당한다.
이러한 본장은 본론 전반부 2:1-3:21에서 언급하고 있는바 성도의 지위와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본질에 관한 신학 원리를 언급하기에 앞서 성삼위 하나님의 인간 구원 사역에 대한 찬양과 함께 간접적으로 교회와 관련된 몇 가지 사실들, 곧 성도 개개인에 대한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 섭리와 그들을 교회의 구성원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에 대해 소개하면서 그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성도 각자가 소유하기를 간구하는 바울의 중보 기도를 기록하고 있는 부분이다. 좀 더 상술하면 먼저 전반부 1,2절은 공식 문안 인사로 본서의 수신자 및 발신자, 그리고 사도권에 근거한 바울의 축도를 기록하고 있다. 중반부 3-14절은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찬양과 함께 교회의 구성원들인 모든 성도들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救贖) 사역에 의해 구원받은 자들임을 기록함으로써 결국 교회의 근원(根源)이 삼위일체 하나님임을 시사하고 있다. 후반부 15-23절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성도들을 구원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과 각 성도들에게 약속된 축복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갖도록 기원한 바울의 증보기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내용의 본장을 구속사적으로 개관해 볼 때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실로 매우 중요한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이미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의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천국 구원이 확정된(요 3:16; 5:24) 성도들의 유기적 공동체인 교회는 원대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 속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실로 태초 아담의 타락 직후 제 1위 성부 하나님(God, The Father)이 세우신 구속(救贖)의 법은 구약을 관통하여 각종 예언과 예표(sign)로 주어져 오다가 제 2위 성자 하나님(God, The Son)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십자가 수난으로 일단 성취되었다. 그러나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택한 성도들이 주의 구속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구원을 얻을 충분한 시간의 확보를 위하여 주의 구속 사역이 완전히 실현되는 것은 세상 끝날 주의 재림과 전 우주에 대한 심판 이후에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천국으로 유보되도록 섭리되었다. 그리하여 구속의 법이 예수를 통해 이루어질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구약의 성취로 초림하신 주님은 일단 구약(舊約)의 말씀대로 구속 사역을 성취하시고 세상 끝 날에 이루어질 당신의 재림과 그 이후의 천국 구원에 대한 새 약속 곧 신약(新約)을 남기시고 일단 승천하셨다. 그리하여 이제 예수의 초림으로 개시된 같은 신약시대이기는 하되 예수께서 직접 세상에 계시던 때와는 달리 주께서 일단 구속 사역을 성취하시고 승천하신 이후 그리고 구속 사역이 최종 실현되는 역사 종말까지의 장구한 중간기의 구속사(救贖史)가 전개되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에는 비록 구속 사역의 결과가 최종적으로 온전히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예수의 사역으로 구속 사역 자체가 성취되기는 하였는바 그 결과 근본적으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단절하던 죄의 문제가 법적으로는 해결되어 인간과 하나님이 교제할 길이 열렸다(히 4:14-16). 그리하여 제 3위 하나님(God, The Holy Spirit)이신 성령께서 오순절 강림 사건으로 역사 속에 임하였으며 향후 각 성도의 심령 속에 내주하시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성도는 택한 성도의 모임인 교회(敎會)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영위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후반부 15-23절에 기록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중보기도 속에서도 기록된바 우리 모든 성도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구원받아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모임인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여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깊은 구속사적(救贖史的) 통찰력을 소유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리고 교회와 교회의 구성원들인 성도들의 구원(救援)에 관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태초에 세우신 구속 계획에 따라 지금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도도하게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은 실로 그리스도께서 신약(新約)으로 약속하신 대로 교회의 구성원들인 각 성도들에게 장차 천국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반드시 주어질 것에 대한 보증이 되는 것이다(1:14,18; 롬 8:18).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들은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 믿음과 사랑으로 일치하며 화목하는 신앙생활을 영위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문안인사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성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찬양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찬양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 하나님의 인침에 대한 찬양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를 위한 바울의 중보기도
15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본문 및 자료 노트
신학용어-1:7 '그리스도 안에서'
이 용어는 전 27권의 신약 서신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표현 중 하나로서 바울 서신서에서 만도 무려 164회나 사용되었다. 이는 특히 엡 ․ 빌 ․ 골 ․ 몬 등의 옥중서신 가운데 많이 등장하며 가장 많게는 에베소서에 30회나 사용된다. 이처럼 이 용어는 신약 성경의 주요 단어로서 바울의 사상을 가장 잘 보여 줄 뿐 아니라 기독교 구원론의 관된을 함축적으로 암시하는 용어이다.
1. 용어의 정의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라는 용어는 신약 서신서에서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이를 대략적으로 분류해 보면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압축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는 사죄(赦罪)의 근거로서의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법적 연합을 나타낸다. 즉 이는 성도가 죄 없으신 몸으로 성도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와 법적 연합을 가짐으로 사죄를 얻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둘째, 이는 성화(聖化)의 근거로서의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영적 연합을 나타낸다. 즉 이는 성도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성화의 삶은 오직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을 근거로(롬 8:1-11), 또 그것을 통해서만(갈 2:20) 가능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특히 이 영적 연합은 그리스도와 성도 양자가 하나님 앞에서 법적 공동체를 이루는 것으로 그치는 법적 연합 이상으로 성도가 유기적으로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더불어 호흡하며 생활하는 그리스도와의 실존적․신비적 연합을 말한다.
한편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은 물론 이와 관련된 주요 신학 주제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롬 5장 연구 자료를 보라.
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복
1. 천국의 신령한 복을 받음(엡 1:3) 2. 창세 전에 택함 받음(엡 1:4)
3.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음(딤후 1:9) 4. 구속을 얻음(롬 3:24)
5. 사죄함을 얻음( 엡 4:32) 6.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게 됨(롬 7:1,2)
7. 하나님께 대해 산 자가 됨(롬 6:11) 8. 영적 생명을 얻음(엡 1:20)
9. 새로운 피조물이 될(고후 5:17) 10. 하나님의 아들이 됨(갈 3:26)
11. 담대함을 가짐 (몬 1:8) 12. 평안함을 얻음( 몬 1:20)
13.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음(갈 5:24) 14. 다른 성도들의 잘못을 용서함(엡 4:32)
15. 그리스도 안에서 만 자랑함(빌 1:26) 16. 경건하게 삶(딤후 3:15)
17. 선한 일을 행함(엡 2:17) 18. 고난 받음(살전 2:14)
19. 믿음이 온전케 됨(골 1:28) 20. 천국 구원을 얻음(딤후 2:10)
3. 의의
기독교 구원 신학의 핵심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라는 말을 통하여 먼저는 모든 성도는 우리의 존재의 근거가 되시며, 또 칭의와 성화 곧 우리 전 구원의 원동력이 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여야 되겠다. 동시에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으며 그리스도를 떠나 살려고 했던(요일 2:15,16) 과거 우리의 그릇된 삶의 태도를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며 현재 나 자신의 위치를 돌이켜 보게 된다.
원어연구-1:4, 택하사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엑셀렉사토'( )로서, 기본형인 '에클레고'( )의 부정과거 중간태이다. '에클레고'는 전치사인 '에크'( )와 동사인 '레고'( )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합성어로 문자적인 의미는 '골라내다'(choose out), '집어내다'(prick out)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어떤 장소나 사물로부터 밖으로 분리되어 나감을 뜻하는 '~밖으로'(out from)라는 뜻의 전치사 '에크'와 '모으다'(gathor), '고르다'(elect). '말하다'(say, 마 1:20), '부르다'(call, 마 2:23)라는 뜻을 가진 '레고'가 합쳐진 것으로, 어떤 사람을 어떤 집단으로부터 불러 밖으로 끄집어내었다는 의미가 있다.
한편 본문에서 '에클레고'는 과거에 단 한 번 있었던 일을 나타내기 위해 부정과거형으로 쓰였으며, 또 자기 자신을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하였음을 나타내기 위해 중간태형으로 쓰였다. 따라서 '엑셀렉사토'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어떤 장소나 사물에 속해 있던 것을 불러서 밖으로 끄집어내어 구별시켰다는 함축적인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본문에서의 '엑셀렉사토'는 과거에 이미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위하여 자기 백성들을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어 구별해 두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여기서 '과거'란 '창세(創世) 전'을 가리킨다.
이 단어 하나만 보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어떤 자격이나 조건 때문이 아니라 태초에 이미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의 은총에 따른 섭리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1장 강해주석
1:1,2 문안 인사
1:3-14 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 찬양
1:15-23 성도들의 영적 성숙을 위한 바울의 중보기도
1:1,2 문안 인사
바울 서신은 대체적으로 시작하는 말, 본론, 끝맺는 말의 고대 서신의 전형적인 형태를 취한다. 그리고 시작하는 말은 다시 공적인 문안 인사와 찬양, 감사 기도의 전형을 취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본서 제17권 서신서 개론의 '구조적 특징' 부분을 참조하라. 본서 역시 이러한 구성 형태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 하에서 본장은 본서의 시작하는 말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1,2절은 공적인 문안 인사를, 3-14절은 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찬양을, 그리고 15-23절은 에베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중보 기도를 각각 언급하고 있다.
이제 문안 인사를 언급하고 있는 본문을 보면 바울의 다른 여러 서신서들과 마찬가지로 발신자와 수신자를 밝히고(1절) 축복의 말을 하고 있다(2절). 이러한 문안 인사의 형식은 역시 바울 서신서의 전형적인 형식(갈 1:1-5; 골 1:1,2)으로 고대 서신의 관습적인 형태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서 공통적으로 발신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밝힘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이라는 또 하나의 전형적인 자기 소개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의 신적 권위를 강조함으로써 그의 권면이 자신의 사사로운 교훈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임을 밝히기 위함이었다.
한편 본서의 수신자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들이 있는데, 본서는 대체로 에베소 교회를 중심한 소아시아 교회들에게 보내어진 '회람서신'(回覽書信)으로 본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이방인들을 향한 복음 전파에 힘쓴 바울에게 있어서 에베소와 그 주변의 소아시아 지방은 잊지 못할 사역지 중의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에베소는 그가 3차 전도여행 시에 3년간이나 주재하면서 목회를 했던 곳(행 19장)으로 그에게는 감회가 깊은 곳이었다. 그런데 당시 에베소를 비롯한 소아시아 지방의 대부분의 교회들 내에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공존하고 있었으므로 늘 분열의 위험이 내재되어 있었다. 이를 염려하던 중에 바울은 자신의 생각을 피력할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엡 서론, '신학적 집필 동기와 배경'을 참조하라.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분열을 대비하여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유기체적 교회 안에서의 성도들의 일치와 연합을 강조하고자 본 서신을 기록한 것이다.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 발신자의 자기소개로, 사도직에 대한 바울의 신성한 자의식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고전 1:1; 고후 1:1; 갈 1:1; 골 1:1). 고전 1:1 주석 참조. 그런데 이와 같이 발신자를 먼저 밝히고 수신자와 축복 등을 말하는 것은 고대 서신서의 일반적인 양식이다. 또한 바울의 서신서 중에 발신자를 자기 이름만을 단독으로 밝힌 것은 본서와 로마서뿐으로 그외 그의 다른 서신서에는 모두 다른 사람의 이름이 발신자로 함께 언급된다. 한편 여기서 '사도'(아포스톨로스)는 '보내다'라는 뜻을 가진 '아포스텔로'( )에서 유래된 말로 '사자'(빌 2:25), '보냄을 받은 자'란 의미를 갖는데, 본래는 왕이나 권세자의 권한을 위임받아 특정한 공무를 수행하기 위해 파송된 자를 가리킨다. 성경에서는 만왕의 왕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의 자격으로는 ① 주님께서 친히 임명하신 자(막 3:14), ② 요한의 세례로부터 승천 시까지 예수와 동행한 자(행 1:21), ③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자(행 1:22) 등으로 성경에서 '사도'란 보통 예수의 12제자만을 가리키는 칭호였는데 점차 그 개념이 확대되어 주께 직접 임명되지 않은 '바울'과 '바나바'(행 14:4,14), '실루아노'(살전 2:6), '주의 형제 야고보'(고전 15:7; 갈 1:19) 등도 '사도'라 불리워졌다. 물론 바울은 바나바, 실루아노, 야고보 등과는 달리 주님에 의해 특수한 방법으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서는 행 9:15,16 주석을 참조하라. 또한 '사도'의 일반적인 의미와 관련해서는 행 1장 자료노트 '사도의 이해'를 보다 참조하라.
그리스도 예수. - 대부분의 권위 있는 사본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난다. 그러나 바울의 후기 서신인 본서를 비롯한 옥중 서신에는 '그리스도 예수'로 많이 나타난다. 사실 순서의 차이에서 의미상의 차이는 발견할 수 없고 상호 교호적으로 사용된다. 다만 '예수'가 먼저 나타날 때는 인성이 보다 강조되며, '그리스도'가 먼저 나타날 때는 신성이 보다 강조된다. 한편 '그리스도'와 '예수'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마 1:1 주석을 참조하라.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 수신자에 대한 언급이다. 여기서 '성도'(하기오스)는 종교적 경외심을 뜻하는 '하고스'( )에서 유래된 말로 '신성한 자', '봉헌된 자'란 의미를 지닌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 바쳐진 자', '구별된 자'의 의미로 제사장과 같이 기름부음 받아 성별된 자를 가리키기도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칭하였으나(신 33:3), 신약 시대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 즉 영적 이스라엘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거듭남을 받은 자, 세상으로부터 성별되어 하나님과 하나가 된 자라고 정의할 수 있다(Hodge). 다음으로 '신실한 자'(피스토스)는 '믿다', '신뢰하다', '의지하다'의 뜻을 가진 '페이도'( )에서 유래된 말로 '믿을만한 자', '신임하는 자' 등의 뜻을 지닌다. 그러므로 본절은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로서,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자들임을 시사한다. 한편 일부 권위 있는 고대 사본(시내산, 베자 사본)에는 '에베소에 있는'(엔 에페소)이라는 말이 없다. 때문에 본서의 수신자가 에베소 교인들이 아니라는 견해들이 제시되었다(Orison, Goodspeed. Abbot, Scott). 그러나 대부분의 사본들과 학자들은 본서의 수신지로 에베소 교회를 지지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 그리스도와 성도가 성령 세례로 인해 신비적 결합을 한 상태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이에 대해서는 본장 자료노트, '그리스도 안에서'를 보다 참조하라.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바울이 그의 대부분의 서신서에서 사용하고 있는 축도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여기서 '은혜'(카리스)는 '총애', '호의'의 뜻을 갖는데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이며 값없이 주시는 죄인에 대한 구원의 은혜'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된다(갈 1:3,6,15; 딤전 1:2,14). 또한 '평강'(에이레네)은 '합하다', '연결하다'의 뜻인 '에이로'( )에서 유래되었으며 '평화', '화평', '일치'의 뜻을 지닌다. 이 말은 구약 히브리어 '샬롬'(샬롬)의 개념을 나타내는 신약 용어로 전쟁에 반대되는 의미의 '평화'보다는 구원의 은혜의 결과로 주어지는 영적인 의미의 평화, 즉 하나님과의 평화 또는 화목을 나타낸다. 한편 은혜를 비는 것은 헬라인들의 풍속이며, 평강을 비는 것은 유대인들의 풍속이다. 결국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의 사도된 바울은 유대인과 헬라인의 간격을 초월하여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인사법을 만들어 냈는데, 이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하여튼 이와 같은 '은혜와 평강'은 본 서신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본 서신에서 바울은 하나님과 죄인들과의 '평강'뿐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인한 성도들 간의 평강을 강조하고 있다(엡 4:3).
1:3-14 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 찬양
발신자와 수신자를 밝히고 축복의 말을 함으로써 공적인 문안 인사를 마친 바울(1, 2절)은 이제 본문에서는 삼위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찬양하고 있다. 사실 본서는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드러내기 위해 쓰여졌다. 그래서 본서는 교회 안에서의 성도들의 일치와 연합에 초점을 맞춘 교회론(敎會論)이 그 중심을 이룬다. 바울은 바로 이러한 중심 주제를 다루기에 앞서 일종의 서론격으로 본문을 통해 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본문을 보면 교회의 구성원들인 성도의 구원을 위한 성부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3-6절), 보혈로써 인간 구원의 역사를 친히 이루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7-12절), 인간 구원을 인치시고 보증하시는 성령의 사역(13,14절)을 순차적으로 찬양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찬양의 내용은 결국 성도 개인의 지위와 성도들의 모임으로서의 교회의 근원이 성부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사실 인간의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계획된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및 그리스도의 구속의 성취와 성령의 인침을 통한 성도 개개인에 대한 그리스도의 구속 효과의 적용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우리의 인간적인 의지나 어떤 노력으로 이를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한편 여기서 '예정'(predestination)이란 인간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을 가리키는 말로, 이미 창세 전에 세우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의해 성도가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을 가리킨다. 이런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에 관련해서는 그랜드 종합 교리 '신론' 중 '하나님의 예정' 관련 부분을 보다 참조하라. 즉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파괴되고 분열된 인간의 세계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시키시고 통일시키려는 계획을 세우시고 당신의 주권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창세 전에 예정하시고 선택하셨다. 이러한 구원 계획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사건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죄에서 구속하셨으며,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하늘의 기업을 얻게 하셨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그들을 인 치심으로 구원의 확실한 보증이 되게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구원은 삼위 하나님의 역사의 결과이다.
그런데 삼위 하나님께서 이처럼 당신의 백성을 창세 전에 예정하시고 선택하시며 십자가에서 구속하심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그 무한하신 영광을 찬양케 하기 위함이다(6,12,14절; 시 100: 3; 113:3; 사 43:21; 계 5:12,13). 이러한 사실은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의 영광을 찬양하는 데 맞추어져야 함을 시사한다.
1:3 찬송하리로다 . - '찬송하리로다'(율로게토스)는 '칭찬하다', '찬양하다'. '축복하다'의 뜻을 가진 '율로게오'( )에서 유래된 말로 '칭찬받은', '축복받은', '찬양받을 만한'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본절에서 이 말은 단순히 '찬양받으실'의 뜻을 넘어 '찬양받으실 가치가 있는'의 뜻을 가지는데(Abbot), 이는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심을 시사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 '하늘에 속한'(에푸라니오스)은 '위에'의 뜻인 전치사 '에피'( )와 '하늘', '하늘 세계', '천국'을 뜻하는 '우라노스'( )의 합성어로 하나님의 축복의 장소를 나타낸다. 그리고 '신령한 복'은 하나님의 축복의 성격을 나타내는 말로, 그 의미는 다음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① 물질적인 구약 시대의 복에 대하여 신약 시대의 영적인 축복을 의미한다(Grotius, Chrysostom, Macknight). ➁ 성령을 통해 주시는 영적인 축복을 의미한다(Vincent, Alford, Clarke). 본장에서 사도 바울이 성부, 성자, 성령의 구속 사역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기록하고 있음을 볼 때 여기서의 '신령한 복'은 죄인의 구원과 관련된 복으로 보아 ②의 의견이 더 타당하다고 하겠다. 한편 그것들이 신령한 것은 영혼과 관계있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으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의 내재하심과 그 영향력을 행사하심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커다란 복인 것이다(Hodge). 이러한 '신령한 복'에는 '부활의 소망', '불멸의 약속', '천국의 약속' 등이 내재되어 있다(Theodoret).
우리에게 복 주시되. - '복 주시되'(율로게사스)는 '잘', ‘좋게’, '옳게'의 뜻을 지닌 헬라어 '유'( )와 '말씀', '진술'의 뜻을 지닌 '로고스'( )의 합성어인 '율로게오'( )의 제 1부정과거 능동태 분사로서 '칭찬하다', '축복하다', '찬양하다', '은총을 베풀다'의 의미를 갖는다. 한편 '찬송하리로다'(율로게토스)가 이 단어에서 유래된 사실에서 성도들의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은혜와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 수 있다.
1:4 본절에서 6절까지는 3절의 '신령한 복'의 구체적 내용을 설명한 것으로 그 유명한 예정 교리가 나타난다. 하나님의 예정과 관련하여 이 세 절이 함축하고 있는 내용을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예정의 근거: 하나님의 기쁘신 뜻(5절)
예정의 시기: 창세 전(4절)
예정의 방법: 그리스도 안에서(4절)
예정의 이유: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4절)
예정의 내용: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5절)
예정의 목적: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6절)
한편 예정 교리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그랜드 종합 교리 중 신론, '하나님의 예정' 관련 부분을 참조하라.
곧 창세 전에. - 하나님의 예정의 시기이다. 이 때는 모든 우주의 역사 이전으로 인간의 시간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의 때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죄인에 대한 선택의 때가 '창세 전'임을 밝힘으로 하나님의 선택의 은혜의 깊이와 그 넓이의 무한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 하나님의 예정의 방법이다. '그리스도 안에서'(엔 크리스토)는 바울 신학의 기본 전제요 핵심 사상을 나타내는 말로 그의 서신에서 164회나 사용되었고 본서에서만도 36회 이상 쓰여진 바울의 애용구이다. 본절에서는 바울의 구원론의 전제로서 이 구절이 사용되었다. 즉 하나님의 창세 전의 택하심의 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 안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죄인들은 구원의 복을 받게 된 것이다. 아울러 이 말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의 선재성(先在性)을 나타낸다(골 1:15,17). '그리스도 안에서'의 의미와 관련해서는 본장 자료노트를 참조하라.
우리를 택하사. - 여기서 '택하사'(엑셀렉사토)는 '선택하다', '고르다'는 뜻의 '에클레고'( )의 부정과거형 동사로, 하나님의 선택이 과거의 단회적 사건임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선택은 그의 주권에 의해 창세 전에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한편 '엑셀렉사토'는 예수께서 12제자를 선택하실 때(요 6:70; 13:18)와 가룟 유다를 대신할 자를 선택할 때(행 1:24)에도 사용되었는데, 결국 이 단어는 ① 많은 것 중의 택함과 ② 그와 아울러 많은 사람의 유기(遺棄)를 내포한다.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 하나님의 예정의 이유로, 그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① '도덕적 선'이라는 견해(Calvin, Alford, Abbot)와 ② '하나님 앞의 성결한 삶'이라는 견해(Zahn, Meyer)가 있으나 대체로 전자가 일반적인 견해이다. '거룩하고'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택한 적극적인 이유라면, '흠이 없게'는 소극적 이유라 할 것이다. 한편 '거룩하고 흠이 없게'라는 말이 이 세상에 사는 성도들의 완전한 의로움을 시사하지는 않는다. 성도들은 비록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의 은혜를 입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죄성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무흠하거나 무죄할 수 없다. 다만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운 자로 취급되는 것뿐이며 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 곧 종말에 이루어진다. 이 종국적인 완성이 바로 하나님의 선택의 이유인 것이다.
1:5 그 기쁘신 뜻대로. - 예정의 근거를 나타내 주는 말이다. 여기서 '기쁨'(유도키아)은 '좋은'(유)과 '의견'(도코스)의 합성어로 '선한 의지', '선한 기쁨', '즐거움', '소원'의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이러한 단어의 의미에 의해 이 말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하나님의 선한 의지, 즉 소망을 뜻한다는 것이며(Chrysostom, Calvin, Meyer, Alford), 둘째는 하나님의 즐거움, 즉 만족을 의미한다는 것이다(Beza, Harness). 그런데 이 두 가지 의견은 서로 대치된다기 보다는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의한 것은 또한 하나님께 기쁨과 만족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의지인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즉 하나님께 기쁨과 만족의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창 1:31).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의 예정이 사람의 그 무엇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서만 말미암은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를 예정하사. - '예정하다'(프로오리조)는 '전에', '먼', '앞서서' 등을 의미하는 헬라어 '프로'( )와 '결정하다', '확정하다', '경계를 짓다' 등을 의미하는 '호리조'( )의 합성어로 '미리 결정하다', '~의 운명을 미리 정하다'의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본문에서는 이 말을 부정과거형 분사로 사용함으로써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예정이 단회적 사건이며 그 결과가 계속적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 예정은 하나님의 선택의 근거가 되며 논리적으로 선택보다 앞선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에서 이루어진 선택과 예정의 사건은 시간적으로는 우선순위를 생각할 수 없으며 같은 일의 표리(表裏)와도 같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 예정의 내용이다. '아들 되게 하다'(회오데시아)는 법정 용어로, 양가 입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양자 입양에 비유한 것은 당시 로마법을 반영한 것으로, 로마법에 의하면 양자는 중인을 통하여 한 가족이 되고 참 아들과 같은 권리와 의무를 가졌다고 한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인으로 하여 우리를 양자로 삼으시고 아들의 특권과 의무를 주신 것이다. 따라서 성도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이며 성도들 각자에게는 다만 믿음이 요구될 뿐이다(요 1:12; 롬 8:15).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 4절의 '그리스도 안에서'(엔 크리스토)와 같은 뜻이다. 이처럼 바울은 하나님의 예정과 구원 교리를 언급하면서 계속해서 '말미암아', '안에서'의 전치사를 이용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의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 사상이 잘 드러난다.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 아무런 조건과 대가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의 특성을 보여 주는 말이다.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다. 예정의 종국적 목적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고 선택하신 이유는 우리로 거룩하고 흠 없게 하려는 것이지만 보다 궁극적인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영광을 찬미케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정은 신학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찬미의 대상임을 깨닫게 한다.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 '구속'(아플뤼트로시스)은 본래 노예들의 몸값을 지불하고 사서 해방시키는 것을 뜻하던 말이다. 이것이 성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므로 그들을 죄와 하나님의 진노에서 해방시키신 사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고전 6:20; 7:23). 한편 본절은 이러한 구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동기는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이고 그 방법은 '그리스도의 피'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1: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 본절과 관련해서는 ① 복음의 일반적 별칭(Calvin, Beza), ②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을 때 오는 선물(Bengel, Meyer), ③ 하나님의 속성(Grotius, Afford)이라는 견해가 있다. 문맥상 ①②의 견해가 합당하다. 한편 '지혜'(소피아)와 '총명'(프로네시스)의 차이에 대해서는 '지혜'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관련된 것을 가리키며 '총명'은 인간 생활과 관련된 것이라는 견해(Pillo)와, '지혜'는 사물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지식이고 '총명'은 지혜의 속성 또는 결과를 가리킨다는 견해(Vincent)가 있는데 이 두 가지를 엄밀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하여튼 성도들에게는 지혜와 총명이 넘치게 주어지는데 바로 이러한 지혜와 총명으로 세상의 역경과 시험을 견디며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게 된다(9절).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 '넘치게 하다'(페릿슈오)는 '풍부한', '지나는'의 뜻을 가진 '페릿소스'( )에서 유래된 말로 '풍부하다', '넉넉하다'의 뜻으로 사용되어진다. 본문에서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성령의 지혜와 총명이 성도들을 구원하고 성화시키는 데 충분함을 묘사하고 있다.
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 '비밀'(뮈스테리온)은 '비법을 전수하다',
'비밀을 전하다'의 뜻을 가진 '뮈에오( )에서 유래된 말로 '신비' 또는 '비밀교리'를 가리킨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는 명확하게 계시하시지 않았다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계시하신 그의 구원 계획을 의미한다. 바울은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만물의 통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10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 여기서 '경륜'(오이코노미아)이라는 말은 '청지기가 되다', '관리하다'의 뜻을 가진 '오이코노메오'( )에서 유래된 말로 문자적으로는 '청지기직'을 가리키나, 일반적으로는 '관리', '경영', '행정'을 뜻한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구속 역사를 계획하고 진행하시는 것을 뜻한다. 한편 여기서 '때'(카이로스)는 어떤 결정적인 순간을 나타내는 말로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成肉身)으로 인류 구속의 대업이 실현된 때를 가리킨다(갈 4:4). 그 때를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이 어떤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구원 계획의 성취임을 보여 준다.
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 본절에 대해서는 ① 유대인과 이방인(Locke, Koppe), ➁ 구약시대 성도와 신약 시대 성도(Beza, Flatt), ③ 하늘의 천사와 땅의 사람의 영(Chrysostom, Origen)을 가리킨다는 해석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을 어떤 특정한 것으로 보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범우주적이고 영 ․ 육을 포함한 구속의 광대한 범위를 가리킨다고 봄이 좋다.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 '통일되게 하다'(아나케팔라이오마이)는 '머리', '두목'을 뜻하는 '케팔레'( )에서 유래된 말로 '모으다', '요약하다'의 뜻을 갖는다. 즉 다양한 것을 한 머리 아래 다시 하나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Barth, Robinson, Abbott). 본문에서 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아래 조화롭게 창조되었으나 죄로 말미암아 혼란하게 된 세계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죄의 영향을 제거하고 그리스도 아래로 모든 것을 모아 조화롭게 회복시키는 구속 사역을 의미한다.
1: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 '기업이 되었으니'(에클레로데멘)는 '기업을 얻다', '제비를 뽑다'의 뜻을 가진 '클레로오'( )의 단순과거 수동태로 '제비뽑아 결정하다', '제비뽑아 얻다', '몫을 받다'는 의미가 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비뽑아 가나안 땅을 분배받은 것을 의미했으나(민 34:14; 신 3:18; 15:4), 신약에서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천국 기업을 받게됨을 의미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런데 성도들이 구원받아 천국 기업을 받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을 은혜의 선물로 주셨듯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의한 것이다. 이는 본 구절이 수동태로 되어있다는 사실에서 더욱 분명해 진다. 이처럼 예정 교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강조하는 데서 출발한다.
1: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 여기서 '우리'를 13절의 '너희'와 대조되는 것으로 보아 '우리'를 유대인으로, '너희'를 이방인으로 보기도 하나(Wetstein, Harness) 14절과 연계해 볼 때 단지 저자와 독자의 구별을 위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Zahn, Salmond). 그리고 '전부터 바라던'에 대해서도 이방인에 앞선 유대인들의 메시야 대망 사상에 대한 언급으로 보는 견해(Beza, Grotius, Bengel)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을 가리킨다는 견해(De Wette)가 있으나, '우리'가 성도들을 차이 없이 통칭한 것으로 본다면 이 말은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 그의 기업을 얻게 된 성도들이 그것이 실현되기 전부터 소망 가운데 사는 것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믿어. -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의 구원에 이르는 과정이다. 즉 인간은 복음을 듣고 그것을 믿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롬 10:14; 갈 3:2). 한편 복음이 '진리의 말씀'이 되는 것은 구약이 예시하는 실제이자 이방 종교의 사술과 달리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으니. -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부터 누차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사 32:15; 44:3; 겔 36:26; 욜 2:28; 슥 12:10), 그리스도께서도 이를 거듭 확증하셨다(요 7:39; 14:16). 그러한 약속에 따라 성령께서는 예수의 승천 이후에 강림하셨다(행 2:1-4). 한편 여기서 '인 치심을 받았으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스프라기스데테'( )는 '봉인', '도장', '인장'의 뜻을 가진 '스프라기스'( )에서 유래된 '스프라기조'(인치다, 증명하다, 봉인하다)의 수동형이다. 그런데 인 치는 것은 보통 ① 문서의 진실성을 보존하거나(에 3:12) ② 자기의 소유권을 표시하기 위한 조치로(아 8:6)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소유로 표시하신 것을 가리킨다. 유대인은 할례로써 선민의 표식을 삼았고 이방인들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기호를 몸에 표지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눈에 보이는 육신이 아닌 보이지 않는 마음에 성령으로 하나님의 소유가 된 표지를 받는다(롬 8:16; 요일 3:14). 실로 성령의 내주는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표식이며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성령의 내주하심의 외적 표지로 세례를 받는다(Foulkes).
1:14 이는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사. - '보증'(알라본)은 고대의 상업적 계약 문서에서 '최초의 분할 불입금', '담보', '보증금', '공탁금' 등을 의미하던 말로 본문에서는 보증금이 보증하는 것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그것의 첫 부분인 것같이 성도 안에 내주하는 성령은 성도들의 천국 기업, 즉 구원의 보증이 되사 성도들이 미래에 받을 완전한 구원을 오늘날 미리 맛보게 하신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편 성령이 구원의 보증이 되시는 이유에 대해서는 고후 5:5주석을 참조하라.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 여기서 '얻으신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리포이에시스'( )는 본래 '남은 것'을 의미했으나 점차 '취득한 것', '소유한 것'을 뜻하게 되었는데, 여기서는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의 소유주로서 장차 그들을 완전히 구속하사 영화롭게 하시며 그들로 당신의 영광을 찬미케 하실 것이다.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 바울은 삼위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노래하며 성부의 구속 계획(3-6절), 성자의 구속 성취(7-12절), 성령의 구속 적용(13-14절)의 각각의 마지막 절(6,12,14절)에서 하나님의 구속의 궁극적인 목적 이 구속받은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함임을 강조하고 있다.
1:15-23 성도들의 영적 성숙을 위한 바울의 중보기도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언급하기에 앞서 그 서론격으로 교회의 구성원들인 성도의 구원을 위한 삼위 일체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해 찬미한 바울(3-14절)은 이제 본문에서 자신의 관심을 구원의 수혜자(受惠者)인 에베소 교인들에게 돌려 그들을 위한 기도를 한다.
이러한 본문을 보면 바울은 먼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와 이웃을 향한 신실한 믿음과 사랑의 실천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감사해 마지 않는다(15,16절). 그리고 곧이어 바울은 ① 구원자이신 하나님(17절)과 ➁ 성도들이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과 성도들에게 주어진 축복 약속(20-23절)에 관하여 성도 각자가 영적으로 통찰할 수 있기를 간구한 것이다.
한편 이러한 본문은 우리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한다.
①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비밀을 온전히 아는 지식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지혜 와 계시의 성령을 통해 얻은 영적 통찰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성도는 이러한 영적 통찰력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➁ 성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됨으로 주님의 영광스런 통치에 참여하게 된다.
1:15 이를 인하여. - 이 구절을 13,14절을 받는 것으로 보기도 하나(Eadie, Meyer) 3-14절의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한 찬양 전체를 받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Chrysostom, Harless). 즉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의 사랑과 믿음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았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 성도들의 사랑과 믿음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입은 표시요 증거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성도들에 대한 사랑은 신앙의 수직적 관계와 수평적 관계로서 신앙인에게 필수적이며 상호 보완적인 것들이다. 즉 성도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하며 이웃에 대한 사랑도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랑에 근거한 것이다. 이러한 믿음과 사랑의 원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밝히 보여진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이러한 성숙한 신앙으로 인해 기뻐하며 감사하고 있는데 오늘의 모든 성도들도 이러한 신앙생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할 것이다.
1:16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 감사와 기도는 바울 서신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특색이다(롬 1:8,9; 빌 1:3,4; 골 1:3,9; 살전 1:2; 살후 1:3,11). 여기서 '말하노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므네이안 포이우메노스'( )는 '밝힌다'는 뜻으로, 바울이 에베소 교회와 거기에 속해 있는 개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한 사실을 가리킨다(Wood). 실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신앙과 사랑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였으며(15절), 그들의 신앙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성도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이다(17-19절). 이러한 감사와 기도는 신앙인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두 요소라 할 수 있다. 감사 없는 기도는 원망에 지나지 않으며 기도 없는 감사 역시 무의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17 본절에서부터 19절까지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 한 기도의 내용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 '정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 )는 '바람이 불다', '숨을 쉬다'라는 의미의 동사 '프네오'( )에서 유래된 말로 '바람' '영', '성령'의 뜻을 갖는다. 그런데 혹자는 본절의 '프뉴마'를 관사가 없다는 이유로 사람의 정신으로 해석하기도 하나(Chrysostom, Theodoret, De Wette) 지혜와 계시를 주시는 '성령'으로 해석하는 것이 본문의 문맥상 적합하다(Ellicott, Meyer, Vincent). 한편 '지혜'와 '계시'는 성령의 역사의 특별하신 방법으로 '지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사역을 이해하는 일반적인 이해력을 나타내며, '계시'는 하나님의 비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나타내 보이신 모든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 여기서의 '알다'(에피기노스코)는 '위에'를 의미하는 '에피'( )와 '알게 되다', '인식하다', '이해하다'라는 의미의 '기노스코'( )의 합성어로 '정확히 알다', '충분히 이해하다'의 뜻을 지닌다. 이 단어는 바울의 옥중 서신서에서 자주 나타나는데(19절; 엡 3:10; 4:13; 빌 1:9). 어떤 피상적 지식이 아니라 경험된 지식으로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로 얻게 되는 구체적인 지식을 가리킨다. 즉 성도들은 하나님에서 보내신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모든 구속의 비밀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고전 2:6-16).
1:18 본절과 다음절은 에베소 교회를 위한 바울의 두 번째 기도 내용이다. 여기서 바울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에베소 성도들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 세 가지 사항을 깨닫게 되기를 기도한다.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 여기서 '밝히사'(페포티스메누스)는 '빛'에 해당하는 '포스'( )에서 유래된 '포티조'(비추다, 조명하다)의 완료분사 수동형이다. 그리고 '마음 눈'은 '육의 눈'과 대조하여 아담의 범죄로 타락하여 어두워진 인간의 영적 안목을 가리킨다. 즉 바울은 인간의 어두워진 마음에(롬 1:21) 하나님께서 빛을 비추어 에베소 교인들이 영의 일을 분별할 수 있도록 기도했는데, 이는 어두운 곳에 '빛이 있으라'(창 1:3)하신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비교하여 죄로 어두운 인간의 마음에 빛을 비취시는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을 염두에 둔 말이다(고후 4:6; 벧전 2:9). 한편 앞절의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와 본 구절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전자가 객관적이 라면 후자는 주관적으로 같은 하나님의 사역을 묘사한 것이다.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 깨닫게 되기를 기도한 것의 첫 번째 것이다. 하나님에 의해 예정되고 선택되어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영광스런 소망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그들의 구원이 완성되고 만물이 주 안에서 통일됨으로 그들 또한 영화롭게 되는 것이다(롬 8:30). 아마도 에베소 교인들은 성도들이 필히 갖추어야 할 세 덕목(고전 13:13) 가운데 믿음과 사랑은 갖추었으나 (15절) 소망은 아직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Hendriksect).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 깨닫게 되기를 기도한 것의 두 번째 것이다. 이는 첫 번째인 '소망'의 구체적인 설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편 여기서 '그 기업'에 대해서는 ①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차지할 기업이라는 견해(Stott, Hendriksen)와 ② 성도들로 구성된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견해(Zahn, Stier)가 있다. 대체로 전자가 많은 지지를 받고 있으나 후자의 견해도 고려할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기업을 차지하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께 소유되어 그의 기업이 되는 것 또한 큰 소망이요 영광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1: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 깨닫게 되기를 기도한 것의 세 번째 것이다. 즉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하나님의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알게 하시기를 구하였는데 이 하나님의 능력은 구체적으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부활의 능력이다(20절; 롬 8:11). 한편 바울은 본절에서 동의어를 중첩하여 사용함으로 장엄하고도 강력한 표현법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데 각각의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힘'(이스휘스): 내적이며 본질적인 힘, ② '강력'(크라토스): ' 정복하는 힘, ③ '역사'(에네르게이아): 신적이며, 초인간적인 힘이나 강력이 실제에 역사하는 효과적인 힘, ④ '능력'(뒤나미스): 능력적 견지에서 본 힘.
1:20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베푸시는 능력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신 그 능력임을 보여 준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부의 역사(행 2:24)인 동시에 성자 자신의 권세에 의한 것이었으며(요 10:18), 또한 성령의 역사의 결과로(롬 8:11), 기독교의 기본적인 신앙 고백이자 핵심적 교리이다(행 2:32-35; 롬 8:34).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음으로 그와 연합된 신자들에게 실제적으로 적용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 백성들의 미래의 부활의 첫 열매일 뿐 아니라(고전 15:20,23) 현재의 삶 속에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는 능력이 된다(롬 6:4). 그리고 성도 안에 내주하는 성령은 그들의 미래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날마다 죽은 것과 같이 그와 함께 살아나 새 생명을 얻게될 힘을 제공한다(롬 6:6-11; 8:12-14; 골 2:20; 3:1).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 시 110:1의 반영이다. 여기서 '자기의 오른편'이란 성부의 보좌 우편으로, 성부의 보좌와 나란히 있는 최고의 위치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는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으로, 본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우주 만물의 통치자로 삼으신 것을 가리킨다.
1:21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 여기에 나타나는 명칭은 성경에서 선한 천사나 악한 천사를 구분하지 않고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천사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롬 8:38; 고전 15:24; 골 1:16). 혹자는 여기에 나타나는 명칭이 천사의 직급을 나타낸 것으로 높은 데서 낮은 데로의 순서를 나타내고 있다고 주장한다(Meyer). 하지만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없다. 다만 바울은 그리스도가 이 모든 것 위에 초월해 계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에베소를 수도로 하고 있던 소아시아 지역은 천사숭배가 횡행했었는바(골 2:18) 바울은 이를 염두에 두고 경배 받으실 분은 오직 그리스도뿐이시며, 천사들은 그리스도의 주관 아래 있음을 강조한 듯하다.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준으로 대칭되는 두 세대를 지칭한다. 그리스도는 바로 이 두 세대 모두에서 진정한 '주'가 되신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권세자들과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세대와 사람들의 주관자가 되심을 강조한 표현이다. 실로 그리스도는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시요, 죄로 오염된 만물을 회복시키실 재창조의 구속주시며 마지막 날의 심판주로 오실 영원하신 왕이시다(골 1:15-18).
1:22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 본 구절은 시 8:6을 인용한 것이다. 시 8편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고 통치하게 하심에 대해 노래한 것인데(창 1:26-28) 이를 바울이 둘째 아담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고전 15:27; 히 2:6-9). 고전 15:24-28에서는 시 8:6의 말씀이 시 110:1의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는 말씀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즉 인간의 타락으로 피조물을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놓았던 것을 그리스도께서 구속 곧 회복시키시어 만물이 그리스도 발아래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 바울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비유한다. 그런데 머리는 몸을 지배하며 통제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인이심을 의미한다(Foulkes).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만물의 통치의 기관으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만물을 지배한다(계 20:4,6). 이와 같이 본절은 그리스도-교회-만물로 연결되는 교회론의 웅장한 사상을 보여 주는데, 이는 본서의 가장 큰 주제 중의 하나로 엡 2:11-3:21에서 상론되고 있다.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 본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고 있다. ① 그리스도는 교회에 의해 충만케 된다(Calvin, Hendriksen). ②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에 의해 충만케 된다(Stott, Wood). ③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그리스도 안에 영속적으로 거하신다(Blarikie). 이 가운데 ➁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실로 만물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충만(플레로마)으로서 그의 몸인 교회를 충만케 하신다(골 3:16). 그리스도와 교회는 단순한 통치와 복종의 관계가 아니라 내적인 연합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충만은 곧 그리스도의 충만인 것이다. 여기에 교회와 성도 각자의 존엄성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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