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은 초록으로 이어져
넘쳐나던 잎들이 떨어지는 것은
반란이 아니다
스스로의 슬픔을 갈색으로 물들이며
이제는 되돌려 줄 인생의 외로운 길
어느 날엔가
빛나던 생애는 저물고
황혼의 가을 길에 쌓여가던 낙엽은
따뜻한 모정의 품 속에서
새싹을 품는다
꿈은 언제나 먼곳에서 이어져 초록으로
저 아픔 끝에서
찾아오는 봄을 붙잡기 위해
자신을 훌훌 털어 버리는 거다
아파트
사람들은 왜
높고 낮은 편견이 있을까
하나님이; 주신 본분을 따라
제각기 맡은일에 최선을 다할 뿐인데
귀천이란 낱말은 누가 만들었을까
창문을 열고 올려다 본 아파트엔
모두 앉은자리 만큼의 화평을 지키고 있는데
살아가는 눈빛은 왜 사람마다 다를까
침실 주방 거실
있어야 할 그것들 외에
나름대로의 취미를 가꾸는 소품들
가장 소중한 건
제자리에 정돈된 비뚤지 않은 영혼
베란다마다 화분이 있고
가꾸는 자의 정성을 따라 웃고 있다
평등은 하나님의 뜻인데
사람들이 등급을 정하고 있다
아파트에는 앉은자리 만큼의 평등이 있고
높이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세상만큼
스스로의 균형을 잃지 않는다
석류가 익어 갈때
자줏빛 바람
그 바람은 초록빛 잎사귀를 흔들어 깨우다가
순결한 꽃이 되었더라
심연에 잠긴 속깊은 사랑과 정열이여
색바람 불고 찬비 내려 단풍 들더니
석류나무에 꽃 떨어지고
귤만한 황갈색 열매가 달렸더라
희락이 메마르던 뒤뜰 어디에서
외로움을 고즈넉이 지니고
자라 온 석류나무야 , 너 석류는
그 작은 외로움들이 낱알의 씨앗 되어
둥근 집에 숨어서 빨갛게 익어왔구나
누가 볼 세라 누가 알 세라
단단한 껍질에 싸여
만 가지 시름으로 사랑의 밀어를
간직했던 석류야
이제 터뜨려 보려무나
환히 웃어도 보려무나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 입술을 부딪치고
찐한 사랑을 해 보자꾸나
콩트 내가 쓰고픈 서정시
밖에는 봄비가 내리고 있엇다.
연인과의 약속도 없는 토요일 오후의 정적은 연경이에게 작은 외로움으로 엄습해왔다.은행근무를 하면서 늘 금전관계에 시달려 온 연경은 모처럼의 여가를 현생활과 동떨어진 분위기에 젖고 싶어서 서장에서 시집을 꺼내서 들고 침대에 제껴 누웠다.
"나의 시간에 스코올과 같은 슬픔이 있다.
붉은 지붕 밑으로 향수가 광선을 따라가고
한없이 아름다운 계절이 운하의 물결에 씻겨 갔다"
시인 박인환 님의 시 한 귀절을 읽어 내려가는 순간 문득 지난 날 고향집에서 살던 추억이 섬광처럼 반짝이기 시작했다. 겨울이 막 지나고 이끼처럼 파아랗게 피어 오르던 잔디 위에 영민이와 같이 오르던 언덕길! 그 때만 해도 경산의 샘골 내 고향에선 부잣집 과수원의 외동딸이며 긴머리를 두갈래로 곱게 땋아내린 귀여운 일곱살짜리 꼬마 숙녀에게 영민이는 유일한 소꿉친구였다
영민이는 아홉살이면서도 어릴 때 엄마를 잃고 아빠품에 자란 아이여서 키가 작고 약했지만 얼굴이 뽀얗고 예쁜 남자 아이였음을 회상한다.연경이는 영민이에게 앙큼한 장난을 많이했다. "엄마 말 잘 들어야 해"하고 등을 토닥거려 주다가도 까닭없이 때려 주기도 했고 어떤 때는 흙으로 지은 밥을 억지로 입술에 떠 먹이려고 하면 안 먹으려고 발버둥치던 영민이의 안간 힘은 두 살 아래 계집아이인 연경이에게 힘이 부쳐서 입에 흙을 담뿍 씹고 울곤 했었다. 그렇게 울던 사내아이에게 "오냐 오냐 착하지 우리아기 밥많이 먹으면 건강해 진단다. "하고 짖꿎게 영민이를 안아 주었던 징그러웠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니 티없이 맑았던 어린시절
그 모습이 오히려 참 앙징스럽고 회상이 깊었던 추억으로 남는다. 왜 연경이에게 지금 그런 어릴적 추억이 섬세하게 반짝이며 떠 오르는 것일까? 그 때 이후로 도무지 이성과의 교제가 없었으니 가장 무리없이 잘 이끌어간 유년시절의 낭만적인 첫사랑이란 관념이 내 인생에 자리한 탓일까? 미인이라 자처하지만 연경이의 나이 올해 스물 다섯! 서른을 육박하기 쉬운 나이! 친구들의 염려가 끊임없이 재잘거림으로 들려온다.
그러나 거짓도 많고 실업자도 많은 현실 속에 좀 더 냉정을 기하려 하면서도 막연한 그리움과 외로움이 노도같이 밀려오는 오늘같은 날은 참으로 무작정 쓸쓸할 뿐이다. 나의 교만 탓일까? 지난 여름 대구의 지하다방에서 어머니의 권유에 못이겨 선을 봤다.집안의 풍속울 따라서 기독교인을 택해서 상대는 장로님 자제분이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만나 보니 그 남자는 예절은 괜찮은 것 같았지만 너무 얼굴이 못생겼고 또 부모님과 할머니까지 모시는, 거기다가 형제가 일곱이나 되는 대가족인데다 가세가 어렵다고 하여 내키지 않는 마음인지라 일방적으로 거절하고 말았었다. 그러나 어떤 양심의 소리같은 회오리바람에 연경인 착잡한 심경에 사로잡혔던 일도 있었다. 기독교인은 사랑의 실천자라고 했는 데 나는 왜 배우자를 고르는 면에 있어서도 재산과 외모에 치중하는 나쁜 버릇이 있을까?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뿐 언제나 연경이의 기본관념은 "남자는 어쨌든 재산도 어느 수준에 이르고 외모가 반듯하고 봐야지.그러니까 내 신랑감은 내가 택할까야" 하는 자격지심과 자신에 대한 어떤 결의가 빛나는 것이었다. 이런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연경이는 싱겁게 피익 웃어보였다. 웃는 자신의 얼굴이 거울에 별로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주룩주룩.... 봄비가 연경이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 버리기라도 하듯이 하염없이 내리는 소리에 연경인 또한번 자신을 깨우쳐 보는 계기를 가질려고 시도했다.문득 외사촌 언니가 떠 올랐다. 외사촌 언니를 꽤 좋아하는 부잣집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 못지않게 언니도 꽤나 그를 좋아 했었다.
호탕하여서 여자 호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고 항간에 얼굴이 반반하다고 자만하는 여자들에게도 정평이 나 있 는 사람이었다. 그 인물과 호탕함에 반하였던 게 언니에게 큰 상처를 입힌 계기가 되었다.모 건설회사에 근무 한다던 그는 어제까지만 해도 언니에게 끈질기게 아부하였 지만 어느날 갑자기 발길을 끊고 다른 아가씨를 사귀고 있다는 것이다.
외사촌 언니의 초췌하던 몰골이며 풀끼없던 그 모습이 떠 오르는 순간 , <남자>,<결혼>, 이따위 단어들이 오싹해 질 정도로 경련이 났다. 연경이는 문득 두 손 모아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미련하여 잘 알지 못하오니 주님께서 좋은 길로 인도해 주옵소서."
물질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모든 가치기준을 인물 또는 재산의 척도로서 재어보는 외형적인 허영심!
연경이는 자신의 이런 누추함을 깨달았다.
어릴 때 추억처럼 깨끗한 영으로 돌아가 유년시절의 연경 이가 되고 싶어서 이제는 박석일찌라도 신앙을 포용할 줄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는 사람을 따르고 싶어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연경이는 자신의 조그맣고 예쁜 책상 앞에 앉았다.
봄내음 물씬 풍기는 봄비소리를 들으며 서정시를 쓰고 싶 었다. 이젠 그저 열심히 기도하고 싶은 것이다.
그 기도로서 읊어지는 내 영혼의 서정시가 어렵고 고달프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위로의 향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약력-1999년 <문학세계>등단 시 '낙동강의 평화 '외 4편 제2회공무원문예대전 시'낙동강'장려상 1999년 제1회공우신인문학상 시 '분재감상' 당선 2022년 시집 <빨간우체통>출간 2022년 12월 <칠곡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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