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부처의 보폭을 아느냐
홍 사
아버지는 지금쯤 비아그라를 드셨을까?
꽁지머리가 얘기하던 탐진치, 그 심오한 불가의 영역을 더듬던 내 뇌리는 기어이 그 한 알의 비아그라에 주파수를 맞추고 있었다. 여태 아궁이 앞에 마주 앉아 탐진치에 대해서 거품을 물던 꽁지머리가 가마솥에 데울 물을 가지러 간 사이, 편지봉투에 담아 아버지 방의 문갑 위에 슬쩍 얹어둔 한 알의 비아그라를 더듬었다.
여섯 시 이십 분.
아버지가 비아그라를 드시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일 게다.
길을 떠나도 늘상 지고 다니던 그 무엇이 있었다.
절을 나서는 중의 등어리에 붙은 바랑처럼, 길을 나설 때마다 내 등짝 어디에쯤 붙어있는 그것은 가끔씩 목을 옥죄고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곤 했다.
아내에게 툭 털어놓고 상의할 수도 없고 어버지께 가능하겠냐고 여쭐 수도 없는 그 짠한 무엇이 있긴 한데, 하여간 오늘은 걸망처럼 지고 다니던 그 무엇을 벗었노라고 누차 속으로 되뇌고 새김질하여 최면 비슷한 것을 걸어두어서 싹 잊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결국 그 비아그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말을 이렇게 빙빙 돌리는 건 나의 방식이 아니다. 단칼에 푸욱 쑤셔 말하자면 나는 아버지를 오입시켜드리지 못해 환장한 놈이고, 오늘이 생신이니까 일흔을 딱 일 년 앞 둔 나의 아버지는 오늘 뜻하지 않은 오입을 하기로 되어있는 날이다. 아니, 뜻하지 않은 오입을 하시게끔 되어 있는 날이다.
내가 쥐고 앉은 리모콘으로 모든 체널을 그렇게 맞추어 놓았다. 정례 씨는 나의 그런 계획을 듣고 효도 중에서 으뜸이라고 했지만 효도는 둘째치고 내가 아버지의 우울증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 나의 자유를 위해 아버지는 오늘밤 오입을 하셔야 하는 것이다.
산중의 밤은 일찍 찾아온다.
사위에 어둠이 조금씩 깔리자 아궁이 속의 숯이 더욱 붉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깔고 앉은 톱밥과 대팻밥을 한 줌 집어 아궁이 깊숙이 던져 넣었다. 장작의 열기는 이내 톱밥으로 옮겨붙어 불꽃을 일구고 있었다.
지금쯤 상주에서 진석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녀석이 학원 강의를 끝낼 동안, 무료한 시간을 떼울겸 잠시 다녀오겠다고 맘을 먹고 말도 없이 찾은 중궁암인데 나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걸음을 지체하고 있는 것이다.
중궁암 아래에 이런 오두막집이 있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중궁암이 있는 이 골짜기는 두어 차례 와 본 적이 있지만 이 오두막은 본 적이 없었다. 집의 형체나 구조로 보아 최근에 지어진 집은 아니고 옛날부터 있던 집을 조금 보수하여 들어앉은 것이다. 하긴, 무성했던 여름 아카시아와 더불어 오두막에 울타리 삼아 쳐진 뽕나무와 대나무에 가려서 눈길이 머물지 못했을 수도 있는 것이고 또 중궁암을 보듬고 있는 노악산의 자태에 눈이 빼앗겨 무심히 흘려버렸을 수도 있었겠지만 삽작어귀에 서있는 목장승은 지나가는 눈길로 그냥 흘려버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예사롭지가 않다는 얘기다.
이 오두막 삽작에는 대문이 없었다. 대신, 일곱 살짜리 머슴애의 키만한 목장승 하나가 삽작에 서서 지나치게 큰 눈알을 굴리며 서 있었다. 세월을 더께가 내려앉지 못한 근작이지만 남장사 입구의 돌장승과 크기와 모양새, 웃는 모습까지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한 눈에 보아도 보통 솜씨는 아니다. 투박하면서 친근한 모양새와 욕심이 없어 보이는 미소, 머리통이 지나치게 커서 익살스런 균형미, 남장사 입구의 석장승과 흡사했다. 돌의 재질이 나무로 바뀌지 않았다면 남장사 입구의 장승을 업어다 놓은 것이라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그 장승이 나를 삽작 안으로 불러 넣은 것이다.
그렇다. 장승과 눈을 맞추다가 큰 눈을 부라리며 잠시 쉬어 가라는 친근한 눈빛을 읽었다. 나무로 만든 눈동자의 눈빛을 읽었다니 가당찮지만 나는 과장되게 팔을 벌려 장승을 한 번 보듬어 주고 삽작을 들어섰다.
삽작을 들어서서야 오두막은 조각가가 작업을 위해 구입한 집이란 걸 알 수가 있었다. 작은 마당과 뜨락에는 온통 깎다가 둔 장승과 괴목을 이용한 목각들이 늘려 있었다. 주인인 듯한 사내가 마당 귀퉁이 작업대로 돌아서서 사포질을 하고 있었고 작업대 다리에 덜미가 묶인 검정 강아지 한 마리가 삽작을 들어선 길손을 향해 짖고 있었다.
웬 꽁지머리?
마당으로 들어섰을 때 꽁지머리의 사내는 헐렁한 청바지에 티셔츠를 걸친 채 통나무로 깎아 만든 거북이의 등을 사포로 문지르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자기 작품에 대해서 고집스런 데가 있는 작자란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좀 기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예술가들이란 대부분 그렇다. 독창성에는 완벽할지라도 공감대를 형성에는 젬병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작자에게 먹혀 들어가는, 듣기 좋은 인사법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작품들이 참 좋습니다.
내가 뜨락과 마당의 목각들을 찬찬히 훑어보는 사이, 건성으로 인사를 받은 꽁지머리는 작업대 밑의 에어콤프에서 밸브를 열어 자신의 바짓가랑이와 머리에 묻은 나뭇조각과 먼지를 날리고는 아궁이 앞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비집고 앉을 자리를 비워두고.
군불을 지피며 나눈 꽁지머리와의 대화는 아궁이 속의 마른 장작에 붙은 불처럼 쉽게 타올랐다.
아내의 전화를 재차 받은 건 중궁암으로 오르는 산길이었다.
겨우 두 사람이 비켜가기에도 빠듯할 정도의 좁은 길이었고 산사로 오르는 길이라기 보다는 등산로라고 해야 마땅할 정도의 급경사 길이었다. 당연히 숨은 턱까지 차 올라 헉헉거리며 뒷주머니의 휴대전화를 빼어 들었다.
오늘이 아버님 생신인데 정말 그래도 되는 거예요?
안성까지 가서 닷새 연수를 받았으니 예산으로 옮겨 앉은 친정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오라고 두어 시간 전, 상주로 향하는 핸들을 잡고 통화를 했는데 무엇이 미심쩍은지 꼬치꼬치 물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아하! 괜찮다니까, 자꾸 그러네? 어제 숙경이가 김서방하고 와서 자구 갔구 아침에 미역국을 자셨다니까, 맘 푹 놓고 하룻밤 자구 와! 날씨가 추워지는데 장모님께 스웨타라도 하나 사 드리고....
아가씨야 딸자식이고, 나는 며느린데 이러다가 아버님한테 미운 털 박히는 거 아닌가 몰러....
허 거 참, 되게 말이 많네, 아버지도 자유가 필요한 거야. 자네가 시집살이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를 구속하고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나? 아버지의 생신 선물로 자유를 드리는 거라구.
당신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내가 뭘 아버님을 구속한다구?
입장을 뒤집어 생각해 보라구. 우리 이뿐 며느리가 밥상 차려놓고 기다릴텐데, 일찍 들어가지 않으면 직장생활을 하는 우리 며느리가 자지 않고 기다릴텐데, 그런 마음이 항상 아버지를 구속하고 있을지도 모르잖어.
이 양반이 웃기는 소릴하고 계셔! 아버지의 자유를 빙자해서 당신 딴짓하려는 거 아냐?
내가 딴 짓거리할 게 뭐가 있어?
어떻게 알어? 옛날 애인을 만난다거나, 아니면 다른 데 가서 바람을 핀다거나, 하여튼, 닷새를 못 봤는데 나 보고 싶어하는 눈치가 아니잖어?
내가 그랬나? 하여튼 이 여편네가 눈치는 빨라 가지구, 오늘은 옛날 애인도 만나야 되구, 바람도 펴야하니까, 그리 알구 자고 오라구!
됐어, 됐구! 아버님께서 서운한 맘을 가지시면 그건 순전히 당신 책임이야. 알았지?
아내의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일단 아내는 안심이다. 예산에 도착한 모양인데 맘이 바뀌더라도 대구까지 오늘 내려오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어차피 아버지는 서운한 맘을 가지실 리가 없다. 일주일간의 연수라고 했으니 아버진 아내의 연수가 토요일에 끝나는 줄로 알고 계시니까.
꽁지머리.
이런 산중에서 말동무가 그리웠던 탓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꽁지머리는 자신의 생각을 입술 안에 가둘 줄 아는 과묵한 인물은 결코 아니었다. 덕분에 처음 만나는 인물이었지만 참으로 많은 얘기들이 진지하게 오갔다
중궁암에서 내려오던 길이라는 얘기 끝에 골목에 서 있는 목장승의 얘기가 나왔고 그 끝을 물고 나도 잘 모르는 탐진치를 들먹였다. 우리는 벌써 한 시간 가까이 아궁이 앞에서 장작을 지피며 얘기를 주고받았다. 탐진치에 대한 얘기는 내 입에서 먼저 풀었지만 꽁지머리가 늘 이야기를 하는 쪽이었고 나는 듣는 쪽이었다. 마흔이 가까워 오는 나이, 나이로는 나와 엇비슷해 보이는 꽁지머리의 사내. 상주에서 진석이가 기다리고 있을 터이지만 들을수록 기이하게 여겨지는 그의 말들이 호기로워 선뜻 자리를 털지 못하고 있었다.
꽁지머리는 한 양동이의 물을 길어와 익숙한 손놀림으로 가마솥에 붓고 뒤란으로 돌아가더니 통나무로 깎아 만든 작은 함지박에 생고구마 네댓 개를 담아왔다. 나의 눈길은 고구마보다 그것을 담아온 함지박에 머물고 있었다.
이것도 직접 만든 것입니까?
끌 자국이 선명하여 조금 투박해 보이는 통나무 함지박을 손으로 쓸어보면서 물었다.
이거 장승을 깎다가 남은 대추나문데 자투리라도 버리기가 아까워 이런 것들을 만들어 쓰지요. 목질이 야물기로는 이만한 게 없거든요.
아궁이의 사위어 가는 장작 숯에 고구마를 얹으며 꽁지머리가 대답을 했고 나는 인사투로 지극히 환경 친화적이라는 찬사를 잊지 않았다.
노릇하게 익어 가는 고구마를 뒤적이며 꽁지머리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탐진치로 이어졌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모든 욕망을 버리면 세상이 달라져 보인다는 말을 주워 섬기던 꽁지머리의 말을 내가 잘랐다.
듣다보니, 불교에 조예가 상당히 깊어 보입니다.
그래요? 제 법명이 만공입니다. 법랍은 겨우 기어다니는 두 살이지요.
이게 무슨 소린가? 그럼 이 마주 앉은 작자가 중이란 말인가? 내가 아는 한, 법명이야 계를 받은 속인도 가질 수가 있지만 법랍이란 승으로 출가한 나이를 말하는 것이거늘, 그렇다면 꽁지머리는 출가를 한 승려란 얘긴데 어디를 봐도 전혀 중 같아 보이지는 않는 것이었다. 목덜미까지 길러 뒤로 불끈 동여맨 꽁지머리하며 경을 외기는커녕, 헐렁한 티셔츠에 청바지를 걸치고 목각을 깎는데 법랍이라니 가당찮은 일이다.
그럼 출가한 승려란 말씀입니까?
꽁지머리는 놀라는 내 말에 아궁이의 뜨거운 고구마를 꺼내고는 반을 분질러 내 앞으로 건네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출가란 게 따로 있나요? 속세와 연을 끊으면 그게 출가지요.
어지간히 질긴 선문답이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무슨 얘긴지 모르겠지만 불교를 잘못 이해하면 땡초가 되기 십상이라는 생각과 이 작자도 까딱하다간, 아니 이미 불교의 심오한 텃밭에 땡초의 씨앗을 뿌린 작자가 아닌가 의심이 갔다.
만공이라구? 꽁지머리는 분명히 자신의 법명이 만공이라고 했다. 만공은 경허선사의 제자로서 수덕사에서 비구니 일엽과 법희를 키워낸 구 척 거구의 선사다. 내가 아는 바로는 청산리전투로 유명한 김좌진 장군이 청년시절에 만공을 찾아가 힘 겨루기를 요청해 팔씨름으로 받아주었는데 팽팽한 대립에 한나절을 소요하다가 김좌진 청년이 '선사님, 제가 졌습니다' 며 삼배를 올리자 '이긴 사람이 없으니 진 사람도 없다' 라고 말하며 '평상심이 도'라는 법어를 남긴 선사다.
그러고 보니 만공선사와 저 꽁지머리가 닮은 게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만공선사도 참선 때면 삼 년이고 사 년이고 머리를 길러서 유발선사로 불리기도 한 기인이니까.
속세와 연을 끊는 게 출가다? 지극히 맞는 말이고, 생각해 보니 그 정도의 선문답이라면 풀이하기에 질긴 것이 아니라 나도 그 정도의 선문답쯤은 꼬아서 뱉을 수가 있다.
바로 오늘 아침에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사이버카페에 들어가서 선문답을 남기지 않았던가. 너희가 부처의 보폭을 아느냐고,
그 카페는 회원이 겨우 오십 여명 남짓한 독서 동아리의 모임이고 대부분 얼굴을 알고 있는 사이다. 게시판에 누가 글을 올리는데 동문서답을 하더라도 그 의도를 단박에 알아차리는 지극히 익명성이 얕은 사이버 공간이다. 나는 필요에 의해서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혹시라도 저녁에 어느 작자가 집으로 나를 찾는 전화라도 넣을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에서 전화 차단 프로그램을 깔아둘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어느 술 취한 작자가 '한 잔을 걸치고 나니 울컥, 행님이 보고즈브 죽겄으니 술값을 거머쥐고 붕알에 요령소리 나도록 뛰어 오라'는 전화가 오밤중에 걸려 와 아버지의 밤이 안녕하시지 못한다면 그건 순전히 치밀하지 못했던 나의 실수에 해당되는 것이고 그 실수는 곧 불효로 연결되는 것이다. 하여, 카페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겨두었다.
[ 낼이 토욜이다. 나 시방 어디를 가고저 한다.
아무도 따르지 말라.
부처의 보폭으로 물과 바람과 대오를 맞추고 싶을 뿐이다.
살구꽃 가루만 뿌려주어도 저 혼자 키들거리는 범부들아!
꽃내음을 맡는 꽃나비를 쫒지마라.
앞으로 사흘 간, 나의 도반은 그저 흐르는 물과 스치는 바람소리일 뿐이다.
그대들은 숏다리. 어찌 부처의 보폭을 알겠는고? ]
말문이 막히면 그런 선문답 같은, 씌잘데 없는 글을 가끔씩 올리던 나였으니 동아리 회원들은 내가 그저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고 최소한 사흘은 집으로 전화를 넣지 않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꽁지머리가 법랍으로 두 살이라니, 믿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오두막은 절 집이 되는 셈인데. 가려운 곳은 긁지 않고 못 배기는 인물이 바로 내가 아니던가. 나는 기어이 걸고 넘어졌다
그럼 제가 지금 조각가의 작업실이 아니라 경내에 들어와 있는 겁니까?
일체유심조라고 했지요. 모든 것이 맘먹기에 달린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법랍으로 두 살이라면 지금 한창 공부할 때가 아닌가요?
내가 그렇게 걸고넘어진 것은 도를 통한 척 하는 땡초들의 시건방이 그대에게도 묻어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
도를 챙기기에 급급한 것도 탐욕 가운데 하나지요. 평상심이 바로 도입니다.
만공의 법어인데, 어찌 들어보면 꽁지머리가 이미 도를 통한 것같기도 한데 그 말을 듣고 보니 할 말이 궁해졌다.
일찍 찾아든 산골의 어둠은 오두막을 완연히 감싸 앉았다. 차를 주차 시켜놓은 남장사 주차장까지 더듬고 내려 가야할 자갈길이 은근히 걱정되었지만 아궁이에 눈길을 준 채 쥐고있던 고구마를 삼키고서야 말문을 열었다.
이 년만에 어떻게 평상심이 도라는 걸 깨치셨습니까? 다른 선사들은 제가 알기로는 면벽 십 년이라야 깨칠 수 있는 법문인 듯 싶은데요.
처사님도 오늘 하루만 하면 반은 깨치시게 됩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나는 히죽 웃고 말았다.
하룻밤에 반을 깨치다니 그건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땡초의 법문인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어떻게 도를 깨치나? 만약 하룻밤 사이에 도를 반을 깨칠 수가 있다면 이 세상에 도인이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긴 아버지는 오늘 하룻밤에 반을 깨칠 수도 있겠다. 세상이 아직은 살만한 곳이라는 깨달음에 대하여, 그러고 보니 꽁지머리의 말도 영판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가 없다.
꽁지머리의 뒷말을 귓전에서 흘려들으며 나는 아버지의 흰머리를 떠올렸다.
아버지, 긴장되는 순간이 있으면 드시라구요.
편지봉투에 담은 한 알의 약을 아버지의 방, 텔레비전 옆의 문갑 위에 슬쩍 얹어 두고 돌아설 때, 얕은 낮잠에서 깨신 아버지가 흰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등산복으로 바꿔입은 나와 문갑 위의 봉투를 번갈아 보셨다. 아버지의 눈길에서 그게 무엇이냐? 그리고 어디 가려고? 하는 두 가지의 물음을 넘겨짚었던가.
저어.... 지금 상주에 가려고요. 진석이와 내일 새벽에 산행을 하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상주에서 자얄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내일 연수를 마치니까, 아무래도 저녁은 아버지가 찾아서 드셔야겠어요. 밥은 전기밥솥에 있구요 냉장고에 곰국이 있으니 가스렌지에 데워서....
묻지도 않는 말을 주절거리며 미주알고주알 챙기는 말문을 아버지는 한 마디로 잘랐다.
알았다. 대충하고 댕겨오너라.
그리고 아버지, 저 약은 긴장되는 순간이 있으면 드시라구요. 신경안정젭니다. 맘이 울렁거릴 때 자시면 착 가라앉을 겁니다.
방문을 나서며 우울증으로 인해 현저히 말수가 적어진 아버지께 약의 대해서 다시 언질을 박아 두었다. 물론 아버지가 깨지 않으셨다면 상주로 향하는 차안에서 전화로 전할 말이었지만 아버지가 깨어나신 참에 약의 효능과 복용 법에 대해서도 틀어놓은 것이다.
그 사람. 아내를 두고 '그 사람'이라고 명명했다. 아버지 앞에서 아내를 지칭할 호칭이 마땅찮았다. 하여, 나는 '그 사람'이라고 명명하고 있지만 그게 또 아버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당연히 아버지 앞에서는 '누구에미'라고 당신의 며느리를 가리켜야 할 터이지만 애석하게도 '그 사람'은 '누구에미'라고 불러 줄 당신의 손주, '누구'를 잉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꼭 집어 말씀하신 적은 없지만 아버지는 손주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지나가는 소리로 밥상머리에서 누구 손주는 이번에 어느 대학 정치외교과에 붙었다더라 하고 말씀하시면 아내는 그저 고개를 떨굴 뿐이다. 벌써 결혼 구 년 째이다. 아내의 직장생활로 아버지는 우리가 피임을 하고 있는 줄로 알고 계시겠지만 그건 결코 아니다.
마음을 열고 몸을 열어야지!
나를 받아들이는 아내의 몸이 어딘가 모르게 폐쇄되었다는 걸 느끼면서 아내에게 마음까지 열어줄 것을 종용하곤 했다. 그러나 아내는 마음은 고사하고 열어주고 있던 몸까지 여미며 말하는 것이다.
조용조용히 하세요. 아버님 방까지 다 들려요.
나는 번번히 종족번식에 실패하면서 방음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업자가 날림으로 지은 한옥이 못마땅했다. 이삼 년 후부터 방사 중에는 언제나 텔레비전이나 시디를 볼륨을 높여두고 치렀지만 아내의 마음이 열리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평소에 잘 듣지도 않던 음악을 켜두면 아버님께서 이상하게 생각하실 거 아녜요?
성은 신성한 거야! 드러낼 수 있는 떳떳한 거라구?
그래도 바로 건넌방에서 아버님은 혼자 주무시는데 미안하잖아?
집에서는 도저히 안되겠다는 심정이 굳어지자 나는 밖에서 하나를 만들어 오자는 심산으로 부부동반 계모임이나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호텔이나 교외의 모텔로 아내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래도 폐쇄된 듯한 아내의 관로에 소식이 없기는 매일반이었다.
땅심이 시원찮은가? 외풍이 심하다는 이유를 빙자하여 한옥을 처분하고 아파트로 옮길 때 나는 빈 아파트의 문을 닫아 걸고 괜히 헛기침을 해대며 아파트가 얼마나 방음이 완벽한가 그것부터 살폈다.
확실히 방과 방 사이의 방음은 아파트가 월등했지만 종족번식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고 오히려 아버지의 행동반경만 축소시키는 꼴이 되었다. 그래도 대신동의 한옥에 살 적에는 주위에 친구분들도 많고 나다니실 데가 더러 있었건만 아파트의 경로당이란 아버지께서 지닌 노인 우울증을 해소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질 못하고 집에서 비디오나 한의서로 끼니와 끼니 사이를 이으시곤 하는 것이었다.
귓전에 흘려듣던 꽁지머리의 말을 내가 비웃었던가. 꽁지머리는 정색을 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하룻밤에 반을 깨친다는 일이 결코 웃을 일만은 아니고, 무욕입니다. 욕심을 버리면 반은 깨친 겁니다. 욕심이란 본성이지만 하룻밤에 버릴 수도 있지요. 하룻밤 사이에 세상을 버릴 수도 있는데 까짓, 욕심인들 못 버립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도를 깨치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나는 주머니의 담배를 꺼내 꽁지머리에게 권하면서 물었고 꽁지머리는 자신이 출가했다고 했음에도 담배를 사양하는 일 없이 받아서 아궁이의 장작 숯에 불을 붙여 한 모금 빨고는 담배연기와 함께 듣기에 솔깃한 말을 뱉었다.
말 난 김에, 처사님이 한 번 시험 해 보시렵니까? 심장이 조금 강해야 하는 일이지만....
심장이 조금 강해야 한다? 무슨 엽기적인 일인지 모르지만 호기로웠다.
어떻게 하는 건데요?
한 번 죽었다가 깨어나는 겁니다. 죽음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숨을 쉰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깨어나면 그 다음 생은 완전히 덤으로 여겨져 욕심을 버리게 되지요
꽁지머리는 담배를 꽂은 손으로 뒤란의 대숲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대나무 밭에 제가 파 둔 토굴이 있습니다. 그 토굴 안에는 제 손으로 직접 깎아 만든 목관木棺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하룻밤을 자는 거지요. 웬만한 호텔 침대보다는 푸근할 거고 내일 아침이면 세상이 달라져 보일 겁니다. 아마도 무욕의 경지에 다다를 걸요?
그러면 내일부터 저도 법랍으로 나이를 계산해도 되는 겁니까?
욕심을 얼마나 버리나 깨우치는 걸 봐서요.
만약 못 깨어나고 영원히 잠이 들면 어떻하죠?
농담반 진담반으로 물었는데 꽁지머리는 그런 질문이야 수도 없이 받았다는 듯이 태연히 대답했다.
열반하신 줄 알고 토굴을 내려앉혀 드리겠습니다. 덤으로, 비록 나무지만 묘비 하나를 깎아 세워 드리지요. 저게 제 주특기가 아닙니까?
꽁지머리가 가리킨 처마 밑과 봉당의 벽에는 돋을새김으로 된 현판이 몇 개나 걸려 있었다. 절간의 기둥에 걸려있을 법한 흘림체의 현판들이 걸려 있었다. 작업대 다리에 묶여 있다가 풀린 강아지가 낯이 익었는지 꼬리를 살레살레 흔들며 아궁이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제 주인과 한동안 대화를 나누는 걸 보았음인지 적대감을 누르고 꼬리까지 살랑거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고구마 껍질을 강아지에게 던져 주었다.
색다른 경험이라 호기로웠다. 상주에서 학원강의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을 진석이가 맘에 걸렸지만 나는 그러겠노라고 흔쾌히 대답하면서 한 가지 토를 달았다.
열반에 들기 전에 전화를 한 통화해도 되겠지요? 유언을 해얄 거 아닙니까?
꽁지머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나는 자리를 털고 삽작으로 나와 목장승의 면상에 허리를 기대고 섰다. 그리고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정례 씨의 핸드폰 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서너번 간 다음에 호출했던 상대의 목소리가 무선으로 날아왔다.
정례 씨! 저.... 효자놈 입니다. 지금 가시는 길입니까?
아! 효자님. 아니 효자놈께서 걱정 마시라니까 자꾸 전활하고 그러능교? 지금 택시에서 막 내렸어요.
정례 씨의 목소리와 함께 도심의 분주한 차량의 소음이 날아들었다.
아니, 걱정이 되어서.... 황실 아파트 107동 304호입니다. 실수하시지 말라고....
걱정 마시라니까요, 쪽지에 적어서 찾아가는 겁니다. 그건 그렇고 어르신 출타하신 건 아니겠지요?
아, 걱정 마세요. 제가 이곳으로 오면서 혹시 저녁에 손님이 오실 지 모른다고 집 비우지 마시라고 전활 드렸어요. 그리고 내일 아버지 얼굴빛을 봐서.... 단골이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고객관리 잘 하세요.
호탕한 내 웃음에 정례 씨는 사십대 초반의 걸걸한 목소리로 토를 달았다.
적선 삼아 효자놈을 한 번 봐 드리려고 했는데 참말로 걱정되네요. 수틀리면 오늘밤에 어르신을 아주 보내드리는 수가 있어요.
내가 조정해 놓은 리모콘에 의해서 모두들 잘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정례. 저 정도의 여자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그 여자를 찍은 것은 지난 여름이었다. 그 날은 고등학교 동기들 중에서 나를 포함하여 대구에 적을 두고 있는 여덟 명의 계모임이 있는 날이다.
그날따라 부부동반으로 모인 동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꼭히 정기모임이 아니더라도 끼리끼리 더러 만나는 동기들이라 술이 과하면 아내들을 불러 거리낌없이, 이 차를 한 다음에 아내로 하여금 대리운전을 시키는 작자들이 더러 있는 모임인데 약속이나 한 듯이 단 한 명도 부인을 대동한 작자가 없는 날이었다. 갈비집에서 계모임을 마치고 두세 명이 빠졌지만 우리가 이 차를 거쳐 삼 차로 찾은 곳은 가요방이었다.
누군가가 사내들만이 붕알을 흔들면서 놀기가 맹숭하다는 말로 주인을 불러 서너 명의 여자를 불러달라고 청했는데 정례 씨가 그 곳에 끼어 온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조달했는지 여자들은 한결같이 우리들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한 눈에 보아도 우리들보다 나이가 일고여덟 살은 많아 보이는 정례 씨가 그 날 밤 나의 파트너였고 분위기를 살리자며 짧은 치마를 가장 먼저 걷어올린 여자 또한 정례 씨였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그녀는 이미 팬티를 입지 않은 알궁둥이였던 것이다. 그녀의 나잇살을 속일 수 없는 알궁둥이를 힐끔거리며 그녀가 살리고자 했던 분위기는 고사하고 나는 오히려 더욱 침울한 분위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취중이었지만 그녀의 알궁둥이를 관망한다는 것이 죄책감으로 이어졌고 아버지에게도 그런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자유를 드리고 싶어진 것이다.
나는 슬그머니 그 방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는 가요방 계산대 앞의 쇼파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고 어머니와 사별하신 지 십 일년이 지난 아버지의 외로움 투성이었을 밤을 떠올렸다. 아버지의 외로움, 그것이 그 날 밤 나에겐 이기지 못할 무게로 실리고 있었다.
담배를 다 피고서도 한동안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 방으로 들어가더라도 쉽게 분위기에 희석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으로 빨리 술자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눈을 지그시 감고 앉아 있었다.
왜? 안 들어오세요?
들어오지 않는 파트너를 찾아 나선 정례 씨가 내 팔을 흔들고 있었다.
잠깐, 얘기 좀 할까요?
나는 정례 씨를 올려다보며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가 주저하는 사이 비어있는 다른 방으로 그녀를 밀어 넣었다. 내 마음만큼이나 조도가 낮은 그 방에서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것들을 솔직하게 덜어 보였다. 혼자 계시는 아버지가 맘에 걸려 분위기에 편승되지 못하겠다고.
간단하잖아요? 아버지를 가끔씩 오입시켜 드리세요. 효도 중에 으뜸이 아닌가요.
정말 간단한 대답이었다.
오입이란 말이 그렇게 신선하게 들리기는 처음이었고 그렇게 얘기하면 오입이란 말이 효도라는 단어와 나란히 앉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저어기 놀랐다. 정례 씨의 말처럼 간단하긴 한데 상대를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사면되잖아요? 저한테 연락하세요. 제가 구해드리죠. 정 안되면 내가 대신 뛰어도 되구.
그녀의 전화번호까지 받아든 나는 유쾌해 질 수가 있었다. 그 날 밤 정례 씨는 나를 두고 '이상한 곳까지 챙기는 못돼 먹은 효자놈'이라고 친구들 앞에서 명명했다.
그렇다. 나는 못돼 먹은 효자놈인 것이다.
그 못돼 먹은 효자놈은 정례 씨와 서너 번의 통화를 한 적이 있었고 오늘 오전, 컴퓨터 앞에 앉아 정례 씨의 계좌로 얼마의 금액을 처넣고 엔터키를 눌렀다.
뒤란을 돌아서자 대밭으로 난 오솔길이 있었다.
드리워진 대나무를 젖히며 후레쉬를 든 꽁지머리가 앞장을 섰고 내 뒤에는 검정 강아지가 따랐다. 사람이 그리웠던 탓인지 산골 강아지는 자꾸만 내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졌다. 오솔길로 드리워진 대나무 줄기를 젖히며 얕은 언덕을 이삼십 미터 올라가자 대나무밭 가운데 서너 평 정도의 평평한 공간이 있었고 바로 앞에 어깨 높이가 되는 둔덕에 토굴을 파 놓았다. 꽁지머리가 후레쉬 불빛으로 비춰 준 곳은 겨우 두 세 명이 비좁게 들어앉을 만한 장방형의 공간, 토굴이라기 보다는 일기설기 얽힌 대나무 뿌리를 지붕 삼아 그 아래 목관을 넣어놓은 것이라고 해야 마땅할 만한 것이었다.
섬찟했다. 꽁지머리가 후레쉬 불빛으로 휘휘 비춰준 목관은 상당히 두꺼운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뚜껑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만 자가 새겨져 있었다. 뚜껑을 열면 안에서 뭔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기괴한 기분이 들었다. 꽁지머리는 후레쉬를 내려놓고 주저 없이 목관의 뚜껑을 열었다. 목관 안에는 붉은 계통의 방석, 석 장이 깔려 있었다.
괜한 만용을 부린 게 아닌가, 정말이지 저 속에 누우면 다시는 못 일어날 것 같은 아득한 기분이 들었고 꽁지머리는 나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들어서기 좋게 조금 비껴서면서 말했다.
입적하시지요.
나는 조금 망설였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겁니다. 어서 열반하시지요.
망설이는 나를 돌아보며 꽁지머리가 빨리 죽으라고 재촉했다. 일이 이쯤 되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것이다. 심호흡을 한 번 뱉고는 신발을 가지런히 벗고 관 속으로 들어섰다. 기분이 묘하면서 으시시했다.
머리를 이쪽으로....
관 속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어떻게 누울지 몰라 엉거주춤 서있는 나를 보며 꽁지머리는 머리를 밖을 향하게 누우라고 했다. 꽁지머리가 시키는 데로 방향을 잡고 반듯하게 누웠다. 누워보니 관은 내 어깨넓이에 꽉 끼이는 것이다. 손은 자연스레 배꼽 위에 포개지게 되어 있었다. 호텔의 침대보다는 못하지만 바닥에 방석을 깔아두어서 그리 불편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관 속에 누운 내 눈에 천정의 얼기설기 얽힌 대나무 뿌리가 보였다. 토굴이 무너지더라도 압사하지 않을 만큼의 무게가 그곳에 실려 있었다.
설마, 관 뚜껑에 못질하는 건 아니실 테죠?
아래서부터 관 뚜껑을 주욱 밀어 올리는 꽁지머리를 향해 마지막으로 뱉은 말이다.
걱정 마세요. 이 강아지 상좌가 처사님을 지켜줄 겁니다.
힐끔 고개를 빼고 관 밖을 보니 따라온 검정 강아지가 토굴 옆에 점잖게 앉아 뚜껑이 닫히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강아지 상좌를 옆에 두고 나는 열반에 드는 것이다.
누워보니 염려했던 만큼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짙은 어둠을 두고 누가 관 속 같은 어둠이라고 비유했던가, 아마 그도 관 속에 누워 보았으리라. 뚜껑이 닫힌 관 속은 정말 관 속 같은 어둠이었다. 한 치의 앞도 볼 수 없는 이 지독한 어둠 속에서 나의 육신은 삶과 격리되어 무욕의 경지에 다다를 것이다. 정말이지 그렇게만 된다면....
띠깜이라고 했다.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서 남쪽으로 150마일 떨어진 망망대해 작은 섬, 순전히 고래잡이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라마넬라라는 작은 섬마을이 있다. 고개기름으로 불을 밝히고, 고래뼈로 집을 짖고, 고래고기를 주식으로 삼는, 순전히 죽은 고래와 인간이 공존하는 마을이다. 고래를 탐지하고 쫓는 최신장비는 고사하고 기관도 없이 노를 젖는 낡은 목선과 밧줄이 달린 작살에 의존하는 재래적인 포경방법에 있어서 띠깜이란 바로 향어고래의 목을 향해 배에서 뛰어내리며 체중으로 작살을 고래의 목에 내리꽂는 작살수를 일컫는 말이다.
내가 왜 관 속에 누워 느닷없이 띠깜을 떠올렸을까?
나는 텔레비전의 무슨 다큐멘터리에서 그 띠깜을 본 적이 있다. 사투와도 버금가는 행위로 작살을 고래의 목에 꽂은 띠깜은 고래가 힘이 빠져 늘어질 때까지 한나절이고 하루고 작살 끝에 매달린 밧줄에 끌려 다니는 것이다.
하필이면 그렇게 위험하고 재래적인 방법으로 고래를 잡을까? 내 궁금증에 답해주듯이 인도양의 강렬한 햇살과 바닷바람에 그을린 어깨를 지닌 띠깜은 건강한 치아를 드러내며 강단 있는 말을 했다.
고래가 생성되는 만큼만 잡아야지, 최신장비로 남획하면 고래의 씨가 말라 생태계가 위협받을 겁니다. 결국은 그게 우리의 죽음이지요. 결국 욕심을 버리는 게 우리가 사는 방법입니다.
띠깜의 말에 무릎을 쳤다. 중생이 어찌 부처의 보폭을 헤아리랴.
띠깜을 생각하며 배꼽 위에 얹힌 손에 힘을 주었다.
배꼽으로부터 전해오는 온기가 손바닥에 느껴졌다. 죽는다는 게 결국은 별 게 아니라 탯줄의 흉터인 배꼽에 손을 포개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돌아간다는 말이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문득 들었다. 혹시 이것 또한 깨달음인지 모르지.
죽음은 결국 모태로 돌아간다. 육신의 명은 유한한 것이다. 그렇다. 내가 지금 이대로 눈을 감는다고 크게 두려울 것이 없는 듯하다. 누군가 죽은 나의 가죽을 벗겨 그 가죽에다가 생을 살아가는 지도를 그려도 좋겠다.
어쩌면 이것이 탐친치를 벗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갑갑해서 못 견디겠으면 언제든지 나와서 자신의 방으로 오라고 꽁지머리가 말했지만 아직은 일어설 생각이 없다. 차츰 관 속이 푸근해진다.
까딱하다간, 여기에서 잠이 들 수도 있겠다.
오늘밤 나는 목관이라는, 이 무욕의 자궁 속에서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깨우칠 것이고 나의 아버지는 또 다른 자궁 속에서 또 다른 경지의 세계가 있음을 깨우칠 것이다.
잠이 덮쳐온다.
관 밖에서 강아지 상좌가 나의 열반을 지키고 있을까?
지금쯤 상주에서 눈이 빠져라고 기다리고 있을 녀석이 왜 오지 않았느냐고 역경을 내더라도 나는 호탕한 웃음에 장난기를 섞어 말할 것이다
너희가 부처의 보폭을 아느냐고.
그러나저러나, 모든 장치는 설정해 놓았는데
아버진 지금쯤 비아그라를 드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