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니코틴 아저씨
나는 젊어서 담배를 배우지 않았는데 정말 잘했지 싶었다.
왜냐하면 담배라는 것이 몸에 해롭다는 것을 그날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입원한 다음날 저녁 새로운 환자가 입원실로 들것에 밀려 들어왔다.
그 사람은 나보다 더 마른 60세의 이태리 남자였는데 걸어서 들어오시지 못하고 침대에 실린 채 들어왔다. 18살 때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해 일생 엄청나게 담배를 피우셨고, 급기야 폐가 너무 망가져 호흡곤란 때문에 응급실로 실려 오셨단다.
그 아저씨가 들어오고 병실 분위기도 달라졌다.
그 아저씨는 호흡을 잘 못하셔서 산소호흡기 같은 것을 입에 걸고 있었는데, 숨소리가 무척 크게 들렸다. 또 그 노인에게서 풍겨 나오는 찌든 니코틴 냄새가 병실을 가득 채워 매우 불쾌했는데 그때부터 내 옆 이태리 청년도 자주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가끔 그 니코틴 아저씨를 바라봤는데 입을 위 아래로 크게 벌리신 채 괴상한 소리 내며 숨 쉬시는 모습이 입으로 니코틴 냄새를 뿜어내고 있는 것 같아 유쾌하지 않았다.
그래도 바깥 복도는 추운 편이어서 그냥 침대 속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니코틴 냄새와 소음을 막아내며 자다 깨다를 반복했고, 밤이 되자 좀 조용해졌다.
그런데 밤 11시쯤인가?
간호사 하나가 황급히 드나드는 모습이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진 듯 보였다.
나는 복도로 나가 서성대던 옆 침대의 청년에게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청년은 내가 잠자는 사이 간호사가 산소 호흡기를 떼어 냈는데 그 바람에 니코틴 아저씨가 돌아가셨다며 설명해 해주었다.
니코틴 아저씨의 나이가 60세이며 18살부터 담배를 피웠다는 이야기들도 모두 그때 전해들은 것들이다.
나는 잠시 후 너무 추워 병실로 돌아갔다.
그런데 적막한 병실엔 지독한 니코틴 냄새와 입을 크게 위아래로 벌리신 채 누워계신 이태리 아저씨의 시신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혼자 침대에 누울 용기가 나지 않아 다시 밖으로 나와 이태리 청년에게 안 들어갈 거냐며 묻자 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리고는 아예 밖으로 나가버렸다.
정말이지 나는 있을 곳이 없었다.
복도는 춥고, 병실 안은 무섭고.....
얼마 후 복도가 너무 추워 굳게 마음먹고 들어가 침대에 누웠지만, 니코틴냄새와 뭔가 상쾌하지 않은 또 다른 냄새가 하도 심한데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병실에 시신과 단 둘이 있는 것이 자꾸 무서워져 복도로 나와 있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이태리 병원이 이상한 것은 사람이 옆에서 죽었는데 아까 그 간호사도 다시 나타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또 그때에야 비로소 알게 된 건데 내가 있던 층엔 다른 병실도 없었고,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라 사람도 전혀 없었다.
내가 있던 곳이 서민 병실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응급실로 들어온 공짜 환자들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간호사들이 환자를 책임지거나 지키는 그런 구조가 아니었다.
<제발 시신을 영안실로 옮겨주지.....언제까지 이렇게 서성대고 있어야 하는거지....?>
나는 병실과 복도를 드나들며 언제 올지 모를 간호사들을 한없이 기다리면서도 스스로 이태리 청년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태리 청년은 단 한 번도 병실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나는 병실 문지방을 서성일 정도는 되었으니 말이다.
5. 슬픈 사람들
새벽 1~2시 즈음 됐을까?
드디어 간호사가 와서 병실을 드나들었고, 잠시 후 의사도 모습을 나타냈다.
드디어 간호사, 의사들이 온 것이다.
나도 그들을 따라 병실로 들어갔다.
병실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누가 덮었는지 시신이 이마까지 덮여 있었다.
나는 내 침대로 들어가 몸을 녹이며 자리에 누었다.
서성인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싸늘한 침대가 너무 편했다.
비록 병실 가득히 채운 니코틴 냄새는 여전했지만 그래도 시신이 영안실로 옮겨지면 냄새도 차차 없어질 테고 그러면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시신은 곧바로 옮겨지지 않았고, 더더욱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복도에서 사람들의 발소리와 소근 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평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간호사를 따라 우리 병실로 들어왔다.
대번에 돌아가신 니코틴 아저씨의 유가족들임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중얼중얼하며 흐느껴 울기도 했고, 또 못 알아들을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다가 덮힌 시신의 얼굴을 다시 열어 얼굴을 확인하기도 했다.
한 아주머니와 젊은 여자가 가장 슬프게 우는 걸로 봐서 부인과 딸인 듯싶었다.
니코틴 아저씨의 형제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들어왔다. 그런데 병실로 들어오는 사람들 모두가 입구에 들어서서는 출입문 오른편에 누워있는 동양남자인 나를 향해 순간 멈칫 했는데 그때마다 멀쩡하게 누워있는 내가 머쓱해졌다.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병실로 들어왔는데 모두 입구에서 나를 한 번씩 바라봐줬다. 나는 환한 병실에서 잠이 오지도 않고 마땅히 눈을 둘 곳도 없어, 내 손님들은 아니지만 손님들과 니코틴 아저씨의 침대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들도 누워서 자기들을 멀뚱히 바라보는 나를 힐금 힐끔 바라봤다.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자 그들은 빈 침대(이태리 청년 침대)에 걸터앉고 내 옆자리에 있던 의자까지 가져가 앉았다. 의사가 가족들에게 유감이라며 뭐라고 말하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많아지자 내 침대 앞에까지 사람들이 서성이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슬리퍼를 신고 복도로 나갔다. 그러자 뒤에서 <Scusi....(미안합니다.)>하는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게 하는 말임을 알고 <Niente...(괜찬습니다.)>라고 대답해주고는 복도로 나왔다.
나의 불편함은 여전했지만 가장의 죽음을 앞에 두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의 불편함 따위를 투정할 처지는 아니었다.
나는 복도에서 서성이던 옆 침대의 이태리 청년에게로 다가갔다.
<시신은 언제 영안실로 옮기니?>
<내가 궁금한게 그거야! 우리 이태리는 형편없어.....>
이어서 그가 말했다.
<그 아저씨는 간호사의 실수로 죽은 거야, 산소 호흡기를 도대체 왜 떼낸거야!>
그 청년은 의료진의 실수에 대해 화가 난 듯 보였다. 특별히 할 말도 없던 나는 말없이 서있었다.
6. 행렬
얼마 후 병실에서 니코틴 아저씨의 침대가 밀려나왔다.
낡은 흰 손수건을 들고 훌쩍이는 두 여자들과 그 뒤로 침통한 표정의 아저씨들, 그리고 그냥 뒤따라 온 듯 한 무표정의 젊은 남자들이 뒤를 이었다.
나는 그들과 침대를 멀뚱히 바라봤다.
우리 앞으로 지나가는 침대의 흰 천 위로 니코틴 아저씨의 윗머리와 이마가 보였다. 힘없는 머리카락이 듬성듬성했고, 주름이 깊지는 않았지만 햇빛에 그을려서인지, 담배에 찌들어서인지 넓은 이마의 빛깔이 무척 검어 80대 노인은 되어 보였다.
원치 않는 곳으로 옮겨지고 있는 니코틴 아저씨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 동안 내가 만난 이태리 사람들의 분위기는 시간이 멈춘 듯 여유롭고, 편안했으며, 근심이나 절박함이 전혀 없는 분위였다. 그런데 무엇이 같은 이태리 사람인 그로 하여금 앙상한 뼈만 남도록 담배를 피워대게 만들었던 걸까, 살며 무슨 걱정거리가 그토록 많았길래.... 세상이 마음처럼 되어 돌아가지 않아서 그랬나.....
간호사가 산소 호흡기를 빼는 바람에 그가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이 불쌍했던 게 아니라 여유롭고, 살기 편한 서유럽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습에서 편치 않게 살았을 고된 인생이 보여 측은했다. 오늘에 와서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 이후 나이에 비해 그 노인처럼 늙어 보이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와 이태리 청년은 병실로 들어갔다.
휑한 병실 분위기가 낯설었다.
우리는 각자 말없이 자기 침대에 누웠고 어떻게 잠자리에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7. Ford Fiesta 89년식
다음날 아침 나를 병원에 입원시킨 창훈이가 미역국을 끓여 자기 여자 친구와 병실로 찾아왔다. 창훈이가 벙글거리며 병실로 들어서자 나는 갑자기 기분이 Up됐다. 창훈이와 창훈이 여자친구가 웃으며 들어오는 모습은 어제가 지나고 새날이 시작됨을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둘은 도시락을 열어 미역국을 내 앞에 대령했다. 나는 창훈이가 준 조개젓을 먹고 입원했던 사실을 잊은 채 미역국을 신나게 먹었다. 창훈이의 정성이 기특했다.
사실 내가 애초에 병실에 입원 할 당시 내 자동차 키를 창훈이에게 맡겼었다. 그 당시 차 없는 창훈이에게 둘이 좋은 데에 가서 데이트도 하라는 의미로 차키를 준 것이다. 그 창훈이가 은혜를 잊지 않고 미역국을 끓여 내게 왔으니 기특하게 여겨졌다. 난 창훈이가 가져온 미역국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내가 그릇을 거의 비우자 창훈이가 짧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꺼냈다.
<저기요. 형님! 그런데 제가 형님 차를 타고 코너를 돌다가 형님 차 앞이 짧은 줄 알고 그냥 돌았는데 그만 튀어나온 모서리에 부딪히는 바람에 오른쪽 깜빡이가 떨어져 나갔어요. 어떻게 하죠?>
8. 창훈이
그날 나는 퇴원했다.
옆 침대에 있던 이태리 청년에게 작별인사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했지 싶다.
병원 마당에서는 내 차가 애꾸눈이 된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오른쪽 깜빡이 있던 자리가 뻥 뚫려 몰골이 흉했다.
나는 창훈이에게 <깜빡이 떨어진 데로 가봐!> 했다.
창훈이가 운전을 해서 얼마를 가더니 <형님 저기요!>하며 차를 세웠다. 창훈이가 길을 건너 시커먼 덩어리를 주워왔다. 내차의 노란색 깜빡이였다.
우리는 그것을 차에 싣고 창훈이 집으로 돌아왔고, 창훈이는 선을 연결하고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여 놓았다.
비상등을 켜보니 불이 들어왔고 그러자 창훈이가 활짝 웃었다.
<형님! 불 들어와요!>
그냥 타고 다녔다.
사랑하는 후배 창훈이로 시작되어 창훈이로 끝난 나의 이탈리아 병원기는 그렇게 끝났다.
첫댓글 재미있어요. 표현력이 대단하시군요.
글재주가 좋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