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영 계곡의 눈물 / 출품작 기저귀 차고 있는 아이다. 아장아장 걸음이 뛰는 것 같은 느낌이다. 걸음 마 배운다고 한길에서 놀던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빨래하는 시간이 채 10분도 되지 않았다. 놀고 있던 아이가 없다. 이름 부르며 이곳저곳 찾았다. 집 앞 군부대 정문까지 가서 위병 근무 서는 병사에게도 물어보았다. 가끔 혼자 와서 놀다 오곤 했었다. 보지 못했다고 한다. 윗길로 아랫길로 다녀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부르면 언제나 “예” 하고 촐랑촐랑 오던 아이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안절부절 불안은 쌓여만 간다.
한 시간이 지났다. 아이 혼자서 갈 수 있는 곳이라면 다 찾아보았지만 없다. 가게 주인아주머니께서 손님 상대하다가 허겁지겁 다니는 집사람을 보고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헐떡이며 숨넘어가는 소리로 아이가 없어졌다고 했다. 물건 사시던 손님께서 아래 계곡 입구에 어떤 남자가 아이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며 인상착의와 함께 말 해 준다. 아주머니께서 그 사람은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 아니란다. 아이를 데려갈 그런 위인이 못 된단다. 집은 계곡 안으로 산길로서 10리 길 정도며 걸어서는 4시간 정도는 가야 한다고 한다. 길도 제대로 된 길도 아니라서 아이를 절대로 데리고 갈 수 없다며 극구 부인한다. 직감은 이미 그 사람을 잡고 있다. 아주머니께 같이 좀 가자고 사정사정한다. 가 봐도 소용없을 텐데 하며 한번 가보자며 나서 준다.
길 같지도 않은 길이다. 사람 키만큼 자란 잡풀과 싸리나무가 군데군데 무더기로 있다. 바랭이도 자꾸 발등을 방해한다. 길이라기보다는 키 작은 잡풀이 있는 방향을 잡고 갔다. 그게 길이다. 뜸하게 하나씩 있는 잡목도 헤집고 갔다. 환상 넝쿨에 끌리면서도 아이 생각뿐이다. 한참을 갔다. 계곡 비탈면으로 이어진 도랑이 나온다. 폭이 2m 정도 되는 것 같고 바닥이 환히 보여 깊이를 감 잡을 수가 없다. 아이 혼자서는 도저히 건 널 수 없는 물 깊이다. 아주머니께서 봐라! 이런 길을 아이가 어찌 갈 수 있겠느냐며 돌아가서 다른 곳을 찾아보자 한다. 그 사람을 꼭 만나서 확인해 봐야겠다면서 집까지 가보자며 사정을 했다. 도랑물이 무릎까지 온다. 아이 혼자서는 여기까지도 오지 못하지만, 이 도랑은 더 더욱 건널 수가 없다. 더욱이 기저귀 차고 있는 아이다.
낮은 언덕 같은 기슭이 보인다. 밤나무 한그루가 기슭 위쪽으로 치우쳐 있다. 아이 울음소리가 들린다며 아주머니께 이야기한다. “뭐! 무슨 소리! 아이 소리가? 어디야 어디?” 하면서 아주머니가 더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면서 앞서간다. 밤나무 아래에서 염소 울음소리 같은 “엄마”라는 가냘픈 소리가 들린다. 그냥 뛴다. 길인지 아니 인지도 분간 않고 앞만 보고 달린다. 아이가 살아 있음에 다른 여유가 없었다. 아이가 있었다. 울다 울다가 지쳤는지 목이 다 잠겼다. 밤나무 아래 혼자서다. 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아이다. 무서움을 알기 전에 공포였으리라. 한 사람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사람도 무서웠으리라. 엄마가 부르는 목소리는 알고 그나마 냈던 소리가 염소 울음소리보다 가늘었다. 같이 간 아주머니는 못 들은 소리를 들었다. 애절함의 집중이다. 간절함이다. 아이는 엄마를 보자마자 눈물 그렁그렁 달고서 웃는다. 조금 전까지 공포와 겁보다는 엄마를 보아서 좋은 거다. 살았다는 감정과 불안한 공포를 분별 할 줄 모르는 아이이니까. 엄마만 있으면 모든 해결이 되는 아이이니까. 찢어지는 마음과 살아서 만났다는 통한의 오열이 몸을 덮친다. 몸쓰리 났다. 안도감이 온몸을 감쌌다. 이곳저곳 몸을 두루 살폈다. 맨발에다 발바닥이 밤송이 가시로 덥혀있다. 눈물 흐르는 것도 모른 채 아이를 둘러업었다. 여기까지 오기도 힘들었던 길을 한달음에 내려왔다.
발바닥에 있는 밤송이 가시 다 빼고 목욕시킨다. 우유를 먹인다. 잠이 든 아이다. 언제 무슨 일 있는지도 모른 체 편하게 잘 잔다. 잠자는 모습을 처연히 바라본다. 만약 저 아이가 죽었다면…. 눈앞이 캄캄하다. 눈물이 난다. 안심의 눈물과 아픔의 눈물이다. 서러움과 울화가 치민다. 온몸이 찢어지는 분함이 요동친다. 그 인간을 죽이고 싶은 악이 복받쳐 올랐다. 생각할수록 이가 갈리고 부들부들 떨린다. 어떻게 해야 할까? 속 절이는 감정과 머리 아픈 시간으로 복잡하다. 시간과 싸움을 했다. 당장 찾아가서 복수하고 싶은 악심이 왔다 갔다 한다. 서릿발 눈으로 문 쪽을 쳐다본다. 어른도 다니기 힘든 제대로 된 길도 아닌 그것도 산길이다. 기저귀 찬 아이가 혼자서는 절대로 갈 수 없다. 예쁜 아이가 졸졸 따라오니까 안고 데려가다 떼서고 우니까 밤나무 밑에다 두고 가 버린 것 같다. 사람의 상태가 좀 덜된 이라 생각하니 부모가 걱정하고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을 수도 있다. 당사자는 표현력이 약한 아이다. 상황 설명 들을 수도 없다. 온전치 못한 이 찾아가서 따져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감정이 복받친다. 따져서 뭐하나 하는 여심도 생긴다. 그만 두기로 한다. 잘해봐야 화풀이 밖에 안 될 것 같아서다. 싸워 봐야 울화통만 터질게 뻔하다. 보호하지 못한 마음이 더 아플 것 같다.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퇴근하니까 담담하게 말한다. 한 부분에서는 흥분하면서 급하게 말하는데 미친놈이란 단어에는 살기마저 보인다. 난리 통에 도움도 주지 못한 남자를 어떻게 보았을까? 망 등으로 보았을까? 원망으로 삼켰을까? 한마디도 표현하지 않는다. 속 끓는 폭포수를 그 남자에다 온갖 욕으로 퍼 부었다. 듣는 이는 나다. 큰아이의 유괴 아닌 유괴 사건이었다. 등 두드림만 해 주고는 우유 통을 들었다. 아이가 잠에서 깬다. 안아서 우유를 먹였다. 떨리는 눈시울로 아이 눈을 봤다. 까만 눈동자가 초롱 하게 밝게 웃는다. 해맑게 웃고 있고, 살아 있으니 됐다며 속으로 다스려 본다. 도움하나 주지 못해서 해볼 수 있는 게 없다. 집사람은 가만히 보더니 주걱 들고 밥 냄비를 챙긴다.
지우고 싶은 기억으로 다시는 되새기고 싶지 않을 거다. 그 순간의 고통과 아이의 공포가 무섭기 때문이다. 절경인 불영 계곡의 물을 시리게 만들었다. 불영사 스님께서 아이 예뻐하면 “홍복 많이 있네. 기도 많이 하여라. 정성 많이 가져야 큰 사람 될 거예요” 하신 말씀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불영사 뒷산에 있는 돌 부처상에 합장하곤 했다. 늠름하게 우뚝 솟은 휠라 상을 사진으로 담기도 했다. 효험을 봤다고 집사람은 말한다. 아픔은 물처럼 흘러갔다. 징검다리에 앉아 발 씻으면서 물 장난치며 놀던 계곡물은 지금도 흐르고 있으리라. 천혜의 계곡을 지켜주던 돌 부처상에 기원 한다. 경산에서.
작성일 2017. 7. 15
1. 경산문협 35호 게제 2. 경산자치신문 게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