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도 행운도 / 강선숙
집 앞에 있는 작은 화원에 들렀다. 신혼집인데 텅 빈 베란다가 허전해서 꾸미고 싶었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일까? 화원에는 꽃나무는 없고 푸른 잎들뿐인 크고 작은 나무들만 있었다.
그중 큰 잎사귀가 여러 개 달린 나무에 눈이 갔다. 주인 말이 행운목은 제때 물만 잘 주면 키우기도 쉽고, 초록 잎이 커서 공기 정화에 아주 좋다고 했다. 식물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난 무엇보다 나무의 이름이 좋아서 기분 좋게 그것으로 선택했다.
차가운 베란다에 놔두고 거실 중문도 닫아 둔 채 집을 비운 적이 있었다. 일주일 만에 돌아와 보니 베란다에 놓아둔 행운목이 얼어 있는 게 아닌가. 영하의 날씨라 거실로 들여놓고 다녀왔어야 했는데, 열대식물을 한겨울에 물을 듬뿍 주고 한데에 놓아둔 게 잘못이었다. 두 그루의 나무 중 조금 더 크고 굵은 것이 죽어있었다. 속상한 마음에 한동안 내 무지를 질책했다. 간신히 버티고 있는 나무를 살리겠다고 정성을 쏟았던 시간은 꼭 약한 아이 키우는 심정이었다.
어느 날 저녁, 외출했다가 돌아왔는데 집안에서 좋은 향기가 진하게 풍겼다. 꼭 아카시아꽃이 활짝 핀 울창한 숲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행운목을 들인지 4년 만의 일이다. 꽃이 핀다는 말은 들었어도 저렇게 볼품없는 나무에서 보게 될 줄이야. 아직도 얼었던 흔적이 있는 상태이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놀라운 일은 이후로도 7년 동안 해마다 꽃이 피었다.
꽃은 밤에 피고 아침엔 졌다. 그래서 야화(夜話)라고도 하나 보다. 가지에서 쭉 뻗는 대가 생기고 노란 꽃봉오리가 주렁주렁 달리더니 꿀처럼 달콤한 액체가 흘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봉오리가 하나, 둘 터지면서 하얀 꽃이 핀다. 그러면 진한 꽃향기가 집안에 퍼지고 우리 가족은 행운목을 사진기에 담으며 매일 밤 설레었다.
꽃피는 나무라고 탐을 내는 사람들이 있어서 기분 좋게 분양도 해주었다. 그러면서 우리 집에도 가지가 하나 더 생겼다. 올해는 두 군데서 꽃이 피어 더욱 풍성하고 향기도 오래갔다. 한동안 소식이 없더니 몇 년째 다시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런데 분양해간 집에서는 아직 소식이 없다고 한다. 곧 그들 집에도 이 신비로움을 함께 느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지인들은 행운목에 꽃이 피었으니 그동안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그럴 만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 보기 어렵다는 꽃을 여러 해 동안이나 본 것은 행운이지 싶다. 그리고 일 년에 열흘쯤은 향기에 취해서 살았으니 행복했다.
지금 우리 집 베란다에는 이것 말고도 20여 종의 꽃과 나무들이 더 있다. 그동안 사들인 식물들이 왔다가 떠나기를 반복했지만, 처음 내 집에 온 행운목은 30년이 넘도록 우리 아이들과 더불어 잘 크고 있다.
다른 식물들은 도자기 항아리에 담겨 있다. 하지만 행운목은 처음에 왔던 파란색 플라스틱 화분에 그대로다. 나무는 커지는데 분갈이는 못 해주고 새 흙으로 덮어주기만 했다. 그렇기에 미안한 마음이 있어 영양제를 넣어주고, 잎도 열심히 닦아 주며 정성을 쏟는다. 비록 내 잘못으로 짝을 잃고 몸통에는 상처가 생겼지만, 지금까지 함께 해준 것은 더없이 고맙다.
올해에도 꽃으로, 향기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첫댓글 억새밭을 일구시는, 함께 늙어가는 부부가
식탁에서 기울이는 한잔 술은
합환주(合歡酒)입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월파 선생님의 건강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