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를 기다리는 그 어느 산속의 집으로
삶의 독백은 사색의 깊은 우물을 만든다.
어느 사이, 아산(雅山) 조방원의 수묵화에 빠져 번잡한 도시를 털고 호젓한 산골에 발길을 떨군다.
살얼음같이 비친 객(客)의 겹겹이 날숨 얽힌 여음(餘音)이 수묵화에 퍼졌고
광주시립미술관 제 1전시실,
깊고 진한, 엷고 투명한 수묵의 농담(濃淡)처럼 피아니스트 조현영 첼리스트 윤소희의 선율이 전시실 가득 퍼졌다.
‘雅山조방원 그림 속에 비친 선율’속으로
1926년 전남 무안군 지도에서 태어났고 2014년 타계 한 아산 조방원 선생은 남도 수묵화의 경지를 이뤄낸 남종화의 거장으로 소치(小癡) 허련(許鍊), 남농(南農) 허건(許楗)을 잇는 남종화의 큰 산으로 꼽힌다.
광주시립미술관과 아산문화재단이 함께한 ‘나그네를 기다리는 그 어느 산속의 집으로’ 는 아산 조방원 수묵화 작품 70여점과 아산 조방원선생이 수집했던 선현의 간찰(편지)과 서화류가 전시된 기획전이다.
전시기간 중 광주시립미술관 제 1전시실에서 열린 미술관 음악회 ‘아산(雅山) 조방원 그림 속에 비친 선율’은 콘서트의 울림을 전시실에 고스란히 옮겨 수묵의 사색에 빠져 보는 경이로운 시간이었다.
홀로 보는 적적함에서 벗어나 어느 사이 수묵 속으로 음악과 함께 빨려들어 갔다.
雅山조방원의 수묵화처럼 음악을 그려내는 피아니스트 조현영
끊임없는 연습의 탑 위, 다른 예술의 첨탑을 쌓는 것이 혹여 예술의 도(道)에 이르는 것은 아닌지?
수묵화 그림 속, 피아노 선율이 운무망망 깊은산중 낙수의 공명처럼 울린다.
첫 번째 청아(淸雅), 두 번째 시대정신에서 비롯된 예술적 방황, 세 번째 고요,
네 번째 밤과 새벽사이, 다섯 번째 나그네를 기다리는 산속의 아침,
여섯 번째 삶 저 너머......
옷을 갈아입듯 여섯 개의 음악 속으로 발끝 세우고 따라 나선다.
바흐, 베토벤, 아르보 페르트, 쇼팽, 드뷔시, 그리그, 엔니오 모리코네의 그림 같은 선율이 전시실을 연주홀 삼아 주객전도(主客顚倒)의 허물마저 비단옷처럼 입었다. 피아니스트의 연주 후 설명은 낯설음마저 녹여낸다.
비단 조방원의 수묵세계를 피아노선율로 옮겨 논 것만이 아닌 조방원의 예술세계를 촘촘한 설명해가는 피아니스트 조현영은 현재 ‘아트 앤 소울 ’ 예술강의기획 대표이다.
그녀의 피아노 연주와 함께하는 예술이야기가 모두를 사로잡았다.
아르보 패르트, ‘슈피겔 임 슈피겔’(거울 속의 거울) 상상의 세계
아르보 패르트는 1935년 유럽 발트해 연안에 있는 에스토니아 공화국에서 탄생한 현존(現存) 작곡가다.
아르보의 패르트가 작곡한 음악 중 50개 이상이 영화음악으로 쓰였다. 미니멀리즘작곡가이기도 한 그의 작품은 단순하지만 많은 상상을 하게한다.
정제된 화성으로 그레고리안 성가나 르네상스시대 폴리포니를 연구한 그의 음악세계는 매우 종교적인 색채를 띄고 있다.
특별하게 세 번째 이야기 ‘고요’에 펼쳐진 아르보 패르트 작곡의 ‘슈피겔 임 슈피겔’(거울 속의 거울)은 많은 음악적 상상을 끌어냈다.
맨발로 걷는 밤빛 강가의 하늘거리는 쉬폰 드레스처럼 ‘거울 속의 거울’은 겹겹이 여흔을 만든다.
수묵화는 섞여 확장되지만 절제된 첼로음성으로 ‘슈피겔 임 슈피겔’......
그렇게 거울 속으로 깊이 빨려들어갔다.
‘나그네를 기다리는 산속의 아침’ , 그리그, 페리퀸트의 ‘아침의 기분’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 페리퀸트의 아침은 모험의 세계이기도 하다.
나그네를 기다리는 수묵의 아침은 페리퀸트의 거대한 아침을 만났다.
첼리스트 윤소희의 선율이 어둡던 전시실 창대한 아침의 빛을 만들었다.
깊은 산골, 예술혼을 태우던 그 수묵의 적막함이 알라딘 요술램프의 거인 몸짓처럼 아침을 깨웠고 페리퀸트의 아침은 기지개를 펴 창대한 빛을 노래했다.
비록 정적의 기다림은 그리움의 아침을 만나 그렇게 저 너머의 세계로 사라졌지만
88년, 아산(雅山)의 삶은 수묵 잔향(殘響), 촘촘한 기억으로 모두를 만났다.
피아니스트 조현영, 첼리스트 윤소희의 심혼(心魂) 가득한 선율이 70여점 수묵을 그 깊은 기억 속으로 진하게 녹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