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와 삶터 마련하기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대한민국 농업의 중심(The Heart Of Korea), 충청남도 농업기술원이 운영하는 귀농대학에 입교하신 분들께 선배로서 축하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직 이농이 대세인 마당에 상대적으로 안락했던 도시락(都市樂)을 버리고 시골살이를 생각한다는 건 낯설고 어려운 길입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생각나네요.
이제는 익숙한 말이지만 귀농ㆍ귀촌이란 국내이민이라고 부를 정도로 알아두어야 할 게 많고 그만큼 꼼꼼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래도 이번 귀농대학처럼 안착을 위한 필수 코스가 마련되었으니 여러분들의 뒤가 든든해 보입니다. 부디 한 분의 낙오도 없이 100시간 모두 이수하셔서 어둡고 캄캄한 굴속에서 백일기도를 끝낸 웅녀처럼, 각자의 마음에 커다란 변화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농민자격을 얻는 것이 관건
귀농을 준비하는 이들이 제일 궁금해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부분이 농지와 관련된 것입니다. 왜냐면 농촌에 살더라도 법적으로 농민이냐 아니냐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땅의 크기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조금 골치 아프더라도 세부적으로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지요. 요컨대 법적으로 농민임을 인정받으면 농촌에서는 한결 수월하고 세금도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농촌에서 십년을 넘게 농사를 지어도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례도 종종 눈에 띕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농민자격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일단 논이든 밭이든 1000㎡(303평)이상에서 농작물이나 다년생 식물을 재배해야 합니다. 일년중 90일 이상 농사를 지어야 하는 것도 부대조건이지요. 비닐하우스나 버섯재배사는 노지보다 노동력이 많이 드는 까닭에 330㎡(100평)만 경작해도 인정을 받습니다. 요즘은 축산을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데 축종에 따라 농민자격을 얻는 마릿수를 달리 정해 놓았습니다. 소나 말같은 대가축은 2마리, 돼지같은 중(中)가축은 10마리, 소(小)가축은 100마리, 닭이나 오리는 1천마리, 꿀벌은 10군 이상입니다. 덧붙여 일년중 120일 이상 일해야 하고 농산물 판매액이 연간 100만원을 넘겨야 합니다.
이와같은 조건은 포괄적인 규정으로 연간 노동일수나 농산물 판매액은 일일이 조사를 하거나 따지기가 어려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문제를 삼지는 않지요. 하지만 농지 넓이는 엄격히 규제되므로 구입시 꼭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내 소유의 농지 없이 임대만으로도 법적농민이 될 수 있습니다. 농지임대차 계약서를 행정기관에 제출하고 읍·면사무소에서 농지원부를 만들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땅주인이 계약서 작성을 꺼리는 경우입니다. 속사정은 모르지만 대개 구두계약으로 대신하려고 합니다. 이때 잘 조율해서 농지원부만큼은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정히 안되면 다른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귀농인에게는 해결하기 쉽지않은 현실적인 어려움입니다.
도시에서도 집이나 상가를 얻을 때 해당 부동산의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는 것처럼 농지를 사거나 빌릴 때도 마찬가지지요. 자동차도 그렇지만 권리관계를 잘 파악해둬야 뒷탈이 생기지 않습니다. 사고자 하는 땅에 대해 알아볼 때는 토지대장, 지적도, 등기부등본 이 세가지는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먼저 토지대장을 보면 토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 즉 지목, 면적, 소유자의 이름과 주소, 연도별 개별공시지가를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지적(임야)도는 땅의 모양과 지번, 도로의 위치와 유무, 필지의 수에 대한 정보가 나와있습니다. 특히 맹지(盲地;지적도상에 도로가 없는 땅)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자료가 됩니다. 등기부등본은 토지의 소유 관계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자료로 표제부 와 소유자 및 소유자이외의 권리에 관한 사항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주의해서 봐야할 곳은 을구로 근저당, 가압류, 압류 등 토지소유의 권리변동 사항입니다. 등기부등본의 위변조 여부를 확인하려면 인터넷 등기소(http//www
.iros.go.kr)의 발급메뉴중 발급 확인번호를 입력하면 됩니다. 번호를 통한 확인은 발행일로부터 3개월까지 5회에 한하여 확인이 가능합니다.
농지매입은 도시의 주택이나 땅을 살때와는 달리 눈여겨봐야 할 것이 많습니다. 도시야 자기권리를 확실히 챙기는 곳이어서 서류와 실제간에 불일치가 적지만 시골에서는 특유의 정서와 공동체적 습속으로 인해 실제와 서류가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김씨가 이씨의 땅 오십평을 사서 축사를 지었어도 구두로만 계약하여 계약서가 없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토지대장이나 등본이 있을리 없지요. 법적으로는 여전히 남의 땅인 겁니다. 문서계약→분할측량→지적측량 결과부 발행→등기접수→등기권리증 발행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까닭입니다. 저도 비슷한 경우의 땅을 사서 등기하는데 삼년이나 걸린 쓰라린 경험이 있습니다.
그밖에 농지와 전봇대의 거리나 주변에서 양수기 사용여부를 살피는 것도 중요합니다. 전기와 물이 있어야 가뭄이 들 때 작물에 물을 줄 수 있고, 집을 짓더라도 수도와 전기, 전화를 끄는데 한층 유리하지요. 조금 더 나아가서 토질이나 자갈, 돌 등의 섞임 정도, 경사도, 토지모양 등도 고려할 사항입니다.
만약 농사가 아니고 건축을 할 땅이라면 앞서 말한 진입로의 여부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시군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른 것을 감안하더라도 진입로가 남의 땅이라면 땅주인의 토지사용승락서가 필요한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진입로를 포장한다든가 콘크리트 배수관 등을 묻을 때 홍성군에서는 지주의 사용승락서를 요구합니다. 간혹 까다로운 땅이웃을 만났을 때는 타협을 해주지 않아 몇년이고 공사가 늦어지는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등기를 하려면 농지취득 자격증명 필요
앞서의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 내 맘에 드는 땅이 있더라도 농촌에서는 한 가지 더 챙겨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농지취득 자격증명입니다. 소유권 이전신청을 할 때 농지취득 자격증명이 없으면 아예 받아주질 않습니다. 이 증명서를 손에 넣으려면 자격증명 신청 서류외에 농지에 관한 농업경영계획서를 덧붙여 읍ㆍ면사무소에 내면 됩니다. 서류 이름은 거창하지만 비교적 간단한 것으로 누구나 쉽게 써낼 수 있습니다. 간혹 사려는 토지가 허가구역으로 묶여있다면 해당 시ㆍ군에 요구하는 거주기간 등의 요건이 추가로 적용되어 조금 복잡해므로 사전에 충분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농민의 농지소유 규모는 따로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농민이 아닌 도시민이 주말농장이나 농사체험을 위해 땅을 사는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답니다. 세대원 모두의 농지를 더해 1,000㎡(303평)를 넘을 수 없지요. ‘땅은 경작하는 이가 소유한다’는 경자유전의 대원칙 때문입니다. 그러면 농지를 구입한 뒤에 농사를 짓지 않거나 다른 이에게 빌려주면 어떻게 될까요? 곧바로 농지처분의무가 부과되어 일년안에 그 땅을 팔아야 합니다. 일년내 팔지 않으면 다시 6개월내 처분명령을 받게 되고, 그래도 팔지 않으면 팔 때까지 공시지가의 20%를 해마다 이행강제금으로 물어야 하니 잘 알고 사셔야 합니다.
최근에 귀농을 준비하는 분중에는 일반 농사외에 축산이나 버섯, 선인장 등 특작을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보입니다. 축사관련 규정은 2006년에 농지전용 규제가 완화되었기에 전보다 수월해졌습니다. 구체적으로 농업진흥지역 밖에 축사를 지을 때는 축종 구분없이 3ha(9,000평)까지 전용을 허용하고, 진흥지역 안에서는 같은 면적만큼 농지보전 부담금을 면제(3ha가 넘을 때 초과부분만 50%부과)하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임야를 허가없이 개간하여 논ㆍ밭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토지에 축사나 창고 등을 건축할 때에는 일단 임야로 원상복구한 뒤 전용절차를 밟아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잘 아는 곳이 아니면 귀농직후 토지구입은 잠시 보류하시라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귀농인을 포함한 외부인에게는 땅값을 비싸게 받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두 배로 올려 부르는 예도 직접 경험했지요. 나중에 그 마을 사람이 되면 서로 낯붉힐 일임에도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경매를 통한 토지매입도 도시와는 조금 상황이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농촌은 법이나 규정보다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나 관계가 더욱 중시되는 곳이어서 적법하게 취득을 했어도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특유의 정서가 남아 있어서입니다. 이따금 매스컴에 보도된 사례가 이를 증명합니다. 그러니 토지 구입시는 신중, 또 신중해야 무리가 없습니다. 첫 토지구입을 문제없이 했다면 농촌생활의 걸음마를 잘 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집수리, 어떻게 하면 좋을까?
‘농부는 반목수’라는 말처럼 농사를 짓게되면 필요한 장비와 기술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작은 하우스라도 하나 지으려면 줄자와 고속절단기, 수동절단기(커터), 해머드릴, 드릴과 망치, 펜치 등 기본 공구들이 필요한 법이지요. 여기에 축사가 있다면 용접기와 그라인더외에 파이프 렌치 따위의 배관용 공구가 있어야 수월해집니다. 한마디로 오만가지 공구와 이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기술이 있어야 시골살이가 편안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때마다 그 방면의 기술자를 불러야 하고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습니다.
어차피 갖추고 배워야 할 것들이라면 그럴 기회가 됐을 때 과감히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조금만 여유가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집 고쳐살기입니다. 베테랑 목수의 작품처럼 마무리가 반듯하고 깔끔하지 않으면 어떤가요? 오히려 소재나 공간기획도 내 맘대로 할 수 있으니 힘은 좀 들지만 신명나는 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누구에게 명령을 받거나 보고를 하지 않아도 좋은 시골살이의 참맛을 느낄 다시없는 기회지요. 도시에서 망치질 한 번 해본 적이 없어도 고민할 게 없답니다. 자르고 잇고 붙이며 두드리다보면 어느새 절로 요령이 생겨납니다. 살 집을 멋들어지게 고치고 싶다면 집고치기나 구들놓기 과정을 이수하면 일이 더욱 수월합니다.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시골로 가기전에 한 번쯤은 참여해보시길 바랍니다.
어디를 어떻게 손대야 하나?
흔히 빈 집은 고쳐도 고쳐도 끝이 없다고 하지요. 어떤 이는 집을 짓는 것보다 돈이 더 많이 들었다고 하소연합니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수리범위와 위탁여부에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이야기하자면 역시 소유냐 임대냐에 따라 투입기준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집주인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임대시에는 사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고치는 게 낫습니다. 만약 큰 돈을 투자해 고칠 경우 집주인의 마음이 변하면 회수가 어려우니까요. 누차 강조하지만 계약조항보다 앞서는 것이 시골의 관례입니다. 이로인해 분쟁이 생길 때 정식계약서가 있고 재판까지 갈 경우 승소할 가능성이 크겠지만 그 마을에서 더 이상 살아가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남의 집이라면 입식 주방, 수세식 화장실과 욕실, 외부 화장실, 농산물 보관창고(특히 벼는 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비), 공구ㆍ농기구실 등 필요한 시설만 새로 들이거나 손을 보십시오. 재료도 재활용품을 이용하거나 중저가로 주거 공간에 투입하는 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입니다. 시군마다 중고 문짝이나 창문, 보일러 등을 판매하는 곳이 있으니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요약하면 살기는 편리하게 고치되 직접 매만져서 비용을 줄이는 것이 임대농가 수리의 핵심이라 하겠습니다.
임대농가를 수리하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수리범위와 이사할 때 설치시설의 이전여부가 그것입니다. 집주인에 따라서는 합의하지 않은 수리 범위 때문에 임차인과 갈등을 빚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요컨대 왜 ‘허락없이 마음대로 뜯어 고치느냐’는 것이지요. 따라서 사전에 주인과 같이 둘러보면서 고칠 범위에 대해 설명을 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수리도중에 변경이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소한 변경은 상관이 없겠지만 그 이상의 변동사항은 전화로라도 다짐을 받아두는 것이 뒤탈이 생기지 않습니다.
만약 빈 집을 산 경우라면 아마도 수리규모가 달라지겠지요. 내 집이만큼 아무래도 비용절감보다는 안락함과 완성도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을까 합니다. 소재 또한 중급 이상의 친환경재를 기본으로 하고(합판이나 몰딩도 친환경 제품이 따로 나와 있습니다)내구성이 보다 오래가는 것을 선택합니다. 시간과 자금의 여유가 있다면 가족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모아 수리의 기본방향을 정하고 공간기획도 함께 해봅니다. 한 예로 문손잡이를 시판 제품이 아닌 자연소재를 이용하자는 안이 확정되면 미리미리 나뭇가지를 구해 껍질을 벗기고 말려두었다가 필요한 시점에 달아야 문제가 없습니다.
요즘 추세대로 태양광 발전시스템이나 태양열 온수기 등 신재생에너지에 관심이 있다면 애초에 설계에 반영하여 뒤에 구조재를 별도로 설치하는 등의 번거로움을 피합니다. 지붕 함석을 갈기전에 전지판이나 집열기를 받칠 구조재를 미리 설치하는 겁니다. 그외 시골살이에 오래도록 꿈꿨던 것을 실현할 기회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벽난로를 설치하고 싶었다면 보일러를 겸한 제품도 이미 시중에 나와있으니 참고하십시오. 나무보일러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연통의 폐열을 아궁이를 거쳐 나가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에너지 효율도 높이고 나중에 별도 공사에 따른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이미 앞서 경험을 한 귀농 선배들의 집 구석구석에 숨어있으니 많이 돌아보고 검색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임대든 소유든 빈집 수리의 공통점은 단열보강과 공간확장, 자연소재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도록 꾸미는 일이 돠겠지요. 전통적인 농가주택은 두께 10cm 안팎의 심벽집(나무기둥사이에 나뭇가지나 수수대로 외를 엮은 뒤 안팎을 흙미장으로 마감한 집)으로 문과 창에 틈새가 많아 단열에 취약한 편입니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천정과 벽 모두 단열재를 덧대 난방열이 허비되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온수파이프를 다시 깔게 될 경우에는 바닥단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집수리시에 바닥단열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얇은 매트 한 장만으로 마감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요. 이런 집은 오랜시간 보일러를 틀어도 바닥이 따뜻해지지 않고 열기가 새어나갑니다.
집고치기는 수리 범위에 따라 이중벽 쌓기, 보온재 덧대기, 드라이비트(발포 단열재로 외벽을 감싼뒤 미장후 칠로 마감하는 외벽단열법)처리 등 빈집의 형태에 맞게 보강을 해줍니다. 이때 양수기함과 보일러실도 함께 손을 봐서 혹한기에 동파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합니다. 아직도 시골에는 얇은 함석이나 보온덮개 한 장으로 만든 천막형태의 보일러실이 남아 있습니다. 보일러실 벽뿐만 아니라 분배기에 연결된 온수 파이프도 적절한 보온재로 감싸줘야 새는 열기를 보존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신경써야 할 일은 보다 너른 공간을 만드는 겁니다. 홍성을 기준으로 대개 전통 농가는 아궁이 부엌과 정사각형에 가까운 작은 방 2~3개와 사랑채 혹은 아래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천정이 낮아 도시에서 쓰던 장롱이나 장식장이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공간도 좁아 가구나 TV, 컴퓨터를 들여놓으면 겨우 가족의 잠자리 정도만 남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시의 넓은 거실에 익숙해진 터라 답답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해결책은 아래 웃방을 트거나 아파트 거실을 확장하듯 마루까지 방을 넓히는 것으로 이때 천정 반자를 일부 뜯어 안쪽의 상태가 좋으면 서까래가 드러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면 맞배지붕의 구조상 장롱을 넣을 수도 있고, 서까래가 보이면 흙과 나무가 조화된 심벽집의 멋스러움도 되살아납니다. 여기에 전통문양을 살린 전등을 달아주면 다른 인테리어가 필요치 않지요.
집이 49%라면 창고가 51%
빈집 고치기가 이 장의 열쇳말이지만 실제 시골에서 살아보면 집보다도 창고가 더 절실한 공간임을 깨닫게 됩니다.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양의 바깥 살림살이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수납공간이 필요한 까닭에서입니다. 저마다 다르겠지만 제 나름대로 수납공간이 필요한 순서를 정한다면 농산물 저장고→농자재 창고→공구ㆍ농기구 보관고→농기계고→차고→그외 비가림 공간쯤 되지 않을까요? 좌우간 시골에서는 비를 맞지 않는 공간이 많을수록 좋습니다. 하다못해 마당에 널어놓은 콩 따위를 갑작스런 소나기에 젖지 않게 하려면 포장째 끌어들일 곳이 필요합니다.
집의 구조상 비가림 공간이 부족하면 차양을 달아내거나 창고를 대신할 비닐 하우스를 지어도 무방합니다. 단 수납용 하우스는 보관하게될 물품들이 자외선에 손상되지 않게 1차로 비닐을 씌우고 차광막이나 보온덮개로 덮은 다음 비닐을 한 번 더 씌우면 강풍이나 많은 눈에도 안심할 수 있습다. 경험상 이중 비닐이면 최소 5년은 끄떡없습니다. 문짝은 손수 만들거나 하우스 관련 자재점에서 파는 도어를 달면 됩니다.
빈 집을 고칠 때 자재를 한꺼번에 구입해 본채외에 창고나 헛간까지 손을 보는 것도 경제적입니다. 수납하기 불편한 옛시렁(굵은 나무 두어개를 가로로 길게 매단 선반)대신 다단 선반을 설치하고 문이 없는 신발장 형태의 중고가구 몇점만 들여놓아도 공구나 농자재의 수납효율이 크게 좋아집니다. 농가살림이란 게 어떤 때는 공구실에 하루에 열 번도 더 들락거리게 되지요. 그럴 때 필요한 것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찾다가 시간보내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예 공구실을 별도로 마련하여 용접기, 대패, 원형톱, 핸드그라인더, 엔진톱, 드릴류(일반, 충전, 해머드릴 별도), 고속절단기, 파이프렌치, 스패너 등을 크기별로 정리해 놓았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귀농 동료들의 집도 비슷합니다. 사용빈도가 낮은 특수 공구들은 아예 목록을 만들어 카페에 올려서 필요한 이들이 빌릴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아울러 빈 집 정비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업이 배수로 정비입니다. 시골집, 특히 재래식 부엌과 아궁이가 남아있는 집은 장마철에 습하고 심지어 물이 차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는 아궁이와 불길(燃道)이 부엌 바닥보다 낮고 장독대가 놓인 뒤뜰이 대개 집터보다 높은데다 배수로가 토사나 낙엽 따위로 메어 물이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예전에는 사시사철 불을 때어 습해(濕害)가 적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그래서 매년 배수로 정비에 신경을 쓰든가 콘크리트나 플라스틱 재질의 U자형 흄관을 설치해 물길을 확실히 유도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빈 집 안팎이 그런대로 살만큼 바뀌었으면 마무리는 조경입니다. 전통 농가는 화려한 치장보다 소박한 꾸밈이 더 어울리는 만큼 많은 돈을 들이는 것보다 주변의 흙과 돌, 나무를 이용해 꾸미는 것도 방법중 하나입니다. 비싸고 화려한 조경석은 위화감을 주기 쉽쉽습니다. 주변 공간이 넉넉하면 화단을 디자인하되 너무 평면적인 느낌이 들지 않도록 흙을 돋우어 낮은 구릉을 만들고 둘레를 돌로 한 두 단 두르면 한결 멋이 납니다. 이어 화단에 꽃과 나무를 적절히 배치해봅니다. 보다 너른 곳이라면 정원개념으로 살면서 천천히 꾸며가는 것도 권할만 합니다. 서양식 데크나 작은 연못, 자작 그네와 우체통, 래티스(넝쿨장미 등을 올리는 격자형 시설)등 자신의 집에 어울리는 것들을 틈나는 대로 만들다 보면 도시의 즐거움과는 전혀다른 신세계가 열리겠지요.
평생에 단 한 번, 살고 싶은 집짓기
귀농 6년차에 흙집을 짓다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림같은 집을 꿈꾼 적이 있을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랬기에 귀농 준비로 파일을 만들면서 한 권엔 ‘살고싶은 집’이란 표제를 붙여놓고 틈틈이 관련자료 스크랩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귀농초에 농촌의 삶은 전원생활이 아니었고, 내 손으로 짓는 집도 바쁜 농사일에 밀려 5년 동안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시골생활 6년이 되던 해 저희 부부에게도 집을 지을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연초에 한 방송사에서 방영한 환경 다큐멘터리중 1부 ‘집이 사람을 공격한다’ 는 제게 강렬한 경고의 메시지로 다가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골에 내려와 두 번의 집수리를 하는 동안 건강과 생태는 거의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몰랐다고 하는 편이 솔직한 답이겠네요. 그래서 구들방 아랫목에 철골보호용 내화(耐火) 페인트 한 말을 서슴없이 쏟아부었습니다. 농사는 철저히 생태농을 지향했건만 나중에 알고보니 집은 건강한 삶터가 아니라 병을 부르는 곳이었습니다.
워낙 급한 성격인고로 외출한 아내가 돌아오자마자 3주를 졸라 건축 허가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 뒤 홍성지역의 새 집을 중심으로 답사를 다녔고 아무데고 지나는 길에 눈에 띄는 집이 있으면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거의 한 달여를 돌아다닌 결과 아내와 함께 설계도 비슷한 걸 그려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지어야 할지를 결정하자 무슨 소재를 쓸까가 고민으로 남았습니다.
답사하면서 집주인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지만 정작 비용과 환경, 두 가지를 만족시키는 재료는 많지 않더군요. 때로 전문가의 자문을 얻기도 하고 건축 관련 전시회를 찾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친환경 슬로건을 부르짖는 건축 자재도 진위를 판단하기 위해 인터넷과 방문을 통해 직접 확인하였습니다. 경량 기포콘크리트(ALC)블럭과 흙소재 사이에서 고심 끝에 선택한 흙벽돌 역시 다섯 군데 이상 현장을 찾아가 유해물 첨가 여부와 생산과정을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그해 3월 중순경 모든 점검을 끝내고 드디어 집지을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구옥 철거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포클레인 대신 트랙터로 했고, 보나 서까래를 맞추는 골조 작업에도 크레인 대신 활용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사이를 흙벽돌로 메우는 목구조 흙집을 생각하였으나 3천만원이라는 골조 비용이 부담스러워 1층은 벽돌을 쌓고 다락방은 목조로 얼개를 짰습니다. 인근 제재소에서 켜온 나무를 칫수대로 깎고 다듬는 데 보름이 걸렸고 대패질만 다시 일주일을 넘기는 지난한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생태적이지만 까다로운 건축 소재-흙
당시 봄장마라 부를 만큼 자주 내린 비때문에 흙벽돌로 쌓은 벽체가 무너질까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흙벽 전체를 하우스 비닐로 덮었다가 뜯어내기를 서너 차례 반복하니 농사지으랴 집지으랴 농번기에는 날마다 녹초가 되다시피 했지요. 그래도 집 짓는 동안 눈쌀 한 번 찌푸리지 않고 도와준 아내와 공정이 한 단계씩 끝날 때마다 ‘아빠, 우리 언제 새 집에 들어가는 거야?’ 라며 묻던 아이들의 천진함에 쌓인 피로를 풀어가며 집짓기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고추심고 나서 지붕 판자 덮고, 모낸 뒤에 미장하는 식이었으니 일은 한없이 늘어졌지만 그리 서두를 것도 없었습니다. 2월말에 시작한 공사가 9월말에야 끝이 났으니 장장 8개월이 걸린 셈입니다.
지붕의 기울기도 보통 23도 안팎으로 하지만 태양 전지판이 햇빛을 잘 받도록 30도로 더 가파르게 하고, 창문도 시스템 창호를 싼 값에 구해 따뜻함이 집밖으로 새지 않게 했습니다. 지붕과 방바닥은 열을 뺏기지 않도록 단열을 충분히 하고 향(向)을 제대로 잡은 뒤에 처마를 빼서 겨울에는 햇볕이 잘 들게 하고 여름에는 따가운 햇볕을 막을 수 있게 했습니다. 난방은 기름과 나무를 함께 쓰는 보일러를 놓았는데 지금까지 기름 사용량은 일년에 평균 두 드럼 안팎입니다. 또 발효작업시에 요긴하게 쓸 지하저장고를 처음부터 발코니 아래에 앉혔는데 따로 지으려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었습니다.
생태적인 농사의 첫 걸음은 뭐니뭐니해도 똥과 오줌을 잘 쓰는 것이라 합니다. 집 안에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었지만 밤이나 손님을 맞을 때에만 쓰고 저와 아내는 바깥의 뒷간을 이용합니다. 그래서 집짓는 사이 헐어버린 뒷간대신 집터 옆에 움막 뒷간부터 지었고 새 집에는 처음부터 건물에 붙여지었습니다. 새롭게 짓는 만큼 똥과 오줌을 따로 쓸 수 있게 만들고 똥에는 재나 왕겨를 뿌려 냄새가 덜나도록 고안했습니다.
귀농 이후 늘 소박하고 아담한 집을 꿈꿨지만 농촌에서 몇년간 생활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애써 가꾼 늙은 호박이나 고구마를 썩지 않게 보관하려면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넉넉한 공간이 필요했고, 도시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시골 살림살이를 갈무리하기 위해서는 다용도실이 제법 커야 했습니다. 고생한 아내를 위해 집터중 제일 좋은 자리에 주방을 앉혔고 나중에 부모님을 모시고 살 때를 대비해 화장실과 욕실을 분리했습니다.
겉에서 보면 흔히 어린시절 도화지에 그린 집처럼 맞배지붕을 한 지극히 단순한 모양새로 아쉬움은 남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단순한 구조가 하자가 적고 무엇보다 밑그림에서 시작해 설계, 마무리까지 기초와 벽돌 쌓기, 미장 등을 제외한 전과정을 하나하나 즐기며 일했기 때문입니다. 정히 필요할 때에만 사람을 불러쓰니 다른 이들과 부딪칠 일도 없었습니다. 즉 힘은 들었으되 마음 고생하는 일이 없었으니 지나간 일이 모두 재미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모름지기 집을 짓는 일이나 삶을 꾸려가는 일이나 꽉 짜여진 계획에 맞춘다거나 누군가가 시켜서 해야 한다면 생각만 해도 피곤한 일일 겁니다. 집지을 나무를 마름질하거나 장붓구멍을 깎는다면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하겠지만 세상살이는 지금 돌아가는 것보다 한참 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빡빡한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살이를 선택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무와 흙집을 짓고 싶다면 시멘트와 콘크리트 집을 짓듯 서둘러서는 곤란합니다. 천천히 느긋하게, 흙이랑 나무랑 말라가고 어우러지는 거 봐가며 짓는 이의 손길을 조금씩 조금씩 더해가면 종국에는 제 꿈대로 살고싶은 집, 멋드러진 집을 만날겁니다.
나보다 앞선 이가 선생님이다
집을 지은지 9년이 되어가는 지금 살고있는 집을 돌아볼 때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중 하나는 벽에 도배를 하지 않고 흙으로 마무리했다는 점입니다. 거실과 주방 하단 1m 정도만 사람이 기대어도 묻어나지 않게 나무널로 마감했을 뿐입니다. 그 위는 수수와 녹말로 풀을 쑤어 흙물과 혼합해 칠을 한 덕에 아직까지 한 번도 도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한지가 좋다고 하나 흙벽에 잘 붙지도 않고 경제적인 부담도 큰 편입니다.
많은 집을 돌아봤지만 아직 우리집만큼 편안함을 주는 벽을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방문객들도 안온한 느낌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기실 저희도 남의 집에 가서 보고 따라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여기저기 찾아가 묻고 기록하다보니 설계에서 마감까지 어느새 머릿속에 집의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지게 되더군요. 창작도 어차피 절반 이상은 모방이 아닙니까? 거기에 스스로의 아이디어 몇가지를 보태면 됩니다. 처음에 저희 부부도 수수풀이 좋다하여 실제로 해보니 너무 붉은 느낌이 나서 곧바로 녹말풀로 바꿨습니다. 그랬더니 옛날 흙집처럼 더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집짓기 전에는 줄자를 차에 두고 다니다 들어가보고 싶은 집의 문을 두드려 자문을 구하고 현관 등을 일일이 실측(實測)을 했던 기억이 새롭네요. 어느 곳이든 집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설명을 요구하면 십중팔구 차까지 대접하면서 경험담내지 고생담을 술술 풀어놓게 마련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건축 전반에 관해 미리 공부를 해두면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짓고 싶은 건축의 형태와 소재에 대해 자세히 알게되면 건축주가 주관하여 짓는 이른바 직영(直營 )을 하더라도 손실을 줄일 수 있고 실수도 최소한도로 줄일 수 있습니다. 즉 목수나 인부들이 장난을 치거나 대충 넘어가기가 어렵게 됩니다. 예를들어 단열성이 뛰어 ALC 블럭으로 지을 때 소재의 특성상 튀어나온 모서리를 보호할 수 있는 코너비드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냥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이때 당당히 지적하고 설치를 요구하는 겁니다. 집주인이 아무것도 모르면 건축과정은 순조로울지 모르지만 나중에 그만큼 하자로 고생할 가능성이 크다 하겠습니다.
요즘은 친환경 주택에 관심이 높지만 실제 현장에서 올바르게 시공되는 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건강에 좋다는 흙집을 지으면서 정작 내부 기둥과 보에 수용성(水溶性) 스테인대신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많이 나오는 오일성 스테인을 칠하는 예도 가끔 보게 됩니다. 이 문제 역시 집주인이 두가지 도료의 용도와 특성을 알면 막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일이지만 구리나 크롬, 비소 등 중금속이 들어있는 이른바 CCA 방부목으로 욕실과 화장실 발판을 서비스로 만들어준 사례도 경험했습니다. 그 위에 맨발로 올라설 집주인이나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소름이 돋을 일이지요.
평생에 한 번 이상 짓기 어려운 집, 낭비나 후회없이 짓고자 한다면 그에 걸맞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낮은 산에 오르려해도 걸맞는 복장과 신발이 필요한 것처럼 최소 수천만원이 들어가는 평생의 숙원사업을 준비없이 발주하는 것은 모험과 같습니다. 포장이사와 턴키베이스에 길들여진 도시적 사고방식으로 낯모르는 목수에게 모든 걸 떠맡기려 한다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저그런 집을 만나기가 쉬울 겁니다.
살 집을 두 번 고치고, 두 채를 직영으로 짓고, 동료들의 집수리를 돕다보니 건축자재상에 참 많이도 들락거렸습니다. 거기서 만난 건축 관계자들은 대부분 ‘어떻게 해서든지 남겨야 하는 현실’ 때문에 고민스런 표정이었음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주문은 거의 한결같았습니다. “좀 더 싼거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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