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보(허순양)의 일성은 "축하한다"가 아니라 "짐승이다" 였다. 앞산에서(마이하우스 입구) 비슬산 대견봉 까지 왕복종주 42km, 휴식포함 총소요시간 10시간, 정말 꿈같은 하루 산행이었다.
지난 2주간 회사일로 무척 바뻤다. 서울, 부산, 구미, 천안등을 다니며 컨택센터 아웃소싱 영업 활동으로 몸과 마음이 거의 탈진되었었다. 하루쯤 재 충전의 기회가 필요할것 같아 10월 8일 토요일은 그냥 시골에 가서 어머니 께서 기르시는 오골계나 한마리 백숙하여 먹으면서 쉴려고 했다. 10월 8일, 시골에 갈려고 늦은시각인 8시에 기상했다. 몸이 약간 무거웠으나 그리 나쁜 컨디션은 아니다. 커튼을 제치고 창문을 열어보니 청명한 가을하늘에 강한 햇살이 비친다. 순전히 날씨 탓이었다. 나도모르게 시골에 가야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베낭을 챙기기 시작한것은... 혼자있으니 챙길것도 없지만 냉장고를 열고 있는데로 준비했다. 포도 거봉 한송이, 포카리 스위트(1L), 물 (1L), 미싯가루 탄 우유 (1L), 찰떡 한조각, 사과1개, 그리고 여벌 티셔츠와 반바지 한벌 , 비상용 헤드란턴 이게 전부였다.
어디로갈까? 팔공산종주와 비슬산종주 중 택일하기로 하고 일단 아침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종주산행이고 점심은 행동식으로 결정 했으니 아침을 든든히 먹기로 하고 내가 즐겨가는 아침식사 장소 '마이하우스'로 갔다. 든든하게 먹었다. 야채죽 2공기, 전복죽 1공기, 토스트 1조각, 치킨버넷 3조각, 야채 사라다 1접시, 그리고 후식으로 과일 1접시. 팔공산 종주산행은 10월 23일과 10월 30일에 2차례나 계획되어 있으니 앞산에서 비슬산까지 21키로를 종주하기로 결심했다. 올때는 자연 휴양림 쪽으로 내려와 현풍으로 이동하여 시외 차편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2년전 대구에 파견 5개월 근무를 하던 때부터 무척이나 완주해 보고 싶었던 코스였고 야수회 산행때도 이광희 총무에게 몇번이나 물어보았던 코스였다.
정확히 09:30분 마이하우스 정문을 나섰다. 야수회가 야간등반하던 약수탕 코스를 거쳐 쵸코파이 언덕까지 올랐다. 정각 10시였다. 30분만에 쵸코파이 언덕까지 올랐으니좋은 컨디션이다. 쉬지않고 전진했다. 오늘 산행은 1시간 산행에 5분 휴식으로 결정했다. 앞산 정상을 지나 산성산 방향으로 가는 헬기장 까지 갔다. 10:30분이었다. 5분간 휴식. 다시 산성산 방향으로 가다 청룡산으로 들어가는 기점에 도달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출발했다. 청룡산 4.2km 라는 팻말이 당당하다. 뜻밖에 길이 상당히 좋다. 뒤돌아 볼 것도 없고, 목적 산행이라 빠르게 전진했다. 11:40분 청룡산 정상에 도착했다.
여기서 표식판을 눈여겨 보지 않고 앞만 보고 좌측으로 전진했다. 10여분 전진하다 보니 길은 길인데 육감적으로 길이 아니었다. 산행원칙중에 길을 잃었을때는 확실한 장소로 회귀하여 이정표를 다시 보고 전진해야 한다. 다시 청룡산 정상 헬기장으로 돌아와 방향을 보니 확실히 잘못 길을 들었다. 비슬산 방향으로 길을 확인하고 포도 반송이, 청량음료수를 한모금 마시면서 5분간 휴식하고 12시 정각에 다음 목표를 향해 출발했다.
수밭골 삼거리까지 2.8km표식판이 있었다. 비슬산까지 10km남은 셈이다. 초행이라 옳게 방향을 잡고도 안전을 위하여 가다 종종 만나는 사람마다 길을 다시물었다. '비슬산 가는 방향이 맞느냐고'. 왜냐하면 비슬산 이정표는 나타나지 않고 계속 용연사 방향만 표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몇개의 능선을 넘었을까. 오르락 내리락 -길은 육산이라서 걷기가 편했다. 드디어 약수탕 100m 라는 표식판이 있고 고개능선(가는방향으로 왼편)나무판위에 양각으로 표시한 이정표가 나타났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용연사. 바로 직진하면 비슬산 정상, 뒤로는 청룡산이라고 세겨져 있다. 청룡산 ↔ 현재위치(6km, 4시간), 현재위치 ↔ 비슬산(2.8km, 2시간)이 표시되어 있다. 현재시간 13:55분, 6km의 4시간 소요표시 거리를 1시간 55분만에 쉬지않고 내달려 도착한 셈이다.
허기도 지고 발도 아프고 해서 5분간 휴식, 남은 포도 반송이, 미숫가루 0.5ℓ 찰떡 한 조각을 점심으로 요기 하고 정각 14시 다시 출발했다. 이제부터는 계속 오름길이다. 속도를 조금 줄여서 목적지인 대견산 정상을 거쳐 대견사지터까지 오늘 산행 목표로 삼았는데 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뒤를 돌아보니 육감적으로 산꾼이 쳐올라오고 있었다. 흘낏 쳐다 보았더니 반바지 차림, 반베낭에, 낮익은 다리근육, 분명 선수 였다. 어쩔까? 양보할까? 거의 4시간 30여분의 산행으로 다리도 제법 묵직한데...그런데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써 그를 의식하고 경쟁심이 발동해 스퍼트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좋다!! 추월당하면 오늘 산행은 비슬산 정상까지 하고 버스로 회기하고, 추월 당하지 않으면 다시 앞산으로 왕복종주 회귀 산행을 하겠다'고... 결국 대견봉까지 2.8km를 한번도 쉬지 않고, 보이지는 않았지만 쫒고 쫒기는 암묵의 경주가 시작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비브리함 등산화를 신지 않고 릿지화를 신었음에도 발바닥이 아픈것을 제외하고는 호흡, 체력, 스피드 다 좋았다. 추월당하지 않았다. 결국14시 40분에 1,083.6m 대견봉에 내가 먼저 도착한 것이다. 2.8km의 오름길을 40분만에 주파했다. 아마 그 선수도 이마와 등줄기에 땀좀 흘렸을 게다. 대구 '마이하우스'기점 에서 부터 21키로를 5시간 10분 만에 완주를 한 셈이다. 뿌듯한 자부심과 함께 욕심이 생겼다. 지난번 산행때 이광희 후배가 '어떤 사람은 앞산에서 비슬산까지 당일 왕복 종주하는 사람도 있다던데요' 하는 말도 생각나고 마지막 선수와의 승부에서 자신에게 다짐한 약속도 생각나고, 야수회 멤버중에 당일 왕복종주한 기록도 남기고 싶고, 자연 휴양림으로 내려가 현풍으로 이동하여 대구로 다시 돌아 오는 시간도 Back하는 것보다 별로 빠를것 같지도 않고 해서 왕복 종주 하기로 결심했다. 결국 내가 이광희 후배가 말한 어떤 사람이 된 것이다.
대견봉쪽에서 청룡산 방향을 둘러 보았다. 가물가물하다. 순간적으로 마음의 갈등이 심하다. 혹시 내 다리가 버텨줄까? 베낭을 살펴 보았다. 미숫가루탄 우유 반병, 사과 1조각, 물 0.5ℓ, 늦을걸 대비하여 미리 준비한 헤드란탄 이게 모두다. 청룡산 까지 15여키로를 3시간에 주파 할 수 있다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청룡산에서 앞산까지는 길도 넓어 좋고 청룡산까지 가면 거기서 앞산까지는 6km 정도라 늦어도 부담이 없을것 같았다. 일단 왕복 산행 결정을 내리자 마음이 안정 되었다
15:00정각. 대견봉을 뒤로하고 앞산을 향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나무표식판이 있는 삼거리 안부에 도착시간이 15:40분, 물을 보충하기 위하여 약수탕(0.1km)으로 내려갔다. 몇몇 산꾼들이 도토리묵에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한담하고 있었다. 약간 떫은 냄새가 나는 약수를 한바가지 마시고 수통에 가득채웠다. 돌아갈때 먹어야 하는 비상식량과 식수는 사과 1알하고, 우유탄 미싯가루 0.5ℓ, 한통의 물이 전부다. 큰 다라이에 가득 담겨진 캔맥주를 보니 시원한 맥주 한잔이 생각났으나 오히려 산행에 지장을 줄까봐 내려가서 마시기로 하고 미뤘다.
15:50분 청룡산을 향하여 다시 출발했다. 처음 앞산에서 비슬산으로 갈때는 줄곳 능선길을 타고 갔는데 이제는 여유도 생기고, 뱡향 감각도 체득하여 우회길로 돌아 도 마음이 편안했다. 이후로 앞산 근처에 올때까지 한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16:50분 이름모를 산정상에서 5분간 휴식을 하면서 마지막 남은 사과 1알, 우유탄 미숫가루를 다 마셨다. 아직도 청명한 하늘에 해는 서산에서 많이 솟아 있었다. 17:40분 청룡산에 도착했다. 갈때와 걸린 시간이 거의 똑같다. 2시간 50분만에 대견봉에서 청룡산까지 15키로를 주파했다. 18:00 시에 출발하기로 하고 뒤돌아서 대견봉을 바라 보았다. 해도 이때는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아스름이 그러나 윤곽은 뚜렷하게 멀리 보였다. 산능선이 어림잡아 8~9개는 엇갈리게 자리잡고 있었다.
18시가 되니 산속은 벌써 어두운 그림자가 뒤덮고 있었다. 그러나 란턴을 켜지 않고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길은 넓고 편했다. 그냥 걷기로 했다. 발바닥이 아플 뿐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 정말 오늘 컨디션 최고다. 아마도 경보하는 수준으로 내달렸는 가보다. 청룡산에서 산성산 까지 4.2km의 거리를 45분만에 주파했다. 마음의 안도와 함께 피로가 엄습해 온다. 그러나 이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신발도 벗어 끈을 다시 조이고 란턴을 켜고 앞산을 거쳐 대원길로 하산했다. 대원길에서 한스로드와 진식로드로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발바닥이 아파서 조금이라도 단축하고 싶어 안일사 방향으로 바로 내려 왔다. 안일사 입구에 정확히 19:30분 도착 하였다. 앞산에서 비슬산 그리고 비슬산에서 앞산까지 왕복종주 산행 42km, 총 소요시간 10시간, 순수 산행시간 9시간, 휴식시간 왕복 60분, 평균 시속 4.5km, 꿈같은 산행, 그러나 다시하고 싶지 않은 짐승같은 산행이었다.
<앞산 → 비슬산>: 21km, 소요시간 5시간 10분(대견봉 휴식 20분) 마이하우스 출발(09:30) → 쵸코파이 바위(10:00) → 헬기장(10:30) → 청룡산기점(10:40) → 청룡산정상(11:40) (15분 헤멤) → 청룡산출발(12:00) → 수밭삼거리(12:40) → 약수탕안부(13:55) → 대견봉(14:40)
<비슬산 → 앞산>: 21km, 소요시간 4시간 30분 대견봉출발(15:00) → 약수탕안부(15:40) → 약수탕(15:50) → 중간산마루(16:40) → 청룡산정상(17:50) → 청룡산출발(18:00) 청룡산기점(18:45) → 앞산정상(19:00) → 안일사정문(19:30)
<산행후기> 당초에 앞산에서 비슬산까지만 종주하기로 하여 충분한 행동식과 간식없이 시작하였다. 무리한 변경 산행이긴 하였지만 일기가 좋았고 개인 컨디션이 좋았기 때문에 가능한 산행이었다.
그러나 몇가지 반성하고 있다. 첫째, 장거리용 굽높은 등산화를 준비 못해 릿지화로 한점. 둘째, 장거리 산행에 충분한 부식없이 변경산행 한점. 셋째, 별탈없어 다행이었으나 마지막에 선수와 승부한점. 넷째, 특히 기록 산행에 연연해 over-pace한 점 등이다.
진정한 산꾼이 되기엔 아직 멀었는것 같다. 여유를 가지고 즐기는 아름다운 산행을 하기 까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