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1일(1.26 목)
이번 베트남 여행은 꽉찬 4박 5일 패키지 여행이다. 오래간만에 가는 여행이니 알찬 일정이 좋아서 선택한 건데 막상 아침 6시 15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2시에 일어나 3시에 집을 나서려니 여행 시작부터 빡세다. 게다가 눈까지 내리는 새벽이라니.. 눈보라를 헤치며 간신히 공항에 도착하고 계윤이네를 만나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윤성씨가 고맙게도 직원 주차장을 이용하게 해줘서 차도 잘 파킹하고 다행히 비행기도 제 시간에 출발해줘서 새벽부터의 부산스러움을 떨치고 즐거운 여행 모드를 장착하고 베트남을 향해 날아간다. 슈웅~
다낭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2시간의 시차로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현지 가이드를 만나 버스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와 그 다음 일행들을 기다리는 시간에 잠깐 커피숍에 들렸다. 커피와 녹차라떼를 마시며 잠깐 재정비를 하고 새벽부터의 일정으로 출출해진 배를 채우러 이른 점심을 먹으러 갔다. 메뉴는 쌀국수와 반세오, 반세오는 쌀가루 반죽에 각종 야채, 해산물 등을 넣어 부친 베트남식 부침개인데 라이스페이퍼에 상추를 얹고 당근, 오이와 함께 반세오를 올린후 둥글게 말아서 소스에 찍어먹으니 너무 맛있었다. 베트남은 싱싱한 야채가 풍부하다며 마음껏 먹으라는 가이드의 안내대로 이번 여행에서는 매 끼니마다 야채를 평소의 2-3배는 많이 먹은 것 같다. 일반 상추보다 아삭한 식감이 좋은 로메인, 베트남식 김치라는 모닝글로리(공심채) 볶음, 각종 샐러드.. 맛있어서 계속 먹을 수 밖에 없다. 첫 식사부터 대만족한 베트남 음식은 여행 내내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지금도 먹고 싶다..
여행의 첫 일정은 APEC 공원이다. 한강과 용교 옆에 위치한 공원은 화려한 꽃들과 장식품들로 잘 꾸며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알고보니 베트남에서도 구정을 지내는데 큰 명절이라 구정 연휴를 7일에서 길게는 15일간 쉬면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구정이 지난지 얼마되지 않아 예쁘게 단장하고 놀러나온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특히 노란 국화꽃과 고양이 모형들이 많이 있었는데 노란색은 복을 불러온다고 믿기 때문에 노란 국화꽃으로 장식한 것이고, 고양이 모형은 올해가 토끼해인데 베트남 사람들은 약한 토끼(묘) 대신 고양이(묘)를 사용해 고양이해라고 부른다고 한다. 실제 12지신을 살펴보면 토끼 대신 고양이, 양 대신 염소, 뱀 대신 코브라, 소 대신 물소를 사용한다고 하니 몸집은 작지만 긴 침략의 역사를 이겨온 베트남 사람들의 단단한 마음이 느껴진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현지인들에 휩쓸려 우리도 열심히 인증샷을 찍었다. 워낙 사진 스폿이 많아서 몇 걸음 걷다가 사진 찍고.. 눈으로 풍경을 담기보다 스마트폰 화면으로 공원을 구경한 것 같다. 괜찮다. 솔직히 인공적 화려함 빼고는 멋진 경치도 별로 없었다..ㅋ
다음으로 간 곳은 다낭박물관이다. 베트남의 역사과 전통, 그리고 베트남전에 관한 내용까지 볼 수 있는 곳이다. 3층으로 된 건물은 조금 낡고 사람들도 많이 없어서 한적했다. 3층부터 소수민족이었던 과거의 역사와 왕조, 옛날 생활 모습이 전시되어있고 특히 베트남전과 관련된 기록과 전쟁물품, 사용되었던 무기와 포탄까지 자세하게 전시되어 있어서 놀라웠다. 베트남전 참전국인 한국부대에 대한 사진도 있었는데.. 어쩔 수 없는 참전이었지만 아무 명분도 없이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의해 우리가 그 끔찍한 전쟁에 휘말렸다는 것이 씁쓸했다. 일행 모두가 다 둘러보고 내려왔는데도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남편은 한참 뒤에야 나타나며 너무 재밌었다고 말해서 크게 볼 것 없다고 말했던 가이드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ㅎㅎㅎ
박물관을 나와 드디어 우리의 숙소인 노보텔로 가서 체크인을 했다. 노보텔은 한강 뷰에 다낭 중심과 가깝고 주변 상권도 잘 되어있어서 시설도 위치도 너무 좋았다. 계윤이네와 나란히 19층에 방을 배정받고 잠깐의 재정비 시간을 가진 후 센스있는 가이드 덕분에 새벽부터 시작된 긴 일정에 피곤해진 몸을 마사지로 노곤하게 풀어주고 맛있는 저녁식사 후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의 긴 일정은 이제 끝!? 그럴리 없다. 여행의 첫날을 자축하며 우리끼리 현지펍에서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그런데 의외로 길거리에 술집이 많지 않고 카페만 많다. 베트남 사람들은 맥주보다는 커피를 사랑하나 보다. 젊은이들이 밤늦게까지 야외 테이블에서 커피와 음료를 시켜놓고 카드놀이도 하고 왁자지껄 담소도 나누는 모습이 조금 낯설기도 했다. 어렵게 찾은 LOCO라는 펍에 앉아보니 베트남 돈으로만 계산이 된다고 해서 쫓겨났다. 아직 베트남돈으로 환전을 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밤 시간이라 환전소도 닫았고 여기저기 헤매다 ATM기를 발견하고 드디어 베트남돈을 출금했지만 LOCO에 다시 가니 이번에는 만석이라 두 번 쫓겨났다. 힝.. 하지만 의지의 한국인 아닌가. 미리 알아두었던 호텔 근처 이탈리안식 루나펍에서 소세지와 생맥주를 마시며 첫날을 잘 마무리했다.
여행 2일(1.27 금)
드디어 여행 둘째날.. 아침부터 비가 온다. 어제부터 흐렸던 하늘은 기어코 비를 뿌리고 있었다. 1월까지 우기인 베트남은 날씨요정은 없다는 듯이 이틀 내내 많은 비를 뿌렸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하지 않던가. 이것 또한 여행의 재미라고 생각하니 그런대로 괜찮았다. 오늘은 11시 30분에 미팅이 있어서 그 전 시간을 활용하기로 미리 계획을 했다. 한시장에 갔다가 참박물관을 관람하고 호텔로 돌아오는 우리만의 일정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한시장과 참박물관이 아침 7시면 열기 때문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 써야 하는 우리에겐 땡큐였다.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지만 시간을 아끼기 위해 택시를 타고 한시장에 도착했다. 우선 금은방에서 베트남돈으로 환전을 하고 1층의 북적거리는 시장통을 지나 2층 아오자이 옷가게로 곧장 직진했다. 계윤이와 아오자이를 한 벌씩 맞춰 입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시장은 바가지가 많은 곳이라 가격 흥정은 기본이라고 한다. 옷가게에 들어가서 마음에 드는 아오자이를 고르고 살 듯 말 듯 아줌마력을 발휘하여 2벌에 70만동 가격 결정을 하고 가게 안쪽 재봉실에서 치수를 쟀다. 1시간 뒤에 오면 옷을 찾을 수 있다고 해서 가게를 나서려는데 입구에서 기다리는 줄 알았던 남편들이 실은 남자 아오자이를 구경하고 있었다. 자기들도 하나씩 사서 입고 싶었던 모양이다. 와! 커플 아오자이라니.. 싫어할 줄 알아서 제안도 안 했는데 너무 좋다. 남자 아오자이는 티셔츠만 2개에 30만동에 구입했다. 커플 아오자이가 우리나라 돈으로 25,000원 정도이니 저렴하게 즐기는 색다른 여행의 이벤트로 너무 좋은 것 같다.
기분 좋은 쇼핑을 마치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참박물관으로 향했다. 참박물관은 전 세계 유일의 참 조각 전문 박물관이라고 한다. 베트남의 참파 왕족의 종교 유적지(미썬 지역)에서 발굴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참파왕족은 베트남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왕족으로 신성한 땅인 미썬 유적지가 다낭 근처라고 한다. 투박하지만 다양한 모양의 돌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모두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들이다. 나는 티켓 사진에도 있는 압사라(Apsara)라는 춤추는 천상의 여신이 마음에 들었다. 압사라의 아름다움 때문에 신과 악마가 서로 아내로 삼고 싶어서 전쟁을 벌였다고 하는데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로 어느 나라나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했구나 싶다.
오전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11시 30분에 여행 일행들과 만나 점심으로 씨푸드 랍스터를 먹었다. 1인 1랍스터였는데 크기가 귀여워서 굴구이와 튀김, 그리고 매콤한 해물탕까지 먹고나니 속이 든든해졌다. 이제 공식적인 여행 일정의 시작으로 안방비치에 갔다. 베트남은 위아래로 길쭉한 나라로 동쪽으로 세계 5대 해변중 하나인 미케해변이 있다. 미케해변은 10km에 달하는 미케비치, 논느억비치, 안방비치, 끄어다이비치로 연결되는데 그 길이를 합하면 무려 23km라고 한다. 모래가 너무 고와서 물색은 뿌옇게 보였지만 끝없이 펼쳐지는 백사장과 넘실대는 파도를 바라보자니 속이 다 시원하다. 잠깐 비도 그치고 휘몰아치는 바람과 끝없이 부서지는 파도에 그동안 묵은 마음을 털어내본다. 그까이 꺼 가볍게 비우며 살자!
다음은 바구니배 타기이다. 바구니배는 베트남 사람들이 예전에 사용했던 작은 배로 한 사람이 노를 저어 강도 건너고 고기도 잡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전통 문화체험으로 바구니배 타기는 참 호젓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입구부터 들리는 한국 뽕짝과 끝없이 밀려오는 한국 관광객 팀들이 각자의 바구니배를 탔지만 마치 한 덩어리인 듯 앞뒤로 뭉쳐서 수중 야자수 숲길을 누볐다. 게다가 중간에 잠깐 멈춰서서는 간이 무대에 노래방기기와 함께 현지인의 어설픈 한국 뽕짝 열창을 강제로 들어야 했다. 그 와중에 앞쪽에 있던 은철씨와 신랑이 끌려나가 분위기에 휩쓸려 아저씨 막춤을 추었는데 어이없는 상황이지만 둘 다 너무 열심히 춤을 추어서 배꼽 빠지게 웃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웃기다. 술 한잔 안마시고 추기에는 과한 춤이었는데 분위기 업을 위해 희생한 남편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이번 여행의 꽃으로 꼽을 수 있는 호이안 올트타운을 향해가는데 빗줄기가 거세진다. 15세기 이래 세계무역항으로 발전해 동서양의 독특한 건축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는 호이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거리가 너무 예쁘고 건물과 골목들이 멋스러운 곳이라고 해서 기대가 많았는데 비도 많이 오고 사람도 많고 우비에 우산까지.. 복잡하고 축축한 것이 여유롭게 둘러볼 여건이 안되었다. 호이안의 랜드마크인 도자기마을, 일본인 무역상과 중국거주지역을 연결했던 내원교, 흑단목을 사용해 침수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중국풍 건물 떤키고가, 1780년에 지은 고가로 1층 안쪽에 실크공예작업장과 판매장이 있는 풍등고가, 관우를 모시고 승천하는 용 5마리를 볼 수 있는 광둥회관을 숙제하듯이 쭉 둘러보고 야시장 앞에서 1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패키지 여행의 속도전이 빛을 발한다. 그래도 투본강에 띄워진 배들과 각양각색의 등불과 조명들로 야경만은 멋졌다. 야경을 감상하고 야시장을 한바퀴 돌고 나니 여유롭게 카페에 앉아 있을 시간조차 나지 않는다. 다음에 오면 하루 종일 산책하며 이 골목 저 골목 헤매고 싶은 곳이다. 아쉬움이 그리움이 되어 다시 오기를..
여행 3일(1.28 토)
오늘도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비도 오고 바나힐도 올라야 하지만 꿋꿋하게 우리의 계획대로 아오자이를 입었다. 남편들까지 맞춰 입으니 옷 하나로 기분이 좋아지고 사람들의 관심과 칭찬도 즐겁다. 바나힐은 산속에 세운 유럽식 테마파크로 프랑스 식민지 때 다낭의 덥고 습한 기후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프랑스인들이 피서지로 개발했다고 한다. 해발 1487m의 깊은 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데 최근에 이곳을 케이블카, 놀이기구, 테마파크등으로 개발해 관광수익을 내고 있다. 바나힐에 오르기 위해서는 케이블카를 무려 20분간 타고 올라가야 한다. 비도 오고 안개도 끼어서 전망을 볼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 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니 좀 긴장이 되긴 했다. 하지만 실제 타보니 무서움 보다는 기압차에 의한 현기증을 느꼈는데 살짝 식은땀이 나려는데 내릴 때가 되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문이 열리고 차가운 산바람을 들이셨을 때의 안도감이란.. 나중에 보니 케이블카 내에 멀미봉투까지 준비되어있는 것을 보니 나같은 사람이 또 있나보다.
바나힐 오르는 길에는 해발 1414m 산중턱에 만들어진 골든브릿지라는 보행다리가 있다. 거대한 손이 다리를 떠받들고 있는 모습으로 기념사진의 명소라고 한다. 거인의 손바닥이 밀림을 뚫고 나와 다리를 지탱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다만 비안개로 흐려서 높이감이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하얀 심연으로 가려져있는 다리를 걷자니 구름위를 걷는 것 같다.
바나힐은 놀이기구들이 있는 판타지 파크, 중세유럽 분위기의 프렌치 빌리지, 전망대가 있는 사원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우리는 2시간의 자유시간 동안 우선 판타지 파크에 가서 놀이기구를 몇 가지 탔다. 둥글게 도는 뺑뺑이와 범퍼카, 열차 타며 총 쏘는 어드벤처를 탔는데 여기 저기 팡팡 부딪치는 범퍼카가 제일 재미있었다. 오래간만에 동심으로 돌아가 놀이기구도 타고 밖으로 나와 비는 계속 내리지만 프렌치 빌리지 거리를 걸었다. 성당에도 들어가보고 거리가 잘 꾸며져 있어서 인생사진 찍기 딱 좋은 곳이었다. 사진 욕심쟁이가 한집에 한명씩 있어서(병채, 계윤) 사진도 사이좋게 서로 서로 잘 찍어주니 여행 케미가 좋다. 찍을 땐 너무 과하다 싶을 때도 있었는데 여행 후 살펴보니 남는 건 사진뿐이란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ㅎㅎㅎ
바나힐에서 맛있는 스시부페도 먹고 내려오는 케이블카에서는 전략을 달리하여 내려가는 방향으로 몸을 틀어 투명창에 얼굴을 들이대고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으로 현기증을 이겨내려고 해보았다. 비도 어느 정도 그쳐서 시야도 잘 보이고 무엇보다 숲이 원시 밀림처럼 울창한 나무들로 빼곡한데다 크고 작은 봉우리 몇 개를 넘고 넘어 내려가고 있었다. 얼마 전 본 아바타 영화에서 큰 새를 타고 날아가는 것처럼 밀림지대를 헤쳐 날고 있다는 스릴감까지 느낄 수 있어서 훨씬 좋은 컨디션으로 케이블카를 즐길 수 있었다.
오후에는 쇼핑센터도 들렸는데 그곳에서 베트남의 강력한 왕이였던 민망황제가 즐겨 마셨다는 민망주를 은철씨가 구입을 했는데 이 술은 여행의 끝에 아주 민망하게 공항 검색대에서 압수당하고 말았다. 실수로 부치는 캐리어에 넣지 않아 생긴 불상사다. 400명의 애첩과 140명의 자손이 있었다는 정력의 왕의 몸보신술은 그렇게 사라졌다. 몸 건강은 술 줄이고 운동으로 챙기는 걸로 합시다! 베트남의 다양한 커피도 맛 보았는데 족제비똥으로 만들었다는 위즐커피 맛이 너무 좋았다. 베트남식 커피 드리퍼인 커피핀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간단하면서도 맛있는 커피를 내려 먹을 수 있는 근사한 방법이었다. 위즐커피 맛에 반한 우리는 계획에 없던 최고급 위즐커피와 커피핀까지 구입했다. 6개월 발효를 거친 위즐커피는 향긋하면서 고소하고 고급진 맛이 나는데 커알못인 나도 맘에 쏙 들었다. 게다가 카페인이 일반 커피의 1/5이라고 하니 내가 마시기에도 부담이 없어 좋다. 오늘 주말 아침에 위즐커피를 내려 남편과 한 잔씩 나눠 마시니 은은한 향기와 맛이 일품이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것을 접하고 즐기게 된다는 것.. 괜찮다.
저녁은 다낭타워 스카이라운지에 위치한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분위기있게 스테이크를 썰었다. KBS 배틀트립에도 나왔다고 하는데 무엇보다 뜨거운 개인 돌판에 스테이크를 자글자글 익혀가며 먹을 수 있어서 너무 맛있었다. 첫 조각은 레어에서 마지막 조각은 웰던으로.. 와인 한잔이 아쉬웠지만 식사 후의 유람선까지 생각하면 이곳에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게다가 가이드가 와인이 너무 고가라 추천하지 않는다고 해서 고민없이 스킵했다.
훌륭한 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유람선을 타러 갔다. 우리 숙소 앞쪽에서 유람선을 타고 용교를 지나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코스이다. 용교는 다낭의 명소로 황금색 용이 다리를 감고 승천하는 모습을 하고 있어 용다리로 불리는데 주말 밤 9시면 용의 입에서 물대포와 불기둥이 나오는 쇼를 볼 수 있다며 센스있는 가이드덕에 그 시간에 맞춰 배를 탔다. 1층과 2층 좌석에 나눠서 앉았는데 1층의 한무리의 한국인 아저씨들이 소주 페트병을 나눠마시는 모습이 영 심상치 않다 싶었는데 어디선가 노래방 기계가 등장하며 고래고래 노래를 불러댄다. 그 이상한 댄스와 함께.. 하.. 음주가무를 즐기는 한국 관광객 때문인지, 베트남 사람들도 좋아해서인지 왜 유람선에 노래방기기가 설치되어 있을까? 그리고 굳이 왜 고적한 밤 유람선에서 자기들만의 흥에 빠져 다른 사람들은 전혀 배려하지 않을까? 휴.. 그들만의 즐거움도 있는 것이니 ‘그러라 그래’라는 마음으로 2층으로 올라오니 좀 낫다.
9시 5분 전부터 용교 주변으로 유람선들이 모여들고 사람들이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다 보니 푸웅~ 불이 입에서 뿜어져 나온다. 엄청 놀라울 정도는 아닌데 귀여운 용트림 정도로 몇 번 불도 나오고 물거품 같은 연기도 나온다. 배의 맨 앞 명당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은철씨가 용쇼를 가장 잘 화면에 담았을 것 같다. 잘잘한 비가 내리는데도 배 난간에 몸을 기대고 용교를 말없이 바라보던 은철씨의 뒷모습에 왠지 모를 뭉클함이 있었다. 요 몇 년간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시기를 잘 이겨낸 은철씨 고생 많았어요. 그리고 그 옆을 든든하게 지켜준 계윤이도 대단하고 앞으로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려서 고생한 만큼 복 많이 받을거라고 믿는다.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하늘로 승천하는 용처럼 앞으로 은철씨, 계윤이네가 흥하기를..
여행 4일(1.29 일)
오늘은 여행의 마지막 날.. 어제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달래러 첫날 실패했던 LOCO펍에 가서 한 잔하고 늦게 들어온 덕에 짐정리도 못하고 잠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제일 먼저 날씨를 살피니 휴~ 비가 안온다. 그래 화창한 날은 기대도 안한다. 비만 오지 말기를.. 서둘러 캐리어 짐을 꾸리고 아침마다 입을 즐겁게 하던 호텔 조식도 아쉬운 마음에 양껏 많이 먹었다.
오늘의 첫 일정은 영응사(린응사)이다. 이곳은 베트남이 공산화될 때 이를 피해 조국을 떠나다가 바다에서 죽은 수많은 보트피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만들었다고 한다. 영혼이 응답하는 절이라는 뜻으로 영응사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하니 베트남의 아픈 역사가 녹아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67m 높이의 하얀 해수관음상이 있는데 높이 솟은 불상이 인자하게 먼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이 올려다보는 사람 마음도 잔잔히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보트피플과 관련해 가이드가 한국의 전재용 선장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는데 1985년 당시 원양어선의 선장이었던 전재용 선장과 선원들이 바다 한가운데 표류해 죽어가고 있던 보트피플 96명을 구조했던 이야기였다. 여행에서 돌아와 검색해보니 25척의 배들이 외면하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그들을 구조해서 치료해주고 살리고 부산까지 데리고 왔다고 한다. 그들은 1년간의 난민소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생활하게 되었지만 그들을 구조해준 전재용 선장은 당시 군사정권에 의해 조사를 받고 해직되는 등 많은 고초를 겪었다. 후에 미국에 정착한 보트피플 사람들이 수소문 끝에 전재용 선장을 찾아 미국에서 재회하였고 유엔의 노벨상인 UN난센상 후보로 그를 추천하기까지 했다. UN난센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고 다수의 소중한 생명을 선택한 전재용 선장이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하신 분이 재조명되지 못하고 묻혀지는 것도 안타깝고 이번 기회로나마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오행산은 대리석과 석회암 산으로 총 5개의 낮은 봉우리가 수, 금, 지, 화, 목을 상징하고 이는 다섯 요소가 맞물려 조화를 이룬다는 오행사상을 말한다. 높지 않은 산의 이곳 저곳을 다니면 여러 개의 동굴사원과 전망대, 헤븐게이트 등 볼 것이 많은 곳이지만 우리는 입구의 암푸동굴만 둘러보아서 아쉬웠다. 암푸동굴은 동굴 안에 천당과 지옥, 사후 재판소의 모습이 재현되어있다. 비온 뒤여서인지 동굴 안에서 굵은 물방울이 뚝뚝 떨어져서인지 왠지 으스스한 곳이었다. 사후 세계에 대한 경외와 두려움은 나라를 떠나 유한한 인간들의 공통 관심사인 것 같다. 죽어서 잘되면 뭐 할라꼬? 지금 현재를 잘 살아내는 것 그게 젤이지.
오후에는 큰 일정없이 핑크성당을 들리고 하루 늦게 온 일행들이 마사지를 하는 동안 잠깐의 자유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핑크 성당은 다낭에서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지은 유일한 성당으로 핑크색으로 예쁘게 색칠 된 것과 성당 첨탑 끄뜨머리에 수탉모양의 풍향계가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일요일이라 예배가 있어 성당 안에는 들어갈 수 없지만 위치가 한시장 근처로 1시간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우리도 핑크성당은 뭐 그닥 관심이 없고 계윤이의 위시 리스트인 라탄백을 사기위해 미리 검색해두었던 민뚜라탄가게로 직진했다. 다행히 그곳에서 계윤이는 예쁜 라탄 탬버린백과 니트백을 샀다. 나도 대나무 젓가락과 냄비받침대를 구입했는데 에누리는 없지만 믿을 수 있는 품질이라는 사전정보에 마음 편하게 쇼핑을 했다. 여행의 즐거움은 이렇게 현지에서 구입한 소소한 물건들을 집에 데려와 보거나 사용할 때 추억으로 쭉 이어지는 것 같다.
다음으로 하루 늦게 도착한 일행들이 마사지를 받으러 가야 해서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주변 카페에 갈까 했는데 센스있는 가이드가 미켈해변으로 데려가서 1시간 30분 동안 바다와 함께 할 수 있었다. 흐리고 쓸쓸한 날씨인데도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고 백사장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해변을 쭉 걷다가 벤치에 앉아 준비해온 생맥주를 마시며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잠깐이나마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니 자유롭고 좋았다. 따뜻한 커피 한잔이 그리워 해변을 따라 좀 더 올라가니 근사한 비치바가 있어서 들어갔다. 탁 트인 바다를 편하고 멋진 자리에서 바라보니 그것 또한 분위기 있어서 좋다. 생맥주와 따뜻한 차 한 잔 하면서 바라보는 바다는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모습이다. 이 경치, 이 공기, 이 분위기, 이 기분.. 모두 저장이다.
이번 여행은 처음으로 친구 부부끼리 함께한 여행이라 의미가 크다. 아쉽게도 창미네가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첫 테이프를 끊었으니 그 다음은 좀 더 쉬울 거라 생각한다. 계윤이와 창미, 그리고 나 우리 셋의 인연도 이제 30년이 되어간다. 대학 입학과 함께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풋풋한 햇병아리 청춘을 함께 보냈고 크고 작은 인생고락의 순간마다 서로의 곁을 지켜주었다. 그동안 셋에서 여섯이 되었고 다섯 아이들까지 우리가 처음 만났던 20대가 되어가고 있으니 시간이 참 빠르다. 그 긴 시간동안 서로를 지켜봐주고 응원해준 친구들을 생각하니 너무 고맙고 소중하다. 그리고 우리의 우정이 견고해지는데 큰 역할을 해준 병채, 은철, 윤성씨 모두 고마워요. 최고의 남편들입니다^^! 다음 여행은 훌륭한 남편들이 계획하실거라 믿습니다~
세남자, 세여자 그리고 다섯 아이들 홧팅!
첫댓글 다낭 여행 갑작스럽게 정해서 남편들 데리고 갔는데.... 우역곡절이 많지만 그래도 의리있게 부부여행을 잘 갔다 왔어. 다낭 여행기행문 보니 생생하게 다낭이 그려진다. 여행 갔다 온것을 이렇게 글로 정리한 성미야 땡큐!!!
조회수가 250을 넘는 것을 보니 잘쓰기는 한 가봅니다.ㅋㅋ 갑자기 가게된 베트남 여행. 생각지도 않게 너무 좋았고 의미있었습니다. 한때는 베트남전 관련 영화를 모두 섬렵했는대..쩝 베트남이란 나라 정말 훌룡한 나라이자 멋진 민족입니다. 이렇게 여행 잘 정리해준 다인맘 너무 고마워 그날의 순간순간이 아주 새록새록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