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제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아빠, 점심은 뭐먹을까?
“글쎄.. 뭐 먹지... 딸은 뭐 먹고 싶어?”
“참나, 여전하구만”
“뭐가?”
“밥 먹자고 할 때 메뉴 결정안하는 버릇...”
“ㅋㅋ 그렇지 뭐. 딸이 좋아하는 거 먹어야지.. 아빠잖아”
몇 달 전 딸애와 서울서 점심을 함께 하기로 약속하고 서울서 만났을 때의 대화다.
뭐 먹을지는 만나서 정하기로 하고 우선은 강남고속터미널 근처에서 약속했다.
고속버스 안에서 창밖을 보며 여러 가지 글 쓸거리를 궁리하다가 ‘아참 뭐 먹지?’ 생각하다가, 다시 또 딴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잠시 책을 읽게 되고, 또 ‘뭐 먹지?’를 고민한다.
이번엔 고민이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스테이크? 아니면 신세계 푸드코트에서 골라먹을까?.. 호남선 쪽으로 많은데 뭘,,’ 이런 생각을 반복하다보니 서울톨게이트를 지난다.
결국은 결정을 못하고 ‘에라 모르겠다. 딸보고 먹고 싶은 것 결정하라 해야지’하며, 끝내는 딸을 먼저 생각하는 아빠가 되는 것으로 위안을 삼은 채 점심메뉴결정권을 스스로 버린다.
이렇게 해서 아빠는 먼저 도착한 딸이 알려준 장소로 향하고, 반가이 딸과 포옹한다. 그리고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다가 바로 딸에게 메뉴 정하는 문제로 공격받는다.
“엄마한테도 옛날에 많이 혼났잖아. 도대체 결정을 안 해요. 항상 ‘글쎄’ 아니면 ‘아무거나’야! 아니면 무응답. ㅋㅋ"
“많이 혼났지. 그래도 참 쉽지 않아”
“그래서 엄마가 딸애는 절대로 충청도 남자와 결혼 안 시킨다고 했잖아”
“ㅋㅋ 맞아 그랬었지. 그런데 뭐 먹을래? 나는 딸이 좋은 건 다 좋아~”
“참나~ 아예 나한테 먼저 알아보고 정해놓으라 하던가.”
“그럴걸 그랬나?
“그럼, 아빠! 오랜만에 아웃백갈까? 우리 송파에 살 때 아웃백 가끔 갔잖아”
“좋다 아웃백. 나도 아웃백 생각했었어. 오랜만에 칼질도 하고 딱 좋아”
“그래? 터미널 근처에도 있으니까 가자 아빠~”
“오케이”
이렇게 아빠와 딸은 손을 잡고 아웃백을 향한다.
늘 이랬다. 메뉴를 결정하지 못하는 선천적 장애를 지닌 이들이 아빠인가? 나는 늘 이랬다. 늘 아내와 딸에게 혼나면서도 나는 메뉴결정엔 마치 신중한 결정자인양 결정을 유보했고, 마치 남에게 배려하는 마음 가득한 호인인양 결정을 양보했다.
나는 주변 사람들과 만날 때도 늘 그런 듯하다. 어쩌면 내 나이와 비슷한 많은 이들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그러면서도 나는 내 주변 사람들 밥상메뉴 주문하는 습관을 이렇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하곤 한다. 네다섯 명 점심 먹으러 갈 때 이런 일을 경험한 적이 적잖이 있을 듯싶다.
A친구) “점심 뭐 먹으러 갈까?”
B친구) “글쎄... 뭐 먹을까? 우리 맛있는 거 먹자?”
C친구) “맛있는 거 뭐?”
B친구) “글세 뭐가 있을까?
C친구) “오랜만에 중국집 갈까? 탕수육에 자장면 어때?‘
B친구) “중국집은 좀 거시기 하잖아? 김치찌개 맛있게 하는 데 없나?
A친구) “그려 김치찌개 좋네..”
C친구) “그러지 뭐... 쩝..”
D,E친구) “....”
나는 A또는 B에 가까운 것같다.
나는 특별하게 장소를 이미 결정한 자리가 아니라 사무실서 일하다가, 또는 몇 사람이 이야기하다 시간이 되어 점심을 논할 때 많이 경험하곤 했다.
음식점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들어와서 ‘메뉴통일’로 주인장을 도와주는 것이 미덕인 우리의 메뉴주문 습관, 서로 양보하는 듯하게 눈치를 보면서 서로의 오늘 메뉴를 조율해 가는 것이 미덕인 우리의 메뉴결정 과정이 많이 남아 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변했다.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커피집에서 각자 취향의 커피나 차를 자연스럽게 결정해서 주문표에 기재하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조금은 따라해 본다. 이런 커피집의 문화가 일반 식당에서의 주문문화에도 알게 모르게 변화를 주는 듯하다.
젊은 세대의 소비기준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만족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실제 내 딸애를 보면 더욱 그렇다. 최근은 능동적인 소비가 대세이고, 개성 앞에 금기는 없다는 말이 미덕인 시대다.
다른 사람과 함께 먹고 싶은 음식을 콕 찍어서 말하는 습관을 나도 길러볼까?
딸에게 다음 외식은 “먹 먹을까?”가 아니라 “아웃백갈까?”하는 아빠가 되어볼까?
함께 해봅시다.
<강영환의 어의운하 4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