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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4. 비전중앙교회 주일 오전예배 설교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우려는 시대
요한복음 14장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5.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에 대하여 여러분이 많이 듣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듣는 이름이 예수라는 이름입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참 많이 듣기도 하고,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도 수없이 많이 듣습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래요, 많이 들으면 많이 아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자기가 많이 듣기 때문에 많이 아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그래서 심각하게 잘못된 생각으로 쉽게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이 듣는 것과 아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여러분이 여러 가지 많은 이야기들을 듣지 않습니까? 신앙생활이라는 게 오래 하다 보면, 자기가 예수님을 잘 믿는 것 같은 그런 착각이 들기 쉽습니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 ‘그래도 내가 이 정도 신앙생활을 했으니까, 좀 괜찮은 거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본능적으로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이 머릿속에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신앙은 길이가 아니고, 깊이다’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연륜과 상관이 없습니다. 몇십 년 믿은 것이 아니라, 깊이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만큼 신앙적인 바른 삶을 사는지와 신앙적인 바른 말씀으로 바르게 알고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신앙은 길이가 아니에요.
60, 70년 믿어도 잘못 믿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목회자라도 마찬가지예요. 보통 성도님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목사님 정도 되니까 아니면 또 교회 장로님 정도 되니까 성경을 많이 아시지 않겠나 하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반 성도님들보다는 조금 낫겠습니다만, 또 그렇지 않은 경우도 아주 많습니다. 알되 엉터리로 아는 경우도 부지기수로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지겹지 않고, 또 듣고 싶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쭉 보아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 같은데, 뭔가 이걸 표현해 말하려고 하면 또 이게 잘 안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하여 좀 더 알고, 그리고 또 주께서 하신 말씀의 원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면, 우리가 상당히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냥 읽어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내용이 꽤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역을 초기 사역, 중기 사역, 말기 사역, 이렇게 나누어 본다고 합시다. 여러분, 성경을 잘 보시면 예수님의 초기나 중기 사역에는 율법적인 내용에 관한 말씀들이 제법 많이 나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주님이 그렇게 의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적인 내용을 말씀하시면서 우회적으로 자기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안내하십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마태복음 5~7장의 산상보훈입니다. 예수님의 첫 강화, 첫 설교입니다. 이 내용을 보면, 전부 율법과 같은 내용이 많고 심지어 율법보다 더 강력한 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만큼, 성도들의 삶이나 율법적인 신앙의 행위를 더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은 ‘반석 위에 지어야 한다.’라고 말씀하면서 ‘반석인 그리스도 자신을 빼버리게 되면 아무 소용이 없다.’라는 것을 증명해 들어갑니다. 사실은 이렇다는 것을 우리가 봤을 때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주로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초기나 중기 사역은 율법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 반면, 말기 사역으로 가면 갈수록 그런 내용이 줄어듭니다. 줄어들면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고, 너희들이 구원받으려고 하면 반드시 나를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은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라는 이런 메시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 성경책이 바로 요한복음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마지막 한 달 정도의 사역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기록한 책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요한복음을 보면 ‘나는 누구다.’라는 내용이 많이 나와요. ‘나는 빛이다. 나는 진리다. 나는 생명이다. 나는 하나님이다. 하나님과 나는 하나다.’ 이런 형태의 메시지들이 굉장히 많이 나와요. 그래서 다른 복음서하고는 완전히 성격이 다릅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공관복음이라고 해요, 보는 관점이 비슷하다는 거죠. 그러나 요한복음은 제4 복음서라고 해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관점이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말기사역을, 그것도 마지막 한 달간의 사역을 집중적으로 기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자 참 인간이고, 그분이 아니면 일체 구원의 길이 없다.’라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믿으면 반드시 내가 너희들을 지켜주겠다. 나에게서 떨어져선 안 된다. 나를 끝까지 신뢰하고, 나를 믿고 따라와야 한다.’라고 하시는 말씀이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그렇게 우리가 예수님의 사역, 초기, 중기, 말기사역을 검토해갈 때,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를 지도하고 가르치셨는가’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은 습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요한복음 13장에서 16장, 네 장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그 날 밤과 하루 전날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13, 14, 15, 16장입니다. 이런 점을 우리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지금 ‘내일 예수님께서 죽으신다. 이제 제자들과 떨어져야 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거기 모여 있는 제자들에게,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교훈적 말씀, 어찌 보면 유언적 말씀에 귀 기울여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13장부터 쭉 읽어 갈 때는 주께서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그런 말씀이구나, 주님이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마지막으로 주셨을까, 이 땅에 계시면서 주신 마지막 말씀이거든요,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면서 보면 성경을 대하는 마음이 좀 달라집니다.
13장부터 그 내용이 나오는데, 13장에서 16장까지 보면 여러 많은 내용이 나오는 것 같아도 굉장히 단순해요. 일단 13장에서는 ‘서로 섬기고 사랑하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이제 가신단 말이에요, 그런데 다시 제자들 모습을 보니까 안타깝기 그지없는 거예요. 맨날 서로 싸우고, 뭔가 모르게 불안 불안하게 이렇게 살아왔단 말이에요. 그래서 한 3년 동안 이들과 같이 있으면서, 참 주님께서도 안타까운 모습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좀 섬겨줄 줄 알고, 좀 사랑할 줄 알고, 좀 이해할 줄 알고, 좀 서로 격려할 줄 아는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데, 제자들은 맨날 자기들끼리 툭 하면 싸운단 말이에요. 네가 잘났냐 내가 잘났냐, 내가 잘하니 네가 잘하니 이런 식으로 해온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서 주님이 좀 섬기면서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라고 하시는 겁니다. 좀 사랑하고 그래라.
13장에서 그렇게 ‘섬김과 사랑’에 대한 말씀을 하셨고, 14장에서는 이제 주님이 떠나가잖아요, 그래서 뭘 말씀하셔야겠습니까? ‘근심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아라.’ 14장 1절부터 ‘근심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아라’ 하시면서, 14장에서 처음으로 ‘이제부터는 너희들이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 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기도하지 않았고 거의 다 하나님 앞에만 기도했는데, 이제부터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라’라고 14장에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다른 교회에 가서 가끔 설교나 강의를 할 때 이런 걸 물어봅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우리가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기도하는데, 왜 그렇게 하는지 아시는 성도님 계시면 손 한 번 들어보세요.” 그러면 거의 다 서로 돌아봐요. 왜 돌아봐요, 옆의 사람은. 보면 거의 모릅니다. 왜 내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는지 이것 자체를 모르고 지금 기도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 기도가 능력이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쭉 기도해 오면서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했는데, 우리가 왜 그렇게 기도합니까? 그렇게 안 해도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기도하다가 대충 마무리되는 것 같다 싶으면 ‘아멘’ 하면 따라 ‘아멘’ 하면 되지, 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합니까?” 이걸 물어보는 거예요. 사실 이거 아는 분들이 거의 없어요. 여러분, 거짓말인가 한번 물어보라고요, 다른 사람한테.
그러면 이제 그때부터 자기 해석이 막 나옵니다. 이래서 이렇다, 저래서 저렇다, 이래서 이렇지 않느냐, 저래서 저렇지 않느냐,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거든요. 이렇게 자기 해석이 나오게 되면, 자칫 잘못하면 이단이 되어버립니다. 이단적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요.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 굉장히 조심해야 할 것이 자기 생각을 넣으면 위험하다는 겁니다. 물론 자기 생각이나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더해서 강화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매우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모르면 자꾸 자기 생각을 넣는 거예요. 자기 생각을 넣어서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하는데. 다행히 이것이 문맥이나 상황으로 봐서 맞으면 돼요, 맞으면 또 특별하게 문제가 안 되는 이런 것은 괜찮은데. 문제가 되는 것들은 위험합니다. 굉장히 위험하거든요.
그래서 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냐 하면, 주님이 그렇게 하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게 요한복음 14장에 한 번 나오고, 16장에 한 번 나옵니다. “이제까지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지금부터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들이 받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하는 기도, 이걸 이제 주님 앞에 하라는 거예요. 자기 이름으로 하라는 겁니다. 그래야 응답 된다는 겁니다. 이걸 모르고,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도 모르고,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되는지도 모르고 기도했다면, 이건 응답 자체가 굉장히 애매합니다. 응답이 잘 안 올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 이제는 이걸 잘 아셔야 합니다.
14장에서 ‘내 이름으로 그렇게 구하라’는 이 말씀을 하셨고, 15장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서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면 죽으니까 너희는 절대 예수님께 붙어있어라.” 포도나무는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하거든요, 15장에서 ‘그리스도에게 반드시 붙어있어라’ 하는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절대적으로 붙어있어야 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리스도 없으면 나는 죽은 목숨이다’ 생각하며 가셔야 해요. 예수님께서 15장에 포도나무 비유를 하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시고 난 뒤에, 새 계명을 주십니다.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이 뭐냐면, 13장에서 말씀하셨던 ‘서로 사랑하라’라는 계명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라는 계명이에요.
여러분, 지금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성령께서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해 주십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하나님 주신 새 계명, 주님 주신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 이 말씀을 실천하거나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너무 훌륭한 주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지금 머릿속에 사랑보다는 여러 가지로 조금 밉고 싫고 관계가 안 좋은 사람들이 많이 생각난다면, 그런 마음을 빨리 없애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신 이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를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왜 이렇게 하겠어요? 하나님도 사랑이고 주님도 사랑이거든. 하나님의 원 모습이 사랑이에요. 그분의 본질이 사랑 자체라고. 그래서 제자들이 서로 싸우고 네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내가 옳니, 네가 틀렸니, 이러는 걸 보니까 주님이 너무 가슴이 아픈 거야. 그래서 이제 새 계명을 주면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15장에서 하신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제 떠나가잖아요, 떠나가면 제자들이 얼마나 상심하고 낙심하겠습니까?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가더라도 걱정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보혜사 성령께서 오실 것이다. 성령이 오셔서 너희들을 계속 인도해 갈 것이다.’라는 말씀을 16장에서 주십니다. 그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이 뭐냐? ‘담대하라’ 그 이야기를 합니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으니 너희도 담대하라.’ ‘그래서 세상과 싸워서 이기라’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하신 겁니다. 그렇게 하시고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시고, 그리고 17장에는 ‘대제사장의 기도’가 쭉 나오는데 그분의 기도를 보면 전부 우리를 위한 기도입니다. 전부 우리를 위한 기도예요. 그 기도를 하시고 난 뒤에, 18장부터 마지막 장까지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 쭉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 오늘 14장의 위치가 어떻게 되는지 아시겠죠? 위로와 평안을 빌면서 그리고 오늘 본문 1절에서 6절까지의 내용이 나옵니다. 이 말씀과 지금 이 시대를 대조하여 저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우려는 시대’라는 설교 제목을 잡았습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자꾸 지우는 시대에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운다는 의미는 무엇이냐? 예수님을 똑바로 알지 못하도록 그렇게 덫을 놓는 시대,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도록 희미하게 만들어가는 이런 시대에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많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어떤 그리스도가 지워지고 있느냐 하면은, 그리스도의 유일성, 즉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라는 이 사실을 지워가고 있어요. 아주 빠른 속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즉 그분이 우리의 유일한 메시야이고 유일한 구세주라는 이 사실을 지워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이미 유럽 교회는 거의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미국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교회도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25년 동안, 최근 약 25년 동안에 크리스찬 수가, 교회에 나가는 성도 수가 4천만 명 줄었습니다. 우리나라 인구와 비슷하죠. 그리고 다원주의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 80%가 넘습니다. 그러면 올바른 그리스도인은 한 20%도 안 된다는 결론이 나와요. 굉장히 무서운 데이터가 지금 나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2년 전만 하더라도 1,200만 기독 성도라고 목사님들이 기도하고, 성도들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작년 조사에서 우리 크리스찬들의 비율이 약 17% 정도로 나타났습니다. 17% 같으면 4천만을 기준으로 하면 680만 명입니다. 680만 명밖에 안 돼요. 그런데 이 680만 명 가운데서 가나안 성도가 250만 정도 됩니다. 이거는 교회를 안 나가, ‘안 나가’ 거꾸로 하면 ‘가나안’ 되거든요. 신앙생활은 하기는 하는데 교회를 안 나가는 가나안 성도 숫자가 약 250만 명이 될 정도로 굉장히 심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250만 명 정도 일단 교회에 안 나오는 성도도 빼버리면 순수하게 교회에 나오는 성도는 한 430만 정도 된다고 봅니다. 2년 전에 1,200만, 1,200만 하던 이야기가 불과 몇 년 사이에 500만도 안 될 정도의 숫자로 이렇게 전락이 됐습니다. 이건 지금 나와 있는 데이터예요, 제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고.
그리고 이것까진 좋습니다. 430만 명 정도로, 그리고 가나안 성도까지 합치면 6, 7백만 명은 안 되겠나 생각을 할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작년에 우리 성도들의 의식에 대한 조사를 몇 가지 쭉 했어요. 그중에 어떤 조사를 했냐면, 다원주의적 사고, 쉽게 말하면 그리스도 외에 구원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설문 조사를 해봤습니다. 충격적인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세주라고 인정한 사람이 30%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러면 약 70%가 뭐다? 다원주의자라는 통계가 지금 나와 있어요. 이게 몇 년 전만 해도 한 50%, 50%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비등비등하게 갔는데 불과 몇 년 사이에 한 20% 정도 늘어나 버렸습니다.
이런 다원주의적 사고를 가졌다는 무서운 데이터가 나와 있는데, 그렇다면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더라도 약 70%는 가짜라는 겁니다. 70%는 가짜라는 이야기예요, 이렇게 보면. 그러면 지금 여러분들 가운데서 ‘다원주의가 뭔가?’ 하는 생각이 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다원주의’라는 것은 뭐냐 하면, 예수 믿어도 구원받고, 아니면 불교의 부처를 믿어도 구원받고, 아니면 무슬림의 알라를 믿어도 구원받고, 자기들이 믿는 신앙의 어떤 신이라도 믿게 되면 그 신이 그들을 구원해 준다는 사고예요. 어떻게 생각을 해보면, 이게 굉장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입니다. 그 종교 믿으면 그 종교의 신이 그렇게 해 주는 거 아니냐, 그렇게 하는 거 아니냐, 당연한 거 아니냐 생각하기 쉬운데, 사람들이 논리적이면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보니 오늘날 MZ세대뿐만 아니라 그리고 수많은 기성세대들도 이 사회의 현상에 동조해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그런 것들을 따라가려고 하고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지금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세주이고 그분 외에는 하나님의 나라에, 즉 천국으로 인도할 분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 사실을 실제로 받아들여서 믿는 성도들이 많지 않다는 겁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도 한 30%밖에 안 된다면, 저는 하나님 앞에 곤장을 맞아도 진짜 수십 대 맞고 수백 대 맞아야 해요. 잘못 지도했으니까, 잘못 가르쳤으니까. 그리스도 외에도 구원이 있다는 이것은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에요. 모든 종교에서 다 그렇게 가르쳐요. 결국은 모든 종교를 포용하고 함께하자는 이 사고가 다원주의적 사고에서 나오는 거예요. 여기에서 종교통합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런 상태로 가면 몇 년 안에 종교통합이 쉽게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다원주의를 인정하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말로는 그리스도를 말하고 예수님 예수님 하지만, 다원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다원주의를 인정하게 되면 그는 올바른 그리스도인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메시야이고 구원자라는 이 가르침이 나에게 없고, 예수님 외에도 여러 많은 종교는 그 종교 나름대로 구원의 길이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되면, 그 사람은 성경을 안 믿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그런 구원자 중의 한 명으로 자기가 생각하면, 그래서 교회에 나와서 그분을 믿으면 우리는 우리대로 구원받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하면, 이렇게 하면서 여러 많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이런 사고를 하기 때문에, 성경에서 계시하고 안내하는 대로 올바른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는 겁니다. 아무리 교회 다니고 헌금을 하고, 아무리 하나님 부르고 찬양하고, 무슨 찬양 집회를 해서 ‘하나님께 영광’ 하지만 그건 전부 가짜입니다. 그런 사고를 갖고, 그따위 식으로 하는 것은 다 가짜예요.
그래서 우리가 만약에 이런 다원주의적 사고를 하는 숫자까지 빼버려서 그리스도인을 계산한다면, 지금 그리스도인은 200만도 안 된다는 이야기예요. 지금 이런 다원주의적 사고의 확산이 여기에서 스톱 하면 그 정도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급속도로 빠르게 일반 사람들에게 그대로 파고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젊은 사람들, 10대, 20대, 30대, 40대 이런 사람들의 사고가 거의 다원주의식으로 다 돌아서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라면서 여러 가지 학문과 공부를 통하여 머리가 그렇게 바뀌어 가는 겁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포용하고 수용하려는 것, 그래서 남들이 인정하고, 남들이 그렇다 하는 여기에 관대해지는 겁니다. 민주주의, 다수결 이런 식으로 하면서 포용하려고 하는 이런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것을 먼저 잘 알고 난 뒤에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한번 살펴보면서, 얼마나 우리가 귀한 존재이고 얼마나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인가를 느끼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열심히 믿음 생활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일단 1~3절에 먼저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듯이, 또 나를 믿으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를 위해서 ‘천국에 너희들의 처소를 반드시 만들 것이다’라고 주님이 이야기하셔요.
그게 1절에서 3절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랬습니다.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과 나를 확실히 믿어라. 절대 나를 믿는 것에 대하여 다른 생각하지 말고, 딱 믿어라. 내가 잠시 떠난다. 잠시 떠나는데, 이 떠나 있는 동안에 너희들을 위한 집을 내가 마련하겠다.’ 그랬어요. 누구를 위한 집이냐면, ‘너희들’을 위한 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집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는 곳이에요.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주님이 집을 마련한다 했지, 다른 것 때문에 마련한다고 한 게 아니에요.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겁니다. 주님이 마련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마련하는 겁니까? 아니잖아요.
많은 분들은 자기가 어떻게 노력을 해서 천국의 처소를 마련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천국의 처소를 마련하시는 분은 주님밖에 없어요. 그리고 다른 힘이 전혀 필요 없습니다. 오직 주님 한 분만이 그 일을 하셨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시는데, 자기에게 올 수 있는 자, 즉 다시 말하면 자기가 만들어놓은 이 처소에 올 수 있는 자가 어떤 자인지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게 한두 번 나오는 말씀이 아닌데, 그렇기 때문에 처소를 예비하면 여기에 갈 수 있는 자에 대해서 주님께서 분명하게 딱 결론적으로 말씀합니다. 6절이죠, “예수님이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그다음 말이 중요합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여기서 길이라는 것은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말합니다.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하나의 길을 말하는 것이지, 여러 길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딱 하나의 그 길. 그래서 영어에는 정관사 ‘the’가 있어요. “I am the way”예요. 유일한 길이다, 다른 게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이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는 유일한 진리이고, 예수님이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는 것이 14장 6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주님만이 그렇게 할 수 있으므로, 자기를 거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갈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예수님이 직접 못 박고 있습니다. 이 이상 분명한 말씀이 없어요.
여러분, 보십시오. 모든 종교는 비슷하게 다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우리 종교를 믿으면 다 좋은 데 간다, 열심히 믿으면 간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우리 기독교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아요.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절대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분을 통해서만, 그분을 믿어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간다는 그런 이야기죠.
이런 내용에 대해서 어떤 분들은 “기독교가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냐? 너희들의 독선 아니냐? 자기밖에 모르는 그런 종교 아니냐?”라는 말을 하는데, 그건 그분들이 우리 기독교를 오해해서 그렇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핵심 교리가 바로 이겁니다. 이거예요. 이것 때문에 기독교가 존재하는 겁니다. 이게 사라지면 기독교가 무너집니다. 기독교로서 가치가 없다는 거예요. 이것은 이기적이니, 독선이니, 배타적이니 이런 차원이 아니라, 기독교가 기독교 되도록 만드는, 그리고 유일한 진리의 종교가 기독교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그런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세상 종교에는 공통점이 있어요. 우리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모든 종교의 공통점은 자기가 노력을 하고 애를 써야 좋은 곳으로 간다고 가르치는 겁니다. 그래서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든 회교든 어떤 종교든지 간에 다 노력을 해야 돼요. 자기가 믿는 어떤 신의 좋은 나라로 가려고 하면 자기도 그만큼 희생을 하고 노력을 하고 가려고 막 애를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에는 많은 인간적인 희생이나 노력이나 심지어는 자기 자식까지도 바칩니다. 예전에는 그런 형태가 많았어요. 지금도 자기 자식을 바치는 비밀 사탄 밀교들이 있습니다. 어린애를 잡아다가 죽이고 자기 신에게 바치는 인신제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어요. 왜 그렇게 하느냐? 이 땅에서 자기들의 신에게 복을 받고, 그 신이 만들어놓은 좋은 곳에 가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종교는 똑같아요. 자기들이 노력을 해서 좋은 곳으로 가려고 하는 겁니다. 이 좋은 곳으로 가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몰라요, 여러 많은 것들이 있지만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 기독교는 이게 정반대로 되어 있어요.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이 노력해서 가는 곳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러분들이 노력해서 가는 곳이 아니에요. “내가 이렇게 믿음 생활하고 기도하고, 그리고 내가 하나님 앞에 헌금하고 봉사하고 이래서 내가 하나님 나라 가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한다면, 이 생각을 완전히 깨야 합니다. 다 깨야 해요. 하나님의 나라는 여러분들이나 제가, 인간들이 노력해서 가도록 만든 곳이 아니에요. 그러면 세상 종교와 똑같잖아요, 우리가 세상 종교와 똑같잖아요. 그런데 이게 정반대로 되어 있어요.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힘으로는 갈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십니다. 왜 그러냐면, 하나님의 나라는 죄가 없는 거룩하고 깨끗한 나라입니다. 여기에 죄 있는 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신단 말이에요. 그러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죄 안 짓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죄를 짓고 살아가잖아요. 이번 한 주간에도 여러분들이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습니까? 그렇게 죄를 짓고 여러분이 살아왔단 말이에요. 그래도 이번 주간에 내가 뭔가 좀 거룩하게 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면, 그게 바로 죄라고. 사실은 인간은요, 의도하든 않든 자신도 모르게 본능에 의해서 짓는 죄들이 수도 없이 많아요. 인간이 하루에 생각하는 게 한 3만 가지 정도 된다고 하는데, 그건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학자들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3만 가지의 생각 가운데 죄를 짓지 않은 생각이 하나라도 있다고 여러분이 말할 수 있겠습니까? 보통 사람들은 사람의 드러난 어떤 행위를 가지고 죄라 그러는데, 그건 사람들이 평가하는 거지요. 하나님은 생각과 마음의 죄까지 다 봅니다. 네가 어떤 마음을 먹었다, 어떤 생각을 했다, 이것까지 전부 다 죄로 규정하는 게 하나님의 법이에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 누가 갈 수 있겠습니까? 죄 안 짓는 인간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누가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겠어요? 하나님이 그걸 아신단 말입니다.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없이 할 수 있는, 용서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셨어요. 그게 뭐냐? 하나님이 직접 오셔야 돼요. 직접 오셔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까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의 몸을 입고 인간으로서 오신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부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성자가 됐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하나님은 세 분이 계세요.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신데, 이 세 분은 똑같은 힘과 능력과 권력을 갖고 있고, 세 분인데 한 분처럼 움직이면서 활동하시는 분입니다. 이걸 삼위일체라고 하는데, 인간의 머리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는 방법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제물이 필요한데,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 이 제물이 된 겁니다. 자기가 제물이 되어서, 우리의 죄를 사라지고 없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받도록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 모든 죄가 자기로 인해서 다 용서받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 용서를 받아야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는데, 죄 용서를 받게 하는 물이 하나 있어요. 그 물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라는 피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었기 때문에 이게 통과되면 우리의 죄가 다 용서받습니다. 다 용서받아요. 예수님이 이걸 아신단 말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직접 죽으셔서, 그 피를 믿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해 주겠다고 약속하신 성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은 자기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주님은 자기 자녀들의 모든 죄를 전부 전가 받아서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었으나 그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는 겁니다. 용서를 받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천국에 지금의 몸 이대로 가면 똑같지 않습니까?’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맞습니다. 지금 몸 이대로 가면 똑같으니, 우리가 천국에 가면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우리를 완전히 바꿔 버립니다. 완전히 바꿔 버려요. 주님이 재림할 때도 우리를 바꿔 버립니다. 주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바꾸려고 해도 안 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형체로 우리를 바꿔 주십니다.
그러므로 세상 종교는 인간이 어떤 일을 해야 하지만,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이 어떤 일-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것-을 한 겁니다. 세상 종교는 자기들의 신을 영화롭게 만들면 그 신이 영광을 받고 그 신을 위해서 뭔가 해야 구원받는다고 얘기를 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 예수를 믿기만 하면 무조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면서, 우리가 뭘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하신 거예요. 여러분이 여기까지만 생각해도, 예수 믿는 게 얼마나 큰 복인지 깨닫게 됩니다. 만약에 가정을 해봅시다. 다른 종교를 믿어도 그들 나름대로 구원의 길이 있다, 그래서 나는 기독교 말고 다른 종교를 믿겠다 하고 거기 들어가잖아요. 들어간다고 우리가 가정하면요, 이걸 해야 구원받는다, 저거 해야 구원받는다, 이거저거 해야 좋은 데 간다 이렇게 가르친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걸 할 수 있어요? 잘 못 하잖아요. 그래서 백팔참회를 하고, 그다음에 부처상 앞에 천번제, 이천번제 하면서 절을 하고, 또 나름대로 가서 뭔가 자기 스스로 단련을 하고 이렇게 해야 좋은 데 간다고 하지만, 그래도 좋은 데 간다는 확신을 못 해요, 그 사람들은. 그런데 보세요. 우리 기독교는 뭡니까? ‘너희들이 노력을 안 해도 된다, 내가 다 했으니까 나만 믿고 따라오너라’ 이렇게 했어요. 그럼 종교를 쫙 놓고 볼 때 여러분은 어느 걸 믿을 거예요? 당연히 기독교 믿지. 당연히 이거 아니에요, 이거? 우리가 상식적인 선으로 생각을 해봐도 이거예요, 이거.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 안 합니다. 자꾸만 뭘 해야 좋은 데 가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거든요. 여러분, 그리스도 외에는 일체 구원의 길이 없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성경에서는 세상의 모든 종교 뒤에는 사단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절대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절대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를 믿으려고 하거나, 예수를 믿고 있는 여러분이 얼마나 복된 사람이란 걸 알아야 합니다. 인생 오래 못 삽니다. 여러분들, 지금 하나님의 나라가 계속 가까워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예수 믿는 이것 하나는 절대 놓치면 안 됩니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꼭 주님이 나를 구원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가셔야 합니다. 자, 지금 현재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 구원 사상이, 그리고 그리스도의 그리스도 되심이 자꾸 사라지고 있는데, 사라진 이유를 간단하게 다섯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일단 세상의 문화가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문화가 그렇게 만들어가요. 그래서 교회는 세상 문화 도입하면 사고가 이렇게 바뀝니다. 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교회가, 계속 성도들이 줄다 보니, 세상 문화를 자꾸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교회 내에서 인문주의 강좌라든가 비성경적인 방법의 모임들이 굉장히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요.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교회에 온다고 합시다. 교회에 오는데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겠습니까? 복음을 받지 못하는데. 어쩌다가 한두 명 믿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걸 보고 천하 어떤 것보다 한 생명이 귀중하다 이걸 또 인용을 해서 한 명이라도 구원받으면 되지 않냐 하면서 스스로 위로하는데요. 그걸로 인하여 잘못된 성도들은 생각 안 합니까? 그러면서 교회 내에 굉장히 많은 세상 문화들이 유입되어서 사고를 바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 문화, 사회 문화 전부 보십시오. 예수님의 사상을 다 지워가고 있습니다. 그 이름의 능력 다 지워가고 있습니다.
이런 문화가 그렇게 만들어가고, 그다음에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 이성이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어요. 우리가 예전에 공부를 많이 안 하고 배운 게 좀 짧을 때는, 무식하게 예수 믿었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구원이 없다, 딱 그렇게 가르치면요, 맞다, 예수님 외에는 구원이 없다 하고 그냥 무식하게 믿었다고요. 그거는 무식하게 믿어야 해요.
그런데 지식이 들어가고 사고의 폭이 넓어지면서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가니까 그때부터 분석하기 시작합니다. ‘왜 예수 이름 외에는 구원이 없다 했을까?’ 하다가, 확장이 되면서 ‘이건 너무 우리 기독교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또 거기에 대해서 동조를 하고, 더군다나 또 방송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방송 보면, 스님, 신부님, 목사님 딱 나와서 서로 같이 대화를 하면서 그 위에는 ‘우리는 하나입니다’ 하는 식으로 써놓고 하는데, 이게 다 종교통합사상을 심어주는 겁니다. 목사님들도 그래 이야기하고 서로 화합하니까 보기도 좋고 괜찮더라, 그런 식으로 해서 지금 현재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나 이성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것이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악한 사단이 지금 그렇게 만들어가는 겁니다.
그다음에 여러분이 늘 듣는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들이에요. 많은 신기술들이 그리스도의 그리스도 되심을 전부 다 제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가설을 깔고 지금 시작을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지금 그것이 실제로 많은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일론 머스크가 사람 뇌에 칩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는 발표를 냈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 사람이 아주 잘 회복되고 있다고 그러는데, 모르죠,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만. 그 전에 미국의 제약회사, 유니테크라는 바이오 기업에서 이미 60명 이상의 사람에게 칩 이식을 다 했습니다. 그 전에 다 했다고. 그게 뉴럴 링크보다 더 빠르게 지금 진행하고 있어요. 이제 인간의 뇌와 칩이 연결되면서 컴퓨터상으로 모든 게 조종도 가능하고 통제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레이커즈 웨일은 ‘2030년대가 넘어가게 되면 인간의 뇌에 있는 기억들을 컴퓨터상에 업.다운로딩 할 수 있는 시대가 오게 될 것이다’라는 예언을 했습니다. 일개의 무명인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그냥 ‘그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렇게 하겠지만, 세계적인 과학자가, 그것을 직접 연구하고 있는 사람이 그 이야기를 한 겁니다. 그래서 꼭 그 해다 규정은 할 수 없지만, 지금 그런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되니까 이런 것들을 학교에서 배우는 거예요. 배우고 이러니까 애들이 ‘하나님이 어떻게 되는 거야? 뭐 어떻게 되는 거야?’ 하면서 사고가 혼란스러워요. 그러다 보니 자꾸 타 종교에 대하여 관대해지고 포용하려는 생각이 많아져요.
그다음에 어떤 것이 우리 사고를 그렇게 만들어가느냐 하면, 참 안타까운 노릇인데, 교회의 가르침이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거는 우리 교회의 잘못이에요. 왜 그러냐면, 지금 성도들이 안 오고 하니까 교회에서 자꾸만 성장 이야기를 하는데, 그러면서 아직도 세상적인 복을 많이 받아야 한다는 설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요. 아직도 그래요. 그래서 성도들이 그런 설교를 듣게 되면 자연히 세속적으로 되어갑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의 복을 많이 받아야 하는구나, 많이 받고 살아야 하는구나, 그래서 예수 안 믿는 사람들보다 더 떵떵거리면서 살아야 하는구나 하면서 이런 걸 합리화시켜서, 성경적으로 갖다 붙여버리는 거예요.
제가 누군지는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 상당히 큰 모 그룹의 회장이 크리스찬입니다. 그 사람의 책이라든가 기타 내용을 보면요, 진짜 십일조 생활을 잘하고, 십일조 했다 하면 그 사람은 몇억씩, 몇십억씩 하거든요, 그러면서 그 회사에서 예배하고 그다음에 주일 성수 이야기하고 하면서 뭔가 자기의 간증 같은 이야기들을 아주 좋게 해놨다고. 그런데 실제 딱 정체를 까발려 보니까, 심각하게 노동력을 착취하고 월급은 제때 주지 않고, 그러면서 교회에서는 이런 식으로 했다는 게 밝혀진 거예요. 노조가 들고 일어나고, 싸우고, 물러나라 하고 이런 일들. 누군지 말하면 대번 알겠지만, 그때 신문에도 많이 났어요, 그런 일들 때문에. 이런 정말 우스운 일이 벌어지거든요. 교회에서 세상의 것을 자꾸 가르치니까 성도들은 그런 게 맞는 것 같다 싶기도 하고, 또 그래야 정말 예수 믿는 사람답지 않겠나 생각해서 세상적인 복을 자꾸 받도록 교회에서 가르치는 거예요. 그러면 세상적인 생각은 결국은 곧 포용주의로 가고, 그다음에 같이 손잡는 화해로 가게 돼요. 그러면서 그리스도에 대한 본질이 자꾸 사라집니다. 교회가 그렇게 만들고 있어요.
그다음에 마지막으로는 종교통합을 해도 괜찮다는 거짓된 무리들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건 지금 큰일입니다. 종교통합이 괜찮다, 명분이 좋아요. 우리 종교들끼리 서로 싸우지 말고 마음 합쳐서 같이 하자, 여기까지는 괜찮아, 제가 이야기했잖아요. 그런데 교리적인 일치를 자꾸 꾀하려고 해요. 우리가 국가를 위해서 한마음, 한뜻이 되고 같이 기도하고, 자기들은 자기들대로 기도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기도하고, 괜찮아요. 또 자기들대로 노력하면 다 괜찮아요. 그런데 교리적인 일치를 자꾸 이루려고 하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종교통합은 다원주의로 가는 겁니다.
그리스도 외에도 다른 거 믿어도 다 괜찮다는 사상이 지금 교회에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 여러분들 많이 들어봤죠? WCC는 대표적인 케이스, 다 기독교 이름 걸고 있습니다. WEA 역시 기독교 이름을 걸고 있습니다. WCC는 진보라고 보면 돼요. WEA는 보수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진보적 교계의 성향을 바꾸는 역할을 WCC가 해요. 보수적 교계의 성향을 바꾸는 작업을 WEA가 합니다.
우리나라의 NCCK라든가, 그다음에 여러 국제적인 종교 대회들입니다. 9월에 우리나라에서 있을 로잔 대회 역시 제가 볼 때는 종교통합으로 몰고 갈 것이 확실시됩니다. 그리고 각종 연합 대회, 무슨 그룹으로 막 연합하잖아요. 그다음에 찬양 집회입니다. 여기도요, 그 안에는 예수님을 높이는 것 같아도 다원주의적 성향이 매우 강합니다, 특히 마커스 같은 데. 이런 잘못된 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혹되고 넘어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런 종교통합이 맞는 것처럼 그렇게 사람들의 사고를 바꾸어갑니다. 처음에는 자기가 모르고 가는데, 지나고 보면 사고가 바뀌어 있어요. 그리고 신실하던 그리스도인들도 거기 가서 같이 어울리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가요.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가다가 어느 순간에는 완전히 바뀌어 있어요. 그렇게 해서 그들과 같아지는 거예요. 이런 현상이 지금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요한복음 14장 6절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여러분,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믿음을 목사님에게 맡기면 안 돼요. 여러분 스스로가 지켜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여러분에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 메시지를 못 주잖아요, 그러나 여러분들은 세상과 부딪히면서 듣는 말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절대 아니라고 하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단 말이에요. 여러분 스스로가 믿음을 지켜갈 수 있도록 노력을 하셔야 합니다.
거짓 가르침이 난무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아주 자연스럽게 잊혀가는 그런 시대가 됐습니다. 여러분, 다른 것들은 어떨지 몰라도,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세주이고 유일한 주님이라는 이 사상은 절대 버리지 말아요. 지금 여러분의 삶이 어떻다 하는 것은 여러분 스스로와 싸워서 해결해 가야 할 문제예요. 그러나 마음 중심에 유일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이것만은 다 갖고 계십시오. 그런 사람은 반드시 주님이 도와주십니다, 주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주님의 자녀이므로 반드시 주님이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이름을 위해서 살아가는 성도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자, 우리 찬양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찬양합니다. 우리의 유일한 생명 되시고, 우리의 유일한 힘이 되시고,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찬양합니다.
겸손히 주 앞에 무릎 꿇고 참회의 눈물 흘리며 고백할 때
사랑의 언약을 들려주시사 주님의 품 안에 품으소서.
보혈의 피로 산 새 생명 영생의 길 가게 하소서.
주님이 피 흘렸던 골고다 언덕 나도 가게 하소서.
겸손히 주 앞에 무릎 꿇고 새 사람 되어지기를 간구할 때
나의 뜻과 생각 변화시키시사 주님의 모습 닮게 하소서.
보혈의 피로 산 새 생명 영생의 길 가게 하소서.
주님이 피 흘렸던 골고다 언덕 나도 가게 하소서.
보혈의 피로 산 새 생명 영생의 길 가게 하소서.
주님이 피 흘렸던 골고다 언덕 나도 가게 하소서.
보혈의 피로 산 새 생명 영생의 길 가게 하소서.
주님이 피 흘렸던 골고다 언덕 나도 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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