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해병일기(2) - 1974년 해병대 공수교육
1969년 10월 전직 수색대 장교 및 부사관 출신으로 구성된 교관요원 25명으로 공수교육대(소령 한기영)가 창설됩니다. 해병대 공수교육은 1965년 수색중대 특수교육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1970년대 초 공수교육대장은 청룡부대 선발대 수색소대장(대위)을 역임한 이한종 소령(해간 27기, 육군 공수기본 14기, 해군 유디티 11기)님이었고, 짜빈동 전투의 신원배 대위님이 보좌관으로 근무하셨다고 합니다. 1972년 6월 해병공수 1기(차) 120여 명(공수중대 창설)을 시작으로 매 차수 약 60여 명 씩 1973년 까지 300여 명의 공정대원을 배출하였는데 주로 공수중대, 수색중대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었다고 합니다.
해병공수의 전성시대는 1974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호원 대위님이 공수교육대장으로 부임한 직후 사단의 각 중대(보병 외에도 포병, 통신, 기갑 등 모든 병과 포함)에서 1명씩 추천을 받아 공수기본교육을 실시(4월 12일 수료, 해병공수 5기)하였습니다. 공수중대나 수색중대원이 아닌 1사단 해병대원들이 공수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 이 때 부터가 아닌가가 생각됩니다. 해병공수 5기와 6기(6월 수료)의 자격강하 기종은 C-46이었다고 합니다.
전반기 교육 12주를 마치고 빨간 명찰을 달게 되는 부사관 후보생들은 후반기 교육 16주 중 1주간 공수기초교육을 받았었는데, 1974년 중순(6월 경)부터 4주간 공수기본교육을 받게 됩니다. 부사관 후보생 108기부터라고 합니다. 해병공수 9기는 부후 110기들을 중심으로 헌병대 보안과장 등 소령 2명과 위관급 장교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점프복 차림의 이동용 사단장님은 공수교육대장님으로부터 오후에 2시간 씩 특별교육을 받았습니다. 해병공수 9기와 10기의 자격강하 기종은 C-123 였습니다. 해병공수 11기는 부후 111기였으며, 해병공수 19기는 부후 119기라고 합니다. 부사관 후보생들의 공수기본교육 일정에 맞추어 사단 장병들의 공수교육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1975년 3개의 공정대대가 창설된 직후 이동용 사단장님은 ‘전사단의 공수화’를 제창하셨지만, 해군본부로 승진발령을 받으시면서 그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습니다. 강하 기종이 C-46에서 C-123으로 바뀌면서 수료 인원도 100명 이상으로 늘어나게 되었고, 1976년까지 2500여 명의 공정대원이 배출됩니다. 해병대는 2014년 6월 13일 공수기본교육 200차 110명에 대한 수료식을 거행함으써 공수교육을 도입한 지 45년 만에 정예 공정대원 3만 명을 배출하는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