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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농사짓기 10조목 [作農之方十目]
【나의 견해】 무릇 천하의 모든 일이 눈으로 직접 보고 몸소 체험한 것이 아니면, 진실로 똑
부러지게 이야기할 수 없다. 오직 이 농사짓기 방법만은 실제로 우리 집안에서 이미 징험
한 것들이다. 우리 집에 논 13마지기가 있어서 해마다 경작을 하였는데, 무릇 덮어갈고 뒤
집어갈고 삶고 호미질하고 수확하는 일에 들이는 공력과, 종자를 저장했다가 씨 뿌리고
모내기하며, 기후를 점치고 물을 대는 방법, 봄부터 가을까지, 다시 가을에서 봄까지, 부지
런함[勤]과 미리 해둠[豫]으로 대비하지 않는 바가 없어서, 해마다 30여 섬의 곡식을 거
둬들일 수 있었다. 그러니 사람들은 모두 그 논의 토성이 몹시 기름진 줄로 알고 그곳을
탐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나중에 거듭 상을 당한 까닭에 논을 팔려고 내놓으니, 원근 각처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다투어 사들였다. 그런데 그 후 해마다 거둬들이는 것이 10여 섬에 불과하여 다른 논과 다
를 바가 없었다. 이는 바로 토지의 비옥도라는 것이 오로지 사람의 공력에 달려 있고, 수
확량의 많고 적음이 모두 근면성 여부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체로 농사짓는 방법에는 열 가지의 조목이 있다.
첫째는 부지런함[勤]이고,
둘째는 미리 해둠[豫]이며,
셋째는 곡종 갖추기[備穀種],
넷째는 곡성 따지기[辨穀性]이고,
다섯째는 토의 살피기[相土宜],
여섯째는 시후 점치기[占時候],
일곱째는 거름재 모으기[聚糞灰],
여덟째는 농토 다스려 삶기[治熟田土]이며,
아홉째는 수원 미리 모으기이고[預貯水源],
열째는 때맞춰 김매고 거두기[鋤穫及時]이다.
14.1. 부지런함 [勤]
관자管子가 말하기를, “사람의 살림살이는 부지런함[勤]에 달려있으니 부지런하면 결핍
될 일이 없다.”고 하였다. 농사에 진실로 근면하지 않으면 비록 좋은 밭과 훌륭한 논이 있
더라도 지저분한 푸성귀 마당에 돌피 밭이나 되고 말 것이다. 그 어찌 가을이 있기를 바
랄 수 있겠는가. 이른바 부지런함이란 것은 하루아침 하룻밤 마음을 졸이고 힘을 들인다
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열흘 동안의 부지런함이 하루의 게으름으로 무너지고,
10년의근면이 1년의 나태함으로 깨어지는 것이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
농가의 온갖 일은 모두 아주 잠깐이라도 소홀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뿌리고 김매고 호
미질하고 수확하는 공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가을에 덮어갈고, 봄에 뒤집어갈아 거름을
넣음으로써 때에 맞춰 씨를 뿌리기에 이르니, 그 부지런함은 단지 열흘 정도로 그치지 않
는다. 그런데 혹 하루의 게으름으로 인해 물을 가두고 참새를 쫓는 일을 안했다고 치자.
그 씨앗은 모두 새들이 쪼아 먹을 것이다. 또 다행히 새떼와 참새들이 쪼아 먹지 않더라
도, 4, 5월의 가뭄 때에 이르러 혹시 하루의 게으름으로 그 물댈 기회를 놓친다면, 모내기
때를 앉아서 허송해야 할 것이다. 비록 다행히 때에 맞춰 모내기를 했더라도 모 뿌리가 내
리고 풀이 무성해질 때를 당하여 혹 호미로 김매기 할 때를 놓치기도 하고, 비록 다행히
때에 맞춰 호미로 김을 매서 흐드러지게 익었더라도 혹 수확할 제때를 어겼다가 바람이
나 우박 피해를 당하는 불의의 재난을 만날 수도 있다. 즉, 이 모든 것이 하루의 게으름으로
말미암아 아홉 길의 공력을 망가뜨리는 일인 것이다. 성취하는 일의 어려움은 산을 오
르기보다 어렵고, 무너지는 일의 쉬움은 언덕길을 내리닫는 것보다 쉽다. 그러므로 십년
의 부지런함과 고생으로 어렵사리 집안을 일구었더라도, 1년의 나태함으로 곧장 굶주림
과 추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반드시 새벽부터 저녁까지 힘쓰고 또 힘을 쓰며, 아침부터
밤까지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밤 여덟 시에 잠들면서, 일을 손에 쥐
었다면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까닭을 생각하고, 눈을 물건에 두었다면 그 물건을 내 것으
로 할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하라. 부지런하고 또 부지런한, 한 마음으로 세 가지 농사를 섬
기고 또 섬긴다면, 그런 후에 곧 모든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14.2. 미리 해둠 [豫]
옛 선비들은 『시경』 「칠월」편의 의미를 ‘미리 해둠[豫]’이라는 한마디로 풀어냈다.
아침에미리 해두지 않으면 저녁이 군색해지고, 오늘 미리 해두지 않으면 내일이 군색하다.
가을에 미리 해두지 않으면 봄이 되어 군색해지며, 겨울에 미리 해두지 않으면 여름이 되어
군색하다. 젊어서 미리 해두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서 군색함에 시달린다.
그러니 가을에 수확할 때에 뿌리가 뒤집히도록 덮어가는 것은 이듬해 다스려 삶는
작업을 대비하려는 까닭에서이며, 볕을 쪼여 말려서 종자를 저장하는
까닭은 이듬해 뿌리고 심는 작업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겨울철 모든 것이 닫히고 감추는 달, 낮에는 띠를 꺾고 밤에는 새끼를 꼬아 서둘러서
지붕을 올리는 것은 이듬해 농사일에 선행하는 일이기 때문이고, 농기구와
도롱이를 닦고 고쳐서 잘 두는 것은 이듬해의 농사 연장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대개 농사짓는 방법 중에 미리 해둔 후에라야 올바로 서는 일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러므
로 종자와 거름재, 가을의 덮어갈기[掩耕]와 봄의 뒤집어갈기[翻耕], 제방을 고쳐 쌓고
물을 저장하기, 삿갓과 도롱이, 겨리쟁기와 호리쟁기, 쌍가래[雙鍫]와 외가래[獨鍫], 쇠
가래[鐵可乃]와 나무가래, 쇠괭이[鐵廣耳]와 나무괭이, 소시랑[鐵齒擺]과 나무소시랑[
木齒擺], 호미와 낫, 옹구[擁罟]와 번지[板橯], 곰방메[古音排]와 써레[木斫] 등 모든 물
자는 가을부터 겨울까지의 사이, 정월에 이르러 언 땅이 풀리기 전에 미리 갖추어둔다. 일
소 역시 반드시 잘 먹이고 튼튼히 살찌워서 장차 이를 농사철에 일을 다해낼 수 있도록 준
비해놓고 기다린다.
먼저 나서서 제때보다 빨리 경작하여, 다른 밭에서 바야흐로 파종할 때에 벌써 모를 세우
고, 다른 밭에서 비로소 모가 서기 시작할 때에 장차 호미질하여 풀을 매도록 한다. 또한
보리·밀농사에서 이삭을 잃는 것은 가뭄과 위황의 재해로 인한 것이 많은데, 메마름과
안개 역시 보리와 밀에 이삭이 패고 무르익어갈 때 항시 있는 재해라 할 수 있다. 참으로
가을철에 먼저 나서서 갈고 심음으로써, 아직 땅이 얼기 전에 그 뿌리가 깊이 내리도록 하
고, 겨울철 석 달 동안에 똥거름과 오줌거름을 두텁게 덧뿌림으로써, 그 원기元氣가 땅속
에 많이 쌓여 있다가 봄에 양기가 오르는 것을 얻는 대로 바로 싹을 틔울 수 있도록 한다.
땅이 기름지고 싹이 튼튼하여 배 맺힘[胚胎]이 충실하고 온전하면, 다른 싹들이 막 터져
나올 때 이미 이삭이 패며[發穗], 다른 데서 이삭이 패기 시작할 때는 이미 익어가고 있으
므로, 가뭄과 안개도 재난이 되지 못한다. 이는 실로 일찍이 경험한 바이니, 모두가 미리
해둠[豫]의 공력에서 말미암는 일이다.
14.3. 곡식 종자 갖추기 [備穀種]
곡종을 갖추고 저장하는 방도는 이미 『농사직설』에 다 마련되어 있다. 대체로 각 곡식은 모
두 씨앗으로 말미암아 싹을 틔우는 것이니, 씨앗이 온전하지 않으면 싹은 절로 건실하지
않다. 이것을 사람에게 비유하면 어머니가 병에 걸려 허약하면 그가 낳은 자식도 건실할
수 없는 것이니, 이는 참으로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먼저 종자를 골라 갖춰두
어야 하며, 그런 뒤에라야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종자를 고르는 방법은 반드시 각 곡식을 베
어 수확하였을 때, 먼저 그 중 견실하고 온전한 이삭을 골라 종자로 삼는 것이다.
충분히 정갈하게 말려서 눅눅하지도 덥지도 않은 곳【병이나 독에 저장하지 마라. 만일 병
이나 독에 저장하면 습기를 머금을까 두렵다)】에 저장해 두는 것이 좋다.
만일 이삭으로써 정갈한 것을 택한다면, 벼에서 돌피,) 가을보리에서 참밀, 봄보리에서
귀리는 따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제거된다. 모든 곡식에는 올되는 것과 늦되는 것
이 서로 섞여드는 폐단이 있으니, 곡식이 익어갈 때에 역시 들쑥날쑥하여 가지런히 익지
않는다는 탄식이 나오게 된다. 만일 이 방법을 시행한다면
올되는 것과 늦되는 것이 서로섞일 리가 없다.
또한 온갖 곡식들은 각각 해마다 기운이 쇠하기도 하고 흥하기도 한다. 우선 모든 곡종을
갖춰서 위와 같이 정갈하게 저장해두었다가, 『농사직설』에 적힌 것처럼, 동지에 이르러
곡식을 묻었다가 불어나는 정도에 의해 징험하는 방법에 의거하여, 많이 불어난 곡식을
취해서 그 해의 종자로 삼아야 한다. 이는 즉 농사를 짓는 긴요한 길이 된다.
요즘 사람들은 단지 봄가을의 보리와 밀, 그리고 조[黍粟]와 콩만이 심을 만하다고 여기
면서 귀리와 올조[早粟]의 긴요함은 알지 못하니, 어찌 그리도 생각이 짧은 것인가. 무릇
보리와 밀은 햇곡이 익어가고 묵은 곡식이 떨어져가는 사이를 이어주는 농가의 양식인
데, 만일 보리와 밀이 실패하면 귀리에 의존할 수 있고, 만일 귀리가 실패하면 올조에 기
댈 수 있다. 속칭 세잎조[三葉粟]【셰닙조】같은 것은 5월에 익는 종자이다. 세잎조는 까끄
라기가 짧고 줄기가 붉으며 열매는 작고 노란데, 기름진 밭에서의 올심기에 적당하다. 외
꽃조[苽花粟]【외 조】는 6월에 익는 종자인데, 까끄라기가 짧고 줄기는 희며 열매가 노
랗다. 역시 기름진 밭에서의 올심기에 적당하다. 또한 속칭으로 쉬나리피[五十日稷]라는
것이 있는데, 6월 보름간에 익는 종자다. 까끄라기가 없고 익으면 옅은 흰색을 띠는데, 2
월 그믐날 기름지고 습한 곳에 심으면 좋다. 이는 모두 보리·밀과 벼의 사이를 이을 수
있는 곡식들이다. 그러나 각각의 곡식은 모두 토성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도 있으니, 결코 강제로 시켜서 억지로 심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진실로 이 이치를 안다면
농사짓는 집에서는 스스로 적절성 여부를 살펴야만, 미리 마련해두는 방도로 삼을 수 있
화합
14.4. 곡식 성질 따지기 [辨穀性]
농가가 만전을 기하는 방법으로는 반드시 먼저 곡성穀性(곡식의 성질)을 분별하는 일이
니, 그런 다음이라야 실농失農에 따른 한탄을 면할 수 있다. 대체로 모든 곡식은 성질과
이치가 각각 다르니, 올심으면 올되고 늦심으면 늦되는 것은 상식적인 이치이나, 또한 올
심어서 늦되는 것도 있고 늦심어서 올되는 것도 있다. 조와 콩으로 말한다면, 속칭 점물일
이조【져무일리 조】와 같은 것은 기름진 밭에 적당하며, 5월 초에 심고 7월 안으로 익으
니 이것이 곧 늦심어서 올되는 품종이고, 잘외태乽外太【잘외콩】는 기름지고 습한 밭이 좋
은데, 3월이나 4월에 심고 9월이 되어야 익으니 이것은 올심고 늦되는 품종이다.
그 밖에 각 곡식에는 저절로 축축한 것을 싫어하고 파삭한 것을 좋아하는 것도 있고, 파삭
한 것을 싫어하고 축축한 것을 좋아하는 것도 있으며, 기름진 것을 좋아하고 메마른 것을
싫어하는 것도 있으니, 이것이 곡식의 자연스러운 성질이다. 콩, 팥, 조[黍粟] 중에도 역시
메마른 땅이 좋고 기름진 땅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 있고, 기름진 땅과 메마른 땅 모두에서
잘 되는 것이 있으며, 또한 바람을 잘 견디면서 땅을 가리지 않는 것도 있다.
벼 가운데에도 바람을 잘 견디는 것과 바람에 약한 것이 있고, 잎귀[耳]가 여린 것이 있
는가 하면 무딘 것도 있다. 속간俗間에서 말하는 이른바 모산도麰山稻는 성질이 강건하
고 바람을 잘 견뎌서 메마른 땅에 적합하다. 또한 남쪽에 적합하지만 북쪽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 있고, 북쪽에 적합하지만 남쪽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도 있다. 들에 적합하지만
골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 있는가 하면, 골에는 적합한데 들에 적합지 않은 것도 있다. 이
렇게 그 성질과 이치가 온갖 종류마다 서로 다르다.
농사짓는 집에서는 진실로 해마다 정갈한 마음으로 징험을 변별하여, 시후時候의 이르고
늦음, 가물고 큰물 짐, 파삭하거나 눅눅함, 기름지고 메마름의 적합한 바에 따라 갈고 심어
야 한다. 그런 다음이라야 파삭하거나 물이 차거나, 아니면 메마름에 따라 버리는 땅이 없어
지고, 올되거나 늦되거나 높거나 낮은 곡식들이 한결같이 익어갈 것이며, 재해를 입는 해가
없어질 것이다. 【각 곡성穀性(곡식의 성질)과 이치는『 사시찬요초』에 상세히 실려 있다
14.5. 땅의 적합도 살피기 [相土宜]
【황백색 흙은 기장에 적합하고, 검은 분토 땅[黑墳]은 보리에 적합하며, 붉은 흙은 조에
적합하고, 흙탕 솟는 땅[汚泉]은 벼에 적합하다. 흙을 한 자 깊이에서 떠서 맛을 보아, 단
것이 가장 윗길이고, 달지도 짜지도 않은 것이 그 다음이며, 짠 것은 아랫길이다.】
옛사람들은 후직后稷의 농업을 칭찬하면서 그가 토의土宜(땅의 적절함)를 살폈다는 점
을 반드시 언급하였다. 농사를 업으로 삼는 자는 능히 토의를 살핀 다음이라야 농사짓는
방도를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 땅이라는 것은 분토墳土와 양토壤土, 도토塗土, 이토泥土,
여토黎土, 치토埴土, 노토壚土, 척토斥土 등으로 본디부터 토성에 각기 차이가 있다. 찰
지고 매끄러우며 달면서 짜지 않은 것이 윗길이고, 푸석하고 거칠면서 짜고 들떠서 딱딱
한 것이 아랫길이다. 지대가 낮고 습해서 갈아지지 않는 땅이라면, 풀을 베어 저며 두었다
가 서리를 지난 뒤에 두텁게 깔아서 밀을 심으면 토질이 변해 마른 땅이 된다.
설사 그 해에 재해가 들더라도 낭패에 이르는 법이 거의 없다.
14.6. 기후의 적합도 살피기 [占時候]
우러러 하늘을 관찰하고 굽어 땅을 살피라[仰觀俯察]’는 뜻과 ‘사람에 필요한 농사철을
공경히 내려주라[敬授人時]’는 뜻은 모두 경서의 가르침에 분명히 나타난다. 사철의 징후
를 점치는 법은 『사시찬요초』에 상세히 실려 있으니, 갈고 심고 메고 거두는 공력은 역서
를 살피고, 적절한 때에 맞추어 터럭만큼의 착오도 없어야 한다. 그런데 운기運氣의 흐름
은 당연히 옛날과 오늘날 사이에 차이가 있으니, [이 차이를 모른다면―역자] 진실로 이
것이 한밤에 밭을 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점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대체로 모든 곡식에는 각기 이른 것과 늦은 것이 있지만, 그러나 익기 위한 기간이 저마다
필요하니, 당연히 그 필요한 날짜에는 큰 틀이 있기 마련이다. 벼는 150일, 밭곡식은 100
일을 그 큰 범위로 삼는다. 그러므로 벼 중 가장 빠른 것은 혹 백수십 일이면 익고, 가장 느
린 것은 혹 160, 170일에 익는다. 밭곡식 중 가장 빠른 것은 혹 90일에 익고, 가장 느린 것
은 혹 백수십 일이 걸린다. 그래서 그 귀착을 요한다면 모두가 이 큰 범위의 안팎을 벗어
나지 않는 것이다. 대개 춘분일春分日로부터 상강일霜降日까지 그 사이의 일자는 매번
220일 내외이니, 이것이 바로 벼는 이모작을 할 수 없지만,
밭곡식은 두 그루를 갈아먹을수 있는 까닭이다.
하늘의 법칙[天道]은 10년에 한 번씩 변하고, 1년의 운행[歲行]은 60년이면 그 수가 다하
고, 다하면 변하므로, 앞에 있으면 절후가 약간 늦게 된다. 대서大暑가 6월 20일 경에 들
고 상강이 9월 그믐께에 들면 그 사이의 날짜가 90여 일이 된다. 고로 6월 20일 경에 그루
갈이를 한 것은 상강에 때맞추어 익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 농가의 속담에 이르기
를, “6월에 새벽달을 보며 그루갈이를 한 것과 유두일流頭日 전날 모내기를 한 것은 가히
수확을 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근래에 이르러 비록 절후는 같다고 해도 운기가 이미 바
뀌었으니, 그러므로 한로일寒露日 이후가 되면 곡식은 더 익지를 못한다. 농사를 짓는 집
안에서 만일 이 이치를 모른 채 헛되이 절기의 순서만을 외우고 있다면, 때에 늦은 게으른
농부는 번번이 농사에 실패하고 말 것이다.
이것이 만일 믿기지 않거든 봄에 꽃이 피는 철을 시험 삼아 보기 바란다. 옛날에는 모든
꽃이 제각기 피고 지는 순서가 있어서, 버드나무 싹이 먼저 노랗게 돋고 나서 개나리가 이
어서 피고, 진달래와 복숭아, 살구가 선후 사이를 다퉈가며 꽃을 피웠다. 지금은 얼음이
풀리면 이미 늦은 때라, 화창한 봄기운이 재빨리 숨을 쉬고, 봄철 석 달 내 필 꽃들이 모두
일제히 터져 나오니, 뒤늦게 비로소 꽃송이가 열리는 것은 오직 병든 가지의 잔약한 봉오
리들뿐이다. 그러니 씨앗을 맺어서 익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온갖 곡식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개 하지夏至와 소서小暑 때에 천지간의 길러내는 기
운이 왕성하므로, 이때에 맞추어 모내기와 그루갈이를 하여야, 비로소 그 기운을 온전히
받아내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이때를 지나면 이와 같이 될 수 없으니, 이는 옛적과 지금
의 운기가 같지 않은 데에 따른 결과이다. 무릇 농사를 업으로 삼는 자는 이 이치를 알아
서, 곡식과 농기구를 미리 준비해두었다가, 얼음이 풀리기를 기다려서 먼저 갈아서 뿌려
두고, 모가 자라면 바로 먼저 모내기에 나서야 한다. 또 보리와 밀을 심은 밭은 익는 대로
바로 베고, 또 베는 대로 바로 그루갈이하여야 한다. 그런 다음이라야 바야흐로 가을걷이
를 기대할 수 있고, 수확을 이루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물. 불
14.7. 거름과 재 모으기 [聚糞灰]
농가에 전하는 속담에 “남에게 밥 한 그릇은 줘도 재 한 삼태기는 못 준다.”는 말이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너절하고 속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농사를 아는 자인 것만
은 분명하다. 재거름을 모으는 방법에 대해서는 『농사직설』의 앙초조秧草條 아래에 좁은
견해나마 내 생각을 대략 갖추었으니, 다시 거듭하여 더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밭과 논의 거름은 각기 그에 맞는 방도가 있으니, 그 방도를 얻으면 일은
반으로 줄어도 공은 두 배가 된다. 못자리[秧基]로 말하자면, 풀거름[草糞]과 오줌재[尿
灰], 닭똥과 개똥, 볏짚거름[藁草糞], 구벽토舊璧土, 황토와 뗏장[莎草], 참기름찌끼【속
칭 깻묵[ 목]이다.】와 면화, 참나무 갈풀[?葉]과
버들가지[柳枝]로 모두 거름을 만들 수있다.
소위 풋거름이라는 것은, 새로 난 잡초를 채취하여 볕에 쪼여서 펼쳐두고 삶아 다스려가
며 밟힌다. 모판[秧板]을 만들어서 떨군 종자와 모가 기를 얻고 싹을 틔우는 데에는 풋거
름이 최상이다. 고로 잘 자라는 것은 볍씨를 뿌려 모를 부은 후 30여 일이 지나면 가히 옮
겨 심을 만해진다.
오줌재는 미리 말려서 볕을 쬐어두고, 먼저 못자리를 다스려서 판을 만든 다음 물을 뺀다.
그리고 오줌재를 고루 펴서 잠시 볕을 쪼였다가, 다시 물을 대고 종자를 떨군다.
닭똥과 개똥은 주워 모아 잘게 빻고, 그런 다음 모판을 다스려 삶을 때 고루 펴서 잠깐 밟
힌다. 흙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휘저어 뒤섞어지면 작업을 멈추고, 이에 씨를 떨군다.
볏짚거름은 가을과 겨울 이후 볏짚을 외양간과 마구간에 넣고, 소와 말로 하여금 이를 밟
게 하여, 외양간 밖에 구덩이를 파서 쌓아둔 채로 삭히면 거름이 된다. 모판을 다스려 삶
아서 씨앗을 떨구는 것은 풋거름을 쓰는 것과 서로 비슷하다.
구벽토는 아주 잘게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덩어리가 없어지면, 모판을 다스려 삶아서 고
르게 펴고 씨앗을 떨군다. 오줌재와 대략 비슷하지만, 단지 짧게 햇볕을 쪼이는 것을 하지
않는다.
황토는 먼저 모판을 삶아 다스리고, 황토를 가져다가 덩이를 깨서 잘고 반드르르하게 만
든다. 이를 고르게 펴서 씨앗을 떨군다.
뗏장은 가내可乃【속칭 가래】로 뗏장을 떠내고, 먼저 못자리를 만든 다음, 뗏장을 물고기
비늘처럼 이어서 평탄하게 늘어놓아,
풀이 땅과 뿌리를 모두 덮으면서 뗏장에 붙은 흙이위를 향하게 한다. 큰 삽으로 뿌리와 흙을 약간 잘라주고, 뗏장들이 서로 이어지는 간극을
메워준다. 이렇게 전체적으로 모판을 평탄하게 한 다음에 물을 대주며, 며칠이 지난 뒤 씨
를 떨군다.
깻묵은 극진히 빻아서 고운 가루로 만든다. 그 후 모판을 다스려 삶아서 흩어 뿌린 뒤 씨
앗을 떨구는 것은 오줌재와 마찬가지이다.
목화씨는 모판을 다스려 삶은 후 흩어서 펴고 씨를 붙이니, 풋거름과 비슷한 식으로 한다.
갈풀은 꺾어서 볕을 쪼인 후, 못자리를 다스려 삶고, 고르게 펴서 두텁게 덮는다. 힘을 다
해서 밟아주고, 흙과 함께 푹 삭힌[濃釀] 후 모판을 만들어서 씨앗을 떨군다.
버들가지는 새로 난 부드럽고 연한 가지를 베어서 잘게 저민 후, 못자리를 다스려 삶고 고
르게 펴서 밟아주며, 푹 삭혀서 씨앗을 떨구는 것은 갈풀과 비슷한 식으로 한다.
오줌재가 한 섬이면 종자 서 말을 심을 수 있고, 닭똥과 개똥 한 섬이면 종자 닷 말을 심을
수 있으며, 깻묵 한 말이면 종자 서 말을 심을 수 있다. 봄가을의 보리와 밀을 심는 밭은 오
줌재 한 섬을 종자 서 말과 섞는다. 세간 사람들이 외양간 거름과 마구간 거름을 보리밭과
밀밭에 덧거름으로 번번이 밭에 흩어서 펴는데, 이는 단지 그루갈이할 때에만 힘이 될 뿐
으로, 보리와 밀에는 뚜렷한 효험이 없다. 대개 가을보리밭에는 좁은 두둑을 만들고, 이를
따라가면서 씨앗을 떨구는 것이 보통인데, 마땅히 두둑으로 나아가 씨앗을 떨군 자리에
만 거름을 흩어야 그 힘을 오로지 제 것으로 할 수 있다.
구벽토와 구들흙[突土] 같은 경우, 낮고 습한 밭에서는 크게 도움을 받지만, 높고 파삭하고
모래와 돌이 섞인 땅에서는 도리어 가뭄을 만나 시들어버리는 재해를 입는다. 【밭에 거름
을 주고 다스려 삶는 방법은『 농사직설』의 올벼못자리[早稻秧基] 조목 아래에 있다
14.8. 밭흙 다스려 삶기 [治熟田土]
『시경』에 이르기를, “삼을 심는데 어떻게 하는가? 그 두둑을 종횡縱橫으로 하느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종횡으로 한다는 것은 다스려 삶음[治熟]을 말하는 것이다. 먼저 가로로
하고, 다시 세로로 하면, 결국 한 번 갈고 다시 가는 결과로 나타나니, 큰 두둑[大畝]과 작
은 두둑[細疇]을 만듦으로써 사람의 힘을 다하는 것이다.
지금 다스려 삶는 방법으로 말할 것 같으면, 가을에는 덮어갈기[掩耕]를 하는데, 덮어갈기
라는 것은 풀뿌리를 덮어버리면서 이를 갈아내는 일이다. 봄에는 뒤집어갈기[?耕]를 하는
데, 뒤집어갈기라는 것은 이미 갈아진 것을 뒤집어서 고쳐 가는 일이다. 고쳐 갈고 나서 햇
볕을 쪼여 다시 가는 것을 매양埋陽이라고 한다. 매양埋陽이란 것은 햇볕에 쬐인 흙의 양
기陽氣를 땅속에 묻는 일이다. 말리고 햇볕을 쪼여서 양기를 묻고 비를 만나면, 곡식의 싹
이 자라는 것이 거름을 더하는 것보다 나은 점이 있고, 또 장차 모내기할 논에 아직 비가 오
지 않은 채로 갈아서 볕을 쬐고 매양하면, 바야흐로 비를 만나 모내기할 때에 다스려 삶는
일에 들이는 공력이 반드시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매번 가뭄이
들 때마다 헛되이 나태를 일삼고 한가히 놀기만 하니, 때맞추어 매양하는 일의 이로움을
알지 못한다. 대단히 애석한 일이다. 토성土性이 굳어지고 거친 것은 다스려 삶음으로써
곱고 매끄러워지고, 낮고 습한 것은 다스려 삶음으로써 말랐으면서도 기름지게 된다.
덮어갈기는 깊게 해야 마땅하고, 뒤집어갈기는 얕게 해야 마땅하다. 씨를 떨굴 때에는 논
이고 밭이고를 막론하고, 반드시 그 흙덩이를 부숴서 굳어진 것이 없기를 기약하여야 비
로소 좋아질 것이다. 밭두렁에 구溝와 혁洫을 갖추는 것은 옛 제도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전혀 도랑을 닦고 다스리지[修治] 않으니, 그래서 장마로 큰비가 오면 물이 빠
져나가지를 못하고, 곡식 싹이 침수되어 물에 쓸려 사그라지고 만다. 반드시 씨앗을 떨굴
때에 물길을 열고 치워서, 닦고 다스리는 방도를 다한 후에야 좋은 결과를 볼 것이다.
41.14.9. 수원 미리 확보하기 [豫貯水源]
주자의 권농문勸農文에 “저수지[陂塘]를 이용하는 것은 농사의 근본이니, 이를 일으키
고 고쳐가는 데에 마땅히 더욱 힘을 모아야 한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그 뜻이 훌륭한 말이다. 논 답畓 자를 보면 ‘물 수水’와 ‘밭 전田’이 모인 것이니,
논에 물이 없다면 어찌 그것을 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대개 본 땅에서 물이 나는 밭은 물을 끌어다 대는 것만큼 좋지는 않다. 본 땅에 샘이 있으
면 사시사철 마를 때가 없으므로, 혹 물이 차가와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있다. 또한 마땅히
논을 말려야 할 때 말리고, 물을 대야 할 때 대도록 할 수 없어, 사람들이 그 운용의 묘를
발휘할 수 없다. 오직 끌어다가 물을 대는 곳에서만 물꼬를 터뜨리고자 할 때 터뜨릴 수
있고, 대려고 할 때 댈 수 있어 그 조화가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바야흐로 사람의 공력과
물의 이로움을 둘 다 얻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둑[堤]을 고치고 보洑를 쌓는 일에 힘쓰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둑과 보는 반드시 먼저 그 터를 살핀 뒤에라야 효험을 볼 수 있다. 둑을 두는 일은
마땅히 수원水源과 샘줄기[泉脈]가 넓고 깊은 곳으로 나아가, 그곳을 뚫어내고 쳐낸 다음
단단하게 쌓아서 풍족히 모아두어야[貯] 한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매 봄철이 시작될
때마다 둑을 고쳐쌓으니, 이는 실로 물을 모아두는 방도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비록 봄에
들어야 이제 막 물이 생긴다고 하지만 만일 겨울과 봄에 가뭄을 당한다면 도대체 어디에
서 물이 생기겠는가? 반드시 8, 9월 사이에 깊이 쳐내서 넘치도록 모아두고, 단단히 쌓아
새나가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또 얼음이 풀린 후에 혹시 언 흙이 쭈그러지고 무너져서 틈
으로 새는 곳이 있다면, 다시금 더해서 고쳐 다스리고 단단히 쌓아두어야 그 후 쓰임새에
닿을 것이다.
대개 8, 9월 이전에는 장마로 비가 거듭 내려서 물이 고여 넘쳐나기 쉬우니, 둑이 무너지
고 터지는 사태가 생길까 두렵다. 또 비록 무너져 터지지는 않더라도 물이 흐르면서 모래
가 덮어지면, 깊은 곳은 메워지고 쳐낸 곳은 막히는 것이 필연적인 이치이다. 그렇다고 이
미 쳐낸 곳을 또 쳐내는 것은 백성의 힘을 헛되이 낭비하는 일이다. 만일 8, 9월 이후라면
산천이 닫아걸어지는[閉藏] 때라 물이 떨어지고 샘이 마르니, 아무리 깊게 쳐내더라도 결
코 물을 넘치도록 모아둘 도리가 없다. 반드시 8, 9월에 해야만 적당하니, 이르지도 않고
계절
14.10. 때 맞춰 김매고 수확하기 [及時鋤穫]
맹자孟子는 “100무의 밭농사에 제때를 빼앗지 말라.”고 가르쳤다. 이것은 백성을 동원
하는 일에 제때를 기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농민 스스로가 김매고 수확하는 일로 말하더
라도, 역시 잠시라도 때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대개 농민이 농사를 짓는 것은 잠부蠶婦가
양잠을 하는 일과 마찬가지이다. 누에는 누에채반을 씻는 날부터 세 벌 잠을 재우고, 섶에
올리기까지에 이르면 누에치는 일은 거의 끝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누에고치를 따 켜
서 실을 빼낸 이후라야 바야흐로 그 공을 거두게 된다. 농부[田夫]라면 언제나 부지런하
고 또 미리 대비하면서, 다스려 삶고 물을 모아두는 등의 일을 해나간다. 그렇지만 특히
김매고 수확하는 철에, 혹 단 하나라도 부지런하지 않은 점이 있다면, 이는 앞서 쌓아온
공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 되고 만다.
바야흐로 여름철의 모내기 때는 잠깐의 시간조차 다투게 되니, 아침에 심은 모는 해질 녘
이미 푸르게 변해가고, 어제 심은 것은 오늘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루갈이로 심은
보리와 밀은 저녁이면 벌써 눈이 트고, 어제 뿌린 씨앗은 오늘 벌써 싹이 돋는다. 제초하
는 일은 오늘 하지 않으면 내일 풀이 더욱 무성해져서 모는 더욱 시달리게 되며, 어제 미
리 제초해두었다면 오늘 이미 모는 되살아나고 줄기는 새 눈을 틔우려고 한다. 또한 하물
며 하늘의 때와 사람의 일임에랴 매번 미리 헤아려두기가 어려우니, 만약 큰 비가 닥치면
논은 물이 깊어 호미질하기가 어렵고, 밭은 진창이 져서 호미를 들일 수조차 없다. 또 혹
시 집안에 무슨 사고가 생길지 모르니, 이때 하루나 이틀만 늦어지더라도 끝내 농사를 망
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결과가 되고 만다.
또 갈아서 심고 호미로 김매는 일이 모두 때맞춰 이루어졌더라도, 그것이 익어 여물어지
는 날에 때맞춰 수확하지 못하면, 혹 오랜 비나 바람, 우박 같은 재해가 닥칠 수도 있다. 그
러면 일 년이 다하도록 두 눈 부릅뜨고 갖은 고생으로 키워낸 곡식이 밭두렁에 시들어 버
려진 채 헛되게도 새와 쥐들의 먹이가 되고 마니,
이런 까닭에 옛사람들이 “거두어들이기는 불을 끄듯 하라.”고 한 것이다.
세 가지 농사[三農]에 공을 들임은 오로지 거두어들여서
타작마당에 올리는 날에 달려 있는 것이다.
우하영의 천일록 --농가총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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