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인천 지역의 역사 답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출제되는 중요 유형 중의 하나가 특정 지역을 주고 그 지역에 있었던 역사 사실을 통시대적으로 파악, 또는 문화 유산을 파악하는 문제로 출제된다는 것입니다.
주로 각 시대의 도읍지, 또는 역사 사실이 있는 지역을 주고 파악하는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출제된 예를 들면 국내성, 평양, 공주(웅진), 부여(사비), 경주, 개성, 한양 등 역대 도읍지의 지역,
그리고 강화도, 황해도, 충주, 원산, 압록강 유역, 오대산, 충청도(서산, 당진, 예산, 태안) 등 특정 지역의 고대~근대까지의 역사 사실, 문화 유산을 파악하는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그러니 중요 지역과 관련한 역사 사실이나 문화유산을 정리해 두세요.
문제에 제시된 지도를 보면 어느 지역인 지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자유 공원(맥아더 동상)', '차이나타운', 그리고 '황해'라는 바다와 닿아 있는 지역.....은 인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천은 과거 백제 건국 관련하여 비류가 나라를 건국하려다 실패한 곳이죠.
인천과 관련하여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이 많이 일어난 것은 근현대에 이르러서입니다.
강화도 조약으로 문호가 개방되면서 일본이 요구한 3개 항구(인천, 부산, 원산) 중에 하나였죠.
개항 이후에는 1888년까지 각국의 거류지가 마련되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거류지였답니다.
그리고 1882년에는 인천에 일본 영사관 가청사가 설치되어 최초의 영사가 임명되기도 하였죠.
이 외에도 많은 역사적 사실이 있었던 곳이죠.
① 남연군 묘는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 묘로 충남 예산군에 있습니다.
독일인 오페르트는 흥선 대원군 집권 시기 통상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자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여 이를 볼모로 흥정
하려고 계획하고 묘를 도굴하려 했으나 발각되어 달아났습니다(1868).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에서는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이 더욱 강화됩니다.
② 조선 시대에 일본과의 개시(공무역)와 후시(사무역)이 열렸던 곳은 왜관(부산)입니다.
③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사립 학교는 원산학사이며, 이것이 세워진 곳은 원산입니다.
강화도 조약에 따라 원산은 1879년에 개항되었으며, 1883년에는 근대적 사립 학교인 원산 학사가 설립되었습니다.
④ 국채 보상 운동이 전국에서 처음 일어난(1907) 곳은 대구입니다.
⑤ 인천은 개항 이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외국인의 거류지가 마련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 유사 기출문제 더보기
특정 지역과 관련된 사료나 설명을 제시하고 그 지역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찾는 문제
9회 고급 34번 문제
문제해설
문제에 주어진 자료는 시기가 다른 두 개의 사료입니다.
두 사료에서 공통으로 의미하는 밑줄 친 '이곳'을 파악하는 것이 문제를 푸는 순서겠죠?
두 개의 사료 모두 생소한 것은 아니라서 사료를 많이 접한 분들은 '이곳'이 어딘인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겁니다.
첫번째 사료를 보면, '수덕이 순조로워 지맥의 근본이며 대업을 만대에 전할 땅, 왕이 춘하추동에 걸쳐 100일 이상 머물러라'라고 나와 있네요.
이 사료는 태조 왕건이 남긴 훈요 10조 중의 일부입니다.
태조는 서경(평양)을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중시하였습니다.
두번째 사료에는 '이곳은 대화세의 명당 지역으로 이곳에 궁궐을 세워 천도하면 천하를 병합할 수 있고 금이 재물을 가지고 와 항복할 것이다'라고 나와 있네요.
이는 고려 중기에 일어난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당시 묘청이 왕에게 건의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두 자료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이곳'은 서경(평양) 지역이니 평양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찾으면 되겠네요.
① 진흥왕 순수비는 전국 네 곳에 세워졌습니다.
창녕비(경남 창녕), 북한산비(서울), 황초령비와 마운령비(함경도)로, 평양 지역에 세워진 것은 없습니다.
진흥왕 때 신라가 평양을 차지한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것이겠죠? ㅋ
② 평양은 옛 고조선과 고구려의 수도였던 역사가 깊은 도시입니다.
고려 때는 건국 초부터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중시되어 개경과 유사한 중앙 부서의 분소를 설치하는 제도인
분사 제도를 실시하였습니다.
③ 조선 후기의 사상인 만상은 의주로 기반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당시 평양을 근거지로 활동하였던 사상은 유상입니다.
④ 세도 정치기에 홍경래의 난이 일어난 지역은 청천강 이북의 평안북도 지역입니다.
⑤ 국채 보상 운동이 시작된 곳은 경북 대구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어난 물산 장려 운동이 시작된 곳이 평양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10회 고급 8번 문제
문제해설
문제에 제시된 (가) 지역을 지도와 연혁을 통해 유추해 보면 됩니다.
(가) 지역의 연혁을 소개한 내용 중에서 12목, 그리고 뒤에 정비된 8목 중 하나, 다인철소 등을 통해 (가) 지역이 충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를 풀 때 (가)의 연혁 내용으로 이 지역이 충주임을 파악할 수 없다면, 문제에 표시된 지도 (가)가 남한강 유역임을 볼 때 (가)는 충주와 단양 중 한 곳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충주는 통일 신라의 5소경 중의 하나인 중원경이 었던 곳입니다.
충주는 남한강 유역에 위치하여 조선 시대에 가흥창이라는 조창이 설치되었던 지역입니다.
① 진흥왕 순수비는 창녕비(경남 창녕), 북한산비(서울), 마운령, 황초령비가 있죠?
충주 지역에 세워진 순수비는 없네요.
그리고 가까이에 단양 적성비가 있지만 그건 순수비가 아니니 조금 헛갈릴 수도 있는 답지네요.
② 신라 민정문서는 5소경 중 하나였던 서원경 지역의 4개 촌락에 대한 토지의 종류와 면적, 인구, 가구 , 가호, 노비의
수와 3년 동안의 사망, 이동 등을 기록한 문서로, 서원경은 오늘날의 청주입니다.
③ 주진군은 양계에 주둔하는 지방군입니다.
충주는 고려 시대에 5도 중 하나였던 곳으로, 5도에는 주현군이 주둔하였어요.
⑤ 조선 형평사는 백정들이 차별 철폐를 위해 1923년 진주에서 설립한 조직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10회 고급 18번 문제
문제해설
이 문제는 1점짜리로 조금은 쉬운 문제네요...^^
① 삼별초는 정부가 개경 환도를 결정하자, 환도에 반대하여 강화도에 남아 항전하다가 진도, 제주도로 옮겨다니면서
끝까지 항전하였으나 제주도에서 여, 몽 연합군에게 토벌되고 말았지요...ㅜ.ㅜ
② 지도에 표시된 벽란도 보이시죠? 예성강 어귀에 있던 벽란도는 대외 무역의 발전과 함께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여
송, 요나라 상인들은 물론, 대식국이라 불리던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왕래하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