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뇌왕(雷王)의 저력(底力)
한 장의 밀지(密紙).
그것은 백부가 오랜만에 보낸 서찰이었다.
그 안에는 뇌옥린이 그리도 알고 싶어하던 뇌왕천의 내력이 간단하게 적혀 있었다.
<이제 네게는 알 자격이 있다. 강자(强者)가 되었으니까!
너는 혈통상 이곳의 후계자가 되어야 하나,
이곳의 율법은 피의 계보로써 대업(大業)을 상속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네게는 네 명의 경쟁자가 있다.
일컬어 천하사재(天下四才).
너는 네 자신이 그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그 후, 너는 진정한 본좌의 조카가 될 것이고… 뇌왕천을 너의 주먹에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하여간, 너의 출관을 축하한다.
네가 얻어야 할 것 중 십분지일(十分之一) 정도만 얻은 것이나,
일단 너의 지혜와 인내력은 인정받은 것이다!
이제 네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 네 스스로 알아 내야 하고, 네 스스로 너를 입증시켜야만 한다.
네 명의 경쟁자 중 제일 조심해야 할 사람은 검비룡(劍飛龍)이다
. 그 녀석은 본좌도 속을 알지 못할 녀석이다.
이제껏 내게는 잔혹한 의무(義務)만이 주어졌었다.
하나, 이제는 네게 패업(覇業)을 이룩할 존재로서의 권리가 주어지리라!
내일… 너를 보겠다!
너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너는 삼 년으로 예정이 되었던 연무를 이 년 반으로 단축시켰다.
네가… 자랑스럽다!>
유난히도 웅휘로운 필체로 글이 적혀 있다.
서찰은 탁자 위에 펼쳐져 있고, 뇌옥린은 두 손을 깍지낀 채 서찰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팔황검제(八荒劍帝) 뇌천강(雷天剛).
패도를 걷는 이들에게는 신이며, 그의 적들에게는 악마이며,
무도(武道)에 든 젊은이들에게는 영원한 우상으로 군림하는 무림의 절대자.
드디어 그가 뇌옥린을 부른 것이다.
드디어…!
멋진 여명(黎明)이었다.
오랜만에 휘장이 걷힌 뇌왕루의 창(窓)을 통해 보이는 일대의 정경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뇌옥린은 어느 새 십칠(十七) 세(歲)의 젊은이가 되어
뜨락을 뒤덮는 연무(煙霧)를 고독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완연한 봄(春)이다. 금잔화(金盞花)가 피어나고 있고,
울금향(鬱金香)이 농염한 자태로 피어난 위로 안개가 흘러내리고 있다.
뇌옥린은 며칠째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좋아! 그대로 하자. 내 식(式)대로!'
그의 입가에는 며칠 간 보이지 않았던 예의 그 미소가 회복되어 있었다.
옥수(玉手)에도 어떠한 느낌이 흐르고 있었다.
대패업(大覇業)의 전수자로 인증을 받은 뇌옥린.
그에게는 가장 아름답고 처절한 여명이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뜨락 일대에 쳐진 기문대진(奇門大陣)이 걷혀졌고,
수천 명의 검사(劍士)들이 예복(禮服)을 걸친 채 도열해 있었다.
오색기폭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고, 천하 도처에서 온 외단(外壇)의 무사들이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뇌왕루 쪽을 기웃거리고 있다.
꾸역꾸역 모여든 사람들, 이들은 뇌옥린이라는 존재에 대해 강하게 인식을 하고 있었다.
천하사재에 이어 뇌왕천의 도전자로 발탁된 희대의 행운아,
그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뇌왕천은 풍운(風雲)이 살아 꿈틀거리는 곳이다.
새벽이 깨어나며 일대의 십처(十處)에서 장중하고 웅장한 북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둥- 둥- 둥-!
가공할 화음을 이루며 이십 리 일대를 진동시키는 북소리 가운데
, 둔중한 기관음과 함께 뇌왕루의 문이 만인이 보는 앞에서 열리며
수십 명의 자색(紫色) 전포(戰袍) 차림의 무사들이 두 줄로 걸어 나왔다.
대오를 맞춰 걸어 나오는 무사들은 하나하나 호법급 지위에 올라 있었다.
그들 가운데, 낯색이 너무나도 흰 미소년 하나가 금포(錦袍)를 걸친 채 걷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주단을 밀고 가는 거한(巨漢)이 둘 있다.
둥- 둥- 둥- 둥-!
북소리가 피를 끓게 하고, 일대는 가공할 침묵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드디어 그가 처음으로 만인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팔황검제는 의도적으로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가운데,
뇌옥린이 자신의 거처인 제천전(帝天殿) 쪽으로 오게 하는 것이었다.
천하를 질타하는 무사들은 뇌옥린이 나서는 찰나, 절을 해야만 했다.
어떤 자는 그의 신분을 부러워했고,
어떤 자는 그의 나이 어림을 은근히 걱정했고,
모든 사람이 그의 신비로움에 경외감을 느꼈다.
하나 당사자인 뇌옥린만은 기이하게도 담담한 표정이었다.
'이곳은 나의 대지(大地)가 아니다. 나는… 그것을 확인했다. 내가 가는 길은 타인의 길이지,
그의 길이 아니다. 이제… 나의 길로 가겠다.'
그는 주단을 밟으며 제천전 쪽으로 갔다.
그는 뭇 사람의 눈빛 가운데에서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의연한 자태로 제천전 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거대한 땅이다. 모두 거인들이다. 그러나 아직은 나의 대지가 아니다.'
열여덟 개의 문(門)이 모두 열렸다.
제천전의 뜨락에서 제천전의 내전(內殿)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두꺼운 철문을 열여덟 개 지나야 한다.
그 문이 모두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화려한 복장을 한 무사들이 포검(抱劍)한 채 뇌옥린에게 예우를 표했고,
장로호법(長老護法)들은 뇌옥린을 기다리고 있다가 일제히 절을 했다.
그리고 뇌옥린의 망막 안으로는 제천전 내전 안에 서 있는
강호거산(江湖巨山)의 얼굴이 처음으로 보이고 있었다.
머리 위에는 금관을 썼고, 손에는 무적홀(無敵笏)을 들고 있는 체격이 장대한 금포노인.
그는 뇌옥린이 성큼성큼 다가서는 것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녀석, 네 아비와 판에 박은 듯 같구나!"
아아, 그는 바로 강호의 하늘이라는 팔황검제 뇌천강이 아닌가?
뇌옥린은 점점 팔황검제 쪽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그가 제천전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 열여덟 개의 문은 하나하나 큰소리를 내며 닫히기 시작했다.
거대한 석전.
두 사람만이 이 안에 있다는 것은 의외로운 일이었다.
이 자리에는 사무영과 혈무영마저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방음 장치가 완전히 되어 있으며, 외부로 통하는 모든 관문은 봉쇄가 된 상태였다.
팔황검제 뇌천강은 태사의에 앉아 뇌옥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뇌옥린은 예법도 잊은 듯 허리를 숙이지 않았다.
뇌천강은 강호의 거인답게 뇌옥린이 어떠한 자세를 취하건 상관하지 않고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역시 하늘의 기세를 지니고 있었다.
"너는 완성(完成)되었다. 너는 본좌의 기대 이상으로 성취를 이룩했다
. 너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뇌천강은 눈에서 전광을 뿜어 냈다.
번쩍-!
두 줄기 전광 앞에서 고개를 쳐들고 있을 사람은 뇌옥린뿐이리라.
뇌옥린은 입술을 질겅질겅 깨물다가 운을 떼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오는 날부터 드리려던 말씀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예?"
"훗훗… 시시한 말 따위는 할 것 없다
. 일단은 백부가 너의 출관을 위해 준비한 세 가지 예물이나 구경해라!"
뇌천강은 진기 어린 목소리로 뇌옥린을 휘청이게 했다.
"세 가지 예물이오?"
"본시 네가 여기 오는 날, 네게 전하려 했다. 하나, 너의 기질이 유약했는지라 뒤로 미뤘다."
뇌천강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숨결만으로도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강호의 제일인으로 군림하는 것은 결코 세력의 거대함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모든 점에서 막강(莫强)한 사람이었다.
그는 큰 걸음을 떼어 놓았고, 금탁자 곁으로 다가갔다.
그 위, 뇌옥린을 위해 준비가 된 세 가지 예물이 놓여 있었다.
세 가지 모두 양피 두루마리였다.
하나는 청색(靑色), 하나는 금색(金色), 하나는 흑색(黑色)이었다.
"본시… 이중 두 가지는 너의 아비에게 전수될 것이었다!"
"으음…!"
"네 아비는 너만큼이나 눈빛이 청아(淸雅)했다.
그 녀석도 너처럼 꽤나 고집이 세었지.
훗훗… 그 녀석은 패자(覇者)가 되기 싫다며 이곳을 떠나갔다.
그래서 이중 두 가지를 갖지 못한 것이다!"
뇌천강은 제일 먼저 흑색 두루마리를 펼쳤다.
촤르르르륵-!
두루마리가 펼쳐지며 무수한 글자가 나타났다.
<악양(岳陽) 청화장(淸華莊),
남창(南昌) 무영지존궁(無影至尊宮),
금릉(金陵) 몽화서축(夢華書築),
낙양(洛陽) 화화비전(花花秘殿),
천진부(天津府) 태평전장(太平錢莊)…>
두루마리 안에는 백팔 개의 장소가 적혀 있었다.
"여기 기록된 장소는 모두 본천(本天)의 소유지이다. 이것은 이제 너의 소유 영토가 되었다."
"아아…!"
"훗훗… 다 합하면 이천만(二千萬) 묘(畝)이지.
이 장소는 네가 최후에 물려받게 될 장소에 비해 오분지일의 규모이다!"
뇌천강은 미소지으며 청색 두루마리를 쥐었다.
그 안에도 글자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지명이 아니라 인명(人名)이었다.
"여기 적힌 인물들은 절대로 배반하지 않을 본천의 가신(家臣)들로,
그 수는 칠천팔백(七千八百)에 달한다."
"…"
"이들은 힘으로 정복당한 팔황무가(八荒武家) 사람들과는 달리
진정한 제천뇌문(帝天雷門)의 가신들이다. 이들은 장차 너를 보필할 것이다!"
"백… 백부!"
뇌옥린이 무엇인가 말하려 하는데.
"훗훗… 말할 것 없다. 다 아니까!"
뇌천강은 한 마디 말로 뇌옥린의 뒷말을 끊어 버린 다음, 세 번째 두루마리를 손에 쥐었다.
금색 두루마리.
뇌천강은 그것을 쥐며 뇌옥린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의 시선은 영혼 속으로 파고드는 침투력을 지니고 있었다.
"녀석, 체격이 다부지군. 겉보기는 유약하나 이미 강철의 신체이고, 몸이 잘 빠졌다!"
뇌천강은 조카의 몸을 훑어보다가 두루마리를 불쑥 전했다.
그는 미소지으며 왼손을 들어 뇌옥린의 어깨를 거머쥐었다.
"네가 펴봐라. 만족할 것이다. 그것을 얻기 위해 꽤나 고생했다.
다른 것에는 자신이 있으나, 그것에는 자신이 없었거든?"
"무… 무엇이기에…?"
"여자(女子)!"
"예?"
뇌옥린은 흠칫하며 두루마리를 조심스레 폈다.
촤르르르륵-!
금빛 두루마리가 펼쳐졌고, 그 안의 것이 나타났다.
계화(桂花) 아래, 운발(雲髮)을 치렁치렁 기른 묘령의 여인 하나가 다소곳이 서 있다.
뺨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노을이 흐르고 있고, 오똑 선 콧날에는 매혹이 반짝거린다.
조금 찡그리는 듯한 입가는 뇌쇄(惱殺)의 힘을 지니고 있고
, 부풀어오를 대로 부풀어오른 몸뚱이에서는 향기가 넘실거리고 있다.
"누… 누구입니까?"
뇌옥린의 뺨은 조금 붉어졌다.
그림 안의 미녀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천하제일미색(天下第一美色)이라 불리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훗훗… 너의 여자(女子)다!"
"예?"
"천하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계집들을 수소문해 보았다.
결과 황궁의 십절군주(十絶君主) 주영롱(朱玲瓏)이 있고
, 본좌 휘하 문창세가(文昌世家)의 처녀 가주(家主)인 악금예(岳琴藝)가 있고,
본좌를 암살하고자 벼르고 있는 풍운십천회(風雲十天會)의 열녀(烈女)
천월방(天月芳)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중 가장 아름답다는 악금예를… 너의 여자로 선택했다!"
"저… 저의 여자라니요? 제… 제겐 여자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녀석! 본좌는 네가 여자가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본좌에게는 손주가 필요하다. 그것뿐이다.
한시빨리 성혼(成婚)하여 남아를 본좌 품에 안겨 다오!
처음부터 끝까지 막강하게 기르게끔…"
뇌천강은 이런 인물이었다.
악금예(岳琴藝).
천하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표독하다고 불리는 미인이다.
천하사재(天下四才) 중의 봉재(鳳才)로 불리고 있는 그녀는
절정의 무도자가 되기 위해 시집가기를 포기한 바 있다.
나이 십팔 세, 뇌옥린보다 다섯 달 빨리 태어났고,
여자이기에 남자보다는 빨리 성인이 되어 강호계에는 이미 사 년 전부터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녀는 뇌옥린의 여자가 되어 버렸다.
팔황검제 뇌천강이 정한 이상, 그것은 절대 깨어지지 않을 율법(律法)이 되고 만 것이다.
"네 여자다! 너만의 여자!
사실… 젊은 나이에는 계집의 품도 좋을 때가 있다. 훗훗…!"
뇌천강은 파안대소를 터뜨렸고.
"제… 제게는 여자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뇌옥린의 빰은 홍옥 사과처럼 붉어지고 있었다.
하나의 여자(女子).
그것은 하나의 길(路)이고, 하나의 운명(運命)이라 할 수 있엇다.
"네 멋대로 해라. 버리고 싶다면 버리고, 죽이고 싶다면 죽이고, 남 주고 싶다면 남을 줘라.
너의 여자니까, 네 멋대로 해라. 프핫핫핫…
그러나 일단은 그녀를 패배시켜야 한다.
그 이전에는 그녀를 안을 수 없다!
하여간… 이제 너의 시대(時代)가 시작되리라.
너는 제천뇌문(帝天雷門)의 패도절학(覇道絶學)을 마저 연마한 다음,
중원천하의 무림계를 너의 뜻대로 다스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변황(邊荒)의 대혈마성(大血魔城)과 백도(白道)의 이단자(異端者)들이 뭉쳐 이룩한
풍운십천회(風雲十天會)를 깨뜨리는 패업(覇業)을 달성하게 될 것이다."
뇌천강은 뇌옥린의 어깨를 힘차게 쥐고 있었다.
그 모든 방파와 타협하지 않고 수많은 싸움을 거치는 가운데
오늘날의 뇌왕천을 이룩한 일대패왕(一代覇王) 뇌천강.
그의 두 눈에서는 번갯불보다도 강한 정광이 혁혁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그의 두 눈에서 흘러 나오는 패왕의 눈빛은 뇌옥린의 입술이 달싹여지는 찰나,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흐트러지고 말았다.
"저는… 떠나겠습니다."
뇌옥린은 결국 그 말을 꺼내고 말았다.
"…!"
뇌천강의 얼굴은 시꺼매지기 시작한다.
지난 육십 년 간 그의 면전에서 부정의 말을 했던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 어떤 사람도 뇌천강 앞에서는 거역의 말을 하지 못했다.
한데, 뇌옥린의 입에서 거역의 말이 나오다니?
"이곳은 백부님의 대지이지, 저의 대지는 아닙니다. 제게는 저의 길이 따로 있습니다
. 죄송합니다. 저는 떠나야 합니다.
저의 길(路)로! 제가 미우면 저를 죽여도 좋습니다
. 하나, 저의 뜻을 꺾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 말은 제가 여기 처음 오는 순간, 말씀드리려 했던 것입니다!"
"…!"
뇌천강의 볼은 푸들푸들 떨렸다.
만에 하나, 다른 사람이 그의 면전에서 그의 뜻에 위배되는 말을 했더라면
그의 손은 이미 상대의 천령개(天靈蓋)를 박살냈을 것이다.
뇌옥린의 두 눈은 여전히 맑았다.
그의 눈은 심연(深淵)의 눈이었다.
깊이 가라앉은 두 눈, 그 눈은 패도(覇道)를 추종하는 무사의 눈과는 거리가 멀었다.
뇌천강은 뇌옥린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애써 미소를 지었다.
"네가 이 년 동안 모진 연무(練武)만 하느라…
뇌왕천의 후계자 자리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모르게 된 듯하구나!"
"…!"
"너는 이제까지 고행(苦行)을 했다. 심한 번뇌(煩惱)가 있었으리라 여긴다.
하나, 이제부터는 다르다. 네 스스로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알게 된다면, 이곳을 떠나겠다는 말같이 시시한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뇌천강은 역시 지도자다운 사람이었다.
그는 뇌옥린의 말을 치기 어린 발상으로 돌려 버리고 마는 것이다.
"게다가 너는 이미 본좌 곁을 떠날 수 없는 상태이다.
네게는 이미 너무나도 많은 적(敵)이 생겼다.
너는 이곳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이곳을 떠날 이유도 없다!"
뇌천강이 고집스럽게 말하자.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네가 생각하는 것은 시시한 망상에 불과하다. 버려도 된다!"
"망상이 아닙니다. 제게는… 꿈입니다!"
"으으…!"
"제게는 저의 길이 있습니다. 백부님께 무림패업(武林覇業)의 길이 있었듯이,
제게는 장인(匠人)으로의 길이 있습니다!"
"바보 같은 놈! 뇌왕천의 후계자 지위를 버리고 쇳조각이나 두들기는
대장장이가 되겠단 말이냐?
네 아비보다도 더 멍청하구나!"
뇌천강의 눈에서는 혈망(血芒)이 쏟아져 나왔다.
강호인들이 신의 눈이라 부르는 뇌천강의 눈이다.
지금 그 눈에서 쏟아지는 빛은 용암의 불줄기보다 뜨겁고 강렬했다.
뇌옥린의 시선은 여전히 고요했다. 그 어떠한 폭풍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심연처럼.
"…!"
"…!"
두 사람의 눈싸움은 한동안 계속이 되었다.
- 정녕 떠나겠느냐, 바보 자식아?
- 예.
- 내가 너를 보내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 백부는 현명한 분이라 믿습니다.
- 너는 후회할 것이다.
- 저의 길을 따라 살 뿐입니다!
- 미련한 녀석! 좋다, 네게 말미를 주겠다. 한 달 간 기회를 주겠다.
그 사이, 마음을 진정시키도록 해라! 고약한 녀석아!
뇌옥린은 거처를 자극전(紫極殿)으로 정하게 되었다.
그곳은 뇌왕천에서는 조경이 가장 잘 꾸며진 곳으로,
일대의 기화요초(琪花瑤草) 대화원(大花園)에서 백리향(百里香)이 흐르는 승경지(勝景地)였다.
뇌옥린은 그곳에서 십이(十二) 장로(長老)의 예방을 받아 가며
뇌왕천의 전체적인 조직에 대해 알게 되었다.
물론 사람들은 뇌천강과 뇌옥린 사이에 어떠한 대화가 오고 갔는지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뇌옥린이 뇌천강의 조카임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다만 뇌옥린을 천하사재에 이은 또 하나의 무기명 전인으로 알 뿐이었다.
천문전주(天文殿主) 천문제자(天文才子) 사마량(司馬亮).
그는 십이 장로 중 하나가 되는 사람이다.
그는 뇌왕천의 군사부(軍師府)인 천문전을 이끌고 있는 사람으로,
강호계의 대소사에 대해 가장 해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천무전은 순찰당(巡察堂)을 이끌고 있고,
강호의 일백팔(一百八) 외향(外香)과 긴밀한 협조를 하는 가운데
십 일에 한 번씩 강호의 세력 판도를 세세히 분석해 뇌왕천주에게 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천문전에는 지필묵(紙筆墨)이 쓰이지 않는다.
그곳에서의 모든 것은 대화로 이루어진다.
그 이유는 만에 하나, 기밀 문서가 외부로 새어 나가서
뇌왕천의 일급비밀이 타파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신월(新月)이 뜰 때, 뇌옥린은 차를 들며 천문전주의 말을 듣고 있었다.
천문전주는 무림계의 전체적인 세력 판도에 대한 것을 이야기했고,
뇌왕천의 저력에 대한 것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는 문이란 문은 모두 닫은 다음,
뇌왕천의 제일급 비밀 사항 하나를 전어법(傳語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대천주와 속하만이 알고 있는 사항입니다!
속하가 이 말씀을 소공자에게 드리고자 하는 것은 대천주의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해 보시오!"
"이것은 최일급 비밀이며, 이 사실을 알아 내기 위해서
수천 명의 비밀 순찰들이 타파로 침투했다가 살해당하기까지 했습니다!"
"흠…!"
"그것은… 뇌왕천의 권위에 필적하는 절대적인 저력을 지닌
천하의 절대자(絶對者)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뇌왕천에 필적하는 힘을 가진 방파는 도합 셋입니다.
하나는 등격리(騰格里)에 우뚝 선 대혈마성(大血魔城),
그리고 하나는 풍운십천회(風雲十天會),
그리고 혈검금군단(血劍禁軍團)이라는 신비세력입니다!"
"아…!"
"그중 대혈마성의 종사(宗師)는 혈마종(血魔宗)이라 불리는 천검성(天劍星)이라는 자입니다.
그자는 백팔(百八) 마왕(魔王)을 휘하에 거느리고 호시탐탐 뇌왕천과의 승부를 노리고 있습니다!
간교하고 음험하며, 마공이 절대자의 경지에 이른 자입니다!"
"흠…!"
"그자는 이길 자신이 있어야만 세력을 일으키는 습성이 있습니다.
지금 그자가 준동하기를 자제하는 이유는, 뇌왕천의 힘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대혈마성!
그곳은 뇌왕천과 사만 리 먼 곳에 세워져 있다.
그리고 지난 삼백 년에 걸쳐 뇌왕천 사람들과 대혈마성 사람들은
피의 승부를 거듭해 왔다.
천여 번이 넘는 혈전 가운데 뇌왕천은 중원제일지로 자리를 잡았으며,
대혈마성은 머너먼 관외의 땅으로 터전을 옮겨야 했다.
뇌왕천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대혈마성은 이미 대강호의 주인이 되었을 것이다.
"천검성(天劍星)에게는 하나의 여제자(女弟子)가 있는데,
이름은 잔화영(殘花影)이라 합니다!"
"…!"
"그녀는 지금 중토(中土)에 없습니다!"
"없다니?"
"그녀는 천검성의 밀명(密命)을 받고 모처로 떠났음이 밝혀졌습니다!"
"…"
"그곳은 바로… 부상국(扶桑國)입니다!"
"동영(東瀛)의 부상국 말이오?"
"예!"
"왜 거기 갔소?"
"이유는… 대인자(大忍者)가 되기 위함입니다!"
"대인자?"
"살수(殺手) 중의 살수, 자객(刺客) 중의 자객이 되기 위해
잔화영은 소녀 시절 부상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녀의 나이는 소종사와 동년(同年)입니다.
항차 그녀는 뇌왕천의 심장을 노리는 살수가 되어 나타나리라…
저희 천문전의 군사(軍師)들은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대혈마성.
그곳은 악마의 영토다!
그곳은 뇌왕천을 무너뜨리기 위해 백 년에 걸쳐 저력을 길렀다.
그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뇌왕천도 자세히 모르고 있다.
그들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 언제고 악마의 이빨을 드러낼 자들이니까.
그리고 또 하나의 이름.
잔화영(殘花影)!
그 이름은 기억에서 제거되어서는 안 될 이름이다.
그 이름은 바로 죽음의 이름이니까!
"두 번째 적(敵)이 되는 풍운십천회는
백도계에서 강경한 주장을 가진 자들이 모여 이룩한 방파로,
거처는 금릉(金陵) 어딘가에 있습니다!"
"흠…!"
"그들은 스스로를 열사(烈士)로 부르고 있고,
어리석게도 대혈마성보다 뇌왕천을 보다 큰 적으로 여기며
뇌왕천의 중요 인물들을 암살(暗殺)하는 일을 십수 년에 걸쳐 거듭하고 있습니다!"
"…"
"그들 중 강한 자는 십(十) 인(人)으로, 그들은 십대화(十大花)라고 자신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일검화(一劍花),
풍운화(風雲花),
천마화(天魔花),
백리화(百里花),
무영화(無影花),
사검화(死劍花),
무적화(無敵花),
절정화(絶頂花),
야중화(夜中花),
검중화(劍中花).
백도에서 가장 강한 자들이다.
이들은 백도의 영예를 되살리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이들이 보다 강해진다면 뇌왕천과 전면전이 벌어질 것이다.
천문전주는 그들 이야기를 한 다음, 꽤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중대한 것은 그들의 제일인이라 여겨지는 무적대군주(無敵大軍主)라는 존재에 대해
아직 하나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적대군주?"
"세인들이 백도의 마지막 우상(偶像)이라 부르는 존재이지요.
백도인들은 무적대군주가 나타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우상?"
"그의 이름은… 수백 년에 걸쳐 전해지고 있습니다!"
실로 놀라운 말이었다.
아직 나타나지도 않은 한 인간의 이름이 수백 년에 걸쳐 전해지고 있다니?
"그는 전통의 백도맹주입니다. 백도인들은 그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나타나는 날, 풍운십천회의 활약은 지극히 두드러질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무적대군주는 어리석은 백도인들의 꿈에 불과하니까요!"
천문전주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무적대군주라는 전설적 존재에 대한 내력을 조금 더 이야기한 다음, 말꼬리를 낮췄다.
"백도에서 더 우려되는 사실은, 무적대군주의 출현이 아니라…
혈검금군단(血劍禁軍團)의 절대자(絶對者)인 비밀 속의 총군주(總軍主)의 출현입니다!"
혈검금군단(血劍禁軍團).
그 이름은 아직 강호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이 누구인지, 왜 모였는지 뇌왕천도 모르고 있다.
그들은 암중에 회동하고 있고, 강호 도처에 아성을 쌓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강호에서 가장 신비로운 조직이라 할 수 있었다.
총군주(總軍主).
비밀의 장막에 싸인 강호의 절대자이다.
그가 나타난다면 강호는 미증유의 폭풍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천문전주는 강호의 일급 비밀에 대한 것을
밤에서 새벽까지 쉬지 않고 이야기한 후에야 조금 편한 표정이 되었다.
그는 뇌옥린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쓰윽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항차 난해한 일에 대해서는 속하를 청하십시오!"
"글쎄? 그러한 일이 있을는지 모르겠군요."
"소공자, 이곳은 야망의 땅입니다. 이곳에서 믿을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흠…!"
"속하, 마지막으로 충고를 드리자면…"
천문전주는 장읍하며 말했다.
마지막 충고!
그의 말은 지극히 이지적인 것이었다.
"먼 곳의 적보다는 가까운 곳의 적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가까운 곳의 적?"
"대천주는 철학이 특이하신 분이신지라, 수하들에게 지극히 패도적으로 대하십니다.
해서 수하들은 늘 대천주 일가(一家)를 암살하려 하고 있습니다!"
실로 놀라운 말이다.
뇌왕천 사람들이 뇌천강을 암살하려 하고 있다니?
"팔황무가(八荒武家)는 제천뇌문에 힘으로 굴복당했습니다.
그들은 언제고 뇌왕천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암중에 힘을 기르고 있습니다.
특히 마탑세가(魔塔世家)와 문창세가(文昌世家)는 그 일을 보다 심각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속하가 그 일을 자세히 알고 있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마탑세가라면… 검비룡(劍飛龍)이란 사람의 가문인데?"
"검비룡(劍飛龍)은 이곳에서는 나으리 다음으로 기묘한 위치에 있습니다!"
"기묘하다니?"
"그는 늘 대천주를 암살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 그럴 수가?"
"훗훗… 그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계획은 있어도, 실천은 아직 한 번도 되지 않았습니다만…!"
"백부가 그것을 알고 계십니까?"
"알다 뿐입니까? 그분은 암중에 그것을 조장하고 계십니다!"
"조… 조장하다니?"
"적이 많아야 강해진다는 것이 바로 뇌왕율법(雷王律法)입니다.
대천주는 무기명 전인으로 삼은 검비룡마저 마음 속의 적으로 두고 계십니다.
그분은 정녕… 고독(孤獨)한 거인(巨人)이십니다!"
고독한 거인.
팔황검제 뇌천강에 대한 표현으로 그보다 더 적합한 말은 없을 것이다.
"그분은 휘하 제자들이 나태하게 될 경우 대혈마성이 준동한다며,
휘하 제자들이 늘 긴장해 있기를 바라십니다.
어쩌면… 소공자는 그 일에 가장 필요하신 분일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 일에 필요하다고요?"
"대천주는 소공자를 통해 팔황무가에게 자극(刺戟)을 주고자 하십니다.
검도(劍道)에 들기 위해 여인의 길을 포기한 악금예(岳琴藝)를
구태여 소공자의 정혼녀(定婚女)로 만든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사실 팔황무가에 있어 마탑세가와 문창세가의 힘은 가장 강합니다.
그 두 가문이야말로… 뇌왕천의 저력(底力)입니다.
그래서 대천주는 소공자를 통해 두 가문을 자극시키는 것이지요."
"…!"
뇌옥린은 전과는 다른 표정이 되었다.
그는 이제야 백부의 진면목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백부… 그대 곁에 머물고 싶습니다. 그대가 점점 존경스러워지기에!
그러나 저의 길을 중단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뇌옥린은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한데, 한 가지 모를 것이 있소!"
"무엇인지요?"
"나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야만 할 사람들이 어이해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인지
그 이유를 모르겠소!"
"훗훗… 그런 말씀을 물으실 줄 알았습니다
! 소공자님은 천하사재가 어이해 소공자님을 찾지 않으시는가 의아해 하시는 것이 아니십니까?"
그는 빙그레 웃었다.
뇌옥린은 고개를 끄덕였고.
"훗훗… 그들은 나름대로 계략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계략?"
"그들은 소공자님을 무시(無視)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무시한다고?"
"관심도 두지 않는 체하는 것으로 소공자님의 존재를 철저하게 무시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런 천재들입니다.
훗훗… 그들은 대천주님이라 하시더라도 어찌하지 못하는 그런 분들입니다.
꽃(花)에서 살고, 술(酒)에서 살고, 책(冊)에서 살며, 검(劍)에서 살고 있습니다!"
"묘한 친구들이로군!"
"그들은 한 가지 한 가지에서는 이미 절정의 경지에 이르셨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소공자님에 대해 깊은 심려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소공자님의 존재에 대해 모르는 듯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오경.
뇌옥린은 쌍영위사(雙影衛士)를 대동하고 뇌왕천의 장경고(藏經庫)를 둘러봐야 했다.
그는 암도(暗道)를 통해 장경고에 가야 했다.
그 일은 팔황검제가 쌍영위사에게 친히 명해 이루어지게 된 일이었다.
쌍영위사만은 팔황검제와 뇌옥린 사이의 묘한 신경전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긴 누가 천하제일인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지위를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
백치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여간 그들은 뇌옥린의 좌우에 서서 뇌옥린을 장경고 지하로 안내를 했다.
"칠천(七千) 실(室)의 서실(書室)이 있습니다
. 그 중 오천 개의 서실 안에는 뜯어 보지도 않은 서궤가 가득합니다."
사무영(死無影)이 자랑스레 말하자.
"이곳의 서고는 황궁비고(皇宮秘庫)보다도 규모에 있어 방대합니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은 소공자님을 위한 안배일 것입니다!"
혈무영(血無影) 역시 어깨를 으쓱거렸다.
뇌옥린은 청포(靑袍)를 걸치고 있었다.
그는 무신경한 표정으로 장경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의 길은 패도(覇道)와는 다른 길이다.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나, 그는 그 길을 가야만 한다.
그 길은 바로 그에게는 운명이기에!
첫댓글 즐감입니다감사합니당
즐독! 늘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즐감요.
고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ㅈㄷ
감사합니다
잘봤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잘보고갑니다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방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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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