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재보선 선거에서 사법시험 존치를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당선이 되면서, 최근 새누리당 측에서 사시존치를 당론으로 정하였다고도 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의 심각성을 미리 대비해서 지난 3월 원우여러분께 받은 230여장의 서명지를 법학협 측에 전달하였고,
사시존치 법안이 입안될 경우를 대비하여 법학협 임원진 측이 보관하고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많은 원우분들이 서명에 참가해주셔서 법학협 측에 많은 힘을 보탤 수 있었습니다.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래는 제출한 서명지의 사진입니다.)
최근에도 사시존치논란에 대해서도 법학협 내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특히 서울대 로스쿨을 중점으로 사시존치에 관한 의견이 활발히 개진되고 있으며, 서울대 로스쿨의 한 학우가 쓴 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다소 긴 글이나 천천히 잘 읽어보시고 사시존치와 로스쿨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
[로스쿨에 대하여]
2017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지게 되어있는 사법시험 존치에 대한 논의에 불이 붙고 있습니다. 아니, 불이 붙고있는게 아니라 누군가 불을 붙이고 있는게 맞다고 보아야 하겠죠. ‘희망의 사다리’와 ‘개천의 용’이론을 내세우며 사법시험 존치, 나아가 로스쿨 제도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는 그분들이 절대로 이야기 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사법시험이라는 ‘희망의 사다리’를 걸어 올라가 ‘개천의 용’이된 대표적 인물인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왜 로스쿨을 도입한 것일까요?”
불을 붙이는데 여념이 없는 그분들의 노력에 힘입어, 로스쿨에 대한 오해는 하루가 멀다 하고 깊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한해에만 사법시험 존치 의안이 4건 발의되었고, 최근 여당은 사법시험 존치를 당론으로 내세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치러진 관악(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출마한 의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사법시험을 존치하겠노라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사법시험의 존치가 고시촌의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제도는 표 몇 표를 더 얻어 당선되기 위해서 그렇게 쉽게 포기해도 될 만한 무가치한 제도가 아닙니다.
사법시험 제도에 대한 애착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역경을 딛고 어렵게 꿈을 이루신 변호사 선배님들일수록 로스쿨 제도가 못마땅해 보이실 것입니다. 서울변협 회장님이신 김한규 변호사께서 사법시험이 “그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사다리”라고 말씀하신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링크 : :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7027461&cloc=olink|article|default)
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꿈을 이룬 선배님들의 위대한 성취를 존경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고시원에 딸린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며 어렵게 공부하며 12년 동안 노력한 끝에 변호사의 꿈을 이뤄내는 것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운 ‘인간 승리’입니다. 오직 노력의 ‘영웅’들만이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로 하여금 꿈을 ‘포기’하거나 ‘영웅’이 되는 것 중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의무교육과정을 성실하게 이수하여 대학교에 진학하고, 또한 대학교 교육 과정을 성실하게 이수한 사람이라면, 아르바이트와 고시공부를 병행하며 10년 넘게 꿈을 포기하지 않을 용기가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도 누구나 법률가가 되고자하는 목표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로스쿨에는 선배님들처럼 ‘위대한 영웅’들은 아니지만, 로스쿨이 제공하는 교육 시스템과 장학금의 도움을 받으며 꿈을 키워나가고 있는 평범한 학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만한 ‘용기’는 없었지만 로스쿨 덕에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평범한 학생의 한사람으로써, 이 제도가 앞으로도 지속되어 더 많은 학생들의 꿈을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이 글을 썼습니다.
‘희망의 사다리’, ‘돈스쿨’과 같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미지’들만이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상황에서는 로스쿨 제도를 통해 우리가 추구하고자 했던 목표가 무엇인지,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이 제도를 운영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발전적인 논의가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로스쿨에 대한 온당한 평가는, 더 나은 법률가 양성 시스템 구축을 위한 첫걸음과도 같습니다.
로스쿨은 이 땅에 처음 생긴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 제도입니다. 처음 도입이 논의되기 시작한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 온갖 반대 끝에 겨우 도입된 제도입니다. 이렇게 힘들게 도입된 제도가 도입 직후부터 온갖 근거 없는 비난에 시달린 끝에 제대로 시행되어보지도 못하고 ‘희망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존재’, ‘현대판 음서제’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게 되었습니다, 이런 누명을 쓴 채 사법시험이 존치된다면 조만간 로스쿨 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아마 우리나라에 다시는 도입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왜 온 사방에서 로스쿨을 비난하는 이야기들만 들려오는 것인지 고민하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 제도를 직접 경험하고 잘 알고 있는 저 스스로가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미력하게나마 페이스북에 이렇게 글을 올려보려고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보니 다소 긴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꼭 끝까지 읽어주시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시면 ‘좋아요’를 눌러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공유’ 또한 적극 환영합니다). 모쪼록 로스쿨 제도가 도입 취지에 따라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나아가 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제도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Ⅰ. 로스쿨에 대한 오해들에 대하여
1. 로스쿨은 돈스쿨이다?
로스쿨은 돈스쿨이다. 의심의 여지없는 참인 명제처럼 통용되는 이 말은 어떤 유래로 생겨난 것일까요? 아마도 로스쿨의 비싼 등록금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로스쿨을 싫어하는 분들은 이 부분을 집요하게 강조하며 ‘로스쿨은 돈스쿨’이라는 강력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셨습니다. 로스쿨 과연 비쌀까요?
1) 로스쿨이 반드시 비싸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로스쿨 도입이 처음 논의 된 것은 90년대 초반 사법개혁논의 당시였습니다. 그리고 로스쿨 도입이 논의된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로스쿨이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법개혁 논의 당시 300명씩 배출하던 사법시험 합격자수를 3000명으로 늘려서 변호사 수를 늘리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기존의 법률가 양성 시스템으로는 그만한 인원을 육성할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지인들과 이야기 나누며 생각보다 너무나도 많은 분들이 사법연수원생들이 ‘월급’을 받으며 무료로 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관보에 따르면 올해 사법연수생의 월급은 1년차 1,738,000원, 2년차 1,816,000원입니다. 대략 180만원을 기준으로 할 때, 1년이면 월급만 2천160만원입니다. 최근 단계적 감축으로 인해 연수생 수가 줄긴 했지만 2000명의 연수생이 교육 받을 당시 90명 이상의 교수진이 있었으며, 사법연수원은 강의실, 도서관, 기숙사를 갖추고 있고 모든 교육비용은 국가가 부담합니다. 교육비를 ‘아주 저렴하게’ 1년에 1인당 1000만원으로 잡아보겠습니다. 사법연수생 1명을 교육하기 위해선 1년에 3,160만원, 사법연수원 한해 입학 정원인 1000명을 기준으로 2개학년을 1년간 교육하기 위해선 732억원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사법연수원은 한해에 최대 1000명의 변호사 밖에 배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로스쿨과 동일하게 비교하려면 한해에 2000명의 변호사를 배출할 수 있도록 2를 곱하여 1464억원이 필요하다고 보아야 공정합니다.
(*법전협 발표 자료에 따르면 사법연수원 운영비용은 1000명기준 1년 880억이라고 합니다. 이에 따르면 1760억원이 필요합니다.)
2013년 기준 평균 연간 로스쿨 등록금은 1533만원입니다. 그리고 로스쿨 입학 정원은 한해 2000명입니다. 산술적으로 계산해보면 2000명의 등록금을 모두 합쳐야 한학년에 306억6천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리고 현재 로스쿨은 등록금 대비 40%이상을 장학금으로 지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60%인 183억9600만원만 확보해도 로스쿨 한학년을 전액 장학금으로 가르칠 수 있으며, 551억8800만원만 있으면 3개학년 전체를 무료로 교육할 수 있습니다.
위 로스쿨 평균 등록금 자료는 2013년 7월 새정치민주연합 윤관석 의원님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것입니다. 윤의원님께서는 저 자료를 제시하며 이런 지적을 하고 계십니다.
“15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내야 다닐 수 있는 로스쿨 제도는 고소득층과 고학벌자를 위한 제도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로스쿨은 장학금 비율을 높이겠다고 약속했지만 로스쿨을 도입한지 5년째인 현재까지도 장학금 지급 비율(2013년 : 39.64%)은 제자리걸음”
아마 이런 지적을 하며 서민의 대변인을 자청하기 위해서 교육부에 등록금 자료를 요청하신 것이겠지요. 관악(을)에 출마하셨던 의원님들이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셨던 것과(고시촌 경제에 대한 걱정을 제외하면)아마 마찬가지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높으신 분들께서 그렇게 서민들이 법조인이 되지 못할까봐 걱정되신다면, 사법시험을 존치할 것이 아니라 사법시험 1년 운영비용의 1/3만 확보하여 로스쿨 장학금을 확충해 주면 전국의 로스쿨 생들이 공짜로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국가 세금을 절약하는 동시에 진정 서민들을 위한 길 아니겠습니까? 사법시험제도나 로스쿨제도나 똑같이 변호사를 양성하는 제도인데, 어째서 그 비용을 로스쿨 제도에 쓰면 안되는 것입니까?
제가 이러한 비교를 한 이유는, 사법시험제도와 로스쿨 시험제도 중 어느 것이 저비용이고 어느 것이 고비용인가를 가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다만 기억해 주십사하는 것은 “로스쿨 제도는 반드시 비싸다”라는 비난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로스쿨 제도가 본질적으로 비싸야만 할 이유는 없습니다. 사법연수생을 통한 변호사 양성이 정책적 결단에 의해 전액 무료로 이뤄졌던 것처럼, 지금 로스쿨이 등록금이 비싸게 책정되어 있는 것도 로스쿨 등록금을 정책적으로 ‘비싸게’ 운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스쿨 등록금이 비싸니까’ -> ‘로스쿨은 서민을 위한 제도가 아니고’ -> ‘따라서 없어져야 한다’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로스쿨을 비난하시는 분들’께서 진정으로 그것을 염려한다면 법조인이 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장학금이 지급될 수 있도록 재정 확보에 힘써 주십시오. 1년에 500억이면 전액 무료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를 가지고, 비싸서 나쁜 제도라니 너무 치졸한 비난 아닙니까?
2) 로스쿨은 비싸다고 볼 수 없습니다
설령 로스쿨 등록금이 1년에 1500만원 가량인 지금처럼 유지된다고 하여도, 사법시험보다 비싸다고 볼 수 없습니다. 사법시험의 준비 비용은 얼마일까요? 보통 이런 논의를 할 때면 사법시험 준비시 필요한 학원비, 숙식비, 교재비 등을 합쳐서 로스쿨과 비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교는 국민들의 눈을 가리려는 ‘사법시험 존치론자들’의 왜곡된 비교입니다. 로스쿨에 다니면 학원비 대신 등록금을 내야하고 로스쿨생도 밥은 먹어야하며, 잠도 자고 교재도 사야합니다. 흔히 이뤄지는 저런 비교는 공정함을 가장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빼놓고 있습니다. 바로 ‘시간’이지요.
흔히 말하는 ‘강남 8학군’에 소재한 고등학교의 학생들은 같은 인문계 고등학교라도 좋은 대학에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원과 과외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 물론 영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낌없는 투자”를 “좋은 결과가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할 수 있는 경제적 뒷받침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재수는 기본이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삼수에 나아가는 것에도 (최소한 경제적인 면에서는)주저하지 않습니다.
소위 말하는 ‘고시’는 무엇보다도 “될 때까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결과가 모든 과정을 보상하는 시험이기 때문이지요. 합격할 때 까지 집안의 든든한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돈 걱정하지 않고 학원 강의를 수강하고 비싼 수험서적들을 구매하며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학생A와, 1~2년 정도는 부모님의 지원을 기대해 볼 수 있는 학생B와, 당장 내가 고시생활을 시작하는 경우 밥 사먹을 돈 조차 없는 학생C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A, B, C의 학업 능력은 동일한 것으로 가정하겠습니다.
Q1) A, B, C 중 누가 사법시험이라는 험난한 관문을 통과하고 변호사의 자격을 획득할 확률이 높을까요?
Q2) A, B, C의 경쟁이 같은 시험 문제를 푼다는 이유로 공정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Q3) C는 과연 사법시험에 도전 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사법시험 이면의 ‘위장된 평등’에 가려진 불공평한 ‘비용’입니다. 사법시험의 비용 계산에는 ‘합격에 대한 기대가능성’이 추가적 요소로써 포함 되어야 합니다. 사법시험의 평균 수험기간은 4년~5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럼 (1년에 필요한 예상 비용)*4를 하면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러한 계산은 A에게만 가능한 것입니다. B는 거기까지 가 볼 수 없을 것이고(다만 B학생은 2년 안에 붙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사법시험에 도전해 볼수는 있을지도 모릅니다), C는 사법시험에 도전해보기 조차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난한 학생들 중 ‘탁월한 두뇌와 끈기를 가진 영웅’들이 나타나서 수험생활을 하는 동안 과외랑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도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우수한 성적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되는 감격을 누리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간혹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A, B, C의 학업능력은 동일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왜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불리한 조건에서 인생을 걸고 ‘모험’할 것을 강요받아야 하나요? 왜 가난한 사람은 탁월한 능력을 가진 ‘영웅’이어야만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것인가요?
이것은 사법시험이 ‘비싸기’ 때문입니다. 사법시험은 의심의 여지없는 고비용 시험입니다. 법조인 제도가 비싼지 아닌지를 논하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그 제도를 통해 법조인이 된다고 가정 하에 비용을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만약 로스쿨이 아니었다면, 저는 변호사라는 목표에 도전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로스쿨 등록금이 비록 저렴하진 않지만, 일단 로스쿨에 가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받지 못하게 되더라도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을 해서 낼 수 있고, 정 안되면 휴학을 해서라도 벌어서 내면 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고 진학할 수 있었던 이유는 ‘로스쿨에 가면 변호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예로 의대 등록금이 다른 학과 등록금보다 비싸다고 해서, 가난한 학생이 의대 진학을 포기하고 다른 학과에 진학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의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바로 로스쿨이 사법시험보다 저렴한 이유이자, 변호사시험이 반드시 의사 국시와 같이 ‘자격시험’으로 치러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단순히 등록금이 비싸다고 해서 로스쿨이 더 비싼 제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로스쿨제도는 C와 같은 학생을 특별전형으로 입학 시켜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B와 같은 처지에 있는 학생에게도 형편에 따라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사법시험 옹호론자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제발 ‘서민’을 대변하는 ‘척’하지 말아주세요. 로스쿨이 돈스쿨이고, 그곳에 다니는 학생들이 마치 전부 부유층 자체여서 입학할 수 있었던 것처럼 비난하지 말아주세요. 경제력과 상관없이 정정당당하게 입학하여 공부하고 있는 모든 학생들을 모욕하는 일입니다. 진정 서민들을 위하신다면, 여러분이 하셔야 할 일은 서민들이 도전하기 어려운 ‘사법시험 존치’가 아닙니다.
“조선시대에 과거시험도 양민이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었습니다.“
진정으로 서민들을 걱정하신다면 어떻게 하면 로스쿨을 없애버리려고 궁리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로스쿨 장학금을 늘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로스쿨에 다니고 있는 가난한 학생들이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을 어떻게 해소해 줄 수 있을지 고민해 주시기 바랍니다.
2. 로스쿨제도는 공정하지 못하다?
1) 등록금이 비싸서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이미 앞서 언급한 내용이므로 간단히 요약하겠습니다.
(1) 로스쿨 등록금이 비싸야만 할 이유는 없으며 이는 정책적 결단의 문제입니다.
1533만원에 로스쿨의 등록금 수입 대비 장학금 지급률인 40%를 제하면, 로스쿨의 실질 등록금은 연 919만8천원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유사한 방식으로 계산한 제 출신학부(서울 소재 사립 공과대학)의 2014년 실질 등록금은 9,260,000 - 2,780,000((교내+교외 장학금)/재학생수) = 6,480,000원입니다(정보 출처 : 대학알리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학/대학원의 비싼 등록금 문제는 로스쿨 홀로 욕먹으며 짊어지고 나가야 할 짐이 아닙니다. 다만 수익자 부담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고 있는 우리나라 교육 정책상의 문제인 것입니다.
(2) 시험에 응시할 기회가 평등하게 제공된다고, 그것이 공평한 제도인 것은 아닙니다.
‘시험장’에서의 평등과, 시험 자체의 공평함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사법시험의 평등은 다만 ‘시험장’에서의 평등일 뿐입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 시험장에 도착하게 되었는지, 사법시험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합격 가능성을 예측할 수 없는 시험에 도전하는 비용은 결코 저렴하지 않습니다.
2) 로스쿨생 선발 절차는 비교적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1) 로스쿨 제도는 ‘현대판 음서제’이다?
로스쿨 제도는 ‘현대판 음서제’라는 표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음서제’라는 표현에는 바로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평가가 담겨 있습니다.
- 로스쿨 생들은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불공평하게 선발된 자들이다.
- 로스쿨 생들은 돈이나 뒷 배경으로 학교에 입학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종종 이런 기사를 흘리며 그런 생각을 부추깁니다(대체 이런 정보는 어떻게 조사한 걸까요? 정보 출처는 다만 ‘취재 결과’라고 되어있습니다. ‘유력인사’의 범위가 좀 의도적으로 넓게 잡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유력 자녀 뽑는 ‘로펌 음서제’… 로스쿨 父子 사제관계도”, 동아일보, 2014.9.1.
기사 링크 : http://news.donga.com/3/all/20140901/66131278/1
이런 방식의 여론 호도는 전형적인 방식의 선동에 불과합니다. 가장 중요한 논증은 제외한 채 ‘냄새만 풍기고’있기 때문입니다. 선동이 아니라 정당한 비판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연결고리가 필요합니다.
“(유력인사 자제들이)그만한 실력과 자격이 없음에도 로스쿨에 입학하거나 회사에 취직하였는가?”
기존의 제도인 사법시험 시행 당시 사법연수생 중 유력인사 자제의 비율은 어느 정도 일까요? 유력 인사의 자제들이 상대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고 있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그에 비교할 때 저 기사의 표는 어느 정도의 유의미한 통계적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변호사 시험 1회 ~ 3회를 통해 배출된 변호사 수는 1회 1,451명 2회 1,538명 3회 1,550명 합계 4,539명입니다. 이제 저 기사의 표를 다시 보아 주십시오. 영사, 대사의 자녀들까지 끌어 들어가며 만들어낸 표 치고는 다소 궁색하지 않은가요?
로스쿨에는 한 해에 2000명의 학생들이 입학합니다. 그 중에는 부자인 학생이 있을 수도, 가난한 학생이 있을 수도, 부모가 유력인사인 학생이 있을 수도, 그저 평범한 집안에 자란 학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절대 다수가 정당하게 실력으로 평가받고 그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력만 있다면 그 학생들이 다만 부모가 ‘유력 인사’라는 이유로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입사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3년간 대형 로펌에 몇 명 입사한 중에 30명이라는 것인지, 그 중 몇 명이 실력이 없음에도 들어 간 것으로 추정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이런 식의 의혹 제기는 정당한 절차를 걸쳐 입학/입사한 학생들에 대한 모욕입니다. 비겁하게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식의 ‘냄새만 풍기는’ 것은 정당한 비판이 아니라 선동에 불과합니다. 정당한 비판을 하고 싶다면 ‘선동’이 아니라 ‘논증’을 해야 합니다. ‘선동’은 로스쿨 제도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 나아가 우리나라 법학 교육 제도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정보 검색 중 이와 관련된 의미 있는 분석을 해 둔 블로그 포스팅을 발견하였기에 링크합니다. (http://blog.naver.com/hanmeu/220337285100)
**이와 같은 의혹 제기는 두 가지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1) 로스쿨 입시는 공정하지 못하다. 2) 로스쿨 출신은 (눈에 보이는)실력 지표가 없다.
1)에 대해서는 후술할 것이며, 2)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법원과 검찰은 인턴과 시험, 면접 등의 절차를 거치며 다양한 요소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로펌도 서류 심사와 인턴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자들의 업무능력이나 과제 작성능력을 엄격히 평가합니다. 언제까지 ‘획일화된 평가와 시험 성적’만을 맹신할 수는 없습니다. 다면적 평가 노력이 이뤄지는 것은 ‘시험 성적’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시작된 변화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은 평가 방법들이 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획일화된 시험 성적’이 없더라도 평가 과정과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다양성의 존중’이란 요원한 일이 됩니다. 오용을 전제로 제도를 설계한다면 최선이 아닌, 차악만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참고자료 : 동아일보에 따르면 법조인 자녀 비율이 사법시험이 7년간 6000명 중에서 69명, 약 1.15%. 로스쿨은 3년간 4500명 중 71명인 1.57%이라고 합니다.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2) 로스쿨은 공정한 선발 절차를 위해 다음과 같은 장치들을 두고 있습니다
- 서류 심사는 기본적으로 인적사항을 가린 ‘블라인드’로 진행됩니다.
- 블라인드 면접을 진행합니다.(이 부분은 학교마다 다릅니다. 면접시 서류를 보며 평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 경우에도 인적사항은 가린 서류를 지참하는 것 같습니다.)
- 제가 면접을 본 두 학교는 모두 면접관3, 피면접자1의 다대일 심층 면접을 진행하며 크로스 체크를 하였습니다. 특히 이중 한 학교는 면접관중 외부 인사를 반드시 포함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장치들이 부족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추가적인 장치를 도입하면 됩니다. 모든 로스쿨로 하여금 블라인드 면접을 진행하도록 할 것, 면접관중 외부인사 1인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할 것, 서류에 특정인임을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을 요구할 수 없도록 하고, 교육부에서 이를 감사하도록 할 것 등 얼마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공정성을 제고할 수 있습니다.
로스쿨 제도는 이제 겨우 네 번의 졸업생을 배출해 낸 신생 제도입니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개선하고, 더 나은 제도로 만들어 나가면 됩니다. 로스쿨 제도에 대한 모든 비판의 공통적인 문제점은 ‘로스쿨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닌 것을 마치 ‘로스쿨 제도의 본질적 특성’상 개선될 수 없는 문제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스쿨에는 ~한 단점이 있다 -> 따라서 로스쿨은 실패다.“
단독으로는 단 한번의 졸업생도 배출해보지 못한, 제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순수 자격시험’은 시행해보지도 못한 제도를 두고 어떻게 이렇게 파격적이고 무성의한 논증들이 가능한 것인지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비판을 하려거든 결론을 정하고 이유를 생각해내서는 안됩니다. 로스쿨에 대한 비판을 들으실 때, 그것이 과연 로스쿨 제도의 본질상 어쩔 수 없는 문제인지, 아니면 그냥 과도기적인 문제점에 불과한 것인지 반드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3. 로스쿨생들은 실력이 부족하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자세히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지금 이 글에서 로스쿨생의 실력 논란에 대해 길게 논증하는 것은 1) 로스쿨 도입 직후 충분히 이뤄진 논쟁의 무의미한 반복일 뿐이며 2) 이미 사회 각계각층에 진출하여 실력으로 인정받고 계시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 선배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로스쿨 제도의 도입 취지에 따른 운영을 위해서는 로스쿨 제도 도입과 동시에 사법시험이 없어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딱 한 가지, 사법시험의 폐지가 늦춰진 덕분에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본의 아니게 취업시장에서 비교당하며 실력과 장점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백해일익(?)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의심어린 시선과 멸시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실력으로 가치를 입증해 주시고 계신 로스쿨 선배님들께 이 글을 빌려 깊이 감사드립니다. 현재 법조 각 직역에서 로스쿨 생들을 채용하는데 주저함이 없고, 실력을 이유로 로스쿨을 비판하는 이야기들 또한 과거와 같이 많이 들리지 않는 것이야 말로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나름의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스쿨 교육 과정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부디 더 좋은 커리큘럼을 만들기 위한 논의들이 진행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로스쿨 교육의 내실화 차원에서 논의할 문제이지, 로스쿨이 무능하므로 폐기해야 한다는 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공부해야할 양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많은 것을 공부해야하는 의대 또한 본과 4년의 의학 교육 과정을 거쳐 의사 면허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백년이상의 대학 법학 교육, 40년 이상의 사법연수원 운영 경험을 가진 우리나라가 4년간 학부 전공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학생들을 대상으로 3년간의 교육을 통해 기본적 소양을 갖춘 변호사를 양성해낼 수 있는 커리큘럼을 설계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4. 소결 - 로스쿨 제도는 무죄입니다
이 글을 처음 쓰겠다고 마음먹은 당시에는, 왜 사시가 아니라 로스쿨이어야 하는지, 로스쿨 제도의 장점에 대해서만 써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글을 구상하는 도중 주위사람들의 생각과 인터넷상의 글들을 접하며, 로스쿨에 씌워진 누명들이 너무 두터워져 이제는 그런 누명들에 대한 변명을 하지 아니하고서는, 이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로스쿨에 억울하게 덧 씌워진 누명을 벗기지 않고는 정상적인 논의 전개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어 이상과 같이 변론하였습니다.
Ⅱ. 사법시험이 아니라 로스쿨이어야만 하는 이유들에 대하여
1. 사법시험은 경제적 능력을 이유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입니다
1) 사법 시험 준비에 필요한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에 대하여
상세한 이유는 위 Ⅰ. 1. 2)항에서 전술한 바와 같습니다. 어떤 학생은 경제적인 걱정을 끊임없이 하며 수험생활을 해야 하고, 어떤 학생은 경제적인 걱정에 도전조차 할 수 없는 사법시험은 공평하지 못합니다. 최소한 이러한 문제점을 숨긴 채 ‘희망의 사다리’ 운운 하며 마치 ‘공평’의 아이콘인 것처럼 선전해서는 안됩니다. 누구나 문을 통과할 가능성이 존재하기만 한다고 해서,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그 문을 통과할 확률이 좌우되는 시험이 정당화 될 수는 없습니다. 준비하기 극히 어려운 시험을 만들어 놓고, 국가가 그 시험을 위한 교육의 기회는 일체 제공하지 않으면서 단지 ‘시험장에서의 평등’만 보장한 채, 그 시험을 통과한 자에게만 법조인이 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입니다.
앞서 Ⅰ. 1. 2)항에서 ‘눈에 보이는 비용’ 측면에서 사법시험의 문제점을 논증한 것에 더하여, 여기서는 추가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 측면의 문제점을 제기하고자 합니다.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학생일수록 더 빨리, 더 나은 조건의 직장에 취직하여 은퇴하였거나 은퇴를 앞두고 있는 부모님의 경제력을 (가정 내에서)대체하고 본인의 미래(주택 구입, 결혼 비용 준비 등)또한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을 강하게 받습니다. 우리나라의 일자리 부족 문제가 나날이 심화되고 있고, 그에 따라 수많은 학생들이 대학 입학 직후부터 학점을 관리하고 영어를 공부하는 등 취직을 위한 경쟁력 강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고시에 실패해도 4년제 대학 졸업생이면 어렵지 않게 취직할 수 있었던 과거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사법시험은 미래에 대한 다른 모든 준비를 포기하고 사법시험 준비에만 ‘올인’해도 붙을까 말까 한 시험입니다. 휴학을 거듭해야하고, 전공을 소홀히 하게 되어 학점관리에 어려움이 생기며(법대생은 사정이 좀 낫겠지만 학교 공부와 시험 준비는 다르기 때문에 과거에도 수업을 빠지고 고시촌에서 공부를 하는 등 수업이 파행으로 이뤄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학 공부나 공모전/대회 참가, 동아리 활동 등은 꿈도 꾸기 어렵습니다.
앞서 논의할 때 가정하였던, 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A, 1~2년은 부모님의 지원을 기대해볼 수 있는 B, 수험생활을 시작할 경우 당장 밥 사먹는 일이 곤란해 질 수 있는 C를 다시 불러와 보겠습니다. 취직과 사법시험 준비를 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에 빠졌을 때, 어떤 학생이 취직을 선택하게 될 확률이 높을까요?
A의 경우 취직에 대한 유인이 약합니다. 본인이 경제력을 빨리 갖추고, 미래를 준비해야할 필요성이 적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사법시험에 떨어지면, 그때 다른 것을 준비해도 늦지 않습니다. 본인이 가족을 부양할 필요도 없고, 혹 사회 진출이 늦어지더라도 부모님이 집도, 차도 마련해주시고 결혼비용도 지원해 주실 것입니다. A는 당연히 사법시험 준비를 선택합니다. A는 ‘실패를 감당할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B와 C는 상황이 다릅니다. B와 C는 마음이 초조합니다. 부모님은 이미 은퇴하셨거나 은퇴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설령 생계를 책임질 필요까지는 없는 B라 하더라도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거나, 혹은 어린 동생의 학업을 돕는 등 경제적 책임을 분담해야한다는 의무감을 느낄 것입니다. 친구들은 취직을 앞두고 있거나 이미 취직해서 적금을 들고 있는 등 미래를 위한 준비를 착착 해나가고 있습니다. 취직 후 월급의 대부분을 월세로 날리고 싶지 않으면 대출이라도 껴서 집을 살 수 있게 목돈을 마련해야 하고 결혼 자금도 준비해야 할텐데 스스로의 미래가 걱정될 것입니다. 사법시험에 언제 합격할 수 있을지, 합격을 할 수는 있을지 장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사법시험 준비하느라 학점도 관리하지 못하고, 내세울만한 경험도 해보지 못했는데 떨어지면 과연 번듯한 직장에 취직은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이 시험을 준비하다가는 인생의 막다른 길에 봉착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듭니다. B와 C는 스스로 그들의 인생을 책임져야만 합니다. B와 C는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을 접고 취직을 준비하기로 합니다. 그들에게는 ‘실패를 감당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사법시험은 첫째로 시험 준비 비용이라는 눈에 보이는 비용의 측면에서, 둘째로는 ‘실패를 감당할 능력’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의 측면에서도 경제적 능력에 따라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인 것입니다.
저는 이런 점에서도 로스쿨 제도가 더 나은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로스쿨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인생을 포기’하는 모험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로스쿨 입시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글로, 前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학장님이신 정상조 교수님께서 2009년에 교무부학장으로 재직하실 당시 쓰셨던 ‘법학전문대학원 입시를 거치면서’라는 글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위해서는 특별히 준비할 것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운영될 것이다. 지원자들이 대학에 들어와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열심히 살고, 그 이후에도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산 것이면 충분하다. 가능하다면 법학전문대학원을 위해서 다른 것들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심정이다. 자신의 인생을 소중히 여기고 열정적으로 살아온 많은 지원자들의 소신 있는 지원을 기대한다.”
제가 걱정하는 것 중의 한 가지는, ‘돈스쿨’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형편이 넉넉지 못한 학생들이 지원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로스쿨 덕분에 법률가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는 한명의 학생으로서, 로스쿨 지원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악성 루머에 흔들리지 말고 ‘소신’있게 지원하십시오. 로스쿨 지원을 위해서는 사법시험과 달리 ‘다른 것들을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로스쿨 입시는 성실하게 살아온 여러분의 인생 자체를 높이 평가해 줄 것입니다.
2) 소결론
로스쿨은 ‘눈에 보이는 비용’을 위해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특별전형을 두고 있으며, 나아가 특별전형에는 해당하지 않는 학생이더라도 입학 후 장학금을 통해 일정한 funding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로스쿨 입시를 위하여 따로 준비할 것이 없기 때문에(로스쿨 입시에 필요한 학점, 영어실력, 교외활동 등은 혹시 로스쿨에 입학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모두 취직 과정에서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측면에서도 유리합니다. 무엇보다도 3년동안 로스쿨에서 열심히 공부하기만 하면 변호사가 될 수 있다는 ‘예측가능성’과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는 법률가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을 무책임하게 방치하고 사시라는 허들을 넘어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사법시험보다, 허들을 낮춰 도전할 기회를 열어주고 funding을 제공하며 미래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보장하는 로스쿨 제도가, 법률가를 양성함에 있어 훨씬 책임감 있는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2. 사법시험을 통한 법조인 양성 과정은 교육적이지 못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사법시험, 나아가 ‘교육 제도’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다소 큰 담론이고, 제가 이 주제를 풀어가기에는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 글을 쓰기에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그럼에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이야기이기 이며 ‘문제의식’만 전달할 수 있어도 큰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이하의 내용이나 표현 중에 부족함이 있더라도 글의 취지를 고려하여 선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법시험을 통과한 학생들이 기본적 법학 지식을 잘 갖추고 있다는 점, 이와 같이 검증된 학생들을 2년간의 사법연수원 과정을 통해 교육시킴으로써 잘 훈련된(well-trained) 법조인을 배출할 수 있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여기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점은 ‘교육의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저는 법조인 양성 및 배출의 ’과정이 교육적이지 못하다‘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1) 사법시험 준비과정은 정상적인 교육과정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모든 시험이란, 시험을 위한 준비를 할 것을 요구합니다. 시험이 ‘너무 어렵거나’, ‘유일한 평가지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까닭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시험이란 최소한의 능력과 자격을 갖췄음을 증명하는 수단에 그쳐야 합니다. 시험이 그 이상을 증명하고자 욕심을 부리는 순간, ‘시험을 위한 시험’으로 전락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사법시험은 ‘교육’한 내용을 평가하는 시험이 아니라, 사법 연수생 ‘선발’을 위한 시험입니다. ‘선발’을 위한 시험이기에 본질적으로 ‘시험을 위한 시험’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법시험만 존재하던 시절에는 2만명이 넘는 지원자(cf. 2007년 기준 21,032명)중에 3천명가량을 선발했고, 다시 직전 해에 같은 관문을 통과한 인원과 합쳐 5천명 이상의 인원중에 천명을 선발했습니다. 천명의 연수원생을 선발하던 시절,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고시생의 수는 5만명을 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더 높은 점수를 받아야만 합니다. 고득점제 시험은 본디 이상적인 형태의 시험이 아닙니다. 그 시험에 응시하는 사람들 모두를 ‘상대적 패배자’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고득점제 시험의 굴레에 갇힌 사람들은 너도 나도 자신의 위와 아래를 가늠하며 무한한 경쟁에 돌입하게 됩니다. 심지어 이 경쟁은 변호사가 되기 위하여 각자가 스스로 ‘법학 지식’을 선취해올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법률가가 되고자 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빠지거나 각자의 전공을 등한시하고 고시 준비에만 매달렸고, 법학은 물론 다른 분야의 대학 교육까지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아래의 헌법재판소 결정례는 이러한 자유 방임식 예비 법조인 선발과정이 가져온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며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도입 목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도입 목적
(1) 법학교육의 정상화와 우수한 법조인의 양성
...(중략)...
지금까지의 법조인 양성제도는 사법시험제도에 의하여 왔다. 사법시험은 사법시험법에 따라 법무부가 관장하고 있는바, 사법시험 응시회수에 아무런 제한이 없고, 사법시험 응시자격에도 실질적으로 제한이 없다시피 하여(2006년부터 35학점 이상의 법학과목 학점을 취득한 자에 한하여 응시할 수 있도록 하였으나, ‘학점 인정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학교 이외의 교육기관에서의 학습과정에서도 법학과목 학점을 취득할 수 있고, 독학사 제도 등에 의한 학점인정도 가능하여 위와 같은 자격제한이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였다) 법조인 선발·양성과정과 법과대학에서의 법학교육이 제도적으로 연계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법학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사법시험에만 합격하면 법조인이 될 수 있으므로, 법조인이 되기를 원하는 우수한 인력들이 대학에서의 법학교육을 도외시하고 고시학원으로 몰리는 현상이 나타났고, 충분한 인문교양이나 체계적인 법학지식이 결여된 상태에서 시험위주의 도구적인 법률지식만을 습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폭넓은 인문교양지식과 깊이 있는 법학지식을 함께 습득함으로써 사회의 다양한 법 현상에 적응할 수 있는 응용력과 창의성을 갖추고,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국제적인 감각과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함으로써 국민에 대한 법률서비스의 질과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되게 되었다.
(2) 국가 우수 인력의 효율적 배분
사법시험제도 아래에서 실질적으로 응시자격에 제한이 없고 응시회수에도 아무런 제한이 없다 보니, 과다한 응시생이 장기간 사법시험에 빠져있는 폐해가 나타났다. 또한 응시자격을 용이하게 취득할 수 있다 보니, 법학 이외의 인문사회계열이나 심지어 이공계열의 우수한 인재까지도 전공학과 공부보다는 사법시험에 매달리게 되어 법학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대학교육에까지 파행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처럼 법조인 선발 및 양성과정에서 수많은 인재들이 탈락하고 사회 다른 분야로의 진출도 사실상 불가능하게 됨으로써 국가인력의 극심한 낭비 및 비효율성이 발생하였다.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는, 전공학부에 상관없이 정상적이고 체계적으로 대학교육을 마치게 한 후 본인의 희망에 따라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게 함으로써, 대학교육을 정상화하는 한편 국가적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자 함에 그 목적이 있다.“
- 헌재 2009. 2. 26. 2008헌마370, 판례집 21-1 상, 292, 303-304
사법시험은 그 자체로 ‘교육’과정이라고 볼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방해하는 블랙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로스쿨 제도를 도입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사법시험 존치는 위와 같은 문제점을 계속 존속하게 만들 것입니다.
2) 사법연수원은 ‘변호사’를 양성하기에 적합한 제도가 아닙니다
① 이제 사법연수원생의 대부분이 ‘변호사’가 됩니다
사법연수원이 처음 설치된 것은 1970년 8월입니다. 당시에는 최소 합격 인원수가 정해져 있지 않은 관계로 사법시험 합격자가 극히 소수만 배출되었습니다. 때문에 원하는 사람은 모두 판사와 검사로 임용될 수 있었고, 사법연수원의 성격 또한 판사와 검사의 임용 전에 사전 직무교육을 하기 위한 ‘공무원 연수기관’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사법시험 합격자에게 공무원의 지위를 부여하고, 국가에서 월급을 지급하며 교육을 시키는 사법연수원 제도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들 모두가 판사나 검사로 임용되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유래한 것이지요.
사회가 복잡 다변화 되고, 더 많은 변호사의 양성이 요구됨에 따라 사법연수원이 배출하는 변호사 수는 점점 늘어났습니다. 1981년 제23회 시험 때부터 300명으로 합격 정원이 증원되었고, 제38회 사법시험에서 500명을 선발한 이후 매년 100명씩 증원되어 제43회 사법시험부터 로스쿨 도입 이전까지는 1000명씩을 선발해 왔습니다. 인원 수의 증가에 따라 사법연수원은 ‘판사와 검사’만을 배출하던 기관에서 소수의 판검사와 대부분의 ‘변호사’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전환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연수원에 투입되는 세금의 대부분은 사법연수원생 개개인의 변호사 자격 취득을 위해 쓰이는 셈이 되었습니다. 이 비용과 로스쿨의 등록금 문제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Ⅰ.의 1.항에서 지적하였으므로 다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혹자는 연수원에 투입되는 세금을 개인의 자격증 취득에 쓴다고 비판하면서 그 돈으로 로스쿨 장학금을 확충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된 주장이 아니냐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연수원생에게 공무원의 지위를 부여하고 월급을 주는 것과, 로스쿨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연수생의 대부분은 공무원이 될 수 없음이 이미 입소 인원 상 명백한데도 일부가 공무원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일률적으로 공무원의 신분을 부여하여 대다수로 하여금 그 반사효를 누리게 하는 것과,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교육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기 위하여 장학금을 제공하는 것, 어느 것이 더 자연스럽고 타당한 일이겠습니까?)
법학전문대학원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법학전문대학원법’이라 합니다)은 교육이념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제2조(교육이념) :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육이념은 국민의 다양한 기대와 요청에 부응하는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풍부한 교양, 인간 및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유·평등·정의를 지향하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건전한 직업윤리관과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 및 능력을 갖춘 법조인의 양성에 있다.”
헌법재판소 또한 사법시험 합격 및 사법연수원 교육제도를 통한 법조인 양성제도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법시험 합격 및 사법연수원 교육 제도를 통한 현행의 법조인 양성제도 하에서는 ① 법학교육과 사법제도의 연계가 부족하여 대학에서 충실한 법학교육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②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효율적으로 예방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하는 데 미흡하며, ③ 응시자격 및 응시회수에 제한받지 않는 과다한 사법시험 응시로 인하여 국가 인력이 낭비되는 등의 폐해가 발생하고, ④ 특정 소수 대학에게 사법시험 합격자가 지나치게 편중되며, ⑤ 사법연수원 교육제도가 변호사 실무교육이 아닌 법원 및 검찰 실무교육에만 치우쳐 있는 등의 문제점이 오랜 기간 동안 지적되어 왔다.”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제1조 등 위헌확인 / 2007헌마1262, 2009.2.26
변호사의 가장 큰 특성은 다양성입니다. 판사와 검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은 판사와 검사의 직무에 필요한 내용을 가르치면 될지 모르지만, 변호사는 사회에 나가 어떤 직무를 담당하게 될지 모릅니다. 물론 사법연수원에서 배우는 내용의 대부분이 변호사 업무를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지식들이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공무원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를 양성하는 일이라면, 변호사의 자격을 취득할 사람들이 모두 한곳에 모여 획일적인 교육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기본적인 법학 소양을 교육 하되 금융, 조세, 지적재산권, 노동 등 관심 분야에 따라 수강 과목을 심화하여 들을 수 있는 법학전문대학원이 오히려 변호사 교육에는 더 적합한 기관일 수 있습니다.
② 사법연수원생들이 ‘판사’와 ‘검사’가 되기 위해 경쟁하게 됩니다
연수원 천명 시대의 문제점은 ‘대부분 변호사’가 된다는 점뿐만 아니라 ‘일부만 판·검사가 된다’라는 점에서도 발생하였습니다. 판·검사의 직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고 연수원 성적에 따라 진로가 결정되기 때문에 사법시험 합격과 사법연수원 입소는 또 다른 경쟁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 된 것입니다.
사법연수원 입소 인원이 점차 늘어나고, 천명이 되자, 등수가 중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사법연수원의 교육 컨텐츠가 우수하다 하더라도, 판·검사를 선발해내기 위한 시험으로 변질된다면 ‘시험을 위한 시험’의 문제점이 나타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사법연수원생들은 다시 시험의 굴레에 갇혀 너도 나도 자신의 위와 아래를 가늠하며 무한한 경쟁에 돌입하게 됩니다. 고시촌에는 심지어 사법연수원에 입소하기 전에 사법연수원에서 배울 내용을 미리 선행 학습하기 위한 학원 강의가 개설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아마 사법연수원이 진정한 의미의 ‘공무원 교육기관’에 머무르던 시절에는 없었던 문제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어느 공무원 연수기관에서의 시험이 그렇게 치열하게 치러지겠습니까. 사법연수원에서의 교육은 직무에 필요한 내용을 가르치고, 배운 내용을 숙지했는지 평가하는 정도에 그쳐야하며 더 높은 성적, 더 높은 등수를 가려내기 위한 또 하나의 경쟁 관문으로 운영되어서는 안됩니다.
3) 소결론 - 교육 제도가 갖는 의미의 중요성과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
저는 바람직한 교육제도란 교육의 내용뿐만 아니라 교육의 과정 또한 교육적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 제도는 단순히 하나의 제도가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가 현재의 우리 공동체에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이며 나아가 그 교육 제도를 통해 성장한 우리 후손들이 만들어나갔으면 하는 미래에 대한 바램입니다. 어떤 교육제도를 설계할 때에는 우리가 어떤 모습의 공동체를 꿈꾸는지, 이 제도를 통하여 만들어질 우리 공동체의 모습은 무엇인지 고민해야만 합니다. 교육제도에 우리 공동체가 고민한 결과, 즉, ‘철학’을 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94년, 학력고사를 대체하는 시험을 만들면서 시험의 이름을 ‘대학수학능력평가’로 바꿨던 것일까요? 2008년 우리는 어떤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이 시험을 등급제로 시행하는 시도를 했던 것일까요? 왜 수시나 입학사정관제를 확대하고 정시 규모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입시 정책이 변화해왔을까요? 무엇 때문에 단순히 수능점수 고득점 순으로, 혹은 수능 성적표에 전국 등수를 매겨 윗 등수부터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게 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
짐작컨대, ‘대학 수학 능력 평가’라는 이름에는 이 시험이 대학에서 공부할 기본적 능력을 갖추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여러 지표중 하나’의 평가지표로만 활용되어야 한다는 명명자의 생각이 담겨있다고 생각됩니다. 어려운 시험을 만들고, 그 시험에서 취득한 성적을 절대적인 지표로 활용하여 일부를 추려내는 방식의 입시가 간명한 방법일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시험만능주의는 더 많은 철학이 담겨야할 우리 교육제도를 멍들게 합니다. 수능 성적이 대입의 절대적 지표로 활용되자 우리 사회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전국의 고등학생들이 수천, 수만개의 문제를 풀면서 문제를 풀기 위한 공부에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수능은 ‘수학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 아닌 한 문제라도 더 맞춰야 하는 시험이 되었습니다. 학교 수업도 수능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불필요한 것이 되었고, 학생들은 더 전문적으로 시험만을 준비해주는 학원이나 과외를 찾아 나섰습니다. 우리 교육제도는 파행으로 치달았습니다. 대체 수능문제 하나 더 맞추는 것에 어떤 가치가 있기에, 학생들을 이 시험에 그토록 매달리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정시 규모를 축소하고 내신 위주의 수시 선발을 확대한 것, 기타 특별전형의 도입, 소위 ‘언 수 외’위주의 정형적인 공부는 잘 못해도 다른 우수한 능력을 가진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입학사정관제의 도입 등은 그런 현상에 대한 반성에서 도입된 것입니다. 그런 제도들에 간혹 문제점을 보인다고 하여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시험위주의 교육과정 운영이 가져오는 더 큰 문제는 그런 교육과정이 학생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육제도는 학생들로 하여금 어려서부터 시험을 보게 하고, 등수를 매기며,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높은 성적을 취득 할 것을 강요하는, 즉 무한 경쟁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습니다. 고득점제 시험은 필연적으로 그 시험을 응시하는 모두를 상대적 패배자로 만듭니다. 자신보다 성적이 높은 학생에게는 열등감을 느끼게 하며, 자신보다 성적이 낮은 학생에게는 우월감을 갖도록 합니다. 또한 시험 점수는 우리의 눈을 가립니다. 모두가 같은 시험을 보고 그 등수가 공개되는 순간, 그 시험 등수 자체가 강력한 힘을 갖게 됩니다. 입학을 위해 평가되어야할 수많은 다른 요소들을 모두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게 만듭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대입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에게 획일적인 시험 준비를 요구하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에 노출시킨다면 우리 학생들은 어떤 가치를 배우게 될까요? 혹시 성과주의, 결과만능주의, 엘리트주의는 아닐까요? 우리가 우리 후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우리가 만들어가고자 하는 공동체의 모습이 정녕 그러한 것인가요? 이런 제도를 통하여,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다양한 가치가 존중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떨며 공부하던 사법시험 수험생들은 합격자 발표 날 극도의 좌절을 맛보게 되거나, 혹은 각종 혜택을 한 몸에 받게 됩니다. 이러한 드라마틱한 경험은 불합격자에게는 물론 합격자에게도 교육적으로 유익하지 못합니다. 5만명중에 1차시험을 통과할 5천명을 걸러내고, 5천명중에는 연수원에 들어갈 천명을 걸러내고, 그 천명 중에서 다시 판·검사로 임용될 사람들을 걸러내는, 더 촘촘한 체로 거듭 걸러내는 획일화된 과정. 경쟁으로 점철된 법조인 양성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는 예비 법조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저는 ‘희망의 사다리’를 남겨두어야 한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어야 한다’라는 자극적인 주장들이 아무거리낌 없이 이뤄지고, 심지어 그런 주장들이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우리 사회가 걱정됩니다. 과거 우리는 ‘경쟁’위주 ‘선발’위주의 교육 정책을 오랫동안 운영해왔고 그 결과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은 성과주의와 엘리트주의를 뼛속 깊이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희망의 사다리’나 ‘개천의 용’주장이 아무 문제의식 없이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희망의 사다리’, ‘개천의 용’ 주장은 엘리트주의, 계급주의적인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대체 희망의 사다리를 타고 어디서부터 어디로 올라가겠다는 것입니까? 법률가는 결코 높은 곳에 있는 자, 구름 위를 거니는 용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됩니다. 법률가가 국민들로부터 멀어질수록 법이 국민들에게서 멀어질 것이고, 법이 국민들로부터 멀어질수록 법치주의가 우리 사회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는, 이런 문제를 염려하였던 많은 지식인들, 선배 법조인들, 정치인들, 정책을 입안한 공무원들, 시민단체, 교수님들의 노력 끝에 탄생하였습니다. 혹자는 법학전문대학원 제도가 날치기로 통과된 제도라고 폄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학 전문대학원 제도에는 예비 법조인들과 우리 공동체에게 더 나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고려들이 이미 여럿 담겨 있습니다. LEET를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는 적성시험으로 구성하고, 학점 등 각자의 전공을 충실히 공부하였는지를 반영하고, 자기소개서 기타 서류를 통해 지원자 각자의 다양한 인생을 살펴보고 입학 자격을 부여합니다. 법학전문대학원 법에서는 교육 이념의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균등한 교육 기회 제공을 위한 funding을 제공할 것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법학전문대학원법 제3조 2항). 자격을 갖춘 사람을 대상으로 전문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 변호사시험을 시행하되, 그것이 ‘시험을 위한 시험’이 되어 로스쿨 교육과정이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험성적은 비공개로 할 것을 법률로써 규정하고 있습니다(변호사시험법 제18조).
아직 변호사를 네 번밖에 배출하지 못한 이 제도는 시행 초창기이기 때문에 문제점이 많아 보일수도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제도이기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발’위주의 법조인 양성제도에서 ‘교육’중심의 법조인 양성 제도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은 정상적인 법학교육, 나아가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익숙한 제도를 버리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어렵고 귀찮은 일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더 좋은 교육 제도를 만들고, 교육 제도에 더 나은 가치를 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대체 우리 공동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로스쿨 제도를 쉽게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3. 사법시험은 다양한 법률가를 양성하기에 부적합한 제도입니다
1) 법학은 다양한 지식과 경험이 요구되는 학문입니다
우리나라의 현행 법령 개수는 법제처 검색 결과를 기준으로 할 때 4,712건입니다. 사실상 법률만큼이나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행정규칙의 개수는 12,890건입니다. 자치법규의 개수는 무려 10만건이 넘습니다. 우리사회가 복잡 다변화 될수록 법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생활의 모든 곳에 법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법치주의 국가이며, 법학은 본질적으로 모든 것에 대한 학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법률가의 양성은 현대 사회에 있어서 법치주의의 실현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입법, 사법, 행정의 전 영역에서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법률가의 역할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어떤 분야의 배경 지식을 가진 법률가가 있어야만 그 분야와 관련하여 더 나은 법률을 만들고 더 나은 방식으로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리고 국가는 법치주의의 실현을 위하여 다양한 법률가를 육성하고 사회에 공급해야할 책무가 있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법 제3조는 바로 이러한 국가의 의무를 규정한 것입니다.
법률가가 다른 분야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며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도 있습니다. 가령 법원은 기술심리관과 전문조사관 제도를 두어 법관의 판단을 보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법원조직법 제54조의2, 제54조의3). 그러나 다른 직역 전문가들의 보조를 받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법률가 스스로가 그 분야의 지식을 갖출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법률가 본인이 관련 서적, 논문을 찾아볼 기본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고, 당사자들의 진술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배경지식을 갖춘 상태에서 다른 직역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더욱 타당한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양한 법률가의 양성은 법학 연구의 측면에 있어서도 꼭 필요합니다. 경제학 박사 출신 변호사의 법경제학 연구, 심리학을 전공한 법률가의 법심리학 연구 등은 우리의 법학 연구 토양을 더욱 풍요롭게하고, 실무에 필요한 이론적인 배경들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법률가의 양성,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2) 어려운 관문을 만들수록 그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의 다양성은 저해됩니다
다양한 학부에서 다양한 학문을 전공한 학생들이 로스쿨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의사, 약사, 공학박사, 회계사, 변리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로스쿨에 오기 전에 공무원, 기업 직원, 군인, 경찰 등 다양한 직역에서 일하다 오신 분들이 계십니다. 로스쿨이 다양한 법률가 양성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자료들은 이미 다수 존재하기에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어째서 그런 일들이 가능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논하고자 합니다.
로스쿨을 통해 배출되는 법률가들이 배경 지식과 경험의 다양성이 증대된 까닭은 로스쿨 입학의 문턱을 낮췄기 때문입니다. 체에 거르고 거르면 일정한 크기의 알갱이들만 남게 되는 것처럼, 어려운 관문을 만들면 만들수록 그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의 다양성은 저해되기 마련입니다. 사법시험은 사법시험을 준비할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걸러내고,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을 다수 걸러내며, 그 시험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사람들을 걸러냅니다. 사법시험은 그 시험이 의도한 바든 아니든 그 시험을 준비하기에 적합한 사람들만 남깁니다.
로스쿨 입학 후, 로스쿨 입학 면접 당시 면접관이셨던 교수님을 사석에서 뵙게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면접을 잘 보지 못했다고 생각하여 합격 발표를 기다리면서 걱정했던 경험이 있기에, 문득 궁금한 마음에 다음과 같은 우문을 던졌습니다.
“교수님, 면접을 볼 때 제 답변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 생각하는데, 혹 더 나은 대답을 한 다른 학생들이 많지 않았던가요?”
교수님께서는 제 우문을 나무라시며 다음과 같은 현답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150명을 뽑을 때, 150명을 뽑는 이유가 다 다르다.”
교수님의 현답은 사법시험제도와 다른 로스쿨 제도의 본질적 특성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정상조 교수님 또한 앞서 소개한 글에서 로스쿨 입학 전형 운영 방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려면 어떤 항목을 어느 정도로 준비해야하는지 구체적인 기준을 알고 싶어한다.) 입시에 대한 불만의 가장 큰 부분은 ”도대체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런 불만은 우리도 잘 알고 있지만, 그러한 기준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기준을 억지로 만드는 것은 법학전문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양산하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열 마디 말보다 더 의미 있는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다음의 사례들을 보시고, 이분들이 로스쿨 제도가 아니었더라도 변호사가 되실 수 있었을지,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⓵ 류하경 변호사
: http://www.redian.org/archive/73818
⓶ 이은의 변호사
: http://www.hani.co.kr/arti/society/women/681037.html?_ns=c1
4. 로스쿨 제도는 사법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제고에 이바지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05년, 대한민국 모든 법조인의 개인신상정보와 사건수임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각종 법률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법률 포털 ‘로마켓’을 둘러싼 다툼이 법적 분쟁으로 번진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인맥 지수 서비스 제공행위는 인맥지수의 사적, 인격적 성격상 산출과정에서 왜곡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정보게시를 금지한 원심 판단을 지지하였습니다(대법원 2011.9.2. 선고, 2008다42430, 전원합의체 판결). 이 글에서 로마켓의 서비스 제공행위의 당부를 논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왜 그런 서비스가 등장한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서비스가 생겨나는 것은, 그러한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법조인의 인맥지수를 알고 싶어 하는 수요가 존재합니다. 실제 전관예우가 존재하는지, 법률 분쟁 해결에 인맥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 입증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조사와 근거 자료가 필요할 것이므로 섣부른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로마켓 사태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이 우리나라의 법조 문화와 법률서비스의 공정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명문 법대 학생들이 주로 합격하는 사법시험, 예비 법조인들이 한 곳에 모여 같이 시간을 보내고 공부하는 사법연수원제도는, 설령 이 제도가 의도한 바가 아니라 할지라도, 사법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 제고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자 중 당해 로스쿨이 설치된 대학 외의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한 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입학자의 3분의1 이상이 되도록 한 법학전문대학원법 제26조 3항에 대한 위헌확인심판 청구를 기각하며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직업선택의 자유 제한에 대하여)
법 제26조 제3항이 출신 대학별로 입학정원의 비율을 제한하고자 하는 입법목적은 법조 인력이 특정대학 출신으로 집중되는 것을 막아 법조 인맥을 형성치 못하도록 하고 타 대학의 출신자가 입학하도록 함으로써 다양한 학문풍토 조성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살피건대 법 제26조 제3항이 다양한 학문풍토를 조성하고자 하는 입법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공공복리에 기여한다고 할 것이므로, 각 입법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
...(중략)...(지원자의)불이익이 그리 크지 않은 반면, 위 전공별 및 출신학교별 입학정원 제한을 통하여 다양한 전공자를 대상으로 전문교육을 실시하여 다양하고 경쟁력 있는 법조인을 많이 배출함으로써 얻게 되는 공익과 다양한 학교 출신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학문풍토를 형성하여 법학 전체의 발전을 도모하고 기존의 특정대학 출신의 법조 인맥 형성을 차단하여 법조비리를 사전에 예방함으로써 얻게 되는 공익은 훨씬 더 크다
(평등권 침해 여부에 대하여)
로스쿨 제도의 도입목적 중 하나가 사법시험 합격자의 특정대학 편중으로 인한 법조계내 학연에 따른 인맥의 형성 및 그에 따른 법조비리의 발생 등 문제점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타 대학 출신에게 어느 정도 입학정원을 할당할 필요성이 인정될 수 있다.(따라서 차별이 헌법상 정당화 된다).“
-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제1조등 위헌확인(2007헌마1262, 2009.2.26)
2014년, 6번째 입학생을 받던 해에 로스쿨에 입학생을 배출한 대학의 수는 국내 대학 65개교, 외국 대학 34개교를 합쳐 100개교에 육박했습니다.
(관련기사 :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196)
한해에 로스쿨 입학생을 배출하는 국내 대학 수만 합쳐도 ‘사법시험이 생긴 이래 1명 이상의 합격자를 배출한 대학의 수’와 비슷합니다.
또한 로스쿨의 효과는 단순히 입학생 배출 대학 수로는 계량할 수 없는 질적으로 다른 차이가 존재합니다. 법학 교육을 로스쿨이 담당하도록 하고 ‘로스쿨이 설치된 대학의 법과대학을 폐지’하였기 때문입니다(법학전문대학원법 제8조 제1항). 최근 법률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린 바 있습니다.
“로스쿨 검사, 사시보다 ‘SKY대’ 쏠림 심화“, 법률신문, 2015.5.8.
(링크 :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647)
이런 종류의 로스쿨 비판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부당합니다.
1) 로스쿨 출신 검사의 수의 표본이 164명으로 사법연수원 출신 검사 수 표본(292명)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데도, ‘같은 기간 동안’이라는 미명 하에 교묘하게 숨기고 있습니다.
2) ‘출신 로스쿨’이 23개교로 다양한 까닭에 같은 SKY학부 출신이라도 법학 교육 과정상에서 공유하는 경험이 없다는 로스쿨 제도의 특성은 고의적으로 무시하고 있습니다.
3)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전공을 법학과 비법학으로 구분하지 않고’ 비교하였다는 것입니다.
2014년 한 해만 해도 서울대에 3,169명, 연세대에 3390명, 고려대에 3789명의 학생이 입학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결정문에서 언급한 “사법시험 합격자의 특정대학 편중으로 인한 법조계내 학연에 따른 인맥의 형성”이 과연 같은 학교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뤄진 것일까요. 학연이란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공유하였다는 동질감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생이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학생과 공유하는 경험은 얼마나 될까요? 학교 다닐 때 서로 모르던 이들이 사회에 나가 같은 서울대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유하는 연대감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아마 위 결정문에 언급된 것과 같이 ‘학연에 따른 인맥’이 생겨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소위 ‘학연’ 문제는 사법시험 합격자가 ‘특정 대학’들의 ‘법과대학’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교수님께, 같은 강의를 듣고, 같은 학회나 동아리 활동을 하고, 비슷한 수험생활을 거쳐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연수원에서의 경험 또한 공유하게 됩니다. 이렇게 공유하는 경험이 많아지도록 설계된 시스템 하에서는 ‘학연’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이지 못한 기대라 할 것입니다.
입법자는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며 위와 같은 문제점을 직시하여 ‘법학전문대학원을 두는 대학은 법학에 관한 학사학위과정을 둘 수 없다(법학전문대학원법 제8조 제1항).’고 규정함과 동시에 ‘법학전문대학원은 입학자 중 법학 외의 분야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한 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입학자의 3분의 1 이상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법학전문대학원법 제26조 제2항).’고 규정하여 전공을 다양화 하고, 이에 더하여 직접적으로 ‘법학전문대학원은 입학자 중 당해 법학전문대학원이 설치된 대학 외의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한 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입학자의 3분의 1 이상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법학전문대학원법 제26조 제3항).’는 규정을 두었습니다.
학부에서 각기 다른 전공을 한 재학생들간의 접점이 극히 적을 뿐 아니라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은 6000명이 25개 학교에 뿔뿔이 흩어져 공부하고 있습니다, 사법연수원처럼 한곳에 모여서 같은 강의를 들을 일이 없으며, 3년이라는 정해진, 짧은 시간동안만 로스쿨에 머무르기 때문에 선·후배를 많이 알기도 쉽지 않습니다.
법치주의의 확립을 위해서는 사법제도에 대한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의 신뢰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구성원의 다양성이 확보되도록 설계된 로스쿨 제도는 다양한 법조인 배출에 기여할 뿐 아니라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도 제고에 이바지 하고 나아가 법치주의 확립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Ⅲ. 사법시험이 존치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들에 대하여
1. 사법시험의 존치나 예비시험제도의 신설은 종래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위한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양산할 것입니다. 이는 종래의 그 같은 폐해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로스쿨 제도를 도입한 취지에 어긋납니다.
2. 사법시험은 결코 ‘희망의 사다리’가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사법시험은 경제적 뒷받침 없이는 준비하기 어려운 고비용 시험입니다. 사법시험과 로스쿨 제도를 병행하는 것은 사법시험의 준비 비용과 실패에 대한 결과를 감당할 경제적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만 추가적인 ‘샛길’을 제공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결과야 말로 ‘부의 대물림’내지는 ‘현대판 음서제’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사법시험을 존치한다면 로스쿨제도의 도입 목적과 교육 이념을 실현하기 어렵습니다.
사법시험제도에는 다양성을 존중하기보다는 획일화된 시험과 경쟁을 통한 엘리트 선발을 중시했던 과거의 패러다임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러한 패러다임에 익숙합니다. 익숙한 제도를 버리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어렵고 귀찮은 일입니다. 로스쿨에 대한 반감의 상당부분은 낯선 제도에 대한 불신과 우려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시를 존치한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익숙한 패러다임과 비교하는 ‘불공평한 비교’가 반복될 것입니다. ‘사시 = 정당한 제도’, ‘로스쿨 = 돈스쿨, 음서제’라는 부당한 이분법이 유지될 것입니다. 로스쿨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고 도입 목적에 따라 운영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투자와 노력을 하기는커녕, ‘60살 넘은 사법시험’과 ‘7살짜리 로스쿨’을 지속적으로 비교한 뒤, ‘7살 아이’가 잘 달리지 못한다는 불합리한 이유를 들어 이 제도를 버리게 될 것이 자명합니다. 그러나 앞서 논한 바와 같이 로스쿨 제도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좋은 교육 제도를 만들고, 교육 제도에 더 나은 가치를 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정 그런 노력을 기울일 ‘의지’가 있다면, 사법시험을 폐지하여 소모적인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로스쿨 제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운용하는 일에 우리 사회의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
.
위와 같은 세 가지 문제점에 대한 우려는 헌법재판소 결정문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로스쿨 졸업생에게만 변호사시험 응시 자격을 부여하는 변호사시험법 제5조 제1항 본문과 관련하여 로스쿨 제도가 직업선택의 자유에 대한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었다고 판단하며 다음과 같이 설시한 바 있습니다.
“사법시험을 계속해서 변호사 시험과 병행실시 하는 방법(이하 ‘사법시험 병행제도’라 한다)과, 법과대학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한 자 또는 비인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자 등 일정한 법학교육을 받은 자에게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고, 이에 합격한 자들에게 다시 변호사 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하는 방법(이하 ‘예비시험 제도’라 한다)을 통해서 이 사건 법률조항의 입법목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음에도 이러한 제도를 채택하지 않은 것이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반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법시험 병행제도 하에서는 일정 수준의 외국어 구사능력(영어대체시험제도)을 갖추고 법학과목 35학점을 이수(법학과목이수제도)하기만 하면 사법시험에 응시하여 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으며, ‘학점인정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학교 이외의 교육기관에서의 학습과정에서도 법학과목 학점을 취득할 수 있고, 독학사 제도 등에 의한 학점인정도 가능하기 때문에 법조인 선발·양성과정과 법과대학에서의 법학교육이 제도적으로 연계되어 있지 않아(헌재 2009. 2. 26. 2008헌마370, 판례집 21-1 상, 292, 304 참조), 이와 같은 제도로는 이 사건 법률조항의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제8조 제1항 등 위헌확인(전원재판부 2009헌마754, 2012.3.29.)
로스쿨제도의 핵심은 선발위주의 법조인 양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있고, 헌법재판소 또한 사법시험이나 예비시험을 병행한다면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전문법조인을 법률이론과 실무교육을 통해 양성하고, 법학교육을 정상화하며, 과다한 응시생이 장기간 사법시험에 빠져 있음으로 인한 국가인력의 극심한 낭비와 비효율성을 막기 위한 취지에서 도입된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지향목표(헌재 2009. 2. 26. 2008헌마370, 판례집 21-1 상, 292, 303-304 참조)를 변호사 시험 제도와의 연계를 통하여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고 본 것입니다.
Ⅳ. 마치며 - 로스쿨 제도의 발전을 위한 건강한 논의를 기대하며
사법시험 제도에 대한 애착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역경을 딛고 어렵게 꿈을 이루신 변호사 선배님들일수록 로스쿨 제도가 못마땅해 보이실 것입니다. 서울변협 회장님이신 김한규 변호사께서 사법시험이 “그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사다리”라고 말씀하신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링크 : :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7027461&cloc=olink|article|default)
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꿈을 이룬 선배님들의 위대한 성취를 존경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고시원에 딸린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며 어렵게 공부하며 12년 동안 노력한 끝에 변호사의 꿈을 이뤄내는 것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운 ‘인간 승리’입니다. 오직 노력의 ‘영웅’들만이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로 하여금 꿈을 ‘포기’하거나 ‘영웅’이 되는 것 중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의무교육과정을 성실하게 이수하여 대학교에 진학하고, 또한 대학교 교육 과정을 성실하게 이수한 사람이라면, 아르바이트와 고시공부를 병행하며 10년 넘게 꿈을 포기하지 않을 용기가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도 누구나 법률가가 되고자하는 목표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로스쿨에는 선배님들처럼 ‘위대한 영웅’들은 아니지만, 로스쿨이 제공하는 교육 시스템과 장학금의 도움을 받으며 꿈을 키워나가고 있는 평범한 학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만한 ‘용기’는 없었지만 로스쿨 덕에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평범한 학생의 한사람으로써, 이 제도가 앞으로도 지속되어 더 많은 학생들의 꿈을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이 글을 썼습니다.
‘희망의 사다리’, ‘돈스쿨’과 같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미지’들만이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상황에서는 로스쿨 제도를 통해 우리가 추구하고자 했던 목표가 무엇인지,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이 제도를 운영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발전적인 논의가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로스쿨에 대한 온당한 평가는, 더 나은 법률가 양성 시스템 구축을 위한 첫걸음과도 같습니다.
로스쿨은 이 땅에 처음 생긴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 제도입니다. 처음 도입이 논의되기 시작한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 온갖 반대 끝에 겨우 도입된 제도입니다. 이렇게 힘들게 도입된 제도가 도입 직후부터 온갖 근거 없는 비난에 시달린 끝에 제대로 시행되어보지도 못하고 ‘희망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존재’, ‘현대판 음서제’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게 되었습니다, 이런 누명을 쓴 채 사법시험이 존치된다면 조만간 로스쿨 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아마 우리나라에 다시는 도입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모쪼록 로스쿨 제도가 도입 취지에 따라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나아가 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제도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문 링크 : https://www.facebook.com/wooseok.noh.3/posts/7064726261298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