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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스크랩 사복음서
섬김 추천 0 조회 14 14.07.16 16:4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제목 : 1, 마 태 복 음

 

마태복음은 인류역사상 가장 많이 출판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마태의 본명은 레위였고, 직업은 세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둘러보니까 실력이 있는 사람이 없어요.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 빌립, 벳세다 출신들 한 동네에서 불렀는데,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면 누군가 기록을 해야 될 텐데, 글줄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안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세관에 가셔서, 세관은 돈을 다루는 곳인데, 마태가 앉아 있는데, 예수님이 마태와 눈을 맞춥니다. 그리고‘일어나 나를 따르라!’예수님께서 전도 하실 때 긴 말 하지 않습니다.‘일어나 나를 따라와.’ 여러분 전도하는데 너무 말을 많이 하면 안 됩니다. 목소리를 낮추고 예수님처럼 해보세요.‘일어나 나를 따라와.’예수님께서 마태를 부르셨는데, 마태가 실력으로는 12사도 중에서는 최고였을 것이다. 활동이라든지 지도력은 베드로가 수제자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베드로 복음서가 없습니다.

 

베드로 복음서는 없지만, 요한은 오래 살았기 때문에 실력도 있고, 머리가 탁월한 분입니다. 요한은 머리가 명석하고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 외에 여러 사람이 있지만 12사도가 별로 복음서를 쓸 만큼 실력이 안 됩니다. 마태를 특별히 부르신 것은 마태복음을 읽어보면 이 정도의 기록이라면 마태 아니고는 그 때 12제자 중에 누구도 헬라어로 내용을 쓰기는 어려웠겠다. 생각이 듭니다.

 

유대인이 헬라어로 마태복음 같은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이야기로 쓴다는 것은 그 당시에 사회에서 TOP 클래스에 속하는 최고의 실력자가 아니면 어렵습니다. 그 당시 세리 같은 사람들이 신 로마파 인사들 우리 사회에서 일본이 우리를 강점하던 악한 시대에 이른바 친일파로 지목된 인물 중에 상당한 실력자들이 있었습니다. 시골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친일파 되나요? 친일파 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세금을 거두어서 로마에 갖다 바치고 얼마를 자기들 유용하는 스타일의 세리라는 것은, 용역을 로마로부터 입찰을 해서 세리가 하는 것은 단위구역에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가 살고 있는데, 거기에서 얼마만큼의 세금을 거두어서 바치겠다하는 입찰을 합니다. 했어요. 그 당시 그 정도로 실력자가 마태였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를 차지했어요. 12사도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태가 쓴 마태복음은 인류 출판사에 가장 많이 출판된 책입니다. 그런데 마태가 예수님 제자로 3년이나 활동을 했는데, 복음서 4개를 아무리 뒤져봐도 마태가 무슨 말을 했다는 말이 한마디도 안 나옵니다. 종용한 사람입니다. 조용하기 때문에 듣기를 잘 듣는 사람입니다.

 

떠들고 싶은 사람은 잘 못 듣습니다. 입이 열려 있는 동안에는 귀가 막혀 있습니다. 마태는 아주 조용한 사람이고 잘 듣는 사람이고, 습관적으로 메모 하고 기록을 하면서 예수님께서 마태를 서기관으로 임명한 것 같지도 않은데, 마태는 습관적으로 기록하는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또 마태는 듣고 이해하고 정리하는데 아주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런 사람을 특별히 선택할 때, 아시는 대로 세리 하면 당시 유대 민족들에게 아주 혐오스러운, 손가락질 받고 욕먹는 신분입니다. 남자는 세리, 여자는 창녀, 그래서 예수님 보고‘세리와 창녀의 친구’라느 말이 나왔습니다.‘세리와 죄인의 친구다.’할 때 세리는 마태를 두고 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리를 제자 삼은 것 때문에 세리의 친구라는 오명을 무릅쓰고라도 마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12제자 중에 그만한 실력자가 없습니다. 사람이 외국어나 조금 하고 실력이 있으면 교만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자타가 공인하는 죄인이라고 지목되었기 때문에 교만할 것도 없고, 실력은 있지만 조용합니다.

 

또 12제자의 구성원을 보면 마태와 조화를 이룰 수 없는 인물이 있는데, 셀롯인 시몬이라고.‘셀롯인’은 열심당원입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극렬 애국주의 열심당 시몬 같은 사람은 마태 같은 사람과 길에서 만났으면 죽였을지 모릅니다. 애국정신이 투철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그 둘을 12제자에 포함시켰는데 놀랍게도 복음서 아무리 살펴봐도‘그 둘이 항상 서로 반목하더라.’ 그런 말이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때문이지만, 마태가 워낙 조용하고 실력을 갖고 있으면서도‘나 같은 세리를 제사삼아 주신 주 은혜 놀라와’조용하게 겸손하게 지냈기 때문에 말썽이 없지 않았나, 마태복음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산상보훈입니다. 다른 복음서에도 산상보훈과 같은 교훈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나오지만, 마태처럼 금싸라기 같은 말씀을 알차게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완벽하게 챙겨놓은 책은 없습니다.

 

다른 책을 통해서도 다른 이야기는 볼 수 있는데, 산상보훈만큼 마태복음에서 가장 명료하고 충실하게 알차게 챙겼습니다. 이런 것은 마태가 기억력이 좋아도 메모가 되지 않았다면 어렵습니다. 옛 어른들 말씀이 둔필승총(鈍筆陞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둔필(鈍筆), 둔하게 기록해도 승총(陞總), 총명한 기억력보다 이긴다는 말입니다. 기록한 것이 기억력을 이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은사입니다.

 

마태복음서 내용을 보면 앞에 총론적인 이야기를 쓰지는 않았지만, 내용을 자세히 보면,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일차적 염두에 두고 썼다. 하는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족보입니다. 그 혈통은 특히 아브라함부터 내려오는 혈통을 중시하는데, 예수님을 소개할 때에‘아브라함의 자손 그리고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분이다.’ 그리고 뒤에 이름을 열거하는데, 족장들의 족보와 함께 유다 왕의 족보를 연결하면서, 다윗의 자손이고 다윗 이후 솔로몬으로 내려오면 왕의 족보인데, 왕통을 타고 내려왔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왔고, 유다 다윗 왕가의 후손으로 왕족으로 그래서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 이렇게 이야기 방향을 잡았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할 때 동방박사가 찾아와서 누구를 찾느냐 하면,‘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계시뇨?’라고 질문하고,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십자가 위에 예수님이 왕이라는 것을‘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고 쓴 것을 소개합니다. 그래서 왕으로 오시고 왕으로 사시고 왕으로 죽으셨다.

 

유대인의 왕이다. 그리고 다윗의 자손이다 하는 것은‘메시야시다.’구약성경 시편, 혹은 율법서, 역사서, 혹은 예언서, 특별히 이사야서에서 여러 차례 여러 모양으로 예언되었던‘메시야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메시야 관을 가지고 썼습니다. 끝없이 예언되었던 수많은 예언들을 마태가 다 챙기고‘이렇게 하신 말이 응하였다. 이루어졌느니라.’끝없이 나옵니다.

먼저 내용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다음에 다윗의 동네, 다윗의 동네가 베들레헴입니다. 베들레헴에서 나신 메시야, 유대인의 왕으로 왕통을 타고 오신 메시야, 구약성경의 그 수많은 예언들을 성취하신 메시야, 더 놀라운 것은 죄인을 불러서 회개케 하시는 메시야,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

 

그 말은 마태에게 너무 절박한 이야기입니다. 만약에 의로운 사람만 부르러 왔다면 세리 마태가 제자에 들 수 있겠어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것은 자기는 세리 같은 죄인도 불렀다는 말입니다. 다음에, 진리로서 가르치시는 메시야, 진리에도 물을 너무 타면 진리가 분간이 안 됩니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이 율법에다 얼마나 많은 해석을 첨가하는지 진리의 말씀은 온데간데없고 사람들 이론으로 혼잡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하고 명료한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같지 아니했다. 권세 있는 자의 교훈 같았다. 잡다한 이야기를 섞은 것이 아니고, 진리 자체를 가르쳤습니다. 현재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을 보면 성경 본문은 읽기만 합니다. 온통 예화만 하는데, 성도들은 듣고 또 들어서 무슨 내용인지 다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것 안하십니다. 예수님은 예화를 해도 짤막하고 간단하고 명료합니다. 진리를 가르치십니다. 다음에, 구원을 하시는데, 죄에서 구원하시는 메시야, 청천 벽력같은 소리입니다.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메시야는 예수님처럼 죄에서 구원하는 메시야가 아니고,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하고, 헤롯 왕의 악한 정치에서 해방시키는 메시야를 기대하지, 죄에서 구원하는 메시야는 상상도 안 합니다. 그런데 마태가 그것을 봤어요. 진정한 메시야는 죄에서 구원하는 메시야다. 유대교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대를 한 번에 엎어버리는 그런 선포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귀신의 권세를 이기시는 메시야. 구약성경을 공부한대로 구약시대에 대단한 예언자도 귀신을 쫓아내는 것 보셨어요?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하는데,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자마자‘믿는 자에게는 표적이 따르리니’귀신이 쫓겨나갑니다. 귀신을 쫓아내보면 큰 능력을 받아서 불의 사자가 되어야 쫓아내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권세로 물리치면 나갑니다.

 

대단한 능력을 받아야 귀신 쫓아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올바로 서면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 주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받아들이고 배우고 말씀대로 실천 하시면 하나님의 능력이 이미 임해 있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쫓아 내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십자가도 모르고 부활도 모르고 예수님 피도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훈련 삼아 보내봤어요. 그 때 12제자들이 와서 아주 고무되어서 왔습니다.‘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나갔더니 귀신이 항복하더이다.’‘귀신이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아직 12제자나 70인 제자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진다는 것 알아요? 몰라요? 예수님 부활 알아요? 몰라요? 예수님 피가 자기 죄를 속하는 것 모릅니다. 모르는 제자들인데 예수님 이름으로 나가니까 귀신이 쫓겨 가요? 안가요? 쫓겨 갔어요. 여러분은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예수님의 피의 권세도 알고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도 알아요? 그런데 귀신이 왜 안 나가요? 큰 능력을 받아서 쫓아내겠다.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아무 실력도 없는 제자들이 예수님 이름으로 나갔더니 귀신이 쫓겨났어요.

귀신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지성과 의지와 감정을 독립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선하지는 않지만 악하거나 더럽지만, 완전한 자기 결정력을 가지고 사람의 몸을 통해서 말도 하고 의지도 표현하고 감정도 표현하는 인격체입니다. 훌륭한 인격자라는 말이 아니고 인격체지성 감정 의지를 독립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 속에 들어와서 사람 인생의 운전대를 자기가 잡아버립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육체와 정신은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내가 잡고 있는지 귀신이 잡고 있는지 본인이 모릅니다. 옆 사람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본인이 알기도 합니다.

운전대를 내가 잡았다, 내 속에 있는 귀신이 잡았다 한참 갈등을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 경우는 일곱귀신이 들어 있어요. 군대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어요. 오늘 우리 신학교가 귀신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안 가르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상식으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하는데, 우리의 대적 우리의 원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다 우리 편입니다.

 

우리의 원수 대적은 공중의 권세 잡은 악의 영들입니다. 귀신들이 우리의 대적인데, 신학대학에서 영적인 전쟁을 하러 나가는 장교를 길러내면서 귀신에 대해서 한 시간도 안 가르치고 성경도 안 가르치고 귀신에 대해서는 하나도 안 가르칩니다. 신학교 나와서 목사 전도사가 되어도 귀신의 정체도 모르는채 전쟁터에 나가야 합니다. 기막힌 현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제자 훈련시켜서 복음을 전하며 병자를 고치며 귀신 쫓아내는 것부터 실습 해보고, 그리고 제자 파송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부활도, 예수님의 피의 권세도, 모르는 제자들이 훈련 중에 나가서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는데,‘내가 사탄이 번개같이 땅에 떨어지는 것 봤다. 하지만 귀신이 네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네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제자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데,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 성경을 안 읽어봤어. 요절 보느라고 다시 말씀드리는데, 예수님께서 귀신을 어떻게 쫓아내는가 보시고 여기 있는 여러분 모두가 예수 믿으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 이름과 함께 우리에게 이미 다 주어져 있습니다. (아멘)

다음에, 모든 질병에서 구원하시는 메시야. 예수님께 왔던 사람들이 병 고침 받지 못하고 돌아간 사람 은 하나도 없습니다. 병원에 가면 조기에 발견하면 고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초기에 발견하면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되거나 만성이 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는 조기나 초기나 말기나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다음에, 우리의 양식을 책임지는 메시야, 사람이 살면서 먹고 마시는 것은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서 우리의 양식을 능히 책임질 수 있다는 거예요. 말로만‘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하시지 않고 실제로 염려하지 않아도 될 만한 실력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억만장자가 되게 해 주겠다. 약속한 적 한 번도 없습니다. 최소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아라. 저도 별로 그런 것 염려 안 합니다. 믿음도 별로 없지만 굶을 것 염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와, 진리와, 계명, 율례와, 법도를, 기뻐하기만 하면 굶게 하지 않는다 그 말입니다.

옛날에 모세를 따라 나올 때도 아무 밀밭도 없고 빵집도 없는데, 광야 사막길 가면서 굶겨 죽지는 않았어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염려 때문에 예수님 따라 가지 못하고, 예수님 말씀을 따라간 사람들은 굶어 죽지 않았습니다. 옷이 헐벗어서 죽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는 메시야, 안식일에 무엇을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 유대인들은 까다롭게 합니다. 안식일에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나라. 노동이란 무엇이냐?‘질량×거리’= 질량이 얼마냐? 마른 무화과 두개 이상은 질량이다. 거리는 얼마냐?‘900m이상이 거리다.’온갖 것을 계산해서 안식일을 범할까봐 벌벌 떱니다. 간담합니다. 일하지 말고 쉬면 됩니다.

 

지금도 유대인들 예루살렘에 가면 하시딤이라고 새까만 모자쓰고 새까만 양복에 머리 길러서 발등까지 내려오는 거지같은 사람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일도 하지 않고 생업도 없고 생산업에 종사도 하지 않고, 성경만 읽고 기도하고 밥 먹고 삽니다. 유대인들이 부자니까 온 세계 각국에 있는 유대인들이 그 사람들 후원해서 먹여 살립니다. 얻어먹는 주제에 토요일 안식일이 되면 금요일 저녁부터 자기 집에 있지 않고 호텔로 갑니다.

 

호텔에 가면 편안하게 일 안하고 안식일 하루 동안 살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 금요일 해가 떨어지고 나서 전기 스위치 올리면 노동입니다. 안식일 날 전기 스위치 올리고 내리고 하지 않으려고 호텔로 갑니다. 엘리베이터 보턴을 누르면 노동입니다. 안식일 날 호텔에 가면 유대인들만 쓰는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는데, 층마다 다 섭니다.

 

침대 시트도 정리하고 가면 될 텐데, 안식일 때문에 자기는 손 안 대고 온 호텔을 엉망으로 하고 갑니다. 전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안식일은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 계명이 아닙니다. 대부분 제 1계명 2계명 3계명 4계명이 하나님을 위한 계명이다. 아직도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계명은 세계명입니다. 1계명 2계명 3계명이 하나님을 위한 계명이고, 제 4계명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인간을 위한 계명입니다. 4계명 네 아들이나 딸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나 육축이라도 안식일에는 숨을 돌릴 수 있게 해 줘라. 쉬게 하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습니다. 사람을 쉬라고,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휴식이 필요합니다. 잘 쉬는 것도 계명입니다.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하는 것도 계명이지만, 제 7일에는 안식일에 쉬는 것도 계명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하는데, 아직도 안식일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주일 지키는 것은 안식일 지키는 것 아닙니다. 주일은 우리가 지킨다는 개념이 아니고 누리는 거예요. 주일 지키는 것은 안식일 지키라는 그 명령을 따라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한 번도 주일을 지키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교회가 자원해서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성령이 강림하신 날, 예수님 승천하신 날, 여덟 번째 날이 아니고 매 주의 첫 날입니다.

 

안식 후 첫날에 교회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로, 하나님께 서원하듯이 약속한 거예요. 하나님이 명한 것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에는 수동적으로 하나님께서 명령하면 지키는 정도였지만, 신약시대에는 우리가 장성했어요. 우리가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주일마다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겠다. 성령과 우리가 함께, 성령과 교회가 결정해서 하나님께 서원하듯이 정한 것입니다. 그런 성격도 개념을 분명히 알아야 될 텐데, 주일날 누가 예배 빼먹었는데, 안식일 범했다고 설교를 합니다. 전혀 성경과 역사와 교리를 제대로 인식을 못 했습니다. 어째든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 되신다.

 

다음에, 비유로 가르치시는 메시야, 예수님께서 얼마나 설교를 쉽게 하시는지 까다로운 주제를 쉽게 납득시키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비유를 써서 설교를 하십니다. 비유 설교는 어려운 개념을 쉽게 설명하는 방법인데, 예수님은 비유를 깔끔하게 하고 짤막하게 하고 극명하고 명료하게 합니다.

 

다음에, 변화산에서 변모하시는 메시야, 예수님 모습이 외모로 드러나는 모습은 출중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은 세계 최고 유명배우보다 더 잘생긴 예수님 노랑머리 파란눈 그런 예수님을 상상을 많이 하는데, 왜 그러냐? 달력을 너무 많이 봤어요. 예수님께 아름다움 외모가 아니고,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고 아름다운 것이 없고 흠모할 것이 없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같이 별로 잘생긴 모습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외모 때문에 시험에 들었나 봐요.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들어보면 놀라운 말씀이 나오고, 능력을 보면 대단한데,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에 한 번 내 본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어야 되겠다. 생각이 드셔서 변화산에 올라갔어요. 제자들이 다 올라가지 않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가 올라갔는데, 예수님이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다음에, 유대인의 왕으로 입성하시는 메시야, 성전을 숙청하시는 메시야, 위선자를 질책하시는 메시야, 그리고 예루살렘의 멸망과 종말을 예언하시고, 십자가에서 수난당할 것을 미리 말씀하시고,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는 메시야, 십자가를 지시는 메시야,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는 메시야, 최후의 유언 지상명령을 위탁하시는 메시야, 이렇게 복음서가 끝이 납니다.

 

안한 이야기가 있는데, 예수님께서 3년 동안 식사할 겨를도 없이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열심히 일하셨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결별해야 될 시간이 되어서, 나와 같이 한적한 곳에 가서 쉬자 하면서 졸업여행 가듯이 갔는데, 이스라엘 땅에서 물이 제일 풍성한 곳, 가이사랴 빌립보, 현재 지명은 바니아스라고 합니다.

 

헤르몬산 기슭 헤르몬산이 머금었던 물이 바니아스로 터져나오는데, 가이사랴 빌립보에 가면 큰 굴에서 물이 콸콸 나옵니다. 그곳으로 졸업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졸업시험을 칩니다. 문제가 한 문제입니다. 한 문제 풀면 졸업시험 합격입니다. 문제는‘예수님이 누구시냐’하는 문제입니다. 처음에 예수님께서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연습문제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세례요한, 선지자 중에 하나라 하더이다. 이것은 연습문제다, 본 문제를 낸다.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말고‘Who do you say Im’‘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이 답만 쓰면 졸업시험 합격입니다. 예수님은 멋쟁이 교수님입니다. 시험문제가 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매일 말실수하던 베드로가 퍼팩트하게‘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합격했습니다. 예수님께서‘머리 좋다. 눈치 빠르다.’하지 않고,‘네가 복이 있다’맞나요?‘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성령께서 시험 잘 칠 수 있도록 답도 가르쳐 주십니다.

 

베드로가 일생일대 질문,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질문은‘예수님이 누구시냐?’예수님의 정체가 뭐냐? 예수님이 누구시냐? 사람이냐 하나님이냐? 이것을 물었다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3년을 가르친 후에 십자가 지시기 전에, 가이사랴 빌립보에 가서‘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하고 답이 나왔을 때 교육을 끝냈습니다.

 

바로 거기서 내려오는 길에 변화산 올라가셨다가 여리고를 거쳐서 예루살렘에 가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사도바울이 나중에 사도행전에서 다마스커스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바울이 물었습니다.‘주여 뉘시오니이까?’‘Who are you Lord?’ 예수님에게 누구십니까?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물었어요.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질문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물어볼 수 있는 최고의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을 한번 못해 보고 죽었으면 그 사람은 태어나지 않은 것이 차라리 나을 뻔 했습니다. 베드로가 그 말에 대답을 했는데, 그 때 예수님께서 맞는 말을 했다. 네가 머리가 좋은게 아니고 혈육이 아니고, 내 아버지의 성령께서 네게 알려줘서 네가 알아맞힌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메시야이시다. 그리스도이시다. 믿는 믿음의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텐데,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다.’‘페트로스’를 반석이라고 오해를 하는데, 페트로스는 반석이 아니고 돌입니다. 반석은‘페트라.’ 페트라가 반석이고, 페트로스는 돌입니다. 반석 위에 돌로 집을 짓는 게 교회입니다.

 

이런 내용이 담긴 책이 마태복음서인데, 마태가 예수님의 3년의 사역을 명료하게 씁니다. 마태는 애매한 것을 쓰지 않아요. 분명하게 씁니다. 세리 세무 업무는 계산이 맞아야 합니다. 10원이라도 틀리면 퇴근을 못합니다. 마태가 성실하게 예수님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마태복음만 읽어봐서는 잘 모르지만, 우리가 공부를 해 보면, 마태가 쓴 것이 이상하다 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3년간이나 일한 시간이 나오지 않습니다.

 

앞에는 족보 이야기 하다가, 예수님 탄생사건을 다루고, 세례요한이 나타나서 외치더니, 예수님 세례 받으시고, 그리고 광야에서 시험 당하시고, 시험 끝나자 바로 제자들을 부릅니다. 제자들 불러서 설교 한번 합니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한번 하고, 내려와서 집중적으로 병자 고치다가, 어느 날은 하루 종일 비유만 하시다가, 예루살렘 올라가셔서 계속 논쟁을 하십니다.

 

내용들을 보면 주제별, 종류별로 나옵니다. 마태의 살아온 삶을 뒤 돌아보면 집히는 것이 있습니다. 마태가 세관에 오래 있다 보니까, 소득세는 소득세대로 주민세는 주민세대로 부가가치세 따로 종부세 따로, 분류하는 것이 몸에 배였습니다. 금싸라기 같은 말씀을 한군데 모아서 설교 한번 한 것처럼, 하루 종일 비유 한 것처럼, 나중에 누가가 누가복음 쓸 자료를 챙겨보는 가운데 마태가 쓴 것이 이상하다고 느끼고 전부 풀어헤쳐서 모든 말씀 모든 사건을‘언제 어디서 누가 누구에게 어떤 대상으로 무엇을 어떻게 왜 이런 말씀을 했느냐?’하고 전부 스토리를 만들어서 재배열합니다.

 

그런 면에서 조금 아쉬운 점은 있지만, 기록된 것만큼은 마태복음이 진솔한 기록입니다. 가장 명료하고 간단하게, 세리출신답게 명료하게 이야기를 써 나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을 읽을 때 언제나 유대인들을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고 말씀을 썼다고 하면, 한결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무리하게 지나친 인용구가 더러 있습니다. 명확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인용구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는 반드시 마태복음에 정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우리가 선교사로 가려고 하면, 마태복음과 구약성경과 히브리서에 정통해야 합니다. 히브리서에 정통하지 못하고 마태복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구약성경을 잘 모르면서 이스라엘 전도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반드시 이스라엘을 전도하려면 구약성경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구약성경 공부할 때 출애굽기 19장 5절 6절을 분명히 알아야 유대인의 민족적 사명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고, 구약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잘못 응답해서 어떤 실패한 삶을 살았는지를 유대 역사를 정확하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메시야가 마태복음에 어떻게 소개 되었는지 충분히 공부하고, 선교사로 가야합니다. 유대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히브리서에 정통해야 합니다. 히브리서가 유대교와 기독교, 다시 말해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기독교의 진리를 극명하게 대조하는 비교종교학적인 책이 히브리서이기 때문에, 구약성경, 마태복음, 히브리서, 최소한으로 그 정도는 정밀하게 공부를 해야 유대인을 상대로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말세가 되었는지, 이방인의 때가 다 끝나 가는지 유대인 중에서 예수를 믿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구약성경을 정통하게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히브리서를 제대로 이해하면 유대인들을 전도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새롭게 본다면 대단한 실력자가 나올 수 있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정리를 하고, 맨 끝에 보세요.

 

마태복음 28장 18절입니다.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제자입니다. 신자 아닙니다.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2)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려고 하면, 첫째 우리 자신이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실력도 없는데, 누가 우리 제자 되려고 하겠어요? 겨우 신자에서 머물러 있지 말고,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정리]

 

◎ 마태복음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2.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서 나신 메시야

3.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메시야

4. 구약성경의 수많은 예언들을 성취하신 메시야

5. 죄인을 불러서 회개케 하시는 메시야

6. 진리로서 가르치시는 메시야

7. 죄에서 구원하시는 메시야

 

8. 귀신의 권세를 이기시는 메시야

9. 모든 질병에서 구원하시는 메시야

10. 우리의 양식을 능히 책임지는 메시야

 

11.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는 메시야

12. 비유로서 가르치시는 메시야

13. 변화산에서 변모하시는 메시야

 

14. 유대인의 왕으로 입성하시는 메시야

15. 성전을 숙청하시는 메시야

16. 위선자를 질책하시는 메시야

 

17. 예루살렘의 멸망과 종말을 예언하시는 메시야

18. 십자가에서 수난당할 것을 미리 말씀하시는 메시야

19.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는 메시야

 

20. 십자가를 지시는 메시야

21.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는 메시야

22. 지상명령을 위탁하시는 메시야

 

 

 

 

 

 

 

 

- 2, 마가복음 -

 

먼저 살펴본 마태복음 안에 내용이 90% 이상 들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어떤 부분이 마가복음에는 빠졌는지 알아보는 것이 더 쉽습니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유대인들은 중요하지만 이방인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보아서 뺀 것 같습니다.

 

마가는 예루살렘에서 대 저택을 소유한 부유한 사람입니다. 부모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바나바의 생질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나바의 성격을 보면 성품이 좋기 때문에 바나바의 동생 여동생의 성품도 좋으리라 보면 마가의 성품은 좋으리라 봅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드실 장소를 이야기 할 때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요한의 집을 선택하셨는데 주선 한 것은 바나바가 열두 제자에는 들지 않았지만 70인에게는 들지 않았나 봅니다.

 

다락방이라 할 때 그것은 우리나라의 2층 개념이 없을 때 방위에 방이 있다고 다락방으로 기록을 했습니다. 가서 보니까 100명 정도 들어 갈 수 있는 홀입니다. 우리나라에 큰 방을 가지고 있는 저택도 1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집은 없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그 정도의 저택을 가지고 있다면 괜찮은 집안의 사람입니다.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의 첫 번째 수행원으로 갔는데, 밤 빌리아 버가에서 도중하차 합니다. 그 이후 두번째 전도 여행에는 바나바의 수행원으로 갔다가 베드로가 베드로 전, 후서를 쓸 때 보면 내 아들 마가가 문안한다. 하면서 마가가 베드로의 수행원으로 통역원으로 봉사하는 것 같습니다. 사도바울이 볼 때 마가는 쓸모없는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전도중간에 이탈해서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람입니다. 바울이 두 번째 전도 여행에서는 중간에서 이탈하는 사람은 데리고 갈 수 없다 바울이 마가를 잘 못 생각했습니다. 그 점은 바나바가 옳았고, 바울이 잘못 본 것입니다.

 

한 번의 실수로 사람을 잘 못 보는 것은 곤란합니다. 사람은 실수보다 큽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모두의 죄보다 더 큽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만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바나바의 지론입니다. 바울은 면도칼 같은 사람입니다. 안된다면 안 되는 것이여 형제여! 누구의 개성이 옳다고 할 수 없지만 나중에 보면 마가는 바울이 우려한 것처럼 유약하고, 나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니면 바울이 냉정하게 한 것이 약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마가는 훌륭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가는 활동 반경이 바울의 활동과 비교해 손색이 없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로마에서 위로가면 베네치아, 역시 마가의 도시입니다. 마가는 동양에서는 주목받지 못하지만 서양에서는 마가를 존경합니다. 마르코스, 마르크스, 막스, 마크, 다 마가의 이름에서 따 온 것입니다.

 

마가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에게 호되게 당하고 나서 자기는 지도자가 되면 저렇게 하면 안 되겠다 생강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바울이 감옥에 투옥 했을 때 마가가 바울을 찾아왔어요. 바울이그 때 골로새에 편지를 쓰면서 마가가 오거든 영접하라고 씁니다. 훌륭한 인물로 성장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고 바울이 내가 생각이 짧았다 생각한 것 같아요나중에 유언 같은 편지 디모데 후서를 쓰면서 마가를 보고 싶어 합니다. 네가 올 때 마가를 데려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다 하면서 찾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변할 수 있습니다.

바울과 베드로 두 분은 초대교회의 일꾼의 양대 산맥이라 하는데 양쪽을 다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 마가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수행원,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통역하면서 다녔기 때문에 마가는 양쪽 바울의 신학 베드로의 사역을 함께 섭렵한 생각이 넓은 사람입니다. 마가의 전한 복음은 베드로의 복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가는 열두 사도, 제자도 아니고, 예수님을 직접 따라 다니면서 본 것이 아니라 마가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을 봤는지 아니면 그 이전에 예수님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혹시 70인에 들었는지는 모르지반 마가복음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통역하면서 기록한 것입니다.

 

따라서 마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의 기초가 됩니다. 그 이후 복음서를 쓰는 사람마다 반드시 마가복음을 참고해서 기록 했다는 것입니다. 내용을 보면 앞 부분에 세례요한의 사역과 그리스도께서 세례 받으시고 시험받으신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바로 제자를 부르시는데 신자를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성경에는 신자라는 단어는 한번 밖에 안 나옵니다. 신자가 아니라 제자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를 삼으셨고 너희도 가서 모든 족속을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를 삼는 것은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가 제일 가르치지를 않습니다. 이단, 사이비는 교육을 철저히 합니다.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무료신학원 신천지, 구원파, 등은 성경 교육을 엄청나게 합니다. 기독교는 교육이 전무합니다. 지금 기독교 교육은 성경 한 권 제대로 가르친 것이 없습니다. 통계를 보면 다른 종교는 숫자가 늘어나는데 기독교는 오히려 줄고 있습니다. 줄어드는 이유는 교육이 없습니다. 이단 사이비가 하는 교육의 십분에 일도 안 됩니다.

 

예수님의 지상 명령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2)세례를 베풀고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19)

 

교육 명령인데 기독교가 교육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중에 가르치고 선포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선포는 하나님의 주권 예수님의 주권을 선포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언어가 이 땅에 없기 때문에 비유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천국은 마치 뭐, 뭐, 같다 비유로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7병이어 4,000명 먹이신 사건, 그 유명한 베드로의 신앙고백, 변화산의 사건의 영광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 ⇒ 디메오를 만난 바 디메오를 만난 사건

수난에 대한 예고 ⇒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장로들의 손에 팔려서 십자가에 달릴것을 이야기 합니다. 예고를 하지 않으면 불의의 사건을 당한 것처럼 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입성 = 성전숙청 = 마지막 한 주간의 교훈 ⇒ 크고 첫째가는 교훈 ⇒ 마가복음의 종말론 ⇒마태복음과 거의 동일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 방문 ⇒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값 비싼 향유를 붇는 사건, 장소가 다른데는 나오지 않는데 마가는 명확하게 했습니다. 베다니 촌 나환자, 바리새인 시몬이다. 그런 것을 볼 때 나사로가 문등이가 아니었나 하고 봅니다.

 

최후의 만찬 ⇒ 유대인들은 유월절 식사는 금요일에 합니다. 예수님은 금요일 날 십자가에 달리시기 때문에 목요일 날 하셨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성찬 성례식이 되었습니다. 성찬식은 고난주간 목요일 밤에 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하는 개인적 생각입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 승천 ⇒ 마가복음에 기록 되었습니다. 마가복음은 16장까지인데 베드로의 기억의 한계가 아니가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 있습니다. 예수님 산상보후, 열두제자, 병자고침, 종말론, 세밀하진 않지만 예수님의 수난과 죽으심, 부활과 승천이면 있을 것은 다 있습니다.

 

그래도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가면 UP되어서 세밀하게 기록합니다. 예수님을 원만하게 알려면 반드시 4복음서를 골고루 보아야 하고 서신서속에 예수님의 이해를 신학적 풀이를 보아야 합니다. 마지막 요한계시록 가야 예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의 예수님을 보셔야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예수님을 믿는 것인데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믿으면 그게 미신입니다. 무엇을 믿는지도 모르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복음서를 잘 배워서 예수님을 알면 하나님 아버지가 보이고, 예수님을 알면 성령님이 보입니다.

 

성경을 요절주의로 보지 말고 통전 적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누가복음 // p.86로 이동합니다.

 

 

 

 

 

 

 

 

 

 

- 3, 누가복음 -

 

누가복음은 헬라인 누가가 성경을 기록했기 때문에 특이합니다. 성경 66권중 64권을 유대인이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과 사도행전은 이방인 누가가 기록한 것입니다. 문체, 필체가 가장 아름답고, 미려한 작품입니다.

 

누가복음의 미려함은 원전 자체 그대로입니다. 유대인들이 헬라어를 잘해도 의사소통 정도지 책을 기록할 수 있는 문장은 어렵습니다.

한국 사람이 영어 작품을 쓴다고 할 때 섬세한 감정 표현은 어렵습니다.

 

신약성경으 대부분은 유대인의 손에서 기록 되었는데 이정도의 문장이 나온 것은 성령의 영감이나 도우심이 없으면 어렵습니다.

누가는 헬라인이면서 헬라어를 썼기 때문에 작품성이 뛰어납니다. 표현을 잘하여 쓰면 눈에 떠오르는 것같이 쓰는데 회화적 표현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을 읽으면 그 장면을 그릴 정도로 표현을 합니다. 기독교 성화를 그릴 때 누가복음을 보아야 그림을 그린다는 것입니다.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누가 복음을 기록한 시기는 60-64년 정도에 쓰여진 것으로 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가택연금 되었을 때 기록되지 않았나 봅니다.

 

누가는 열두 제자도 아닌데 예수님에 대하여 소상히 쓸 수 있느냐, 예수님과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인데 드로아에서 바울을 만난 것으로 생각 되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이나 하신 일을 가장 상세하고 소상하고 많은 자료를 담고 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 곁에서 지켜보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하여 알고 싶은 욕구가 다른 사람보다 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가 특수자료(L)자료, 가 30가지 정도의 단편적인 사건이야기가 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책보다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필력이 알차고 옳고 대단한 것입니다. 누가는 사랑받는 사람입니다.

 

누가와 마태가 비슷한데 누가나 사도행전 어디를 보아도 누가가 말을 했다는 이야기는 한 곳도 나오지 않습니다. 글을 남긴 사람 중에서는 탁월합니다. 신약성경 중에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서신서13권과 누가가 쓴 누가복음 사도행전 바울과 만나 이후로 바울의 순교까지 한 몸처럼 다녔는데 두 사람의 업적이 신약성경의 51%를 기록 했습니다. 누가와 바울이 만난 것은 역사적 사건이요, 일생일대의 만남입니다.

 

누가가 바울을 만나지 않았어도 사랑받는 의사로서 자기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어디서든 충분히 사랑 받을 수 있는 인품의 소유자입니다. 바울을 만나서 주가, 사도행전을 기록한 업적만 가지고도 예수님 이후 사람이 글을 쓴 것 중에 가장 가치 있는 글을 세상에 남겼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누구를 만나서 무슨 일, 어떤 일을 했느냐 만 가지고도 빛나는 누가라는 이름의 뜻은 루카스(밝다)는 뜻입니다. 전기를 룩스 라고 합니다. 루카스 밝다는 뜻입니다. 누가는 의사로서 선교의 동참해다는 지구상의 의사들을 감동시켜서 지금도 누가의 정신을 본받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의 정신은 지금도 영원히 밝은 빛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는 일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인지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ex: (의료선교회 누가 회) 역사, 가치, 사도 바울이 누가를 소개할 때 사랑받는 의원 누가로부터 앞에 붙는 수식어가 사랑받는, 사랑하는 사람하고 사랑하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좋은 것 같아요? 사랑하는 것은 쉽지만 사랑받는 것은 어렵습니다. 사랑받는 것은 온갖 덕목을 다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예리한 눈으로 볼 때 일평생 변치않는 그림자처럼 같이 했습니다.

 

바울이 옥중서신에서 누가를 소개하면서 사랑받는 누가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보다 사랑받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 받으려면 예절, 겸손, 자기관리, 세 가지를 잘하면 사랑받습니다. 누가가 병약한 바울과 동행하면서 의사로서 늘 곁에 있었다는 것도 감동적입니다. 바울의 삶을 지켜보며 전하는 복음을 들으면서 기독교 진리를 깊은 이해를 쌓아간 사람이 누가입니다.

 

바울과 누가는 어디서 만났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드로아에서는 누가와 함께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드로아에서 밑에 내려오면 버가모, 벨가마, 터키의 서쪽 해변입니다. 버가모라는 곳은 한때 아시아의 면류관이라 할 정도로 번창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버가모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과대학 지금의 대학이 아니라 옛날의 의사 양성소 치료의신, 치유의신, 아스클레피우스 신전이 있습니다.

 

헬라지역에서 의원이 되기 위한 지원생들은 아스클레피우스 신전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신정에서는 심리적 치유를 중요시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환자가 오면 면접을 하는 방과 다른 방에서 그 사람의 증상을 들어서 체크하면서 상담을 해주고 치유 받고 지하복도로 걸어 나올 때 천장에서 네 병이 나으리라라~~~ 소리가 나오는 장치를 해 놨습니다.

 

아니면 뱀이 몸을 넘어가게 해서 치유하는 심리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고쳐서 병을 고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누가가 훈련을 받고 드로아는 아시아의 서쪽 관문인데 아시아 서머나 에베소로 접근을 해서 유럽에서 들어올 때 드로아는 통로가 됩니다. 바울이 여행을 하다가 자주 몸이 안 좋은 분이라서 의원을 찾아가 봅시다. 권했을 때 바울은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의사도 찾아가고 기도도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사에게 갈병은 의사에게 가야합니다.

 

하나님께 기도 할 것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의사도 하나님이 내셨습니다. 바울도 병이 있어서 누가 같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나중에 바울의 간증을 보면“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은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대단한 명언 중에 명언입니다. 부분적으로 볼 때는 불행 같은데 합목적적으로 보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누가복음, 사도행전 같은 책이 쓰여 졌습니다.

 

드로아에서 바울이 누가를 만났는데 바울이 누가를 만났을 때 장차 위대한 사람이 될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누가는 바울과 동행하면서 역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떤 학자는 누가는 의사면서 역사가였다라고 말하는데, 역사에 대하여 관심이 많습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역대상하를 모르면 쓸 수 없는 구절이 나옵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인격이 역사관, 가치관, 세계관,를 바로 세웁니다.

 

제자를 삼는 것은 제자가 스승을 앞질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일을 할 것이다.”“갑절의 영감을 받기를 원합니다.”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사도바울에게 배운 누가가 바울만 못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은 상당부분이 다른 복음에서 볼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장 1절입니다.

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과거완료

2)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누가가 글을 쓰려고 할 때 먼저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주목을 하고 있습니다. 역사가나 사관이 역사나, 사관이나, 사기를 쓸 때 제일 먼저 역사의 기초자료 핵심을 찾아내야합니다.(사료)붓을 든 사람이 많은데 쓰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예수님당시 현장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주제 별로 배열한 마태를 의식하지 않았나 봅니다.

 

4)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글을 잘 못 쓰면 혼란만 옵니다. 확실하게 기록하여 순서가 맞게 쓰는 것이 좋겠다. 집필동기, 수신자, 목적인 1-4절에 제시하고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역대상24:10에 나오는데 역대상을 알지 못하면 기록할 수 없습니다. 레위지파를 24반열로 나누는데 아비야 반열을 8번째입니다.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누가복음에만 있는 특수 자료가 있습니다. ( L 자료)

1. 천사, 엘리사벳, 마리아, 사가랴, 시몬의 찬양(1:13, 46, 67, 2:28,)

2. 세례요한 탄생기사를 기록하였다. (1:57)

3.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가게 된 원인을 기록한다.(2:1)

2: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옥타비아누스)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4. 목자들의 경배를 기록하고 있다.(2:8-14)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5. 예수님의 할례사건을 기록한다.(2:21)

21) 할례 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6.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를 기록한다.(2:22)

22)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7. 예수님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쓰고 있다.(2:42)

예수님께서 12살 소년시절에 예루살렘에 명절 지키러 왔다가 잃어버렸어요. 마리아는 아빠하고 집에 갔겠지. 또 요셉은 엄마하고 갔겠지. 둘이서 서로 미루고 가다가 한참 가다가, “예수 봤소?” “아니 당신하고 안왔나?” 깜짝 놀라서 오던길 돌아가서 사흘만에 찾았다고 합니다.

 

8. 역사무대의 정치적 배경을 상술한다.(3:1)

3: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9. 세례요한과 세리, 군인들의 대화를 기록한다.(3:14)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10. 아브라함 이상의 족보를 근원까지 기록한다.(3:38)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

11. 나사렛 회당에서의 처음 설교를 기록한다.(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본문: 이사야, 제목: 은혜의 해)

12.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심(7: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많은 여인들을 챙기고 이름들을 밝힌다.(8:3)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막달라 마리아, 마리아, 예수님모친마리아, 요한나, 수산나, 여러여자 등...)미리암,

14. 칠십인 제자들 이야기를 찾아냈다.(10: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5.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쓰고 있다.(10: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6.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를 그리고 있다.(10:38)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7. 사마리아인 세리 창녀 가난한자 병든 자를 챙긴다.

“사마리아인, 문등병자, 세리,창녀, 가난한 자, 병든자, 각별히 생각합니다.”(ex: 장기려박사)

 

18. 빌라도가 제물에 피를 섞은 일을 다룬다.13: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19. 포도원 가운데 심겨진 무화과나무(13: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20. 고창병 환자를 고치신 기사(14:2)

“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21. 탕자의 비유를 찾아내어 기록했다.(15: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22. 불의한 청지기 비유도 누가가 찾았다.(16: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3. 부자와 나사로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16: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4. 감사하려고 돌아온 사마리아 사람(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25. 불의한 재판관과 번거롭게 하는 과부이야기(18: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26.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18: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27 뽕나무에 올라갔던 삭개오 이야기(19:1)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주님을 만나자 마자 자진해서 토색한것을 나누어 주겠다.”)

28. 부자의 헌금과 과부의 두 렙돈 헌금(21:1)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1)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대비가 됩니다.)

 

29. 헤롯왕의 조롱을 당하신 메시야(23:11)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30.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이야기(24: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31 부활하신 주님의 승천기사(24: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4)[하늘로 올려지시니. / 그들이 4)[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다른 복음서에 없는 31가지를 첨부하고도 책이 작아진 것은 대단한 필력입니다. 누가복음은 한 두 번 읽어서 안보이고 여러 번 읽어야 누가의 탁월한 필력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아름다워야 아름다운 말과 아름다운 글을 씁니다. 누가는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사람이고 그 심성으로 사람을 바라보는데 특히 약한 사람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사마리아인, 죄인, 세리, 창녀, 병든자, 등등...

 

누가복음 뒤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을 만나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보시면 사역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것인가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낙향하는 모습니다.

 

예수님이 동행하시는데 정체를 밝히지 않고 같은 방향으로 길을 갑니다.

24장13절입니다.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원어는 “안티발라트”) 격론이 벌어져서 따지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부자지간, 글로바는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인데, 역사가 요세푸스 예수님의 부친 요셉의 동생이라, 예수님의 삼촌과, 사촌입니다. 서로 말을 반박하면서 격론이 벌어졌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가서 말리지 않으면 싸움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글로바의 견해입니다.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주일 오후 쯤 되었던 것 같습니다.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오경) 모든 선지자의(예언서)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른 이야기 하지 않고 모세오경, 예언자의 글을 들려주셨다.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2)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3)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호기심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구약성경 전 체에)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이 마음을 열어서 성경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프로그램이 본질이 아니고 말씀이 본질입니다. 예수님도 하신 것입니다.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성령입니다.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4)[하늘로 올려지시니]

52) 그들이 4)[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부활하신 것 보고는 흩어지는데, 승천하신 것을 보고는 흩어지지 않습니다. “성전에서 늘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가르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을 볼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셔서 성경을 가르치셨다 큰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지 말고 빼지말고 가르치는 것은 중요합니다. 성경을 성도와 교역자가 같이 읽으며 이해, 공감, 해석, 하면서 적용하는 것이 주요합니다. 앞으로 모든 교회강단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풍성하길 소망합니다.

 

// 누가복음을 읽고, // // 요한복음 p.142로 이동합니다.

 

 

 

 

 

 

 

- 4, 요한복음 -

 

요한복음은 신약 27권중 가장 나중에 기록된 책 중의 하나입니다. AD90년경 사도들이 다 순교하고 요한 사도 혼자 남아 있었습니다. AD64-68년까지 네로 황제 박해가 3년반 동안 혹독하게 지나가고 AD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네로 황제의 박해가 시작 되던 때입니다.

 

영지주의(이단) 그노시스파가 교회를 혼란시킬 때 사도 요한이 복음서를 기록합니다. 요한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복음서 안에서 열두 제자 중에 마태와, 요한이 가장 많이 알려진 사람입니다. 야곱은 일찍 순교하고 베드로, 요한, 마태, 정도입니다. 다른 사도들은 짤막하게 순교한 것 밖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바울이 완성한 것이 아니고 바울은 시작이고 요한이 완성을 했습니다. 창세 이후 요한 만큼 위대한 인물은 없었다고 봅니다. 요한은 열두 제자중에 소장파 중에 한사람입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베드로 같습니다. 5-6세정도 차이가 나지 않나 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 중에 중요한 일을 시킬 때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 정도입니다. 차별대우가 아니라 일을 하는데 세 사람은 마음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최후의 만찬석상에도 예수님께 기대어 보기도 하고 예수님이 안아주고 한 것을 못 잊어 합니다. 요한이 인식하기도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다. 라고 기억합니다. 예수님, 하나님도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외에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평은 믿는 사람의 밭이나 믿지 않는 사람의 밭이나 비를 주는 것은 똑같지만 고차원적인 하나님의 복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요한은 사랑을 받게끔 행동합니다. 제일 일찍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합니다. 앞장서는 사랑은 항상 베드로입니다. 요한은 늘 뒤에서 모든 것을 다 챙깁니다. 성실합니다. 그래서 베드로하고 조화가 잘 됩니다. 그리고 요한은 눈매가 예리해서 샤프하고, 숭고하고, 투명하고, 단순합니다. 정밀하고 보고, 귀도,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한 것을 듣는 탁월합니다.

 

요한은 나중에 요한복음, 요한1,2,3서, 요한 계시록까지 기록했는데, 예수님이 너는 순교하지 말고 성품대로 끝까지 남아 있다가 이단이 설칠 때 성경의 뒷 페이지 까지 기록해서 덮어놓고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요한 계시록도 요한에 의해서 기록되었습니다. 다른 사도들은 종말론 쏘스를 복음서 뒷부분에 묶는데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별권을 만들어서 성경의 뒷 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비서처럼 예수님의 가까이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요한의 성품을 대충 정리 했습니다.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 다른 제자들은 다 세상을 떠나고 이단들이 설쳐 댈 때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앞의 복음서를 충분히 읽어보고, 마태, 마가, 누가가 많이 챙겼는데도 요한이 볼 때 빠진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만 아는 기록물을 첨가해서 요한복음을 기록합니다.

 

요한의 문서 전체에 나타는 신학은 로고스 신학입니다.

요한의 신학은 로고스 신학이다.

태초에 로고스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는데 로고스는 곳 하나님이다 하나님이신 로고스가 육체가 되어서 우리가운데 오셨다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가 충만하더라. 기록합니다.

 

요한의 신학은 사랑의 신학이다.

바울의 신학이 믿음의 신학이라면 베드로의 신학이 소망의 신학, 요한의 신학이 사랑의 신학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요한의 신학은 예수의 신성을 강조한다,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능력 많은 예언자가 아니라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의 신성이 통째로 있다. 요한 신학의 방향은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정체에 관심이 있습니다. ex:기적, 표적 중요... 능력을 행하시는 정체가 무엇인가에 관심에 있다.

 

요한 신학의 방향은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예수님의 정체와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 주고 결코 헤프게 믿지 않는 도마의 신앙고백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위로부터 오신 초월적인 분으로 묘사하면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으로 이해하고 증거 합니다. 요한의 기본적인 마인드는 예수님의 신성에 초점을 맞추는 복음서가 요한 복음서입니다.

 

책의 신학, 성격, 의도 파악이 중요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행하신 일과 말씀보다 예수님의 정체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이 하신말씀이 요한의 귀에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 묻어나는 특별한 언어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에고에이미(EgoEimi) 나는 ~~ 무엇이다.

1. 나는 생명의 떡이다(6:48)

2.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3. 나는 양의 문이다(10:2)

4. 나는 선한 목자다(10:11) 여러분 자신 있습니까?

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14:6)

7. 나는 포도나무다(15:5)

 

나는 무엇이다 선포적인 말은 일반인들은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죄인이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 자기 계시, 자기 선포 같은 것을 찾아냅니다. 요한은 예수님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초월자로 묘사합니다.

 

요한이 주목하는 7곱 가지 이적들입니다.

1.물로써 포도주를 만들었다,(질을 초월)(2) 다른 복음서에는 없습니다. .

2.오병이어의 이적(양을 초월)(6)

3.왕의 신하의 병을 고치심(공간을 초월)(4:43)

4.베데스다의 환자를 고치심(시간을 초월)(5)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다.

5.물 위로 걸으심(자연법칙을 초월)(6:16)

6.날 때부터 소경된자 고치심(운명을 초월)(9)

7.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죽음을 초월)(11)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분으로 소개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이런 분이라면 우리가 누굴 믿어야 하느냐 묻지는 않지만 대답을 하게 만듭니다. 고차원적입니다. 결국 도마의 입에서“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다.” 까지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요한의 문장은 거의 단문장입니다.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이적을 기록했습니다.

1.나다나엘의 소명9=(1:49)

2.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2)

3.니고데모가 찾아온 사건(3)

 

다른 제자들은 없었습니다. 다 집에가고 요한도 퇴근하려고 하는데 똑, 똑 노크해서 나가보니까 국회의장이 찾아 왔어요. 이목이 두려워서 밤에 찾아왔다고 하는데, 그것이 아니고 낮에는 예수님이 바빠서 한가할 때 심도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밤에 찾아왔습니다. 산헤드린공의회에서 예수님을 믿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4.위에서 오는 그리스도(3:13) 요한복음에 예수님이 위에서 오셨다는 말씀이 20번 이상 나옵니다.

5.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4)

6.베데스다 못 가의 병자를 고치다(5)

7.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8:7)

8.나는 선한 목자다(10)

9.죽은 나사로를 살리다(11)

10. 한 알의 밀(12:24)

11.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사건(13:5) 하나님인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기신 큰 사건입니다.

12.새 계명을 수여하시는 말씀(13:34)

예수님이 가르친 후에 새 계명을 준다. 다른 제자는 귀에 안 들렸는데 요한은 잊지 않습니다.

13.보혜사 성령에 관한 말씀(14:25)다른 복음서에는 희미합니다.

14.포도나무 비유(15)

15.대제사장의 기도(17) 요한이 기도 들은지 60년이 지났는데 기억하고 있습니다.

16.도마의 신앙고백(20:28)

도마가 의심 많은 도마라고 하는데, 전혀 아니랍니다. 의심 한번 했답니다. 도마는 가장 성실한 사람입니다. 절대로 헤프게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잘못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향유를 부은 막달라 마리아 본 받아서 아니고 베다니 마리아입니다.

 

17.베드로의 사랑고백(21:15)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고백하고 베드로가 나는 고기잡으러 가노라 갔어요. 예수님이 그것 가지고는 안 되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씩 묻습니다.

 

이상의 기사는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특별한 기사입니다. 요한이 이런 것을 보충해서 기록했기 때문에 복음서 4권을 가지고 그릴 때 예수님의 그림이 나옵니다. 4복음서 전체를 원만하게 통적 적으로 볼 때 예수님이 그려집니다.

 

요한은 얼마나 눈매가 무서운지 가룟유다가 돈 훔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한은 무슨 시계를 가지고 있었는지 제6시라, 제9시라, 제10시라, 이런 것도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이 누워 자는데 가서 내가 부활하신 예수를 보았다 다른 제자들은 여자가 청승맞게 무슨 소리야 하는데 베드로와 요한은 스프링처럼 튀어서 달아납니다. 베드로는 20초 정도 걸리고 요한은 13초정도에 도착해서 무덤에 들어가지 않고 머리만 넣어서 살핍니다. 예수님을 쌓였던 수건은 발아래 있었다 하면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현장 보전을 합니다. 베드로는 늦게 와서 핑하고 들어가서 둘러보고 없다 가자 성격이 대조적입니다. 요한은 오면서 계속 뒤를 돌아보면서 오는데 베드로는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습니다.

 

베드로 같은 사람은 정신 병 걸리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말도 빠르고 생각, 행동, 늘 적극적인데 맞는 말은 거의 없습니다. 유일하게 3년 만에 하나 마쳤어요.“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한번 맞추었는데 그것도 예수님이 네가 안 것은 네 혈육이 아니고 내 아버지의 성령이 알려 주었지 그래서 너는 복이 있다.

 

베드로는 실수를 많이 하는데 기죽지 않습니다. 다음 실수하기 바빠서 기죽을 시간이 없어요. 그렇지만 예수님은 베드로를 좋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뒷 끝이 없고 마음이 편안 합니다. 완벽주의자, 결벽주의자, 인간관계 곤란 합니다. 베드로의 실수는 악의가 없고 실수를 많이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인정합니다. 대인 관계가 원만합니다.

 

요한복음 12장을 봅니다.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 나사로의 동네입니다.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가복음을 보면 나사로의집이 아니고 나사로의 동네인데 바리새인 시몬의 나병환자라 합니다.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1)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2)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 사건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건이기 때문에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는데 다른 제자들은 여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어떤 여자, 한 여자 하는데 요한은 여자의 이름을 마리아라 밝히고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이름을 밝히지 않고 한 여자, 어떤 여자 한 것은 다른 복음 서를 기록할 때는 마리아가 살아있을 때 같습니다. 요한이 기록할 당시는 마리아가 세상을 떠난 이후라 이름을 밝힌 것 같습니다.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가롯유다인데, 남이 하는 일들을 못 마땅해 할 때 의심, 시기, 질투, 가 문득 들 때 생각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영적인 훈련입니다. 우리 마음에 생각이 떨어질 때 온전하지 못한 생각은 빨리 지워버려야 합니다. 생각을 품으면 마귀가 부채질을 하다 불이 붙으면 온 인생을 불태워 버립니다.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에게 붙는데 돈으로 계산하면 300데나리온 장정의 1년 품삯입니다. 히브리인들은 354일이 일년 입니다. 안식일을 52번 빼고 명절을 빼면 300일 정도입니다. 장정의 일 년 연봉입니다. 사람이 사랑으로 한 것은 돈으로 계산하면 안 됩니다. 가롯 유다는 돈으로 계산하고, 마리아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했습니다.

 

마가, 누가복음서에 보면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일이 벌어졌는데 예수님이 나사로하고는 어릴때부터 친구가 되어서 예루살렘 오실 때 마다 호텔에 갈 형편이 못 되어서 예루살렘의 달동네, 나병 환자, 성병, 등. 전염되는 불가촉병들을 알고 있을 때 격리된 베다니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한국에도 한센스병 걸린 사람들이나환자 촌을 이루어 살고 있는데 옆집은 바리새인 시몬의 문등이 집이있고 멀지 않은 곳에 나사로의 집이 있는데 마르다는 오빠 병간호하고 마리아가 생계를 이어가는데 성경에는 베다니 마리아가 창녀라는 말은 없지만 바리새인 문등이가 여자에 대하여 기분 나빠 하면서 속으로 예수라는 선지자가 죄 많은 여자에게 발을 내어놓은 것을 보면 선지자가 아니잖아 하면서 기분 나빠 합니다.

 

예수님께서 문둥이 시몬에게 내가 네게 할 말이 있다 랍비여 말씀하소서! 한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었는데 한 사람은 오십만원을 빌리고 한 사람은 오천 만원을 빌렸어, 두 사람 다 갚을 능력이 없어서 탕감해 주었네 누가 더 감사하겠는가?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 더 감사하겠네요. 네 말이 옳도다.

 

예수님은 항상 네 말이 옳도다. 하십니다. 내가 말 한대로 이 여자는 죄가 많아, 많은 죄를 탕감 받아서 많이 감사하는 것이고, 너는 바리새인이기 때문에 조금 탕감 받았기에 조금 감사했어.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비싼 향유로 내 발을 씻기고 있다.

 

그때 사람들의 심성이 가롯유다는 돈으로 계산하고, 시몬은 죄많은 여자가 하는 눈초리로 보고,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은 그 마리아가 하는 행위를 좋게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향유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히브리 처녀들의 혼수감으로 중요합니다. 시집가서 첫 날 밤에 신랑의 머리에 한 방울 떨어Em린다음 보관하였다가 손님이 오거나 잔치를 할 때 손님에게 뿌려주고 나머지는 남편이 죽었을 때 시신을 씻어주는 소중한 것입니다.

 

마리아 오빠는 문등병이라 돈을 벌지 못하고 언니는 오빠 뒷바라지하고 마리아가 창녀로 일을 해서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오면서 저축하여 향유를 한 병 사 둔 것을 보면 자기도 시집을 가려고 마음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히브리 처녀들이 자기 신랑에게 하는 것을 마리아가 철이 들면서 시집은 무슨 시집 하면서 부담을 느끼던 중 예수님이 자기 집으로 오지 않고 옆에 있는 시몬의 집에서 잔치를 하는데 가서보니 예수님이 앉아 계신데 발 냄새 때문에 코를 들 수가 없습니다.

 

마리아가 그 냄새를 맡자마자 집으로 가서 향유를 가져다가, 마, 막 복음에는 머리에 붙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예수님의 발에 붙고, 머리에도 부었어요. 그리고 머리카락을 내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히브리인 들은 14세가 되면 머리카락을 신랑 외에는 보지 못합니다. 남자가 14세면 성년식을 통해서 미쉬나의 아들, 토라를 읽을 권리가 주어지고 여자는 14세면 시집갈 준비를 합니다. 그런 머리카락을 꺼내서 남자들 있는데서 예수님의 발을 씻기는 것은 심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못 마땅해서 예수가 네 신랑이냐 하면서 기분 나빠 합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6일 전이라 십자가가 다가오면서 고민을 하면서 나를 평안하게 하라 마음이 고민이 되어죽겠다. 할 때 마리아의 사랑이 남들은 추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많은 남자들이 스쳐지나가도 마음으로의 순정은 아무도 손대지 못한 체 간직되고 예수님을 보고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도 없고, 마리아는 예수님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바치고 다 했습니다. 자기 소원을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그런 것을 생각하셨다면 나사로의 집에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잠자러 오면 밥 차리겠습니다. 하면 아니다 내가 먹고 왔노라 안 드셨지만 예수님은 늘 부담주지 않으려고 하십니다. 잠을 자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셔서 밖에 볼일이 있노라 나가시고 그래서 예수님도 늘 배가 고프셨습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에 가서 과일이 달렸나 보셨는데 과일이 없어서 저주만 받았어요. 무화과나무는 잎이 무성하면 일년내 열매가 달리는 과일 나무입니다. (파김) 하루에 몇 개씩 열매가 열립니다. 나그네들에게는 더 이상의 과일 나무가 없습니다. 가을에 많이 열리는 것 보다 여름에 하나 둘 씩 열리는 무화가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 그때 무화과가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가운데 가롯 유다가 마리아가 하는 일도 못마땅하고 예수님이 하시는 일도 못 마땅해 하는데 그럴 때 마귀가 역사합니다. 늘 조심해야 합니다. 마귀가 들어가자 유다가 예수를 팔아 버릴 생각을 합니다.

 

13장2절입니다.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마리아와 예수님이 하는 일을 기뿐 나빠하는 유다마음에 마귀가 예수님 팔 생각을 집어넣었습니다. 예수님도 보고 계시면서,“너희 중에 한사람이 나를 팔려고 한다.”유다에게 하는 말인데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습니다. 이번 유월절은 결정적인 순간인데 예수님께서 배신자가 나온다고 하니까 제자들이 주여 접니까? 하는 것은 저는 아니죠? 하는 말입니다. 마지막 유다 랍비여 접니까 네가 말했다. 그래도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유다가 마지막까지 가지 않고 회개를 하도록 흰트를 많이 줍니다. 나와 빵 그릇에 손을 넣는 자가 나를 팔 것이다. 내가 빵을 한 조각을 집어주는 사람이 나를 팔 것이다 하면서 가롯 유다에게 주었습니다. 그래도 회개하지 않고 먹습니다. 마귀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나쁜 생각을 집어넣습니다. 털어버리면 되는데 생각이 들어오면 털어 내지를 못합니다.

 

우리 청소년들 감수성이 예민하고 분별력이 없을 때 별별 생각이 들어옵니다. 이런 것이 영적인 훈련인데 가르치지는 않고 아무 은사나 주시옵소서! 하면 마귀들의 난장판이 됩니다. 그래서 결국 가롯 유다가 조각을 받은 후 밖으로 나가니 밤이더라 예수님께서 피할 수 없고 막을 수 없어서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제자들은 그것을 유월절에 쓸 용품 사러 가는 줄 알았는데 유다는 자기 길로 갔습니다. 존 번연이 쓴 글에 보면 거룩한 전쟁 이라는 책을 썼는데 마귀가 끊임없이 사람들의 마음에 화전 불화살을 계속 쏘아댄다고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자라고 있는가 하나님의 생명의 진리의 말씀이 자라고 있는지 마귀의 생각이 자라고 있는지 검토해야 합니다.

 

성경도 모르면서 성경한 절 읽어 놓고 큐티하는 것 의미 없습니다. 잘 모르면 착각을 합니다. 안내하는 사람 없이 묵상 잘못하면 착각하기 쉽습니다. 선경 전체를 알고 나서 큐티를 해야지 알지 못하면 바른 지식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떤 프로그램보다 앞서 성경을 원만하게 가르쳐 놓고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오해와 편견이 잘 못되면 이단이 나올 수 있습니다.

 

13장 26절입니다.

26)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2)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이런 것이 영적분멸입니다.

 

13장 34절입니다.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예수님의 신자가 아닙니다. 제자의 증표가 사랑입니다. 최고의 법은 사랑이고 최고의 악이 미워하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것은 자기의 마음에서 존재를 지워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살인입니다. 예수님께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사랑은 살리는 것이고 미움은 죽이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계속 미워하면 영적으로 위험한 상태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미워하다가 나중에 죽이려고 합니다. 우리는 누구도 미워할 권리가 없습니다. 생명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랑할 의무만 있지 미워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많이 미워합니다.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없어졌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결단을 합니다. 나는 고기 잡으러 가노라 벳세다에서 예수님을 따라 같던 사람들이 돌아오니까 동네 사람들이 흉을 보았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가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벳세다 바닷가로 나와서 배를 띄우고, 그물을 던졌는데 한 마리도 잡히지 않습니다. 투덜대면서 던져도 한 마리도 잡히지 않습니다. 아마 예수님이 산 위에 앉아서 물고기보고 오른쪽 왼쫀 조종하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루 종일 해도 못 잡고 저녁 먹고 다시 던져도 잡히지 않습니다. 밤새도록 던져도 잡히지 않습니다. 15장에 포도나무 비유를 하시면서“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베드로가 다 잊어 버렸습니다. 아무리 던져도 잡히지 않습니다. 새벽이 되어서 춥고 허기도 지고 그물 던질 힘도 없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가까이 오셔서 예들아 고기가 있느냐? 베드로는 동네 아저씨인 줄 알고 안 잡히네요. 그때 배 오른편에 던져봐라, 베드로가 아무 말도 없이 그물을 던졌는데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혀서 그물을 당기다가 요한이 주님이시다. 하니까 베드로가 바로 옷을 주어입고 물속으로(헤엄) 뛰어 듭니다.

 

베드로는 지난날의 말실수 때문에 걱정하는 것 없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물고기 끌어올려 배에 싫고 도착은 비슷하게 했습니다. 새벽에 예수님께서 빵도 구어 놓고 잡은 고기 ?마리 가지고 오너라 할 때 다른 제자들은 그냥 지나치는데 요한은 물고기 숫자를 셉니다. 한 마리, 두 마리, 일백 쉰 세마리 정확하게 셉니다. 조반을 드신 후에 베드로보고 요한의아들 시몬아(페트로스, 게바 반석으로 이름을 바꾸어 줌) 다시 시몬으로 돌아왔어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듣고 싶은 말이 내가 주를 사랑하노라 듣고 싶었는데 배드로가 자신이 없어요.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대답 하지 못하고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세 번씩이나 묻습니다. 내양을 먹이라, 내양은 예수님 피 값으로 사신 양을 먹이라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물고기 잡으러 간 베드로에게 맡기셨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베드로를 돌려놓고 야고보에게 내양을 치라 하면 다음 주 베드로는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고 맡겨서 베드로가 일을 하게 합니다. 베드로가 평생에 나는 나약한 지도자입니다. 옛날에는 담대하던 사람인데 그 날 이후로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일평생 새벽에 닭도 울고 자기고 울고 평생을 회개하며 겸손하고, 온유하게 살았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을 박해했던 사람들이 교회를 나오지 못하고 집에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심방을 가도 위로가 안 되는데 베드로가 가면 위로가 됩니다. 여러분 나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나를 찾아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고, 주님이 피 값으로 사신 양을 나에게 맡기셨습니다. 형제여 일어나십시오. 하면 다 일어나서 힘을 얻고 다시 새 삶을 살아갑니다.

 

요한복음 속에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나중에 요한1서를 쓸때는 사랑으로 가득차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의 성격이 얼마나 불같은지 이름이 (우뢰의 아들, 보아너게)입니다. 이런 불같은 사람이었는데 불같고 뜨거운 성품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요한은 인물묘사를 간단하게 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성품이 보입니다.

 

한번은 나사로가 병들었다고 마르다 마리아가 연락이 왔어요. 안 가다가 다시 예수님이 유대로 가자하니까 제자들이 방금 유대에서 잡아 죽이려고 하였는데 다시 가십니까? 예수님이 내 형제 나사로가 잠들었다. 잠들었으면 깨겠지요. 잠든 것이 아니라 죽었다. 나사로를 깨우러가자. 도마가 있다가“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가자.”도마의 성품이 보입니다.

 

빌립도 재미있게 묘사합니다. 벳세다 들판에 남자만 5,000명 정도 되는데 여자도 5.000명 아이들 10,000명 정도 빌립보고 이들이 먹으려면 얼마나 되겠는가 하니까 빌립은 금방 계산이 나옵니다. 주여 조금씩 주더라도 200데나리온은 듭니다. 빌립은 어릴 때 가난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항상 부족합니다. 이왕이면 주여 배불리 먹이려면 500데나리온이 듭니다.

 

예수님이 옹기종기 모아 놓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이시고 12광주리 남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예수님이 지나갑니다. 이런 수련 과정을 거치면서 훈련을 합니다.

 

요한은 눈치가 있어서 왜 빌립에게 시험을 하시는지 다 압니다. 이런 이야기도 복음서에 간략하게 기록하지만 예수님의 의향과 빌립에게도 자존심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보입니다. 제자들이 실수 하는 것이 많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실수를 많이 하는 데 길을 가다가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서 비벼 후 불었습니다. 그런 것을 바라보는 바리새인들이 있습니다.

 

안식일 날 밀이삭을 잘라서 먹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밀 이삭을 잘라서 비비는 것은 노동입니다. 성전으로 들어가는데 성전세 받는 사람들이 딴지를 겁니다. 성전세를 왜 안내느냐 내겠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성전세를 받을 때 아들에게 받나 타인에게 받나, 타인에게 받습니다. 그런데 네가 말을 해서 어쩔 수 없어 가서 고기를 낚아서 입을 벌리면 한 세겔이 나올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반 세겔은 네 것 반세겔은 내 것으로 성전 세를 내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끔찍하게 감싸고돕니다.

 

마지막 잡히실 때도 제자들 다 보내고 예수님 혼자서 잡혀 가십니다. 요한은 이것을 해석하면서 내게 주신자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았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하셨다. 제자들을 끝까지 감싸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도마는 의심 많은 사람이 아니고 훌륭한 사도였는데, 서양에서는 가장 신실하고 견고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 토마스라고 인정을 합니다. AD. 64년 정도에 예루살렘교회는 없어지고 사도 몇 명만 남았습니다. 사도들이 제비를 뽑아서 각 나라로 나가자. 제비를 뽑았습니다. 도마는 제비를 뽑아서 펴지를 않습니다. 나는 히브리인이다 내가 어떻게 인디아로 가겠느냐 안 간답니다.

 

그날 저녁에 꿈인지, 환상중에 도마야 나의 은혜가 너와 함께 하니까 인디아로 가라 도마의 대답이 주여 주께서 가라시면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하지만 인디아는 가지 않겠습니다. 예수님도 도마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혼내지 않고 넘어 갑니다. 어른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튼 날 예수님이 어떤 사람하고 흥정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도에서 온 군타포로스라는 인도의 왕이 팔레스타인 쪽으로 목수를 구하러 보냈는데, 아바네스라는 상인이 예수님하고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인도의 쿤타포로스왕이 아바네스보고 목수를 찾는데 숙련공을 찾았으면 좋겠다. 예수님이 내 소유로 된 노예가 있는데 목수의 숙련공이다. 계약을 씁니다.

 

도마에게로 와서 인도의 아바네스 상인이 도마보고 턱으로 네 주인이 맞나 맞다 오늘부로 내가 너를 샀다. 도마가 무릎을 꿇고 주여 내가 인디아로 가겠나이다. 인사를 하고 보니까 예수님이 없어 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손에 들렸던 돈 주머니가 도마의 손에 들려 있고 아바네스 상인밖에 없어서 할 수 없이 인디아로 갑니다.

 

도마가 인도에가서 쿤타포로스왕을 만나서 왕궁건축을 하려고 하는데 설계도를 그려오라고 도마가 설계를 그려서 오니까 설계 변경하지 말고 이대로 건축하라,

 

 

사복음서 끝 1, 마태 / 2, 마가 / 3, 누가 / 4, 요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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