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도우심에 맡겨라
스승이 제자의 손을 잡고 그린 그림은 스승의 작품입니다. 붓을 잡고 손을 놀리는 것은 제자지만 스승이 그 움직임에 손동작을 더하고 획을 그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붓놀림에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 공은 스승의 것입니다. 그런데도 제자를 칭찬하는 것은 제자가 스승의 동작과 지시에 자신의 손을 유연하게 내맡겼기 때문입니다. 신적 사랑이 그 거룩한 움직임을 우리에게 새겨넣거나 우리가 신적 사랑에 자극받는 것은 훌륭한 행동입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데 특별히 봉헌된 이들의 고결한 행동은 신적 사랑에서 각별한 영향을 받습니다. 성별된 주교와 사제는 인호로 새긴 종이 되어 하느님을 섬길 것을 서원합니다. 수도승들은 종신서원을 함으로써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마 12,1)이 됩니다. 하느님 뜻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피정으로 자신의 영성 생활에 자극을 받고 스스로의 행실을 바로잡고자 노력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로욜라의 이냐시오는 사람들이 소홀히 여긴 영신수련을 재발견하고 새롭게 실천했습니다. 스스로 하느님의 거룩한 선을 떠받드는 성실한 종이 된 사람은 이로써 모든 활동을 하느님께 봉헌한 셈입니다.
누구나 여러 날에 걸쳐 하게 되는 피정의 가치를 인식하고 생전에 적어도 한 번은 영신수련을 해야 합니다. 이 피정은 영혼을 정화하고 온전히 하느님을 따라 살겠다는 결심을 불어넣어 줍니다. 다른 곳에서 필로테아에게 이야기했듯이 해마다 영적 성장을 정검하고 날마다 새롭게 자신을 봉헌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화살기도를 바침으로써 하느님 사랑에 결합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들어 올린 상태에서 끊임없이 우리 영혼을 하느님께 바칠 수 있습니다. 하느님 곁에 머물며 끊임없이 사랑의 언어를 속삭이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해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다음의 짤막한 기도를 활용해 보십시오. "주님,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나의 연인은 나의 것, 나는 그이의 것."(아가 2,16) "하느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십니다." "예수님, 당신은 저의 생명이십니다." "저를 버리고 오직 당신만을 위해 살게 하소서." "오, 하느님 안에서 산다는 것!" "오, 하느님 안에 머문다는 것!" "하느님 외에 그 어떤 것도 제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손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긴 영혼이 행복한 까닭은 단 한 번 짤막하게 한숨을 쉬고 하느님을 바라보기만 해도 자신의 투신을 확인하고 새롭게 쇄신하기 때문입니다. 지속적 기도는 사랑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이는 일상생왈에서 이루어지는 보잘것없고 평범한 활동에 특히 유익합니다. 대단한 영웅적 행동을 하듯 우리 마음과 영혼을 하느님께 들어 올립시다. 정신을 집중하여 영원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봅시다.
하느님은 영원으로부터 지금 이 순간을 준비해 오셨습니다. 이 기회를 끌어안으십시오. 이루어질 순간을 기다리며 선을 행하십시오. 피할 수 없는 악은 견디고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십시오. 이것이 영적 활동을 수행하는 길입니다. 오랜 시간 도전이 지속되거든 짤막한 기도를 바치십시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마태 11,26)
테오티무스여, 이 같은 실천 속에 그대를 위한 보화가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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