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조정래
■ 핵심정리
▪ 갈래 : 대하소설
▪ 배경 : 시간적-경술국치 전 ~ 8.15해방
공간적-전북(김제평야, 군산항), 하와이 만주, 중앙아시아, 소련국경
▪ 시점 :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
▪ 주제 : 일제시대를 살아온 우리민족의 수난사와 투쟁사, 이민사
■작가 조정래
소설가. 전라남도 순천(順天)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70년 《현대문학》에 단편 <누명>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83∼86년 쓴 대하소설 《태백산맥(전 10권)》은 해방 직후부터 육이오까지를 배경으로 좌우 양세력을 객관적으로 묘사한 것이며 금기되었던 좌익의 복권을 기도한 점이 평판을 받았다. 그 뒤 전편(前編)에 해당하는 일제시대를 무대로 한 《아리랑(전 10권, 1995)》을 완성시키고, 98년 5월부터는 4월혁명부터 90년대 초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대하소설 <한강>을 《한겨레신문》에 연재했는데 이는 작자의 말을 빌리면 또다른 금기인 <북한>을 같은 민족으로 객관화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한다. 위 대하소설을 제외한 작품을 모은 《조정래문학전집(전 10권, 1999)》이 있다. 97년 동국대 국문과 석좌교수에 취임했으며 2000 민족문학작가회의 자문위원이다.
■ 줄거리(요약)
한일합방을 앞두고 김제군 죽산면에 사는 감골댁의 아들 방영근은 빚 20원에 하와이에 역부로 팔려간다. 그 무렵 일본인들의 조선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하시모토와 쓰지무라는 죽산면 일대의 땅을 모조리 차지하려는 야심을 품는다. 백종두, 장덕풍 등은 이러한 시류에 편승해 친일과 돈벌기에 혈안이 된 자들이다. 한편 개화사상을 지닌 양반 출신 송수익 신세호 등은 외세에 대항해 의병활동을 전개하고 승려인 공허도 의병항쟁에 뛰어든다. 송수익은 항쟁 중 부상을 당해 공허의 안내로 암자에서 치료를 받게 되고, 이때 송수익이 죽었다는 소문을 퍼뜨린다.
그 무렵 의병활동에 참여했던 지삼출과 손판석은 의병활동이 해산되자, 일본군에게 잡힐 뻔한 위기를 간신히 모면하고 가족들을 데리고 만주로 떠난다. 감골댁의 가족들도 여기에 합류한다.
감골댁의 딸 보름이와 수국이는 지주의 아들과 일본 앞잡이들의 괴롭힘을 당하며 몸을 버린 뒤, 험난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 당시 방영근을 비롯 하와이에서 노예 같은 삶을 살아가던 한인들은 악독 농장주에 대항해 쟁의를 일으키고 한인회를 결성해 힘을 도모한다.
송수익은 만주로 가서 독립군을 이끌며 대종교로 입교한다. 신세호는 송수익과 사돈을 맺어 그의 가족들을 돌보며 그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보탠다. 그 무렵 알제에 의해 토지조사가 실시된다. 만주와 조선을 오가며 독립자금을 모으던 공허는 송수익을 마음에 두고 있던 청상과부 홍씨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결국 아들을 두기까지 한다.
일본의 앞잡이가 된 양치성은 신분을 숨기고 송수익의 행방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수국이를 협박해 강제로 동거를 한다. 그러던 중 만주에서 일본토벌대의 조선인 살육이 자행되면서 양치성의 농간으로 감골댁도 비참하게 죽고 만다. 시대의 암울함 속에 3.1운동의 소식이 들려온다.
그 즈음 사회주의 운동이 거세지면서 정 부자집 셋째 정도규는 사회주의자가 되어 소작투쟁을 선동한다. 연해주 빨치산 이광민, 윤철훈, 윤선숙 등이 합류한다. 그러자 이미 죽산면의 땅을 반 이상 차지한 거대 지주 하시모토는 공산주의자 색출에 열을 올린다.
무정부투쟁을 계획하던 송수익은 주장록의 배신으로 관동군에게 잡히고 만다. 송수익은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결국 모진 고문 끝에 옥사한다. 송수익의 아들 송가원과 중원은 각각 아버지의 뜻을 이어 독립운동에 헌신한다. 공허는 보름이의 아들이자 혈청단원인 오삼봉을 데리고 압록강을 건너다 총에 맞아 한 많은 생을 마감한다.
그 무렵 한인 20만 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하고 동북 항일연군 소탕령이 발동되어 많은 조선독립군이 전사한다. 조국을 위해 싸우던 많은 이들이 생체실험과 강제징용의 희생자가 되어 목숨을 잃는다. 마침내 일본의 패전 소식이 들려온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만주에 있는 조선사람들을 죽이겠다고 몰려오면서, 이들은 고향땅을 밟지 못한 채 광막한 만주로 다시 유랑하게 된다.
■ 이해와 감상
‘아리랑’은 12권의 대하소설이다. 한일합방 직전부터 8·15 광복까지가 시대 배경이고 김제 만경평야, 군산항구에서부터 하와이, 만주, 중앙아시아, 소만국경 등 한국 유민(流民)과 저항세력들의 발길이 닿았던 많은 지역들이 이 대하소설의 공간이다. 전 4부로 구성된 이 소설의 각 부별 골격은 다음과 같다.
[제1부]: 김제의 소작농 방영근은 빚 20원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팔려간다. 친일파 백종두는 일진회 군산지부장이 되고 진보적 지식인 송수익은 의병투쟁에 나선다. 토지조사사업이 전국적으로 시행되자 수많은 농민들은 졸지에 땅을 빼앗기고 산발적 시위에 가담했던 농민들은 총살당하거나 징역을 산다.
[제2부]: 하와이에서는 거류민 조직이 결성되고 3·1운동이 일어나고, 만주에서는 여려 계파의 단체들이 항일투쟁을 전개하는 등 한민족의 대반격이 시작된다. 송수익은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 대장이 되고, 대종교에 입신(入信)한다. 그 당시 재만 민족주의 진영 항일무력의 주력은 대종교의 지도력 밑에 있었다.
방영근의 동생 방대근은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토벌대는 재만 한인들을 무차별 학살한다. 방영근의 어머니 감골댁은 이때 살해된다. 한편 김제평야에서는 하시모도가 죽산면의 농토를 반 이상 차지한다.
[제3부]: 관동대지진으로 재일 한국인들은 무참하게 살해된다. 국내외에서 공산주의 운동은 다양한 이념의 갈래를 보이며 항일운동으로 나아간다. 부잣집 아들 정도규는 사회주의자가 되고, 연해주 빨치산에 가담한다. 송수익은 관동군에 체포되고 국내에서 지주 하시모도의 권력과 횡포는 날로 커간다.
[제4부]: 일본군의 재만 조선 독립군 토벌 작전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조선 독립군은 참혹하게 무너져가면서 결사 항전한다. 재만 한인 20만 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하고, 일본군은 진주만을 기습한다.
조선여자들은 정신대로 끌려나간다. 관동군에 붙잡힌 송수익은 징역 15년을 받고 복역 중 옥사한다. 송수익이 옥사하자 그의 아들 송가원(의사)은 의업을 포기하고 광복군에 가담한다.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러시아는 선전포고를 한다. 만주에서 일본의 힘이 빠져나가자 중국인들은 조선인들의 농토를 빼앗기 위해 쇠스랑을 들고 몰려온다. 조선인들은 다시 유랑의 길로 나선다. 이것이 8·15 해방이다.
■등장 인물 연구
[감골댁]
동학군 남편의 병구환으로 진 빚 때문에 맏아들이 하와이로 팔려가며, 빼어난 미모 때문에 두 딸이 지주 및 일본 앞잡이에게 수모를 당하는 등 수난을 겪는다.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 경신 참변시 일본군에 피살된다. 뼈저린 가난속에서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는 민족 정신의 숭고함을 보여준다
[방영근(감골댁 장남)]
아버지가 진 빚을 갚기 위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팔려가 귀국할 날을 기다리나, 낮은 보수로 어렵게 되자 체념 상태에서 오욕의 생활을 보내면서 뒤늦게 결혼한다.
[방보름(감골댁 장녀)] <순응주의자, 운명론자>
부호인 김참봉이 첩으로 탐하자 무주댁(지삼출 처)의 중매로 무주 오씨와 결혼한다. 시아버지와 남편이 토지조사사업 반대 및 의병활동 혐의로 총살당하자, 아들 오삼봉과 함께 군산에서 손판석의 도움으로 생계 유지. 친일파인 장칠문, 서무룡, 일본 형사계장 등에게 농락당함.
[방수국(감골댁 3녀)] <반항주의, 운명개척론자>
빼어난 미모로 자신을 첩으로 삼으려는 일인 하시모토를 피해 가족과 함께 군산으로 이사. 백종두의 미선소에 다니던 중 그 아들 백남일에게 겁탈당하자 동생 방대근이 백남일을 폭행하고, 가족과 함께 송수익을 따라 만주에서 생활하던 중 일본 밀정인 양치성의 꾀임으로 동거하다 그 사실을 알고 양치성을 칼로 찌르고 도주한다. 독립군으로 활동하다 전사함.
[방대근(감골댁 막내)]
동학군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적극적이며 투쟁적. 누이 수국이가 백남일에게 겁탈 당하자 그를 폭행하고 송수익을 따라 만주에서 독립활동(만주 신흥무관학교 졸업. 김좌진 독립군 소대장, 의열단, 항일연군 한국광복군 비밀감찰대장 등) 무장 항일 투사가 된다. 이름이 상징하듯 소설의 큰 뿌리로서 끝까지 생존한다.
[지삼출]
머슴 출신으로 감골댁 남편과 함께 동학 농민군으로 투쟁했던 빈농출신의 전형적 투사이며, 감골댁 이웃으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감. 방영근이 하와이 이민 보상금 일부를 장칠문에게 떼이자 그를 폭행하고 감옥 생활 대신으로 경부선 철도 공사장에서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고, 국내에서 의병 활동 후 군산 부두 노동자를 거쳐(방수국을 겁탈한 백남일을 방대근과 함께 폭행) 송수익을 따라 만주 일대에서 투쟁한 송수익의 분신격 임.
[송수익]
중소지주출신으로 하인에게 존대 말을 쓸 정도로 구습타파, 진취적 이며 민주적이다. 일본인의 앞장을 서서 논 팔라고 권하는 사람을 혼냈다가 헌병대에 잡혀간 것을 문중의 구명운동으로 풀려나 무력투쟁주의자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의병활동을 전개하여 승승장구하나 일본군의 의병 대토벌작전에 밀려 의병대를 해산하고 후일을 기약한다. 의병이었던 배두성, 화전민 양승일, 김판술, 손필녀, 천수동 등을 이끌고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에 가담한다. 독립운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대종교에 입교하는 등 그때 그때 적시대적인 사상과 명분을 찾는 이념분자로서 인품과 덕망이 뛰어난 만주와 김제평야 전역에 걸친 투쟁의 권위자이다. 관동군 총사령관 살해 음모로 관동군에 잡혀 15년 징역 선고를 받고 복역하다가 옥사한다. 독립투쟁의 계보가 의병 활동에서 만주독립군 항쟁으로 이어짐을 확인하는 인물.
[정도규] (정상규의 동생)
형(재규, 상규)들 재산 싸움을 중재하는 등 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유생으로서, 일본 유학을 마치고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 3년간의 옥고를 치루기도 한다. 위장전술로 친일단체인 국민총력연맹 만경지부장이 되어 지하노동운동을 한다.
[손판석]
지삼출과 의병 활동 중 붙잡혀 신작로 공사장에서 노역하다 탈출하여 군산 부두에서 노동자로 일한다. 중국인 노동자들과 부두 일자리 두고 싸우다 다리 불구가 되며, 서무룡의 중재로 쌀 창고 십장으로 일하면서 방보름이를 낙미쓸이로 취업시켜 주는 등 도움을 준다. 공허 스님과 독립군 연락책으로 활동
[백종두]
아전 출신으로 물욕과 출세욕이 강하며, 아전 콤플렉스로 양반에 대한 반감이 크다. 친일을 이익 챙기기로 활용, 일진회 군산 지부장, 백산면장, 호남친화회장을 거치며 군수가 되기를 꿈꾸기도 한다. 일진회원을 이끌고 만세시위 진압을 하다 몰매를 맞아 죽는다.
[양치성]
아버지가 죽은 뒤 빚 돈으로 초가집 마저 내주고 어머니와 어린 다섯 남매의 생계를 위해 일본인을 상대로 구걸 생활을 하던 중, 우체국장(하야가와)의 눈에 띄어 우체국 소사로 근무하게 된다. 하야가와의 추천으로 일본 첩보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황국신민이 되기를 열망하는 극악한 일본 첩보원이 된다. 송수익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밀정으로 만주에 투입되어 활동하던 중, 방수국의 미모를 탐해 형사와 모의하여 강압적으로 동거하기도 한다. 경찰서장이 되기를 꿈꾸기도 하나 한국인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 전체 줄거리
제1부 : 아 ! 한반도<1권,2권,3권>
<제 1권>
1. 역부의 길
동학농민군에 가담했던 감골댁과 지삼출네 가족은 서로 의지해 가며 살아간다. 감골댁은 동학농민혁명의 후유증으로 앓고 있던 남편의 병 수발 때문에 김가에게 18원의 빚을 진다. 김가는 빚을 갚든지 큰 딸 보름이를 내놓으라 감골댁을 닥달하자, 감골댁 큰아들 방영근은 가족을 위해 군산 대륙식민회사에서 모집하는 하와이 이민으로 20원에 팔려가게 된다. 이민 계약금 중 18원은 빚을 갚고 2원은 받아야 되나 군산 대륙식민회사 마름 장칠문 (보부상 출신으로 잡화상을 운영하는 친일파 장덕풍의 아들)이 김가에게 넘겨주었다고 거짓말하며 착복하자, 지삼출이 장칠문을 한번 들이받고 주재소에 갇힌다.
2. 철도공사장 일꾼
구속된 지삼출이 일본 헌병으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하며 "왜 일본인이 조선 사람을 패냐! 우리 관가로 보내라"고 항변하자 조선땅의 치안은 일본군에 넘겨졌다는 말을 듣고, 동학농민혁명의 실패를 한탄한다. 통변이 지삼출에게 징역살이하든지 철도 공사장 일꾼으로 가든지 선택하라고 하자 철도 공사장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경부선(영동-추풍령) 철도 공사장에 끌려 간 지삼출은 공사장에 끌려 온 부역자 및 노역자들이 부당하게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것을 보고 분개하며, 동학군에 참가했던 경상도 출신 강기호와 의기투합한다. 일본은 우체국을 세워 조선말을 익힌 일본인들을 배치, 정보수집하며, 일인들은 김제 만경들판을 휘젓고 다니며 돈을 풀어 논을 사들인다.
3. 일본말을 배워라
동학혁명 당시 집강소에서 일하는 등 시세의 흐름에 순응하며 치부하는 이방 백종두는 자신의 신분적 열등감으로 신분적으로 자신을 무시하는 자들에게 가장 화가 치민다. 그는 일어만 배우면 급료 좋고 권세 잡을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아들과 함께 일어학원에 다니게 된다. 아들 백남일이 일어 배우기를 소홀히 하자 일찍이 결혼시키기 전에 일어학원에 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열심히 일어 배울 것을 아들에게 강요한다.
4. 거미줄
일본은 우체국 조직망을 통해 정보수집 한다. 목포우체국 군산 출장소장 하야가와는 보부상 출신 장덕풍을 정보조직원으로 매수한다. 장덕풍은 대륙회사에서 이민 모집인으로 근무하는 아들 장칠문이 이민 희망자가 없다고 푸념하며 다른 일자리를 구해달라고 부탁하자, 동학농민군에 가담했던 자를 찾아내면 출세시켜 주겠다며 계속 대륙회사에서 일하면서 정보 활동을 하도록 권유한다. 또한 보부상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기도 한다. 하야가와는 어린이들에게 사탕을 주고, 엿장사 노인네들에게는 사탕이 들어오자 잘 팔리지 않는 엿을 사주면서 대화하는 중에 정보를 얻으려 하며, 조선땅을 송두리째 일본 손아귀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영사관 서기 쓰지무라로 부터 모종의 정치적 변화(한일조약)에 대비, 정보활동에 만전을 기하라고 당부를 받자 장덕풍을 위시한 자신의 조직원들을 점검한다. 그는 거지 행각을 하는 소년 양치성을 거둬 우체국 소사로 일하게 하며, 어머니 병 안부를 묻는 등 친절을 베푸는 듯 하면서 먼 앞날을 내다보고 올가미를 만들어 가는 일종의 최면술 술책을 쓴다.
5. 이민이냐 노예냐
방영근을 포함한 하와이 이민자 120 여명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욕설과 채찍질을 당하며 노예 같은 생활을 한다. 열대의 7월 햇빛 아래 열대성 잡초를 제거하고 농토를 만들기 위한 개간사업에 동원된 이민자들은 아침 5시부터 오후 9시까지 혹사당하면서 집에 갈 날을 고대하며 "몸이나 성허도록 헙시다"며 자위한다. 그들은 100달러씩 농장에 빚을 지고 있으며(배타기 전 받은 20원과 하와이까지의 배 삯) 매달 노임이 15달러라는 사실을 알고 생활비를 공제하면 빚을 갚기가 어렵다는 생각으로 한숨을 지며 백인들의 부당한 대우에 분개한다.
※ 하와이 이민은 노동력 충당을 위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협회에서 주한 미국공사 알렌을 통해 교섭하였으며, 고종은 1902년 11월 수민원을 설치, 12월 22일 인천항에서 처음 121명을 떠나 보냈다.
6. 돈바람. 땅춤.
일본인 대농장(주) 상무 모리야마와 총지배인 요시다는 야산에 올라 8월을 앞둔 김제 만경들녘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드넓은 평야에 감탄한다. 모리야마는 항구가 가까워 수송이 편리함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논이란 논은 닥치는대로 사들이도록 주문하며, 조선의 치안권을 장악한 것은 조선 땅의 진출을 쉽게 하기 위한 것이니 주재소의 협조를 받으라고 한다. 친러파로 아관파천을 주도했던 이완용이 정치상황이 달라지자 친일파로 변신하며, 진봉면 일대의 논을 팔았다는 소문과 함께 1원씩 하는 갯논을 일본인들이 3원에 사들이자 많은 갯논 소유자들이 현혹되어 갯논을 팔게 된다. 요시다는 몰락 양반 이동만을 고용하여 논 사들이기에 열을 올리며, 논을 팔지 말라고 선동하는 사람을 찾아내라고 호통을 친다. 이동만은 만경에 사는 만석군의 아들 정재규의 논을 사들이려 술수를 쓴다.
7. 일진회 지부
8월 중순을 넘기면서 호남평야의 가마솥 더위는 한풀 꺾이며 아침저녁으로 선들바람이 불게 되며, 고문정치인 한일협약이 체결된다. 일본 영사관 서기 쓰지무라와 일본인 첩보원 목포우체국 군산출장소장 하야가와는 현직 이방인 백종두에게 고문정치에 대해 묻자 백종두는 "그 고문이라는 게, 그게 자문이라는 것과 같은 뜻이고, 그러니까 서로 협조하는 정도가 아닌가요..."라고 말하자, 쓰지무라는 일본 사람이 직접 정치를 하는 것이라 말한다. 쓰지무라는 ‘일진회는 일본이 반도 땅에 진출하는 것을 지지하며 그 회장은 일본인과 동격 유대를 맺고, 모든 편의와 혜택을 제공하고, 장래를 보장한다’며 백종두에게 회장직을 권유하자 그는 기꺼이 수락한다. 쓰지무라는 백종두에게 상투를 자르라 말하며, 장덕풍은 아들 장칠문에게 대륙회사를 그만두고 일진회에 가입하라고 강요하자 장칠문은 건달 60 여명과 함께 일진회원이 된다.
8. 차라리 죽자
감골댁은 큰 아들 방영근이 이민을 떠나자 혼자힘으로 다섯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에 힘에 겨워한다. 김참봉이 매파를 통해 감골댁 장녀 보름이를 논 5마지기에 첩으로 삼으려 하자, 감골댁은 첩살이시키느니 차라리 온 식구가 굶어죽는 게 낫다고 작정한다. 보름이가 저 하나 희생하면 집안 식구들이 편하게 살겠다는 생각으로 어머니 몰래 첩으로 가려하자, 감골댁은 「새끼 팔아 배 채우는 부모 봤고, 언니 누님 팔아 호식하는 동상덜 니 봤냐, 느그 아부지가 저 시상서 피를 토헐 일이고, 느그 오빠가 타국서 환장허고 죽을 일이다. 굶어도 함게 굶자」며 눈물을 흘린다. 보름이, 작은 딸 정분이, 막내 딸 수국이, 막내 아들 대근이도 어머니의 팔을 붙들며 함께 울음을 터뜨린다. 감골댁은 지삼출 아내 무주댁에게 보름이의 혼처를 부탁한다. 무주댁은 어떤 철도 공사장에서 일본인과의 패싸움으로 사람이 죽고 다쳤다는 소문에 남편이 걱정되어 송수익에게 사실 여부를 묻는다. 송수익이 황성신문을 보고 지삼출이 일하는 곳이 아니라고 말하자 안심한다. 송수익은 사랑채를 비우고 학교를 차려 공짜로 아이들을 가르쳤으나 일제의 강압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방대근이 그 학교에 신바람 나게 다니다가 정처를 잃고 김제에 세워진 학교에 보내달라 졸라대나 보내지 못하는 신세를 감골댁은 한탄한다.
9. 어떤 양반
수학 동문인 송수익과 정재규는 황금빛으로 물들은 들녘을 걸으며 대화한다. - 정재규 : 「에이 이놈에 갓, 답답해서 원」 - 송수익 : 「그리 답답하면 나 모양으로 상투를 잘라내면 될 것 아닌가」 송수익은 진취적이고 개화의식을 갖고 있으며, 정재규는 아직 생각을 바꾸지 못한 흔한 양반 중의 한 사람이었다. 송수익이 만석군 아들 정재규에게 신학문 교육을 위해 학교를 세우자고 제의하나 정재규는 거절한다. 벌판이 넓은 만큼 부자도 많았지만 찾아갈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재산을 탐하지 말고 바르게 살라는 아버지의 유지를 지키며 살려고 애써왔던 송수익이 가진 재산은 논 40마지기가 전부였다. 주막집에서 술을 마시던 송수익은 아랫마을에 사는 이서방이 일본 앞잡이로 부터 논을 팔라고 회유 당하는 것을 듣고 일본 앞잡이를 혼내며, 이서방에게는 "논을 파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라며 설득한다. 이 때문에 주재소에 끌려가나 문중의 압력으로 풀려난다. 한편 철도 공사장에 끌려갔던 지삼출이 돌아와 마을 주민 임덕구, 주성춘, 손판석 등과 어울리며, 손판석이 일진회에 함께 가입 하자고 권유하자 송수익은 일본 앞잡이 단체라고 반대한다.
10. 겨울 들녘
탐스럽게 내리는 눈을 보며 보름이는 "저것이 다 쌀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물 한 사발로 허기진 배를 달랜다. 사랑방에 모인 주성춘, 손판석, 임덕구, 지삼출 등 마을 주민들은 금산사 미륵불이 통곡했다는 소문에 무슨 큰 탈이 발생할 징조라며 침통해 하면서 참새몰이에 나선다. 새몰이 쪽에 낀 지삼출은 대숲이 우는 소리를 들으며 동학 농민군들의 혼이 대통 속에 사는 것이라 믿는다. 설을 고비로 추위가 고비를 떨구고, 대보름을 맞은 마을 주민들은 달맞이 달집태우기를 하며 묵은 액을 불사르고 새해 농사가 잘되게 해달라 기원한다. 아이들은 들녘에서 쥐불놀이, 총각들은 당산나무 아래서 들돌들기, 처녀들은 지신밟기 등의 민속놀이를 한다. 요시다의 고용인 이동만은 논을 팔고 소작을 얻으려는 사람들로부터 뇌물을 받는 등 악행을 저지르며, 요시다는 정재규에게 100원(논 20마지기 상당액)을 술빚으로 빌려주고 기한 날자가 지났다는 술수로 담보했던 논 40마지기를 떼 먹는다.
11. 혼탁한 물결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군산 포구를 드나드는 배들이 부쩍 늘었다. 그 배들이 실어 오는 것은 대부분 광목, 석유, 성냥, 남포등, 잡화 등 소비상품이었으며, 실어 가는 것은 쌀이었다. 돈푼깨나 있는 사람들은 눈앞의 편리와 과시욕에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이익보는 자는 일본 장삿꾼이었고 가난한 자들은 춘궁이 더욱 가혹했다. 잡화상 주인 장덕풍은 백종두에게 쌀을 팔아 석유를 사두라고 알려준다. 그는 영사관을 통해 화폐조례에 따라 국고를 전부 일본 제일은행에서 취급하게 되고 돈이 일본 돈으로 바뀌게 되면, 묵주장이들이 만들어낸 가짜돈은 돈 취급을 받지 못해, 돈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그만큼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인 영사관 쓰지무라는 일진회원들을 전주 부민들과 싸우게 한다. 그는 군산과는 달리 서문 밖에서 배돌아야 하는 일인들의 열세를 모면하고, 일진회의 세력을 확장 꾀하려는 것이었다. 백종두는 아들 백남일이 일어학원에도 나가지 않으며 건달 생활을 하자. 경성 양정의숙에 강압적으로 입학시키며, 쓰지무라는 백종두에게 일로전쟁에서 통변을 맡았으며, 농장을 차리려는 하시모토를 소개하며 적극적으로 도와주라고 이른다.
12. 우리 어찌 살거나
군산 포구를 통해 일본 장삿배들이 일인들을 몇 명씩 떨구어 놓는다. 그 숨어들 듯 하는 일인들로 군산은 인구비율마저 뒤바뀌어 가고 있었다. 또한 군함을 통해 수백명씩 일본 군인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금산사 미륵불과 은진미륵이 통곡했다는 등의 흉흉한 소문들이 떠도는 가운데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었다. 송수익은 절망감과 저항감을 일으키며 수학 동문인 유생 신세호를 찾아간다. 신세호가 대한십삼도유약소의 이름으로 상소를 올렸다고 하자, 송수익은 "힘이 없어진 상감께 상소를 올리는 것은 상감의 피를 마르게 하는 고통을 드리는 것 뿐"이라며 일본군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신세호가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며 차근차근 생각해 보는게 좋겠다"라고 말하자, 송수익은 유생들의 허약함과 배신감을 느낀다. 신세호는 송수익과 뜻이 같다며 임병서를 소개한다. 하야가와는 보호조약에 반대해 의병을 모은다는 소문이 있다며 장덕풍에게 의병가담자들을 색출하라고 지시한다. 한편 송수익은 신세호가 소개한 임병서와 은밀하게 접촉하면서 의병을 조직한다. 그는 지삼출과 손판석에게 갑오년에 일어났던 사람들을 찾도록 한다.
13. 장례식
방영근과 함께 하와이에 이민한 주만상이 심한 노동으로 병이 든 데다, 가시에 찔린 다리를 치료받지 못한 체 노동에 시달리다 죽게 된다. 농장 지배인들이 자기네들이 알아서 장례를 치른다고 하나, 방영근 등 이민자들은 합심하여 그에 반대하고 조선식으로 장례를 치른다. 상여는 상여꾼들의 길닦음 소리에 이어 누군가가 시작한 아리랑 노래를 구성지고 눈물겹고 서럽고 한스러운 가락을 이끌며 나간다.
< 제 2 권>
14. 횃불 횃불 횃불
들녘의 봄기운이 아련하게 어렸다. 그 아련함은 땅에서 하늘까지 자욱했다. 송수익과 임병서는 충청도 의병이 일본군에 패했다는 소식과 함께, 전투에 능한 일본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방마다 산발되어 있는 의병들이 힘을 합치는 것이 급선무라고 합의 하면서도 의병들이 지리가 밝은 것을 이용해 산병전으로 대항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쓰지무라는 백종두에게 일진회원들을 몰아쳐 의병활동을 사전에 탐지해내라 지시하자, 백종두는 회원들을 2명씩 짝 지워 동네를 지정해 주고 의병가담자를 찾아내라고 윽박지른다. 지삼출과 손판석은 의병을 색출하려는 일진회원을 야산으로 유인하여 살해하고 총 2정을 탈취한다. 헌병과 일진회원들이 설치고 다니는 가운데 경상북도에서 신 돌석이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문과 함께, 지삼출과 손판석은 의병 봉기를 고대한다. 5월 중순 송수익, 지삼출, 손판석은 전북 태인에서 봉기한 최익현, 임병찬 의병대에 가담한다.
15. 장마의 계절
쓰지무라는 백종두에게 하야가와는 장덕풍에게 의병색출을 못한다고 호통을 친다. 의병을 쫓는 회오리 바람은 호남평야 곳곳에서 거칠게 일어난다. 새로 급파된 일본군 토벌대를 필두로 주재소 병력이 뒤따르고, 다시 그 뒤를 일진회원들이 떠 받쳤다. 일곱 사람이 집을 떠난 송수익네 마을은 쑥밭이 되고 만다. 지삼출 아내 무주댁은 헌병에게 맞아 기절하고, 송수익의 어머니 이씨와 아내 안씨는 결박을 당한다. 한편 태인에서 깃발을 올린 최익현 휘하 의병들은 정읍을 거쳐 내장산→임실군→순창군에 이르러 적에게 포위 당한다. 송수익 부대원 40명중 생존자는 26명이었다. 이날 일본군에 생포된 사람들은 100 여명이 되었다. 생포자들은 각기 자기 동네로 끌려갔다. 의병 강서방과 주성춘이 생포되어 지삼출네 마을로 끌려와 마을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일본 헌병들의 총창에 찔려 사살된다. 강서방의 아내 정읍댁과 주성춘의 아내 만경댁은 실성한다. 강서방과 주성춘의 장례는 앞으로 마을 누구도 의병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서약으로 7일만에 치러진다.
16. 신작로
농토를 확보해 가며 군산의 농장조합에 가입한 회사마다 일본 농민들을 끌어들인다. 이동만은 요시다의 지시에 따라 그런 일본 이민들의 안내를 맡는다. 호남평야에서 제일 먼저 전주-군산간 신작로가 건설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하시모토는 당분간 농지구입을 보류하고 염전사업을 계획한다. 백종두는 하시모토의 염전사업을 도울 테니 자기의 벼슬자리를 쓰지무라에게 부탁해 달라고 한다. 신작로 개설을 위해 측량기사들이 깃대를 아무 논에나 꽂고 다닌다. 정재규는 자기 논에서 측량을 하고 있는 기사들을 낫을 휘드르며 쫒아내고, 김참봉은 자기 논을 제외시켜 달라고 술을 사주기도 한다.
17. 서로 다른 길
눈이 내리고 있었다. 산이 깊어 적막도 깊었다. 송수익과 유기석의 의병대원 서른여덟명이 동굴에 모여 앞날을 협의한다. 유생 출신 유기석은 하산하여 후일을 기약하자고 하며, 송수익은 "의병으로 나선 것은 자발적이며 전과가 아니므로 왜놈들 앞에 무릎을 꿇는 비겁을 저질러서는 안된다."며 싸우면서 힘을 기르자고 한다. 유기석을 따르는 자는 양반 둘과 그의 머슴 등 세 사람이었다. 송수익은 의병부대를 선봉·좌군·우군 등 소조직으로 재편성하여 기습전과 유인전으로 주재소 등을 습격하였다. 일본 군경의 토벌작전은 더 드세고 거칠어졌다. 각 면마다 자위단이라는 것을 만들어 의병을 막게 하고 각종 정보를 수집하거나 보고하게 했다. 각 의병대는 독자적으로 활동을 해 나가면서 필요한 경우에 협동작전을 펼치곤 했다. 스무 명 남짓한 승려들과 열 댓 명의 민간으로 이루어진 부대를 이끌고 있는 공허는 협동작전 중에 송수익을 만나게 된다.
18. 샌프란시스코의 총성
하와이에서는 방영근, 남용석 등은 농장의 고용 계약기간 2년이 만료되면서 거의 풀려나게 되었으나 수중에 든 돈은 배 삯이 어림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하와이에서 돈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방영근과 남용석은 도로 공사장에서 돈을 모아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려 하나 법의 개정으로 떠나지 못하게 되자 실망하게 된다. 장인환과 전명운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티븐스를 암살하자 하와이 이민자들이 모금운동을 벌이며, 통역자로 선정된 이승만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여 동포들로부터 환영을 받으나, 비싼 호텔에 투숙하다 재판이 연기되어 떠나버리자 그는 실망과 원성의 대상이 된다.
19. 남한 대토벌
장인환이 외교고문 스티븐스를 암살한 사건소식이 조선 천지에 퍼지고, 의병들의 세력이 커지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재소며 관청을 공격한다. 일제는 일본군 2개 연대를 끌어들이며, 헌병 보조원들 모집하여 의병 대토벌 작전을 펼친다. 백종두는 경성 양정의숙에 입학시킨 아들 백남일이 주색잡기에 여념이 없자 끌어내려 헌병 보조원으로 등록시킨다. 의병들은 일본군의 대토벌 작전에 거의 소멸된다. 지삼출, 손판석이 군자금 마련을 위해 부자상인이나 지주 또는 관청 등을 습격하다 손판석은 생포되어 전주-군산 도로 공사장에 끌려간다. 송수익, 공허, 지삼출 등 의병장들은 현상금이 걸리며 "생사를 미리 알아 묘술불패라네 천년장수 송수익"의 노래가 퍼진다. 토벌대에 부상당한 송수익은 신령바위로 피신한다. ※ 2달 동안 계속된 남한 대토벌에 대소 의병장 103명, 의병 4천 2백 명이며, 의병들의 기세가 드높았던 3년 동안에 일본군에 학살당한 의병은 1만 6천 7백명, 부상자 3만 6천 8백 명이며, 6천채의 집이 불에 탔다.
20. 침묵하는 땅
안중근 의사가 초대 총감 이등박문을 암살했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통쾌해 한다. 공허는 송수익 장군이 죽었다는 소문을 퍼뜨리며, 송수익 집을 찾아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한다. 일진회장 백종두는 쓰지무라의 지시에 따라 한성에서 열린 일진회 비상임시총회 합방건의 성명 박수부대로 참석한다. 경성 일진회장 이용구를 죽이려다 동경유학생 두 명이 체포되고, 이완용을 죽이려 한 이재명이 상처만 입히고 실패하는 등 사건이 잇따른다. 한편 어느 정도 상처를 회복한 송수익은 공허를 통해 세번째로 피신처를 옮겼다. 화전민 촌에 잠시 은신했던 송수익은 공허의 안내로 말사라 부르는 자그마한 절에 피신한다. 의병으로 죽은 남편의 이렛재를 지내는 여인(홍씨)을 보고 애틋한 마음으로 시를 지어 아기중(운봉)을 통해 전달한다.
21. 해가 진 나라
생포된 의병들은 앞날을 알 수 없는 옥살이와 강제노동에 시달리며 나날을 보낸다. 생포된 손판석은 철도 공사장에 투입된다. 일제는 신작로 공사, 사쿠라 심기, 철도 공사 등 수탈을 위한 기반 시설에 박차를 가하며 한일합방(1910년 8월 29일)으로 조선 총독부를 설치한다. 백오십리에 걸친 신작로 양쪽에 사쿠라를 심는 것은 대대적인 식목공사였다. 군산 세력과 일본의 대재벌 미쓰비시와의 싸움으로 군산과 전주의 중간 지점인 넓은 들판에 자리잡고 있는 솜리에 철도역이 생기게 된다. 군산의 세력은 호남의 관문이기 때문에 호남선은 군산을 경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전주 일대의 벌판에 대농장을 확보한 미쓰비시에서는 전주 통과를 주장한다. 전주 양반들이 철도의 전주 통과를 반대하자 통감부에서는 전주와 군산 중간지점인 솜리로 결정하며 군산은 호남선의 지선으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 동네를 비켜가며 철길이 놓이고 기차역이 생기면서 붙여진 이름이 이리였다. 각종 정치·사회단체들의 강제 해산으로 일진회도 더불어 해산되고 백종두는 죽산면장으로 임용되며, 쓰지무라로부터 토지조사사업 계획을 듣는다.
22. 미로
공허의 안내로 신세호와 의병장으로 3년간 옥고를 치룬 임병서가 말사에 피신하고 있는 송수익을 찾는다. 몇 년만에 한자리에 둘러앉은 그들의 얼굴에는 삼십객의 문턱에 선 세월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송수익이 조정의 처사에 강력 반발하는 말을하자 신세호는 군왕에 대한 불충불경한 언사라고 단호하게 반박한다. 송수익이 "자네는 나라의 주인이 임금이고 백성들은 그 종이라고 생각하는 거고, 난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고 임금은 백성들을 위해 치정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의 차이일세"라고 하며 신채호의 글을 읽어보라고 말한다. 임병서가 두 사람의 의견 충돌을 중재하며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게 된다. 송수익이 의병을 모아 만주로 떠나자고 제의하나 임병서와 신세호는 주저하며 말사를 내려온다. 신세호는 송수익의 말을 생각하며 신채호의 이야기책(성웅이순신, 을지문덕)을 읽고 어떤 깨달음으로 주먹을 꼭 말아쥔다. 비록 북행은 못해도 자신의 능력으로 그 일은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23. 검은 파도
한일합방이 되자 대한국민회 하와이 지역 총회에서 일본 성토와 궐기대회를 개최한다. 하와이 여러 섬에 거주하는 4천 2백 여명의 동포가 거의 참석했다. 일본 영사가 방영근 농장에서 인구조사를 홍보하다 이민자들에게 폭행을 당하며, 일본 앞잡이 최순용이 농장에서 국민회 회원 명부를 훔치려다 발각되어 훈방되나 살해당하기도 한다. 남용석이 막사에서 돈을 잃어버리자 그와 가까이 지내는 방영근과 김칠성이 술자리를 마련해 위로한다. 김칠성이 보수가 좋은 파인애플 농장으로 일터를 옮기자고 제의하나 조심하자며 방영근이 주저한다. 국민회에서는 합방으로 낙망하여 방황하는 조선인들의 정신무장을 위해 각 농장마다 젊은이를 모아 군사교육을 시키게 되자 방영근 등은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농장주들과 국민회 사이에 <사진 결혼>이 논의되어 결혼하러 오는 조선여자는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도록 하자, 나이든 총각들은 가슴 설레게 된다.
24. 세월의 상처
무주로 시집간 보름이의 남편이 의병과 내통한다고 동네 젊은이들과 함께 일본군에 총살당하게 된다. 암담한 세월의 힘겨움을 시아버지가 헤아려 보름이에게 여름과 겨울에 친정나들이를 허락한다. 보름이 친정나들이에 일본 색실을 수국이에게 선물하자 대근이가 "아까운 돈 없애감서 왜놈덜 물건 쉽게 사덜 말소. 다 나라 망쪼 드는 것잉게" 보름이를 쳐다보며 정색하며 말한다. 방대근은 신세호에게서 교육을 받으며 깨우치고 있었던 것이다. 지삼출의 아내 무주댁이 감골댁에게 남편을 찾아 나서겠다고 하자 "올 때가 되면 식구를 데리러 올 것"이라며 기다리라고 타이른다.
25. 지반 다지기
죽산면에서 순사보로 일하는 장칠문은 백종두의 수족으로 배일자들을 색출하려 혈안되어 찾는다. 신세호는 신민회 간부인 신채호의 소설 《성웅 이순신》과 《을지문적》을 소유했다는 이유로 신민회원이라는 누명을 씌워 주재소에 끌려가게 된다. 신씨 문중 대표가 백종두를 찾아가 사정하게 된다. 백종두는 양반으로부터 존대를 받았다고 통쾌해 한다. 하시모토는 토지를 수매하기 위해 죽산면의 경작실태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농지경작 실태를 조사하라고 지시하며, 몇 명의 지주들을 심복으로 만들라고 명령한다.
26. 번뇌의 불
송수익을 그리워하는 홍씨는 죽은 남편의 삼칠제를 올리겠다고 시부모께 핑계 대고 말사를 찾는다. 시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으며 사무쳐오는 외로움에 죄의식을 느끼나 송수익에 기우는 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아기 중 운봉이 홍씨의 마음을 공허에게 전하며 송수익을 만나게 해 주기를 부탁한다. 주지승이 청상 가슴에 도진 상사병이며 인연은 번뇌의 시작이며 번뇌가 무서워 인연을 피할 까닭이 없다고 하자, 공허는 송수익에게 그 사실을 전한다. 송수익은 만주로 떠나기 위해 의병들을 해산시킨다. 공허의 대원 여섯까지 포함, 모두 서른 넷이었다.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아리랑 노래를 끝으로 서로 작별한다. 공허로부터 홍씨의 일을 전해들은 송수익은 그 여인을 만날 때 그랬듯이 헤어질 때도 위로의 마음을 지니고 인연의 매듭을 짓고 떠나는 것이 도리라 생각하며 말사를 찾는다. 그는 홍씨에게 자기는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난다며, 만난 일이 없었던 것으로 잊으라며 자리를 뜬다.
< 제 3 권>
27. 뻘밭.
왜놈 앞잡이 이동만은 요시다를 등에 엎고 부를 축적,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풍요로운 생활을 한다. 일본 이주민들이 밀려들자 농장에서는 그들에게 논을 우선적으로 배당하여 많은 조선 소작인들이 소작을 잃는다. 요시다는 이동만에게 소작료를 올리며 소작인들을 잘 다독거리라고 하자 이동만은 농민들에게 빌려준 이자도 올린다. 그는 논을 사들이고 싶어하나 요시다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해 돈놀이를 하고 있었다. 지삼출,손판석,배두성,천수동,손씨,손필녀등은 화전을 일구고, 집을 지어 천수동,배두성,손씨등이 거주토록 하고 지삼출과 손판석은 하산하여 군산부두에서 등짐일을 하게 된다. 군산은 타관사람들이 많아 숨어살기에 좋았던 것이다.. 이동만은 소작인들에게 피습 당해 다리가 부러진다. 소작인들은 차례로 농장 사무실에 끌려가 헌병들로부터 매타작을 당하나 범인은 잡히지 않는다.
28. 변신의 굴레
호남선 전 구간중 군산-강경선이 제일 먼저 개통된다. 송수익을 만주 통화까지 배웅하고 돌아온 공허스님은 포교당에서 만주로 떠나려는 지삼출과 손판석을 만나 기다리라고 한다. 감골댁은 김참봉과 하시모토가 미모가 출중한 막내딸 수국이를 첩으로 삼으려 하자, 지삼출과 손판석네 가족과 함께 군산으로 피신한다.
29. 탐욕의 소용돌이
장덕풍은 사탕공장을 세우며 정미소를 차리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의 아들 장칠문은 의병하다 숨어든 사람을 잡고, 그공으로 정식 순사가 되어 군산으로 옮긴다. 정재규는 그의 아버지가 죽자 화투노름이며 주색잡기에 빠져들며, 장덕풍에게 급전을 들여 쓰기도 한다. 하야가와가 장덕풍에게 장학후원회에 가입하라고 하자 흔쾌히 대답하며 자신을〈유지〉대접을 해준 것에 흐뭇해 한다. 정재규, 정상규 형제는 아버지가 죽은 뒤 2년이 넘게 재산 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들 어머니의 발병은 남편을 잃은 상심이며 병세가 심해진 것은 두아들 사이의 다툼이었다.
30. 길 그리고 길
주재소에서 풀려나온 신세호는 임병서가 보약을 들고 병문안을 오나 거절하고 심호흡 치료를 한다. 그는 송수익네를 생각하면 항시 마음이 무거웠다. 송수익의 모친은 그간의 마음의 고통과 몸의 고초가 고스란히 병이 되어 앓고 있었다. 그녀는 병문안 온 신세호에게 손자들을 부탁한다며 눈물을 흘린다. 임병서가 찾아와 총독부를 상대로 국권반환운동을 하는 독립 의군부에 가담할 것을 제의하자 신세호는 지금까지의 일제 탄압을 열거하면서 그와 같은 운동은 문약한 유생들이 하는 꿈같은 일이라며 거절한다. 그는 손수 농사를 지으며 서당을 다시 열지 못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든 서당에서 했던 일을 이어나가리라 결심한다. 송수익의 모친이 사망하여, 빈소를 찾은 공허가 순사에게 잡혀가는 도중 순사와 순사보를 살해하고 도망친다.
31. 대지진의 시발
토지조사령이 공포되어 궁장토, 역토, 둔토등 많은 토지들을 국유화 시킨다. 그와 같이 국유화된 농토의 7할 이상을 통감부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넘겨 준다. 농토를 빼앗긴 사람은 외리마을에 열둘, 내촌 마을에 열하나였다. 그들은 외리마을 박병진과 내촌마을 김춘배를 대표로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항의한다. 주모자로 밝혀진 박병진과 김춘배는 구속되고 나머지는 태형을 당해 6명이나 불구가 된다. 하시모토는 토지조사를 위한 지주대표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이용하기에 편리한 지주를 선정하도록 백종두에게 지시하며, 동양척식주식회사로부터 많은 토지를 불하 받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백종두는 정미소를 세우며 토지 구입에 이용하기 위해 옥산면 지주위원회에 친척을 밀어 넣으려 한다.
32. 세월의 잔가지
공허스님은 농부로 가장하여 그와 연결되어 있는 의병출신 양승일과 김판술을 찾아가 안부를 묻고 배두성이 화전민촌으로소 떠났다는 사실을 안다. 그들은 공허스님이 금산사의 논을 소작 부치게 해서 사하촌에 묻어들게 한 것이다. 강기주, 천수동, 손필녀 등이 거처하는 화전민촌을 가는 도중 주막집에 숙박하면서 농민들의 오고가는 말을 듣고 분개한다. 토지조사 사업을 위해 많은 일본 측량기사들이 헌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측량을 실시하며 많은 농부들이 저항도 못하며 토지를 뺏기고 소작인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화전민촌에 들른 공허스님은 배두성이 장날 많은 농민들이 모인 대장간에서 "농민들이 뭉쳐 토지조사에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대장장이의 밀고로 주재소에서 잡으러 오자 도망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배두성이 손필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공허스님은 두 남녀를 중매하여 결혼시킨다. 손필녀는 송수익을 사모하나 배두성이와 결혼하면 만주의 송수익을 찾아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배두성과 결혼하게 된다
33. 뭉쳐야 산다
지삼출, 손필녀, 방대근, 서무룡등은 군산부두에서 일거리를 놓고 중국인들과 패싸움을 하게 된다. 이때 손판석은 부상으로 다리가 부러지며 방대근도 부상을 당하게 되자 같은 또래인 서무룡이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 싸움에 능한 서무룡이는 다친데 없이 무사했던 것이다. 부두에서 일하는 중국인들은 장삿배를 타고 묻어들어 불법체류하며, 경찰의 묵인아래 부두 노동판에 끼어 들었던 것이다. 부상당한 방대근과 함께 감골댁집에 들른 서무룡이 수국이를 보고 그 미모에 반하게 된다. 지삼출 아내 부안댁과 감골댁이 생계를 위해 미선소에 일하려 하나 감골댁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수국이가 미선소에서 일하기로 한다.
34. 덧나는 상처
토지조사사업에 반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항의하다 주모자로 구속된 박병진, 김춘배가 몇 달씩 재판이 연기되며 부친 박병진을 면회하는 박건식은 그의 어머니 대목댁을 거짓말로 안심시키고, 마을주민들에게 땅찾기 위해 마음을 굳게 갖자고 한다. 동척회사에서는 타작을 끝낸 주민들의 집을 샅샅히 뒤지며 숨겨논 볏단 등을 찾으려 한다. 볏단을 숨겼던 한기팔이 동척직원들로 부터 죽도며 목검 등으로 몰매를 맞고 기절한다. 동척에서는 수확의 절반을 고스란히 빼앗아 갔던 것이다.
35. 아버지와 아들
우체국장 하야가와의 도움으로 일본에서 첩보원 교육을 마치고 돌아온 양치성이 가족들을 호강시키겠다고 다짐하며 지난날을 회상한다. 아버지가 죽자 그의 가족 다섯 식구는 날마다 배가 고파 허덕거렸다. 그는 꼴머슴으로라도 들어가려 했지만 너무 어렸다. 거지로 나섰던 그는 일본어 몇 마디를 익혀 일본인을 상대로 구걸 생활을 하던 중 하야가와의 눈에 띄어 우체국 소사로 일하게 되었던 것이다. 첩보원 교육을 마치고 돌아온 양치성에게 하야가와는 "너는 천황폐하의 충직한 신하인 동시에 사적으로는 나의 아들이다"라며 1등으로 졸업한 것을 칭찬한다. 양치성은 노동조합 및 의병 활동자들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노동자로 가장하여 째보선창에서 정보 활동을 한다.
36. 호랑이 아가리
미선소에서 일하는 수국이는 많은 여자들이 쌀을 훔쳐 먹다가 감독 에게 들켜 폭행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몸을 빼앗긴다는 소리를 들으며 일을 끝내고 몸수색을 당할때마다 몸을 더듬는 감독들의 행동에 몸서리를 친다. 미선소 주인 백종두의 아들 백남일에게 수국이 강간 당하자 무주댁은 딸에게 돈벌이 보낸 것을 후회하며, 방대근과 지삼출이 백남일을 죽도록 폭행하여 명치눈박이로 만들고 그들 가족은 화전민촌으로 피신한다.
37. 파장과 진동
지삼출이 의병이었다는 것을 눈치챈 양치성은 그를 체포하기 직전에 지삼출네와 감골댁네가 피신해 버리자 백남일이 일을 그릇쳤다며 하야가와에게 보고한다. 그는 서무룡이 방대근과 공범자라고 누명을 씌워 헌병대에서 죽이려는 것을 살려주는 것처럼 속이는 술수로 그의 정보조직원으로 삼는다. 백종두는 그의 아들 백남일이 강간한 사람이 수국이란 사실을 알고 하시모토가 수국이를 첩으로 삼으려 했으며 지금도 그리워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는 다시는 수국이의 이름을 입에 담지 말라며 백남일을 다그친다. 한편 화전민촌으로 피신한 수국이는 목을 메어 자살을 기도하나 지삼출 등에 일찍이 발견되어 살아난다.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고, 사람에게 알맹이는 마음이고 몸은 껍데기일 뿐"이라는 공허스님의 설법을 들은 수국이는 꿋꿋이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돌린다. 지삼출은 만주로 떠나기 전에 군자금 마련을 위해 공허스님과 함께 부잣집을 털기 위해 화전민촌을 떠나며, 감골댁은 수국이와 함께 두딸(보름, 정분)을 찾아보러 나선다.
제2부 : 민족혼<4권,5권,6권>
< 제 4 권 >
1. 대 지 진
외리 남상명이 박건식을 찾아가 보름을 맞아 풍악놀이에 징채를 맡아 달라고 부탁하자 박건식은 부친께서 5년형의 언도를 맞아 엄동설한에 징역살이를 하고 있는데 놀아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거절한다. 남상명은 왜놈들이 악독할수록 더욱 힘을 내어 풍악을 울려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며 박건식의 부친께서도 그리하기를 원할 것 이라고 한다. 징소리는 애간장 타는 속울음이고 천리밖의 넋을 부르는 소리였다. 보름을 맞아 풍악판을 벌이려는 농악대앞에 나타난 순사가 농악을 금지한다며 북과 장구를 칼로 찔러대며 이를 어기는 자는 가차없이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들은 모두 허탈감에 빠질뿐이었다. 백종두는 토지조사 위원회를 구성할 지주대표를 양반이면서 논밭을 많이 가진 부자들 중에서 자기편으로 이용할 수 있는자를 뽑기 위해 고심한다. 그들 지주총대란 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을 앞장서서 추진해 나갈 선봉대였다. 일본조사관의 수족노릇을 하거나 감사원의 보조원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한편 이동만은 서리출신들로 하여 지주총대에 들어갈 사람을 손아귀에 쥐고 있었다. 토지조사 사업은 전국토를 대상으로 총독부 소유의 땅을 최대한 확보하며 소유자를 명백히 하여 세금을 철저히 징수하고 조선땅을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완전히 장악하자는 목적이었다. 모든 신고서에 지주총대의 서명이 없는 것과 기한내에 제출되지 않는 땅에 대해서는 무조건 국유로 편입시키도록 되어 있었다. 백종두는 마감기일을 촉박하게 정해 신고서를 배부한다.
대지주들은 면사무소를 통해 자기네 재산에는 아무런 피해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귀뜸을 받고 농토의 신고서를 작성하며, 일반 소지주들은 신고 기간이 압박해 오자 불안해 하고 초조하게 된다. 신세호는 글을 모르는 동네 사람들의 신고서를 작성해 준다. 많은 지주총대들이 폭행당한다는 소문과 함께 이동만 휘하의 지주총대 한명이 옥구군에서 괭이에 찍혀 죽으며, 차갑수는 신고서에 도장을 찍어주지 않는 지주총대 나기조를 떠다밀었다는 이유로 당산 나무아래에서 모든 동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총살 당한다.
2. 광막한 땅
만주 통화에 이주한 송수익은 지삼출, 천수동, 김판술, 양승일,배두성 등의 상투를 잘라주며 의병이 아니라 독립군으로 새롭게 시작하자고 다짐한다. 송수익은 밥때며 밤이면 그들을 모아놓고 "청나라를 세운 누루하치가 태어난 만주땅을 신성시하여 200여년동안 봉금령이 내려졌으며 그에 따라 만주땅은 긴 세월동안 낙엽들이 쌓여 썩으면서 부엽토로 변해 땅 색깔이 시커멓게 되었으며 길림은 동서남북 오육백리가 넘게 망망한 벌판이며, 용정은 조선 사람이 중국사람보다 많은 지역으로 왜놈들이 한일합방 1년전에 총영사관이 설치되어 독립운동가들도 다른데로 피신한다"는 등 여러 이야기를 통해 교양교육과 정신무장 교육을 시켰다.
송수익은 공허와의 약속에 따라 최적의 투쟁지를 물색하기 위해 석달에 걸쳐 길림-하얼빈-연해주-북간도-서간도 물색한 결과 서간도 통화에 자리 잡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곳은 독립군을 유지하고 보존하는데다 국내의 일본군들을 상대로 싸우기에 입지조건이 좋았으며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할 종합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이들을 독립군으로 양성하기 위해 이회영이 서간도 유하현에 신흥강습소(무관학교)를 설립한다.
3. 벽 그리고 벽
만주를 다녀온 공허는 신세호에게 송수익이 사돈 맺기를 원한다고 전하자 신세호는 이심전심이라며 기뻐하며 흔쾌히 승낙하고, 일본군이 의군부 간부들을 체포함에 따라 독립의군부에서 활동하던 임병서가 만주로 피하려 한다고 말하자 공허가 하루빨리 임병서를 만나는게 좋겠다고 말한다. 신세호는 공허의 그 신속한 결정에 승려가 아닌 결단력 있는 무인으로써 송수익의 체취를 느낀다. 총독부는 양반계층을 이런저런 방법으로 회유하듯 사찰령을 공포하여 선종과 교종을 통합 전국에 30개 본사로 정하고 작은절들을 그 휘하에 속하게 함으로써 일사불란한 조직체계를 갖추게 한 것은 종교를 장악하자는 것이었다. 그 법은 뒤로 절재산을 확대시켜주고 승려들이 더 편하게 살수 있도록 하는 혜택을 감추고 있었다. 일반 백성들처럼 겁먹은 채로 무상이란 도피처에 안주하며 목탁을 열성으로 치는 것이 중들의 할 일이라 생각하는 승려들이 많아지며 그들을 의병으로 모으는 것이 여의치 않게 된다. 의병은 뿌리가 뽑히고 만주의 형편은 여의치 않으며 대중들은 억울하게 땅을 뺏기고 양반지주들은 재산 지키기에 급급해 친일파가 되어가고, 승려는 승려대로 잇속과 편안을 따라 넋을 팔고 있는 형편이었다.
공허는 군자금 마련을 위해 부자와 거상들을 상대로 한 비밀결사 조직을 결심하며 군산 손판석을 찾는다. 다리 불구가 된 손판석이 서무룡의 도움으로 창고지기 일자리를 구했다는 말에 공허는 "서무룡이 일본의 앞잡이일 가능성이 많으니 그를 잘 살피라" 이르며 자리를 뜬다. 운봉의 부탁으로 홍씨집에 들른 공허는 "송수익이 만주 형편이 되는데로 마누라를 포함한 가족들을 옮겨 가기로 되었다"며 만주로 향한 홍씨의 마음을 달랜다.
4. 오 누 이
지주총대 나기조를 떠다밀었다는 이유로 총살당한 차갑수의 아내는 실성하여 저수지에 빠져죽으며 그의 아들 득보와 옥녀는 거지 생활로 연명한다. 차득보는 같은 또래 아이들이 거렁뱅이라 놀리면 속으로 "아니여, 아니여, 나는 거지가 아니여, 왜놈들이 느그덜 아부지럴 죽이면 느그덜도 벨수없어" 외치면서 누이동생을 굶기지 않게 된 것으로 참고 이겨낼 수 있었다. 그들 남매는 닷새에 한번씩 부모님 산소를 찾아가 나란히 절을 하고 단정히 앉아 육자배기 가락들을 읊조리곤 했다. 어느날 들에서 옥녀가 부르는 노래 소리가 김제가는 길목의 주막집 주인의 눈에 띄어 주막에 기거하면서 옥녀는 손님에게 소리를 들려주고 득보는 잔일을 하게 된다. 주막집 주인은 옥녀를 놀이패에게 넘긴다.
5. 지화자 잘도 논다.
방대근에게 폭행당한 백남일이 일본에서 치료받고 명씨 눈박이로 돌아온다. 헌병에서 쫓겨나게 되자 그의 아버지 백종두는 쓰지무라 및 하시모토에게 선처를 부탁하나 촉탁근무자로 지정한다고 하자 그만두라며 화가 치민다. 장덕풍은 아들 칠문이를 통해 백종두네 집안사정을 듣고 고소해 한다. 백종두가 아전으로서 면장까지 되어 자기를 무시하며 정미소,미선소까지 세워 돈을 벌게 되는 것이 배가 아팠던 것이다. 장덕풍은 사탕공장옆 빈터에 정미소와 미선소를 세운다. 그는 백남일의 예를 들며 장칠문에게 미선소에 발길질하지 말라고 당부하나 장칠문은 혼자 드나들며 맘껏 재미를 볼 작정이었다.
6. 역둔토 특별 처분령
하시모토는 그의 농장에서 생산된 쌀이며 소금을 일본에 보낼때면 의례 군산부두에 들러 출항하는 배를 보면서 애국하는 보람을 느꼈고 돈벌이의 재미를 만끽했으며 사업 확장 의지를 불태웠다. 그는 많은 일본 이주민들이 항구에 도착하는 것을 보고 쓰지무라를 찾아 그 연유를 묻는다. 일본은 조선을 영구히 지배하기 위해 2백만이 될 때까지 일본인을 이주시켜 토지조사사업으로 국유화된 토지를 우선 대여해 주고 정착하게 하려 했던 것이다. 그것이 역둔토 특별처분령이었다.
외리 한기팔은 자기 밭에 왜놈이 집을 지으려 하자 그밭에 똥을 붓고 주재소에 끌려가 쇠좇매를 맞고 반죽음이 되어 들것에 들려 나온다. 징역살이하는 박병진은 면회 온 아들 박건식과 남상명에게 "우리만 살고 끝내는 욕심이 아니여, 그땅은 새끼덜 것인게 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혀, 찔기게"라고 힘주어 말한다.
7. 양반의 자제들
서울에서 유학중이던 정도규는 모친의 주검 앞에서 재산싸움을 하는 큰형 정재규와 작은형 정상규의 행동에 화가 치미나 어머니 영전에서 시끄런 소리가 오가는 것은 자식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참는다. 정도규는 재산을 분배하지 않으면 장례를 치르지 못하게 하겠다며 상복도 입지 않고 문상객도 맞이하지 않는 정상규의 마음을 돌린다. 장례가 끝나자마자 정상규가 재산분배를 요구하자 정도규가 중재하여 해결하게 된다. 정상규는 그의 몫의 반의 반을 정도규는 그의 몫의 반을 큰형에게 양보하게 되자 큰형 정재규는 땅문서를 내놓는다. 정도규는 재산을 나눠 갖고 나자 형제로 연결되어 있던 끈이 끊어져 버리고 제각기 흩어진 것 같은 외로움과 삭막함에 목이 메이며, 앞으로 지주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이 무거웠다. 정상규는 만석군이 되리라 작심하며, 정재규는 그 동안 꺼림직 하게 남아 있던 문제를 해결해 버린 홀가분함으로 군산에 나가 장덕풍의 손에 놀아나 주색잡기에 돈을 뿌리고, 돈 보따리를 싸들고 집에 오다 그 날밤 공허의 비밀 결사대에게 강탈 당한다.
8 떼도둑의 소문
토지 조사사업은 숱한 사고와 말썽을 일으키면서도 줄기차게 진행되어 나가고 있었다. 곳곳에서 부잣집이 떼도둑에게 털렸다는 소문에 신세호는 그들이 공허가 이끄는 비밀결사일거라 믿으며 무사하기만을 빈다. 공허는 손판석으로부터 하시모토가 5천석을 낸다는 말을 듣고 그 집을 털기로 작정한다. 그러나 하시모토는 5천석을 처분한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리며 주재소와 연락하여 순사들을 매복시키고 유인하였던 것이다. 하시모토집 털이에 실패한 공허는 홍씨집으로 피신하어 그녀와 통정하게 된다. 홍씨는 자신이 만주를 오가는 것까지 알고 있는 처지였고 서로 믿음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공허가 떠난 다음 홍씨는 경대 서랍에 보관했던 마를대로 마른 솔가지를 아궁이 속에 버렸다. 그것은 송수익이 만주로 떠나며 무심히 떨구었던 솔가지 였다.
9. 뿌리 뽑힌 나무
보름이 시아버지는 토지조사사업으로 밭을 뺏기게 되자 측량하는 면서기를 괭이로 찌르고 동네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총살당한다. 어린 삼봉이와 단둘이 남게된 보름이는 군산 손판석을 찿아가 그가 관리하는 창고의 낙미쓸이로 일하게 된다.
10. 국민 군단의 깃발
하와이에 이민간 방영근은 10년 세월동안 고향의 그리움이 식을줄모르며 사탕수수 농장에서 파인애플 농장으로 옮기게 된다. 조선노동자들은 다른나라 노동자들보다 부지런하면서 일솜씨가 뛰어나기 때문에 파인애플 농장주들은 바라크에 칸막이를 해서 독방을 만들어 주면서 일종의 소작제인 청부농작법으로 조선 노동자들을 유치했다. 하와이 이민자들은 채찍질을 당하며 중노동에 시달려 잠자리에 쓰러지면서 고향생각 할 짬도 없이 보낸 2년 생활로 계약기간은 끝나게 되나 바다를 건너온 배삯을 갚았을 뿐 바다를 건너갈 배삯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머지않아 돌아가게 된다는 생각으로 새롭게 마음을 심으며 중노동과 싸웠으나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세월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을 얼핏 느끼면서 고향에 소식을 전해야 된다는 생각은 했으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에 위안을 삼으며 나날을 보낸다. 그들은 사진 결혼으로 본국에서 들어온 처녀들에게서 일제의 참혹한 수탈 상황의 고향 소식을 듣고 분풀이 하듯 국민회에 기부금 성금을 냈다. 그들은 파인애플 농장에서 수입이 좋아지게 되자 사진결혼이 전보다 휠씬 활기를 띠게 되었다. 남용석은 김말녀와 결혼한다. 인천에서 간호사였던 김말녀는 사진 결혼을 위해 하와이에 왔으나 첫날밤 사진과 너무나 차이가 난 남자를 보고 도망쳐 나와 일본인 가계에서 떡을 훔치다 주인에게 폭행당하는 것을 목격한 지삼출과 남용석이 떡값을 갚아주고 데리고 왔던 아가씨 였다.
〈 제 5 권 〉
11. 어둠 저편의 새벽
중국 사람들은 만주의 조선사람들을 〈메기〉라 불렀다. 한사코 물가를 찾아가 논을 일구기 때문에 붙인 별명이었다. 밭농사밖에 지을 줄 모르는 중국인들은 조선인들이 피땀흘려 습지나 저지를 논으로 일구어 놓으면 지주들이 나타나 소작료를 요구하곤 했다. 그들은 돈한푼 들이지 않고 농토가 늘어났다. 송수익등이 강가의 습지를 개간하여 보잘것없는 소출을 하였으나 해가 바뀌자 지주인 추가가 나타나 반타작 소작료를 요구한다. 송수익은 폐지로 버려둔 땅을 농지로 만든 공이 있으니 소작료를 낮추자고 하나 반응이 없자 만주땅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동포들이 그런 강압앞에 동포들의 자치기관인 부민단을 찾으며 비감에 젖는다. 부민단은 동네마다 촌장을 두고 2-3개의 동네를 단위로 무장 자치대를 설치했다. 자치대는 낮에 총을 들고 다니지 않으며 옷도 농부복으로 겉보기에는 조선사람들이 모여 사는 농가일 뿐이었다.
12. 하 루 살 이
쓰지무라는 "의병을 소탕하고 조선인들이 잠잠하다고 해서 조선인의 끈질긴 근성을 방심하지 말라"며 주재소장을 다그친다. 하시모토는 백종두가 외눈깔이 되어 헌병대에서 쫓겨난 아들을 미곡도매상을 시켜 면민들의 쌀을 자기 아들에게 넘기라고 강압하며, 항의하는 부자 양반들에게 쓰지무라 과장의 이름을 팔아 협박하고 있다고 쓰지무라에게 거짓 모략한다. 하시모토는 백종두가 원평천을 토지조사 사업에서 제외시켜 자기 사유지로 편입시키려 한다는 것을 토지조사국 직원 다나카로부터 알았던 것이다. 그런 사유로 백종두는 죽산 면장직에서 면직된다.
13. 떠도는 구름
토지조사사업에 반대하여 박병진 등과 함께 동척에 항의하다 태형당해 성불구가 된 외리 김용철이 집나간 아내 삼포댁를 찾아 떠돌다가 병들어 외리 당산나무 아래에서 죽게되자 외리사람들이 곡식이며 돈을 추렴하여 초라하게나마 장사를 치른다. 한편 동생 옥녀가 놀이패에 팔려가자 득보는 거지 행각을 하며 동생을 찾아 떠돌아 다닌다. 박병진이 옥사하자 외리 주민들은 박건식을 땅찾기운동 대표자로 선정한다.
14. 두 개의 덪
서무룡은 부두에서 노동자들에 끼여 정보활동을 하며 방보름이의 환심을 사려 과자며 고기를 사들고 자꾸 집에 드나들고, 미선소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보름이와 마주친 장칠문은 그녀의 집까지 미행하여 겁탈할 기회를 노린다. 두사람에게 위협을 노낀 보름이는 미선소를 그만 두고 군산을 떠나려는 생각도 하지만 초롱초롱한 아들의 눈망울을 보며 그의 장래를 위해 조그마한 장사 밑천을 만들 때 까지만 참기로 작정한다.
15. 혼약과 훼방꾼
사찰주임으로부터 송수익의 생사여부를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은 양치성이 "송수익이 만주에 살아있다. 송수익이 죽었으면 왜 제사를 지내지 않느냐?, 하필이면 송수익과 사돈을 맺으려하냐"며 신세호를 협박하여 송수익의 정보를 알아내려하자 신세호는 "송수익하고는 죽마고우로써 서로 첫아들, 첫딸을 보게 됨서 맺은 혼약으로 송수익이 세상을 떳다고해서 그 혼약을 깰수 없으며, 객사헌 사람은 제사럴 못 지내는 것은 우리네 풍속이다."며 위기를 모면한다. 양치성은 송수익의 처에게도 "혼인을 하면 두집 다 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협박한다. 불안한 신세호는 전주고보에 재학중인 사위될 송중원을 찾아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알리며 그들이 찾아올지 모르니 마음을 단단하게 하라고 다짐한다