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지는 날
정 명 수
1.
석양이 수평선 아래로 가라앉자 하늘은 연보라색으로 변해갔다. 마지막 선물처럼 남기고 간 빛 자락으로 형형색색의 파스텔화가 완성되어 갔다. 바람에 일렁이는 푸른 야자나무 잎도, 성난 파도도 태양이 사라지자 제 빛을 잃어갔다.
와이키키 서핑족들이 자취를 감추자 파도마저 온전히 그녀의 것이 되었다. 부드러운 모래 위에 누워 파란 하늘에 펼쳐지는 마술 같은 인상화를 보고 있자니 꿈만 같았다. 그 동안 짓눌렀던 고통들도 사라졌다.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다시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처럼 가볍게 밀려 온 파도가 부드럽게 몸을 감싸고 지나갔다. 산뜻한 한기와 함께 태평양의 긴 생명이 몸속으로 파고든다. 입 안에 짠 기운이 감돌았다. 이 모든 것이 꿈만 같다. 그녀를 감싸고 있던 모래들이 위로하듯 어루만지며 파도와 함께 사라졌다. 파도가 왔다 갈 때 마다 그녀의 몸도 조금씩 가라앉는 듯 했다. 다시 눈을 감았다.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그냥 이대로 눈을 감아도 좋을 것 같았다.
“유진아! 이제 가야지 빨리 와”
해변가를 거닐던 수빈이와 지혜가 손짓했다. 유진은 잠에서 막 깬 아이처럼 천천히 모래를 털었다.
“같이 가 얘들아”
유진의 웃음소리가 파도 소리와 함께 흩어졌다.
2.
아침 햇살이 체리색 블라인드 틈을 비집고 눈 위로 떨어졌다. 눈이 부셨다.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어느새 봄이었다. 매번 같은 시간이 지나가지만 같은 것은 없었다.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시간과 색깔은 늘 변해갔다. 모든 것들이 예민하게 다가왔다.
대현은 작년 이 맘 때 위암 확진을 받았다. 가을에 위를 절반 이상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고 퇴원했다. 의사는 암 세포가 있는 곳이 위치가 좋아 위 모두를 절제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가벼운 수술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대현은 그렇지 않았다.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아직 대학도 못 마친 애들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휑한 머리카락과 물기 없이 푸석거리는 피부가 오늘따라 처량하게 보였다. 부쩍 늙어버린 얼굴을 보니 모처럼 산뜻하던 기분이 가라앉았다. 아파트 입구 경비실에서 익숙하지 않은 경비원이 겸연쩍게 출근길을 배웅한다. 며칠 전 나이 때문에 이 짓도 못하게 생겼다고 투덜거리던 경비 아저씨가 잘린 모양이다.
코로나로 인해 한산하던 등굣길이 시끌벅적 해졌다. 더벅머리 고등학생 한 무리가 꽃망울 가득한 벚꽃 나무 아래로 꾸역꾸역 밀려간다. 주머니에는 며칠 전부터 담배 한 갑이 들어 있다. 골목어귀에서 지나가는 사람마다 담배를 구걸하는 빨간색 해병대 모자를 쓴 할아버지를 위해 사 놓은 것이다. 할아버지는 대현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했지만 매번 잊어버렸다. 실망한 표정으로 뒤돌아서는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살아계실 때는 몸에 좋지 않다는 핑계로 담배 한 갑 사다주지 않았다. 아버지 건강을 위한 다고 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대현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준 것이 있다면 이 몸뚱이 하나라고 대현은 늘 생각했다. 아버지에게 받은 것이 없으니 줄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해병대 할아버지는 오늘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생각에 잠겨 골목길을 빠져 나왔다. 대현은 지하철역 반대로 걸어갔다. 출근하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다시 주택가로 들어갔다. 대현이 버스를 타지 않는 이유는 둘레길 때문이다. 수술 후 회복을 위해 걷기를 하다 이 길을 발견했다. 숲길은 비가 온 뒤라 한결 짙어지고 탄탄해졌다. 지난 단비에 오솔길 중간 그루터기에서 싹이 텄다. 사람들 편의를 봐주기 위해 밑동까지 잘라버린 나무뿌리에서 보란 듯이 생명이 움텄다. 비록 여리지만 알 수 없는 힘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경외감마저 들었다.
3.
경찰서 당직실은 퀴퀴한 술 냄새로 가득했다. 대현은 창문을 활짝 열어 재꼈다. 알싸한 바람이 들어오자 취객들이 애벌레처럼 꿈틀거렸다. 의자 위에 아무렇게 널브러진 피의자들이 하나 둘씩 깨어났다. 서늘해진 공기에 부르르 떨며 단잠을 깨는 모습을 보니 실소가 나왔다. 술에 덜 깬 그들을 달래가며 조사를 마쳤다. 얼마 남지 않은 정년퇴직까지 이 짓을 할 생각을 하니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그렇다고 파출소로 나가 제복을 입는 것은 더 싫었다. 주위에서는 건강을 생해서 형사 생활을 그만두라고 했지만 두현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늦게 시작한 경찰 생활에서 나이 때문에 형사가 되기 어려웠다. 우여 곡절 끝에 형사가 되긴 했으나 처음엔 수사 서류 복사만 했다. 나이 어린 팀장 밑에서 수모도 겪었지만 ‘형사’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견뎌냈다.
마무리도 이곳에서 하고 싶었다.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또 사건이 터졌다. 변사 사건이었다. 죽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에 평등했다. 대현도 죽음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변사자는 빌딩 뒤편 주차장 구석에 하얀 천에 덮여 있었다. 후미진 곳이었지만 불구경이라도 난 듯 지나가던 행인들이 기웃거렸다. 폴리스 라인을 골목 입구로 옮기자 구경꾼도 사라졌다.
대현은 고개를 숙여 묵념을 했다. 작년부터 생긴 버릇이다. 대현 죽음 앞에서 최소한 예의를 지킨 다고 생각했지만 내심은 죽음이 무섭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흰 천 아래로 아직 굳지 않은 선혈이 검붉게 흘러 내렸다. 붉은 선혈 위로 하얀 손이 바깥쪽으로 꺾여 나와 있었다. 변사자는 7층 건물 옥상에서 투신했다. 시신은 처참했다. 떨어지면서 2층 난간에 머리가 부딪쳐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뼈들이 부러지면서 몸은 유체 동물처럼 흐느적거렸다.
옥상 CCTV에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의식을 치르듯 천천히 옥상 난간 위에 올라가 누웠다. 봄 햇살을 만끽하려는 듯 모자를 벗고 한참을 누워 있었다. 그러다 마치 다음 생을 향해 달려들 듯 빌딩 밖으로 몸을 돌렸다. 영상을 보던 대현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가슴이 저려왔다. 그녀는 스물 네 살의 S대 대학원생이었다. 오늘 오전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투신했다. 그녀가 살던 오피스텔은 쓰레기장 같았다. 먹다 남은 음식물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온갖 생활쓰레기가 발 딛을 틈 없이 빼곡했다. 집 안 상황을 보니 우울증 앓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제 시작할 나이에 그녀는 탈진했다. 고급 오피스텔에 거주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국내 최고 학벌 대학원을 다니는 학생이었다. 탄탄대로만 남아 있을 것 같은데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궁금했다.
4.
공항 입국장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출입국 제한이 풀리자 그 동안 참았던 여행객들로 넘쳐났다. 딸은 배웅 나오지 말라고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입국 게이트가 열리면서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몰려나왔지만 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호눌룰루를 출발한 항공기는 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 창현은 마른 침을 삼켰다. 이번에도 비행기를 타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딸은 한국에 돌아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오랫동안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심지어 생활비를 끊겠다고 협박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완강하던 딸은 할머니의 부탁은 거절할 수 없었다. 딸을 키워준 할머니가 살아 있을 동안만 들어와 있어 달라고 했다.
이년 만에 보는 딸이었다. 모녀의 재회는 그리 극적이지 않았다. 뒷좌석에 파묻혀 휴대폰만 보고 있다. 창현은 영종대교가 이렇게 긴 다리인줄 몰랐다. 긴 침묵이 흘렀다.
“미국 생활은 어땠어?”
“남자 친구 생겼어? 미국 놈들도 눈이 삐었지”
대답도 없는 딸을 룸미러를 쳐다보며 혼잣말을 했다. 창현은 딸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여의도 아파트에 도착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빠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딸의 태도에 그 동안 참았던 화가 터졌다.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니”
“내가 못해 준게 뭐 있어? 공부 좀 더해보자는 말이 그렇게 싫은거니?”
“그것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난거야”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몰아 붙였다. 딸은 아무 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궜다.
창현은 부모님이 하던 조그만 식당을 물려받아 직원이 100명이 넘는 프렌차이즈 사업체로 키워왔다.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를 대신하여 대학을 가는 대신 식당을 이어받았다. 어머니 혼자 식당을 꾸려갈 형편이 되지 못했다. 창현은 억척스럽게 일했다. IMF 위기에서도 그는 성실함으로 버텨냈다. 그는 새로운 아이템과 아이디어로 사업을 확장해 갔다. 어머니 이름의 설렁탕집은 전국에 수백 개의 체인점이 있다. 하지만 그는 고졸이라는 딱지가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돈이 많아져도 낮은 학벌로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는 항상 못 배운 것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다. 자식들에게 그가 성취하지 못한 욕망을 강요했다. 아들과 딸에게 최고의 학원과 과외를 붙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들은 유학을 보냈지만 배워 온 것은 마약 뿐 이었다. 딸도 그가 원하는 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모든 것이 그의 열정을 따라오지 못했다. 노력한 만큼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자신만 알고 있는 것 같다. 실패는 그 만큼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5.
달리고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달릴 힘도 없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달리게 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내가 가장 행복했던 날은 아빠를 떠나 있었던 날들이다.
아빠는 내가 잘 되길 원하시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모른다. 아니 알고 싶어 하지 않으신다. 슬프다. 늘 벽에 부딪치는 느낌이다.
엄마는 나를 한번이라도 딸로 대해준 적이 없다. 나는 늘 아빠의 돈 줄이다.
이혼한 후로 더 그랬다. 저번 제주 여행에서도 마치 내가 명품백을 사는 것처럼 아빠에게 전화하라고 했다. 너무 싫었다. 왜 그렇게 사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지금도 갈 수 있다면 와이키키 해변으로 가고 싶다. 가장 행복한 때를 꼽으라면 수빈이 지혜와 함께 간 하와이 여행이다. 작은 아쉬움이 있다면 다롱이와 더 못 놀아 준거다. 다롱아 나중에 보자. 그리고 할머니 미안해요 늘 실망만 시켜 드리네요 저번 설날 때 준 용돈 고마웠어요 그 돈은 쓸 수가 없었어요 그대로 남겨두고 떠나요 할머니 건강하세요
그녀의 일기장은 먹다 남은 컵라면 용기 아래 있었다. 먹는 것 조차 힘이 들었던 모양인지 음식물은 대부분 썩어 있었다. 일기장에는 그녀의 삶은 없었다.
오피스텔 복도에 그녀의 아버지가 기대 있었다. 차마 딸의 죽음을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는 딸의 죽음을 알고 달려온 사람치곤 말쑥이 차려입고 있었다. 대현은 그 동안 알아낸 딸의 죽음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는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듯 말하는 중간 중간 고개를 저었다.
“따님이 학업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 같습니다.”
대현은 일기장에서 본 그녀의 생각을 애둘러 말했다.
“과를 잘못 선택한 것 같아요 산업공학과는 남자들이 많아서....그럴 애가 아닌데 .”
그는 애써 죽음의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따님 일기장입니다. 꼭 읽어보세요”
대현은 그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6.
창현은 다리가 떨려 더 이상 서있을 수 없었다. 조금 열린 문 틈사이로 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형사가 건네 준 빨간색 다이어리에 붙은 스티커 사진 속에는 다롱이와 함께 찍은 유진이 웃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에도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 밝지는 않았지만 평소와 다름없었다. 죽을 이유가 없었다. 무엇이든 이유를 찾고 싶었다. 깨알 같은 글씨가 어른 거렸다. 유진의 죽음이 전해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 복도 끝에서 짐승 울음 같은 소리가 들렸다. 대현은 무심하게 문닫힘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바닥에는 어디서 날라 들어왔는지 벚꽃 잎 몇 개가 떨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