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적으로 생각하기
김영
이 책을 본건 사실 처음이 아니다. 도서관 3층, 사회학 책들이 꽂혀있는 서가를 지나가다가 눈에 띄는 표지색상과
감각적인 표지디자인으로 뭔가 만화책스러운 느낌이 나서 꺼내 본적이 있다. 하지만 글로 빽빽한, 거기다 300페이지가 넘는 책장을 보고 조심스레 다시 집어넣었다. 그랬던 이 책이 바로 첫 과제라니!
지난
방학엔 평소에 잘 읽지 않았던 분야의 책을 읽는 목표를 세웠다. 평소에 읽어보고 싶었던 이기적유전자, 총,균,쇠, 그리고 서양미술사를 리스트로 적었다. 하지만 번역이 이상한건지, 내가 이해력이 부족한건지(아마 둘 다일 것이다)하나같이 이해가 잘 안됐고 결국 방학이 끝나도록 끝내지 못했다. 사회학적으로
생각해본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된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다가 말했다.
총,균,쇠도 읽다가 말았다.
서양미술사도 읽다가 말았다.
모두 읽다가 말았다.
고로 ‘사회학 공부의 기초도 읽다가 말 것이다’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 책 또한 방학 독서목록에 있던 책들과 같이 미국 사회학자의 책을 번역해 출판한 것이다.
과연 나는 이 책을 끝낼 수 있을 것인가? 일단 이 세쪽남짓한 독후감에선
모든 주제를 다 다루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해 가장 큰 관심사 두가지를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빈곤이 존재하는 이유’
빈곤은 예전부터 나의 큰 관심사였다. 거리에 나와 물건을 파는 아이들, 냇물에 들어가 화장터에서 떠내려온 것들을 건지는 아이들, 다 쓰러져
가는 노점상에서 ‘고용되어’일하는 아주머니, 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들까지. 이러한 상황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저들과 무엇이 다르기에 그들이 생존을 위해 분투할 때 나는 걱정없이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노숙을 하는 것은 노력을 하지 않아서 그런거라고, 복지제도가
갖춰진 현대사회에서 노숙을 한다는 것은 자발적인 의지인 것이라고. 나는 이내 생각해보다 이 말이 참
잔인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삶은 너무나 평탄하고 순조로웠어서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공감은
해주지 못할지라도 그 사람을 이해해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 말은 공감은 커녕 그 사람을
탓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
책의 저자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학 실천의 기본 원칙은 그 문제를 사회적인 것으로 보는 데서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들어 거대한 부를 소유한 미국에선 아이러니하게도 여섯 명 중 한 명이 빈곤 속에서 살거나 거의 빈곤에 가까운
상태로 살아가며 심지어 아동의 경우에는 그 비율이 더 높다고 한다. 글쓴이는 이런 풍요 속에 이렇게
많은 고통과 불안이 존재 할 수 있는 원인을 사회에서 찾는다. 부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우리의 시스템은
자본주의이고, 이러한 시스템에서 나머지 인구에게 분할되는 몫은 수입과 부의 총액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마치 의자 뺏기 게임과 같이 음악이 멈추었을 때 누군가는 결국
앉을 자리를 갖지 못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제 시스템이 한쪽 끝에서는 부의 축적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다른 쪽 끝에서는 불가피하게 결핍 상태를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체계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쟁과 효율의 가치를 강조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임금을 최대한으로 낮추고, 정규직 근로자를 시간제 근로자로 교체해 비용을 최소화시키며
때때로 공장 소유주들이 공장 문을 닫고 가장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다른 사업에 돈을 투자하도록 부추긴다고 주장한다. 즉 부를 창출하고 분배하는 방식을 조건 짓는 경제 시스템에서는 광범위한 빈곤 양식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제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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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뉴질랜드에 사는 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금 회사인데 자기네 회사 인근에 위치한 모스크에서 테러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충격이었는데 이내 언니가 말하길 그 모스크 주변에 주차를 해 둬서 집에 어떻게 갈까 고민이라 했다. 회사가 폐쇄되서 집에 못 가고 있다고 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
걸까. ‘모스크’에서 발생했다는 소리에 설마 또 ISIS의 소행일까 싶었다. 몇 시간 뒤, 한국 언론을 통해 자세한 상황을 볼 수 있었다. 테러는 백인우월자들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모스크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예배시간에 벌어졌고, 가해자는 테러장면을 페이스북
생중계로 내보내 요즘 안 그래도 힘든 마크 저커버그를 또 다시 수렁텅이로 밀어넣는 사이드 이펙트까지 가져왔다.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며 흥미로운 사실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 사건은 이슬람 극단세력에 의한 테러가 아닌 백인우월주의자들에 의해 행해진 사건임에도, 대부분의 기사의 많은 공감을 얻은 댓글은 우리나라의 난민에 관한 문제와, 이슬람종교의
위험성에 관한 내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사를 제대로 읽지 않는구나 싶었다. 생각해보면 나 또한 처음 언니로부터 테러소식을 접했을 때, ‘ISIS가
뉴질랜드까지..’ 라고 생각 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우리는
왜 당연하게 무슬림이 가해자라고 생각했던 걸까? 애초에 뉴질랜드, 호주는
이민자로 구성된 사회임에도 백인은 왜 그렇게 자신들이 특별하고 선택받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걸까? 잘은
알지 못하지만 우리 인종의 기원을 따라가면 흑인이 최초의 민족임에도 어떻게 백인이 가장 우월한 민족이라는 인식이 만연해졌으며, 백인은 어딜가도 기득권층에 자리잡을까? 하는 궁금증이 떠올랐다.
몇 년 전, 동아프리카 여행을 마치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서
며칠간 머물렀었다. 원래 도시들마다 다른 분위기를 풍기지만, 요하네스버그는
정말 독특하다 못해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해서 아직도 생생히 그 분위기가 기억난다. 주말에 다운타운에
갔는데 마치 유령도시와도 같은 모습과 마약에 취한 사람, 정말 정신이 나간 사람들이 쳐다보는 눈 빛
같은 것들이 생각난다. 거리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90%이상이
흑인이었다. 세계의 많은 도시를 여행해봤지만, 내 인생에서
길거리를 걸으며 그 정도의 공포를 느꼈던 적은 처음이었다. 일단 나왔으니 구경을 하고, 오후엔 만델라스퀘어라는 곳으로 향했다. 백인들 밀집거주지역이라는
정보와 쇼핑몰이라는 정보정도만 알고 간 만델라 스퀘어와 그 동네는 정말 다른나라라고 해도 믿길 정도였다. 일단
백인의 비율이 압도적이었고 잘 정돈된 거리, 고층빌딩 등으로 오전에 갔던 다운타운과는, 그리고 우리가 보았던 도시의 여느 부분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원래
흑인들의 나라를 강제점령하고,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세우고 그 나라를 지배하고자 하는 백인들. 오랜 투쟁끝에 아파르트헤이트는 철폐되고,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뽑히고 흑인들과 백인들이 조화를 이루고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가 본 풍경은 여전히 철저히 분리된 환경과 그에 대한 부조리함과 불만으로
가득 찬 사회처럼 보였다. 이뿐만 아니라 항상 이민자들이 많은 나라(특히
서구권)를 가면, 가드는 흑인, 내니는 필리핀사람, 구멍가게, 네일숍은
중국인처럼 인종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나눠져 보이는 것이 항상 불편하게 다가왔다.
“백인우월주의”
이 책에선 흑인이 노예로 종속되는 것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다. 백인의
입장에서 쓰인 백인우월주의라니 참 흥미롭다. 영국인은 노예가 필요했지만 영국인을 노예로 삼기엔 개인의
권리를 강하게 자각하고 있음이 문제가 됐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쉽게 도망쳐 원주민 집단에 숨을 수
있기 때문에 실용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흑인이 남았고, 흑인은
자기네 땅이 없었고, 부족을 이루고있지도 않았으며, 다른사람들
사이에서 두르러지는 신체적 특징 때문에 도망친다 해도 숨을 곳이 없었기에(p329) 노예로 종속되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영국의 아일랜드 정복 그리고 북아메리카에서의 아프리카인
노예화 이전에는 사회적인 열등성과 우월성을 결정짓는 ‘백인’과
‘유색인’ 같은 인종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p331)
지배의 구조적 양식은 당연히 백인 사이에서도 작용하는데, 여기서도
인종의 개념이 역할을 수행한다. 19세기에 상류계급 백인들은 하층계급과 노동계급 백인들이 스스로를 백인으로
생각하도록 독려하는 캠페인을 시행했다. “나는 가난하지만 그래도 백인이야”처럼 노동자인 그들의 비참한 상황에 대한 보상으로서 그들의 ‘백인성’을 사회적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통해 지금의 상황까지 온 것이다. 사실 백인들의 우월의식을 가질 수 있는 자신감과 단순함
이 책은 예상과는 달리 미국의 투표율, 사랑해의 숨은 의미, 사회 구조, 개인의 역할 등 흥미로운 사례를 들어 사회학의 전반에
관해 생각보다 쉽고 재밌게 쓰인 책이었다. 사실 도서관에서 빌려봐서 정독하진 못했지만 교수님 말씀처럼
다독했다고 생각하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