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희와 2주만에 만났습니다. 꼭 안으며 인사했습니다. 반가웠습니다.
사실 창희를 만나러 오는 길에 고민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것인데, 창희가 좋아하는 뿌요소다를 사갈까?
뿌요소다는 나의 자원인가? 물질을 주기 보다는 마음을 전달하는 게 우선일까?
받는 창희의 기분을 어떨까? 창희와 나의 관계가 어떻게 될까?
반갑다는 마음, 나도 보고싶었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방법을 어떻게 할지는 고민됐습니다.
그런데 고민하다 편의점을 지나쳐서, 그냥 갔습니다.
오늘은 스티커 만들기 활동을 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컴퓨터로 디자인해서 출력하는 건가 싶었는데,
종이와 테이프, 싸인펜만 있으면 얼마든지 스티커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준비물을 챙겨주셨습니다.
그런데 신정애 선생님께도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창희에게 신정애 선생님께서 지난번 해주셨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창희야, 선생님께서 스티커만 만들지 말고, 책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제안해주신 거 기억나?
그런 방법은 어때? 해보고싶어? 도화지가 필요한데 교실에 가서 인사드리고 부탁드려볼까?"
창희가 좋다고 했습니다. 신정애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2주 동안 창희가 교실에서 어떤 활동 했는지 들었습니다.
여러 작품들도 구경하고, 선생님께서 도화지도 주셨습니다.
항상 저와 창희의 활동을 응원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셔서 참 감사합니다.
교실로 다시 내려가는 계단에서 지난번에 함께 피크닉 했던 은휘를 만났습니다.
창희가 자연스레 교실로 은휘를 인도하고, 함께 활동하고 싶다 했습니다.
창희가 언니들을 참 좋아하는구나 생각하며, 좋다고 했습니다.
마침 준비물도 넉넉했으니까요.
지아가 문 밖에서 서성였습니다. 은휘 친구라고 합니다.
창희와 은휘가 같이 하자 했고, 그렇게 넷이서 스티커를 만들게 됐습니다.
활동은 간단했습니다.
각자가 좋아하는, 잘 그리는 것을 잘 그리는 것이 끝입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활동을 하며 고민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1. 아이들이 잔인한 이야기를 할 때
은휘와 창희가 스티커를 만들며 그들만의 놀이에 관련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칼이나 망치같은 장난감으로 장난치는 놀이 같았습니다.
건전하지 않은 놀이라는 것을 창희도 어렴풋이 느끼는지, 은휘가 얘기할 때마다 제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게 대체 무슨 놀이인지 하나하나 꼬치꼬치 물어보아야 할지,
혹은 흘러가도록 어느정도 모른 체 해도 되는건지,
아이들의 문화니까 존중해야 하는건지 어려웠습니다.
"내 생각엔 그런 놀이는 안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라며 얼버무리고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2.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표현을 쓸 때
은휘가 "저는 좀 싸이코패스에요" 라고 자주 말했습니다.
창희는 그 말을 듣고 "어어 좀 그런 것 같아" 하며 웃었습니다.
저는 "에이 아니야~ 내가 보기엔 아닌 것 같아" 라고밖에 말하지 못했습니다.
사이코패스 라는 단어를 그렇게 쉽게 사용하는 건 옳지 않고,
자기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이야기 했어야 했나?
그런데 이런 표현을 했다면, 어떤 생각으로 얘기한건지 물었어야 했나?
의문이 들었습니다.
3, 아이들이 시간 약속을 잘 안지킬 때
이전부터 아이들이 활동 시간을 조금씩 어겼습니다.
저 또한 이후 일정이 없기에 오래 만나는 것이 좋은건가 싶어 한동안은 여유롭게 활동을 했습니다.
실제로 한시간 반 안에 활동을 준비하고 활동하고 다음 활동을 계획하는 것이 버겁기도 해서요.
그런데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 또한 창희가 알아야 할 내용이니까, 임세연 선생님께서는 시간을 지키는 게 좋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활동을 시작하며 오늘은 정확히 2시 20분에 활동을 마칠거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되어도 아이들은 자기의 스티커에 푹 빠져, 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꽤 단호하고 정중히 이야기했는데도, 미안해하고 눈치는 보면서 꿋꿋이 "이것만요..." 했습니다.
창희는 특히 다른 친구들과 함께 활동을 할 때면 제 말에 잘 대답하지 않습니다.
장난스럽고 애교스러운 말투로 상황을 넘어가거나, 몰랐다고 발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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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을 마치고, 어려웠던 점을 임세연 선생님께 여쭤봤습니다.
새로운 배움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창희와의 활동 목적을 더욱 생각하기
창희가 언니들과 활동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약속되지 않은 방식으로 활동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창희와 오늘 활동하는 것의 목적은 나와 창희 둘이서의 활동이었기 때문에,
이미 주변 친구들과 활동을 한 창희에게는 오히려 1:1의 활동이 더욱 필요했을 수 있다.
또, 창희가 이 활동의 주인이라고 해서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창희로 하여금 알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2. 아닌건 "아닐 것 같은데.." 가 아닌, "안돼" 로 이야기하기
학교 사회사업의 상황 상, 어쩔 수 없이 창희에게 교육적으로 대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따라서 창희의 자주성과 공생성을 살리고자 하는 활동에 맞지 않는 언행을 본다면, 아니라고 단호히 얘기해야 한다.
3. (어려워도) 약속시간을 잘 지키기
활동 시작할 때 창희와 함께 시계를 보며 끝나는 시간을 함께 인지할 수 있도록 한다.
어렵다면.. "임세연 선생님과 약속했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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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오늘 활동하며 감사한 일, 재밌었던 일, 좋았던 일이 많습니다.
신정애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스티커북을 만들어봤더니 다들 재밌어했습니다.
스티커를 만들어 서로의 스티커북에 붙여주기도 하고,
각자의 캐릭터가 있다며 소개해주기도 하고,
서로 필기도구를 빌려주고 빌려쓰며 고마워하고,
서로의 그림을 잘그렸다며 칭찬했습니다.
창희네 반에서 창희가 자기를 소개하는 글을 쓴 걸 봤습니다.
가장 듣고싶은 말은 "친창" 이라 합니다.
창희에게 "칭찬" 이라고 알려줬더니, 헤헤 웃었습니다.
활동하며 창희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많이 냈습니다.
종이에 테이프를 붙이고, 그 위에 스티커를 붙이면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며
"아 역시 나는 천재야 ~~" 하는 창희 모습이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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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함께 활동을 못했더니, 창희가 많이 아쉬워했다는 이야기를 활동 끝나고 선생님께 들었습니다.
오늘 창희의 모습이 이전과 별 다를 건 없어서, 내심 잘 지내고 있었구나 싶었는데
창희가 제가 생각하는 것 보다 이 활동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감동이었습니다.
다음주에도 합동연수 때문에 못보는데..
다른 요일에라도 함께 활동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창희가 웃는 모습 또 보고싶습니다.
첫댓글 강점문자 >
안녕하세요 창희 아버님, 오늘 창희와 함께 활동한 최하영입니다.
창희와 오늘은 스티커 만들기 활동을 했어요. 창희가 친하게 지내는 은휘와 지아도 창희가 함께 하고싶다고 해서 다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답니다.
창희가 그림을 정말 잘그려요. 창희가 그린 그림들을 하나하나 보면 디테일이 살아있어요. 항상 창희와 교실에 가서 창희 담임선생님을 만나면, 창희의 작품들을 구경하곤 했었는데요. 오늘 창희가 직접 그림그리고 또 재밌어 하는 걸 보니 저도 너무 즐거웠습니다.
창희 오늘 멋진 스티커북 만들어서 가져갔으니, 아버님도 한번 보시고 칭찬 많이 해주세요. 고맙습니다!
창희 뿐만 아니라 하영 선생님도 신정애 선생님에게 응원을 받고 있나 봐요. ^^
잔인한 이야기할 때,
짧게 하고 흘러가는 이야기라면 모르는 체하고 둘 수 있지만,
계속 이야기 주제가 흘러가고
하영선생님이 걱정될 정도의 수준이라고 하면 조금 더 자세히 물어봐도 좋겠습니다.
창희를 만나는 어른으로서 어떻게 이야기하는 게 좋을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자기를 비하하는 표현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은 단어의 뜻을 잘 생각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용하곤 합니다.
자기나 남을 비하하는 표현은 아이들 마음 건강에 좋지 않지요.
자기 삶을 살아내고 더불어 사는 삶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창희와 은휘가 자신을 사랑하는 아이들로 자라면 좋겠습니다.
이쁜 단어를 듣고 자란 식물은 이쁘게 자라고
미운 단어를 듣고 자란 식물은 죽게 된 영상을 보거나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 있지요?
누군가 창희나 은휘에게 진지하게 자세히 이야기 안 해주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말이나 단어들이 아이들 마음에 남을 수 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한 건지,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를 어떤 뜻으로 알고 있는지, 잘못 알고 있다면 알려주고 창희와 은휘가 자신을 사랑하는 단어를 사용하면 더 좋겠다고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이미 앞선 경험으로 창희에게는 멘토링 시간에 제한이 있는 것이 무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는 약속한 시각을 지키도록 노력하고,
때에 따라서 외부 활동이나 활동 내용이 따라서는 융통성 있게 선생님이 시간제한을 두지 않고 활동하면 좋겠습니다.
그때는 창희에게 다른 날과 다르게 활동 시간이 길 수 있다고 이야기 나누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