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시문학의 새로운 활성화의 탐구
시문학의 새로운 활성화의 탐구
--『계간시원』 창간사
* 정신적 위기의 시대에서의 시문학 우리는 지금 인문학의 위기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삶의 부정적인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그 이유는 위정자들이 국가의 정책이나 국가의 발전방안에 경제 위주의 범주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인간 정서의 교육을 등한시하는 등의많은 문제점이 산적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들은 경제대국의 실현으로 부富의 혜택을 적극 수용하고 인간이 누려야 할 행복의 지수는 부의 축적과 동일하다는 논리에 정신적인 계발이 전무하다싶이 한 오늘날 지성인들의 충고를 도외시하는 시대적인 비극이 실제 상황으로 현시되고 있음을 개탄한다. 우리 시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생활방식에서 벗어나고 시인들이존경받고 정서의 총체적인 지적 소양을 제공하는 풍토는 옛이야기로 남아버렸다. 학교에도 입학시험 위주의 교육으로 정신세계를 황폐화해서 인간의 존재가치를 상실한지 오래다. 우리의 정신이 자기의 성찰이나 영혼의 탐구라는 시의 본령과 위의威儀가험준한 고행으로 바뀌면서 인성이 횡포화하고 무도덕적, 무법적인 사회로위험이 난무하는 무서운 시대를 살아야하는 고통에서 하루 빨리 정상화를갈망하고 있다. * 잡지 제호가 왜 『시원詩苑』인가 지금 우리는 위와 같은 시와 시인의 부정적인 부재시대에서도 문학지들이많이 발행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시전문지도 다수 발행되어 시와 시인구의저변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제작비와 원고료를 정상적으로 투입하여 그 정체성을 확고하게 영위하는 잡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처럼 이 시대의 문학지는 그 어려움에서도 우후죽순으로 난립하고 있으며 제작이나 원고료 등의 운영자금을 마련하지도 않은 채 신인상 피추천자에게 책을 판매하는 조건으로 등단을 시키는 전근대적인 방법으로 문단에물의를 야기하는 등의 몰지성인의 행동으로 많은 빈축을 사기도 한다. 이러한 난기류에서도 우리는 『시원詩苑』을 계간으로 창간하고자 새롭게 깃 발을 높이 세운다. 이 『시원詩苑』은 잘 아는 바와 같이 일도一島 오희병吳熙秉 시인이 1935년에 범시단을 지향하는 시전문지로 창간하였으나 제5호를 마 지막으로 종간했지만 1930년대 우리 시단에 커다란 시사적詩史的인 의미를 남겼다. 그 당시 많은 시인들의 호응이 있었으나 카프 계열의 시인들 작품을 게재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고 전한다. 그후 해방을 맞이하여 서울로 올라가복간하려 노력했으나 사회적인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심화되어 그가 추구하는 방향성에 별 호응을 얻지 못하고 그는 병세의 악화로 고향 경북 영양으로 귀향하여 과도한 폭음에 의한 간경화로 사망하였다.
* 향후 시문학의 새로운 활성화 계획은? 이처럼 오일도 시인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의도는 아니고 새로운 시지詩誌 의 작명을 위해서 자문을 구하고 몇몇 편집위원들의 중론에 따라 『계간시원詩 苑』으로 명명하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 시문학의 융성을 위해서 다양한 계획을 추진하려 한다. 많은문학단체나 잡지에서 시행중인 것들을 새롭게 시대적인 요청에 부응하는 사업으로 재발굴하여 조명하거나 우리 시단과 시인들이 동참하는 방향으로추진해 나갈 것이다. 먼저 시창작교육 프로그램을 가동하여 엄선, 엄격한 검정으로 신인을 발굴하고 나아가서는 작품 소재 발굴 및 발상을 위한 국내외 문학, 역사 기행또는 시문학 발전 심포지엄 개최, 청소년 및 일반인 대상 백일장 개최 그리고 시화전 개최 및 중견시인 초청 강연과 작고 시인들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여 우리 시의 위상을 정립하고자 한다. 이밖에도 원로, 중견 시인들과의 인터뷰로 시단 현안 문제를 측정하고 개인 시집 및 동인지 발간을 안내하면서 국내외 시문학단체와 교류를 위해서재외 동포 시인들과 외국시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국제적인 시잡지로 육성 발전시키고자 한다. 창간호 발간 후에 ‘계간시원시인회’를 결성하여 시문학 발전사업의 동참 과 동인 활동을 통해서 작품의 창작 및 상호 시문학 교류를 촉진하고 ‘시원 시문학상(시 및 시론부문)’을 제정하여 매년 우수작품을 시상하여 시인들의사기를 진작시켜서 시창작의 활성화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 끝으로 이러한 시인들과 시의 위기는 우리 시의 창조적인 부흥을 위한 일시적인 사회적인 현상임을 믿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우리 시단의 많은 선후배들과 독자들의 동참으로 기필코 성취되어야 할 과제로 남는다. 변함없는 격려와 협조를 당부한다.(2016. 여름호 계간『시원』)
한국 시문학의 새로운 지평 정립
--『시원』 창간 5주년을 맞이하여
2016년 6월 1일, 우리 한국 시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정립하여 시문학 발전에 기여하고 시인들의 발표 지면을 확대하여 창작의욕과 시 정신 발양에 획기적인 동력을 제공하여 한국 시문학 발전에 공헌하려는 목적으로 계간 『시원』 을 발행한 지도 벌써 5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원로 중진 시인들을 위시하여 강호의 시인들이 동참해서 작품과 시평 및 시론을 발표하여 시인들과 전국의 시 애호가들의 공감을 획득한 바 있어서 우리 시문학사에 한 획을 장식한 쾌거를 진심으로 자축하면서 그간의 소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도 많은 동료들이 열성적으로 합류하여 계간 『시원』 을 창간하게 되었는데 정순영 시인의 광고 협찬의 도움으로 잡지의 기틀을 세우는 원동력이 되었고 이에 따라서 최초의 창간 발행인 김송배, 주간 정순영, 편집국장 강명숙, 편집위원에 김유신, 김 종, 김현기, 방지원, 손해일, 엄창섭, 이동희, 임선영, 정성수, 정순자, 조의홍 시인들이 전국에서 동참하여 활력을 발휘하게 되는 영광을 함께 하였기에 무한한 감사와 경의를 보냅니다.
이처럼 창간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 전국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발표기회를 고르게 제공하는 동시에 <한국시원 시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우수작품을 발굴하여 시상하는 한편 신인상도 매회 심사 선정하는 등 시문학 관련사업을 착실하게 수행해 왔습니다, 이에 따라서 <한국시원 시문학상>에는 대상에 조의홍, 임병호, 권숙월, 이서연 시인이, 본상에는 임애월, 김현기, 강경애, 강명숙 시인이, 우수상에는 임선영, 이정현, 문연자 시인이 수상하는 영광을 가졌으며 이들의 작품과 시인으로서의 품격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함께 획득하는 시문학사의 한 획을 장식하였습니다.
또한 신인상에도 엄격한 심사를 통해서 약 20여명의 시인을 발굴 탄생시키는 영광도 제공했습니다. 이들도 앞으로 우리 한국시단에 크게 공헌할 것으로 기대되며 지금 도 부단하게 노력하고 있어서 그들의 활동무대를 확대하기 위해서 시창작 교육을 활성화하면서 그들의 친목과 단합을 위해 <한국시원시인회>를 창립하여 상호 시적인 정보 교환은 물론 계간 『시원』 의 발전방향도 함께 동참하면서 자신들의 역량을 배가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창간 5주년을 기해서 우리 편집위원들과 운영이사들은 현재 우리 시단과 시문학의 발전 저해 요인은 무엇인가를 다시 살펴보면서 그 해법을 탐색하는 연구도 계속해서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지난 창간호에서 ‘우리는 지금 인문학의 위기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삶의 부정적인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그 이유는 위정자들이 국가의 정책이나 국가의 발전방안에 경제 위주의 범주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인간의 정서의 교육을 등한시하는 등의 많은 문제점이 산적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는 편집위원들의 담론을 다시 새기면서 창간 정신을 더욱 확고하게 구축하려는 노력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시문학의 새로운 활성화의 탐구’라는 제하에 ‘정신적 위기 시대에서의 시문학’과 ‘잡지 제호가 왜 시원(詩苑)인가’ 그리고 ‘향후 시문학의 새로운 활성화 계획’ 등을 소상하게 천명한 바와 같이 우리 시문학의 침체와 시정신의 결핍을 다양한 방안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발양할 것을 재삼 다짐합니다.
전국의 시인들과 시 애호가들의 적극적인 지도 편달로 올바른 정신세계의 정착에 동참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끝으로 지금까지 광고 등의 협찬으로 잡지 발행에 많은 도움을 주신 정순영 시인과 박흥우 시원운영이사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또한 지적인 교양과 숭고한 안목으로 교정 집필로 알찬 내용을 제공하여 지면을 더욱 빛내주신 조의홍(차 한 잔 시 한 편), 이동희(계간 시평), 김현기(시비 순례), 방지원(문학동인 순방), 임선영(회중유시), 이서연(문학관 탐방) 시인들의 노고에도 무한한 찬사를 보냅니다.
지금은 코로나19의 어려운 시국입니다. 당국의 방역정책에 적극 협조하여 난국을 극복하고 작품 창작에도 심혈을 기울이기를 희망합니다.(2021. 여름호 계간『시원』 제 20호)
문학과 새 세기의 정서 교육
1. 새 세기의 전망
서기 2000년, 새로운 한 세기가 시작되면서 새 천년기(New Millennium)를 함께 맞는다. 이는상당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실제로 지난 연말부터 다양한 담론으로 우리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그 내용을 일별해 보면 대체로 21세기는 문화의 세기가 되어야 한다는 우리 국민들의 요망사항이 짙게 담겨져 있다.
그리고 환경의 세기가 되어야 한다는 인류학자나 생명 존엄의 지식층들이 요망하고 있지만 현실로 다가온 과학 기술 문명의 유토피아인 테크노토피아의 세기라고 단정하는 측면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도 벌써 인터넷 인구가 7백만명(지난 해 11월말 통계)을 넘어서서 세계에서 10위권을 진입했다고 한다.
이처럼 세간의 사람들이 말하는 담론은 우리 인간들이 미래를 예감해 보는 희망이며 꿈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 20세기에는 엄청난 민족적인 수난의 역사를 극복하면서 과학 기술의 고도화를 달성하여 산업화 시대를 이룩함으로써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우리는 그 문명의 편리함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었다.
어찌보면 하루밤 사이에 달라지는 첨단 문명의 혜택은 우리들의 생활을 편안하게 해 주었지만 그 뒤안길에는 그만큼의 갈등과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이라는 차별현상으로 실업과 빈곤의 사회적인 위기와 공해와 질병 등 환경 파괴는 인류를 생존 가능성의 희박함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 지구의 멸망을 자초하고 있다.
또한 경제전쟁, 기아사태, 이상기온, 인종분쟁, 지진의 빈번한 발생 등등은 사회적인 생태와 환경적인 생태를 동시에 파괴하고 있어서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기를 이겨내고 새로운 창조의 세기를 열어가기 위해서 어떠한 사유의 방식과 가치관으로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연구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반세기동안 해법을 찾지 못한 남북통일도 금세기에는 기필코 성취해야 한다는 민족적인 대명제가 남아 있음도 주목해야 할 새 세기의 숙원이다.
2. 문학의 과제
문학의 기능이 이와 같은 세기적인 위기에 상호보완적인 역할이 주어지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한 시대의 공통적인 정신의 지향점을 제시하고 동시에 역사의 정점으로 창조라는 당위성을 인정한다면 문학은 이러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주춧돌이 될 것임은 믿어도 될 것이다.
앞에서 문화의 세기가 되어야 한다는 문화지향의 정서나 주장은 아무래도 문학을 필두로 한 문화와 예술이 인간의 정신세계와 아주 밀접한 관계에서 출발한다는 그 본질 속에서 사회, 경제, 교육, 국치 등 생존과 연관된 모든 근원을 합일시켜야 할 것이다.
문학은 정서와 사유의 창조영역에 속한다. 문학에는 인간의 체험을 통해서 자아 인식이 있고 자아 성찰이 있다. 또한 자기 발견을 함으로써 창조를 위한 기원이 있고 존재에 대한 가치성을 정립하고 생명력을 순수로 지향하는 구심점을 형성한다.
우리의 현대문학도 예외일 수는 없다. 1908년 육당 최남선이 <소년>지에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신체시를 발표한 것을 현대문학의 효시로 본다면 어언 우리 문학사도 근 100년, 한 세기의 역사를 이룬다. 우리 문학사와 함께 지난 세기의 우리 근현대사는 수난의 역사이다. 일제 강점기에다 해방이다, 6. 25 동족상쟁이다, 4, 19, 5. 16, 12. 12, 5. 18 등 내외적으로 비극에 가까운 한 세기 속에서 문학이 감당한 몫은 지대하다.
문학은 민족혼과 동질적이어야 하지만 문학인들의 사유나 정서는 민족적인 고뇌와 인간의 아픔을 동시에 화해하는 문학정신을 중시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은 문학 정신의 다양한 변화와 진취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3. 문학과 정서 교육
우리는 복합적이고 다원화 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더구나 21세기는 더욱 다양한 형태의 생활방식이 예상되고 온 인류가 기상천외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기의식의 대처방안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
문학은 진실을 그 가치와 생명으로 하고 있다. 모든 예술이 모두 진실에 그 원류를 두고 작품으로 형상화하겠지만 특히 문학은 영혼을 보전하는 방법이다. 그러하기에 문학은 정서의 올바른 성장과 유지를 위해서 필요하다. 문학 작품 중에는 노골적으로 직접 계도하거나 교시적(敎示的)인 부류의 것도 있지만 간접적(혹은 은유적)으로 정서를 순화하거나 함양하는 작품을 많이 접할 수 있다.
논어에 불학시 무이언, 불학례 무이입(不學詩 無以言, 不學禮 無以立)이라는 말이 있다. 직역해서 시를 배우지 아니하면 말을 할 수 없으며 예를 공부하지 아니하면 함께 동석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얼마나 시와 예를 중요하게 여겼는지 느끼게 하고 있다.
그러나 시, 희곡, 수필, 소설 등의 작품 한 편이 당장 무슨 혜택이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은 육체와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 육체가 안락을 요구하듯이 정신도 안정을 요구하며 육체가 영양분을 필요로 하듯이 정신도 그 갈증을 해소시켜 주고 풍요를 충족시켜줄 자양분을 필요로 하게 된다.
아무리 육체가 건강하더라도 정신이 병들어 있다면 우리는 건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육체는 다소 불편하더라도 굳건한 정신력을 소유했다면 그를 인간 승리자로 우러러 보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유추한다면 문학은 정신에 영양분을 공급하는데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컴퓨터를 통한 싸이버 문학이 유행하고 있으며 금세기에는 전자신문, 전자도서관, 전자잡지가 크게 활기를 띄어서 순수문학이나 문학의 순수성에 대해서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작가와 독자간의 매체가 달라질 뿐이지 문학의 기능이나 효용에 대해서는 아직 크게 문제는 없다고 보아진다.
그러나 너무 편리하고 안이한 것만 선호하는 젊은 층의 구미에 맞게 그 기능이 쾌락적인 것으로 흐름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어찌 되었거나 고도의 문명사회에서 분출된 고뇌와 갈등을 화해하고 지향적인 가치관으로 인생을 구가하는데는 예술, 특히 문학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문화의 세기, 환경의 세기, 또는 테크노토피아의 세기도 우리 인간의 정서가 올바르게 구현되고 거기에서 새로운 창의력이 발현될 때 우리는 이러한 여망의 세기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바로 교육에서부터 자리 잡아야 한다는 명제가 있다. 정서의 교육은 인간성 회복을 위한 초석이다.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 풍토는 지양되어야 한다. 인성은 없고 목적 달성을 위한 경쟁만 있다. 사랑과 포용의 덕목은 보이지 않고 이기주의만 살아 남았다. 문학과 정서의 함수관계는 교육을 통해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은 자명하며 당면 과제일 것이다.*
(강연 자료)
가치관의 성찰 혹은 존재와의 화해
우리 인간들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혹은 문학은 왜 하는 것일까 하는 참으로 우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면서 쓴 웃음을 짓는다. 요즘처럼 재테크에 밝아서 투기를 하거나 복권 당첨 같은 요행으로 금욕의 성취에서 얻어진 물질의 풍요를 위해서 사는 것일까. 아니면 권리와 지위 명예를 위해서 사는 것일까. 21세기 현대인들의 가치관은 혼란스럽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과연 문학은 필요한 것일까. 거리에서 신음하는 노숙자 하나 구제하지 못하는 문학(옛날에는 쌀 한 됫박, 연탄 한 장도 보탬이 되지 않는 문학이라고 했다)의 기능이나, 극소수이긴 하지만, 시인 . 작가라는, 아니면 무슨 단체 회장이라는 명함을 내세워 문학외적인 잿밥에 현실 정치판처럼 설쳐대는 행태들은 어쩌면 우리 문학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라. 오늘도 순박한 서정을 바탕으로 우리의 아름다운 마음을 열 수 있는 작품 한 편을 창작하기 위해서 골몰하는 문인들을. 그들은 문학을 통해 인생과 삶의 가치를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곧 문학이 ‘나’의 존재와 공존하는 그 가치성을 절대시하면서 원고지(요즘은 컴으로 하지만)와 함께 살아간다.
일찍이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에서 말하는 ‘본시 있던 나’에게로 복귀하는, 말하자면 진정한 ‘나’의 존재를 탐색하고 확인하는 고독한 작업이 솔직한 나의 문학관이다. 문인은(특히 시인은) 무엇인가를 일상인(하이데거는 그냥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평균적인 사람을 ‘세상 사람들’이라 했다)보다는 정서의 지향이나 사유의 방식이 더욱 지적이어야 하고 건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시는 진정한 의미에서 나에게는 종교와도 같은 것이었다. 허탈과 굴욕에서 황사바람이는 현상의 어느 벌판, 이런 곳에 한 줄기 훈풍으로 영원히 남아 있었다. 가시거리를 순간에 잊어버렸어도 꿈으로만 엮어진 가난한 마음이 있었고 그 내부 깊숙이 언제나 섬광처럼 번뜩이는 커다란 사상이 깔려 있음은 오늘의 황사현상을 용케도 헤쳐 나온 원동력이었으리라.
이것은 1980년대 초반에『심상』지의 신인상 당선소감(‘불혹의 언어’)의 일부이다. 이처럼 나는 이 현실적 갈등과 고뇌를 오로지 문학(시)을 통해서 정화하려는 확고한 심저가 있었다. 그러나 어떤 저항감이나 특정의 이데올로기는 아니다. 당시 농촌의 보릿고개 시절, 그래서 지적 자양의 충전이 불가능했던 정서는 언제나 우울한 그림자로 나를 고통스럽게 이끌고 있었기에 친자연적, 향토의 토속적인 소재에서 인생의 의미 찾기와 존재를 성찰하는 시 세계로 몰입하게 된 것이다.
나는 가난한 농군의 아들이었지만, 철저한 유교정신의 근본으로 성장했기에 인본주의(휴머니즘)를 신봉한다. 공맹(孔孟)의 교리도 좋으나 장자의 물을 심취하는 연유도 그렇다. 시를 통해서 자아를 인식하고 가치관을 다시 정립하는 일은 문학에서 중요하다. 여기에는 성찰과 화해라는 상보성이 전제하지만, 여전히 상존하는 갈등과 번민을 해소하는 지적 혜안이 필요하게 된다.
이것이 내가 성취해야 할 문학적 과제이며 숙명이다. 인간의 고통과 자연의 파괴 등은 위정자나 특수 관계인들만의 정책으로는 해소하기 힘들다. 우리 문학이 참여해서 인간의 정신 승화와 자연 친화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삶의 궤적을 회상하는 독백이나 사물을 스케치하는 문학 시대는 이미 낡았다.
더구나 시인이란 가면을 쓰고 잿밥에만 연연하는 무리들은 이땅에서 척결해야 한다. 적어도 공자의 사무사(思無邪) 정도, 장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 정도는 실천하려는 시인이 존재해야 인본주의의 깃발 아래 진선미(眞善美)가 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로 타오르는 문학이 빛을 내지 않겠는가 싶다.
*(2007. 문학공간 <나의 문학관>)
왜 주변 시인들이 자꾸 떠나는가
일찍이 누군가가 생(生)과 사(死)에 관한 문제의 해답은 이전에 살고 있었던 지혜 높은 사람들에게서 얻는다고 했다. 실제로 먼저 떠나간 선인(先人)들에게서 살아가는 지혜와 지식들을 깨우치면서 나의 생명은 유지 발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생사의 문제는 태어남과 죽음의 중간에서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삶이 하나의 습관으로 지탱해 왔던 것이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가 중병(重病)으로 일찍 별세하는 운명에서 처음으로 직접 아버지의 주검을 대할 수 있었는데 사람을 이렇게 죽음의 길로 떠나 저승으로 떠나는구니 하는 어린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그후 할아버지와 백부모님과 종형(從兄) 몇 분이 먼저 떠나더니 이제는 나의 어머니와 친형과 친동생이 차례로 이 세상을 하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초상집 근처를 지나가지도 못했지만 상여가 나가는 모습은 피해서 숨었던 기억이 나고 동구밖 길모퉁이에 있는 상여집을 뀌신 나온다고 멀리 돌아갔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런데 부모형제와 사별(死別)하는 현장을 자주 대하면서 인간의 생명 곧 죽음은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는 지혜를 알게 되엇던 것이다.
나는 문단 40여년 동안 많은 문인들과 교류했다. 시상지에 등단하면서 발행인과 심사위원님들 그리고 심상시인회와 목월문학 포럼 등에서부터 한국예총에서 약 20년간 근무하고 한국문인협회에서 약 12년여의 기간 동안 문단 근처에서 얼쩡거리다 보니 많은 문인들과 공사간(公私間)에 많은 교감을 할 수 있었다.
거기에서는 문단의 어른들과 선배들 그리고 동료들, 후배문인들과 함께 문학행사를 하거나 무슨 모임 등에서 서로 소통(疏通)하면서 친분(親分)으로 발전하여 우의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와서 아쉽게도 이러한 지인 문인들의 부음(訃音)을 많이 대하게 되면서 어쩐지 나 자신도 공허의식 내지는 생명의 한계점이 어디까지 인지를 스스로 자문하기도 한다.
우리 문단에서도 나와 교감이 있었고 더러는 친구처럼 지낸 동료와 선배들이 운명을 달리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서 당황하면서 안타까워한 일이 많았다. 우선 <응시>동인으로 약 20년간 함께 시의 길을 걸어온 동인들이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윤강원, 김병학, 이무원, 황도제, 채수영 동인이 먼저 떠났다.
문단에서 평소에 존경했던 어른들, 황금찬, 조경희, 조병화, 전숙희, 박태진, 황 명, 김시철, 문덕수, 김윤성, 김남조, 홍윤숙, 박화목, 박재삼, 원영동, 윤병로, 신동한, 홍성유, 정을병, 박현령, 박명자, 함혜련, 박곤걸, 윤종혁, 장윤익, 진을주, 장백일, 최절로, 장석향, 원형갑, 장 호, 이성교, 성찬경, 구인환, 이 탄, 오학영, 김종길, 빅일동, 박재능, 박명용, 정공채, 김해성, 김경린, 강석호, 강 민, 이창년, 이근식, 하유상, 홍완기 김영태, 김병권, 최승범, 서영수, 이영호, 성기조, 신기선, 신동춘 김남환 정진규, 오탁번, 조정권, 이은방, 오찬식, 추은희, 추영수, 한기팔, 이상개 선생 등이 떠났고 소설가 유재용, 안장환, 김병총, 이길융, 염재만, 정병국, 김창동 형 등도 떠났다.
이 밖에도 더욱 가까이 친교로 문학을 나누었던 전재수, 신규호, 이수화, 박 찬, 이효녕, 송명진, 김용오, 문인수, 김솔아, 한택수, 이충이, 김종섭, 이 숙, 김기문, 배기정, 이기애, 신현정, 정공량, 정희수, 김정웅, 김종철, 박제천, 김건일, 박성배, 김윤호 등 아직도 문단 생활을 지속해야 할 청춘에 이승을 하직하고 저승으로 먼 길을 떠났다.
나는 직접 망자(亡者)의 빈소(殯所-대체로 병원 장례식장)로 문상(問喪)도 많이 다녔고 더러는 조전(弔電)을 치거나 조사(弔辭)와 조시(弔詩) 또는 추모시 등도 많이 써서 우편으로 또는 이메일로 보내어 유가족을 위로하거나 조문(弔問)의 예를 표시하기도 했었다. 이처럼 사람들이 떠나는 이유는 연세가 많아서 수명을 다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랜 병고(病苦)로 고생을 하신 분도 있고 어떤 이는 불의의 사고로 떠나는 이도 많이 있었다.
이처럼 시중에서 회자(膾炙)되는 담론은 문인들이 일찍 세상을 하직하는 것은 술과 담배를 좋아하고 책상에서 컴퓨터와 씨름해서 운동 부족이 발병의 원인이라고 말한자다. 대체로 살펴보면 내 주변의 주당(酒黨)들도 음주와 흡연을 즐기는 편이고 먼저 가신 이들도 모두 자기 자신의 건강은 챙기지 않고 무슨 낭만이다, 풍류다 하면서 생사를 초월하는 기품(氣品)들에 젖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 들어서 문상(問喪)을 가는 일이 많아졌다/ 절친(切親)이 이승을 하직한 장례식장에는/ 모두들 조의(弔意)만 표하고 나갔는지/ 상주들만 썰렁하게 조문(弔問)을 받고 있다// 할 일 못다 이룬 채 훌쩍 떠나버린 그의 영정은/ 그래도 웃음 가득 머금은 표정으로 / 생사의 행간에서 진한 눈물로 정을 나눈다// 내일이면 화장장에서 한 줌 재로 변할 육신/ 지옥이냐 극락이냐 따져볼 겨를도 없이/ 납골당 유골함에서 그는 잠들어 있겠지// 잘 가시오. 사고팔고(四苦八苦)의 고통을/ 훌훌 벗어던지고 영원한 안식을 구하겠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하직의 슬픈 섭리/ 마지막 곡성(哭聲)이 저 하늘 높이 울려 퍼진다
--「하직(下直)에 대하여」 전문
나는 어줍잖은 시 한편을 쓰면서 먼저 일생을 마치신 선현들의 글들을 읽고 문학 공부를 하던 문학지망생 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그때 읽고 감명 받았던 책들을 지금도 보관하고 틈나는 대로 다시 읽곤 한다.
김동리(수필집) 『사랑의 샘은 곳마다 솟고』 김승옥(산문집) 『내가 만난 하나님』
김동길(수필집) 『고독한 영혼과의 대화』 조지훈(산문집) 시인의 눈
법성스님(수필집) 『마음 한번 돌리니 극락이 예 있구나』
구 상(수필집) 『한 촛불이라도 켜는 것이』 조연현(산문집) 『문학과 사상과 인생』
이병주(산문집) 『허와 실의 인간학 』 백 철 <문학전집 4권>
김형석 에세이 전작집 5권 이어령 <전작집 12권>
하근찬(소설집) 『싯달다』 이희승(수필집) 『메아리 없는 넋두리』
이어령(수필집) <한국과 한국인 6권>
문학의 사회성 또는 시사성(時事性)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 고립된 상태에서 생활할 수 없다. 어떤 형태로든지 서로 교류하고 집단을 이루어 사회를 형성한다. 문학에서도 그 사회생활에서 떠날 수는 없다. 문학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회에서 직면한 현실로부터 끊임없이 주제를 찾아 낸다. 현대의 사회는 더욱더 그 기구가 복잡화하고 모순을 내포하고 있으며 불합리한 것이 가는 곳마다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문인들은 외부부터의 갈등과 고뇌를 시, 소설 등 문학에서 그 해법을 탐구하는 것이다.
특히 시(詩)가 사회에 참여하는 특성은 시대적 여망에 부응하지 못하는 복합적인 모순과 불합리 등에 대한 저항으로 개선이나 새로운 방향 전환을 위한 시사성이 내포된 시적인 절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을 살펴보면 저항시, 투쟁시, 참여시, 문명비판시, 반공시, 노동시, 전쟁시, 애국시, 환경시, 통일시, 투병시, 담 시 등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시적 발상이나 동기는 인간의 성정(性情)-오욕(五慾)칠정(七情) 중에서도 노(怒)에 해당하는 심리적인 혼란에 대한 충격과 각성(覺性)에 따른 사회적인 문제들이 시인들의 뇌리에서 진실의 지향적인 해법을 찾기 위한 창작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시인 매슈 아놀드는 시는 인생 비평이다 라는 말을 상기하면서 우리 시의 사회적 참여나 시사적인 요소가 회자(膾炙)되는 경우 몇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우리의 고전 시조에서 몇 가지를 추려보면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이를 반대하는 고려 충신들이 망국의 설움을 달래면서 노래한 것들이 많으나 이방원이 포은 정몽주를 만나서 회유책으로 노래를 불렀으나 포은은 충성심으로 답변을 거절하여 선죽교에서 철퇴를 맞고 최후를 맞은 사건도 있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얼켜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방원 하여가
이 몸이 죽고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의 단심가
한편 선조때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이순신 장군은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끗나니.”라고 읊었으며 인조때에 청태종 홍타이치가 굴욕적인 전쟁 병자호란을 일으켜 승리한 후 삼전도비를 세우고 수항단(受降檀)에서 인조로 하여금 치욕의 삼배구도구(三拜九叩頭)의 항복의 예를 올렸으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외에 많은 사람들을 인질로 잡아갈 때 전범(戰犯) 척하파(斥和派) 김상헌은 다음의 노래를 불렀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 시절이 하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현대시의 현실 참여는 역사성과 동행한다. 일제 강점기, 해방, 6.25 동란, 4.19 의거, 5.16 군사혁명, 유신, 5.18 민주운동 등 역사적인 사건과 문명의 발달로 요염된 환경문제, 인성 파괴문제 등등 이루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사례가 많다.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열거할 수 있응 것이다.
1) 저항시-일제 강점기-이상화(「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한용운(「님의 침묵」)
2) 4.19의 현장 및 추모-신동엽(「껍데기는 가라」) 김수영(「풀」)
3) 참여시=김지하(「오적」)
4) 시사시-정공채(「미8군의 차」) 김남주(「조국은 하나다」)
5) 전쟁시-*6.25-구상(「초토의 시 8」 ) 전봉건(「6.25」 연작) 등 시인들-종군작가단과 현역 군인들 *월남전-이동순(「위문편지-베트남 참전병사의 노래」) 김준태(「베트남 추억」)
6) 환경시-김송배(「폐수론」) 변세화(「자연 앞에 서고 보니」)
7) 기행시-김종상(「장가계」) 김송배(「브란덴브르크 문 앞에서」 등)
8) 노동시-박노해(「노동의 새벽」)
9) 문명비판시=김종해(「서울의 정신」) 김송배(「숲속의 대화」)
10) 이 밖에도 일상적인 사회생활에서 부딪히게 되는 다양한 문제들이 인간의 기본 윤리 개념이나 인격 또는 정의에서 벗어났을 경우 이를 사회성 범주에 넣고 있으며 소설에서도 남정현-(「분지」) 정을병-(「개새끼들」) 등이 사회성 짙은 작풍(作風)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에는 저항시와 참여시 또는 민중시라는 이름으로 현실 사회나 국가를 비평하는 반국가적인 작품들도 많이 볼 수 있었으나 시대(정치)의 변화와 역사의 기류가 평화와 안정을 염원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지향점이 본래 시의 위의(威儀)나 본령(本領)으로 돌아온 것 같기도 하다.
한때는 우리 문학사에서도 지울 수 없는 문학단체가 설립하여 이 세상을 뒤흔든 시대도 있었다. 한국민족문학작가회(약칭 민작)이라는 이름으로 좌편향의 정부와 순수문학다체들과 대립 양상으로 양분하여 서로 아웅다웅한 적도 있었다. 그후 민족이라는 이름이 빠지고 작품의 경향도 다양하게 나타나서 우리 문학 발전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시의 사회성 내지 시사성은 특정지어서 논할 것이 아니라 특수 목적시 혹은 행사시를 제외한 모든 작품들은 그 시대적 배경과 그 체험에서 획득한 상상력이 재생한 이미지를 사용했기 때문에 일상적인 생활에서도 모두가 현실에 참여하고 있으므로 사회성은 모든 문학에서 응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어떤 사안에 대하여 저항하기 위해서 혹은 성취하기 위해서 창작된 작품은 그 예외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이목을 집중시켰던 작품 몇 편을 적어둔다.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오적」-김지하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것다(중략)-/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중략) 오종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 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하고 목질기기가 동탁 배꼽 같은 천하 흉포 오적(五賊)의 소굴이렷다.(이하 략)
「조국은 하나다」-김남주
"조국은 하나다" /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 남모르게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 "조국은 하나다" / 권력의 눈 앞에서 /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 / 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 / "조국은 하나다" /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 나는 이제 쓰리라 / 사람들이 오가는 모든 길 위에 / 조국은 하나다라고 / 오르막길 위에도 내리막길 위에도 쓰리라 / 사나운 파도의 뱃길 위에도 쓰고 / 바위도 험한 산길 위에도 쓰리라 / 끊어진 남과 북의 철길 위에도 쓰리라 / 조국은 하나다라고(이하 략)
「미8군의 차」-정공채
나와 백년의 열차를 타야 할 / 그 여지는 / 그 사람이 운전하는 / 미 8군의 차를 탔다 // 바퀴는 나의 맨발이 못따르는 / 휘발유를 타고 / 바퀴는 / 굴러 갔다// 버드나무에 말을 맨 주둔 / 자본이 / 땅 위에서 황혼 때의 꽃밭같이 / 꽃으로 피었다 / 공주들은 / 주로 그 꽃만 좋아하였다 //그리고 달리는 바퀴 위의 미 8군의 / 차 안은 / 이러한 꽃으로 가득차 / 자본은 빛나도록 달리고 있다(이하 략)
「위문편지-베트남 참전병사의 노래 6」-이동순
나트랑 / 주월한국군 방송국에서는 / 저물 때까지 고국 어머님들의 위문편지 들려왔었다 / 울먹이는 목소리로 읽어가던 / 그 육성 편지 들으며 / 나는 참호 속에 들어가 기어이 눈물을 떨구었다 / 군화 코에 떨어지던 눈물 /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훌쩍이면 / 한바탕 소낙비 지나가고 / 참호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 왜 그리도 가슴에 크게 /울리던 것인지
지구촌 여행에서 착목한 신비의 세계
우리 문인들은 여행을 즐겨한다. 고래로 우리 선비들은 산천경개를 찾아서 거기에 펼쳐진 만유(萬有)의 대자연 속에서 새로운 견문을 발견하는 좋은 계기가 되고 그곳 정경에서 감응(感應)하는 더욱 지혜로운 사유(思惟)의 방식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플로베르는 여행은 인간을 겸허하게 하고 세상에서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입장이 얼마나 하찮은가를 두고 깨닫게 한다는 말로 여행의 진의(眞意)를 말하기도 하고 이어령 교수는 정신의 편력은 경험의 편력과 맞먹는다. 여행의 양이 곧 인생의 양이라고 까지 여행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국내 여행은 물론이고 세계의 여행도 자주 한 편이다. 물론 근무지에 따라서 출장이라는 명목으로 갔거나 각종 심포지엄에서 진행자나 토론자 또는 발표자의 자격으로 전국을 누비거나 지구촌의 많은 나라들을 찾았고 때로는 그냥 참가자로 참석하여 세상의 풍물들을 직접 확이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며 거기에서 얻은 이미지들이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것들을 많았다.
대체로 살펴본 여행지는 대만, 일본, 중국, 몽골,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폴 등 아시아 국가를 비롯하여 유럽 5개국-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북유럽 영국,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그리고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독일, 등을 여행하여 우리와 다른 서구문명들의 정교함에 놀랐다.
그리고 호주와 뉴질랜드. 러시아와 미국, 캐나다, 멕시코, 쿠바, 인도, 이집트 등을 둘러보고 선진국들의 생활상을 비롯하여 풍물 등에서 감응하는 사유의 범주가 확대되는 것을 느꼈다. 이들 중에서도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건축물이나 자연 풍광들은 오랜 시간의 역사 속에서도 불변의 사적(史蹟)으로 몇 천년을 우뚝 서 남아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라스베가스나 그랜드캐니언, 캐나다의 로키의 빙산, 나이가라 폭포, 멕시코의 칸쿤과 치첸이사, 쿠바의 하바나 풍경, 바티칸시의 성 베드로성당,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 중국의 만리장성과 진시황의 병마용갱, 돈황의 막고굴, 캄보디아의 앙코르왓트, 베트남의 하롱베이, 인도의 타지마할과 바라나시 갠지스강, 이집트의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아부심벨, 터어키의 파묵칼레와 갑파도키아 뉴질랜드의 최남단 밀푸드사운드 등등은 현대 문명사회에서도 축조하기 힘든 건축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구촌 기행중 그 웅장함과 특이한 건법(建法)에 감동한 명승지를 기록하여 영원히 그 멋과 사실(史實)을 음미하고자 시로 남겨 보았다. 그러나 돈황의 막고굴과 이집트의 룩소르, 그리고 미국의 모하비사막과 라스베이가스, 그랜드캐니언, 멕시코의 치첸이사, 쿠바의 밤풍경 등등은 계속해서 기행시로 창작될 것이다.
ㅇ 중국의 만리장성과 병마용갱,
중국에 와서 만리장성을 오른다/ 서늘한 바람 한 줄기 등에 업고/ 성곽의 장엄함보다/ 내 발 밑에 뚝뚝 떨어지는 눈물/ 맹강녀의 눈물이 먼저 밟힌다/ 그대여, 오늘도 성곽 저 바깥/ 어디쯤에서 목쉰 사랑을 찾아 헤매는 메아리/ 그대 빈 가슴에 어린 피멍울/ 만리장성을 오르며 오늘은/ 찬란한 역사의 유물이기를 거부하는/ 이 을씨년스런 내 발자국엔/ 그대가 띄워 보낸 회한의 한숨소리만 아득하다/ 서늘한 바람 한 줄기로 만난 전설 속 그녀/ 그대와 함께 만리장성을 오른다.
--「만리장성에서-맹강녀(孟姜女)와 함께」
죽은 진시황을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거대한 전사들의 모형을 복원했을까/ 장수(長壽)하기 위해 불로초(不老草)를 구했다더니/ 사후(死後)에도 영생(永生)을 꿈꾸었는가/ 흙으로 빚은 병사들과 병기와 말들/ 거대한 규모와 정교함은 불가사의다// 첫 번째 왔을 때는 한창 발굴중이라서/ 허술하더니 지금은 완전한 관광지로 변했다/ 1호갱의 웅장함과 2,3호갱 외/ 병마용박물관에는 도용(陶俑)의 전시물들이/ 중국 역사의 증인으로 남아있다/ 진시황이여, 살아 육신의 보존도 중요했으나/ 죽어 영혼의 방황은 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와와, 모두들 함성은 높아지는데/ 저기 산등성이 그의 무덤은 수은으로 덮혀있어서/ 발굴은커녕 접근도 금지였다/ 지난날 피나는 제왕의 유물들이/ 잔혹했던 역사의 현장에서 씁쓸하게 돌아서고 있었다.
--「서안 진시황 병마용갱에서」
ㅇ 캄보디아의 앙코르왓트
어떻게 밀림 속에 이런 웅장한 사원을 만들었을까/ 폐허의 옛 도시 계단형 피라미드형 구조/ 아아, 하는 경외감이 갑자기 진동한다/ 한 시간 넘게 돌아본 외벽에는 전투장면/ 신의 영역인 높은 중앙탑 가파른 성벽을 기어올라/ 신에게 예의를 표하고/ 미물계 인간계 천상계를 알현하면서/ 무엇인가 울컥하는 마음으로 기원을 했다/ 세계의 불가사의-앙코르와트,/ 우리는 다시 앙코르 톰으로 갔다/ 바이욘 사원보다는 거대한 나무뿌리가 파고 든/ 타프놈 사원의 신기한 현실에 압도당했다/ 나무의 생생력이 건물을 뒤덮는 위력/ 이 진기한 장면에서 아, 그러나/ 지금은 도굴꾼들이 사원을 파헤쳐 안타깝게도/ 그 많던 유물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앙코르 왕조 그 시대의 건축술과 예술성에/ 감탄, 감탄, 영원히 남아 빛나거라,/ 때마침 저 밀림 위로 밀려가는 구름 한 점/ 사원과 어우러져서 살아 숨을 쉬고 있었다.
--「앙코르와트 관람」
ㅇ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아부심벨
불가사의의 이집트 유산 피라미드/ 사하라사막의 바람이 불어온다/ 거대한 왕의 무덤 앞에/ 신화 속의 동물 스핑크스가 있었다/ 절대 군주 쿠프, 카푸라, 멘카우라 왕 / 세 왕을 지금까지 지키는 수호신/ “아불하불” “공포의 아버지” “태양의 아들”/ “살아있는 형상” 얼굴 한 쪽이 파손된 채/ 4,500년의 전설을 들려주고 있었으나/ 위대한 역사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일강 상류 아스완에서 기자까지 / 이 돌들을 싣고 와서 높이 쌓았다는/ 2.5톤 무게의 돌들이 빚어낸 정교한/ 신비의 건축물은 피라미드는 불가사의다/ 고대 이집트의 축조(築造)/ 기술에 놀라지만/ 피라미드 내부에는 텅 비어있었다/ 부장품들을 모두 도굴해 갔을까/ 실망스런 표정으로 돌아 나왔다/ 바깥에는 열사(熱沙)의 사막 모래바람이/ 전신을 혼란으로 흔들고 있었다.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새벽부터 아침 도시락을 싸들고/ 무장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어둠에 묻힌 사하라사막을 달리고 있었다/ 먼동 트는 아스완 댐의 호숫가 언덕 위에/ 웅장한 위용으로 서 있는 아부심벨/ 아스완 댐건설로 수몰 위기에서/ 이곳 사암(砂巖) 절벽으로 옮겨졌다/ 입구에 람세스 2세의 거대한 네 개의 석상/ 하나는 지진으로 무너지고/ 남아 있는 좌상(坐像)은 3,300년의 긴 세월을/ 나일강 흐르는 이집트 역사를 응시하고 있다/ 대신전을 돌아보고 옆 작은 시전으로 갔다/ “가장 아름다운 여인” 그의 아내 네파르리타/ 전장에 함께 머물면서 남편을 지원하고/ 긴 전쟁을 평화조액으로 이끄는 외교술도 발휘하던/ 사랑하는 왕비를 애통해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집트 한 시대를 풍미(風靡)했던 파라오 / 유적지에서 가슴 뭉클한 전설을 새기며 떠난다.
--「아부심벨 파라오」
ㅇ 인도의 타지마할
무굴제국 샤쟈한 왕이 왕비 뭄타즈 마할이/ 아이를 낳다가 죽은 아내의 무덤이다/ 유네스코의 ‘신세계7대 불가사의’ 선정/ 인도의 자부심이며 자랑이다/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이 줄을 섰다/ 대리석으로 빛나는 사후의 궁궐/ 사쟈한 왕이시여/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를 안치하기 위해/ 22년간의 오랜 공사를 통한/ 사랑의 결정판, 아아, 그러나/ 수십만 명의 희생과 그 영혼들/ 천문학적인 국고의 낭비는/ 당신의 광적인 집념과 맛바꾸었는가/ 이 무덤을 설계한 건축가에게/ 완성한 후에는 눈을 멀게 하고 손을 잘라/ 후세에 이런 건축물을 못짓게 했다는 잔인함/ 당신도 아들에게 쫒겨나는 비극의 말로/ 아그라성 무삼만 버즈에 8년을 갇혀 / 타지마할 쪽 아내를 그리며 쓸쓸히 죽어갔다/ 권력의 무상이여, 역사의 비참함이여/ 오늘도 야무나강은 무심히 흐르고 있었다.」
----「타지마할」
ㅇ 캐나다의 나이아가라 폭포
캐나다 몬트리올 쪽에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찾아 갔다/ 우선 파란색 우비를 착용하고/ 유람선 ‘안개속의 숙녀호'를 탔다/ 갑판 위에서 물보라에 흠뻑 젖으며/ 폭포 아래 가장 가까이 다가가면/ 우람한 모습에 매료된다/ 캐나다 원주민이 ‘니아가드’라 부르면서/ ‘천둥소리를 내는 물’이 되었다/ 높이 54m, 폭 670m-/ 12,000만년 전 빙하기에 형성되었다는/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나이아가라 강을 빠져 나왔다/ 미국과 캐나다가 강 중심에/ 국경을 그어놓고 관광객을 맞고 있다/ 폭포 위 거대한 이리 호에서 온타리오 호로/ 흘러가는 물의 향연/ 지금도 장엄한 위용(威容)에 주눅이 든다/ 이 지구상에는 불가사의(不可思議)가 많다
--「나이아가라 폭포」
여행은 좋은 추억을 만들고 견문을 넓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구나 외국 여행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이라도 하듯이 새로운 신대륙을 발견하는 것처럼 세상 풍광과 역사의 현장들은 신비의 이상향을 통한 문학적인 이미지를 무한으로 제공해 준다. 나는 이것을 오래동안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꿈의 세계에서 비행하듯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자 한다.
무하유(無何有)에 대한 상상의 지류(支流)
요즘 와서 옛날에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하던 고전을 다시 읽는 시간을 갖고 오래전에 쌓아두었던 책 중에서 『莊子』(장주(莊周) 저. 송지영 역해)를 꺼내어 먼지를 털어내고 책장을 펼친다. 옛날에 읽었던 대목이지만 차근차근 재독(再讀)하면 그 맛이 더욱 곱씹어지면서 새로운 미각(味覺)에 흡인(吸引)되고 만다.
여기에는 수많은 지식과 지혜가 담겨져 있으나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소요유(逍遙遊)」에 대한 장자의 이런저런 담론에서 큰 감명을 받아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고 느껴도 약간 뜬구름 이야기 같아서 얼른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평소에 존경하는 한양대학교 윤재근 교수의 『말하는 에세이』에서 에세이 「그리고 장자의 매력」이란 글에는 소요유에 대한 자세한 그의 해박한 필치로 에세이와 연결시키고 있다. 그는 장자를 수필가로 명명하면서 『莊子』의 내용 전체를 수필이라고 말한다. 특히 소요유는 “언어가 상이 되어야 만 갈래의 말을 할 수 있다는 비밀을 만나게 된다”는 요지로 『莊子』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 내용 첫 페이지에 「소요유(逍遙遊)」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를 시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현현된다.
장자는 왜 붕(鵬)새를 통해서/ 구만리 장천(長天)을 날게 하였을까/ 아무 걸림 없는 창공을 유영하면서/ 무애(无涯)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세상은 우리들의 삶을 아프게 / 때로는 분노로 치솟는 분수가 된다/ 붕새는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 무위자연의 무한한 삶을 허공에/ 유유자적으로 광명의 빛을 뿌리지만// 여기 심약한 텃새 한 마리는 / 방향감각을 멈춘 지 오래/ 아득히 멀어지는 열망의 꿈은/ 오늘도 자승(自乘)의 울타리를 두른다.
--「소요유(逍遙遊)에 대하여」
장자의 소요유를 떠올리면 조주스님의 무소유가 다시 뇌리를 스친다. 평소에 해인사 성철스님과 법정스님은 퇴설당에 머물면서 일생을 통해 무소유의 삶만이 인간의 진리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설파했다. 진정한 무소유의 삶은 물질 없이 사는게 아니라 그 그운데서도 마음마저 어떤 형식에 억매이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한세상 살아가면서/ 불필요한 것은 갖지 말아라/ 가나하다고 부를 탐하지 말아라/ 법정스님은/ 버리고 비우는 지혜로운 삶을/ 실천하셨다/ 아, 짧은 한생애에서 과연/ 썩은 쓰레기 같은 탐욕을 버릴 수 있을까/ 무심하게 쳐다본 공중에는/ 모두 버리고 비운 맑은 영혼 하나/ 공(空)의 무념무상의 향기로/ 허망의 얼룩을 지우기 위해/ 그의 잠언을 새기면서/ 그를 닮아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다.
--「무소유에 대하여」
어느 날 탁발승 엄양존자가 선승(禪僧) 조주선사를 친견한 자리에서 "하나의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을 때는 어찌 합니까"" 하고 물으니, 선사는 "방하착(放下着) 하라"고 답한다. 이에 엄양은 다시 물었다. "한 물건도 갖고 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방하하라는 말씀이신지요?" 하고는 몸에 지닌 염주와 지팡이를 내려놓고 선사의 눈치를 살피니 선사께서는 바로 "착득거(着得去) 하시게." 라고 말했다. 세상을 살면서 자연스레 득했던 모든 것을 비우고 다시 모든 걸 지고 가라는 뜻의 선문답을 주고받았다는 내용이다. 인생은 空手來 空手去란 말과 같이 사물의 모든 것은 공(空)인데 하물며 인간에게서 온갖 번뇌와 갈등, 원망, 집착, 애착, 이득과 손실 등등에 얽힌 모든 것을 부처님께 공손히 바치고 나와 내 것에 매달려 어리석은 아집으로부터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뜻이 방하착(放下着)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이처럼 내려놓은 어리석은 아집들을 버렸는데 이것이 이 세간에 오염된 쓰레기로 남겨두지 말고 이 세상 떠날 때는 저승까지 모두 가지고 가라는 것이다.
또한 『莊子』 〈응제왕(應帝王)〉》편에서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른바 무위자연의 도가 행해질 때 도래하는, 생사도 없고 시비도 없으며 인위적인 것도 없는 참으로 행복한 곳, 또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무하유지향’은 ‘현실적으로는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가리키는 말인 유토피아(Utopia)와 동일한 개념을 가진 말이다.
서양에서 말하는 ‘유토피아’는 어느 곳에도 없는 땅이라는 뜻으로, 바로 장자가 말한 ‘무하유지향’이다. 그러고 보면 이상향에 대한 동경은 동서양의 구분이 없는 것 같다.
이 세상 천지에 아무 것도 없다는데/ 어째서 무엇인가 있다고 우기느냐/ 내가 가진 것 모두 탈탈 털어 버리고/ 허름한 빈 마음의 껍질만 남았는데/ 아직도 한 구석에 뭔가가 지워지지 않았다네// 장자께서는 “아무 것도 없는 곳”이 있단다/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있지 않은 곳,/ 아무 것도, 어떤 것도 없는 곳/ 우리 인간들이 상상할 수 있는 이상향/ 유토피아(Utopia), 이런 곳이 어디에 있을까// 현실적으로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곳/ 무위자연(無爲自然) 생사와 시비가 없는/ 참으로 행복한 곳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이제라도 훌훌 벗어버리고/ 장자처럼 그곳을 찾아서 떠나자/ 얄팍한 지혜나, 입신출세나 욕망을/ 내던지고 오로지 도가(道家)의 생을 살다간/ 현인(賢人)들과 함께 한생을 마무리하자.
-- 「무하유(無何有)에 대하여」
이러하듯이 인생 80을 살면서 이제야 철이 드는지 몰라도 나의 시적인 발상이나 주제의 절리는 마음 비우기를 지향하는 무소유나 방하착 그리고 착득거에 이르기까지 공(空)의 세계로 갈구하다가 무하유지향까지 연상(聯想)하는 철학적인 인생론을 심중에 고뇌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나의 작품의 시제(詩題)에서 볼수 있듯이 무자서(無字書)와 무현금(無絃琴)과 같은 공의 경지에서 인생과 시인의 자세를 가다듬는 만년(晩年)의 자성(自性)정신에 몰입하면서 한(限)으로 얼룩진 일생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어둠속에 쉬고 있는 묵언의 표정들
언젠가 말한 바 있는 문단 대원로시인이 나더러 시를 쓰는데 국어사전을 몇 번이나 읽었느냐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사실 국어사전이 인기소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엑션 만화도 아닌데 이걸 몇 번씩이나 읽었느냐고?
아니다. 그런 일 이후 3개월도 안되어 원고 청탁을 받고 신작시를 쓰는데 웬걸, 우선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유는 언어가 부족했던 것이다. 지난 습작기에 썼던 단어만 생각날 뿐 도무지 새롭고 참신한 말은 꽉 막혀있었던 것이다.
나는 당장 교보문고 달려가서 국어사전, 이것도 출판사가 다른 것을 3권 구입해서 안방에, 마루에 심지어 화장실에까지 던져두고 틈나는 대로 무작위로 펼쳐서 그 낱말의 묘미에 흡인되면서 언어훈련을 했던 것이다.
아아, 그 어른의 말이 맞구나. 시인은 오로지 언어에 대한 깊은 감응과 응용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어 그날 이후에는 국어사전뿐만 아니라, 글쓰기에 필요하다가고 생각되는 사전을 구입하고 시와 산문 등 집필할 때에는 항상 옆에 두고 참고했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은 인터넷이나 핸드폰에서도 사전이 입력되어 있어서 시간이나 장소를 불문하고 어려운 단어나 특히 한자어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문학은, 특히 시는 언어의 예술임을 절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수시로 모아본 사전류는 다음과 같다. 사실 글쓰기에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보고임에 틀림없다.
우리말 갈래사전(박용수). 한길사. 우리말 깨달음사전(조현용). 하늘연못
우리말 분류사전 상하.(남영신). 한강문화사. 우리말 상소리사전(정태륭). 프리미엄북스
우리말 활용사전(조항범). 예담 좋은말사전(경동호). 지문사
띄어쓰기사전(이선구). 국어닷컴 겨레말 갈래큰사전(박용수). 서울대출판부
겨레말 용레사전(박용수). 서울대출판부
민족생활어사전(이종훈). 한길사. 중국고사성어사전(이원수). 문화출판공사
철학소사전(김성휘 옮김) 이문출한사 시학사전(이정일) 신원
문학상징사전(이승훈) 교려원 한국문예사전(편집부). 어문각
한국속담사전(최근학). 문화출판공사 유머사전(최성호). 문학마을
한국수수께끼사전(김성배). 집문당 외래어사전. 한국교열기자협회 편
문학용어서전(최상규 옮김). 보성출판사 문학비평용어사전(김윤식). 일지사
세계문학비평용어사전(이명섭). 을유문화사 시의 사전(김희보) 종로서적
세계문예대사전(문덕수). 교육출판사 문학용어사전. 청어출판사
국어국문학사전 상하. 한국사전연구사 한국근대문인대사전(궝영민). 아세아문화사
한국현대문인대사전 상하.(권영민). 아세아문화사 문학사전(문무학). 이상사
민족문화대사전 상하.(김용덕). 청솔 한국현대시대사전. 을지출판공사
문장백과대사전(이어령). 금성출판사. 한국문학사전. 예술원
금성 국어대사전. 금성출판사 뉴에이스 국어사전. 금성교과서주
동아신콘사이스 국어사전. 동아출판사 엘리트 영한소사전. 시사영어사
에센스 영한사전. 민중서림 뉴에이지 영한사전. 교학사
신한영소사전. 민중서관 신한영소사전. (주)동아
실용한자소사전 . 교학사 漢韓大字典. 민중서림
일찍이 이어령 교수는 사전이란 언어의 시체들이 묻혀 있는 공동묘지라고 했다. 결국 활용하지 않으면 그냥 어둠 소게 묻혀있는 언어들의 시체일 뿐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진리란 사전에 적혀 있지 않다. 참되 예술가는 언제나 사전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새 말을 발견하기 위해 고심한다고 했다.
사전에는 두 가지 용법이 있다. 국어, 영어사전과 같이 어휘를 모아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표기법, 발음, 어원, 의미, 용법 따위를 설명한 책을 말하는 사전(辭典)이 있는가 하면, 여러 가지 사물이나 사항을 나타내는 말을 모아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고 그 각각에 해설을 붙인 책을 말하는 사전(事典)이 있어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서 우리 글쟁이들은 필수적인 동반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다른 말로 사서(辭書), 사림(辭林), 어전(語典)이라는 말로도 부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시를 창작하면서도 수필이나 칼럼도 청탁을 많이 받는 편이라서 어쩔 수 없이 평소에 소양(素養)이 부족해서 다채로운 사전의 신세를 많이 지는 편이다. 거기 캄캄한 어둠 속에서 쉬고 있는 말들을 깨워서 나의 목적 달성에 협조를 구하고 동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문학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듯한 <잡학사전>도 나는 보물로 다루면서 항상 그의 박식(博識)한 설명에 경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각 향토별로 전해지는 <각 지역별 방언사전>은 아직 갖지 못해서 아쉬울 때도 있었다.
옛날에는 영어 단어를 외운다고 치부책 같은 작은 종이책에 깨알처럼 빽빽하게 메모를 해서 가지고 다니면서 틈나는대로 꺼내어 읽었던 기억은 영어사전을 통째로 지니고 다니기가 불편하니까 이런 방법도 통용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으리라 생각 된다.
첫댓글 이 밖에도 많은 기행의 글이 있으나 따로 [김송배 기행시집]을 발간하기로 준비중에 있음을 알립니다.
--김송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