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봉산인1)(東峰山人)에게 답하는 편지
지난번에 선생께서 더할 수 없는 호의를 베푸시어 산중에서 저를 전송하며 멀리 호계(虎溪)를 건너오셨으니2), 은혜와 영광이 몹시 깊었습니다. 또 저를 천박하고 용렬하여 분발하거나 추론하는3) 지혜와 식견이 없다고 여기지 않으시고 몸가짐과 시행의 방법을 가르쳐 주시며 고의(古義)를 인용하여 간곡하게 반복하셨으니, 다행스러움이 또한 큽니다. 분골쇄신(粉骨碎身)하지 않고서는 보답할 길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일찍이 듣건대, 천 균(鈞)은 지극히 무겁지만 맹분(孟賁)4)이 들기에는 쉽고, 깃털 하나는 지극히 가볍지만 초파리가 짊어지기에는 무겁다고 했으니, 이는 어째서이겠습니까? 힘의 강약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사람이 실행하는 것 또한 이와 같아서 저절로 도에 들어맞는 사람도 있고 억지로 힘써서 도를 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 억지로 힘쓰는 사람이 생각하지 않아도 터득하며 힘쓰지 않아도 들어맞기를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잡되고 탁한 기질을 태어나면서부터 품부하였기 때문에 마땅히 그 노력을 백 배 기울여 스스로 힘써 쉬지 않아야 하니, 이는 어째서이겠습니까? 덕의 후박(厚薄)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대저 술의 덕이 어떠한지는 오경(五經)과 자사(子史)에 상세하게 실려 있습니다. 술이 그 중도를 얻으면 빈주(賓主)를 합할 수 있고 늙은이를 봉양할 수 있으며, 가까이 궤석(几席) 사이에 시행해도 문채가 있고 멀리 천지에 통해도 어그러지지 않으며, 수심에 찬 뱃속은 술을 얻어 풀리고 답답한 가슴은 술을 얻어 편안해져서 기쁘게 천지와 더불어 조화를 함께하고 만물과 더불어 조화를 통하기 때문에 옛 성현이 스승과 벗이 되고 천백 년이 한가한 세월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도를 잃으면 감옥살이하는 사람처럼 머리를 풀고서 항상 노래하고 어지럽게 춤추며, 백번 절하는 사이에 시끄럽게 부르짖고 서로 읍양(揖讓)하는 즈음에 넘어지고 자빠져서 예의를 무너뜨리고 의리를 없애며 절도 없이 소동을 일으킵니다. 심한 경우에는 까닭 없이 마음을 풀어놓고 눈을 부라리다가 혹 싸움이 일어나서 작게는 몸을 죽이고, 더 나아가서는 집안을 망하게 하고, 크게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술의 재앙이 이와 같지만 주공(周公)과 공자가 쓰면 어지럽지 않았고5), 술의 덕이 이와 같지만 진준(陳遵)6)과 주의(周顗)7)가 쓰면 몸을 죽였으니, 그 얻고 잃는 사이에는 한 터럭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까닭으로 중인(中人) 이하의 사람은 견고하게 다잡지 않고 절도 있게 쓰지 않으면 맛있는 술맛이 사람을 변하게 하여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갈수록 어지러워지다가 점점 술주정에까지 이르게 되지만, 주정하는 줄조차 모르게 되는 것은 이치상 필연적인 것입니다. 선비로서 뜻이 견고하지 못한 사람은 응당 몸소 신칙(申飭)하고 안으로 꾸짖어서 어지러움의 뿌리를 막고 끊기를 보통 사람보다 백 배 더한 뒤라야 술의 재앙을 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서경》에 술을 경계하는 〈주고(酒誥)〉가 실려 있고, 《시경》에 〈빈지초연(賓之初筵)〉이 있으며, 양자운(揚子雲)이 이로써 〈주잠(酒箴)〉을 지었고 범 노공(范魯公)이 이로써 시를 지었으니8), 제가 어찌 술잔을 조용히 잡고서 향음주(鄕飮酒)와 향사(鄕射)9)의 사이에서 진퇴하고 읍양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마음이 약하고 덕이 엷기에 그 맛을 달게 여겨 조절하지 못하면 마음이 산란해져서 스스로 술을 이기지 못함이 초파리가 깃털 하나를 짊어질 수 없는 것과 같게 될까 두려울 뿐입니다.
저는 젊어서부터 술을 몹시 좋아하여 중년에 비난을 받은 일이 적지 않았지만, 방자하게 주광(酒狂)이 되어 영원히 버려짐을 자신의 분수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몸은 외물에 끌려가고 마음은 육체에 부려져서 정신은 예전보다 절로 줄어들고 도덕은 처음 마음에서 날로 어긋나게 되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점점 부덕한 사람이 되어 집안에서 방자하게 주정을 부리다가 어머님께 크게 수치를 끼쳤습니다. 맹자는 “장기 두고 바둑 두며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 봉양을 돌아보지 않는 것”10)을 불효라고 여겼거늘 하물며 술주정함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술이 깨고서 스스로 생각건대 그 죄가 3천 가지 중의 으뜸에 해당되니11), 무슨 마음으로 다시 술잔을 들겠습니까. 이에 천지에 물어보고 육신(六神)을 참례하고 제 마음에 맹세한 뒤에 자당(慈堂)께 아뢰기를 “지금 이후로는 군부(君父)의 명이 아니면 감히 마시지 않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이렇게 한 까닭은 술 취함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에게 제사 지내고 제육을 받아 음복한다거나 축수를 올리고 술잔을 되돌려 받았을 때에 달고 맛있는 술이 뱃속을 적셔도 어지럽지 않은 경우는 제가 어찌 사양하겠습니까.
저의 뜻이 대략 이와 같으니, 선생께서 비록 술을 권하는 가르침을 주셨지만 약속한 말을 지키지 않을 수 없음이 이와 같습니다. 저의 말은 어길 수 있다 하더라도 제 마음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제 마음은 속일 수 있다 하더라도 귀신을 기만할 수 있겠습니까. 귀신은 기만할 수 있다 하더라도 천지를 소홀히 대할 수 있겠습니까. 천지를 소홀히 대할 수 있다면 어느 곳에다 이 몸을 두겠습니까. 더구나 어머니께서 아들을 기르며 매양 술을 조심하라고 가르치다가 이 말을 들으시고 기쁜 빛이 얼굴에 감돌았으니, 술을 끊겠다는 맹세를 어찌 바꿀 수 있겠습니까.
오호라! 술이 깬 굴원(屈原)이나 술이 취한 백륜(伯倫)12)은 본래 둘이 아니고, 청백한 백이(伯夷)와 조화로운 유하혜(柳下惠)13)는 결국 하나의 도입니다. 선생께서는 술을 마시지 못하는 목생(穆生)14)을 억지로 허물하지 마시고 한 글자로써 가부를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중하(仲夏)의 극심한 더위에 삼가 선생의 일상에 만복이 함께하기를 빕니다. 연단(鉛丹)을 제조하는 데 사용하는 신령스러운 복령(茯苓) 한 봉지를 올리오니, 선계(仙界)의 일월을 혼자만 대하지 마시고 베갯속의 《홍보(鴻寶15))》로 야윈 이 몸을 구제해 주소서.
붙임 동봉산인(東峰山人)의 편지
그저께 선생을 모시고 천석(泉石) 위에서 노닐며 종일토록 서성이다가 청계(淸溪)에서 서로 헤어졌습니다. 맑은 흥취가 다하지 않았건만 작별이 너무도 갑작스러웠으니, 어찌나 야속했는지 모릅니다. 봉별(奉別)한 이후로 지금 며칠이 되었지만 함께 얘기할 만한 사람이나 계산(溪山)에서 술 마시며 시 짓는 모임이 없으니, 이른바 사흘 동안 도덕을 얘기하지 않으면 혀가 굳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몇 줄기 푸른 산과 한 조각 흰 구름이 청하지 않는 벗이 되고 말없는 짝이 되어 여전히 서로 대하고 있으니, 이것들이 10년 동안 마음을 알아주는 제 벗들입니다. 성중(城中)에 또한 이러한 벗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나서 연단을 서로 얘기하며 등 뒤가 푸르고 맑은 신선의 무리로 말하자면, 이는 정히 선생이 날마다 서로 보는 사람이겠으나 저는 여기에 미치지 못하니, 우습고 우습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보았을 때 선생이 술을 끊어 곧바로 주성(酒星)16)을 하늘의 감옥에 가두고 취일(醉日)을 진(秦)나라의 구덩이에서 불사르고자 하였으니17), 그 뜻이 아름답기는 아름답습니다. 대개 하(夏)나라와 은(殷)나라의 임금이 이 때문에 망했고, 진(晉)나라와 송(宋)나라 선비들이 이 때문에 어지러워졌으니, 이는 만세토록 마땅히 살피고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선 옛사람이 술을 베풀었던 까닭은 본래 선조에게 제사 지내고 손님을 대접하고 노인을 봉양하고 병을 다스리고 복을 빌고 기쁨을 나누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백복(百福)의 모임이 술이 아니면 행해지지 못했던 것이니, 어찌 사람으로 하여금 술에 빠져서 덕을 잃으며 거동을 어지럽혀서 몸을 무너뜨리게 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옛사람이 술을 빚을 때 매섭게 취하게 하는 것을 술의 바른 맛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향이 짙은 것으로 맑은 술도 만들고 진한 술도 만들며, 맛이 단 것으로 기장 술도 만들고 단술도 만들어 후박(厚薄)과 농담(濃淡)의 차이를 두었던 것입니다.
그러고도 혹 어지러움에 이를까 염려하여 주례(酒禮)를 만들어 한 번 술을 올리는 예(禮)에 손님과 주인이 백번 절하여 종일 마셔도 취하지 않게 했습니다18). 그래도 오히려 부족하게 여겨서 또 제도를 만들어 개자(介者)를 두고 준자(僎者)를 두고19) 사정자(司正者)를 두고 상자(相者)와 찬자(贊者)를 두어 위의(威儀)를 돕게 했으니, 《시경》〈빈지초연(賓之初筵)〉에 “이미 감을 세우고 혹 사로 보좌하게 한다.〔旣立之監 或佐之史〕” 한 것이 이를 이르는 것입니다.
또 오히려 망녕되이 쓸까 염려했기 때문에 《서경》〈주고(酒誥)〉에 “제사에만 이 술을 쓴다.” 하고, 또 “부모가 기뻐하거든 스스로 깨끗이 하고 후하게 하여 술을 쓰도록 하라.” 했습니다. 《시경》〈녹명(鹿鳴)〉에 “내게 맛있는 술이 있으니, 아름다운 손님이 잔치에 와서 놀도다.” 했으니 이는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고, 〈상체(常棣)〉에 “너의 대그릇과 나무그릇을 늘어놓아 실컷 술을 마시더라도, 형제가 모두 있어야 화락하고 또 길이 즐거우리라.” 했으니 이는 형제를 대접하는 것이고, 〈벌목(伐木)〉에 “아, 깨끗이 청소하고 음식을 온갖 그릇에 진열하노라. 이미 살진 짐승을 장만하여 여러 친구를 부르노라.” 했으니 이는 붕우와 친구를 대접하는 것으로, 이것이 술을 마시는 예법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에는 남은 음식이 있고, 집을 짓고 나서는 낙성식이 있고, 손님에게는 대접이 있고, 길 떠나는 사람에게는 송별연이 있고, 활을 쏘는 데는 내려와서 마시는 예가 있고, 고을에는 향음(鄕飮)의 예가 있고, 가정에는 어버이를 즐겁게 해 드리고 축수(祝壽)를 올리는 예가 있고, 제사가 있으면 그 술을 맛봄이 있고, 잔을 올림이 있으면 돌려받는 잔이 있습니다. 이는 인정(人情)을 다하고 인사(人事)를 극진히 하려는 것이요,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웃통을 벗고 소리 지르며 소별(巢鼈)20)하여 마시며 개구멍으로 출입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것을 살피지 않고 도리어 술이 재앙을 낳는다고 여겨서 곧바로 완전히 끊고자 하니, 이는 마치 밥을 짓다가 불똥이 튈까 염려하여 일생 동안 익힌 밥을 차리지 않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오로지 주정만 하는 것은 이미 말할 것도 없지만, 완전히 끊는 것도 예에 크게 어두워서 중용을 잃음이 매우 심하니 군자가 행할 도리가 아닙니다. 만일 혹 끊어야 하는 것이라면, 《논어》에서 공자는 “술에 일정한 양이 없었으나 어지러운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거나 “술 때문에 곤란을 겪지 않는 일이 어찌 내게 있겠는가.”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위 무공(衛武公) 또한 일찍이 허물을 뉘우치며 말하기를 “세 잔에도 기억하지 못하거니 하물며 감히 또 더 마신단 말인가.21)” 했으니, 위 무공 또한 완전히 끊은 것이었습니까. 다만 경계했을 뿐입니다.
지금 선생이 만약 예의를 버리고 군친(君親)을 버리고 종족을 멀리하여 사람이 없는 곳에 혼자 사신다면 괜찮겠지만, 만일 예악과 문물이 있는 이 세상에 살면서 효도하고 공손하라는 선왕의 격언을 읽었다면 성급하게 이를 종신토록 행할 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비록 끝까지22) 한 잔도 마시지 않는다지만, 앞으로 제사 지내고 조(胙)를 받지 않으며, 잔치 자리에서 술을 올리기만 하고 돌려받지 않으며, 어버이를 공양하고 병을 돌볼 때에 다시는 먼저 맛보지 않을 것이란 말입니까. 만약 절제한다거나 삼간다고 하면 괜찮겠지만 종신토록 완전히 끊는다는 것은 저로서는 취하지 못할 바이니, 선생은 어떻게 여기십니까.
더구나 일전에 보건대 선생의 용모가 옛날보다 수척해졌으니, 기우(氣宇)도 응당 또한 줄었을 것입니다. 줄어들고 또 줄어들어 몸이 여위고 쇠약하게 되면 당(堂)에 계신 어머님께서 반드시 걱정하실 것이니, 옛사람이 새 새끼를 희롱하고 거짓으로 넘어진 효성23)에 비추어 볼 때 어떻다 하겠습니까. 효자가 뜻을 거슬러서 이미 공경의 도리에 어긋났고 술을 끊어 근심을 끼침으로써 뒤에 다시 어긋나게 되었습니다. 사랑과 공경으로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를 선생 또한 일찍부터 잘 알고 있을 터이니, 선생께서 양찰(諒察)하기 바랍니다.
바라건대 이 편지를 어머님 앞에 아뢰어 선생의 어머님으로 하여금 선생에게 정직하고 성실하며 보호하여 아끼는 벗이 있음을 알게 하시고, 선생이 어버이에게 순종하고 벗을 믿는 실상을 다할 수 있게 하십시오. 저번에 허락하신 신령한 복령(茯苓) 약간을 보내는 사람 편에 내려 주소서. 삼가 시의(時宜)를 따라 자애(自愛)하고 진중(珍重)하기 바라며, 다 펼치지 못합니다.
答東峯山人書
日者蒙先生莫大之賜。廬山送客。遠渡虎溪。恩榮幸甚。又不以淺弊無憤悱反隅智識。敎之以持身設施之方。援引古義。反覆丁寧。幸亦大焉。自料不至碎首。無以仰報。然僕嘗聞之。千鈞至重。而孟賁擧之則易。一羽至輕。而醯鷄負之則重。何者。力之強弱致然也。人之行也亦然。有從容中道者。有勉強行道者。彼勉強者非不欲不思而得。不勉而中。其氣駁質濁。已稟於有生之初。故當百倍其功。自強不息。何者。德之厚薄然也。夫酒之爲德。五經子史詳矣。得其中則可以合賓主。可以養耆老。行之几席而有文。達之天地而不悖。愁腸得酒而解。鬱臆得酒而泰。怡然與天地同其和。萬物通其化。古聖賢爲師友。千百年爲閑中。失其中則囚首散髮。恒歌亂舞。叫呼乎百拜之間。顚仆於相讓之際。敗禮滅義。發作無節。甚者。無故而憑心怒目。爭鬪或起。小而殞身。中而亡家。大而亡國者比比有之。是故。酒禍如此。而周公,孔子用之則不亂。酒德如此。而陳遵,周顗用之則殺身。其得失之間。不容一髮。可不愼哉。是故。中下之人。所執不堅。而用之不節。則甘味移人。愈危愈亂。漸至於酗。而不知其所以酗者有。理之必然。爲士而志不堅者。當躬飭內訟。杜絶亂根。百倍平人。然後可以免此禍矣。是故。書載戒酒之誥。詩有賓筵之篇。揚子雲以之著箴。范魯公以之作詩。吾豈不欲從容桮酒。進退揖讓於鄕飮鄕射之間哉。但恐心弱德薄。甘其味而不節。則散亂而不自勝。有如醯鷄之不能負一羽耳。僕自少酷好麴糱。中歲。遭齒舌不少。肆爲酒狂。自分永棄。身爲物役。心爲形使。精神自耗於曩時。道德日負於初心。不意馴致不德。肆酗於家。大貽慈母之羞。孟子以博奕好飮酒不顧父母之養爲不孝。況於酗乎。醒而自念則罪在三千之首。何心復擧桮酒乎。於是質之天地。參之六神。誓之吾心。告諸慈堂。自今以後。非君父命不敢飮。所以如此者。惡其醉也。若夫祭神而受胙則有飮福。獻壽而有酬則甘醇美醴沃腸而不亂者。吾何辭焉。僕之志大略如此。先生雖有勸酒之敎。言之不可食也如此。吾言可食。吾心可欺乎。吾心可欺。鬼神可謾乎。鬼神可謾。天地可忽乎。天地可忽則措諸身何處。況慈母育子。每敎省酒。及聞此語。喜動於色。斷酒之誓。庸可渝乎。嗚呼。醒屈,醉倫。本非二致。淸夷,和惠竟是一道。先生不可強以不飮之穆生爲累。冀以一字示可否。仲夏極熱。伏惟先生動止萬福。煉方所用神苓一封呈上。鼎裏烏兔。莫使獨對。枕中鴻寶。兼濟枯骨。附東峯山人書昨日。陪杖屨遊於泉石之上。盤桓終日。相送淸溪。淸興未盡。而別之甚遽。一何怏怏也。自奉別以來。于茲數日。無可與人談話及溪山文酒之會。所謂三日不談道德。舌本強也。然數朶靑山。一片白雲。作不請友。爲無言伴。依舊相對。此僕所以十年知心者也。未審城中亦有此友否。若其逢話鉛丹。背後蒼黃如丹 缺 輩。此定先生日日相見者也。僕於此不及。噱噱。箇中昨日見先生止酒。直欲囚酒星於天獄。焚醉日於秦坑。其意美則美矣。蓋夏殷之主。以此而亡。晉宋之士。以此而亂。此萬世之所當鑑戒者也。然抑有可說焉。且古人設酒。本爲祭先享賓。養老治病。祈福交歡。百福之會。非酒不行。豈使人沈酗喪德。亂義敗身者也。故先民造釀。非但醺辣爲正味。香烈者爲醥爲醇。甘甜者爲酏爲醴。有厚薄濃淡之異焉。又猶恐其或抵於亂也。因爲酒禮。一獻之禮。賓主百拜。終日飮之不得醉。然猶以爲未足也。又爲之制。有介者。有僎者。有司正者,相者,贊者。以左右威儀。故詩曰。旣立之監。或佐之史。此之謂也。又猶恐其妄用也。故書曰。祀茲酒。又曰。厥父母慶。自洗腆致用酒。詩曰。我有旨酒。嘉賓式燕以傲。饗賓客也。儐尒籩豆。飮酒之飫。兄弟旣具。和樂且湛。燕兄弟也。於粲灑掃。陳饋入簋。旣有肥牡。以速諸舅。燕朋友故舊也。此飮酒之節文也。故於祭有餕。於營室有落。於賓有饗。於送往有祖。在射有下飮之禮。在鄕有鄕飮之禮。在家有娛親獻壽之禮。有祭有啐。有獻有酬。極人之情。盡人之事。非欲使後世之人袒裼叫號。巢鼈以飮。出入狗竇者也。不此之省。反以酒爲生禍。直欲專止。是猶炊飯而逸火。欲一生不設熟食也。專酗。已不可言。專止。大昧於禮。失中庸已甚。非君子所行之道。如或可止。語不道夫子惟酒無量不及亂。又曰。不爲酒困。何有於我。衛武亦嘗悔過曰。三爵不識。矧敢多又。衛武亦盡止乎。只戒而已。今先生若去禮義。遺君親。遠宗族。獨處無人之境則可。如居禮樂文物之斯世。讀孝悌先王之格言。則未可遽以斯爲終身行也。縱從不飮一爵。且祭祀不復受胙乎。燕饗有獻無酧乎。供親侍病。不復先嘗乎。若言節之可也。愼之可也。終身專止。僕所不取。君意以爲何如。況前日。覩先生容貌減於昔時。氣宇應亦減。減之又減。以致消瘦。在堂慈母。必生憂戚。於古人弄雛詐仆之意。如何。孝子忤旨。已失於敬。止酒而貽憂。復失於後。愛敬事親之道。先生亦嘗講之熟矣。惟先生諒察。願以此書陳于慈堂之前。使先生之親知先生有直諒保愛之友。而盡先生有順親信友之實也。前諾神苓。若干進人下惠。伏惟順時自愛珍重。不宣。
[주1] 동봉산인(東峰山人) : 김시습(金時習 : 1435~1493)의 별호이다.
[주2] 산중에서……건너오셨으니 : 호계삼소(虎溪三笑)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호계는 중국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 앞에 있는 시내이다. 진(晉)나라 혜원법사(慧遠法師)가 이곳에 있으면서 손님을 보낼 때 이 시내를 건너지 않았는데 여기를 지나기만 하면 문득 호랑이가 울었다. 하루는 도연명(陶淵明), 육수정(陸修靜)과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를 넘자 호랑이가 우니 세 사람은 크게 웃고 헤어졌다고 한다. 《廬山記》
[주3] 분발하거나 추론하는 : 공자가 말하기를 “마음속으로 통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으며, 애태우지 않으면 말해 주지 않는다. 한 모퉁이를 들어 주어 이로써 세 모퉁이를 반증(反證)하지 못하면 다시 더 일러 주지 않는다.〔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 하였다. 《論語 述而》
[주4] 맹분(孟賁) : 전국 시대의 용사(勇士)이다.
[주5] 주공(周公)과……않았고 : 《논어》〈향당(鄕黨)〉에 공자는 “술에 일정한 양이 없었으나 어지러운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唯酒無量 不及亂〕”고 하였다. 주공과 관련된 사실은 《서경》〈주고(酒誥)〉를 말하는 듯하나 미상이다.
[주6] 진준(陳遵) : 한나라 애제(哀帝)ㆍ왕망(王莽)ㆍ회양왕(淮陽王) 때의 사람으로, 성품이 방종불구(放縱不拘)하고 술을 좋아하였다. 회양왕이 패했을 때에 술에 취해 있다가 적(賊)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漢書 卷92 陳遵傳》
[주7] 주의(周顗) : 진(晉)나라 원제(元帝) 때의 사람으로, 술을 몹시 좋아하여 술의 실수로 자주 견책을 받았다. 뒤에 왕돈(王敦)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晉書 卷69 周顗列傳》
[주8] 범 노공(范魯公)이……지었으니 : 북송(北宋)의 명재상인 노국공(魯國公) 범질(范質)을 가리킨다. 범질은 조카 범고(范杲)가 자신을 천거해 주기를 바라자, “너에게 술을 즐기지 말기를 경계하나니, 미치게 만드는 약이요 아름다운 맛이 아니다.〔戒爾勿嗜酒 狂藥非佳味〕”라는 내용의 시를 지어주었다. 《小學 嘉言》
[주9] 향음주(鄕飮酒)와 향사(鄕射) : 향음주는 고을 사람들이 때로 모여서 술을 마시는 예(禮)이고, 이어서 활쏘기를 하는 것을 향사라고 한다.
[주10] 장기……것 : 맹자가 지목한 다섯 가지 불효 중의 두 번째이다. 《孟子 離婁下》
[주11] 그……해당되니 : 술주정으로 불효하는 것을 말한다. 공자가 말하기를 “오형의 종류가 3천 가지이지만 죄는 불효보다 더 큰 것이 없다.〔五刑之屬三千 而罪莫大於不孝〕” 하였다. 《孝經》
[주12] 술이 깬……백륜(伯倫) : 굴원(屈原)은 춘추 시대 초나라의 충신이다. 그는 〈어부사(漁父辭)〉에서 “뭇사람이 모두 취했으나 나 홀로 깨어 있다.〔衆人皆醉 我獨醒〕” 하였다. 백륜은 진(晉)나라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유령(劉伶)의 자(字)이다. 그는 술을 몹시 좋아하여 〈주덕송(酒德頌)〉을 지었다. 《古文眞寶後集 卷1》
[주13] 청백한……유하혜(柳下惠) : 맹자가 말하기를 “백이는 성인으로서 맑은 분이고, 유하혜는 성인으로서 조화로운 분이다.〔伯夷聖人之淸者也 柳下惠聖人之和者也〕” 하였다. 《孟子 萬章下》
[주14] 목생(穆生) : 전한(前漢) 초원왕(楚元王) 때의 사람이다. 초원왕이 주연(酒宴)을 베풀면서 술을 좋아하지 않는 목생을 위하여 항상 단술〔醴〕을 마련했다고 한다. 《漢書 卷36 楚元王傳》
[주15] 홍보(鴻寶) : 한나라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베갯속에 비장(秘藏)하였던 도술 서적이다. 《漢書 卷36 劉向傳》
[주16] 주성(酒星) : 술을 관장하는 별이다. 이백(李白)의 〈월하독작(月下獨酌)〉에 “하늘이 만약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주성이 하늘에 있지 않으리라.〔天若不愛酒 酒星不在天〕” 하였다.
[주17] 취일(醉日)을……하였으니 : 취일은 술에 취한 해이다. 취일을 구덩이에 묻는다는 것을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차용하여 불사른다는 말로 호문(互文)하였다.
[주18] 주례(酒禮)를……했습니다 : 《예기》〈악기(樂記)〉의 내용이다.
[주19] 개자(介者)를……두고 : 향음주(鄕飮酒)를 행할 때에 손님을 돕는 사람을 개(介)라 하고, 주인을 돕는 사람을 준(僎)이라 한다. 《禮記 鄕飮酒義》
[주20] 소별(巢鼈) : 미상이다.
[주21] 세……말인가 : 《시경》〈소아(小雅) 빈지초연(賓之初筵)〉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편은 위 무공(衛武公)이 술을 마시고 허물을 뉘우친 것을 읊은 시이다.
[주22] 끝까지 : 원문은 ‘從’으로 되어 있는데, 한국문집총간 13집에 수록된 《매월당집(梅月堂集)》 권21〈답추강서(答秋江書)〉에 근거하여 ‘終’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23] 옛사람이……효성 : 초나라 사람 노래자(老萊子)가 두 어버이를 효성으로 봉양하였다. 나이 70세에 아이들의 장난을 하여 몸에 오색 무늬 옷을 입었고, 물을 떠가지고 당(堂)에 오르다가 거짓으로 넘어져 땅에 누워서 어린아이 울음소리를 내었고, 새 새끼를 부모 곁에서 희롱하여 부모를 기쁘게 하려고 하였다. 《小學 稽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